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August 30, 2018

정치적으로 반대길을 걸은, 부통령 Joe Biden이 McCain의 장례식에서 Eulogy, 한국은 감옥에 다 쳐넣고 있는데....

오늘은, John McCain의 고향인 Arizona주에서 공식 Farewell 마지막 장례식 순서를 마치고 다시, McCain의 관은 육군의장대가 동행하여 미국정치의 본거지인 와싱턴으로 돌아와, Andrew공항에서 국방장관 Jim Mattis의 영접을 받았다.

이번 장례식의 위원장을 맡고있는, Joe Biden은, 민주당 출신인 Obama 대통령당시, 부통령을 지낸분으로, 정치적으로는 노선이 달라, 의회에서, 행정부에서 국가정책에 현집권당인 공화당에 반대에 서서 국사를 돌보았던 분이다.  반대당,민주당의 부통령이었던분이 장례위원장을 맡다니....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하는 미국적 차원높은 인간미에 부러움을 느낄뿐이다.

한국을, 잠시 여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장례식 진행을 보면서, 미국이 강대국으로, 세계를 움직이는 경찰국가로  굳건히 설수있는  이유가 뚜렷함을 보았었다.



한국은  정치적 노선이 다른 정당에서 대통령이 당선되면, 또는 정치적 노선을 같이 걷다가도 의견 충돌이 있으면 뛰쳐나가 정당을 새로 만들고, 대통령이 되고....그리고 국가적 경축행사에서 만나면 언제 정치적 동지였었던가를 의심하게 만들고도 남을 행동을, 즉 같이 옆자리에 나라히 앉아서도 대화를 주고 받는것을 피하는것은 물론이고, 얼굴도 서로 다른쪽으로 돌리고, 불편하게 앉아 있다가 행사가  끝나면 서로 다른길로 빠져 나가곤 했었던것을 그래도 좀 낳은 편이라고 해두자.  이분들이 한국의 민주투사라고 기억하고 있다.

지금의 문통은, 아예 정치적 노선이 다른 전직 두대통령을 몽당 끌어다 감옥에 쳐넣고, 있지도 않은 범죄를 만들고 엮어서, 남은 생애를 감옥에서 보내도록 하고, 그것도 모자라 전정부에서 봉사했었던 고위직 보좌관들과 장관들마져 붙잡아서 감옥에 처넣는데 혈안이 되여있는 가슴아픈 현실을 비교해 보면서, 가슴이 찢어지는 기분이고, 미국이 더욱더 부럽기만 해진다.

현한국정부는, 사사건건 미국과는, 동맹국이라것을 믿기 어려울 정도로 뒷구멍에서 북괴의 김정은 공산정부와 내통하고  맞장구를 치면서, 미국의 뒷통수를 때리는 어리석음을 보면서, 한국의  앞날이 걱정되는것은, 나만이 느끼는 고통이 아닐것이다.

McCain의 장례식에는 정치적 동료들은 물론이고, 반대당의 전직대통령들도 다 참석해서 고인의 가는길을 애도했었다.  그중에서 Barak Obama 대통령의 재임중 시행한 정책중에서, 아직 이락전쟁후 남아있던 테러 조직을 소탕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락주둔 미군을 완전 철수시키자, 이락 북부지역에 숨어있었던 테러조직들이 성장하여, 결과적으로는 IS, ISIS은 악명높은 범죄조직으로 성장 되여,  이들이 정치적으로 어려움에 쳐해 있던 시리아로 옮겨가서, 오늘날 미국과 러시아가  대리전쟁을 하게까지 했었던,  미국과 서방세계가 많은 희생과 대가를 치르게 했었던, 대통령이었었다.  그의 실정을, 지금은 감옥에서 옥살이를 하고 있는 한국의 전직 대통령들의 과오(?)와 비교한다면, 하늘과 땅차이로 Obama 대통령의 잘못은 뚜렷하다.

