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야 우리가 묶은 호텔이 Resort 형으로 휴양지를 겸한 호텔인것을 알았다. Check-in하면서 여직원의 설명이 내일 아침 즉 오늘 10시45분에 Boat Crusing이 호텔 바로 뒷편으로 흐르는 Thu Bon River에서 있다는 설명을 듣고, 막헤어지려고 했던 Guide를 불러 일정을 다시 협의하여, 오전중에 할려고 했던 My Son 탐방을 오후에 하기로 한것이다.
Resort Hotel이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하는 행사인데, 고객에 대한 일종의 Compliment인것 같다. 식사를 마치고 여유있게 쉴시간이 있어 우선 좋았다. 식사는 지금까지 거쳐온 호텔중에서가장 뒤떨어지는것을 느꼈지만, 그래도 다행인것은 음식에서 거부반응이 전연 없었다는 점이다
Thu Bon River역시 라오스에서 발원하여 Hoian을 지나 다시 인근의 바라로 흘러 들어가는, 이곳 주민들에게는 젖줄과 같은 고마운 강이라는것을 Cruise가 끝나고 알았다. 어쨋던 호텔측의 써비스에 감사 하다. 다만 흠이 Cruise하는동안 지나치는 강가주변에 대한 설명이 전연없이 내가 알아서 눈만족을 시키야 했다는 점이다.
호텔에서 보유한 Boat는 아니고 시간에 마추어 임대한 것, 낡은 통통배에는 약 10여명 정도가 동참했다. 유럽에서 온 사람, 우리처럼 동양인들, 뒤범벅이다. 이배에는 life vest가 의자 등걸이 하나씩 걸려 있어, 신경을 쓰고 있다는 쪽으로 이해가 됐다.
출항후에 내가 묶은 호텔은 시내 번화가에서 떨어져 있어 조용한 곳이라는것을 알았다. 강가를 따라 군데군데에는 유람선이 목격됐고 야자수 뒤로는 휴양지 또는 Cottage로 보이는 집들이 많이 보인다. 강물의 색갈은 이곳도 황토흙 빛이다.
이곳은 우리가 타고 있는 통통배 처럼 유람선, 아니면 고기잡이 배들을 만드는 가족규모의 배만드는 곳인것 같았다. 기계가 돌아가고 그옆에서는 낡은 선박에 보수와 Paint를 하는것으로 보아 미루어 짐작해 본것이다.
우리 눈에는 한가롭게 보이지만, 이사람은 낙씨로 고기를 잡아서 양식으로 하는것 같다. 내용을 모른다면, 태양빛을 가리기 위해 머리에 쓴 눈익은 삿갓에 한가롭게 낙싯대를 드리우는, 한량의 망중한쯤으로 보일수도 있을것 같았다. 많이 낚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시내와 강건너 마을을 연결하는 제법큰 Ferry같았다. 사람들도 많이 탔지만, 갑판에는 수많은 Scooter가 또한 있는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회항하여 반대편 기슭으로 달릴때는 선상에서 살림을 하는것으로 보이는 Boat도 보았다. 생활 여건은 최악일것 같다. 물위에 떠 있으니 습기는 달고 살테고, 또한 음식을 비롯한 모든것 즉 몸속에 넣고 배설하는것을 이곳에서 해결 하기에 위생과는 먼사람들일것 같았다.
이곳은 분위기가 북적대는것으로 보아 유람선이 모여 있는 곳으로 보였다. 눈을 조금만 옆으로 돌리면 쓰레기들이 흩어져 있는, 무관심을 보게된다.
한부부가 우리배와 빗겨 Cruise를 하고 있었다. 사공은 남편과 아내가 맡아 하고 있는것같다. 얼른 보아 남편사공의 얼굴에는 미소가 피어난다. 그분의 인상이 얼마전까지 고국의 연속극에서 팔삭둥이로 나왔던, 한명회역의 '정진' 같이 개구장이 인상이었다.
평생을 배에서 살아왔기에, 노젖는 모습이 무척 여유로워 보인다. 이여인도 나이가 들어 보이는데 강건너편의 수산시장(?)에 가는것 아닐까?라고 내맘데로 의미를 부쳐봤다.
시내에 인접해 있는 강가에는 뭔가 바삐 움직이고 활동성있어 보이고, 상가에는 상품들도 진열되여 있어 이곳 시내의 번화가의 한부분일것으로 짐작해 보았다. 보이는 선상가옥은 아까본것 보다 더 초라해 보인다.
여기는 수산시장으로 보인다. 강에서 잡아온 생선들을 이곳에서 사고 파는것으로 이해됐다. 생선을 내장을 손질하는 아낙의 손길이 무척 빠르다. 그러나 그내장이 바로 옆의 강으로 날아간다. Cruise는 약 45분간 진행됐다. 선장이 나보다 더 늙어 보였다. 급한데로 주머니에 손을 넣어 하선하면서 감사의 표시를 했다. 마음이 편하다.
오늘 저녁이 만월이라서 Full Moon Festival이 약 5분 거리에 있는 시내에서 있다고 한다. 시간이 있어, Lunar와 둘이서 그곳을 향해 산책겸 구경을 나왔다. 과연 길거리에는 커다란 Lantern이 많이 매달려 있었다.
