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March 21, 2017

Malaysia 여행, 3월 20일, 역사적으로 유서깊은 Malacca 주 탐방, 영욕의 깊은 상처를 볼수 있었고, 한인식당에서 저녁.

아침 9시가 돼기도 전에 Front Desk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 여행을 주관하는 Buffalo Tour Co.의 Malaysia책임자 Ann Kong으로 부터온 전화였는데, 처음 접하는 인사겸 여행일정에 대한 설명을 하기위해 Tour Guide와 Driver같이 호텔로비에 도착하여 연락한 것이다.  뒤에 보이는 곳은 이곳 호텔의 식당으로 아주 깨끗하고, Service도 최상으로 느껴질 정도로 거의 완벽한 고객 써비스를 한다고 느꼈었다.  아침 식사도 일품이었다.


 호텔은 5 Star로 아주 고급스러웠고, 어젯밤 포근히 깊은 잠에 빠질수 있었던것 같다. 로비에서 우리를 알아보고, 정중히 인사하면서, TourGudie, Driver를 소개해 준다.  고마웠다. 사실 Ann은 오지 않아도 됐는데, 이여행 계획을 짜면서,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의 여행 책임자를 만나게 해달라는 요구를 했었는데.... 암튼 반갑게 인사하고, 열심히 돕겠다는 여행책임자로서의 인사를 깍듯히 했다.

참고로, 이곳 Malaysia에 있는 자동차는 Handle이 우리북미와는 정반대로 오른쪽에 있다는점 기억하고 여행을 해야 할것 같다.

밖에는 예기치 않은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Tour Guide, Mr. Ong이 스케쥴에 있는 Kuala Lumpur시내 탐방을 바꾸어, Malacca지역으로 방향을 바꾸면 어떻겠느냐고 묻기에 그의 말에 따르는게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냈더니, 그럼 원래 하기로 한 시내관광은 내일 하겠다고 설명하고 깨끗하게 정돈된 Mini Van에 운전수, Tour Guide 그리고 우리 부부가 타고, 약 2시간 30분 가량을 달려서 Malacca 지역에 가게된다고 했다.



Melacca는  Kuala Lumpur에서 동남쪽으로 250킬로 떨어져 위치해 있는 조그만 Province라고 설명해준다.   이곳은 1700년대 초기에 포투갈 점령군이 진주해 통치하면서, 수많은 Cathedral Church 건물을 건축하고,  천주교를 전파 했었다고 한다.  지금은 이지역에  오직 하나 남아있는 캐톨릭 교회의 부속실에는  Jesus의 모습을 그대로 묘사한 누워있는 형상이 커다란 테이블아래에 Blanket로 감싸여 있고,  그뒤에 벽화는 십자가에서 목박혀 있는 모습이 색상도 선명하게 보였다.   Lunar가 Tablel 아래로 그모습을 조심스레 목도하는 모습으로 내려다 보고 있다.



본당안의 Altar로 가는 중앙홀에는 커다란 지하 묘지가 있고, 그위에는 긴 설명이 있었고, 전형적인 중세기 천주교 형태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해 주고 있는것을 느꼈고,  내용은 다 읽어 볼의지가 부족하여 정확히 누구의 묘인지? 왜 이곳에 안치되여 있는지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교회 본당과 부속실들의 탐방을 마치고 나가는 Lunar와 Tour Guide, Ong의 모습이다.  Ong의 설명에 의하면, 처음에 폴투갈 사람들이 이곳을 점령하여 많은천주교 건물을 건축했었다고 한다.  그후 Dutch점령군이 이곳을 통치하게 되면서, 천주교 건축물은 전부 파괴되고, 위에서 언급한 이교회만이 목숨을 건져 오늘게 이르게 됐었고, 대신에 많은 개신교 건물을 건축했었다고 설명한다.