그런데, 그것은 대통령이 국가를 통치하면서, 그길이 맞다고 믿었던 정책이었기에, 임기 마친후에는 이러한 실정을 재론하거나, 비난하는 현정부나 정치꾼들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정적이었던, McCain상원의원의 장례식에 참석하여 같이 애도하고 고인의 가는길에 명복을 빌어주는, 미국사회의 한장면을 보면서, 왜 우리한국은 포용하지 못하고 다 잡아 죽이는것인지? 도저히 이해할수가 없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기념관 하나 없다고 들었다. 김대중 대통령의 이름을 부친 기념관은 10개 넘는다고 들었다.  이런 광경을 보면서, 현정부를 아무리 좋게 볼려고 해도, 내머리가돌지 않은 이상은, 수긍할수가 없어 더괴롭다.

https://lifemeansgo.blogspot.com/2011/05/516-50.html

(CNN)Here's a paragraph from Joe Biden's eulogy of the late John McCain that you need to read:
"You know, I'm sure if my former colleagues who work with John, I'm sure there's people who said to you, not only now, but the last 10 years, 'Explain this guy to me,' right? 'Explain this guy to me.' Because, as they looked at him, in one sense they admired him. In one sense, the way things changed so much in America, they look at him as if John came from another age, lived by a different code, an ancient, antiquated code where honor, courage, integrity, duty, were alive. That was obvious, how John lived his life. The truth is, John's code was ageless, is ageless. When you talked earlier, Grant, you talked about values. It wasn't about politics with John. He could disagree on substance, but the underlying values that animated everything John did, everything he was, come to a different conclusion. He'd part company with you if you lacked the basic values of decency, respect, knowing this project is bigger than yourself."


  • In a ceremony true to the "maverick" that was Senator John McCain, political leaders, sports figures and family friends remembered the former senator as America's "hero" at his Arizona memorial service on Thursday -- all with a hearty dose of humor.
    McCain, who died at the age of 81 last weekend after a battle with glioblastoma, an aggressive form of brain cancer that was diagnosed last year, was honored by close friends including his former chief of staff Grant Woods, who called his over 30 years of work with McCain the "greatest honor of my life."
    "In Arizona, he was our hero. I think you can see from this outpouring of support and love for John McCain that he was America's hero," said Woods.
    Meanwhile, former Vice President Joe Biden highlighted the senator's spirit of bipartisanship as his lasting legacy in American politics.
    "John's story is the American story, that's not hyperbole. It's the American story. Grounded in respect and decency, basic fairness. The intolerance for the abuse of power," said Biden.
    Biden, who had a decades-long friendship with McCain, and whose son, Beau Biden, also died of the same cancer, said that "the world now shares with you the ache of John's death."
    McCain's casket now heads to Joint Base Andrews in Maryland ahead of a ceremony at the U.S. Capitol on Friday where he will lie in state.

    Read live updates as they happened:

  • Defense Secretary Mattis greets McCain family

    Defense Secretary Jim Mattis greeted McCain's casket at Joint Base Andrews. McCain's casket is being accompanied by the Armed Forces Body Bearers.
    Mattis walked beside Cindy McCain as they escorted McCain's casket.
  • McCain's casket arrives in D.C.

    McCain's casket arrived at Joint Base Andrews on Thursday evening ahead of Friday's ceremonies.
    Starting Friday, McCain will lie in state at the U.S. Capitol in D.C. A formal ceremony will take place in the Capitol rotunda to honor McCain's service to the nation. Following the morning ceremony, the public will be allowed to pay their respects for the remainder of the day. McCain, referred to as the the "conscience of the Senate" called his time in office in the nation's capitol "the most important job I have had in my life."

https://www.cnn.com/2018/08/30/politics/biden-mccain-politics/index.html

Wednesday, August 29, 2018

Taj Mahal 성전, 인도의 Shah Jahan(1628-1658)이 사랑하는 부인, Mumtaz Mahal의 무덤 용으로 건축.



India, Agra, 눈과 귀에 익었던 Taj Mahal, Agra fort 탐방 (Jan.27,2016)


약속된 시간에 호텔 Lobby에서 Tour Guide, Nan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운전수 Maenoj차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Agra city의 처음 터를 잡은 인물은 전문가들의 고증에 따르면 Mr. Sikender Lodhi, 1504년에 시작했다고 한다. Taj Mahal monument는 ASI (Archaeological Survey India)에서 맡아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Taj Mahal monument에는 들어가는 문이 3개 있었다.  드디어 말로만 듣던 Taj Mahal monument를 우리는 동쪽문을 향해 들어간다.  문이 3개 있다는것은 3명의 Queen이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39세의 Nan은 나처럼 대머리여서 나이가 들어 보인다. 처음에는 40후반 또는 50대 초반으로 짐작했었는데....그가 오늘 우리부부의 Tour Guide인 것이다.