상점에 진열된 물건들의 대부분이 Lantern을 비롯한 오늘밤 Festival에 필요한 물건들인것으로 보였다. 색갈이 찬란하다.
뒤에 보이는 집처럼 생긴 건축물은 다리(Bridge)이다, 우리 부부는 그다리를 건너와서 이제 다시 호텔쪽으로 방향을 잡아 걷는 중이다. 관광객들이 상당히 많아 보인다. 이곳에 한국관광객들이 많이 왔었나보다. 우리 부부를 보자, "물건값 싸요. 사세요"라고 낱설지 않은 한국말이 우리를 향해 날아오기도 했다.
호텔 Front의 한쪽 벽이 얇은 기와장으로 차곡차곡 쌓아놓은것을 보았다. 그런데로 운치가 있어 보였다. 그앞에는 투숙객들이 무료로 이용하게 설치해 놓은 Lap Top도 있다. 구색은 잘 맞지 않는것으로 느꼈다.
약속된 오후 한시가 되여 Guide가 왔다. 우선 만나자마자 안부부터 묻는다. 고객들의 건강에 무척 신경을 쓰는것을 여행 첫날부터 만나는 Guide들로 부터 느꼈었다. 그만큼 이곳은 덮고 습기가 많고, 서구에서 온 관광객들에게는 신경쓸 사항임에는 틀림없는것 같다.
정부의 정책에 따라 헐린집터라고 한다. 이길을 통해서 지나가는 관광객들에게 좀더 좋은 Scenic View를 제공하기위한 차원에서, 강가의 주택을 없애고, 주변을 조성하는 중이란다. Guide말로는 그들에게는 정부에서 보상을 해준다고 달리는 차속에서 설명해준다. 우린 지금 My Son(Beautiful Mountain)을 향해 달리고 있다.
스치는 차창으로 보이는 주변의 나무들은 종이제작과 땔감으로 주로 사용된다고 한다. 종이제조하는 업자들이 이곳 주민들과 계약을 미리 해서 나무를 모아두면 제작회사의 차가와서 공장으로 싣고 간단다. 땔감용은 그들이 자체적으로 수집해서 해결한다고 했다. 특이한 점은 이곳 사람들은 숯을 만들지 않고 직접 불을 때서 음식을 만든다고 한다. 애티오피아 여행때는 길거리에 보이는 물건들이 숯이었었던점과 뚜렷히 대조된다.
약 45분 달려 My Son 입구에 도착, Entry tickets 2장을 구입해 온다. 자기는 무료입장이기 때문이다. 조금 더 달리다 차가 섯다. 이번에는 마지막 입구초소에서 Ticket를 점검하는 절차다.
주차장에 주차하고 우린 Guide와 함께, 소위 말해서 '월남의 앙코르왓'을 보기위해 약 10분정도 걸어야 했다. 이상하게도 이곳을 걸을때 후덮지근함을 덜느꼈다. 일진이 좋아서 였을까?
Arena가 먼저 눈에 들어왔고, 우린 그곳을 향해 발길을 채촉했다. 이순간 노란 전통의상을 입은 여인이 머리에 조그만 그릇을 이고 걸어가는 모습을 봤다. 어떤 여인이 이산속에서 저런 화려한 의상을 입고 있단 말인가? 고개를 갸우뚱할수밖에 없었다.
연극무대같아 보였다. 우리보다 먼저온 몇명의 관광객들이 자리를 하고 있었고, 우리도 맨앞줄에 자리를 잡았다. 곧바로 이곳의 전통 춤과 노래가 시작됐다. 아마도 Cham Dynasty때의 춤과 노래를 관광객들에게 페허가된 '앙코르왓'을 탐방하기전에 맛보기로 공연해 주는것 같다.
4명의 젊고 아름다운 여성들이 Dance하는데, 입은 의상은 요즘 흔히 보는 월남여인들의 아오자이가 아니다. 머리에 쓴 수건도 전연 다르다.
Their performance was looked like representing the Cham culture that lasted over a thousand years from 4th century to 13th century.
두번째로는 3명의 Drummer들이 북을 치고, 앞에 있는 꽹가리 부는 친구가 Performance를 했다. 장단에 마추어 불어대는 퉁소같은 악기에서는 귀가 찢어질것 같은 고음이 흘러 나오는데, 신기하게도 그소리는 계속되고, 끊이는것을 보질 못했다. 분명히 호흡을 해야 하는데.....
더 흥미로운점은 불면서 앞부분을 떼어내고 불고, 다시 또 이번에는 중간 부분을 떼어내고, 마지막에는 겨우 담배한개의 길이정도만 갖고 불어대는데도 소리는 똑 같이 고음으로 끊김이 없었다. 내생각으로는 그는 분명히"쟁이"같았다.
이번에는 머리에 화려한 가면을 쓰고, 거의 나체에 가깝게 가릴곳만 가린 아름다운 젊은 여성3명이 출연하여 다리와 손을 비트는 Dance를 유연하게 한다. 피부색갈도 보기 드물게 하얗다.
