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July 31, 2015

북한에 억류되여 있던 캐나다 큰빛교회 목사, 목요일 평양기자회견에서 "불법행동고백", 뒷배경이 착찹하다.

결국에는 고문과 위협에 못견디고 거짖 증언을 한것으로 보이는 Pastor Lim에 대한 뉴스가 보도되여 충격이고 안타깝다.  이북같은 체제속에서 가끔씩 이북을 방문하여 북한 주민들의 배고픔을 해결해주기위해 식량보급과 자급자족 방법을 전수해 주려고 노력했던 Pastor에도 더이이상의 고통은 참을수 없었나 보다.  허탈하고 안타깝다.  언제쯤 이러한 비극이 한반도의 북한 그 Beast Regime이 Human organization으로 변화될까?  Pastor Lim의 기자회견 내용을 액면 그대로 믿을 사람이 이지구상에 한명이라도 있을까?  Beast Regime을 제외하고는....



지난 목요일 그동안 북한에 억류되여 있던 큰빛교회 목사가 평양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그동안의 과정을 설명했다고 한다.  이러한 기자회견은, 6개월전에 인도적인 차원에서 북한주민들을 돕기위해 방문했다가 붙잡힌 이후 처음 있었던 기자회견이었다고 북한 중앙방송 KCNA가 보도했다.
그들의 보도에 따르면, Pastor Lim은 지난 2월달에 불법으로 이북에 들어와 북한 정부를 전복시키고 이볼라 전염병 격리수용 정책을 무시하고 활동했었다 라는 내용으로 성명성를 발표했다고 보도한 것이다.
"나는 이북의 존엄과 북한체제유지에 깊은 상처를 냈었다" 라는 고백을 했었다고 한다.
Pastor Lim은 그가 시무했던 교회에서 이북의 라진시에 세운 이북돕기프로그람을 통해, 고아들, 양로원등에서, 도움을 주기위해지난 1월 30일 중국을 거쳐 북한에 들어갔었다. 교회 대변인겸 가족대변인, Lisa Pak은  당시의 이북방문은 지금까지 100번이상을 방문했던것 처럼, 일상중의 하나였을 뿐이었다고 설명을 했었다.
목요일 CNN과의 통화에서 Pak은 "이북이 억류한 죄목과 Pastor가 했다고 하는 불법행위의 증거에 대해서는 얘기할 처지가 아직은 아니며, 다만 이북주민들의 보다 낳은 삶을 개선하기위해 시행해왔던 원조프로젝트를 실행해 왔다는것 외에는 다른 할말이 없다고 성명서에서 밝히고 있다.
"같은 동족으로 북한 주민들을 너무나 사랑했기에 북한을 100 번 이상 방문하여 도움을 준것을 죄목으로 뒤집어 씌운다면, 더이상 할말이 필요치 않은게 아닌가?" 라고 설명했다.

Coerced confessions(강요된 고백)

Westerners held previously in North Korea have said that their confessions were given under pressure from the state.
In April, U.S. citizen Sandra Suh was released from detention in the country and deported to the United States after admitting to "plot-breeding and propaganda against the DPRK," according to KCNA.
Lim apologized in his statement for trying "to remove loyalty in the hearts of the North Korean people to their authorities," according to The Associated Press, which was also present for the news conference. AP reported it was delivered in front of a packed room of Pyongyang-based journalists.
"The purpose that I traveled about several parts of the country on the pretext of "aid" was to build a base to overthrow the system of the country and create a religious state, taking advantage of the policies of the U.S. and South Korean authorities," Lim said, according to the AP.
"The most serious crimes I have committed are that I severely slandered and impaired the supreme dignity and system of this country and perpetrated a scheme to overthrow the state," the AP reported Lim said.

'Canada is deeply concerned'

"Canada is deeply concerned with the case of Mr. Lim, who remains detained in North Korea," said Diana Khaddaj, a spokeswoman for the Canadian Department of Foreign Affairs, Trade and Development. "We continue to advocate for consular access and for a resolution in his case."
A Pyongyang official who answered the phone at the country's permanent mission to the United Nations in New York told CNN he wasn't aware of the confession.
Lim, 60, is the leader of the 3,000-person Light Korean Presbyterian Church in Mississauga, Ontario.
He immigrated to Canada from South Korea with his wife and son in 1986.

In the confession, Lim also admits to showing his congregation and posting online a video, "The Reality of DPRK," using material filmed secretly within the country, according to Japan's Kyodo news agency.
Pak told CNN in March, after the Canadian government first acknowledged Lim's detention, that she didn't believe Lim would have engaged in proselytizing in North Korea, an act illegal in the state.
"He knows the language, he knows the nature of the government, so we don't see that as a legitimate reason that he would be detained," she said. "We don't believe that's the way he would have behaved. He's very wise about that."
In the statement given on Thursday, Pak thanked "those who share in our concerns" and asked for continued prayers and support.
"He remains a compassionate and generous man and we hope to see him home soon," she said.
http://www.cnn.com/2015/07/30/asia/canadian-pastor-hyeon-soo-lim-north-korea/index.html

Thursday, July 30, 2015

금년들어 가장 더운날,불경기를 비웃는 Copper Creek GC에서 Lunar와 골프.

Green Fee가 개인당 $180. 둘이면 $360달러다. Invoice에 찍힌 내역이다.  미친짖 아닌가?  이렇게 비싼 골프를 내가 과연 즐길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는지를 자문 하기도 했었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 토론토, 캐나다에서는 흔치않은 고가의 Green Fee인 것이다.

평상시 드라이빙을 할때 Hwy 27선상에 있는 이곳 Copper Creek GC를 무심코 통과했던 기억이 난다.  Reservation할려고 전화 했을때, 오전 12시전에는 겨우 하나가 있었는데, 아침 일찍이 Tee off할수 있는 오전 8시40분이었다. No choice.... 그것도 감지덕지하고 OK했다.
이곳에서 골프를 하게된 사연이 있었다.  Amex Credit Card로 부터 이멜을 며칠전 받았는데, 내용이 Big Promotion이었다. 위에 언급한 것처럼, Copper Creek에서 골프하는데 약 30% off 해주는 내용이었다.  일단 구매를 했다.  Lunar가 Seasonal 알러지 때문에 고생을 하고 있어, 시골 카테지에도 이번 여름에는 이용하는 횟수도 적어, 매년 Membership을 구매해서 거의 매일 즐겼던 골프도 못하고 있던터라, 한번 내딴에는 거금을 들여 구매하고, 예약하여 오늘 골프를 하게된것이다.
가던날이 장날이라고, Weather forecast에 의하면 오늘이 금년들어 가장 더운 낯기온이 34도를 가리킬거라고 했다.  역으로 생각해서 날씨도 덮고, Green Fee도 요즘같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임을 감안하면, 한가하게 둘이서 오랫만에 즐길수 있을것으로 기대를 했었다.
Pro shop과 연결된 Castle같은 큰 규모의 Convention Hall과 식당 등등에서 부터 그앞에 조성된Bag drop하는데는 Riding Cart가 즐비하게 정돈되여 있었고, 그중의 하나에 내 이름표와 Tee off time이 적혀있는 A4용지 크기의 안내문이 부착되여 있어 보통 다녔던 골프장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는것을 금방 느낄수 있었다.  가끔씩은 Club link에서 운영하는 Kings riding같은 곳에서 라운딩 해 보긴 했는데, 그곳에서 느꼈던 분위기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홀 No 1에는 마샬 "Noel"이 순서에 따라 골퍼들을 내보는데, 내차례가 됐을때,  우리 앞에 있던 다른팀의 2명의 팀과 한조를 이루어 치라고 앞팀과 우리에게 Offer를 하는게 아닌가.

