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ritsar는 인도와 파키스탄 국경에서불과 28킬로 떨어져 있으며, Amritsar는 Sikh교도들의 메카로 불리는 Golden Temple 이 있다. 이들의 언어로는 Sri Harimandir Sahib 이다.
Amritsar는 Punjab주에서 두번째로 큰 도시라고 한다. 전체인구는 약 2.7백만명이다. 그리고 Punjab주의 전체인구는 28백만명이며, 22개의 도시로 형성되여 있다고 한다.이곳역시 도시는 골치아플정도로 무질서하다. 길거리에서는 걸어가기가 힘들정도로 보따리 장사꾼들이 달라붙어 사기를 강요한다.
이Temple은 14세기경에 Guru Ram Da가 이사원의 기초를 세웠다고 한다. Sikh교도를 얘기할때 10 Guru를 빼놓고는 얘기가 안된다. 10명의 Guru는 인간 Prophets였지만 앞으로 11번째 Guru는 앞서간 Guru들중에서 1,5 그리고 9대 Guru의 말씀을 정리한,1430페이지로 만들어진 경전을 지칭한다고 했다.
사원을 들어가는데는 정사각형의 넓은 광장을 거쳐 Golden Temple있는곳으로 들어가게 되여 있었는데, 이광장에 들어가는 관문은 똑같은 크기의 Gate4개가 동서남북에 세워져 있고, 이들 사이는 커다란 보조건물과 벽으로 이어져 있었다. 오늘 우리 부부는 동쪽 관문을 이용하여 들어왔다고 설명한다 광장은 바다같이 넓은 호수(Pond)로 되여 있었다. 호수의 물은 150킬로 떨어져 있는 Kiratpur Sahib에 있는 Satluj River에서 수로를 인공으로 만들어 여기 호수까지 끌어들였다고 한다.
6,7,8 그리고 9대 Guru Worrior들로 그들의 말씀은 경전에 포함되여 있지 않는다고 했다. 대신에 그들은 Sikh사람들에게 Mogul왕국에 저항하여 싸우도록 앞에서 뒤에서 용기를 북돋우면서 일종의 장군역활을 했던 인물들이라고 했다. 경전은 1701년에 만들어졌다.
4대 Guru Ram Da가 Temple을 짖기시작하여 먼저 광장에 있는 Pool을 만들었고, 5대 Guru가 건물을 세웠다는 설명이다.
Temple의 구조가 엄청나게 크다. 군데군데 Reconstruction하는곳이 눈에 많이 띄었는데, 전부 Volunteer 들이 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간 중간에 Security Guard들이 경비를 서고 있는데 이들은 옛전통을 지키는 뜻에서 모두 창(Spear)을 들고 서 있었다. 물론 머리에는 터반을 둘렀다.
창끝에는 날카로운 Stainless 강철로 앞부분을 만들어 사용시에는 무서운 무기가 된다고 했다.
호수 가운데는 있는 Sikh Gurudwara 전세계적으로 오직 하나뿐으로 Guru 자신이 만들었다고 한다. 이곳에 들어가 경배하기위해서는 인내를 해야 한다는 설명인데, 그이유는 차차 알게 될것이라고 Tour Guide Aji는 설명이다.
호수의 물은 간지스강물과는 비교가 되지 않게 아주 깨끗했으며 호수에 들어가는 계단을 이용하여 사방에서 성수(Holy Water)에서, 초기 기독교인들이 요르단강가에서 Baptize 를 했던것 처럼, 마지막 팬티 하나만 걸치고 물속에 들어가는것을 많이 봤다. 물이 차거워서 인지 몸을 부르르 떨기도 한다. 여성들은 별도의 밀실같은 곳에서 Baptize를 할수 있으며, 그게 여의치 않을때는 호수물에 발만 담그는 의식을 한다는 것이다.
성전으로 들어가는데는 신발을 벗고, 다시 성전안의 Gate앞에서 발을 씻기위한 얕은 물이 흐르는곳을 통과해야만하고, 호수를 지나 Golden Temple로 들어가기위해서는 먼저 신발을 벗고, 그다음에 여성들은 스카프를 머리에 두르고, 남자들은 그곳에 준비된 조그만 스카프로 머리에 둘러 써야했다. Lunar는 완전히 아랍쪽 어느나라의 여성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아무데서나 무릎꿇고 경배하고, 또 문지방을 넘을때, 계단을 오를때에도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손을 대고 다시 이마에 그손을 대는, 철저한 의식을 중시하는 Sikh들이것 같다.
