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부부가 묵은 호텔의 7층 방에서 서쪽 항구를 향해서 보이는 아침의 전경은 일품이었다.
호텔에서 제공해준 Borneo지도를 들여다 봤다. 큰섬의 윗쪽으로는 Malaysia, 아랫쪽은 인도네시아, 그리고 Malaysia 영토의 중간지점에 오일생산국, 아주작은 Brunei 왕국이 있다. Malaysia인 Borneo 영토에는 2개의 Province가 있다. 하나는 오늘 Sabah, 다른 하나는 Sarawak이다. 이번에 여행다니는곳은 대부분 Sabah 주이다.
This roof covers whole traditional market including a lots of restaurants where everything is in for human comsumption. The most of local people who are mostly Chinese descendants gather here for eating out with family or friends. Last night I with Lunar were there to fill stomach, ordering roasted huge shrimps and fried potatoes. Staffs of restaurants serve meals and very busy moving around continualy but they looks like don't care of collecting money from customers which I couldn't understand clearly but thought of no customers run away after eating.
호텔로비에 있는 뷔페식당의 전경이다. 아침에 서둘러 식사를 마쳤는데, 7시30분에 오늘의 시골풍경을 탐방하기위해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호텔로비에서 Driver, Yus를 만났다. 자기 혼자 왔다고 인사를 건넸는데, 약간의 혼선이 있었다. Driver 아니면 Tour Guide가 없었기 때문이다. Kuala Lumpur에 있는 여행사 HQ의 Manager Ann Kong에게 전화를 연결 시켜달라고해서, 오늘 탐방은 어제까지의 기분으로는 하기 힘들것 같다는 심경을 얘기하고, Yus와 일단은 계획데로 먼저 Kota Belud지방으로 차를 몰았다.
이곳 말레이시아는 유난히 교통지옥임을 실감한다. 원래 이러한 차량의 물결이 넘칠것으로 예측을 못하고 도시계획을 했었던 결과가 아닐까? 또다른 문제는 교통법규준수와 이를 통제하는 교통경찰이 한번도 눈에 띈적이 없었다. 예상했던 시간보다 약 2배는 더 걸려 목적지에 도착해서, 겨우 Parking 자리를 찾아 정차하고, 우린 바로 일요일마다 열리는 전통시장으로 향했다. 약 2시간 반을 걸려 도착한 것이다. 특히 호텔앞의 3차선 도로는 2개의 Lane이 불법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고, 오직 1개의 Lane만 차들이 겨우 움직일수 있는, 서구에서 온 나로서는 이해가 안되는 교통질서이고, 경찰은 전연 눈에 띄지 못했다.
2시간 이상을 달려 도착한 "Tamu"라고 불리는 시골 재래시장인데, 없는것 빼놓고 다 있는것 같았다. 역사를 들어보면, 이시장에는 과거에 서로 영토전쟁을 했었던 Bazau 족, Ranun족, 그리고 Dusun족들이 무척 많이 싸웠었다고 한다. Bazau족은 서쪽의 해안가에 거주하면서, 동쪽으로 처들어가기위해 오래전에 영국으로 부터 말을 들여와서 싸움터에서 사용했기에 일명 이곳을 "Cowboys of the East"라고 부르기도 한다. 지금 이재래시장은 3부족의 후손들이 오손도손 한데 모여 시장을 형성 운영하고, 매주 일요일에 문을 연다고 한다. 일종의 Melting Pot이라고 이해하면 될것 같다.
후손들은 행상꾼으로, 장사꾼으로,농부로,어부로 또는 가축번식가들로 살아가고, 매일요일마다 이곳에서 만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점포에는 일본사무라이들이 사용했던 긴칼도 팔고 있었다. Lunar가 마치 무사인양 폼을 잡아 보는데.....
어느 한곳에서는 어디선가 기증해온 옷가지들이 팔리고 있었다. 원조품이 오면 필요한 사람들에게 가야 하는데, 이집트, 애티오피아 여행때도 비슷한 광경을 보았었는데..... 원조를 해준분들의 바램이 이런식으로 일부 양심적이지 못한 사람들때문에 빗나가는것 같아 안타깝다.
젊은 친구가 운영하는 신발가게에서 Lunar것 내것, 두켤레의 고무신을 구입했다. 무척값이 싸지만, 여기 현지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비싸다고도 할수 있겠다. Lunar것은 검정색, 내것은 Brown색이다. 신어보니 편하고 여름에 시골집에서 신고 다니면 안성마춤일것 같다. 한국식 고무신모양과는 완전히 다르다. 고무생산국이기도 해서 고무의 품질이 더 좋을것이란 기대감을 갖고, 구입했는데 이번 여행의 증거로 구입하는 유일한 선물이될것이다.
