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20,2019( 4일째)
Soweto로 가서, 인종차별(Apatheid) 철폐로 가기위한 혁명적 산실의 현장을 보러가는 여정이다.
https://youtu.be/P_bViGzX5rE
Cape Town을 뒤로하고, Johannesburg로 가기위해 새벽 6시부터 기상하여 짐 꾸리고, Breakfast 먹어 치우고, 7시에 일행은 Mini Bus에 올라 약 20분간 달려 공항, Tamo International Airport에 도착. 예약된 비행기에 탑승.
첫날 우리부부를 공항에서 Pick up해준 Driver와 우연히 조우했다. 그가 우리를 보고 반가워 하면서, 이번에는 다른 여행객들을 태우고 왔다고 환히 웃는다. 이친구가 Tour Guide를 했었으면 더 많은 얘기와 역사적 사실들을 많이 듣고, 같이 웃고, 또 괴로워 했었을 텐데....
Johannesburg Airport에 무사히 도착, 일행은 대합실 밖으로 나와 우리를 싣고갈 Mini Bus를 기다리고 있는 순간이다.
Mini Bus안에는 우리 일행이 타고, 뒤에 조그만 Trailer를 매달고 달리는데, 우리의 Luggage는 전부 그속에 싣고 거리를 달리는데, 이곳에서는 보통 여행자들 이동용으로 이런 유형의 차들이 거리를 많이 누비고 있었는데, 내가 살고 있는 북미, 특히 미국이나 캐나다에서는 보기힘든 광경으로 눈길을 끌었었다. Flight Centre에서 아프리카 현지 여행시의 Luggage의 Size는 최고 10Kg으로 제한되여 있다고 해서 선뜻 이해가 안되어, Luggage를 어떻게 처리해야 될지 궁금해 하면서, 조바심도 있었는데, 그런 염려는 기우였었다. 여행사의 현지실정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는 점이다. 귀국후 Flight Centre에 들려 현지 실정을 자세히 설명해 주어, 다음 여행자들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어야 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공항을 빠져나와 바로 Soweto로 달렸다. 그곳에서 일행은 Bike Riding하면서 Soweto의 이곳 저곳을, 그리고 역사적 의미가 많이 숨겨져 있는 인종차별정책을 철폐 시키기위한 Uprising 현장을 둘러보게 된다고 했다.
드디어, Bike Riding을 하게될 Soweto 현지에 도착, 한쪽은 일반 주민들이 사는 일반 주택으로, 말로만 들었던 빈민가의 이미지를 느낄수는 없었다. 우선 Tour Guide, Jeff의 설명에 이어, 일행이 Bike riding하게될 구간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있었다. 토론토 여행사에서 Consulting할때는, 자전거 타지 못하는 여행객은 별도의 편의를 받게 되겠지만, 확실치는 않았었다. 여기서 살펴본 현지 실정은, 자전거 못탄다고 걱정할 필요가 전연 없었다. 바로 우리 일행이 타고온 Mini Bus가 일행을 뒤따라오고, 자전거 못타는, Lunar를 포함한 일행중 몇명은 그대로 Mini Bus에 앉아 우리 일행을 따라 온다고 했다.
설명후 일행은, 점심을 먹어야 했다. 역시 자비로 사먹는 점심으로 스낵정도의 먹거리를 파는 곳이었다.
나와 Lunar는 물한병, 맥주한병 그리고 Crossant를 주문하여 목을 추기고 허기를 채웠다. 일행들 모두가 비슷한 점심이다.
일행은 자전거를 타고 Soweto 인종차별의 역사적 현장을 돌아 보는 일종의 Uprising Site를 둘러 보는 관광코스인 셈이다. 나는 그동안 자전거 Riding이 뜸하여 처음에는 흔들 거렸으나, 금새 균형을 잡고, 옛기억을 되살려 같이 움직이는데 힘들지는 않았다. S. Africa의 Johannesburg시의 한구간인 Soweto를 둘러 보는 것이다.
