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January 01, 2015

Day 27, Laos, Hotel Villa Ban Lakkham 아침,시내사찰탐방. (11월 24일, 월요일 오전 )

Luang Prabang is second largest city in Laos but a small town like. Population on this town is about 26,000 and whole population of Laos is about 7 million. And form of government is social democratic but actually controlled very strictly adopting communist style having divided into 13 regions.  Living standard of people here is very poor having nothing but agriculture as if this country is separated from global society like North Korea's hermit Kingdom.

아침에야 주위환경을 주시 할수 있었다.  호텔바로 길건너에 호텔에서 운영하는 식당이 있었다.  말이 식당이지, 노점상보다더 열악한 수준이다.  식당바로 언덕밑에는 Khan강이 흙탕물을 튀기면서 흐르고 있다.  경치는, 사진에서 보는데로라면 한량들의 시간보내기로는 최적의 장소가 될수 있을것 같지만..... 지금은 건기라고 하는데도 갈색의 물이 흐르고 그위에는 조그만 노젖는 배들이 떠있어 한가하게 보이지만, 그들은 낙시질, 아니면 그물질(net fishing)을 하여 생선을 잡고 있는 가난한 Laos인들이다.


이나라가 언제 발달되여 국민들이 Laos밖의 세상을 피부로 느끼면서 살아갈까?

시내 tour가 시작되여 Pie가 인솔하는데로 걷기시작한다.

Laos의 인구는 약 7백만이고, Luang Prabang시내자체의 인구는 약 26,000명정도라고 한다.
Luang Prabang Province의 전체 인구는 약 600,000정도이고 13개 지역으로 나뉘어 있는 공산사회주의 국가라고 한다.  49개의 소수민족이 모여 사는 곳이고, 그중에서 3개 부족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그들은 Lao, Camo 그리고 Hmong족이란다.

Hmong족은 원래 중국남부 국경지역에서 살아왔는데, 중국인들과의 마찰이 자주 일어나 결국 이곳 라오스의 산중으로 피신해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

Monks들이 길거리에서 자주 눈에 띈다.  아침 공양을 나선것이다.  Myanmar에서처럼, Monks들은 아침과 점심 두끼를 먹고 저녁은 아예 먹지 않는다고 한다. 하루 세끼를 먹으면 수양에 도움이 안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Monk가 되고 안되고는 전적으로 본인의 의사에 있고, 파계하는것도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고 자유롭다고 했다.  Tour Guide, Pie역시 3번씩이나 들락날락 했다고 설명한다.

1560년에 건립됐다고 하는 Xieng Thong Temple은  Laos의 대표적 사찰이라고 한다.  지붕의 건축 양식이 3단으로 되여 있어 독특해 보였고, 지붕의 끝단에 장식된  Dragon형상에 대해서 Guide는 잘 설명을 못했는데, 내생각으로는 살아 움직이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것으로 이해됐다.

이사찰은 최근에 Renovation 이 끝나고 일부는 아직도 하고 있었는데, Fund는 라오스주재 미국대사들이 모아서 Donation한것으로 보수를 했다고 설명문은 밝히고 있었다.  UNSCO에서 인류문화재산으로 지정됐다고 한다.  규모는 Myanmar 의 Pagoda들과는 비교가 안돼게 적었으나 곳곳에 비슷한 사찰들이 있는것으로 보아 이곳 사찰의 특성인것으로 보였다.

독특한것을 사찰건물의 외벽에는 거의다 Mural이 Mosaic으로 새겨져 있었는데, 그중에서 Tiger와 Cow family에 대한 얘기에서 엄마와 자식간의 희생정신을 대표하는 Legend로 후세까지 이어져 오고 있었다.  또한 연꽃조각이 군데 군데 세워져 있는점도 이곳만의 특이한 점같다.

14세기경부터 1827년까지 이어진 Lao Kingdom의 폐망은, French가 이지역을 점령하면서 문을 닫게됐고, 그후 라오스 내전에 미국이 개입하면서, 월남전 폐망과 함께 이곳에서 철수 하면서, 현재의 공산국가 체제의 정부가 라오스를 다스리고 있다고 했다.

매년 9월이면 호텔앞의 Khan River에서 Festival이 약 2일간 열리는데,  이곳 Xieng Thong Temple사찰에 Festival 때 사용되는 2대의 긴 Racing Boat가 진열되여 있었다.  약 40명이 한조가 되여 노를 젖는다고 한다.

거리는 Yangon과는 비교가 안돼게 한적했고, 거리 또한 깨끗했다. 차량이나 사람들의 왕래도 이례적으로 적었다.

