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May 01, 2017

한국탐방,4월13일, 진안 마이산, 이제는 60대중반의 막내 동생과 함께 탐방.

마이산은 전주에 있는, 지금은 60대 중반을 훌쩍 넘어선 막내 동생과, 한국을 방문할때면 같이 드라이빙 삼아 찾았던 곳이다.

은퇴한 막내는, 지금은 시간이 있을때면, 전국 또는 세계여러 명승지를 찾아서, 카메라에 담아 그아름다움과 설명을 SNS에 많이 발표하는, 사진작가로 여가생활을 즐기는, 나에게는 아직도 코흘리개였을적의 기억을 더 떠올리게 하는 사랑스러운 막내이고, 애착이 많이 가는 아버지 자손중의 하나이다.
막 꽃피기시작하는 벗꽃( Cherry Blossom) 턴넬을 지나면서, 고향을 끝까지 지키고 있는 막내가 어쩌면 진짜 나라사랑하는, 조용한 지킴이라는점을 새삼 감사하게 느끼게 한다.

지금은 은퇴한 의젖한 동생으로, 고향의 문화전수를 위해 봉사활동하고 있지만, 어렸을 적에는 나를 무척이나 힘들게 한적도 많았었다.  시골,당시 전깃불도 없는, 시내뻐스도 없는, 읍에서 닷새만에 열리는 재래시장에 갈려면, 하루를 품팔아야 할정도로, 동네 하늘위로 어쩌다 비행기가 날아가면, 신기해서 사라질때까지 처다보곤했던 그시절에, 어쩌다 검정고무신 한켤레를 지금은 돌아가신 어머님이 시장갖다 사오시면, 그렇게 좋아서 품에 안고 자기도 했었던 기억이 떠오르게 하는 그시절 얘기이지만,  막내동생 때문에 나는 항상 아버님한테 꾸중을 들어야만 했었던, 그래서 어떻게 하든, 막내를 떼어놓고, 동네 코흘리게 친구들과 어울려 들로 뒷동산으로 놀러 다닐 궁리를 많이 했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코흘리개 동네 친구들과 그렇게 뛰어다니다 보면, 우선 신고있는 고무신이 쉽게 닳기 때문에, 아버님께 꾸중을 들을 첫번째 해서는 안될짖이었었다. 그런 못된 형의 행동을, 사실구분이 잘안되는 어린 막내가 집에 와서는 아버지께 다 이실직고를 했기 때문이었다.  둘째는 들에서 산에서 뛰어놀다보면, 이른 봄철이면 남의 밭에 들어가서 보리서리를 해서 모닥불 피워놓고 구워 먹었던 일이 자주 있었기에, 그또한 이실직고 당하면, 아버지로 부터 막내 데리고 다니면서 못된짖만 보여주었다고 또 꾸중과 때로는 장단지에 회초리까지 대셨던 기억이 지금도 있다.
그후로 자라면서, 학교를 다니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서로 각자의 인생길이 이미정해진(?)데로 갈줄은 상상도 못하면서, 삶을 살다가, 나는 어쩌다 수만리 떨어진, 태평양건너, 낯선 북미땅에서 살아온 세월이, 고국에 지냈던 세월보다 훨씬 긴 삶을 살아가고 있으면서, 오늘 처럼 어쩌다 고국방문시, 때로는 캐나다 방문시 잠깐씩 상봉하는 그런 인생 살이가 됐음을 회고해 보면, 참으로 시간은 빛의 속도보다 더 빨리 흘러갔음을 안타까워 하지 않을수 없다.
그래서, 지금 이렇게 못난 형을 구경시켜주겠다고 마이산을 향해서 달리고 있는 동생의 얼굴에도 주름살이 자리하고 있지만, 내눈에는 코흘리개, 자의로 사물의 가치를 구별하지 못했던 그때의 철부지 막내로만 보였던 그때를 회상하고 있다가, 고개를 돌려 보면, 같이 늙어가는 막내의 모습에 나의 눈에 비치면 괜히 마음이 울적해지기도 했다.
나에게는 10형제 자매가 있었다. 나는 끝에서 3번째 였다. 그렇게 많은 새끼들을 키우시느라 고생하셨던, 나의 부모님을 비롯하여, 당대를 살으셨던 우리세대의 부모님들의 노고를 이제야 조금씩 이해할것 같다.
석가탄신일이 며칠 남지 않은 때여서, 마이산 중턱에 있는 사찰로 향하는 길에는 많은 연등이매달려 있어 어쩐지 많은 희망을 보는 사람들에게 안겨주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 인간은 역시 약한 존재중의 하나임을 보여주는 증표를, 바위틈속에 누군가의 손으로 만들어 놓은, 염원과 소원을 비는 조그만 상징들을 보면서, 어려움에 처할때, 좋은일로 환희속에 젖어 있을때, 자연적으로 찾는 "감사의 표시와, 왜 이런 시련을 받아야 하는가"를 토로하는 대상중의 하나엿을 것으로 느낄수 있다.

불심을 섬기는 모든이들의 바라는 소원이 이번 석가탄일을 기해서 시원하게 이루어지기를 마음속에 기원해 주었다.  그래서 그분들의 삶에 더 많은 웃음이 이어진다면....
정성들여 쌓아올린 돌탑은 전에 왔을때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고, 마치 우리 형제의 방문을 반기는듯한 반가운 모습으로 보였다.


불교의 성지라고도 할수 있는 "Tibet" 의 수도 Lhasa를 방문했을때 Potala Temple에서 탐방했던 불상들과 우리 조국에서의 불상은 그크기와 자세가 많이 다르다는것을, 그후로 부터는 참으로 많이 느낀다. 버마를 방문했을때도 느꼈었고.... 불교의 발상지로 부터 전파되면서 나라마다 조금씩 변형되였다는것을 이미 보고,들어 알고는 있지만....

http://lifemeansgo.blogspot.ca/search?q=potala+temple

http://lifemeansgo.blogspot.ca/search?q=lumbini


지방자치단체행정이 자리를 잡아 가면서, 각지역의 기관장들은 자기 고장의 장점을 살려, 관광자원으로 활성화 시키는데 많은 노력을 하고있다는 흔적을 가는곳 마다 느끼는데, 여기도 예외는 아닌것을 보았다.  오래전에 왔을때와는 많이 다르게 주변이 잘정돈돼 있었다.
짧은 시간이 더 짧게 흘러가, 막내를 뒤로 하고 나는 내 다음 여정을 위해 막내와 아쉬운 작별을 해야만 했다.  오늘 헤여지면 언제 다시 만날수 있다는 확실한 일정은 없다.  다만 빠른 시일내에 다시 만나 혈육의 정을 만나기만 염원할 뿐이다.  다른 형제 자매분들에게는 여기서는 밝힐수 없는, 본의 아닌 결례를 하게되여 더 미안한 마음이 머리속을 떠나지 않았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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