Ghetto지역처럼 보이는, 불법 가옥들이 즐비하게 자리잡고 있는 곳이 눈에 들어온다. 지붕은 전부 양철로 덮혀있고, 현지 Guide의 설명에 따르면, 이곳은 대낯에도 낯선 사람들의 출입이 매우 위험한 곳이라고 설명을 한다. 이곳은 아주 특이한 흑인들만의 동네라고 한다. 정부의 주책 정책으로 새로운 집이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 배정되면, 살고있던 자들이 이곳을 떠나 새로운 집으로 이사가면서, 그냥 떠나가는게 아니고, 살고있던 집에 심지어 사돈네 팔촌까지도 연락하여, 이곳에 거주하게 하면서 떠난다. 그런 의미는 이곳에 들어와 살수 있다는것 자체가 정부에서 새로짖는 집이 보장된다는 뜻이기도하다. 그래서 이러한 악순환은 끝없이 계속 다람쥐 채바퀴돌듯이 계속돌고 돌아 간다는 뜻이지만, 정부에서도 이들의 Conspiracy를 알고 있으면서도 별다른 대책이 없이 그대로 굴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점들의 투성이인것 같았다.
바로 그옆에는 신형 Stadium이 선명히 보인다. 설명에 따르면, 이곳 Ghetto지역에 사는 지역주민들과 인근 주민들의 스포츠 열기, 특히 축구경기를 관람할수 있도록 하기위해 건축 됐는데, 모여드는 주민들을 다 수용할수가 없어 좀 떨어진 곳에 더큰 새로운 경기장을 만들었다고 한다.
Seweto는 S. Africa의 Gauteng주의 인구밀집지역으로 Johannesburg시의 행정구역에 속한다고 한다.
위에서 언급한것 처럼, 역사적으로 백호우월주의와 인종차별정책에 맞서 많은 시위를 하면서, Slum화된, 외지인인 관광객이 보고 들을때는 많은 연민을 느끼게 하는 Shanty로 이해됐다.
1976년,중고등학생들이 Afrikaans과 영어를 반반씩 중고등학교에서 수업을 받게 하는것에 항의하여 대모를 하게됐는데, 이는 지역에서 사용하는 Dialect를 무시하고 밀어부치는 정책으로 학생들의 반대에 부딪쳤었다. 약 30여명의 학생들이 Phefeni 중학교에 모여, 그들 지역의 전통 Sotho 애국가인 "Morean Bolka Sechaba Sa Heso를 부르면서 성토할때에 경찰이 들이닥쳐 이들을 해산시키기위해 Tear Gas를 사용했었다. 누가 발포 명령을 내렸는지의 여부는 확실치 않으나, 학생들이 뿔뿔히 사방으로 흩어지고 부상당한 학생들은 그대로 쓰러진채 길위에 방치됐었다.
그날 첫번째로 경찰의 총에 맞아 죽은 학생이 Hector라고 알려지고 있으나, 또다른 소년 Hastings Ndlovu이 실제로 경찰의총에 맞아 생명을 잃은 첫번째 학생이라는 설이 있으나, 실제로 이를 증명할 사진이 없었고, 그래서 그의 이름은 즉시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고한다.
또 이곳 Guide의 설명에 따르면, Hector는 그날 학생들이 데모하는것도 모른체, 학교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경찰이 그를 데모 주동자로 오인하여 사살당했다고 했다.
Hector가 경찰의 총에 맞아 Moema과 Vilakazi 거리 모퉁이에 쓰러졌을때, Hector의 누나 Antoinette(당시 17세)와 합류한 Mbuyisa Makhubo와 함께 Hector를 끌어안고, Sam Nzima의 차로 뛰었는데, 그들은 Hector를 붙들어 안고, 쟈날리스트였던 Sophie Tema가 근처의 진료소로 차를 달렸으나 그곳에서 Hector는 죽고만다. 이들 두사람은 그후 경찰들로 부터 곤욕을 치렀는데, 결국 숨어 지내야만 했다.