"가능하다면 나는 내아내와 단둘이서만 즐기고 싶다. 그렇게 해다오",
"그렇게 할수없다.  Reservation이 꽉 차서 그렇게는 안된다" 가 그의 대답이었다.
싫지만 그의 지시를 따르려고 앞에 두사람팀에게 조인 할려고 하는데,  "조금만 기다려 보라, 너의 뒷팀이 3명인데, 이들을 먼저 내 보내고 너의 부부만 치게 해주겠다"라는 Offer를 해오기에 "Thank you"로 응답하고 기다렸다.
Tee Box의 잔디는 다른 골프장의 Putting Green 정도로 잘 가꾸어져 있었다.  참 관리를 잘하긴 하는구나.  비싼 Green Fee를 그냥 받아들이는 그런 골프장은 아니다 싶었다.  그러기전에 홀 No 1옆에 있는 Driving range에도 잠깐 들렸었다.  몇개의 볼을 날려 보내 보았다. 물론 Free다.
돈을 생각하면 비싸다는 점을 무시할수 없었지만, 골프장의 관리상태와 골퍼들의 분위기에서 한번쯤은 와서 즐길만 하다는 생각에서 기분은 최상이다. 또 Noel이 나의 제안을 받아들여준것에 대한 넉넉함도 기분을 한층 가뿐하게 해주었다.
골프 카트에는 GPS가 설치되여 있어, 핀이 꽃여 있는 곳까지의 거리를 카트가 움직일때마다 자동으로 표시되는데, Red, White, Blue별로 거리가 표시되여 골퍼들이 계산하기에 아주 편리하게 해주었고, Fair way에서 볼을 따라 달리는동안에는 아침부터 더운 날씨인데도 시원해서 덮다는것을 별로 느낄여지가 없었다.  No Cart라는 표시가 되여 있는곳을 무의식중에 들어가면,  Warning sound가 울리고 카트는 자동으로 멈추어 버렸다. 그리고 약 30초 후에 다시 작동되면 그곳으로 부터 빠져 나올수 있도록 카트에 Program 이 장착되여 있어, 잔디와 골퍼를 동시에 보호해 주었다.
내앞으로, 또 내뒤로 골퍼들은 이어지고 있었다.  Fairway에서 볼을 날렸을때, 찢겨나가는 잔듸밑바닥에는 진흙이 아니라 모래로 덮고 그위에 잔디를 깔아 마치 카펫위를 걷는것 같은 푹신한 Cushion을 주어, 그래서 초보자 골퍼들의 팔 부상을 보호해 주고 있어 마음껏 클럽을 휘둘러 볼수 있어서 편했다.   매홀마다 Fairway중간 또는 Putting Green옆에는 넓은 벙커가 입을 딱 벌리고 있어 괴로운속에서도 즐길수 있는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고, 모래는 TV에서 보는 PGA경기가 열리는 골프장의 벙커 모래보다 더 하얗고 Fine하다는것을 확실히 느낄수 있었다. 좀 과장하여 표현 한다면, 우리가 즐겨 먹는 인절미에 입히는 하얀 콩고물처럼 고왔다.
골프장 이곳 저곳에서는 수많은 Worker들이 분주히 움직이면서 Maintenance하는것을 보면서, 또 요즘처럼 가뭄속에서도 이곳에서는 말라가는 잔디를 볼수가 없었다.  전부가 Auto Sprinkler가 작동되고 있기 때문임을 쉽게 알수 있었다.  주위의 경관도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숲으로 꽉 차있는가 하면 어느새 깊은 골짜기로도 이어지고....골프를더 잘 칠수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긴 했지만, 기분이 좋아서 였는지 크게 실수갈 범하는 횟수가 적어 볼 때리는 기분은 그만이었었다.  그런 분위기속에서도 뭔가 내자신이 너무나 조그맣고,  이곳에서 골핑하는 사람들의 분위기에서 내가 살아온 삶과는 많이 다르다는점이 가슴속을 짖누르고 있음을 느꼈다.
전세계적으로 불경기에 허덕이고 있고, 특히나 캐나다는 더심한것 같은데, 그래서 였는지는 잘 몰라도 Green fee $40달러 정도만 되여도 요즘은 비싸다고 해서, 각 골프장들은 아우성인데, 이곳은 그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곳 같다는 생각이었다.  마샬 Noel에게 들은바로는 월요일이 제일 한가한 날인데 그날도 평균 200명 이상이 라운딩 한다는것이었다.  오늘은 수요일 빈자리가 없이 꽉 찬 스케쥴이라고 했다.  골핑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한창 사회활동을 하는 구룹으로 보였다.  그것도 부족함 없이 세상살이를 하고 있으면서 삶을 즐기고 있다는 생각에서 이들은 보통 우리가 부딪히는 사람들과는 다른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확신이 깊게 들었다.
이들에게 Green Fee $180 달러는 무거운 짐이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다.  $40달러가 비싸다고 더 싼곳을 찾아 헤매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무엇을 뜻하는것일까?  가까이 지내는 친지분 하나가 며칠전 이런 얘기를 해주었다.  그내용인즉, "은퇴해서 살고 있는집에 Mortgage 가 없고, 취미생활을 여유있게 할수 있으며, 당장 필요할때 현찰 $300,000달러를 즉시 준비할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잘 사는 삶이다"라고.  그런 위치에 그친지는 분명히 있는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친구와 이골프장에 와서 주저없이 라운딩 할수 있을까?  많은 생각을 하게한다.  나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살아가는 방법이 다른데, 그다른 방법으로 살아가는 부류의 사람들을 오늘 이곳에서 똑똑히 본것이다.  그래서 인지 서두르지도 않고 여유롭게 라운딩한다.
Banquet Hall에서는 한구룹의 사람들이  Refreshment를 나누면서 담소를 하고 있는 모습도 보였고, 식당에서는 $55달러씩 하는 한끼의 음식을 즐기는 이들로 붐비고 있었다. 겨우 낯 12시도 되기 직전이었는데..... 주차장으로 가는길에 보이는 Riding Cart에는 여전히 오후 2:30까지 10분 간격으로 Tee off Time과 이름이 새겨진 안내종이가 빽빽히 꽃혀 있었다.  이렇게 더운 한낯인데도.... 이해를 하는것 같은데도 조금은 헷갈린다.  결론은 이상하게도 내생전 처음으로 이렇게 비싼 골프를 했는데도 기분은 아주 가볍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주는 아니어도 가끔씩은  Lunar와 함께 라운딩을 하면서 다른 방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것도 내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기회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다.


Wednesday, July 29, 2015

“5.18은 北특수군이 개입한 내란” 진실은? 언제쯤이면 이진실공방에 종지부가 찍힐까.

35년이 훌쩍 흘러간 광주사태의 진실은 무엇인가?

한친지로 부터 이멜을 하나 받았다.  그내용을 혼자 보고 지우기에는 너무도 어마어마해서 여기에 옮겨 놓았다.  이러한 진실공방이 조국이 처한 오늘의 현실이란점을 모른척 지나칠수 없었기 때문이다.  소름이 끼치기까지 했다.  지금시대가, 일제의 식민지로 부터 해방돼면서, 온나라가 '찬탁' 아니면 '반탁'으로 나뉘에 데모가 쉴날이 없었던, 그때가 연상될 정도로 국론이 분열되여 있다는것은 참으로 걱정스러운 일이다.