이곳에서는 쌀농사를 많이 한단다. 보통 이모작을 한다고 하는데, 요즘은 그것 마져도 줄어들어 일부농부들이 일년에 한번 어렵게 경작한다고 설명이다. 젊은 인력난 때문인것으로 이해된다.
여기서도 벼이삭이 나오면 제일 좋아하는 Wild Life는 참새떼들인것 같다. 논바닥에 새를 쫓는 깃발들이 많이 펄럭이고 있어, 어렸을적 방학때는 새막에서 하루종일 새들과 싸우고, 그리고 해가 서산에 넘어가면 집으로 가곤했었던 아련한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여행은 보는것도 좋지만 잃어 버리고 있었던 추억들을 하나씩 Match시키는 마술사 역활을 하기도 한다.
Honey Bee Farm을 찾았다. 이렇게 외따로 있는 밀림속 마을에서 큰 기대를 할수 있겠는가? 이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보는, 그래서 내가 살고있는 삶의 조건에 대해서 더 감사해 할 이유를 똑똑히 분별할수 있다는데 의미를 많이 두어야 한다. 동네로 들어가는 입구에 페물이 된 공(한국식 농악기구인 "징")을 이용하여 동네 입구에 설치해 놓은 훌륭한 표지판이다.
이게 농장의 심장부라 할수 있는데, 동네의 아낙네가 벌통에서 벌들이 잔뜩 붙어있는 한개의 판을 꺼내서 우리부부에게 보여주고 직접 만져 보게도 했다. 벌들이 손이나 몸에 앉아도 무시하고 반응을 하지 않으면 절대로 Sting하지 않는다는, 그래서 안심하라는 주문도 잊지 않았다. Lunar가 나를 걱정했다. 몇년전 Brighton에서 벌의 공격을 받아 병원 Emergency로 입원한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혹시 몸이나 얼굴에 향수를 사용한적이 있느냐고 물었는데 벌들을 화나게 할수 있는 물질이기 때문이란다. 땀을 하루종일 흘려야 하는 처지인데 향수를 뿌릴이유가 있겠는가? 벌들이 손등에 때로는 얼굴에 앉을때는 불편했으나, 그런데로 참았다. 무사히 공격을 피했다는 증거다.
각벌통에는 주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이동네에는 약 30 여명의 벌통 주인이 있단다. 벌통은 1에이커당 약 50통이 있다고 했다. 일벌들의 색갈이 토론토에서 여름철이면 외곽으로 운전삼아 나가서 봤던 일벌들보다 더 짙어 보였는데..... 종류가 달라서 일까? 알길이 없고, 물어본들 동문서답일테고..... Yus에게 물어도 대답은 같은 것이고..... 벌통의 모양도 빈약하기 짝이 없다. 이곳 주민들의 고달픈 삶의 한장면을 본 셈이다.
벌통이 있는 그아래쪽에는 판매장이 있었다. 역시 꿀은 이곳에서도 값이 비쌌다. 오히려 토론토보다 더 비싼것으로 계산이 된다. 생각같아서는 한병이라도 구입했어야 했는데.... 앞으로도 여행길이 많이 남아 짐을 생각지 않을수 없어, 그냥 지나쳤는데 괜히 조금은 미안해진다.
이지역은 Kota Kinabali섬에서도 맨북쪽 끝단에 위치해 있는 외딴 마을이라서, 가끔식 주로 영국에서 탐방온 여행객들을 마주치기는 했으나, 아시아계 여행객들은 우리 부부만을 제외하고는 없다는 특이한 점을 발견한 것이다. 이곳주민들도 나와 생각이 같다고 했다. 그들이 하는말을 빌리면, 중국, 한국관광객들은 쇼핑, 먹는것 좋아해서, Kota Kinabali에서만 구경하고 되돌아 간다는, 뭔가 뼈가 있는 말을 한마디 해준다. Yus가 캐나다에서 온 관광객이라고 한마디 곁들여 준다.
이곳은 Gong을 제작하는 조그만 마을입구인데 간판을 보면 기대가 큰데.... Yus가 안내한 곳이다.
크고 작은 물건들로 일종의 타악기이고, 한국의 전통농악놀이에서 꼭 있어야 하는 "징"을 연상하면 쉽게 알수있다. 다만 다른점은 징의 중앙부분에 혹처럼 불룩튀어나온 점이다.
Lunar도 옛기억이 나는가 보다. 한번 두둘겨 보면서 소리의 웅장하면서도 은은한 소리결에 옛추억이 되살아 난다.