"Soweto"는 Johannesburg시의 남서쪽의 Township을 줄여서 붙힌 이름이라고 한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이지역은 Johannesburg시의 외곽에서 살던 흑인들이 세계2차대전이후 이곳으로 몰려들어 살게 되면서, 일종의 Ghetto지역으로 변했는데, 외국관광객들이 이곳을 찾아 여행하기에는 매우 치안이 불안하였으며, 불과 5년여 전부터 치안이 확립되여, 지금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찾는곳 중의 하나이다.
1980년대에 Soweto는 인종차별 정책에 대한 저항이 가장 심했던 곳이라고 한다. 특히 교육과 경제적 보이콧이 심했었고, 학생들의 인종차별 조직이 결성되기도 했었다. 국가 정책에 항의하기위한 시민들의 조직과 거리위원회도 결성됐었다. 이러한 운동은 옆나라의 호응을 얻어 잠비아의 African National Congress 의협조를 얻어, 남아프리카 정부의 기능을 마비시키겠다는 으름장을 놓기도 했었다.
1995년도에 Soweto는 남부 매트로폴리탄 의회의 일부가 됐었고, 2002년도에는 Johannesburg시 소속이 됐다.
극우파 구룹으로 분류되는, Boeremag 구룹이 설치한 폭탄이 터져 인근의 빌딩이 파괴되고,철도가 파괴되고, 한사람이 죽기도 했었다.
Soweto가 Johannesburg시에 편입돼면서, 정확한 Soweto지역의 인구가 몇명인지는 확실치 않다. 전문가들의 추측으로는 Johannesburg시 인구의 약 40%는 Soweto에 거주하고 있는것으로 보고있다. 2008년도 인구조사에 따르면 1.3백만이거나 Johannesburg시 인구의 약 1/3쯤 될것으로 본다. Soweto의 거주인들은 거의가 흑인으로 남아공의 공식언어 11개가 거의 이곳에서는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Soweto에는 현재도 천주교 신부였던,Desmond Tutu가 살고 있으며 그가 거주하는 담벼락에는 그가 이곳에 현재도 거주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명패가 파란색으로 표시되여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영광일수도 있었겠으나, 그가 노벨평화상을 수여받았다고해서 과연 흑인들의 삶의 권위와 질이 좋아졌다고 믿는 사람들이몇명이나 있을까? 참으로 복잡한 문제인것 같다. 금년에 그는88세의 노인이라고한다.
Mendela의 집으로 들어가는 앞마당에서 이곳의 전통 무용팀이 그들의 고유춤을 선보이고 있다. 그러나 무심하게도 관광객들의 시선은 별로인것 같았다. 이들이 추는 춤의 의미를 과연 관광객 어느누가 이해하고 즐겨할까? 좀더 홍보차원에서라면 관광객들의 시선을 모을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것도 재미있을것 같다.
이곳은 Soweto에 있는 Mendela 전대통령의 집이라고 해서, 관광객들이 끝도 없이 드나드는 코스중의 하나다. 구룹으로 방문하는 관광객들을위해 Story Teller들이 하나씩 맡아 lead하면서 이곳 저곳을 주마간산격으로 보여주고 설명해 주지만, 기억에 남는것을 별로 없었고, Mendela가 1990년 9월에 감옥에서 풀려난후 이곳으로 들어와 거주 했지만, 겨우 11일 지내고, 몰려드는 관광객들에 시달려 다른 곳으로 피신(?) 했다는 기억만 머리속에 남아 있다.
캐나다의 온타리오주에 있는 Mississauga시에서, 1990년 6월 18일에 시를 방문한 기념으로 기념패를 증정한것으로 보이는 팬난트가 그의 집안에 진열되여 있었다.
Mendela는 평생애 3번 결혼 했는데, Wiennie Mendela는 그의 두번째 부인 이었다고 한다.
위의 글은 Nelson Mendela가 감옥에서 쓴 2장의 편지내용이다. 편지 내용은 주로 개인적인 사신으로 주로 그의 부인과 아이들 그리고 가까운 친구들에게 보낸것들이다.
Nelson Mendela는 개인적인 문제를 얘기하기를 싫어 했었다고 한다. 누가 그런얘기를 물으면 동문서답식으로 화재를 바꾸어 얘기를 하곤 했었다고 한다.