교회건물 오른쪽에는 Azalea 분재화분이 꽃을 만발시키고  보는이들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바로 화분뒤로는 성모마리아동상을  둘러싼 화려한 나무정원이 빙둘러 감싸고 있어, 현재도 주일이면 신자들이 예배를 보고 있다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그후에 다시 영국이 이곳을 점령, 통치하면서, 영국이들은 개신교 건물을 재활용하는 뜻에서 Anglican Church로 교회 간판만 바꾸어, 영국 성공회를 전파 했었다고 한다.  19세기 중반까지 이곳은 본토인들이 주인 행세를 한게 아니고, 전부 외부인들이 불법으로 쳐들어와서, 주인노릇을 한, 역사적으로 매우 불행한 나라였었음을 알수 있었다.   아직도  교회 뒷편의 정원한가운데에는 묘지가 그대로 안치돼고 있었는데, 최초로 남아있는 천주교회를 건축한 이의 무덤이라고 하는데..... 나는 잘 확인이 안됐다.



이교회 건축물은 Dutch인들이 통치할때 지었던 많은 개신교회 건물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축물로,  건물 앞쪽으로는 넓은 광장이 형성되여 있어, 그앞에서는 인도 전통인 흰두교를 상징하는 꽃장식을 한 Rickshaw들이 고객들을 찾아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서로 엉켜 살아가는 모습들에서, 과연 종교인들이 굳게 믿고 의지하는 그근본 목적은 결국 사후의 세계를 평안하게 살아가게 해달라는 간절한 염원들일텐데..... 육신이 살아있는 세계에서는 서로 빼앗고, 당기고 ,죽이고..... 생각이 헷갈린다.


건물의 외벽이 교회건물뿐만이 아니고, 다른 건물들도 Pink로 통일되여 있음이 시선을 끌어 모으게 했다.  Dutch가 이곳을 지배할때 당시에 색갈은 이색갈이 아니였었다고 한다.





교회본당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는 Souvenir 를 팔고 있는 전문 상인이 지키고 있는점도 선뜩 이해가 안갔다.  몇걸음 더 앞으로 들어가니 그곳에서는 유럽에서 구경온 한 카플이 다소곳이 앉아서 묵상에 잠겨 있어, 발걸음 띄는것도 조심스러웠었다.



교회건물 왼쪽에는 커다란, 당시 Dutch가 정부청사로 썼던 건물이 역시 같은 Pink색갈로 화려하게 단장되여 있었고,  현재는 이곳을 찾는 여행객들을 위한 박물관으로 내부를 개조하여 관람시키고 있었다.  그오른쪽 앞쪽에 있는 타워모양의 건축물은 당시 이곳에서 상권을 휘어 잡고, 잘 살았던 갑부가 손수 건축하여 Dutch 정부에 헌납 했다는 설명이다.  역사적 현장에는 항상 상인들이 관람객들을 상대로 상행위를 한다.  이러한 풍경은 세계 여러나라를 다녀 보면서 공통적으로 느껴온 그대로다.


이곳광장에서는 아주 조그만 미니 수박들이 관광객들을 상대로 잘 팔리고 있었다.  Lunar도 그대열에 끼어, 맛을 즐긴다기 보다는, 어울려 추억을 만들어 볼려고 했다.  맛이 무슨 상관이 있겠나?  Straw를 꽂고 한모금 빨고..... 손자같은 생면부지의 젊은친구와 한컷.



광장의 중앙에는 Water fountain이 세차게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Great Queen을 기념하기위해 세워진 기념탑이라고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고, 분수의 물이 그곳에 정조준 되여 있어, 글씨가 선명하게 잘 나타나고 있었다.



박물관안을 들여다 본 전경인데, 웬지 들어가서 구경하고픈 생각이 없어 그냥 사진 한잔으로 추억 만들고 지나쳤다.  영국이 이곳을 통치할 초기에는 소방차는 말이 끌었었다고 Ong은 설명인데.... 글쌔 말이 뜨거운 화마가 넘실거리는 곳에 과연 접근 할수 있었을까?  그후에 영국통치자들은 지금 이곳에 전시되여 있는 Fire Truck을 1939부터 영국현지에서 들여와 사용했었고, 그중의 하나가 현재 이곳에 전시되여 있다는 설명이다.





이지역의 경찰서 건물들은 지붕이 보이는것 처럼 Light Blue색갈이다.  누구나 쉽게 알아보고 협조를 요청할수 있도록한 배려라고 한다.  그뒤에 멀리 보이는 커다란 Freight ship에서, 이곳 뱃길이 말레이시아를 들락 거리는 항로임을 설명해준다.