이곳에서는 "놋쇠" 보다는 "아연"이 주재료로 사용된다고 한다. 아직 제작중에 있는, 미완성의 징들도 봤다. 조각을 만들어 용접으로 서로 이어 부치는 과정을 Yus가 설명해준다.
중앙에 배꼽처럼 툭 튀어 나오게 하는 작업은 가운데가 움푹패인 패턴을 유지하고 있는 Anvil 위에 올려놓고 Hammer로 조심조심 두둘겨서 모양을 만드는 것이었다. Yus의 머리패턴을 유심히 봤더니, 요즘 젊은이들세계에서는 동,서양 똑같이 유행하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아들 Lyon도 그런 머리 모양인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들 서양인 부부는 캐나다의 퀘백주 주민인데, 남자가 Helicopter Pilot으로 이곳의 유전 지역에서 인력들을 이송해주는 일을 하고 있다고 소개하면서, 우리가 토론토에서 온것에 더 반가워 했다. 내가 사용하는 Tiley모자를 보고 금새 얘기가 이어진 것이다. 이들 부부도 우리처럼 이곳에 처음 구경왔다고 한다.
이거리가 이곳 공을 만드는 동네의 Down town인 셈이다. 대규모라는 개념은 없고, 가정집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소상인들이, 그것도 아낙네들이 장사를 주고 하고, 남자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나의 판단으로는 어는 한곳에서 제작해와 각가게에 나누어 팔게하고, 직접 이곳에서 제작하는것 처럼 어느가게에서는 재료로 사용하는 철판과 Moulding도 갖추고는 있었지만......
Yus가 우리부부를 데리고 간곳은 "공"만드는 공장에서 조금 이동하여, Longhouse가 있는 동네로 이동하여, 미리 주문한 점심을 먹기위해 도착한 간이 식당이다. 이곳이 이지역에서는 유일한 손님접대 식당이라고 한다. 바람이 불면 날아갈듯한 쌀밥에 Side dish는 5가지인데, 닭고기만을 빼고는 전부 땅에서 자란것들이었다. 맛이 우리입에 맞아서 먹기에는 불편이 없었다. Bamboo shoots로 생채처럼 잘게 갈라서 만든것, 고사리, 고추잎같은것 등등.... 채식이라서 더 많이 먹어도 몸의 체중과는 크게 영향이 미치지 않을것 같아 마음이 가볍다. 미니 바나나도 식단에 자리하고 있다.
식사후에는 Yus의 안내로 이곳 주민들이 민속 Dancing Performance를 한다고 해서 Longhouse안으로 안내됐다. 어린 십대 소녀들 몇명이 준비하고 있다가 우리 부부와 다른 탐방객 몇명이 들어오자 곧 시작했다. 이들이 입은 전통의상이 색갈은 우중충한데, 정성들여 무늬를 배색한 천이 내가 보기에는 두꺼워 보였다.
옆에서는 동네의 남자들이 아까 우리가 견학한 "공"과 다른 타악기를 이용하여 장단을 마추는 일종의 Band역활을 하고 있다.
https://youtu.be/730XmqUy1TM
한명의 남자와 나머지는, 이제 겨우 3살쯤 된 꼬마 숙녀까지 합하여 4명이다. 이상하게도 이들은 웃는 표정이 아니고 그져 무심한 표정이다. 웃는 얼굴이었으면 더 맛이 있었을텐데....
이들의 Dancing이 끝나자 자칭 MC, Yus가 내이름과 Lunar 이름을 거론하면서 나와서 같이 춤을 추라고 명령(?)한다. 이런곳에서 같이 어울린다는것.... 오래 기억될것 같다. 평소에 춤에 대해서는 우리 부부는 "백치아다다"인지라 좀 미안함감도 있었지만, 그들이 시키는데로 몸을 돌리고 흔들고, 영국에서 혼자 탐방온 Nancy도 뒷모습이 보인다. 이들과 함께 어울릴수 있다는 그배려에 고마울 따름이었고, 그래서 뚱뚱한 몸을 내앞에 있는 Dancer를 따라 더 흔들어 댔다.
마음은 Performer와 같은데 몸놀림은 내가 동영상을 봐도, 챙피한 수준으로 전락한 나자신의 둔한 제스처에 고개를 들지 못하겠다.
이들과 어울려 흔들면서, 새삼 내자신이 어느새 이렇게 변해 버렸나?라는 증거를 내눈으로 확인 하는셈이 되여, 말과 행동을 더 조심해야만 될것 같다는 깊은 교훈을 터득하기도 했다.