한Block 윗쪽에 있는 Downtown 지역에서는 상가건물 또는 주택을 보수 하고져 할때는 UNESCO의 사전 승인이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 어쨋던 지금은 2층이상의 신축건물은 지을수 없다고 한다.  1995년까지는 높이에 대한 제한이 없었는데, UNESCO로 부터 지정된 다음부터는 이rule 적용된단다.

Lunar는 Museum으로, 나는 건너편에 있는 시내에서 최고봉인 시민공원으로 Pie와 함께 걸어 올랐다.  계단이 자그만치 359 Step 이라고 했다.  다리가 조금은 뻐근한 느낌이었지만, 정상에 올랐을때의 그느낌을 알기에 묵묵히 걸어 올랐다. 정상에는 역시 사찰이 자리하고 있었고,  Luang Prabang시내 전체를 한눈에 내려다 볼수 있어, 경관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멀리 Kan강 줄기한복판에 빨간 색갈의 철교는 French점령시에 그들이 만든 다리로 상판은 나무로 되여 있어 현재 차량의 통행이 통제돼고 오직 사람들만이 이용하고 있다고 전한다.
호텔로 부터 길건너 강언덕에 자리한 호텔 식당앞에는 맥주 sale poster가 주위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게 세워져 있다.


 Khan River는 여름철 우기에는 강의 수위가 높아 나무로 만든 다리가 떠내려 가거나, 아니면 철거를 했다가 수위가 줄어드는 건기가 되면 주민이 자력으로 다시 다리를 만들어 통행세를 징수 하고 있었는데, 외국인 관광객들과 Local People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Local People들은 거의 무료나 마찬가지였었다. 이강 건너편에 있는 Village로 가는 2개의 다리가 있는데 두곳 다 통행세를 눈을 부릅뜨고 징수하고 있었다.
 아침 식사는 의례히 부페일것으로 생각하고 시간이 되여 길건너 식당에 들렸는데, 아무것도 준비되여 있는게 없었다.  속으로 화가 치밀어 오를려고 했으나, 금새 내가 경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의 수준이 그런것을.....

식사는 3가지의 메뉴를 놓고 시켜서 먹으면 그만이다.  더먹고 싶으면 돈을 더 지불해야 한단다.  American style breakfast를 시키고, Lunar는 여기 전통음식을 시켰다.

날씨는 싸늘한데, 찬 망고쥬스를 먼저 한잔 건넨다.  써빙하는 젊은이들은 영어가 전연 통하지 않는다.  내식사는 크로산트 한개, 빵 한조각, 햄한조각, 베이컨 한조각 그리고 색이 바랜 치즈한조각 이게 전부였다.


 간혹 보이는 Tuk Tuk은 이곳 주민들의 택시역활을 한다. 동남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이 Scooter 또는 Motor cycle을 교통수단으로 이용하고 있었는데, 이곳 Luang Prabang도 서서히 그런 대열에 합류하고 있음을 볼수 있었다.  이들의 생활 여건에서, 그리고 도로 사정으로 자동차 보다 훨씬 저렴한 방법이 보편화 되고 있어다.


 태고의 모습 그대로 강언덕의 뚝은 우기에는 많이 휩쓸려 강 하구의 하상을 높이고 있다는 얘기도 듣기에 심상치 않았다.  정박해 놓은 목선에 접근하기위해 언덕을 계단으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우기에는 이 들이 물에 씻겨 내려가기 때문이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강가에는 호텔의 야외 식당이, 길건너 안쪽에는 호텔이 자리하고 있어 주로 Breakfast를 할때는 강을 내려다 보는 운치가 좋은 좌석에 앉아 아주 빈약한 식사를 하곤 했다.  이들에게는 호텔이라는 개념과, 투숙객에 대한 써비스라는 Concept이 전연 없는것 같다.



 관람객의 입장에서 보는 경관은 그만이다.  한가하게 떠 있는 목선에서는 낙씨를 하고 있고, 식탁에 앉아서 맥주를 마시고, 식사를 하고 그런면만을 생각해 본다면 지상의 천국이 여기인것 같지만, 깊숙히 그안으로 들어가 보면, 궁핍한 이곳 주민들의 생활에서 50-60년전의 고국의 보릿고개를 어렵게 보냈던 그시절을 회상하곤 했다.