특전사 군인들이 투입되여, 무고한 광주 시민들을 마구잡이로 학살 했다는, 공식적인 기록이 정설로 되여 있는것으로 나와 있고, 이들의 지휘 통솔계통에 있었던 당시 국가권력기관의 사람들이 무참히 언론의 포화를 맞고, 우리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진지 오래됐고, 당시에 희생된 사람들은 국가유공자로 인정받고, 애국자로, 그리고 국가 연금까지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고, 당연한 귀결로 여겨지고 있다.

http://lifemeansgo.blogspot.ca/2013/05/518-33.html

광주사태의 잘못알려진 진실을 밝혀내기위해 그동안 많은 고통과 비난을 받아가면서, 자료를 찾아 외로운 싸움을 해왔던 또다른 전문가들의 자료공개가 하나씩 둘씩 세상에 밝혀지고 있음을 본다.  유감스럽게도 이들이 발표한 자료는 언론이나 정부당국의 공감을 얻지못해, 전국민들에게 홍보가 돼지 않고 있는점, 또한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이들이 밝혀낸 자료들은 그내용으로 봐서, 천지가 개벽될 정도로 엄청난 내용들이고,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알려진 "광주사태"의 내용을 완전히 뒤엎는 것들이다.  그리고 엄청난 누명(?)을 쓰고 고통속에 살아가고 있는 당사자들이나 유족들에게 채워진 족쇄를 풀수 있는 열쇠가 될수있을것 같다.

밝혀진 내용중 일부는 유감스럽게도 제대로 전달돼지 못해, 끝까지 읽어볼수 없었던점도 안타깝게 느껴졌었다.  언제쯤이되면 밀고 당기는 진실공방이 속시원하게 밝혀질수 있을까?  어느 누구의 안위를 위해서가 아니고 5천만 국민들의 안위를 위해서 말이다.

요즘 고국의 일부 언론들이,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전 대통령, 한국현대화의 기초를 만든 박정희 전대통령"에 대한 재조명 운동이 일어나고 있는 좋은 현상을 보면서, 광주사태 역시 조속히 그렇게 진실된 명암을 밝혀내야 할때가 된것으로 보여진다.
그만큼 조국 대한민국이 모든면에서 성장했기 때문이다.  국민들간에 이간질은 그만해도 될때까 됐고, 또한 국제사회에서도 그수준에 맞는 품격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5.18은 北특수군이 개입한 내란” 진실은?




1980년 5.18 광주사태 당시 무기고를 습격하고, 일사분란한 행동으로 정예 계엄군에 대항한 '600명의 연고대생'이 북한에서 보낸 특수군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이를 뒷받침 하는 군 출신 탈북자들의 증언과 함께, 북한에서 공개한 '광주인민봉기 30돌 행사' 사진 속 인물들이 1980년 5월 언론사 사진기자들이 촬영한 일부 시민군의 얼굴과 일치한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대한민국대청소 500만 야전군>;(대표 지만원)2일 오전 한국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5.18 광주작전에 참전한 북한특수군의 사진을 공개하겠다며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날 지만원 박사는 5.18에 대해, “북한정권에 의해 남파된 600명 정도의 북한특수군이 국가전복을 목표로 광주시민을 선동해 일으킨 게릴� �폭동”이라며, “5.18은 여적사건이라는 사실이 백일하에 드러났으며 숨길래야 숨길 수 없는 역사적 진실”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5.18 당시 계엄군으로 광주에 있었던 11공수특전여단 출신 최 모씨(65)와 문 모씨(62)의 증언도 이어졌다.
당시 특전여단 중대장이었던 최모씨는 “중대원의 1/3 정도가 전라도 출신이었고 광주가 고향인 사람도 몇 명 있었다”며, “당시 광주에서 떠돌던 ‘경상도 군인이 전라도 씨를 말리려고 한다’는 말은 억지를 넘은 유언비어”라고 증언했다.
통신 부사관이었던 문 씨는 “부대원들이 광주에 도착한 뒤 M-16 소총의 ‘공이’를 빼서 반납한 기억이 있다”며, “진압장비는 헬멧과 진압봉 뿐이고 소총은 등에 매고 있을 뿐이었다. 고층건물 밑으로 지나가다가 시위대가 던지는 축대 쌓는 돌에 맞아 죽은 동료도 있었다”고 밝혔다.




문씨는 1980년 5월 21일 시민군이 도청 으로 행진하던 상황을 설명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군용 P-77 무전기에서 지휘관이 ‘여기서 밀리면 다 죽는다’고 절박한 목소리로 말했는데 정말 다 죽었다”며, “당시 도청 앞 분수대 주변은 사망한 진압군의 피로 물들었고 살려달라고 절규한 전우들의 목소리는 지금 이 시간에도 귀에 쟁쟁하다”고 말했다. 이어 문씨는 당시 광주에서는 귀를 의심케할만한 연설과 구호가 등장했다고 설명했다.
아수라장이 된 광주시내에서는 각종 선전문구와 함께 "이제 우리의 혁명은 끝났다. 진압군은 투항하라. 인민전선의 시민군은 해방됐다. 인민전선 지원군이 도착했다. 조선인민군만세"라는 내용의 귀를 의심케 하는 연설 구호가 이어졌다. 

지만원 박사는 1995년 7월 18일 서울지방검찰청과 국방부가 공동으로 발간한 ‘5.18관련사건 수사결과’와 1985년 안기부가 작성한 ‘광주사태 상황일지 및 피해현황’, 2006년 5.18 기념재단에서 발간한 ‘5.18의 기억과 역사’ 등의 문건을 검토해 18개의 ‘스모킹 건(Smoking gun)’을 찾아냈다고 강조했다.
‘스모킹 건’은 어떤 범죄나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는데 쓰이는 ‘결정적 증거’를 의미하는 단어다.
특히 지만원 박사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불과 4시간만에 5,400여정의 총기를 탈취하고 다이너마이트 폭탄 2,100여개를 조립해 전남도청 지하실에 설치하는 등 게릴라 폭동을 주도한 ‘600명의 연고대생’이, 실제로는 북한이 6개월여에 걸쳐 침투시킨 특수군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만원 박사는 “계엄군이 광주시내에 있었을 때는 이들 600명이 활약했지만 군이 시 외곽으로 철수한 22일부터는 증거를 남기지 말아야 한다는 철칙 때문에 복면을 하고 광주시민들과 어울리지 않았다”며, “당시 광주에는 ( 시민군이 탈취한) 4대의 장갑차를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고, 장갑차를 운전해 유공자가 된 사람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지만원 박사는 위에서 언급한 각종 보고서를 인용해 “총상으로 사망한 광주시민의 70%가 무기고에서 꺼낸 총에 의해 숨졌다”며, “이는 남남갈등을 조장하기 위한 북한의 술책이었다”고 설명했다.
지만원 박사는 80년대 서울과 광주에서 발생한 시위 기록을 보면, 북한책에 기술돼 있는 시위 전략·전술과 정확히 일치한다는 점도 지적했다.
1982년 ‘조국통일사’가 발행한 대남공작 역사책 ‘주체의 기치따라 나아가는 남조선인민들의 투쟁’에는 북한의 대남 시위전략이 나온다. 주요 내용을 요약하면 ▲주력시위는 시내 중심부에서 벌여야 한다 ▲성토대회와 성명발표, 교내시위, 농성투쟁 등을 통해 공격을 실시한다 ▲모든 시위대는 집중과 통일된 행동을 통해 정치적 효과를 높여야 한다 등이다.
이 책에는 ‘광주 반파쇼민주화투쟁에 대한 교훈’ 이라는 5.18 관련 글도 실려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광주인민봉기는 새로운 단계의 반파쇼민주화투쟁을 위해 귀중한 교훈을 남겼다.
그 교훈은 첫째로 남조선인민의 해방투쟁 승리는 반미투쟁과 결합될 때만 확고한 것으로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는 청년학생운동과 로동운동과의 결합을 새로운 높은 단계로 심화 발전시켜야만 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보다 광범위한 대중적 지반 위에서 반파쇼민주역량을 형성하고 그것을 조직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지만원 박사는 “1980년 5월에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시위들은 그저 산발적으로 발생한 시위가 아니라, 시위전략과 전술에 의한 북한 시위작전사령부의 일사불란한 지휘 하에 이뤄진 작전이라는 믿음을 갖게 한다”고 말했다.