2013년에 서거한 그가 지금 생존해 있다면 올해 100세가 되는 셈이다.
그는 큐바의 카스트로와도 친분이 두터웠던것으로 알려져 있어서 였는지, 그들 두사람의 같이 찍힌 사진도 벽에 걸여 있었다. 어느면에서는 민주주의를 부르짖었던 Mendela와 공산주의를 큐바에 심어준 카스트로와는 상반되는 정치로선인데.... 같은 약자의 입장에서 보는 연대의식으로 해석해 본다.
Bike를 타고 시내를 돌면서 구경한후 우리 일행은 Memorial Park에 도착했었다.
경찰의 총에 맞아 죽은 Hector를 껴안고 인근의 진료소로 달려간 아들의 영웅적 행위를 절대로 영웅으로 여기지 않고, 당연히 해야할일을 한 것뿐이라는 엄마의 담담한 심경을 토로한 내용을 비석에 새겨놓은 내용이다. 만약에 아들이 그런행동을 안했으면 다른 사람이 또 했을 것이라는 확신이 돗보인다. 그는 당시 18세의 소년이었었다. 그후 경찰의 추적에 못이겨, 인근 나라 Namibia로 탈출한후 소식이 끊겨 현재는 그의 소재를 알길이 없다고 한다.
경찰의 총에 맞아 죽은 Hector와 다른 젊은이들의 희생을 기리는 비석의 일부이다. 1960년대초 대한민국에서 4/19가 일어나 많은 젊은 학생들이 산화했던 그기억을 떠오르게 했다. 그런제 지금 한국은 그때가 연상되리만큼, 서울 한복판의 거리에는 세월호 천막과 사회주의와 경제침체에 대한 항의 데로가 연일 수도심장부를 메우고 있지만, 현정부는 들은척도 하지않고, 국민들의 원성과는 반대의 길로 내닫고있다.
오늘밤 쉬게되는곳은 International Game Lodge다. 이곳은 숙소앞에 넓게 펼쳐져 있는 Farm Land에는 많은 초식 동물들이 살고 있었는데 특 히 타조에 대한 설명이 눈길을 끌게 했었다.
Lodge 넓은 Yard가, 그리고 마치 턴넬을 통과하는것 처럼 등나무로 꾸며진 통로가 무척 운치있고, 여우로웠다. 도시생활과는 다른 맛을 느끼면서, 울타리안의 동물들과 교제를 할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타조에 대한 설명이 눈길을 끈다.
지구상에서 서식하고 있는 새 종류중에서는 가장 큰 새라고 한다. 달리는 속도는 최고 70킬로라고한다.
등뼈 동물이 아닌 동물로써 주로 야생초를 주식으로 한다. 수명은 40-45년 정도라고 한다. 한마리의 수컷은 약 2-7마리의 암컷을 거느린다고 한다.
타조는 숨쉬는데 도움을 주는 여러개의 공기주머니가 허파와 연결되 있어 3개의 기본 호흡기능이 있다고 하는데,
첫째, 호흡된 공기가 계속적으로 허파에 공급되여 다른 동물들보다 더 많은 공기를 한방향으로 계속 공급할수 있는 특징이 있다.
둘째, 타조에 더큰 양의 공기를 공급하여, 숨쉬기를 더 천천히 할수있고, 다른 동물들보다 강하다는 것이다.
셋째, 많은 양의 공기를 흡입하기에 오직 탄산가스만을 내뿜는게 아니고 내뿜는 숨에서 열전도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타조는 음식을 저장하는 Pouch가 없으며, 쓸개가 없지만, 3개의 위를 갖고 있는 동물이다. 다른 동물들과 다르게 대변과 소변을 분리해서 한다. 타조는 대장에 대변을 따로 저장하고있다. 타조는 또한 다른 새들과 달리 성기가 팽창했을때 약 20센티미터까지 된다고 한다.
저녁식사는 즐겁기만 하다. 맥주를 반주삼아, 하루의 피로를 풀고 하루의 얘기 하기에 시간 가는줄이 모르고 Tour의 맛을 Share하고 있다.
