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북한이 미국영토, 괌(the U.S. territory of Guam)에 대륙간 탄도 미사일을 발사 한다고 할때, 그명령은 바로 김정은 자신일것이다.
북한의 미사일 운영자들은 다음주까지 모든 발사 준비를 마치고 나면, 33세의 김정은, 망나니의 다음 명령을 기다릴것으로 보인다.
정말로 김정은이 발사 명령을 내리면, 그때는 "모든 전쟁준비를 완료하고(locked and loaded) 있는 트럼프 대통령으로 부터 보복성 공격을 초청하는 꼴이 되고 말것이다.
이제는 미사일 발사의 기술문제가 아니다. 북한은 이미 미사일 개발 프로그람에서 굉장히 기술이 앞서 있음을 증명했고, 이게 확실하다면 미국 본토를 공격할수 있다는 뜻이다. 즉 전략상의 문제일 뿐이다.
김정은과 그Regime은 매후 호전적인 위협을 잘하는 역사를 갖고 있으며, 결론적으로 적만 더 만들뿐이다. 이러한 행동은 여러 정황들의 하나일 뿐이거나 그렇치 않을수도 있을 것이다. 북한은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날을 의미있게 보내길 좋아한다. 며칠 사이에 2개의 중요한 날을 맞이하게 된다.
화요일 북한은 일본 식민지 생활이 끝났음을 기념하는 "해방의날" 경축행사를 하게된다.그것은 바로 미국영토 "괌"에 미사일을 날린다는 뜻일수도 있다. 8월21일에는 한국과 미국이 합동으로, 북한을 항상 신경쓰게하는, 연례 군사훈련을 시작하게 된다.
문제는 전세계가 김정은의 진짜 모습을 거의 알지 못하고 있기에 정말로 김정은이 지금처럼 복잡하게 얽혀있는 현위치에서 어떤 행동을 취하게될지에 대한 그의 의중을 파악하는데 오리무중이라는 점이다.
김정일의 막내아들, 김정은
1984년도에 김정일의 - 약 10년후에 북한의 통치자가 된 - 막내아들로 김정은이가 태어났으며, 어머니는 일본에서 태어나 댄서로 활동했던, 고영희로 알려져 있다. 동양의 관습에서는 첫째 아들이 항상 다음 세대의 지도자로 거의 확정돼기 때문에 셋째 아들인 김정은이는 리더가 될 자격에서 제외됐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생모의 티끌만한 야망이 결국 김정은이를 다음 후계자로 만들게 된다. 그가 8세되던해에 그는 다음 후계자로 책봉이 됐었다고, "고영석"씨가 작년에 와싱턴 포스트지와의 회견에서 밝힌바있다 ( Ko Yong Suk, told The Washington Post ). 그는 어려서 부터 장군들이 입는 정복에 별을 달고 다녔으며, 실제로 군장성들도 그꼬마 앞에서 항상 정중히 인사를 했었다고 한다.
"꼬마 김정은이가 다른 아이들 처럼 정상적으로 성장하기에는 거의 불가능 했었다고 봐야 한다. 왜냐면 그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라고 스위스에서 그가 유학하고 있을때 그의 보호자로 그들 돌보았다가, 1998년도에 미국으로 망명했던, 고영석씨가 설명한다.
School in Bern 스위스의 수도 "베른)에서 학교생활.
김정은이가 계속해서 집권하기를 원하고 있고, 그래서 그는 핵무기 개발에 그렇게 몰두 했었다는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 Kim Jong Un wants to stay in power — and that is an argument against nuclear war ]
그가 12세때, 그는 스위스의 수도, 베른에서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으며, 그곳에서 그의 외숙모와 외삼춘 그리고 그의 형 김종철과 함께 평범한 아파트에서 유학생활을 시작 했었다.
김정은의 생모는 정기적으로 아들을 방문했으며, 그녀의 곁에는 항상 비밀 요원이 꼭 붙어 다녔었다고, 스위스 신문, Le Matin Dimanche지는 지난달에 보도한바 있다. 그러나 북한정부는 김정은과 김종철에 대한 정탐을 하지 못하도록 엄격한 지시를 내렸었다고 한다. 김종철은 키가크고 몸집이 가늘은 편이었으며, 김정은이는 반대로 키는 작고 뚱뚱한 편이었었다" 고 한다.
그지시 때문에 스위스 경호원들은, 후에 북한의 최고 통치자가 된, 그꼬마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었던 것이다.
꼬마로서의 김정은에 대해 전세계가 알고있는 내용은, 1980년대에 북한으로 건너가 김정일의 전속요리사 생활을 했던, 특이한 일본인으로 수시(Sushi)요리사였던 Kenji Fujimoto로 부터 들을수 있었다.
와싱턴 포스트( interviews with The Post )와의 인터뷰에서 Fujimoto씨는 당시 어린애 였던 김정은이는 요리사였던 Fujimoto씨와 인사할때 악수하는것을 거절했으며, 또한 동양적인 예절을 지키지도 않았었다고 설명했다.