◆ 5.18에 북한 대남전략기구가 개입했다는 탈북자들의 증언
남한으로 망명한 故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와 김덕홍 전 여광무역사 총사장은 1998년 7월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
김덕홍: 북한 통일전선부에서는 분기에 한 번씩 강연을 하는데 광주문제를 자기네들이 한 것으로 이야기 합니다. 
황장엽: 북한 내부에서 대남사업을 내용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상식화돼 있다.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생활수준이 높아가는 한국에서 왜 데모나 운동이 일어나는가. 그것은 � 醍�북에서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남정책의 두 가지가 달라졌습니다. 하나는 남로당때와 같이 조직을 노출시키지 말라는 것. 그래서 지하당을 이중 삼중으로 만들어 누가 지도하는지 모르게 합니다. 둘째, 노동자나 군인보다는 학생들 속으로 들어가라는 겁니다.  
김덕홍: 김일성종합대학 옆에 3호청사가 있다. 광주운동 이후에 3호청사 사람들이 표창을 많이 받았습니다. 
황장엽: 동생, 그런 얘기 했다가 또 혼이 나려고 그래?
김덕홍: 형님, 우리가 이런 얘기 하자고 남한에 온 것 아닙니까. 여기 남한에 와서 꼭 하고 싶은 얘기를 해야겠습니다. 3호청사에 소속돼 있던 사람들이 광주민주화운동이 끝난 후 일제히 훈장을 받았습니다. 

내 친구들이 그 부서에서 근무하고 있었는데 그 친구들도 광주민주화 운동 후에 � 팀揚�탔다고 축하술을 함께 마시면서 그들에게 직접 들은 겁니다. 

2006년 여동생, 딸 등과 함께 탈북한 전 북한특수군 출신 김명국(가명)씨의 증언도 5.18 북한 개입설을 뒷받침 하고 있다. 다음은 그의 증언을 요약한 것이다.
“1980년 5월 19일 전남 광주시로 남파돼 작전을 수행하다가 5월 27일 북한으로 철수하던 도중 북한군 포 사격훈련장을 통과하다가 부상을 당했다. 1국기훈장 1급을 받고 5.18영웅대접을 받으면서 2003년까지 북한군 특전사 교관(중좌)으로 복무했다.

…(중략)…광주봉기에의 북한군 침투총화(결산)가 6월 15일 김일성과 김정일의 직접적인 참석 하에 평양에서 열렸다. 남한에 침투됐다가 살아서 귀환한 군인, 전사한 군인 모두에게 공화국 영웅 칭호가 수여됐고 분견대 대장 2명은 조선인민군 교도지도국(특수전사령부) 작전부에 승급 배치됐다. 김일성은 소좌급민 분견대장들에게 대좌의 군사칭호를 수여했다.”

◆ 북한서 열린 광� 聆菅觀윤�30돌 행사,
여기에 등장한 8명의 ‘광수(광주 침투 북한특수군)’



지만원 박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2010년 5월 17일 광주인민봉기 30돌 행사가 평양 중앙노동자회관에서 열렸는데, 이날 행사장 로얄석에 앉은 3명과 1980년 5월 광주에서 사진기자들에게 찍힌 3인조가 동인 인물인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지만원 박사는 이어 “김정은이 지난해 4월 15일 태양절 때, 군 간부들과 함께 김일성과 김정일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을 방문해 참배한 사진에서도 5명의 ‘광수’가 추가로 발견됐다”며, 5.18의 실체적 진실 발견을 위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입장을 밝혔다.
이날 기자회견을 주도한 지만원 박사는 5.18에 북한 특수군 수백 명이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주장을 거듭해왔다.
지만원 박사는 이런 주장을 입증하기 위한 증거자료를 모으는데 상당한 공을 들였다. � 殮牟〈�광주사태 당시 침투한 북한 특수군을 뜻하는 이른바 ‘광수’를 찾기 위해, 1980년 당시 광주 시민군들을 촬영한 사진과 북한이 공개한 각종 자료 등을 비교 분석하기도 했다.
그 결과 지만원 박사는, 모두 8명에 이르는 ‘광수’를 찾았다고 밝혔다. 지만원 박사가 밝힌 ‘광수’의 정체에 관한 사진 자료는, 시스템클럽(http://www.systemclub.co.kr/)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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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기사]

북한인권운동가 김주호 박사 “5.18 당시 북한 특수군 490명 침투했다”

헉! 5.18 북한군 개입설 증거사진! 최초 공개

北, 5.18 뒤 8월 함북 청진에 추모비 설치..비석 뒷면엔 158명의 이름이!

기사 게재일자 2012년 10월 6일, 양원석 기자

지난달 27일 북한인권운동가인 김주호 박사가 공개한 함경북도 청진시 낙양동에 있는 '인민군영웅들의 렬사 묘' 사진.ⓒ

▲ 2012년 9월 27일 북한인권운동가인 김주호 박사가 공개한 함경북도 청진시 낙양동에 있는 '인민군영웅들의 렬사 묘' 사진.ⓒ

5.18 광주사태 당시 1개 대대 병력의 북한군 특수부대가 김일성 전 주석의 지령을 받고 개입했다는 증거가 공개됐다.
그 동안 5.18 사태 당시 남한 내 혼란과 적전분열을 목적으로 북한군이 개입했다는 설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1990년대 들어서는 한국에 들........

https://mail.google.com/mail/u/0/?tab=wm#inbox/14db5dc80c572471

Monday, July 27, 2015

40일 목장훈련 끝나고 함께 나눈 교제에서 '신앙은 인내, 우정,그리고 나눔의 오찬을 통해 그분과 소통하는길' 로 이해.

지난 6월 중순경부터 시작됐던 40일간의 신앙훈련을 하기위한 목장 모임을 통한 신앙교육이 전교인들을 상대로 매일같이 열렸었다.  세계적인 불경기로 요즘처럼, 경제적, 정신적으로 어려움이 많은, 장기간의 Recession은 이민 40여년동안에 처음 겪어 보는, 나라 전체가 아니 전세계가 어려움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때에, 이번 40일간의 신앙훈련은 '인내와 우정'이라는점에서 많은 영향을 끼쳤던것으로 이해된다.