입구에는 벌써부터 많은 관광객들이 입장권을 구입하는라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매일이렇게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 드는지 궁금했다.  Nan의 대답은 의외다. 오늘은 사람이 없는 편이라는 것이다. 시계를 보니 오전 10시가 조금 넘었다.  입장하는 곳도 남녀가 다른다.  왜일까? 알고 봤더니 몸수색을 하기위한 조치라는것을 알았다.  여성은 Handbag을 들고 있기에 그안까지 검색하느라 시간이 더 걸리고 있었다.  Chewing Gum, Candy류, Snack 등등 모든것은 검색에서 걸려 다 압수당하고 옆에 있는 Garbage Bin에 버려야 했다. 대개 삼엄하다.
Lunar의 Handbag속에 들어 있었던 캔디와 Soft fruit Candy도 압수당해 쓰레기통으로 버려졌다.별수가 없다. Rule에 따라야 하니까. 그들을 너무 심하다고 비난할게 아니라 그들 때문에 우리 관광객들이 안전하게 구경할수 있음에 고마워 해야 했다.

 정문을 통과하기위해 줄을 서서 들어가는 바로 옆에서는 인부들이 바닥에 넓직한 돌판을 정성스레 각을 맞추어 통로에 Lay하고 있었는데, 이분들의 얼굴들이 피곤해 삶의 곤궁함을 느낄수 있었다.

정문을 통과하여 도착한곳은 Taj Mahal의 Main temple이 아니고, 넓은 광장이 잔듸로 덮혀 있었고 빨간 건물로 된 담장과 3개의 Gates가 제각기 특성을 갖고 있다.  관광객은 자기가 들어온 문으로 나갈때도 나가야 한다고 설명한다. 왜냐면 주차장이 제각기 다르기 때문이란다.


관광객들의 물결에 따라 Taj Mahal Monument에 들어가는 문을 통과하자 사진에서 많이 보아왔던 Taj Mahal의 Marble로 건축된 높은 돔이 건물중앙에 높이 솟아 있고, 위용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이곳에서 Taj Mahal건물까지는 넓은 정원이 자리하고 있다. 중앙 양쪽에는 물이 흐르는 수로가 자리하고 있다.

서쪽 Gate와 남쪽 Gate를 배경으로 한컷 했다.  우리가 들어온 문은 East Gate라고 했다.

Taj Mahal 본 건물에 들어가기전에 이렇게 넓은 광장에 3개의 Gate까지 있고 그규모가 엄청크다. 지금까지 사진에 본바로는 지금 서있은 3개의 Gates가 있는 Square는 거의 본적이 없었기 때문에 Taj Mahal의 규모가 엄청 크다는것을 느낄수 있었다.
일단의 인도 여성들이 우리 부부를 보자, Lunar와 함께 사진을 촬영했으면 하고 청해서, Lunar가 그들틈에 끼어 추억을 만들고 있는 순간이다.  이시간이 흐르면 그들이 누구인지 아무런 상관없는 사람들이지만, 이렇게 추억을 만들고, 그들도 덩달아 기억속에 간직할 것이다.


Taj Mahal Monument의 Main 건물로 들어가기위해서, 3개의 Gate를 통과하여 들어온 관광객은 다시 이문을 통과하여 위용을 자랑하는 Taj Mahal을 구경하게 된다.  이Gate를 통과하기 직전에 또 다른 Security요원들이 근무하고 있는 장면을 슬쩍 한컷했다.  인구가 많아서인지 내가 볼때는 필요없어 보이는 인원들이, 여기서 뿐만이 아니고, 식당 또는 다른 Historic Site를 탐방할때마다 느낀점이다.

아직 Taj Mahal 성전의 안을 보지는 않은 상태에서 멀리 보이는 하얀 Marble로 건축된 Monumnet의 위용은 세계 7대 불가사의에 들어갈만하다고 무조건 동의하지 않을수 없어보였다.


이 Mausoleum은 당시 30년간 재임한 Shah Jahan(1628-1658)이 그의 사랑하는 부인, Mumtaz Mahal의 무덤을 안치하기위해 짖게된 것이라고 하는데, Taj Mahal 성전뒷쪽에는 Yamuna강이 도도히 흐르고 있어, 장소 또한 명당같아 보였다.

Taj Mahal 앞의 넓은 곳은 과수원으로 Mango, 석류, Papaya등등을 수확하는 과수원이 있었단다.  영국이 인도를 점령하면서, 과수원을 지금처럼 European Garden으로 환경을 바꾸었는데, 모슬림인 Mogul 왕조를 몰락시키기위한 조치로, 즉 Mogul 왕조를 압박하기위한 조치였다고 한다.  그후 Mogul 왕조는 몰락하고, 그의 자손들도 전부 영국점령군에 의해 없애 버렸다고 한다.