옛날에는 Longhouse에서 보통 3대, 많게는 5대가 살기도 다는데, 지금은 동네 회관정도로 사용되고 있는것 같았다. Longhouse입구에 매달려 있는 로고인데 Longhouse의 고유이름인것같다. 아시아인들의 삶의 구조는 거슬러 올라갈수록 거의 집단생활을 하는 비슷한 Pattern이었던것 같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아래의 바닷가의 바위끝이 Borneo섬의 맨 끝부분이라고 한다. 내가 그지점에서 여기까지가Malaysia의 영토라고 다시 선포할수도 없고, 또 한다해도 누가 귀를 기울일 것인가? 꼭지점에 서 있다는것만으로 여기까지 달려온 의미를 부여하고 싶을 뿐이다.
기념비석의 앞에서 Lunar가 서있는 모습이 조금은 왜소해 보인다. 그녀역시 맨 끝지점에 와서 다녀간 증거를 만들줄은, 불과 몇분전까지도 상상을 못했었다. 희소가치가 있는 여행을 이번에 인생의 역사책에 기록하고 있는 셈이다.
이곳은 Borneo Island맨 끝자락에 있는 Sampang Mangazo라는 곳으로, 지도상에서 이섬의 맨끝자락에 위치한 곳이라는 특별한 의미가 새겨져 있는 곳이다. 2002년도에 약 300킬로 떨어져 있는 Papar 에서 부터 기마병들이 4일간 달려와, 의식을 올리고 당시 문화부장관, 관광장관등이 참여하여 표적물을 세우고, 맨끝단임을 알리는 선포식을 했다는것이다. 여기서 북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필리핀이 있다는 설명도 Yus는 곁들여 준다.
우리 부부는 오늘 Borneo섬의 맨 끝자락에서 발자국을 남긴셈이다. 조국 대한민국의 경상북도 오른쪽 맨끝자락에 토끼 꼬리같은 지역을 방문했을때의 기억도 Overlap된다. 규모있게 잘 조성되여 있고 지구본을 연상케하는 조형물, 그중앙에 Borneo섬을 새겨놓은, 그뜻을 이해할것 같다.
탐방을 마치고 되돌아 오는 길에 이렇게 깨끗하고 아름다운 백사장이 아마도 2킬로는 되게 펼쳐저 있는데, 휴양객은 거의 없다. 이곳이 외딴곳이고, 아직 Accomodation이 준비가 안돼서 인지는 몰라도, Business Mind를 갖인 젊은이라면 한번, 먼장래를 내다 보면서, Leisure 산업에 투자해볼만한 곳이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스쳐간다.
이지역에서는 Palm Oil이 주생산품이라고 한다. 그래서 인지 Palm Tree들이 사방을 봐도 밀림을 이루고 있었다. 열매를 수확하면, 다시 동쪽의 Sandakan지역으로 보내서 Palm Oil을 생산하게 된다는 설명이었다.
차속에서 바라본, 멀리 동쪽의 산봉우리의 웅장함과 그위의 구름을 보면서, Hymalaya산맥을 탐방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자연의 변화무쌍함에, 다시 고개를 숙일수 밖에 없었다. 이우주를 창조한 윗분의 뜻은 영원히 Reveal되지는 않을 것이다. 감사.
오늘길에는 일요일인 탓도 있었지만, Traffic Jam에 걸려 무려 4시간 이상을 길에서 동동 발을 굴려야 했다. 호텔에 도착했을때는 벌써 사방이 어두워 지고 있었다. 식후 금강산이라고 했던가. 저녁을 먹어야 했기에 호텔바로 앞에, 어젯밤에도 갔었던 재래 Market으로 갔다. 모든 해산물은 신선하기가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다. 상인들이 우리 부부를 보면서, 한국말로 "김치"을 연발한다. 그만큼 이곳 Kota Kinabalu 까지는 한국관광객들이 많이 왔고, 또 올것이라는 증거이리라. 더 고마워 할점은, 한국의 연속극과 K-Pop소녀들의 활동을 이곳 Local주민들이 TV를 통해서 심취하고 열광적으로 팬이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다시 아쉬운점이 머리를 스친다. 정치꾼들만 좀 정신 차리면 손색이 없는 일등국가되는것은 자연순리일것이라는 확신이 굳어지는데....
오늘은 따근한 쌀국수에 새우가 들어있는 토종음식을 주문했다. 따뜻한 국물이 일품이다. 이곳 상인들은 주문한 음식을 차려주고 돈받을 생각을 하지 않는건지? 풍습인지는 잘 몰라도, 다먹고 나서도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한가지 좋은점은 외부인이라고 해서 바가지요금 그런것은 걱정안해도 좋을것 같았다. 식단에 가격표가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기 때문이었다. mango Juice도 감칠맛나게 한다. Tim Horton's에서 Extra Large 커피를 오더하면 나오는것과 같은 사이즈인,커다란 컵에 만들어 주는데, 값은 US 50센트이다. 감사.