나는 이번 훈련에 참석을 거의 하지못했었다.  같이 Trail Walk을 하시는 대원님의 권유로 마지막주였던 지난주에 참석하고 오늘 전교인 합동예배에 참석했었다.  그리고 목장별로 준비해온 오찬(점심)을 하면서 친교를 할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아, 속해 있는 목장에 Lunar와 함께 참석하여 좋은 Fellowship을 하면서,  나눔에서만이 느낄수 있는 가족같은 따뜻함을 함께 나누는 좋은 시간을 갖었었다.  참석한 모든 목장식구들의 느낌도 나와 동감이었으리라.  

이렇게 가족처럼 목장식구가 한마음이 되여 준비해온 음식을 나누면서, 진솔하고, 꾸밈없는 얘기들을 해본지가 꽤 오랜만에 오늘 있었던 것이다.  마치 이민 초창기에 느꼈던 마음 뿌듯한 우정과 나눔을 보고 감사해 하지 않을수 없었다.  짧다고 생각하면 짧고, 길다고 보면 또 길다고 생각할수 있는 그긴동안에 '신앙은 인내, 우정 그리고 나눔을 통해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그분과 소통하는 것'이라는 점은 확실해 졌다고 본다.
이민생활에서 신앙생활은 매일 먹는 양식과 같은 중요한 정신적 영양제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처음 이민자로서 공항에서 비행기 트랩을 내리면 대개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이민 선배들의 안내를 받았던 기억들이 이민 초창기에는 흔한 일상의 한부분이기도 했었다.  문화와 언어가 다른 새로운 사회에서 정신적으로 의지할곳은 신앙생활을 찾아 교제하고 그속에서 살아가는 정보를 이민선배들로 부터 귀담아 듣고, 삶의 방향을 정하는데 결정적 역활을 해주었었다.

정신적 안정을 찾는데, 신앙에 의지하는 중요성은 설명의 필요가 없이 중요했지만,  그목적외에 또 다른 큰 뜻은 서로간의 삶의 정보를 교환하는, 일종의 장터역활, 사랑방역활을 해주던 곳이 교회 또는 불교사찰이었었다.   나와 Lunar는 이민보따리를 풀면서부터 해왔던데로 비교적 쉽게 접근할수 있었던 곳이 교회였었다.  그로부터 사반세기 또는 반세기 이상의 긴시간이 흐르면서, 이민사회가 정신적, 물질적으로 어느정도 안정되여 가면서, 신앙에 대한 열의도 솔직히 말해서 많이 변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고국의 눈부신 경제발전으로 캐나다로 오는 이민자들의 숫자도 거짖말 처럼 줄어들었고,  따라서 경제적 정신적으로 어느정도 안정이 되가는 교민사회는 신앙의 열기가 줄어 들수 밖에 없는, 극히 이곳 초기 북미 대륙의 Puritan 개척자들이 겪었던 진정한 신앙의 길과 방향이, 우리 한인사회의 이민 2세들 또는 3세들에게서 외면당하고 있는 징조가 조금씩 나타나는것을 우리 이민 1세들은 걱정을 하고 있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40일간의 목장훈련은 이렇게 나태해져가는 우리들의 믿음생활을 Revival 하기위한 장기훈련차원에서, Pastor의 lead가 있었기에 가능했음을 부인할수 없었고 감사하다.  누구랄것도 없이, 훈련에서 배운 신앙생활의 모든것들을 오늘 모임에서 실제로 실천에 옮기는 현장실습과도 같은 느낌을 받았었다.  손수 준비해온 음식들을 나누고, 또 평상시 교회생활을 하면서도 깊게 살아가는 얘기들을 나누어본적이 없이 지나쳤던 분들과도 마음의 문을 열고, 부담없이 대화를 나눌수 있었던 그깊은곳에는, 말보다는 행동이 중요함을 내포하고 있다는것을 오늘 다시 깊이 느꼈고, 할수만 있다면 그렇게 살아가는 방법이 신앙인으로서 지켜야할 기본 덕목인것도 깨달았다.
벌써 연장자의 대열에 들어선 내자신을 또 깊이 느끼게 한것은, 아직 젊은 목장식구들이 준비해주는 음식을 받아 들었을때였다.  좋은면도 있었지만, 내가 벌써 이렇게 써빙받는 대열에 들어섰다는것을 보면서, 살아온 세월을 잠시 되돌아 보기도 했었다.  엊그제 같았는데.....이루었다는것 보다는 Regret이 더 마음을 아련하게하고, 살아온 삶을 무겁게 해줌을 느낄뿐이었다.
갖 2살 지난 딸아이와 그리고 이곳에서 태어난 아들아이를 데리고 일요일 예배가 끝나면, 차를 몰고 외곽으로 나가서 낚시도 하고, 수영도하고, Shopping Mall에도 다니고..... 그리고는 먹고살기위한 생업에 매달리면서는 그러한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젊은자로서의 반항적인 울분을 표출할 기회를 잘 갖지못한채 시간을 보냈고, 지금은 대접받는 자리를 지키고 있음에 새삼 놀랄수 밖에 없다라고 달리 표현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다자란 그아이들이 내곁을 떠난지가 벌써 몇년인가?  그숫자를 세어 보기위해 열손가락을 다 사용해 보아도 모자랄 정도로 긴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그들은 내가 젊었을때 했던데로 삶의 현장에서 바삐 달려가고 있다.  신앙생활을 하는아이, 하지 않는아이.... 다 그들의 몫이지만, 달리 그들을 Push할수는 없다.
오늘 경험한 신앙생활의 기본이, 바로 나눔인것을, 나를 포함한 모든 목장식구들이 오랫동안 마음속에 간직하고, 또 행동에서 나타날수 있도록 서로의 격려가 지속되기를 염원해본다.  이런맛 때문에, 사도 바울은 그렇게도 고난을 겪고 시달리면서도 행복했었겠다라는 생각과 믿음을 어렴푸시 마음속에 자리매김해 두고, 필요할때마다 꺼내서 보고 또 느낄것이다.  Turkey의 동남쪽 끝자락에 있는 바울의 출생지 즉 고향 "다소(Tarsus)"를 방문하여 생가 입구에 있는 계시판에 적혀 있었던 "St. Paul"에 대한 행적을 읽어보면서, 그를 또 다른 각도에서 재음미 해볼수 있었던 기회를 우리 부부에게 주신 그분의 뜻이 무엇이었는지를 연관시켜보면 감사한 마음뿐이다.  오늘은 더....2015년 7월 26일.

http://lifemeansgo.blogspot.ca/2010/04/wow-antioch.html

Sunday, July 26, 2015

문제아의 철면피 막말 “국정원, 통신감청 불가? 뻔뻔한 거짓말”- 진짜 웃기는 Traitor로구나.

변호사, 문재인은, 절대로 사무실 밖으로 나와서 세상일을 하겠다고, 국가일을 하겠다고 설쳐대서는 안되는 인물임을 이사건 내막을 보면서, 뚜렷히 결론을 내릴수 있었다.

사건 담당 변호사, 문재인이 수임받아 그권한을 위임 받았으면, 책임지고 추적하고 협상해서 재산권 행사를 했어야 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국가를 맡아 살림을 하겠다고 입만열면 떠들어 대면서, 대통령을 비판해대는 그이중성에 국민은 절대로 속지 않을 것이라고 믿어진다.