1831년에는 Lord William Benting가 Taj Mahal 건물의 Marble석을 팔아먹기위해 신문에 Sale광고를 냈었단다.  그런데 영국에서 파견된 군대가  이를 단호히 막아 팔아먹지를 못하고 공수표로 끝나고 말았단다.  영국군의 반대가 아니였으면 지금 Taj Mahal은 없었을 것이라는 아찔함을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정원의 조경이 너무나, 지금까지 보와왔던 인도와는 완전히 다르게 잘 관리되여 있었다.
Taj Mahal 성전으로 들어가기전의 Gate의 지붕에는 11개의 하얀 Dome이 설치되여 있는데, 양쪽에 나란히 있어 이를 합하면 22개가 되는데, Taj Mahal을 건축하는데 일년에 한개씩 Dome을 설치하여 22년이 걸렸다는 뜻이라고 한다.

신발위에 얇은 천으로된 신발 커버를 신도록 규정하고 있어, 신발에 끼우고 사진을 찍었다.

벽에는 이슬람 건축양식의 상징인 Arch가 만들어져 있고, 그가운데는 항상 Key Stone이 조각되여 있는게 특징이다.

Taj Mahal 본건물 양쪽에는 똑같은 모양의 건물 2채가 빨간색갈로 세워져 있다.  오른쪽 빌딩은 옛날에 이곳을 방문하는 여행객들의 숙소로 사용 했었고, 반대편의 건물은 이슬람의 Mosque로 사용했었으며,  지금도 소수의 이슬람 교도들이 매주 금요일 저녁이면 이곳에서 Worshipping을 하는데, 이곳에 들어오기위해서는 철저한 신분조사를 사전에 받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Taj Mahal이 건축된 이후 한번도 벼락을 맞은일이 없었다고 하는데, 그당시에 구리로 된 철판을 그림에서 보는것처럼 중앙의 돔에서 시작하여 건축물을 타고 지하에 묻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것도 견고하게 부착시켰음을 보면서 지혜롭다는 생각이었다.
Nan의 설명에 따르면 Marble벽에 새겨진 꽃무니들은 Painting한게 아니고 Marble벽을 정으로 파서 그곳에 맞게 만들어진 꽃무니를 Insert했다고 하니 정말로 대단하고 감탄만 나올뿐이다. 손으로 표면을 만져 보았는데 높낯이의 다른점을 전연 느끼지 못하겠다. 정말로 정교하다.
Taj Mahal 사원의 뒷쪽에서 내려다 본 Yamuna River 강줄기는 평화롭기만 했다.  이강이 흘러서 간지스강으로 흘러 들어 간다는 설명이다.
또하나의 새로운 비밀(?)을 알았다. Taj Mahal의 건축은 실상은 벽돌과 Mortar로 건조됐으며, 건물벽이 Decay되는것을 방지하기위해 겉은 Marble로 전부 장식했다는 설명이었다.  Taj Mahal본당의 Dome에 사용된 무거운 건축자재, 예를 들면 큰 Marble을 어떻게 들어 올렸을까?라는 생각을 해보는데, 설명에 의하면 건물을 높이 쌓아 올리면서 거기에 맞게 모래와 흙을 같이 쌓아 올려 경사지게 만들어서 코끼리와 숫소(Bull)들이 수레를 끌고 올라갔다는 것이다. 실제로 마지막 Dome을 쌓을때는 흙으로 쌓은 토대의 길이가 자그만치 1.5키로나 됐다고 한다.

Taj Mahal Main 성전앞의 Arch는 전형적인 이슬람 건축양식으로 웅장하다.  이제 몇시간 후면 이곳도 나의 기억속에서 희미하게 남아있게 될뿐이다.  화려하고 섬세할 뿐이다.
이런 요철모양의 문양은 만져보면 굴곡이 없는 평명 Marble을 파고 그곳에 끼워놓은 돌장식인데 멀리서 볼때는 분명히 각이 있어 보이는 특이한 구조였다.
이슬람 사원을 사용되고 있는 건물앞에는 조금만 pond가 있는데, 이곳에서 신도들은 Mosque에 들어가기전에 손을 씻고 마음을 가다듬고 들어간다고 한다.
정원이 잘가꾸어져, 몇번 사진을 찍어도 또 찍고 싶어서 또 한번 찰칵했다.  인도의 보물임에 틀림없다.  멀리 22개의 Dome 선명하게 보인다.