호수물은 굉장히 깊어, 사고를 방지하기위해 약 3미터 안쪽으로 물속에 영구 보호 울타리같은게 힌색 페인트로 칠해져 있었고, 그래도 Drawning을 막기위해 영구설치해 놓은 생명줄같은 끈을 잡고 물속으로 들어가도록 되여 있었다.
Guide의 설명에 따르면, 커다란 전광판 4개가 광장에 설치되여 있어, 수시고 경전과 안내문을 내보내고 있었다. 이것을 모두 캐나다에 있는 Sikh교도들이 성금으로 설치해 주었다는 것이다.
이곳을 찾아 Pilgrim하는 Sikh은 하루에 수만명이라고 한다. 오늘도 이곳으로 몰려오는 사람들을 입장하기전 Temple앞의 길에서 부터 아수라장 같이 밀려드는 인파들 사이로 우리도 들어왔었다.
Sikh교인들의 의식적인 믿음은 많은 본보기가 될수 있을것 같다. 최소한 내용은 차치하고 외형적인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것 같다는 생각이다.
Guide의 설명에 깜짝 놀랐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 Pilgrim들에 무료로 식사제공을 하는데, 전부 Volunteer들이 만들어 제공 한다고 했다. 이곳에서 매일같이 제공하는 음식은 약 80,000 정도분 이라고 하는데 할말이 없어질정도로 입이 벌어졌다 막힌다. 그러면서 이음식들을 만들고, 또 성지(Holy Temple)에서 음식을 먹는다는것은 배를 채우는것 이상의 의미가 큰것같다.
그가 안내하는데로 부엌을 관람했다. 첫번째 놀란것은 음식담는 식기였다.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그릇앞에서 봉사자가 음식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었다. 나도 하나 들었더니 Guide가 정색을 하면서 말린다. 음식의 맛도 안맞고 또 그럴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뜻같다.
여기는 "난"을 만드는 반죽을 하는 곳이라고 한다. 터반쓴, 겉으로봐서는 봉사를 할사람같지 않은 많은 Sikh들이 정말로 헌신적으로 정성을 쏟는것 같다.
이분들은 먼저 음료수를 제공받고 있는것으로 이해됐다. 여기서는 남녀 구별이 없이 편하데로 자리를 잡고 앉는것으로 이해됐다.
막잡아 올린 멸치때 같이 번쩍 번쩍 빛나는 것들은 수저들이다. 규모가 엄청나다. 허긴 8만명이상이 먹어야 하니...
이곳은 Green Bean의 껍질을 벗겨내는 곳이고, 아래는 조그만 양파들을 손질하는 봉사자들이 일하고 있는 모습이다.
채소를 다듬는 모습이고, 아래는 준비된 성스러운 음식을 배식받아 먹고있는 모습이다.
혹시 더 필요하면 다시 채워주는 봉사자가 바켓에 국물을 들고 다니면서 나누어 주고 있다.
이봉사자는 마실물을 수도꼭지가 달리 큰 통에 담아서 바퀴에 끌고 다니면서 사람들이 수도꼭지에 그릇을 대면 손잡이에 연결된 Lever를 당겨 물을 받아 마시게 하는 봉사자이다.
난을 만들기위한 반죽을 먼저 만들고 다시 방망이 같은것으로 얇게 만들어 다음 단계로 넘기면 그곳에서는 또 다른 봉사자들이 Propane개스로 달군 Grill에서 구워낸다.
봉사자들과 대화를 하다보니 같이 사진을 찍자는 제안이 들어와 그들과 함께 한컷했다. 머리에 스카프를 썼기에 마치 봉사하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나는 완전히 복장에서 부터 관광객이라는 딱지가 붙어있는, 어쩌면 이들이 일하는데 방해꾼이 될수도 있고, 이방인이 잠깐 들려서 이들과 어울림으로써 이들에게 새로운 Energy를 불어 넣어준다는 자부심이 될수도 있을것이다.