Soweto로 가서, 인종차별(Apatheid) 철폐로 가기위한 혁명적 산실의 현장을 보러가는 여정이다.
https://youtu.be/P_bViGzX5rE
Cape Town을 뒤로하고, Johannesburg로 가기위해 새벽 6시부터 기상하여 짐 꾸리고, Breakfast 먹어 치우고, 7시에 일행은 Mini Bus에 올라 약 20분간 달려 공항, Tamo International Airport에 도착. 예약된 비행기에 탑승.
첫날 우리부부를 공항에서 Pick up해준 Driver와 우연히 조우했다. 그가 우리를 보고 반가워 하면서, 이번에는 다른 여행객들을 태우고 왔다고 환히 웃는다. 이친구가 Tour Guide를 했었으면 더 많은 얘기와 역사적 사실들을 많이 듣고, 같이 웃고, 또 괴로워 했었을 텐데....
Johannesburg Airport에 무사히 도착, 일행은 대합실 밖으로 나와 우리를 싣고갈 Mini Bus를 기다리고 있는 순간이다.
Mini Bus안에는 우리 일행이 타고, 뒤에 조그만 Trailer를 매달고 달리는데, 우리의 Luggage는 전부 그속에 싣고 거리를 달리는데, 이곳에서는 보통 여행자들 이동용으로 이런 유형의 차들이 거리를 많이 누비고 있었는데, 내가 살고 있는 북미, 특히 미국이나 캐나다에서는 보기힘든 광경으로 눈길을 끌었었다. Flight Centre에서 아프리카 현지 여행시의 Luggage의 Size는 최고 10Kg으로 제한되여 있다고 해서 선뜻 이해가 안되어, Luggage를 어떻게 처리해야 될지 궁금해 하면서, 조바심도 있었는데, 그런 염려는 기우였었다. 여행사의 현지실정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는 점이다. 귀국후 Flight Centre에 들려 현지 실정을 자세히 설명해 주어, 다음 여행자들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어야 겠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공항을 빠져나와 바로 Soweto로 달렸다. 그곳에서 일행은 Bike Riding하면서 Soweto의 이곳 저곳을, 그리고 역사적 의미가 많이 숨겨져 있는 인종차별정책을 철폐 시키기위한 Uprising 현장을 둘러보게 된다고 했다.
드디어, Bike Riding을 하게될 Soweto 현지에 도착, 한쪽은 일반 주민들이 사는 일반 주택으로, 말로만 들었던 빈민가의 이미지를 느낄수는 없었다. 우선 Tour Guide, Jeff의 설명에 이어, 일행이 Bike riding하게될 구간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있었다. 토론토 여행사에서 Consulting할때는, 자전거 타지 못하는 여행객은 별도의 편의를 받게 되겠지만, 확실치는 않았었다. 여기서 살펴본 현지 실정은, 자전거 못탄다고 걱정할 필요가 전연 없었다. 바로 우리 일행이 타고온 Mini Bus가 일행을 뒤따라오고, 자전거 못타는, Lunar를 포함한 일행중 몇명은 그대로 Mini Bus에 앉아 우리 일행을 따라 온다고 했다.
설명후 일행은, 점심을 먹어야 했다. 역시 자비로 사먹는 점심으로 스낵정도의 먹거리를 파는 곳이었다.
나와 Lunar는 물한병, 맥주한병 그리고 Crossant를 주문하여 목을 추기고 허기를 채웠다. 일행들 모두가 비슷한 점심이다.
일행은 자전거를 타고 Soweto 인종차별의 역사적 현장을 돌아 보는 일종의 Uprising Site를 둘러 보는 관광코스인 셈이다. 나는 그동안 자전거 Riding이 뜸하여 처음에는 흔들 거렸으나, 금새 균형을 잡고, 옛기억을 되살려 같이 움직이는데 힘들지는 않았다. S. Africa의 Johannesburg시의 한구간인 Soweto를 둘러 보는 것이다.