세월호 참사로 빗어진 국가 재정이 천문학적 숫자로 불어나서, 혈세를 낸 국민들은 아우성을 치고 있는판에, 더욱 안타까운것은 그가 유병언의 모든 재산 관리권한, 즉 Power of Attorney,을 제대로 재때에 했더라면, 국고손실이 많이 줄었을텐데..... 그가 몰라서 이런 실수를 저질렀다고 믿는 사람은 대한민국땅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대신에 그는 너무나 간교한 Eunuch 같은 인간임을 다알고 있다고 할수 있다.  누가 과연 대국민 사기극을 하는걸까?
문제아 "문재인", 아니면 개인사찰을 불법으로 했다고 문재인당의 공격에 곤혹을 치르고 있는 국정원.... 남의 눈에끼어 있는 티눈은 보면서, 자기눈속에 있는 대들보는 못보는 사람, 그가 문제아 문재인을 두고 한 말같다.

http://news.donga.com/Main/3/all/20150715/72482139/1

큰일을 하기위해서 사소한것은 무시하거나 거들떠 보지 않는다는 논리라면, 그는 절대로 국회의원직을 해서도 안되고, 야합당 당수를 해서도 안되고, 더욱히 청와대에 들어가 국가의 살림을 책임지겠다는 욕심을 갖어서도 안되는, 아주 위험한, 그리고 사기성이 농후한 인물인것이다.  대한민국은 이미 두번의, 문재인 같은 거짖 선동꾼들이 청와대를 점령하여, 국가를 구렁텅이로 빠뜨렸던, 이미 회생불능의 Kim's Regime에게 수혈을 해주어 생기가 돌자 그총구를 은사격인 남한을 겨누게한, 과거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이제는 절대로 속지 말아야 한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7/18/2015071800992.html

이러한 무시무시한 내용이 담겨있는 문재인의 정체에 대해,  한국의 언론들은 거의가 다 꿀먹은 벙어리다.  그점이 이해가 안간다.

국정원의 고유임무인 음지에서 일하는 그특성을 완전히 빨가벗겨 내기에 혈안인, 언론과 국회의원들.....왜 이들은 Double Standard을 적용하고 있을까?

이스라엘의 정보기관 수장의 이름을 아는 이스라엘 국민들은 몇명에 불과 하다고 들었다.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오직 국가 안전을 위한 정보만을 수집하여 정부에 자료를 주어 국가 안위를 지키게 하기 때문이다.  개인 사찰도 분명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국가안보가 우선이라는 점을 들어, 그러한 개인정보사찰은, 한국에서처럼, Close up되지도, 밝힐려도 혈안이 되지도 않는다고 들었다.  그들이 수집한 정보가 어찌 꼭 국가안보를 위한 정보수집만 했다고 그어느누가 믿겠는가?  그렇게 그러한 피치못할 사정이 있었을 것이라는 의견이 긍정적으로 받아 들이기 때문에 크게 정치적 문제가 돼지 않고, 미국의 CIA보다, 러시아의 KGB보다 더 정확도가 높다는 평가다.

분명히 짐작되는것은, 이스라엘의 정보기관이 활동하는 영역을 한국의 국가 정보원에 대입시킨다면, 그들은 정보수장뿐만이 아니고, 관련고위직들은 연일 국회에 출석하여 국회의원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분야의 내용을 설명하는과정에서 국가 기밀은 국회뿐만이 아니고 전세계로 전파를 타고 날아가 정체가 다 폭로되고 말것이다.

전공을 내팽개치고, 어쩌다 컴퓨터 백신을 하나 개발한 Mr. Ahn 은 요즘 연일 혼자 컴퓨터 보안 문제를 통달하고 있는양, 정보수장을 국회로 불러내, 발설해서는 안될 국가기밀을 보고하라는 막말을 쏟아내고 있다.  그뒤에서 "문재인"은 Eunuch들이 하는 그대로 간교한 웃음을 흘려 보내고, 박수를 치고있다.  이것이 국가 안보를 위한 행위는 분명 아닐텐데..... 5천만 국민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몇명의 불가피한 희생은 발생하기 마련이다.  옛말에 "빈대 한마리 잡기위해 초가삼간을 태울수 없다"라는 말의 뜻을 이해할것 같다.

크고 작던간에 맡은바 임무를 충실히 이행하는 봉사자세가 절실히 요구하는 시기다.  대한민국의 처한 안보상황이 그어느때보다 위험하고 절심하기 때문이다.  일반 국민들 보다 국회의원들이 더 잘 알텐데.... 오직 국가와 민족을 생각하기 때문에 작은 일에는 등한시 해도 된다는 논리를 펴고 있는것으로 생각되는 '문재인'의 위험한 발상은 결과가 처참할 정도로 국가와 국민들의 안보와 경제력강화에 역행하고 있다는점을 그가 이제라도 이해했으면 좋겠다.

안치용의 뉴스 내용은 고국의 언론들이 앞다투어 자세히 보도해서 '문재인'의 Traitor 행위가 얼마나 위험한 발상인가를 알려주어야 한다.  단순히 재산환수가 문제가 아니고, 그로인한 후유증이 아직도 "세월호참사"라는 이름으로 국가 전체를 뒤흔들고 있고, 세월호 특조위에서는 지금 국민혈세로 분탕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시 재산관리를 위임받은( Power of Attorney) 문재인 당시 변호사가 문제점이 발생했을때 제대로 처리 했으면, 분명한것은 "세월호"참사는 막았을 것이고, 국민들의 혈세가 줄줄세는 세금낭비는 없었을 것이라고 확신된다.

Saturday, July 25, 2015

남성에게서 여성들은 무엇을 배울수 있나? 복잡하고 세심함은 여성이기에 당연.

창조주께서 남성과 여성을 아주 특이하게 만드셨음을, 비록 남자이기에, 여자이기에 다른것을 당연하다고 생각되는것 외에, 경탄할 정도로 때늦게 겨우 조금 터득해 가고 있다.
동물의 왕국에서, 사자들이 먹이감을 사냥할때를 보면서 우리 인간들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는것을 느낀다.  사냥을 나설때는 숫사자들은 거의 출동하지 않는다.  엄마사자들이 연합을 하여 출동, 그리고 온 식구들을 위한 음식상을 마련 했을때, 으르렁 거리면서 숫사자가 나타나 밥상을 받는다.  새끼들은 물론이고..... 밥상을 차린 당사자들인 암사자들은 당연한 것처럼 뒤로 물러서거나, 나중에 먹는 대열에 참여한다.