Taj Mahal이 세계 7대 유산에 들어간 이유가 또 있었다.  Taj Mahal을 덮고 있는 구름의 색상이 햇볕의 각도에 따라 변하고,  우기에는 구름이 흘러가는 모습이 마치 지상낙원과 천국처럼 보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해준다.
Muslim 건축양식의 Arch에서 가운데 끼워놓은 돌은 진짜 아취를 뜻한다고 설명해준다.

 Taj Mahal성전안의 중앙에는 두개의 Tomb이 있었다.  하나는 공주의 능이고, 또 다른 하나는 왕비의 능이라고 했다. 왕비 Mumtaji Sajahan은 40년을 통치 했고, 왕이 왕비와 결혼했을때는 20살이었고, 왕비는 19살이었다고 한다.  왕비는 39세에 죽었다고 하니 20년 결혼생활한 셈이다.  현재의 Tomb은 Replica이고 진짜 Tomb은 가짜 묘 밑에 모셔져 있다는 설명이었다.


 피뢰침역활을 하고 있는 구리로 된 띠는 밖에서 지하로 완전히 묻혀 있었다.  당시에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었을까?

 Taj Mahal의 Marble을 서로 고정시키는데 동원된 Architecture들은 19대에 걸쳐 그들만이 독특히 사용했던 Glue를 사용했다는 것인데,  그후손들은 지금도 가내 수공업으로 특수 Glue를 만들어 그명맥을 유지해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 가족중에서도 여자는 아직도 이Glue의 비밀을 모르고 시집보낸다고 했다.  만약에 그비밀을 알게 되면 시집에서 그비밀이 샐까봐서 일체 접근을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4개의 Minerat중 2개는 현재 수리중에 있었다. Guide의 설명에 따르면 4개의 Minerat은 약간 Taj Mahal성전 밖으로 기울어져 서 있다고 설명이다.  이유는 만약에 Earth quake가 일어나서 무너지게 되면 Taj Mahal 성전을 보호하기위해 반대편으로 쓰러 지도록 설계을 한것이란다.
 Shahajahan왕은 14명의 아들딸을 낳았는데, 그중에서 7명만 생존했다고 한다. 4명의 아들과 3명의 딸이 살아남았다.  그러나 4명의 아들들은 왕권을 쟁취하기위해 서로 싸우고, 결국 3째 아들, Aurang Zeb이 다른 형제들을 다 죽이고 왕권을 쟁취하게된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의 Conspiracy를 무서워서 아버지를 붙잡아, 1565년에 건축된 Agra Fort로 보내 버렸다고 한다.


 보고 또 보고 해도 정말로 멋있어 보인다.  설명을 들어도 또 들어도 새로운 비밀이 생겨나는것 같다.

맨처음 영국이 인도에 발을 들여놓기 시작한것은 1616년 인도와 무역을 하기위해서 였다고 한다.  그후 영역을 넓혀가면서 1757년에는 아주 조그만 점령지를 만든다.  그후 서서히 영역을 넓히면서 마침내 1857년 전인도를 점령하고 위에서 언급한데로 Mogul왕조와 그후손들까지도 모두 죽여 없앴다고 한다.  살아남은 후손들은 그후 Burma (현재의 Myanmar)로 피신했다고 한다.


Mogul Dynasty는 1526년에서 1857년까지 왕정을 유지 했었다고 한다. 왕조의 창시자  Babur로,  이Taj Mahal 을 건축한 왕은 5대왕 Shahajahan이며,  1526년부터 1707년까지는 왕조의 힘이 왕성하여 통치를 잘 했는데, 그후부터 1857년 망할때 까지는 통치자들이 무능하여 결국 왕조는 문을 닫게 된다.  왕조가 망하기전 1739년에 왕조는 Delhi로 Capital City를 옮기고 만다.  그후 페르시아의 통치자가 인도와 전쟁을 하여 수많은 전쟁노획물을 챙겨 갔다고 한다.
다.
Taj Mahal Monument 탐방을 마치고 운전수 Maenoj가 기다리고 있는 곳까지 말이 끄는 마차를 탔다.  운치가 있다.  마부가 나보고 말을 몰아 보라고  고삐를 쥐어준다.  고삐를 마구 흔들었더니 말이 뛰기 시작했다.  마부가 본능적으로 고삐를 붙잡아 말을 안정시켰다. 역시 하잖은 일같지만 모든 일에는 기술이 필요함을 또 한번 절실히 느끼면서 웃을수 밖에 없었다.




