Saturday, December 14, 2019

[사설] 靑·경찰 이어 장관들까지 '선거 공작' 개입했다니 - 3.15 부정선거는 아마추어 수준이었다.


4.19의 도화선이 된 3.15부정 선거는, 문재인 일당의 Conspiracy에 비하면 깜도 안되는 꼬마들 장난 같은, 순진한 놀이였다고 본다. 나는 어린꼬마였었지만 그에 대한 상황을 시골에서, 당시 아버지가 보시던 신문을 보시고 얘기해주신 내용이었기에 기억하고 있다.

3.15 부정선거는 여론이 당시 야당쪽으로 기울자, 당시 내무장관이었던 최인규씨가 기획하여 부정선거를 실시하고, 당시 부통령이었던 이기붕씨와 합작을 했던, 당시로서는 엄청난 부정선거였었다. 당시에는 유권자들에게 "고무신한켤레"씩 선거때면 나누어주는게 공식적으로 허가를 낸것은 아니지만, 후보자들은 거의가 다 그런 무드에서 선거를 치렀었다.  이때 이승만 대통령은 고령인데다 또 부통령과 장관들에게 거의 모든 업무를 맡기다시피하고 있을때여서, 어쩌다 대통령이 시민들의 삶을 살피기위해 오늘날의 전통시장같은곳을 시찰나갈때면, 내무부산하의 경찰과 직원들은 미리 동선을 파악하여, 그곳의 상인들에게 대통령께서 물건값을 물어보시면 시중가격이 아닌 훨씬싼값으로 판매되고 있는것 처럼 대답할것을 강압적으로 지시하면, 상인들은 관의 힘이 무서워 그렇게 대답하곤 했었다.  그중의 일화 하나는 유명했고,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달걀 한줄(12개)에 얼마인가?"
"예 각하 30환(당시의 화폐단위) 입니다."  실제로 당시의 시장 가격은 100환정도 한것으로 기억한다.



3.15 정부통령 선거당시 야당은 대통령후보로 "신익희"씨 였는데,  한국의 국운이 여기까지 였었는지? 그분은 선거유세차 전라북도 "이리"시로 향하는 기차안에서 갑자기 심장마비를 일으켜 사망했었다. 부정선거의 결과를 보면서, 더이상은 안되겠다는 국민과 당시 대학생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결국 학생들이 중심이 된 4.19 학생의거가 서울의 대학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대학생들이 궐기하여, 즉 혁명의 도화선이 됐던것이고,  학생들은 학교로 등교하는게 아니고 거리로 뛰쳐나와 "대통령은 하야하라, 부정선거 원흉을 처단하라"라는 구호가 한반도를 뒤덮었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고령의 몸을 이끌고, 대국민 성명을 발표했다. "국민이 하야 하라면 기꺼이 이를 받아 들이겠다" 그리고  프란체스카 여사와 함께 하와이로 외로운 망명의 길을 떠났었다.

그결과로 윤보선 대통령, 장면총리 체제로 혁명은 정리 됐었다(내기억이 정확하지 않을수도 있다).  혁명재판소(?)가 설치됐고, 부정선거의 원흉 최인규 내무장관은 재판에서 사형언도를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당시 부통령이었던 이기붕일가는 친아들 이강석( 내기억으로는 이승만 대통령의 양자로 입양)씨가 권총으로 모두를 사살하고 자신도 목숨을 끊음으로서 3.15 부정선거의 원흉들은 사람들의 시야에서 사라졌었다.

그후 최인규가족은 더이상 한국에서는 살수없는, 국민들의 눈높이에서는 역적으로 보여져, 짐을 싸서 "브라질"로 이민을 갔었다는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될것으로 믿었던 정국은 4.19당시의 거리데모는 양반었을 정도로, 매일같이 서울거리를  점거하고 데모를 계속하기에, 그렇치 않아도 먹고살기 어려운 경제적 여건을 더악화시키는 무질서, 무법천지의 나라 돼고 말았다.정치판은  여야가 치고 받는, 오늘날의 여의도 정치판이 개판 이상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한다기 보다는 당리 당략에 젖어, 국민들의 안전과 경제는 먼 뒷전으로 밀리고 매일같이 정치꾼들은 마치 철천지 원수 같이 싸웠었다.

이러다가는 북한의 김일성에 나라가 전부 넘어갈것 같다는 위기감이 전국을 휩쓸고 있을즈음, 1961년 5월 16일, 국가를 보위하겠다는 일부 군인들이 중심이 되여, 한강을 건너 서울시청쪽으로 진출하고, 남산의 KBS방송국을 장악하고, 5.16혁명을 선포하고, 그중심에 박정희 육군소장이 리더로 국민앞에 나타났던 것이다.  형식상으로는 당시 육군참모총장이었던, 장도영 중장이 혁명의 최고 지휘자 였었지만, 그분은 혁명 주체세력이 아니었기에, 후에 미국으로 건너가 더 많은 공부를 해서 미국의 현지 대학에서 교수까지 했었다고 기억하고 있다.

이때 무명의 박정희 소장이 혁명을 주도 했다는것은, 그래도 위에 계시는분은 조국 대한민국을 버리시지않고, 박정희 라는 인간을 통해서, 못살고 무질서하던,  조국을 현재의 잘사는 나라의 기초를 만들도록 그분을 이용하였던것을 정말로 감사하면서, 윗분의 하시는일은 아무도 예측을 못할, 기적같은 일들을 해주시는구나라고 지금도 확고하게 그신념과 믿음을  간직하면서 노년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오늘의 한국의 무질서하고, 당리당략이 우선이고, 정권유지를 위해서는, 더 발달된 권력남용을 무소불위로 휘둘러 국민들의 삶을 괴롭히고 있다는게 서글플 뿐이다. 신이시여 다시한번 한국을 붙들어 주소서.



입력 2019.12.14 03:18
검찰이 울산 부시장으로부터 '송철호 캠프'의 선거 전략 문건을 압수했는데 청와대·정부·여당이 그 문건에 나오는 각본대로 움직인 것으로 드러났다. 문건이 '송철호 단독 공천이 필요하다'고 하자 민주당은 송 시장을 전략 단독 공천했다. '청와대와 선거 공약 사전 협의'라고 했는데 청와대 행정관이 송 시장 등을 만나 공약을 협의한 것으로 밝혀졌다. '장관들 울산 방문 필요'라고 했는데 환경부 장관이 울산에 왔다. 방문 현장에선 아직 후보 공천도 받기 전인 '송철호 변호사'가 장관과 함께 보고를 받았다. 코미디가 따로 없다. 장관이 송 시장 선거 운동에 나선 것이다.

야당 울산시장 수사는 송 시장 측근의 '제보'가 발단이었다. 청와대는 그 제보를 재가공해 경찰에 수사를 지시했다. 경찰은 야당 후보가 공천을 받은 날 압수 수색을 하며 선거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에 더해 청와대가 여당 후보 공약까지 챙기고 정부 장관들이 대놓고 선거에 개입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지금껏 밝혀진 것들 만으로도 명백한 선거 공작이다. 더 무슨 증거가 필요한가.

그런데도 여당은 "일상적 업무"라고, 청와대는 "본연의 업무"라고, 경찰은 "적법한 수사"라고 한다. 전 정권 청와대가 선거 여론 조사를 했다고 대통령이 실형 선고를 받은 상태다. 정보 담당 경찰들도 총선 여론 수집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자신들은 더한 일을 해놓고 오히려 고함치고 눈을 부라린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2/13/2019121303376.html


https://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2/13/201912130337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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