Ghetto지역처럼 보이는, 불법 가옥들이 즐비하게 자리잡고 있는 곳이 눈에 들어온다. 지붕은 전부 양철로 덮혀있고, 현지 Guide의 설명에 따르면, 이곳은 대낯에도 낯선 사람들의 출입이 매우 위험한 곳이라고 설명을 한다. 이곳은 아주 특이한 흑인들만의 동네라고 한다. 정부의 주책 정책으로 새로운 집이 이곳에 사는 사람들에 배정되면, 살고있던 자들이 이곳을 떠나 새로운 집으로 이사가면서, 그냥 떠나가는게 아니고, 살고있던 집에 심지어 사돈네 팔촌까지도 연락하여, 이곳에 거주하게 하면서 떠난다. 그런 의미는 이곳에 들어와 살수 있다는것 자체가 정부에서 새로짖는 집이 보장된다는 뜻이기도하다. 그래서 이러한 악순환은 끝없이 계속 다람쥐 채바퀴돌듯이 계속돌고 돌아 간다는 뜻이지만, 정부에서도 이들의 Conspiracy를 알고 있으면서도 별다른 대책이 없이 그대로 굴러가고 있다는 것이다. 문제점들의 투성이인것 같았다.
바로 그옆에는 신형 Stadium이 선명히 보인다. 설명에 따르면, 이곳 Ghetto지역에 사는 지역주민들과 인근 주민들의 스포츠 열기, 특히 축구경기를 관람할수 있도록 하기위해 건축 됐는데, 모여드는 주민들을 다 수용할수가 없어 좀 떨어진 곳에 더큰 새로운 경기장을 만들었다고 한다.
Seweto는 S. Africa의 Gauteng주의 인구밀집지역으로 Johannesburg시의 행정구역에 속한다고 한다.
위에서 언급한것 처럼, 역사적으로 백호우월주의와 인종차별정책에 맞서 많은 시위를 하면서, Slum화된, 외지인인 관광객이 보고 들을때는 많은 연민을 느끼게 하는 Shanty로 이해됐다.
1976년,중고등학생들이 Afrikaans과 영어를 반반씩 중고등학교에서 수업을 받게 하는것에 항의하여 대모를 하게됐는데, 이는 지역에서 사용하는 Dialect를 무시하고 밀어부치는 정책으로 학생들의 반대에 부딪쳤었다. 약 30여명의 학생들이 Phefeni 중학교에 모여, 그들 지역의 전통 Sotho 애국가인 "Morean Bolka Sechaba Sa Heso를 부르면서 성토할때에 경찰이 들이닥쳐 이들을 해산시키기위해 Tear Gas를 사용했었다. 누가 발포 명령을 내렸는지의 여부는 확실치 않으나, 학생들이 뿔뿔히 사방으로 흩어지고 부상당한 학생들은 그대로 쓰러진채 길위에 방치됐었다.
그날 첫번째로 경찰의 총에 맞아 죽은 학생이 Hector라고 알려지고 있으나, 또다른 소년 Hastings Ndlovu이 실제로 경찰의총에 맞아 생명을 잃은 첫번째 학생이라는 설이 있으나, 실제로 이를 증명할 사진이 없었고, 그래서 그의 이름은 즉시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고한다.
또 이곳 Guide의 설명에 따르면, Hector는 그날 학생들이 데모하는것도 모른체, 학교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경찰이 그를 데모 주동자로 오인하여 사살당했다고 했다.
Hector가 경찰의 총에 맞아 Moema과 Vilakazi 거리 모퉁이에 쓰러졌을때, Hector의 누나 Antoinette(당시 17세)와 합류한 Mbuyisa Makhubo와 함께 Hector를 끌어안고, Sam Nzima의 차로 뛰었는데, 그들은 Hector를 붙들어 안고, 쟈날리스트였던 Sophie Tema가 근처의 진료소로 차를 달렸으나 그곳에서 Hector는 죽고만다. 이들 두사람은 그후 경찰들로 부터 곤욕을 치렀는데, 결국 숨어 지내야만 했다.