아이를안은 엄마가 동냥을 구걸하기위해 우리가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계속 뒤따라와서, Lunar가 조금 손에 쥐어 주고 있다.  이런 인생들이 너무나 많다는데 인도의 앞날이 어둡게 보여지는 일면이 있다.


Local 식당에 들려 Maenoj와 Nan에게 점심을 사주었다.  우리는 호텔에서 준비해간 샌드위치로 먹었다.  그들이 "난"을 한쪽 먹으라고 자꾸 권해서 한쪽을 먹긴 했었다.  그들이 제대로 많이 먹어야 우리의 스케줄이 잘 돌아가기 때문이다.
Taj Mahal 건축때 동원됐던 architecture들의 후손중의 한명이 운영하는 공방에 들렸다. 역시 얘기 들었던데로 특수 Glue를 사용하면서 Marble위에 Groove를 만들고 그에 맞게 만든 꽃무늬들을 넣고 Glue를 바르는 일체의 공정을 끝내면 상품으로 전시하곤 한다.
Agra Fort를 탐방했다.  규모가 어마어마 하다.  원래 Agra는 숲으로 뒤덮혀 있었던 밀림지역이었는데 그러한 숲을 볼려면 85킬로를 떨어져 있는곳으로 가야만 볼수 있다는 것이다.  Agra는 농장지역으로 감자를 많이 생산하고 있다고 한다.



Agra Fort는 1565년에 건축하기 시작하여 7년간 걸렸고, 그후 3대에 걸쳐 Mogul왕들은 이성을 증축을 계속하여, 총 95년에 걸쳐 현재의 규모로 Agra Fort를 만들었다고 한다.
Agra에서 Delhi로 1635년에 왕자들의 난이 일어나 수도를 옮기게 된다.

첫번째 궁전안의 Court의 오른쪽 건물은 Bedroom이고, 좌측의 건물은 Guest house로 이용됐었다고 한다.  건물의 장식에 오리조형물이 들어가 있는데 이른 Muslim의 전통에 어긋나는 것이었지만, 당시왕비는 Hindu여인이어서 오리장식을 했다는 것이다.  Court Yard에서 행해지는 Ceremony를 Concubine들은 윗층에서 구경했다고 한다.




멀리 보이는 Taj Mahal의 Dome이 위용을 자랑하면서 대기오염에 희미하게 보인다.

이곳에서 왕은 대신들을 접견하면서 정사를 살폈다고 한다.  인도건축문화는 Roman 제국시대처럼 돌문화로 언급될수 있을것 같다.

왕비는 바람이 잘 통하는 이곳에서 쉬면서 멀리 아름다운 시내전경을 구경했었다고 한다.









입구에서  Security Guard로 근무하는 직원들과 기념으로 한컷했다. 그들이 순수히 응해줘서
고마웠다.  그들의 얼굴에 웃음을 잠시 안겨줄수 있는 시간을 내가 만든셈이다.




Muslim Style Arch의 정교함에 뭐 설명할 말이 없다.  훌륭한 유산인데 잘 관리를 해야 할텐데 너무나 허술해보인다.  정부나 ASI들도 말뿐인것 같아 안타깝다.












 적으로 부터의 침략을 막기위해 Moat로 사용했었던 곳이라고 한다.  성전체를 둘러 싸고 있으니 그규모가 엄청나다.  이Moat위로 놓인 갑문식 다리를 통해 성안으로 들어가고 나온다.
성을 들어가는 대문뒤에는 무거운 추(Weight)가 매달려 있어 적이 침입해 들어오면 추의 밑에 받치고 있는 Wedge를 빼서 추가 아래로 무게에 의해 굴러떠러지면 이와 연결된 다리가 위로 번쩍 들려 적이 성안으로 들어올수 없도록 장치를 했었다고 한다.

한때의 한국여행객들과 조우를 했다.  마침 그들이 하는 얘기를 들었는데 사진을 임의로 찍은 사진사로 부터 사진구매를 강요 당하고 있었다. 값을 들어보니 엄청나게 비싸다.  그러나 그들속에 개입해서 말해주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들이 생각하는 만원은 커피값도 안될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우리도 비슷하게 사진을 찍히고 그들이 요구하는 가격보다 약 7배또는 10정도 싸게 구입했는데..... 돈의 아까움과 가치를 한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 나를 무겁게 했다.


https://lifemeansgo.blogspot.com/2016/01/india-agra-taj-mahal-agra-fort-jan27201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