화장을 해서인것만은 아닌것 같아 보였다. 이런 Performance들이 Cham문화의 일부를 대변하는것으로 이해했다.
공연이 끝나고 본격적인 Temple과 Monument 탐방에 나섰는데, 바로 Ruin입구에 안내 지도가 있었다. Guide가 열심히 설명을 해준다. 요약을 하면 이렇게 깊은 산속에 지도에서 보는것 처럼 많은 Temple, Monument가 있었지만, 오늘은 제일 가까운곳에 있는 페허를 보게 된다고 한다.
앙코르왓이라고 해서 Temple들이 Siem Rip에서 처럼 사암(Sand Stone)으로 건축됐을 것으로 상상했던 나의 생각과는 전연 다른 붉은색계통의 벽돌로 건축됐던것을 알았다. 몇개 안남아 있는 Temple, Monument들은 거의 쓰러지기 직전에 있는, 매우 안타까운 모습이었다.
벽돌을 쌓을때는 사이사이에 접착제 역활을 하는 시멘트 아니면 Glue를 넣는게 정설인데, Guide, Nyen의 설명에 의하면 그런한 접착제를 전연쓰지않고 쌓아 벽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사진에서 보는것 처럼 사이사이에 틈이 전연없이 마치 한덩이처럼 쌓아올린 그모습이 현재도 확연히 볼수 있는, 신기한 공법이라는 점이다.
여기에 보이는 부분은 원래의 벽이 무너져 기존의 벽을 보존하기위해 후에 사람들이 덮부쳐 쌓아놓은것이라고 한다. 확연히 차이가 난다.
1858년 불란서가 월남을 점령하면서, 그들에 의해 정글속에 수백년동안 파묻혀 있던 Temple, Monument를 발견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고, 고고학자들이 연구를 한결과 Cham Civilization이 4세기에서 13세기까지 번창했었다는 것도 알려지게 된것이다.
이사원은 캠보디아에 있는 앙코르왓보다 약 200여년 앞서 건축된것이라고 설명한다. 그이유로 이러한 사원을 건축하는 공법으로 처음에는 나무를 사용했고, 그다음에 벽돌, 그리고 맨나중에 사암(Sand Stone) 사용했던 비밀이 풀렸기 때문이란다. 나무로 사원을 건축했다는 내용에는 의문이 생겼으나 곧바로 풀렸다. 같은 Ruin지역에서 고고학자들이 Digging out하면서 숯과 비슷한 석탄같은 물질을 발굴했기 때문이란다.
그런 설명을 뒷받침이라도 하듯이, 이Temple입구에는 사암으로 된 두개의 기둥이 아직도 버티고 있었다. 그안에는 Altar 가 있었던 흔적의 Foundation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어제 박물관 탐사에서 보고 이해했던 Linga와 Yoni로 대별되는 모양이었기 때문이다. 모든게 음양의 이치를 연관 시켰음을 이제는 좀 느낄수 있을것 같다.
Inside Temple my guide, Nyen explained that foundation of altar was composed with Lingar and Yoni that express male and female of creatures. Unfortunately those symbols has been stolen by thieves who probably sold pawn broker or secretly taken away abroad where some collectors may possess it.
1895년 당시에 발견된 Monument는 70여채 였다고 한다. 다 부서지고 해서 지금은 겨우 20여개의 Monument 만 남아 있다. 여기서 Temple 과 Monument의 구별하는법을 간단히 요약해 본다. 외형으로 봤을때 사원의 벽에 들어가는 입구만 있고 창문이 없는 건축물은 Temple이고, 간혹 창문같은 것이 있었던 구멍이 있으면 Monument라고 한다.
Temple은 주로 종교적 의식을 행하는 공간으로 사용됐고, Monument는 Monk들의 생활공간이나 저장소로 사용됐었다고 한다.
고고학자들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이러한 사원을 건축하는데는 2가지 가설이 있다고 했다.
첫째는 찰흙을 이용하여만든 벽돌을 이용하여 사원들을 만들고 그옆과 위에 나무를 잔뜩 쌓아놓고 불을 질러 벽돌이 되게 했다는 Theary이다.
둘째로는 이렇게 외부에서 나무를 때서 벽돌이 된것으로는 벽돌이 열을 받아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지 못하고 비툴어 지거나 또 표면이 거칠어져서 건축물이 오래 버티지 못하기에 다시 전부 해체하여 하나하나의 벽돌표면을 문질러서 부드럽게 한후 다시 짜마추어 건축했기에 오늘날까지도 남아있는 Ruin에서는 본래의 모습을 볼수 있다는 Theary인데, 전문가들은 후자의 가설에 많이 동의 하고 있다고 한다.
Cham Civilization시대에는 문자가 없었던 것으로 이해 됐었으나, 고고학자들의 연구로 사진에서 보는것같이 사암기둥에 그들만의 문자가 새겨져 있어,엄연히 존재 했었다는 증거를 보여준것으로 해석한다. 글자 모양이 버마사람들이 사용하는 오늘날의 문자와 많이 닮은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나의 추측일뿐이다.