호텔에서 제공해준 Borneo지도를 들여다 봤다. 큰섬의 윗쪽으로는 Malaysia, 아랫쪽은 인도네시아, 그리고 Malaysia 영토의 중간지점에 오일생산국, 아주작은 Brunei 왕국이 있다. Malaysia인 Borneo 영토에는 2개의 Province가 있다. 하나는 오늘 Sabah, 다른 하나는 Sarawak이다. 이번에 여행다니는곳은 대부분 Sabah 주이다.
판자집처럼 한데 모여있는 곳은 호텔바로 앞의 재래시장으로, 밤에는 불야성을 이룬다. 어젯밤에는 그곳에서 생선튀김과 바나나 튀긴것, 그리고 큰 Shrimp를 Roasting 해서 배가 오랫만에 시골스런 음식으로 포만감을 느끼기도 했었다. 호텔에서 먹는 음식은 안전은 하지만 어렸을적 기억을 되살리기에는 부족하기 짝이 없는 극히 규정에 따르기 때문이다.
호텔로비에 있는 뷔페식당의 전경이다. 아침에 서둘러 식사를 마쳤는데, 7시30분에 오늘의 시골풍경을 탐방하기위해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호텔로비에서 Driver, Yus를 만났다. 자기 혼자 왔다고 인사를 건넸는데, 약간의 혼선이 있었다. Driver 아니면 Tour Guide가 없었기 때문이다. Kuala Lumpur에 있는 여행사 HQ의 Manager Ann Kong에게 전화를 연결 시켜달라고해서, 오늘 탐방은 어제까지의 기분으로는 하기 힘들것 같다는 심경을 얘기하고, Yus와 일단은 계획데로 먼저 Kota Belud지방으로 차를 몰았다.
이곳 말레이시아는 유난히 교통지옥임을 실감한다. 원래 이러한 차량의 물결이 넘칠것으로 예측을 못하고 도시계획을 했었던 결과가 아닐까? 또다른 문제는 교통법규준수와 이를 통제하는 교통경찰이 한번도 눈에 띈적이 없었다. 예상했던 시간보다 약 2배는 더 걸려 목적지에 도착해서, 겨우 Parking 자리를 찾아 정차하고, 우린 바로 일요일마다 열리는 전통시장으로 향했다. 약 2시간 반을 걸려 도착한 것이다. 특히 호텔앞의 3차선 도로는 2개의 Lane이 불법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고, 오직 1개의 Lane만 차들이 겨우 움직일수 있는, 서구에서 온 나로서는 이해가 안되는 교통질서이고, 경찰은 전연 눈에 띄지 못했다.
2시간 이상을 달려 도착한 "Tamu"라고 불리는 시골 재래시장인데, 없는것 빼놓고 다 있는것 같았다. 역사를 들어보면, 이시장에는 과거에 서로 영토전쟁을 했었던 Bazau 족, Ranun족, 그리고 Dusun족들이 무척 많이 싸웠었다고 한다. Bazau족은 서쪽의 해안가에 거주하면서, 동쪽으로 처들어가기위해 오래전에 영국으로 부터 말을 들여와서 싸움터에서 사용했기에 일명 이곳을 "Cowboys of the East"라고 부르기도 한다. 지금 이재래시장은 3부족의 후손들이 오손도손 한데 모여 시장을 형성 운영하고, 매주 일요일에 문을 연다고 한다. 일종의 Melting Pot이라고 이해하면 될것 같다.
후손들은 행상꾼으로, 장사꾼으로,농부로,어부로 또는 가축번식가들로 살아가고, 매일요일마다 이곳에서 만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한점포에는 일본사무라이들이 사용했던 긴칼도 팔고 있었다. Lunar가 마치 무사인양 폼을 잡아 보는데.....
어느 한곳에서는 어디선가 기증해온 옷가지들이 팔리고 있었다. 원조품이 오면 필요한 사람들에게 가야 하는데, 이집트, 애티오피아 여행때도 비슷한 광경을 보았었는데..... 원조를 해준분들의 바램이 이런식으로 일부 양심적이지 못한 사람들때문에 빗나가는것 같아 안타깝다.
젊은 친구가 운영하는 신발가게에서 Lunar것 내것, 두켤레의 고무신을 구입했다. 무척값이 싸지만, 여기 현지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비싸다고도 할수 있겠다. Lunar것은 검정색, 내것은 Brown색이다. 신어보니 편하고 여름에 시골집에서 신고 다니면 안성마춤일것 같다. 한국식 고무신모양과는 완전히 다르다. 고무생산국이기도 해서 고무의 품질이 더 좋을것이란 기대감을 갖고, 구입했는데 이번 여행의 증거로 구입하는 유일한 선물이될것이다.
