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October 28, 2015

월남전의 처참함을 대변한 당시어린소녀, 이제 전쟁 고통의 흔적을 지운다. 전쟁엔 승자 패자 똑같다는 교훈.

6/25 전후 세대들은 월남전(Vietnam War)에 대한 좋고 나쁜 기억들을 아직도 어제일처럼 머리속에 간직하고 있다.  월남 사이공이 함락하고, 마직막 구조헬기가 미대사관 옥상에서 피난민들 싣고 떠오를때 미쳐 기회를 잡지 못했던 많은 사람들은 절규했었고, 그보다 몇년 앞서, Napalm 폭탄을 맞아 도망치던 어린 아이들중에서 완전 나체로 두팔을 새가 날개펴듯히 벌리고, 공포에 질려 울부짖으면서 도로변에서 방향도 모르고 쫒겨 달아나던, 그순간을 포착한 기자는 그해에 Pulitzer 상을 수상했었던, 월남전의 아픔을 대변한 당시 그어린 소녀가, 캐나다로 건너와 새삶을 꾸리면서 살고 있다는 뉴스를 몇년전 접한바 있다.

내가 2012년도에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캐나다 동부지회의 책임자로 봉사하면서 우리한인사회에도 많은 월남전 참전용사분들이 이곳 캐나다에서 거주하고 계심을 알았었다. 이분들이 이Phuc여인의 사진과 기사내용이 실린 나의 블로그를 읽는다면 당시의 참상이 머리속을 뱅뱅 돌것으로 확신한다.  그리고 전쟁의 정신적 결과에는 승자나 패자가 따로 있을수 없음도 깊이 느끼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소녀가 폭탄의 불길에 화상을 입어 온몸이 흉터 투성이인데, 이를 이제 완전히 제거하기위한 수술이 진행 된다는 또다른 희망의 뉴스가 전파를 타고 전세계로 퍼지고 있어, 이번에는 슬픔이 아닌, 응원의 박수를 전세계가 보내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

사진속에서 보여졌던 Kim Phuc, 어린 소녀의 모습은 당시 월남전의 살아있는 증거였었는데, 사진에서 그녀의 화상은 보여지지는 않았었다. 다만 어린 꼬마는 카메라를 들이대는 기자를 향해 통곡하면서 무작정 뛰었을뿐이었다. 양팔은 뭔가를 털어내려는듯 휘청대고 있었으며, 완전 나체인채로 였다. 그녀가 입고 있었던 옷이 불이 붙어 벗어던졌기때문이었다.

그후 40년 이상을 그녀는 그런 흉터를 긴 옷소매속에 감추면서 살아왔는데, 엉뚱하게 입고있던 옷의 소매가 떨어지면서, 1972년에 월남전 폭격당시 떨어뜨린 Napalm탄이 빗나가 그녀가 그유탄을 맞은이후로 고통속에서 살아왔던 그흔적이 적나라하게 나타나게 된것이다. 이제 그녀가 그런 상처를 치료하여 원상으로 되돌아갈 기회가 온것이다.  이런기회가 오기전까지는, 그녀는 생전에는 안되고 죽어서나 그런 아픔에서 해방될것으로 생각해온 아픔이었었다.

"지나온 세월동안, 나는 이다음 생을 마감하고 천당에 갔을때에나 이런 흉터와 아픔의 고통에서 해방될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지내왔었다. 뜻밖에도 이제 그런 천국을 지상에서 만나게 된것이다"라고, 레이저를 이용한 화상치료 전문의를 만나 치료받기위해 Miami에 도착하면서, 고백한 말이다.

지난달말에 52세의 Phuc씨는 '마이아미 피부재생및 레이져치료' 전문의 Jill Waibel씨로 부터 장기 치료를 받기 시작한 것이다. 전문 의사의 설명에 따르면 계속 치료를 받으면, 그녀의 왼쪽 팔에서 시작되여 목을 지나 머리까지 퍼져있는, 울퉁불퉁한 피부와 두꺼운 흉터자국들이 거의 정상으로 회복될것이라고 치료의미를 설명한다.