Cham시대의 사람들은 이렇게 깊은 산속에 사원을 짖게된 2가지 이유가 있었다고 한다.
첫째는 외부의 침략을 막기위해, 군사적 목적에서 접근이 어려운 깊은산속에 터를 잡았고,
둘째는 종교적인 면에서 였다고 하는데, 깊은 산속에 있는 산봉우리에서는 천상에 계시는 신과 더 가깝게 지낼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서 였다고 한다.
파괴된 Temple에는 지붕이 없어 임시로 남아있는 부분을 보호하기위해 지붕을 덮어 놓았다.
Monument안에는 당시에 Monks들이 사용했을 기구들이 일부 진열되여 있었다. 과연 도구로 사용할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이 머리에서는 떠나지 않는다.
월남전때 이곳에 베트콩들이 숨어서 싸움을 하면서, 총상의 흔적이 벽돌에 남아 있었다.
보통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시간은 오전중에 이루어 지는데, 이유는 주로 오후에는 비가 내리고, 더많이 더워지기 더워지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리 만치 더운것도 덜했고, 습기도 덜했다고 Guide 자신도 신기해 할 정도로, 오늘 오후 우리의 방문시간이 축복을 받았다고 해석까지 덧부쳐 준다. 아까 호텔에서 출발할때는 한참더운 때인 오후시간이라서 걱정 했었는데..... 그져 감사할 따름이다.
사원들이 있는 곳으로 부터 뒷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곳에는 사원의 모습을 본떠 만든 Replica들이 여러개 있었다. 이것들은 이태리 전문가들이 똑 같은 크기의 벽돌로 건축해 놓고 사이사이에는 Glue를 사용했다고 하는데, 과연 이벽돌이 얼마나 원형을 유지하면서 세월을 참아낼수 있을까를 보기위한 차원에서 라고 하는데, 그결과는 몇백년후가 될것이다.
지금 볼때는 매우 정교하게 건축되여 있는데, 이결과 보기위해서 수백년을 더 살수 있었으면 엉터리같은 망상을 순간 해보기도 했다. 비밀이 그때쯤에는 완전히 풀릴수 있을까?
캠보디아 사원에서도 보았지만, 당시의 종교는 힌두교가 왕성했었다는 것을 여기서도 느낄수 있었다. 힌두교의 번창이 한때는 동남아시아 일대를 석권했었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Lunar는 무엇을 머리속에 그리면서 멍청히 쳐다보고 있는 것일까? 옛사람들의 장인정신은 현재에서도 흉내를 못내는 정교한 솜씨인것으로 다시한번 눈으로 확인한 셈이다.
Lunar가 유심히 쳐다보고있는 잡풀들은, 옛사원이 있었던 Ruin을 휘감아 덮고 있는 터라고 한다. 현재 월남당국과 UNSCO가 합동으로 현존 사원의 보존과 개발을 계획하고 있다고 하니, 언젠가는 잡풀로 덮혀있는 이곳도 세상에 모습을 나타날 그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탐방을 마치고, Guide Nyen와 Lunar한 사원을 배경으로 추억을 만들었다. 이친구와 헤여지면 다시 만날 그날이 찾아올까?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다만 위에 계시는 분을 빼고는.
만월을 축제하는 대열에 참여하기위해 어두워지자 낯에 돌아 보았더 시내로 발길을 돌렸다. 많은 Lantern 들이 장식되여 있고, 불까지 켜져 있어 축제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Thu Bon강에 촛불이 켜진 종이배를 띄우면 만사 형통이 된다는 전설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하나씩 구입해서 강가에 띄운다. 어린아이들도 이틈새를 이용하여 종이배 팔기에 열심이다.
할머니도 종이배 팔기에 동참하고 있다. 관광객이 사게되면 그종이배에 촛불을 켜고, 들고 있는 기구의 Net안에 넣고 강물위에 띄우는 것이다.
어린 아이도 동참이고, 엄마는 그옆에서 감독(?)하고 있다. 얼마나 몇개나 팔게될까? 그런데 하늘은 구름으로 꽉 덮혀 있어 만월은 전연 보이지 않는다. 기후 관계로 만월보기가 쉽지 않은데서 매달 만월날에는 이렇게 Full Moon Festival이라는 축제를 기리는것으로 이해됐다.
오늘밤에 팔려나갈 Lantern 들이 즐비하게 가게 앞을 장식하고 있다. 우연히 시간이 맞아 이러한 진귀한 광경이 곁들인 축제를 덤으로 보게되는 행운을 우리 부부는 소유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축제의 이름을 빌어 물건을 팔려고 하는 상혼도 곁들여 있는것으로 이해했다.
강 건너편에 희미하게 펼쳐져 보이는 Lantern에서 나오는 불빛이 끝없이 이어진다. 평화스러워 보인다. 그래서 인지 이곳에서의 치안에는 신경쓸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안전하여 여행객들에게는 신경쓸 필요가 거의 없어도 된다고 한다.