Fujimoto씨의 설명에 의하면 10였을때의 꼬마 김정은이는 "꼬마장군"으로 부르는 사람들에 신경질을 자주 부렸으며, 대신에 "장군동지"로 불려지기를 항상 고집했었다고 한다.
“This is an unforgettable episode that showed the aggressive side of his personality,” Fujimoto wrote in one of his books.
The other tales from Kim’s teenage years reveal a boy who was spoiled — he had the latest PlayStations and Air Jordan shoes — and competitive, his former classmates have said.
”당시 김정은이는 유일하게 농구를 하는게 전부이다시피 했으며, 그는 항상 그의 게임기 PlayStation에서 농구 게임만 했었다"라고 그의 학교 동급생이었던 Joao Micaelo씨는 당시를 회상한다.
그러나 2001년도에 북한으로 돌아간 그는 그러한 습관에서 완전히 탈피한다. 김정은이는 그후 평양에 있는 김일성 군사전문대학에 다녔으며, 그때부터 그는 후계자가 되기위한 역활을 수행하기 시작했었다고 한다.
북한의 김정은이는 모든것을 마음데로 하는데, 그행동중에는 망나니짖을 하는것도 포함되여있다.[ North Korea’s leader is a lot of things — but irrational is not one of them ]
2009년 1월8일, 즉 김정은의 25회 생일날, 김정일은 그의 측근 참모들앞에서 그의 후계자로 그의 막내아들을 선택했다고 발표 했다. 그러나 후계자로 지목된 그는 2010년 10월10일까지 대중앞에 그모습을 나타내지 않다가, 김일성 광장이 내려다 보이는 발코니에서, 노동당의 축하 행진을 사열하는 그의 아버지바로 옆에 서서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그는 그의 아버지의 건강이 나빠지는것과 동시에 급속도로 "노동당"과 군대내에서 서열이 올라가면서 조직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2011년 말에 그의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급서하자, "위대한 후계자"는 세습을 물려받을 준비가 이미 다 돼 있었다.
그로부터 그는 서방에서 교육을 받은 그가 개혁을 하기를 바라는 기대를 완전히 버리고, 그의 할아버지, 아버지가 그랬드시 악랄하기짝이 없는 조직위에서 철권을 휘두르면서 광기를 부려왔다.
그는 그의 고모부 장성택과 최소한 150여명의 고위 관리들을 처형 했으며, 남한 국정원의 통계에 따르면, 그외 수많은 사람들이 숙청당했다고 한다.
이복형의 죽음이 뜻하는것
김정은이는 또한 자기 아버지의 큰 아들로 항상 경쟁관계에 있던 형 김정남을 금년초에 말레이시아 국제 공항에서 화학무기로 그의 얼굴에 쏘아 질식하게 한후 죽게 만든 비난을 받기도 했었다.
그는 또한 북한 전체를 더 꽉조이면서 통치하고 있으며, 탈북자들을 더 심하게 찾아 엄벌하고 있으며, 외부 세계로 부터 들어오는 모든 소식과 정보를 완전히 차단 할려는 새로운 방법을 찾기에 혈안이 되여 있다.
And, most alarmingly, Kim Jong Un has made observable progress on his vow to acquire an 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 capable of reaching the United States. In his Jan. 1 New Year’s address, Kim said his rocket scientists were in the final stages of preparations for a test.
Then, on July 4 — a date that was no coincidence — North Korea fired an ICBM with the technical capability to make good on that threat. At the end of the month, it fired another one.
At a huge celebration banquet in Pyongyang last month, the comrade general said the launches were “a remarkable leaping forward in the great era of Kim Jong Un and its inexhaustible potentiality and the invincible stamina of heroic Korea.”
But beyond the childhood accounts and the reports about Kim in his regime propaganda, very little is known about him as a person or as a leader.
우리는 가라오케를 즐겨 불렀다.
그는 2010년, 후계자로 지명된후 한번도 외국여행이나 외국사절들을 접견하지도 않고 있다. 오직 그가 만난 외국 사람은 미국인으로, 은퇴한 농구선수 Dennis Rodman과 그와 동행한 사람들 뿐이다.
"나는 사람들이 김정은이를 만나고 난후 그가 친근한 사나이라고 보지 않는것으로 봤다."라고, 지난 6월에 다섯번째( his fifth trip)평양 여행을 마친후 ABC와의 인터뷰에서 밝히고, 또한 이여행에서 김정은이를 만나지도 못했었다고 아쉬워 했었다.
"만약에 귀하가 그와 대화를 한다면, 김정은이의 또 다른면을 보게 된다. 우리는 가라오케를 부르며 이를 즐기고, 승마를 하고, 그외 하고 싶은것을 다 했다"라고, 김정은이가 좋아했던 농구팀,Chicago Bulls의 선수로 활동하다 은퇴한 그는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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