우리 인간사회에서, 젊어서는 보아도 못느꼈거나 그냥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던 매우 비슷한 일들이, 지금은 새삼 창조주에게 감사해 할정도로, 지배하고 있음을 뚜렷히 본다.  음식을 만들어도 아이들 먼저, 서방님 먼저를 염두에 두고 평생을 살아온 그들이다.  그것을 자랑스러워 하거나 굳이 강조하는것 또한 보거나 들어 보지도 못했었다.  이제 석양의 황혼길을 걷게 되면서, 철늦게 그러한 희생에 감사함을 조금 느끼고 있지만, 그것 마져도 입으로는 표현하는게 거의 없다.  젊어서 활동할때는 그렇게 소중한 여성 또는 아내들에게 칭찬은 고사하고 항상 업신여기는 못된 습관으로 무시하기 일수 였었다.  어리석은, 그리고 단순한 존재들이 남자다. 

http://www.theglobeandmail.com/globe-debate/what-women-can-learn-from-men/article25414017/

요즘 같아서는 절대로 남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는 추호도 없다. 남자들은 빗나가기를 좋아한다.  그들은 도덕적 실패를 만회하기위해 끊임없이 공격하는 족속들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모든분야에서, 할리우드에서 과학, 군대 등등 모든 면에서 그들은 여성을 상대로 성적학대 및 모욕 그리고 치밀한 공격을 해 온다.  사내들은 여성을 상대로 강간 문화와 manspreading과 mansplaining같은 엉뚱한 짖들을 한다.  남자들의 성품은 반항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다.  나는 확신하기를 세상의 사내들이 우리 여성들처럼 행동을 한다면 세상은 살기가 더 좋은 곳이 될수 있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렇게 된다면 정말로 세상이 좋아질까? 여성들은 정말로 남성들로 부터 배울점이 없는 것일까? 그럴수도 있을것 같다.  내가 남자들에 대해 인정할수 있는 몇가지 점을 요약해서 적어 본다.

남자는 목적하는바를 얻기위해 돌직구를 던진다.

내가 다른 여성과 점심데이트를 어떻게 하는가를 얘기 하고져 한다.   나는 보통 6통의 이멜을 띄운다. 아니 때로는 8개 또는 10개를 보내기도 한다.  아무도 강압적인것을 원치 않는다.  점심을 할려고 하는데, 시간 있니? 어느날이 가능하지? 그렇타면 식당은 어디가 좋을까? Bistro 아니면 La Tourette식당은 어때? 이상과 같은 의견에 합의가 됐을때, 우리는 다시 완전히 결정짖는데 또 어려움을 겪는다.  좋아, 다시 그날까지 기다려줘.  나는 상관없어. 그동안 너무 적적했어. 마치 침팬지가 털속의 이들을 서로 잡아 주는것 처럼, 우리는 여러 얘기들을 나누어 하면서 최종 합의를 하게된다.

그러나 남자들은 그런 감상적인 것들에는 전연 관심이 없다.  여자들은 그런 감정적인면에 너무나 민감하다.  우리여자들은 진행과정에서 모두를 다 잡을려고 한다.  때로는 나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사내가 아닌 여자 크리스타벨이었더라면 절대로 북미대륙을 발견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신에 그녀는 지금도 항구에서 모두의 안전여부를 확인하고 모든게 오케이 되기를 점검하고 있었을지도 모를것이라고 나는 생각해본다.


남자는 증오심을 갖지 않는다.

여성은 서로 다투는데 민감한 반응을 한다.  우리는 누구와 다투었을때 그것을 마음속에 새기고 새기고 또 새겨둔다. 아니 영원히 가슴속에 담아둔다.  나역시 나에게 불편하게했던 사람들을 기억속에 담고 있다. 멀리는 유치원때, Blanny Higgins가 내머리채를 잡고 흔들었던, 그때의 일까지 기억하고 있다.  남자들은 그때뿐이다.  그들은 서로 잡아먹을듯이 으르렁대지만, 약 2주정도가 지나면 그들은 다시 언제 그랬냐는듯이 친해진다.  여성들은 사적으로 모든것을 간직하지않는다면 훨씬 더 좋은 결과를 얻을수도 있을 것이다.

남자들은 실패를 자신의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

남자들은 어떤일에서 실패하면 그들은 자기가 부리던 부하들, 아니면 보스, 시장의 조건들, 주위여건들을 연결시켜 비난한다.  그들은 자기잘못을 거의 비난하지 않는다.  반대로 여성들은 실패하게되면, 그들은 자신은 그일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누군가 나에게 작난을 쳤다고 생각한다.  해결방법으로 그들은 집으로 가서 마티니 한잔을 마신다.  그리고 남자들은 절대로 그녀들이 생각하는것 처럼 하지 않는다는점을 상기하라.

남자들은 한곳에 집중하고 지속적이다.

분명한점은, 우리 여성들이 이것 저것 궁리하는것 처럼 복잡하게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렇타고 엉뚱하게 딴길을 생각지도 않는다.  만약에 그들이 고장난 초인종을 고치기로 마음 먹었다면, 그것을 완성할때까지 계속한다.  만약에 여성인 내가 그렇게 하기로 마음 먹었다면(물론 그럴리는 없지만), 필요한 공구를 찾지 못하면 금새 그만두고 말것이다.  (남성들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초인종이 부서져 일을 못한다 해도 상관치 않고 계속 이어서 한다).
만약에 필요한 물건을 구입하기위해 남편을 대신 보내면 틀림없이 그대로 구입해 온다. 만약에 내가 그물건들을 구입하러 직접 갔다면, 나는 그것뿐만이 아니고 실제로 구입해야 했던 물건을 제외하고도 5 또는 6배 이상으로 다른 물건까지 구입해 올것이다.

남성들은 믿고의지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왜 여성들은 십대때의 기분으로 항상 상대방의 동의를 구하는식의 대화를 하는걸까?  무엇을 잘못했기에 용서를 구하는걸까?  또는 아니면 정확히 핵심을 얘기하는게 두려워서 일까?  이런 문제들을 놓고 여성들은 정확히 할얘기를 하는것 보다 왜 의향을 묻는 형식을 취할까?

왜 우리여성들은 "여보, 이쓰레기좀 밖에 내다 버려 주실수 있겠어요?  실제 목적은 "여보 쓰레기 냄새가 나기전에 밖에 버려주세요"라는 뜻인데도 말이다.  왜 여성들은 "이번 마감 시간까지 할수 있을지 생각해 볼수 있으세요?"라는 문장의 진정한 뜻은 "우리는 지금 주요 문제점에 직면해 있어요"인데.

여자들은 조용히 있거나 사과하는쪽을 선택할지언정, 불쾌해 하거나 거만해 하는것을 보기를 별로 달가워 하지 않는다.  여러 이유들로( 어떤것들은 social 또는, 입에 담기조차 싫어하게되는 hormonal), 여성들은 자신감에서, 남자들 보다 긍정적면에서 덜느끼는 경향이 있다.

연구결과에서 나타난것을 보면, 여성들은 하고 있는 일에서 거의 완벽하게 인정을 받을때에만 승진을 하겠다고 응모해 보지만,  그것마져도 때로는 하지 않는다.  반대로 남성들은 그보다는 훨씬 못하는데도 승진을 해 보겠다는 신청을 해본다.  그러한 처신은 남자들의 잘못때문일까?  No, 그렇치 않다.  내경험에서 본다면 그러한 것들을 숨기기위한 자신감을 나타내는 문제와 직면하는데 서툴기 때문인것으로 본다.  아마도 어떻게 이러한 과정을 처리 하는가에 대한 이설명에서 깜짝 놀랄수도 있을 것이다.   당신이 50대 60대 또는 그이상의 연배가 되였을때 이상스럽게도 그러한 자신감 결여는 없어져 버린다.

남성은 여성에 비해 매우단순하다.

그들은 섹스를 즐기기위해 분위기를 잡을려고 할 필요가 없다.  남자들이 어떤 실망의 빛을 보일때 당신은 무슨 일을 그렇게 곰곰히 생각하나요라고 물을 것이다.  그에 대답은 거의 얻을수 없거나, 겨우 한다는 소리가 불루제이들에 대한 경기 내용정도를 얘기할뿐이다.  나는 이러한 경향은 바로 남성들은 예민하지 않고, 또한 가볍게 넘기지 않는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지금 나는 파악했다 즉 남성들은 여성들과 다르다는점을.  하나님만은 그들이 이러한것들에 대한 대답을 갖고 있다는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남성들의 몰염치함의 고백을 들어보기란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뿐이다.