상하의 나라임을 상징하는 도마뱀이 내 호텔방의 벽윗쪽에서 서성거리는 모습이다. 내가 어렸을적, 아직 10 세 전후였을때에 내가살던 시골의 뒷쪽에 흐르는 시냇물과 넓게 펼쳐져 있는 갈대풀밭위에는 이러한 도마뱀들이 많이 서식했었다. 그이후 가끔씩 중남미 여행할때 보곤 했었으나, 오늘밤 여기서 다시 만나다니...... 이것도 인연일까? 아니면 도마뱀쪽에서 봤을때는 불교에서 믿는 윤회가 나타나서 였을까?
Resort Hotel이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하는 행사인데, 고객에 대한 일종의 Compliment인것 같다. 식사를 마치고 여유있게 쉴시간이 있어 우선 좋았다. 식사는 지금까지 거쳐온 호텔중에서가장 뒤떨어지는것을 느꼈지만, 그래도 다행인것은 음식에서 거부반응이 전연 없었다는 점이다
Thu Bon River역시 라오스에서 발원하여 Hoian을 지나 다시 인근의 바라로 흘러 들어가는, 이곳 주민들에게는 젖줄과 같은 고마운 강이라는것을 Cruise가 끝나고 알았다. 어쨋던 호텔측의 써비스에 감사 하다. 다만 흠이 Cruise하는동안 지나치는 강가주변에 대한 설명이 전연없이 내가 알아서 눈만족을 시키야 했다는 점이다.
호텔에서 보유한 Boat는 아니고 시간에 마추어 임대한 것, 낡은 통통배에는 약 10여명 정도가 동참했다. 유럽에서 온 사람, 우리처럼 동양인들, 뒤범벅이다. 이배에는 life vest가 의자 등걸이 하나씩 걸려 있어, 신경을 쓰고 있다는 쪽으로 이해가 됐다.
출항후에 내가 묶은 호텔은 시내 번화가에서 떨어져 있어 조용한 곳이라는것을 알았다. 강가를 따라 군데군데에는 유람선이 목격됐고 야자수 뒤로는 휴양지 또는 Cottage로 보이는 집들이 많이 보인다. 강물의 색갈은 이곳도 황토흙 빛이다.
이곳은 우리가 타고 있는 통통배 처럼 유람선, 아니면 고기잡이 배들을 만드는 가족규모의 배만드는 곳인것 같았다. 기계가 돌아가고 그옆에서는 낡은 선박에 보수와 Paint를 하는것으로 보아 미루어 짐작해 본것이다.
우리 눈에는 한가롭게 보이지만, 이사람은 낙씨로 고기를 잡아서 양식으로 하는것 같다. 내용을 모른다면, 태양빛을 가리기 위해 머리에 쓴 눈익은 삿갓에 한가롭게 낙싯대를 드리우는, 한량의 망중한쯤으로 보일수도 있을것 같았다. 많이 낚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시내와 강건너 마을을 연결하는 제법큰 Ferry같았다. 사람들도 많이 탔지만, 갑판에는 수많은 Scooter가 또한 있는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회항하여 반대편 기슭으로 달릴때는 선상에서 살림을 하는것으로 보이는 Boat도 보았다. 생활 여건은 최악일것 같다. 물위에 떠 있으니 습기는 달고 살테고, 또한 음식을 비롯한 모든것 즉 몸속에 넣고 배설하는것을 이곳에서 해결 하기에 위생과는 먼사람들일것 같았다.
한부부가 우리배와 빗겨 Cruise를 하고 있었다. 사공은 남편과 아내가 맡아 하고 있는것같다. 얼른 보아 남편사공의 얼굴에는 미소가 피어난다. 그분의 인상이 얼마전까지 고국의 연속극에서 팔삭둥이로 나왔던, 한명회역의 '정진' 같이 개구장이 인상이었다.
평생을 배에서 살아왔기에, 노젖는 모습이 무척 여유로워 보인다. 이여인도 나이가 들어 보이는데 강건너편의 수산시장(?)에 가는것 아닐까?라고 내맘데로 의미를 부쳐봤다.
시내에 인접해 있는 강가에는 뭔가 바삐 움직이고 활동성있어 보이고, 상가에는 상품들도 진열되여 있어 이곳 시내의 번화가의 한부분일것으로 짐작해 보았다. 보이는 선상가옥은 아까본것 보다 더 초라해 보인다.
오늘 저녁이 만월이라서 Full Moon Festival이 약 5분 거리에 있는 시내에서 있다고 한다. 시간이 있어, Lunar와 둘이서 그곳을 향해 산책겸 구경을 나왔다. 과연 길거리에는 커다란 Lantern이 많이 매달려 있었다.
상점에 진열된 물건들의 대부분이 Lantern을 비롯한 오늘밤 Festival에 필요한 물건들인것으로 보였다. 색갈이 찬란하다.
뒤에 보이는 집처럼 생긴 건축물은 다리(Bridge)이다, 우리 부부는 그다리를 건너와서 이제 다시 호텔쪽으로 방향을 잡아 걷는 중이다. 관광객들이 상당히 많아 보인다. 이곳에 한국관광객들이 많이 왔었나보다. 우리 부부를 보자, "물건값 싸요. 사세요"라고 낱설지 않은 한국말이 우리를 향해 날아오기도 했다.