Luang Prabang은 거리 어디를 가나, 매우 조용하다.  공업이나, 농업이나, 교통등등 모든면에서 규모가 너무나 적은 조그만 Town같은 Concept이다.
   Lunar가 식당에 Sidewalk에 진열해 놓은 메뉴판을 들여다 보지만,  상상이 안될 정도로 빈약하고 Service의 기본이 원천적으로 아직은 존재하지 않은, 답답한 현실이 마음을 무겁게 할뿐이었다.  그래도 주민들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항상 있다.  상대방과 비교대상이 무엇인지도, 또 어떻게 해야 좀 더 낳은 삶의 질을 찾을수 있는지에 대한 열망(?)은 존재하지 않는다ㅏ.


 이음식이  Breakfast의 전부다.  여기서 필요한 음식을 조금이라도 주문하면 Extra Charge한다.
돈을 더 지불하는게 문제가 아니고, 써비스의 개념이 존재치 않은점이 안타까웠다.


 이곳이 야외 식당의 주방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Cooking ware들도 없다.  아침식사 시간이 되여 갔었는데..... 이광경을 보면서 어처구니가 없었다.




 Water fountain이 Clay Pot을 통해 흘러 나오게 하는 운치는 매우 오래된 정감을 느끼게 했다.
무척 오래된것 같았다.  이끼가 많이 끼어있고, 주위여건으로 봐서 그렇게 생각해 봤다.
 Bamboo Bridge라고 하는데, 처음에는 누구나 마음데로 이다리를 이용하여 강을 건너는것으로 이해하고 Approach 했었는데, 입구의 쉼터에서 여인이 통행세를 징수하고 있었다.  그들의 Currency로 5,000 Kips다.  거의 60 Cents 다.  이곳 주민들의 생활여건에서는 엄청난 큰 액수다.
위에서 언급한것 처럼, 주민들이 건기가 되면 만들어서 편의를 주고 있는 다리이다.


 그런데 아침 식사후 무심코 Side Walk을 따라 이곳까지 왔기에 주머니에는 아무것도 없어, 되돌아와 서야 했다.  외상으로 하자고 할수도 없고.....


Khan River를 따라 길게 이어진,우리가 묵은 호텔 거리는 주로 관광객들을 위한 호텔, 식당들이 즐비한, 그러면서도 거리는 매우 한산한, 한폭의 그림같은 조용한 주위 환경이 마음을 푸근하게 해주었다.  대부분의 옆식당들도 우리가 묵은 호텔과 비슷하게 길건너 강뚝에 노천 식당이 낭만스럽게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더위나 잠깐 쉬기위해 들렸을때는, 맥주 한병 시켜서 휴식취하는게 제일 좋은 방법 같았다.  다른 음식 주문하면 낭패(?)를 볼수 있기 때문에.
Clay항아리를 이용한 분수는 이곳에서 처음보는 것으로 무척 여유롭게 보였다.  도로변의 다른 호텔 식당의 Side walk을 따라 한두개가 아니고 여러개가 물을 뿜어내고 있었는데,  이끼가 생존하고 있는것으로 보아 매우 오래전부터 이렇게 분수대로 사용됐었나 보다.


 기후가 항상 여름이기에 나무들에게는 최상의 조건으로 푸른숲을 이루고 있다.  Air Plants들이 싱싱하게 자라고 있었다.  Khan River를 따라 이어지는 길을 따라 이렇게 환경이 조성되여 한가하게 Trail Walk하는데는 최상의 코스였다.


 생활이 어렵게 이어지고 있는 상황과는 다르게 주택은 매우 깨끗하고 규모있게 건축되여 있다.  식민지 생활때 지어진 건물들이라서 정돈된, 시내의 도로변에는, 고풍의 맛이 물씬 풍긴다.
 이곳은 Khan River와 Mekong River가 합강하는 지점이다. Guide Pie가 모델이 되여 주어 순간을 포착했지만, 표정이 매우 수줍어 하는것 같기도하고, 우수에 젖어 있는것 같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예의는 지킬려는 자세가 여실히 보였다.
두강이 만나는 포구로 내려갈려는 길목에서 노점을 벌이고 있는 엄마와 어린 꼬마와 조우했다.  그의 옆에는 남편인듯한 사람이 밀림도를 이용, 긴풀을 제거하고 있고....괜히 미안한 마음이다.  뭐하나라도 사주는게 좋았을텐데,  선물구입은 처음부터 하지 않는게 여행에 도움이 된다는것을 잘 알고 있기에,  그녀와 눈 마주치는것도 피하



차량으로 이동하기 보다는 걸어서 산책하는 기분으로 Xeing Thong Temple에 들어섰다.  바로 어제까지 Myanmar에서 보았던 사찰들과는 비교가 안되게 규모가 조그맣고 화려한 색갈도 없다. 특이한 점은 지붕이 3단으로 용마루끝에는 살아서 움직이는 듯한 파충류의 모습이다.