Malacca지역에서 제일 높은 언덕위에 세워진, 최초의 천주교, St Peter's Church 성당의 일부분이다.   그앞에는 당시 Francis 신부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가이드가 설명해준 신부님에 대한 설명중에서, 기적이 일어난 사건을 설명해 주는 대목이었었다.  신부님이 일과가 바쁘게 이섬에서 저섬으로 옮겨 다니면서 설교를 하고 세례를 주곤 할때 사용했던 십자가가 새겨진 묵주를 손으로 만지면서, 배를 타고 이곳 성당으로 오늘길에 심한 풍랑을 만나 그만 묵주를 바닷물속에 빠뜨리고 말았다.  상심이 큰채, 고해성사를 하면서 기도를 드리고, 다음날 아침 일찍히 배선착장 모래사장을 거니는데, Crab때를 만났는데,  그중에서 큰 개의 이빨에 그렇게 안타까워했던 묵주가 걸려 있는것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도와주신 기적으로 알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더 선교에 전진 했었다는 믿음의 증거를 보여준것이었다.   건물본체는 페허가 되여 그대로 보존되고 있다는것이다.




건물에 사용된 석축은 모두가 빨갛다. Arch형 입구에는 Supporting Scarfolder가 이를 받치고, 탐방객들의 안전을 지키고 있었다.  이렇게 보존해서, 어떤의미를 후세의 관광객들에게 보여주고, 교훈을 줄것인가?  선뜩 관계기관의 이러한 노력의 뜻을 이해 못할것 같다.




지금은 현대식 상가 건물로 변했지만, 원래 이곳은 넓은 광장으로, 영국으로 부터의 통치를 벗어나기위해 많은 선조들이 독립운동을 했었던 본산지라는 설명에 선뜩 그러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Guide의 설명에 따르면, 이상가건물은 돈많은 Muslim사람들이 여론을 무시하고, 광장의 역사적 의미를 무시하고 세웠다는 것이다.


Lunar가 구경하고 있는곳은 여러 전시관중의 하나인데, 특히한점은 전시관의 Decoration이 전부 재활용품들, 여기서는 종이커피컵이었음을 알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영국사람들이 마지막 점령자였다가 물러선 곳이라서인지?  영국인들에 대한 인상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삐툴어져 있었음에, 많은 한이 아직도 서려 있는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마치 한국인들은 일본인들을 항상 욕하고 비하하는것처럼....


Local식당에서 점심하는 모습이다. 중국식당이라고 하는데, 음식의 내용은 아주 빈약하기 짝이 없었다.  Steamed Chicken을 시켰는데, 양도 적을뿐 아니라, 뜨거울거라는 나의 기대와는 달리 차거운 닭고기였다.  세계 여러곳을 다니면서 중국음식을 즐기는 편이었는데, 여기서는 음식하면 중국인들이라는 등식을 깬 곳으로 기억될것 같았다.  나의 눈에는 그렇게 비쳤지만, Local 사람들은 그래도 북적이고 시끄러웠다.


상업지역의 한중앙에 있는 개인소장 박물관, baba & nyonya에 들렸는데, Lunar는 차안에서 쉬고 나와 Guide만 참석했다.  유감스러운점은 이곳에서는 사진촬영이 금해져 있어, 박물관측에서 제공한 Usher의 설명을 기억하기가 무척 어려웠고, 그의 영어 설명은 절반은 중국용어 여서 더욱 어려웠다.  같이 동행한 관광객들은 전부 중국인들로 보였었다.   빨간 T-shirt를 입은 현재의 박물관 주인이 뜻밖에 나타나, 인사를 했었다.  Usher의 당부를 깨고, 내가 큰소리로 이것도 인연인데 사진 한장 같이 찍고 추억을 만들자고 했는데, 기꺼히 응해주어 한컷한것이다.