호텔 Front의 한쪽 벽이 얇은 기와장으로 차곡차곡 쌓아놓은것을 보았다. 그런데로 운치가 있어 보였다. 그앞에는 투숙객들이 무료로 이용하게 설치해 놓은 Lap Top도 있다. 구색은 잘 맞지 않는것으로 느꼈다.
약속된 오후 한시가 되여 Guide가 왔다. 우선 만나자마자 안부부터 묻는다. 고객들의 건강에 무척 신경을 쓰는것을 여행 첫날부터 만나는 Guide들로 부터 느꼈었다. 그만큼 이곳은 덮고 습기가 많고, 서구에서 온 관광객들에게는 신경쓸 사항임에는 틀림없는것 같다.
정부의 정책에 따라 헐린집터라고 한다. 이길을 통해서 지나가는 관광객들에게 좀더 좋은 Scenic View를 제공하기위한 차원에서, 강가의 주택을 없애고, 주변을 조성하는 중이란다. Guide말로는 그들에게는 정부에서 보상을 해준다고 달리는 차속에서 설명해준다. 우린 지금 My Son(Beautiful Mountain)을 향해 달리고 있다.
스치는 차창으로 보이는 주변의 나무들은 종이제작과 땔감으로 주로 사용된다고 한다. 종이제조하는 업자들이 이곳 주민들과 계약을 미리 해서 나무를 모아두면 제작회사의 차가와서 공장으로 싣고 간단다. 땔감용은 그들이 자체적으로 수집해서 해결한다고 했다. 특이한 점은 이곳 사람들은 숯을 만들지 않고 직접 불을 때서 음식을 만든다고 한다. 애티오피아 여행때는 길거리에 보이는 물건들이 숯이었었던점과 뚜렷히 대조된다.
약 45분 달려 My Son 입구에 도착, Entry tickets 2장을 구입해 온다. 자기는 무료입장이기 때문이다. 조금 더 달리다 차가 섯다. 이번에는 마지막 입구초소에서 Ticket를 점검하는 절차다.
주차장에 주차하고 우린 Guide와 함께, 소위 말해서 '월남의 앙코르왓'을 보기위해 약 10분정도 걸어야 했다. 이상하게도 이곳을 걸을때 후덮지근함을 덜느꼈다. 일진이 좋아서 였을까?
Arena가 먼저 눈에 들어왔고, 우린 그곳을 향해 발길을 채촉했다. 이순간 노란 전통의상을 입은 여인이 머리에 조그만 그릇을 이고 걸어가는 모습을 봤다. 어떤 여인이 이산속에서 저런 화려한 의상을 입고 있단 말인가? 고개를 갸우뚱할수밖에 없었다.
연극무대같아 보였다. 우리보다 먼저온 몇명의 관광객들이 자리를 하고 있었고, 우리도 맨앞줄에 자리를 잡았다. 곧바로 이곳의 전통 춤과 노래가 시작됐다. 아마도 Cham Dynasty때의 춤과 노래를 관광객들에게 페허가된 '앙코르왓'을 탐방하기전에 맛보기로 공연해 주는것 같다.
4명의 젊고 아름다운 여성들이 Dance하는데, 입은 의상은 요즘 흔히 보는 월남여인들의 아오자이가 아니다. 머리에 쓴 수건도 전연 다르다.
Their performance was looked like representing the Cham culture that lasted over a thousand years from 4th century to 13th century.
두번째로는 3명의 Drummer들이 북을 치고, 앞에 있는 꽹가리 부는 친구가 Performance를 했다. 장단에 마추어 불어대는 퉁소같은 악기에서는 귀가 찢어질것 같은 고음이 흘러 나오는데, 신기하게도 그소리는 계속되고, 끊이는것을 보질 못했다. 분명히 호흡을 해야 하는데.....
이번에는 머리에 화려한 가면을 쓰고, 거의 나체에 가깝게 가릴곳만 가린 아름다운 젊은 여성3명이 출연하여 다리와 손을 비트는 Dance를 유연하게 한다. 피부색갈도 보기 드물게 하얗다.
화장을 해서인것만은 아닌것 같아 보였다. 이런 Performance들이 Cham문화의 일부를 대변하는것으로 이해했다.
공연이 끝나고 본격적인 Temple과 Monument 탐방에 나섰는데, 바로 Ruin입구에 안내 지도가 있었다. Guide가 열심히 설명을 해준다. 요약을 하면 이렇게 깊은 산속에 지도에서 보는것 처럼 많은 Temple, Monument가 있었지만, 오늘은 제일 가까운곳에 있는 페허를 보게 된다고 한다.
앙코르왓이라고 해서 Temple들이 Siem Rip에서 처럼 사암(Sand Stone)으로 건축됐을 것으로 상상했던 나의 생각과는 전연 다른 붉은색계통의 벽돌로 건축됐던것을 알았다. 몇개 안남아 있는 Temple, Monument들은 거의 쓰러지기 직전에 있는, 매우 안타까운 모습이었다.