가마솥의 크기도 군대에서 사용하는것 보다 더 큰 것 같아 보인다.
모든 봉사자들이 천사들인데..... 이런 참사랑과 봉사가 바로 이성전이 있는 울타리밖에서도 이루어졌으면 얼마나 좋을까? 얼마나 마음들을 훈훈하게 해줄까? 얼마나 주위환경들이 깨끗해 질수 있을까? 봉사정신에 감탄 하면서도, Unbalance라는 생각이 머리에 떠오르자 골치가 아프다.
다먹고난 빈 식기들은 들고나와 대기하고 있는 봉사자들에게 넘겨주면 그들은 다시 통에 모은다. 하루종일 이들은 봉사를 하는데, 이것도 미리 등록을 해야 일할곳을 배당받게 된다고한다.
부엌을 구경한 관광객은 우리 부부가 유일한것 같다. Guide의 배려에 감사했다.
부엌순례를 마치고 나오자 햇볕이 더 많이나는 낯시간이 되면서 Baptize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보인다. 구경하는 사람들은 남녀가 한데 어울려 이들에게 시선이 집중되여 있고, 머리에 두른 터반은 절대로 물에 적시지도 않지만, 벗는법은 절대로 없단다.
Temple의 모든 행사는 전부 Donation으로 가능하다는 Guide의 설명에 나도 동참했다. 종교를 떠나서 인간의 박애정신이 이곳에서 표출되고 있음을 보면서, 내가 믿는 종교에서 하는 봉사활동들과 순간 비교해본다. 이것 저것 저울질 하지않고 무조건 하루 또는 그이상의 시간을 아낌없이 자진해서 바치는 이들의 자세에서 배울점이 많다는것을 체험했다. 한편 부끄럽기도하고, 너무나 편하게 믿음 생활을 해왔고, 그런 기류가 팽배해 있는 형식이 자세가 부끄럽다.
이젊은 친구는 아무도 보지 않은 성전에 한쪽 구석에서 부서진 타일에 시멘트를 부착시키고 있다. 아래 두사람은 Donation하기위해 두손에 뭔가를 들고 있는데 내용은 잘 모르겠다.
성찬식 할때 떡과 포도주를 받아 마시듯, Sikh교도들을 포함한 누구나 Priest 또는 봉사자가 손으로 젖은 설탕이 들어간 쌀가루반죽을 조금씩 떠서 나누어 주는 장면이다. 나는 받아 먹지를 못하고 피했다. 나도 모르겠다 왜 그랬는지를.... 여행 처음 시작했을때도 Sikh교도 성전에서 피했었다.
요즘의 Sikh젊은들도 시대의 흐름에는 별수 없나보다. 지금 노래하는 사람들은 전부 나이가 든 세대로 옛날 조상들이 전통적으로 해오던 Sikh 노래와 설교를 교대로 해가고 있고, 관중은 모두 나이들 Sikh인들 뿐이었다. 이곳이 아니면 이들의 설교는 이제는 들을수 없다고한다.
11번째 Guru인 Scripture를 Priest가 그앞에 앉아서 지키고 있다. 그리고 신도들은 그곳을 지나면서 경배를 한다. 이들은 Scripture도 인간으로 취급하여 밤이되여 사람들이 잠자리에 들시간이 되면, 이경전역시 다시 그옆에 있는 침실로 옮겨져 잠을 주무시게 한다고 설명이다. 아래에 보이는 침대가 바로 경전이 밤에 주무시는 곳이라고 한다.
Golden Temple에 들어가기위해서는 밀려든 인파로 인해 최소한 한시간 이상을 줄에 서서 기다려야 겨우 차례가 온다고 하기에 우리는 Give up 하고 말았다. 아래 사진에서 처럼 시루속의 콩나물 처럼 꽉차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이사람들의 인내와 믿겠다는 정성은 높이 사야할것으로 귀감이 된다.