이곳의 사찰 대웅전(?)에는 불도들의 모습이 많이 눈에 띄지 않는점도 오히려 신기하게 보인다.  모셔진 불상도 Myanmar에서 보아왔던 여러개가 아니고 마치 한국의 사찰에서 보는것 처럼 하나만 모셔져 있는게 같은 불교의 나라지만 방법이 다른것을 알수 있었다.


서구에서 관광온 불심이 깊은(?) 신도가 예의를 갖추는것이 조금은 어색해 보였다.


많은 Decoration이 Mosaic으로 이루어진점이 이곳 사찰의 특징인것 같다.  500 여년의 긴역사를 말해주듯이 외형이 많이 변색해 있다.






호랑이와 Cow Faimily에 대한 전설을  담겨진 Mosaic이 대웅전의 옆벽에 Mural로 잘 새겨져 있었고, 엄마소의 자기 희생으로 새끼들을 보호할수 있었던 점에 감화하여 호랑이는 이들을 해치지 않고 되돌려 보냈다는, 아름다운 전설을 그림에서 보여주고 있었다ㅏ.

농업국으로서, 농부들은 농사를 짖고, 수확하여 감사의 뜻을 전하는 Mural 이다.




사찰의 다른 건물입구에서는 기능공들이 금으로 도색된 문양들을  정성스럽게 가다듬고 있었고, 이들의 정성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몇달째 이러지고 있다고 설명해 준다.



Vietnam 여행시 메콩강가의 Village에서 보았던, 쌀을 원료로 해서 만든 독특한 빈대떡을 길거리에서 건조 시키고 있는 광경을 목격했다.


위에서 언급한 Festival 때 사용되는 긴 경기용 Boat가 진열되여 있다.  40 여명이 승선하여 노를 젖는다고 한다.
어린 Monk가 Senior Monk로 부터 부처님의 설법을 강의하고 있다.  마치 어렸을적에 많이 보았던 시골의 서당에서 학동들이 큰소리로 한자문을 배우면서 훈장님의 눈치를 보곤 했었던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학교건물이 보여 들어갔는데, 마침 초등학교 학생들이 수업을 받고 있었다.  여기서도 선생님은 여성이었다.  여자 선생님들이 강단을 차지하는 비율이 많아지는것은 세계적인 추세인것같다.
  






Guide Pie의 성의없는 태도에 이곳 사찰의 탐방은 겉모양만 사진으로 담았을뿐, 내용은 거의 없다.  여기서 Lunar는 Museum으로 탐방을 혼자 가기로 하고, 나는 Pie을 앞세워 산위에 있는 공원겸 사찰로 발길을 돌렸다.



이산봉우리는 Luang Prabang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정상에서 내려다 본 사찰의 전경이 무척 아름답다.  사찰에 대한 내용을 좀더 충실히 설명해주지 않은 Pie에 대한 신뢰가 마음으로 부터 멀어지기 시작함을 느꼈다.

멀리 아스라히 보이는 Khan River를 가로지르는 빨간색의 Bridge는 1956년도에 당시 이곳을 점령하고 있던 French에 의해 건설됐으며, 다리의 Frame은 Iron Beam이고,상판은 나무로 만들어져 지금은 차량의 통행이 금지돼고, 보행자와 Motor Cycle만이 이용돼고 있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찰은 Lotus Flowers들로 장식되여 있었는데, 이곳 라오인들은 Lotus에 대한 생각이 Buddha 를 대하는것 처럼 여기고 있다는 설명인데.....

French 가 이곳을 점령하여 통치 하고 있을때 사용됐던 대포(Cannon)이 전시되여 있다.
정상에서 조금 내려오면서 여러개의 Buddah Statue를 만났다.  설명이 없어 그내용은 잘 모르겠고, 무척 아쉽기만 하다.


부처님의 설법을 경청하고 있는 Monk들을 묘사한 것이라고 하는데, 이또한 설명이 흡족하지 않았다.
어린 수도승들이 의식을 표하고 있다.  이들의 의상도 Myanmar에서 본 것과는 다르다.
수천년 아니면 수만년된 화석이라고 하는데, Oyster와 큰 동물의 발화석으로 보였다.

부처님께서 생전에 이곳을 다녀가시면서 남긴 발자국이 모셔진 곳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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