벽돌을 쌓을때는 사이사이에 접착제 역활을 하는 시멘트 아니면 Glue를 넣는게 정설인데, Guide, Nyen의 설명에 의하면 그런한 접착제를 전연쓰지않고 쌓아 벽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사진에서 보는것 처럼 사이사이에 틈이 전연없이 마치 한덩이처럼 쌓아올린 그모습이 현재도 확연히 볼수 있는, 신기한 공법이라는 점이다.
여기에 보이는 부분은 원래의 벽이 무너져 기존의 벽을 보존하기위해 후에 사람들이 덮부쳐 쌓아놓은것이라고 한다. 확연히 차이가 난다.
1858년 불란서가 월남을 점령하면서, 그들에 의해 정글속에 수백년동안 파묻혀 있던 Temple, Monument를 발견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고, 고고학자들이 연구를 한결과 Cham Civilization이 4세기에서 13세기까지 번창했었다는 것도 알려지게 된것이다.
이사원은 캠보디아에 있는 앙코르왓보다 약 200여년 앞서 건축된것이라고 설명한다. 그이유로 이러한 사원을 건축하는 공법으로 처음에는 나무를 사용했고, 그다음에 벽돌, 그리고 맨나중에 사암(Sand Stone) 사용했던 비밀이 풀렸기 때문이란다. 나무로 사원을 건축했다는 내용에는 의문이 생겼으나 곧바로 풀렸다. 같은 Ruin지역에서 고고학자들이 Digging out하면서 숯과 비슷한 석탄같은 물질을 발굴했기 때문이란다.
그런 설명을 뒷받침이라도 하듯이, 이Temple입구에는 사암으로 된 두개의 기둥이 아직도 버티고 있었다. 그안에는 Altar 가 있었던 흔적의 Foundation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어제 박물관 탐사에서 보고 이해했던 Linga와 Yoni로 대별되는 모양이었기 때문이다. 모든게 음양의 이치를 연관 시켰음을 이제는 좀 느낄수 있을것 같다.
Inside Temple my guide, Nyen explained that foundation of altar was composed with Lingar and Yoni that express male and female of creatures. Unfortunately those symbols has been stolen by thieves who probably sold pawn broker or secretly taken away abroad where some collectors may possess it.
Yoni위에 있어야할 Linga를 상징하는 돌기둥은 흔적도 없었지만, 음을 나타내는 Yoni의 모습은 뚜렷하게 보존되여 있다. 설명에 따르면 도굴꾼들에 의해 Linga는 사라졌다는것이다.
My guide's explanation was fluently expressed so sometimes I couldn't catch the meaning of points he lectured that I had to asked him again to digest it. If he read this blog then he will realize that his explanation with Vietname's accent was so fast, I hope. Anyway I believe he knows very well historical situation on this temple that is Cham's civilization discovered by French archaeologists during the time French occupation.1895년 당시에 발견된 Monument는 70여채 였다고 한다. 다 부서지고 해서 지금은 겨우 20여개의 Monument 만 남아 있다. 여기서 Temple 과 Monument의 구별하는법을 간단히 요약해 본다. 외형으로 봤을때 사원의 벽에 들어가는 입구만 있고 창문이 없는 건축물은 Temple이고, 간혹 창문같은 것이 있었던 구멍이 있으면 Monument라고 한다.
Temple은 주로 종교적 의식을 행하는 공간으로 사용됐고, Monument는 Monk들의 생활공간이나 저장소로 사용됐었다고 한다.
고고학자들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이러한 사원을 건축하는데는 2가지 가설이 있다고 했다.
첫째는 찰흙을 이용하여만든 벽돌을 이용하여 사원들을 만들고 그옆과 위에 나무를 잔뜩 쌓아놓고 불을 질러 벽돌이 되게 했다는 Theary이다.
둘째로는 이렇게 외부에서 나무를 때서 벽돌이 된것으로는 벽돌이 열을 받아 원래의 모습을 유지하지 못하고 비툴어 지거나 또 표면이 거칠어져서 건축물이 오래 버티지 못하기에 다시 전부 해체하여 하나하나의 벽돌표면을 문질러서 부드럽게 한후 다시 짜마추어 건축했기에 오늘날까지도 남아있는 Ruin에서는 본래의 모습을 볼수 있다는 Theary인데, 전문가들은 후자의 가설에 많이 동의 하고 있다고 한다.
Cham Civilization시대에는 문자가 없었던 것으로 이해 됐었으나, 고고학자들의 연구로 사진에서 보는것같이 사암기둥에 그들만의 문자가 새겨져 있어,엄연히 존재 했었다는 증거를 보여준것으로 해석한다. 글자 모양이 버마사람들이 사용하는 오늘날의 문자와 많이 닮은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나의 추측일뿐이다.
Cham시대의 사람들은 이렇게 깊은 산속에 사원을 짖게된 2가지 이유가 있었다고 한다.
첫째는 외부의 침략을 막기위해, 군사적 목적에서 접근이 어려운 깊은산속에 터를 잡았고,
둘째는 종교적인 면에서 였다고 하는데, 깊은 산속에 있는 산봉우리에서는 천상에 계시는 신과 더 가깝게 지낼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서 였다고 한다.
파괴된 Temple에는 지붕이 없어 임시로 남아있는 부분을 보호하기위해 지붕을 덮어 놓았다.