촬영후 잠시 그와 만나, 서로 인사를 주고 받았다.  나는 캐나다에서 왔다로 부터 시작했고, 그는 현재 이곳에서 장사를 하여 커다란 거부가 된 7대 할아버지의 유일한 생존자이고, 그후에 태어난 혈족들은 Mixed Blood가 되여 그의미가 없다는 설명도 해주었다.  초대 조부모는 이곳에서 식당을 하면서, 재물을 축적했는데, 밤늦게 찾아온 손님이 식당문을 두드리면, 윗층에 살고 있던 가족들중에서 다시 밑층으로 내려가 좋은 손님, 나쁜 손님인지의 여부를 쉽게 확인하는 번거로움을 없애기위해,  선조 조부모들은 그위치에 맞추어 윗층 거실에서 바닥에 주먹크기의 구멍을 뚫어놓고 그곳을 통해서 손님들을 확인 했었고, 평상시에는 구멍을 똑같은 나무조각으로 막아 놓기에 관심없이 보는 사람은 그냥 지나치게 됐었다고 한다.   현재는 천장에 Security Camera가 부착되여 있어, 도적을 막고 있지만, 옛날의 감시방법이 훨씬더 현실적이었을것이란 Usher의 설명이 내가슴에 더 바짝 다가서는 느낌을 받았었다.


밖에서 본 박물관의 모습이다.   현대판 길거리 상가의 형태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고, 거리 전체가 거의 외형이 똑 같은 크기로 구성되여 있는점도 당시 이곳 상가의 활동을 쉽게 그려 볼수 있었다.


현재도 그후손들중 하나가 음식점을 바로 옆방에서 하고 있었다.  그러나 손님들은 거의 눈에 보이지 않았는데, 기념으로 젊은 청춘들이 이곳을 방문하면서, 식사를 해보는 정도로만 보였다.


건물앞에 별도로 걸려있는 간판이다.  "1861년이후 Ferankan가족들이 거쳐했었던 집"이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유감 스럽게도 입장료를 징수 했는데, Tour Guide가 지불해서 나는 얼마인지는 모른다.



거리의 전경인데 지금은 문을 열고 있는 상가는 있긴 했으나, 그옛날의 활발했던 거리는 없어지고 명맥만 유지하는것 같았다.


한고물상을 들어가 보았는데, 건물의 깊이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었다.  Guide, Ong의 설명에 의하면, 당시에 세금을 걷는데, 당국에서는 앞에서 본 건물의 넓이만을 계산해서 세금을 거두었기에 폭은 좁게하고, 대신에 안쪽으로 길게 건물을 지었었다는 설명이다.  정말로 그랬을까?  고개가 갸우뚱 해졌지만.... 반박할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쾌쾌한 냄새도 적당히 나면서, 골동품을 다 수집되여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돌맷돌부터 시작해서 Lighting Fixture까지.



가장 오래된  중국식 불교 사원을 탐방했다.  특히한점은, 건물의 대들보를  떠받치고 있는 조각상들의 모습이 특히했다.  중국사람의 형상을 한 모습은 두손으로 대들보를 받치고 있었고, Dutch인의 형상은 한쪽 어깨로 대들보를 떠 받치는 형상이었다.




사찰 본당안으로 들어가는 입구양쪽에는 수호신으로 여기는 사자상이 지키고 있었다. 모든 잡신을 막아낸다는 뜻이라고 했다.  양사자상 사이로 그린색갈의 굵은 선은 원래의 모습이 아니고, 턱이 있었는데, 지금은 편의를 위해서 없앴다는 설명이다.  무릎높이 보다 낮은 턱이 있었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올때, 자동적으로 고개와 허리를 숙이게 했었다는 설명이었다.  오래전 중국남쪽 지방을 탐방할때 들었던 설명과 너무나 똑같이 일치한다.



사찰밖의 빈공간에는 분수가 설치되여 있었고, 중국인들 특유의 배불뜩 형상과 좌상들이 서로 엉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이들이 외부로 부터의 잡신들을 막아낸다는 것이다.


사찰의 앞쪽 끝 정원에는 높은, 빨간색의 기둥이 세워져 있었다.  옛날에 배들이 이곳을 지날때, 이기둥을 보면서, Melacca지역의 중심지가 이곳임을 알려주기위해 설치 운형해 온 상징물이라고 전한다.  현재는 이곳에서 해안까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오래전까지는 해안가는 이곳에서 바로 지척에 있었다고 하는데, 후세 사람들이 땅을 메꾸어 토지를 넓혔다는 것이다.  마치 오늘날, 중국이 군사적 힘을 키우기위해 공해상에 커다란 인공섬을 만들고 그곳에 군사기지를 만들어 주변 국가들의 빈축을 사고 있는점과 흡사한것으로 이해됐다.