"Soweto"는 Johannesburg시의 남서쪽의 Township을 줄여서 붙힌 이름이라고 한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이지역은 Johannesburg시의 외곽에서 살던 흑인들이 세계2차대전이후 이곳으로 몰려들어 살게 되면서, 일종의 Ghetto지역으로 변했는데, 외국관광객들이 이곳을 찾아 여행하기에는 매우 치안이 불안하였으며, 불과 5년여 전부터 치안이 확립되여, 지금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찾는곳 중의 하나이다.
1980년대에 Soweto는 인종차별 정책에 대한 저항이 가장 심했던 곳이라고 한다. 특히 교육과 경제적 보이콧이 심했었고, 학생들의 인종차별 조직이 결성되기도 했었다. 국가 정책에 항의하기위한 시민들의 조직과 거리위원회도 결성됐었다. 이러한 운동은 옆나라의 호응을 얻어 잠비아의 African National Congress 의협조를 얻어, 남아프리카 정부의 기능을 마비시키겠다는 으름장을 놓기도 했었다.
1995년도에 Soweto는 남부 매트로폴리탄 의회의 일부가 됐었고, 2002년도에는 Johannesburg시 소속이 됐다.
극우파 구룹으로 분류되는, Boeremag 구룹이 설치한 폭탄이 터져 인근의 빌딩이 파괴되고,철도가 파괴되고, 한사람이 죽기도 했었다.
Soweto가 Johannesburg시에 편입돼면서, 정확한 Soweto지역의 인구가 몇명인지는 확실치 않다. 전문가들의 추측으로는 Johannesburg시 인구의 약 40%는 Soweto에 거주하고 있는것으로 보고있다. 2008년도 인구조사에 따르면 1.3백만이거나 Johannesburg시 인구의 약 1/3쯤 될것으로 본다. Soweto의 거주인들은 거의가 흑인으로 남아공의 공식언어 11개가 거의 이곳에서는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Soweto에는 현재도 천주교 신부였던,Desmond Tutu가 살고 있으며 그가 거주하는 담벼락에는 그가 이곳에 현재도 거주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명패가 파란색으로 표시되여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영광일수도 있었겠으나, 그가 노벨평화상을 수여받았다고해서 과연 흑인들의 삶의 권위와 질이 좋아졌다고 믿는 사람들이몇명이나 있을까? 참으로 복잡한 문제인것 같다. 금년에 그는88세의 노인이라고한다.
Mendela의 집으로 들어가는 앞마당에서 이곳의 전통 무용팀이 그들의 고유춤을 선보이고 있다. 그러나 무심하게도 관광객들의 시선은 별로인것 같았다. 이들이 추는 춤의 의미를 과연 관광객 어느누가 이해하고 즐겨할까? 좀더 홍보차원에서라면 관광객들의 시선을 모을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것도 재미있을것 같다.
이곳은 Soweto에 있는 Mendela 전대통령의 집이라고 해서, 관광객들이 끝도 없이 드나드는 코스중의 하나다. 구룹으로 방문하는 관광객들을위해 Story Teller들이 하나씩 맡아 lead하면서 이곳 저곳을 주마간산격으로 보여주고 설명해 주지만, 기억에 남는것을 별로 없었고, Mendela가 1990년 9월에 감옥에서 풀려난후 이곳으로 들어와 거주 했지만, 겨우 11일 지내고, 몰려드는 관광객들에 시달려 다른 곳으로 피신(?) 했다는 기억만 머리속에 남아 있다.
캐나다의 온타리오주에 있는 Mississauga시에서, 1990년 6월 18일에 시를 방문한 기념으로 기념패를 증정한것으로 보이는 팬난트가 그의 집안에 진열되여 있었다.
Mendela는 평생애 3번 결혼 했는데, Wiennie Mendela는 그의 두번째 부인 이었다고 한다.
위의 글은 Nelson Mendela가 감옥에서 쓴 2장의 편지내용이다. 편지 내용은 주로 개인적인 사신으로 주로 그의 부인과 아이들 그리고 가까운 친구들에게 보낸것들이다.
Nelson Mendela는 개인적인 문제를 얘기하기를 싫어 했었다고 한다. 누가 그런얘기를 물으면 동문서답식으로 화재를 바꾸어 얘기를 하곤 했었다고 한다.