Monument안에는 당시에 Monks들이 사용했을 기구들이 일부 진열되여 있었다. 과연 도구로 사용할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이 머리에서는 떠나지 않는다.
월남전때 이곳에 베트콩들이 숨어서 싸움을 하면서, 총상의 흔적이 벽돌에 남아 있었다.
보통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시간은 오전중에 이루어 지는데, 이유는 주로 오후에는 비가 내리고, 더많이 더워지기 더워지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리 만치 더운것도 덜했고, 습기도 덜했다고 Guide 자신도 신기해 할 정도로, 오늘 오후 우리의 방문시간이 축복을 받았다고 해석까지 덧부쳐 준다. 아까 호텔에서 출발할때는 한참더운 때인 오후시간이라서 걱정 했었는데..... 그져 감사할 따름이다.
사원들이 있는 곳으로 부터 뒷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곳에는 사원의 모습을 본떠 만든 Replica들이 여러개 있었다. 이것들은 이태리 전문가들이 똑 같은 크기의 벽돌로 건축해 놓고 사이사이에는 Glue를 사용했다고 하는데, 과연 이벽돌이 얼마나 원형을 유지하면서 세월을 참아낼수 있을까를 보기위한 차원에서 라고 하는데, 그결과는 몇백년후가 될것이다.
지금 볼때는 매우 정교하게 건축되여 있는데, 이결과 보기위해서 수백년을 더 살수 있었으면 엉터리같은 망상을 순간 해보기도 했다. 비밀이 그때쯤에는 완전히 풀릴수 있을까?
캠보디아 사원에서도 보았지만, 당시의 종교는 힌두교가 왕성했었다는 것을 여기서도 느낄수 있었다. 힌두교의 번창이 한때는 동남아시아 일대를 석권했었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Lunar는 무엇을 머리속에 그리면서 멍청히 쳐다보고 있는 것일까? 옛사람들의 장인정신은 현재에서도 흉내를 못내는 정교한 솜씨인것으로 다시한번 눈으로 확인한 셈이다.
Lunar가 유심히 쳐다보고있는 잡풀들은, 옛사원이 있었던 Ruin을 휘감아 덮고 있는 터라고 한다. 현재 월남당국과 UNSCO가 합동으로 현존 사원의 보존과 개발을 계획하고 있다고 하니, 언젠가는 잡풀로 덮혀있는 이곳도 세상에 모습을 나타날 그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탐방을 마치고, Guide Nyen와 Lunar한 사원을 배경으로 추억을 만들었다. 이친구와 헤여지면 다시 만날 그날이 찾아올까?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다만 위에 계시는 분을 빼고는.
만월을 축제하는 대열에 참여하기위해 어두워지자 낯에 돌아 보았더 시내로 발길을 돌렸다. 많은 Lantern 들이 장식되여 있고, 불까지 켜져 있어 축제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Thu Bon강에 촛불이 켜진 종이배를 띄우면 만사 형통이 된다는 전설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하나씩 구입해서 강가에 띄운다. 어린아이들도 이틈새를 이용하여 종이배 팔기에 열심이다.
할머니도 종이배 팔기에 동참하고 있다. 관광객이 사게되면 그종이배에 촛불을 켜고, 들고 있는 기구의 Net안에 넣고 강물위에 띄우는 것이다.
어린 아이도 동참이고, 엄마는 그옆에서 감독(?)하고 있다. 얼마나 몇개나 팔게될까? 그런데 하늘은 구름으로 꽉 덮혀 있어 만월은 전연 보이지 않는다. 기후 관계로 만월보기가 쉽지 않은데서 매달 만월날에는 이렇게 Full Moon Festival이라는 축제를 기리는것으로 이해됐다.
오늘밤에 팔려나갈 Lantern 들이 즐비하게 가게 앞을 장식하고 있다. 우연히 시간이 맞아 이러한 진귀한 광경이 곁들인 축제를 덤으로 보게되는 행운을 우리 부부는 소유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이축제의 이름을 빌어 물건을 팔려고 하는 상혼도 곁들여 있는것으로 이해했다.
강 건너편에 희미하게 펼쳐져 보이는 Lantern에서 나오는 불빛이 끝없이 이어진다. 평화스러워 보인다. 그래서 인지 이곳에서의 치안에는 신경쓸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안전하여 여행객들에게는 신경쓸 필요가 거의 없어도 된다고 한다.
상하의 나라임을 상징하는 도마뱀이 내 호텔방의 벽윗쪽에서 서성거리는 모습이다. 내가 어렸을적, 아직 10 세 전후였을때에 내가살던 시골의 뒷쪽에 흐르는 시냇물과 넓게 펼쳐져 있는 갈대풀밭위에는 이러한 도마뱀들이 많이 서식했었다. 그이후 가끔씩 중남미 여행할때 보곤 했었으나, 오늘밤 여기서 다시 만나다니...... 이것도 인연일까? 아니면 도마뱀쪽에서 봤을때는 불교에서 믿는 윤회가 나타나서 였을까?
Lunar가 다른 각도에서 같은날 탐방하면서 찍은 사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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