Melacca지역 탐방을 마치고 Kuala Lumpur로 되돌아 오는길에 고속도로 휴계소에 들렸는데, 그곳에서 Driver, Danny가 우리부부를 위해 이곳 고유의 Fruit 사주는게 아닌가. 고마웠다.  이름도 기억못하는, 토론토에서도 중국 수퍼마켓에서 많이봤던, 과일로 맛이 달면서도 냄새가 별로 였었다.  이곳 상점 주인과는 잘알고 지내는 사이같았다.   상점주인은 나보다는 어려 보이는데 외모가 노인 행색을 많이 풍기고, 우리의 방문을 환대해 주어, 나도 답례로


준비해간 Maple leafs Badge한개를 그의 T-Shirt의 Lapel에 달아주었더니, 싱글 벙글이다. 과일을 먹는데  껍질을 벗기위해 손에 들때마다 조그만 개미들이 바쁘게 움직이는것을 목격했는데, 단맛이 나기에 그렇게 개미들이 꼬인는것으로 이해됐다. 




퇴근시간이 되여서인지 Kuala Lumpur로 들어오는 Down Town길은 교통지옥이었다. 토론토만 교통지옥이 아님을 실감했다.  Korea Town이 있다는 설명을 들었기에 그곳에서 저녁을 먹자고 제안하여, "잘돼지"에 들렸는데, 이곳이 이곳 도시의 존재하는 한인상가지역이라고 했다.


저녁식사는 여행경비에 포함되 있지 않아, 내가 지불하고 사먹어야 할 형편이었기에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Driver에게 부탁해서 여기에 오게된것이다. 오는길에 Buffalo Tour Co.의 사무실에들려, Manager Ann도 합세하게됐는데,  참 잘한것 같았다.  이들은 처음 한국식당에 들렸다는 것이고, 음식맛을 너무도 즐겨 하는것 같았다.   메뉴가 다양했고, 나는 삼계탕, 모두가 서로 다른 메뉴를 보고 Order 했는데, 굳이 설명없이 식사후 내가 식대를 지불하고, Tip도 내딴에는 섭섭치 않게 주인장 아주머님에게 드렸다.  음식 맛이 일품이고, 또 푸짐하고, 주인장 부부의 후덕한 인상에 서로 더 깊은 인사까지 나누었다.  이곳에서 장사한지 어느새 10년이 넘었다는, 세월의 빠름을 한탄(?)하는 느낌을 받았었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이민자의 똑같은 처지에서 그들의 삶의 애환을 깊이 이해할수 있었기에,우리의 인생살이에 대해, Lunar가 주인장 부부과 스스럼없이 한참을 대화를 주고 받기도 했었다.  몇년전 Ethiopia여행시 그곳에서 좋은 음식으로 우리부부와  Tour Guide, Driver를 대접할때도 그집 안방주인장은 바쁜일손을 제처놓고 하소연겸 이국에서 생활하는 고달픔을 Lunar와 나누면서 이민자의 서러움을 토로했던 기억을 떠올리게도 한다. 여행안내동료들을 손님인 우리 부부가 대접할수 있었다는것, 그것도 Korea Town의 넉넉하게 보이는 주인장부부의 배려속에서 맛있게 먹고, 즐겼다는 이순간이 오래 기억될것 같았다.  우리부부를, King과 Queen처럼 옆에서 도와주고 있는 이들이 어떻게 평가 했을까?  우선 인색하다는 그런 인상은 안주었기를..... 내일, 모레 2일간 이들과 같이 동거동락을 하게 된다. 



주인장부부께서 앞으로 얼마나 오래 이곳에 계실지는 몰라도, 식당사업이 계속해서 번성 하기를 기원하지 않을수 없었다.  기념으로 한컷 했다.  이곳에 한인 상가가 형성된지는 약 20년이 조금 넘는다는 주인장의 설명이다.  열심히 살아가는 해외에 거주하는, 이식당 주인부부를 비롯하여, 한인교포들이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계속 번창 하시기를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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