2013년에 서거한 그가 지금 생존해 있다면 올해 100세가 되는 셈이다.
그는 큐바의 카스트로와도 친분이 두터웠던것으로 알려져 있어서 였는지, 그들 두사람의 같이 찍힌 사진도 벽에 걸여 있었다. 어느면에서는 민주주의를 부르짖었던 Mendela와 공산주의를 큐바에 심어준 카스트로와는 상반되는 정치로선인데.... 같은 약자의 입장에서 보는 연대의식으로 해석해 본다.
Bike를 타고 시내를 돌면서 구경한후 우리 일행은 Memorial Park에 도착했었다.
경찰의 총에 맞아 죽은 Hector를 껴안고 인근의 진료소로 달려간 아들의 영웅적 행위를 절대로 영웅으로 여기지 않고, 당연히 해야할일을 한 것뿐이라는 엄마의 담담한 심경을 토로한 내용을 비석에 새겨놓은 내용이다. 만약에 아들이 그런행동을 안했으면 다른 사람이 또 했을 것이라는 확신이 돗보인다. 그는 당시 18세의 소년이었었다. 그후 경찰의 추적에 못이겨, 인근 나라 Namibia로 탈출한후 소식이 끊겨 현재는 그의 소재를 알길이 없다고 한다.
경찰의 총에 맞아 죽은 Hector와 다른 젊은이들의 희생을 기리는 비석의 일부이다. 1960년대초 대한민국에서 4/19가 일어나 많은 젊은 학생들이 산화했던 그기억을 떠오르게 했다. 그런제 지금 한국은 그때가 연상되리만큼, 서울 한복판의 거리에는 세월호 천막과 사회주의와 경제침체에 대한 항의 데로가 연일 수도심장부를 메우고 있지만, 현정부는 들은척도 하지않고, 국민들의 원성과는 반대의 길로 내닫고있다.
오늘밤 쉬게되는곳은 International Game Lodge다. 이곳은 숙소앞에 넓게 펼쳐져 있는 Farm Land에는 많은 초식 동물들이 살고 있었는데 특 히 타조에 대한 설명이 눈길을 끌게 했었다.
Lodge 넓은 Yard가, 그리고 마치 턴넬을 통과하는것 처럼 등나무로 꾸며진 통로가 무척 운치있고, 여우로웠다. 도시생활과는 다른 맛을 느끼면서, 울타리안의 동물들과 교제를 할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타조에 대한 설명이 눈길을 끈다.
지구상에서 서식하고 있는 새 종류중에서는 가장 큰 새라고 한다. 달리는 속도는 최고 70킬로라고한다.
등뼈 동물이 아닌 동물로써 주로 야생초를 주식으로 한다. 수명은 40-45년 정도라고 한다. 한마리의 수컷은 약 2-7마리의 암컷을 거느린다고 한다.
타조는 숨쉬는데 도움을 주는 여러개의 공기주머니가 허파와 연결되 있어 3개의 기본 호흡기능이 있다고 하는데,
첫째, 호흡된 공기가 계속적으로 허파에 공급되여 다른 동물들보다 더 많은 공기를 한방향으로 계속 공급할수 있는 특징이 있다.
둘째, 타조에 더큰 양의 공기를 공급하여, 숨쉬기를 더 천천히 할수있고, 다른 동물들보다 강하다는 것이다.
셋째, 많은 양의 공기를 흡입하기에 오직 탄산가스만을 내뿜는게 아니고 내뿜는 숨에서 열전도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타조는 음식을 저장하는 Pouch가 없으며, 쓸개가 없지만, 3개의 위를 갖고 있는 동물이다. 다른 동물들과 다르게 대변과 소변을 분리해서 한다. 타조는 대장에 대변을 따로 저장하고있다. 타조는 또한 다른 새들과 달리 성기가 팽창했을때 약 20센티미터까지 된다고 한다.
저녁식사는 즐겁기만 하다. 맥주를 반주삼아, 하루의 피로를 풀고 하루의 얘기 하기에 시간 가는줄이 모르고 Tour의 맛을 Share하고 있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