Thursday, July 23, 2015

관광객들로 몸살을 앓다가 죽어가는 세계적 유산 9개 명소- 자연재해보다 인재가 다 망친다.

앞으로는 더 많은 관광객들이 지구상의 유명한 유적지로 모여들것이다.  역사를 알고져 하는 젊은이들과 생활여건의 향상으로, 여가를 즐기기위해 사람들은 관광을 선택하기 때문일 것이다.  만리장성을 갔을때만 해도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여기 사진에서 보는것 처럼 산성을 꽉 메우지는 않았었다.  만리장성이 훼손될까봐 괜히 걱정이다.



http://www.lifemeansgo.blogspot.ca/2007/12/blog-post_7357.html



딜레마는 때로는 긴칼의 양날과 연관시켜 생각헤 볼수 있다.
역사적가치와 너무도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들을 간직한 관광지는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그들에게 관광수입은 올려주지만 관광객들로 인한 유물파괴영향을 가져온다.  때로는 심한 상처의 흔적을 남긴다.  그로인해 최근에는 유적담당자들 사이에서 관광객의 인원을 제한해야 한다는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형편이 됐다.

"지구상의 유명한 유적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동의 고대 도시와 모뉴멘트를 굳이 예로 들지 않아도, 아시아에 있는 주요도시에 있는 역사적 자산들은 도시의 불법적 팽창과 건설로 인해 사라져버릴 위협에 심하게 처해 있다." 라고 개발도상 국가에 산재해 있는 문화적 가치가 있는 유산들을 보호하기위해 활동중인 'Global Heritage Fund' 기구의 책임자 Stefaan Poorman씨는 설명이다.

"관광사업은 일정한 규칙도 적용시키지 않고있어 수많은 관광객들이 들락거리는 통에 전세계에 산재해 있는 인류유산들이 위협을 받고 있다.  앙코르왓, 마추픽추 같은 우리인류의 문화유산들은 지금 밀려드는 관광객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단지 파괴뿐만이 아니고, 어느면에서는 전연 점검이 이루어지지 않아 관광산업은 그지역 주민들의 삶에 까지 영향을 미쳐 삶의 질에 치명타를 가하고 있는 형편이다."라고 그는 보충설명까지 한다.

아래에 열거하는 가장 아름다운 인류문화유산들의 일부는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인해 지금 무너져 내릴 위험성을 안고 있다. 

Machu Picchu


마추피추는 Lunar와 다른 두 부부와 함께 2007년도 12월에 어렵게 어렵게 찾아가 옛조상들의 삶의 흔적을 보았던 곳이다.   산상도시라고 쉽게 믿어지지 않을 산정상에 완전히 돌로 건축된 도시는 지금은 건물의 기초와 일부 벽이 남아 있을뿐이다.  도시계획을 확실히 한후에 건설된 도시로 인식하기에 충분한 자료를 당시에도 보존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지금 걱정하는것 처럼 관광객들은 많아 보이지는 않았었는데......

    Wall of China


    수천킬로미터가 이어지는 만리장성은 외부의 침략으로 부터 방어하기위해 축성됐는데, 그러나 지금은 외부에서 관광온 사람들로 꽉 메워져 몸살을 앓고 있다.  성벽의 일부는 낙서로 도배돼여 있고, "베이징 타임스"의 보도에 의하면 만리장성의 약 30% 정도가 자연풍화작용에 의해 또는 인간들의 파괴 행위로 없어져 버렸다고 한다.


    The Great Barrier Reef in Australia seen from the air.

    지구상에서 가장 크게 퍼져있는 산호초로 이루어진 숲은 수많은 해양생명체들이 서식하고 있지만, 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지구의 환경변화로 인해 2050년 경에는 이러한 산호초 숲은 소멸될것으로 걱정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지구의 환경재난이 올것을 불보듯 뻔하다.  그러나 그것뿐만이 아니고 산호초숲에서 얻어지는 수조달러에 달하는 관광산업이 종말을 고하게 되고, 그것은 바로 그지방의 경체침체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Angkor Wat


    캠보디아의 웅장하고 화려한 사원과 그주위 유물들은 이제 스마트폰을 이용하여 환상적인 해돋이의 순간을 찍을려는 수많은 사람들의 자리다툼으로 몸살을 심히 앓고 있는 형편이다.  캠보디아 관광청 집계에 따른면 매년 약 20% 이상씩 늘어나는 관광객들이 방문하여, 앙코르왓 사원을 방문한 관광객 숫자는 2013년도 기준으로 2백만명이 넘었다고 한다.
    "내생각으로 앙코르왓 처럼 문화적 환경적 보존을 위해서는 최대 수용인원을 산정하여, 관광객 입장인원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라고  Poortman씨는 주장한다.

    Sistine Chapel( 시스틴 사원)
    The ceiling of the Vatican's Sistine Chapel was painted by Michelangelo.

    Caves of Altamira


    For years visitors have been flocking to see the exquisite drawings of bison inside the caves of Altamira, close to Spain's north coast. But the constant trudge of tourists caused damage to the Palaeolithic paintings, which are over 20,000 years old, and the Spanish authorities decided to close the site to the public in 2002.
    Last year, access to the caves was partially reopened, and five visitors a week are chosen at random and allowed inside the caves (they also have to dress in protective clothing).

    Maasai Mara


    The vast expanses of the famous game reserve bring swathes of safari tourists every year. These travelers represent one of the most important sources of income for Kenya.
    But the large numbers of people who come to see unspoiled wildlife also put pressure on the area's resources, and the numerous lodges and camps have a negative impact on the environment as well.
    Poortman says that governments need to put caps to visitor numbers in places which could be seen as vulnerable.
    "An important realization is that tourists are traveling to see and experience the natural and cultural assets that make a place unique. If sites no longer exist or are damaged, then ultimately the income from tourism will also fall."


    Tutankhamun's tomb


    금년 4월에 애집트의 왕 '바로'의 무덤 방문을 폐쇄 시켜시킨바 있다.  원인은 수십년동안 방문객들에 의해 내뿜은 공기속에서 나온 습기가 축적되여 무덤의 상태를 악화 시켰기 때문이다.
    그대신에 똑같은 모양의 복제무덤을 그옆에 건설해 관람 시키고 있다.  이복제 무덤은 스페인에 있는 Factum Arte사가, 애집트의 문화유산 보호협회의 감리감독하에, 건설된 것이다.
    이건설회사는 레이져 스캐너와 최상의 해상도를 자랑하는 프린터를 사용하여 아주 정교하게 설계도면을 제작하여 벽화의 색상 또한 사후의 삶을 잘 표현 했다고 한다.

    Taj Mahal


    The mausoleum of the Mughal emperor Shah Jahan's favorite wife, Mumtaz, has stood as a symbol of enduring love since mid the 17th century. The site is visited by four million tourists each year, but it's exactly this tide of people has started to take its toll on the structure.
    Experts have also said that the decline in water level of the nearby Yamuna River is affecting the wooden foundation.

    http://www.cnn.com/2015/07/08/travel/9-tourist-attractions-that-are-literally-dying/index.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