이곳은 별도로 또 donation을 받는곳이라고 하는데, 이곳에 Donation를 별도로 또하는 이유는 그렇게 헌금하면 본인의 이름과 가족친지들에 대한 Information을 주어, 그내용을 Priest가 그형편에 맞는 경전 구절을 찾아 읽고 기도를 해준다는 것이다. 이런 기도를 받기위해 헌금하고 기다리는 사람의 숫자가 많이 내가 만약에 오늘 헌금을 한다면 최소한 3년 내지 4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성전 탐방을 마치고 문밖에 나오자, 바로 노점상에서 시계를 팔고 있었다. Guide 손목시계와 Belt를 구입한다. 값이 싸지만 여기사람들의 수입에 견주어 보면 적은 액수가 아니였다. 사람하는 사촌 동생에게 선물할것이라고 하면서 싱글 벙글이다. 그옆에서는 또다른 봉사자가 지나는 길손에게 마실물을 준비해서 진열시키고 있다. 봉사는 때와 장소가 굳이 예비돼야만 한다는 편견을 여기서 보면서 다시한번 생각해 본다.
Jallianwala Bagh는 이곳 Punjab의 Sikh인들을 비롯한 당시 인도의 독립을 위해 희생된 분들이 죽어간 흔적을 기리기위해 만든 공원이라고 한다. 이공원에 들어가는 길은 아주 좁은데, 따지고 보면 건물과 건물사이에 남겨둔 공간쯤으로 이해하면 얼마나 좁은 통로인가를 이해할수 있을것 같다. 세계1차 대전이 끝나고, 인도에서도 독립에 대한 국민들의 욕구가 커지면서 당시 인도를 식민지화 했던 영국이 어려워지게 된다. 이때 이곳을 통솔하고 있던 영국군의 Dyer장군이 이곳에 인도국민들 20,000여명을 모이게하고 그들의 독립에 대한 도움이 되는 연설을 하겠다고 하여 많은 사람들이 모였었다고 한다. 다모인 군중에게 연설대신, 그는 경비를 서고 있던 병사들 90명에게 발포명령을 내려 1650발의 총을 발사하여 1100명이 즉사하고, 400 여명이 부상을 당하는 학살이 자행된 곳이라고 한다.
1945년 인도가 영국으로 부터 해방되면서 1947년 완전독립과 함께 이곳을 유적공원화 했다고 한다.
당시 이땅의 주인 Jalle Singh씨가 땅을 국가에 헌납하여 지금과 같은 공원조성이 됐고, 터반쓴 이친구는 평생을 철도에서 근무하고 은퇴하여 지금은 우리부부처럼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친구역활을 해주고 있는 이곳 지방의 유지라고 설명해준다
그참상을 그린 벽화가 당시의 어두운면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중국의 난징 난민 학살을 연상케 했다. 또한 경남 거제도에 있는 거제포로수용소에서의 포로들의 생활상과 어려움을 보는것 같은 느낌을 받았고, 당사자들의 삶은 얼마나 참옥했을까? 나는 그냥 한번 보고 지나가는 관광객에 불과하지만....
대학살을 잊지않기위해 총알의 모습을 닮은 Monument를 인도정부가 세웠다고 하는데, 이비석의 설계는 미국출신의 건축가 Benjamin씨가 1950년에 만들어서 1963년에 위에서 언급한것 처럼 인도정부가 건설했다는 설명이다.
위의 사진은 120명의 시신이 학살사건후 발견된 우물인데, 후세사람들이 이곳을 "순교자의 우물"이라 명명하여 그 숭고한 뜻을 기리고 있다고 했다.
당시의 영국군들이 난사했던 흔적으로 남아 있는 28개의 총탄을 받았던 건물의 벽돌벽에는 힌페이트로 표시해서 구경하는 사람들에게 당시의 참상을 알려주고 있었다. 우리 조국을 비요해 봤다. 거창 양민학살사건, 중앙청건물, 그외 많은 역사적 가치가 있는 유적들이 지금은 흔적도 없이, 멍청한, 그리고 반역적행위를 한 위정자들의 Leadership에 의해 대한민국땅에서 사라져 버렸다. 소총탄환 자국 28개까지, 더욱히 민도가 지구상에서 꼴찌를 다투는 나라에서까지 이렇게 보호하여 후세들에게 알려주고 있는데......
공원의 나무조경이 이채로웠다. 나무모양을 영국군 Soldier가 총을 들고 방아쇠를 당기는 모습으로 키웠다. 이지구상에 전쟁은, 인류가생존하는한, 절대로 없어질수 없다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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