이곳에서는 쌀농사를 많이 한단다. 보통 이모작을 한다고 하는데, 요즘은 그것 마져도 줄어들어 일부농부들이 일년에 한번 어렵게 경작한다고 설명이다. 젊은 인력난 때문인것으로 이해된다.
여기서도 벼이삭이 나오면 제일 좋아하는 Wild Life는 참새떼들인것 같다. 논바닥에 새를 쫓는 깃발들이 많이 펄럭이고 있어, 어렸을적 방학때는 새막에서 하루종일 새들과 싸우고, 그리고 해가 서산에 넘어가면 집으로 가곤했었던 아련한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여행은 보는것도 좋지만 잃어 버리고 있었던 추억들을 하나씩 Match시키는 마술사 역활을 하기도 한다.
Honey Bee Farm을 찾았다. 이렇게 외따로 있는 밀림속 마을에서 큰 기대를 할수 있겠는가? 이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보는, 그래서 내가 살고있는 삶의 조건에 대해서 더 감사해 할 이유를 똑똑히 분별할수 있다는데 의미를 많이 두어야 한다. 동네로 들어가는 입구에 페물이 된 공(한국식 농악기구인 "징")을 이용하여 동네 입구에 설치해 놓은 훌륭한 표지판이다.
이게 농장의 심장부라 할수 있는데, 동네의 아낙네가 벌통에서 벌들이 잔뜩 붙어있는 한개의 판을 꺼내서 우리부부에게 보여주고 직접 만져 보게도 했다. 벌들이 손이나 몸에 앉아도 무시하고 반응을 하지 않으면 절대로 Sting하지 않는다는, 그래서 안심하라는 주문도 잊지 않았다. Lunar가 나를 걱정했다. 몇년전 Brighton에서 벌의 공격을 받아 병원 Emergency로 입원한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혹시 몸이나 얼굴에 향수를 사용한적이 있느냐고 물었는데 벌들을 화나게 할수 있는 물질이기 때문이란다. 땀을 하루종일 흘려야 하는 처지인데 향수를 뿌릴이유가 있겠는가? 벌들이 손등에 때로는 얼굴에 앉을때는 불편했으나, 그런데로 참았다. 무사히 공격을 피했다는 증거다.
각벌통에는 주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이동네에는 약 30 여명의 벌통 주인이 있단다. 벌통은 1에이커당 약 50통이 있다고 했다. 일벌들의 색갈이 토론토에서 여름철이면 외곽으로 운전삼아 나가서 봤던 일벌들보다 더 짙어 보였는데..... 종류가 달라서 일까? 알길이 없고, 물어본들 동문서답일테고..... Yus에게 물어도 대답은 같은 것이고..... 벌통의 모양도 빈약하기 짝이 없다. 이곳 주민들의 고달픈 삶의 한장면을 본 셈이다.
벌통이 있는 그아래쪽에는 판매장이 있었다. 역시 꿀은 이곳에서도 값이 비쌌다. 오히려 토론토보다 더 비싼것으로 계산이 된다. 생각같아서는 한병이라도 구입했어야 했는데.... 앞으로도 여행길이 많이 남아 짐을 생각지 않을수 없어, 그냥 지나쳤는데 괜히 조금은 미안해진다.
이지역은 Kota Kinabali섬에서도 맨북쪽 끝단에 위치해 있는 외딴 마을이라서, 가끔식 주로 영국에서 탐방온 여행객들을 마주치기는 했으나, 아시아계 여행객들은 우리 부부만을 제외하고는 없다는 특이한 점을 발견한 것이다. 이곳주민들도 나와 생각이 같다고 했다. 그들이 하는말을 빌리면, 중국, 한국관광객들은 쇼핑, 먹는것 좋아해서, Kota Kinabali에서만 구경하고 되돌아 간다는, 뭔가 뼈가 있는 말을 한마디 해준다. Yus가 캐나다에서 온 관광객이라고 한마디 곁들여 준다.
이곳은 Gong을 제작하는 조그만 마을입구인데 간판을 보면 기대가 큰데.... Yus가 안내한 곳이다.
크고 작은 물건들로 일종의 타악기이고, 한국의 전통농악놀이에서 꼭 있어야 하는 "징"을 연상하면 쉽게 알수있다. 다만 다른점은 징의 중앙부분에 혹처럼 불룩튀어나온 점이다.
Lunar도 옛기억이 나는가 보다. 한번 두둘겨 보면서 소리의 웅장하면서도 은은한 소리결에 옛추억이 되살아 난다.
이곳에서는 "놋쇠" 보다는 "아연"이 주재료로 사용된다고 한다. 아직 제작중에 있는, 미완성의 징들도 봤다. 조각을 만들어 용접으로 서로 이어 부치는 과정을 Yus가 설명해준다.
중앙에 배꼽처럼 툭 튀어 나오게 하는 작업은 가운데가 움푹패인 패턴을 유지하고 있는 Anvil 위에 올려놓고 Hammer로 조심조심 두둘겨서 모양을 만드는 것이었다. Yus의 머리패턴을 유심히 봤더니, 요즘 젊은이들세계에서는 동,서양 똑같이 유행하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아들 Lyon도 그런 머리 모양인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들 서양인 부부는 캐나다의 퀘백주 주민인데, 남자가 Helicopter Pilot으로 이곳의 유전 지역에서 인력들을 이송해주는 일을 하고 있다고 소개하면서, 우리가 토론토에서 온것에 더 반가워 했다. 내가 사용하는 Tiley모자를 보고 금새 얘기가 이어진 것이다. 이들 부부도 우리처럼 이곳에 처음 구경왔다고 한다.
이거리가 이곳 공을 만드는 동네의 Down town인 셈이다. 대규모라는 개념은 없고, 가정집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소상인들이, 그것도 아낙네들이 장사를 주고 하고, 남자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나의 판단으로는 어는 한곳에서 제작해와 각가게에 나누어 팔게하고, 직접 이곳에서 제작하는것 처럼 어느가게에서는 재료로 사용하는 철판과 Moulding도 갖추고는 있었지만......
Yus가 우리부부를 데리고 간곳은 "공"만드는 공장에서 조금 이동하여, Longhouse가 있는 동네로 이동하여, 미리 주문한 점심을 먹기위해 도착한 간이 식당이다. 이곳이 이지역에서는 유일한 손님접대 식당이라고 한다. 바람이 불면 날아갈듯한 쌀밥에 Side dish는 5가지인데, 닭고기만을 빼고는 전부 땅에서 자란것들이었다. 맛이 우리입에 맞아서 먹기에는 불편이 없었다. Bamboo shoots로 생채처럼 잘게 갈라서 만든것, 고사리, 고추잎같은것 등등.... 채식이라서 더 많이 먹어도 몸의 체중과는 크게 영향이 미치지 않을것 같아 마음이 가볍다. 미니 바나나도 식단에 자리하고 있다.
식사후에는 Yus의 안내로 이곳 주민들이 민속 Dancing Performance를 한다고 해서 Longhouse안으로 안내됐다. 어린 십대 소녀들 몇명이 준비하고 있다가 우리 부부와 다른 탐방객 몇명이 들어오자 곧 시작했다. 이들이 입은 전통의상이 색갈은 우중충한데, 정성들여 무늬를 배색한 천이 내가 보기에는 두꺼워 보였다.
Longhouse는 오늘 처음 보는게 아니다. 몇년전 월남, 캠보디아 여행시에도 이구조와 똑같은 집들이 집단으로 있는곳을 방문한 기억이 있어, 더 정겨워지는것을 느낀다.
옆에서는 동네의 남자들이 아까 우리가 견학한 "공"과 다른 타악기를 이용하여 장단을 마추는 일종의 Band역활을 하고 있다.
https://youtu.be/730XmqUy1TM
한명의 남자와 나머지는, 이제 겨우 3살쯤 된 꼬마 숙녀까지 합하여 4명이다. 이상하게도 이들은 웃는 표정이 아니고 그져 무심한 표정이다. 웃는 얼굴이었으면 더 맛이 있었을텐데....
이들의 Dancing이 끝나자 자칭 MC, Yus가 내이름과 Lunar 이름을 거론하면서 나와서 같이 춤을 추라고 명령(?)한다. 이런곳에서 같이 어울린다는것.... 오래 기억될것 같다. 평소에 춤에 대해서는 우리 부부는 "백치아다다"인지라 좀 미안함감도 있었지만, 그들이 시키는데로 몸을 돌리고 흔들고, 영국에서 혼자 탐방온 Nancy도 뒷모습이 보인다. 이들과 함께 어울릴수 있다는 그배려에 고마울 따름이었고, 그래서 뚱뚱한 몸을 내앞에 있는 Dancer를 따라 더 흔들어 댔다.
마음은 Performer와 같은데 몸놀림은 내가 동영상을 봐도, 챙피한 수준으로 전락한 나자신의 둔한 제스처에 고개를 들지 못하겠다.
이들과 어울려 흔들면서, 새삼 내자신이 어느새 이렇게 변해 버렸나?라는 증거를 내눈으로 확인 하는셈이 되여, 말과 행동을 더 조심해야만 될것 같다는 깊은 교훈을 터득하기도 했다.
옛날에는 Longhouse에서 보통 3대, 많게는 5대가 살기도 다는데, 지금은 동네 회관정도로 사용되고 있는것 같았다. Longhouse입구에 매달려 있는 로고인데 Longhouse의 고유이름인것같다. 아시아인들의 삶의 구조는 거슬러 올라갈수록 거의 집단생활을 하는 비슷한 Pattern이었던것 같다.
기념비석의 앞에서 Lunar가 서있는 모습이 조금은 왜소해 보인다. 그녀역시 맨 끝지점에 와서 다녀간 증거를 만들줄은, 불과 몇분전까지도 상상을 못했었다. 희소가치가 있는 여행을 이번에 인생의 역사책에 기록하고 있는 셈이다.
이곳은 Borneo Island맨 끝자락에 있는 Sampang Mangazo라는 곳으로, 지도상에서 이섬의 맨끝자락에 위치한 곳이라는 특별한 의미가 새겨져 있는 곳이다. 2002년도에 약 300킬로 떨어져 있는 Papar 에서 부터 기마병들이 4일간 달려와, 의식을 올리고 당시 문화부장관, 관광장관등이 참여하여 표적물을 세우고, 맨끝단임을 알리는 선포식을 했다는것이다. 여기서 북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필리핀이 있다는 설명도 Yus는 곁들여 준다.
우리 부부는 오늘 Borneo섬의 맨 끝자락에서 발자국을 남긴셈이다. 조국 대한민국의 경상북도 오른쪽 맨끝자락에 토끼 꼬리같은 지역을 방문했을때의 기억도 Overlap된다. 규모있게 잘 조성되여 있고 지구본을 연상케하는 조형물, 그중앙에 Borneo섬을 새겨놓은, 그뜻을 이해할것 같다.
탐방을 마치고 되돌아 오는 길에 이렇게 깨끗하고 아름다운 백사장이 아마도 2킬로는 되게 펼쳐저 있는데, 휴양객은 거의 없다. 이곳이 외딴곳이고, 아직 Accomodation이 준비가 안돼서 인지는 몰라도, Business Mind를 갖인 젊은이라면 한번, 먼장래를 내다 보면서, Leisure 산업에 투자해볼만한 곳이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스쳐간다.
이지역에서는 Palm Oil이 주생산품이라고 한다. 그래서 인지 Palm Tree들이 사방을 봐도 밀림을 이루고 있었다. 열매를 수확하면, 다시 동쪽의 Sandakan지역으로 보내서 Palm Oil을 생산하게 된다는 설명이었다.
차속에서 바라본, 멀리 동쪽의 산봉우리의 웅장함과 그위의 구름을 보면서, Hymalaya산맥을 탐방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자연의 변화무쌍함에, 다시 고개를 숙일수 밖에 없었다. 이우주를 창조한 윗분의 뜻은 영원히 Reveal되지는 않을 것이다. 감사.
오늘길에는 일요일인 탓도 있었지만, Traffic Jam에 걸려 무려 4시간 이상을 길에서 동동 발을 굴려야 했다. 호텔에 도착했을때는 벌써 사방이 어두워 지고 있었다. 식후 금강산이라고 했던가. 저녁을 먹어야 했기에 호텔바로 앞에, 어젯밤에도 갔었던 재래 Market으로 갔다. 모든 해산물은 신선하기가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다. 상인들이 우리 부부를 보면서, 한국말로 "김치"을 연발한다. 그만큼 이곳 Kota Kinabalu 까지는 한국관광객들이 많이 왔고, 또 올것이라는 증거이리라. 더 고마워 할점은, 한국의 연속극과 K-Pop소녀들의 활동을 이곳 Local주민들이 TV를 통해서 심취하고 열광적으로 팬이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다시 아쉬운점이 머리를 스친다. 정치꾼들만 좀 정신 차리면 손색이 없는 일등국가되는것은 자연순리일것이라는 확신이 굳어지는데....
오늘은 따근한 쌀국수에 새우가 들어있는 토종음식을 주문했다. 따뜻한 국물이 일품이다. 이곳 상인들은 주문한 음식을 차려주고 돈받을 생각을 하지 않는건지? 풍습인지는 잘 몰라도, 다먹고 나서도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한가지 좋은점은 외부인이라고 해서 바가지요금 그런것은 걱정안해도 좋을것 같았다. 식단에 가격표가 큼지막하게 새겨져 있기 때문이었다. mango Juice도 감칠맛나게 한다. Tim Horton's에서 Extra Large 커피를 오더하면 나오는것과 같은 사이즈인,커다란 컵에 만들어 주는데, 값은 US 50센트이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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