담당의사, Waibel의 설명에 따르면, 아픔과 고통이 끊이지 않고 그녀를 괴롭혀왔는데, 그러한 고통도 말끔히 없어지게 될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녀의 곁에는 남편 Bui Huy Toan씨와 또 다른 남자가 동행 했는데, 그는 다름아닌 로스안젤레스에 있는 AP통신의 사진작가 Nick Ut씨로 그녀가 9살때부터 그녀의 삶에서 떼어 놓을수 없는 분신과 같은 존재이다.
"그분은 나의 삶에서 처음 시작이자 마지막과 같은 분이다"라고 Uncle Ut씨를 그녀는 그렇게 설명한다.

The iconic 1972 photograph that won Nick Ut the Pulitzer Prize. Kim Phuc was 9 years old when a South Vietnamese plane accidentally dropped flaming napalm on its own troops and civilians, burning and scarring her for the rest of her life.
“그분은 당시 나의사진을 찍었었고 지금은 그분이 나와함께 여기서 나와함께 새로운 인생여정을 걸으며, 새로운 삶의 장을 열고 있다" 라고.

현재 65세인 Ut씨는 1972년 6월8일, 당시 월남군의 전투기가 잘못판단으로 Phuc씨가 살고 있던 거주하고 있던, 수도 사이공 외곽에 있는 Trang Bang에 네이팜탄을 투하, 많은 민간인들이 생명을 잃는 사고를 당한후, 그곳 현장을 뛰쳐 나오는 순간에 당시 9세인 Phuc의 모습을 사진에 담은 것이다.
Ut씨는 당시 어린소녀가 월남말로 "너무 뜨거워, 너무뜨거워"외쳐 대면서 아우성치는 그녀를 AP 통신의 미니밴에 싣고, 바닥에 눕힌후 불길에 탄 그녀의 피부를 벗겨낼때, 어린 소녀는 "너무너무 뜨거워, 나는 죽을거야, 나는 죽을거야"라고 지쳐 흐느꼈었다고 설명한다.
그는 인근 병원으로 이송한수 치료를 받게하고, 곧바로 사이공에 있는 AP통신사로 달려가, Phuc이 불길에 싸여 허우적 거리는 사진을 포함한 당시의 상황을 정리하여 그해에 Pulitzer 상을 수상하게 됐었다. 
Phuc소녀는 당시 온몸에 화상을 입어 고통속에서 헤메였으며, 그와 비슷하게 온몸에 화상을 입었던 많은 사람들이 결국 목숨을 잃었었다고 Waibel씨는 참혹상을 설명한다.
Napalm탄 스틱은 마치 젤리같아서, Phuc 같은 피해자들은, 보통 일어나는 불길에서는 피할수 있는 상황과는 완전히 다르게, 발산되는 열을 피할길이 거의 없었다고한다. "네이팜탄 불길은 피부에 닿으면 떨어지지 않고 오랫동안 붙어있게된다" 라고 Waibel씨가 설명하면서, Collagen이 피부를 망가뜨려 많은 흉터를 만들고, 그두께는 보통 피부의 4배이상 두꺼워져 흉칙스럽다고 설명한다.
지난 수년동안 그녀는 인고의 재활운동을 하면서 원상을 찾기위해 많은 시간을 보냈었지만, 그녀의 왼쪽 팔은 오른쪽 팔처럼 사용이 잘안되여, 그런 왼쪽팔의 영향으로 그녀가 그렇게 배우고 싶어했던 피아노를 치는 꿈을 접어야만 했고, 가벼운 가방같은 소품도 그녀의 왼쪽팔을 사용하여  들고다니는것은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다.

"아직 꼬마였을때, 나는 나무오르기를 무척 좋아해서 마치 원숭이 처럼 오르 내리곤 했었다.  내가 화상을 입은뒤로는 나무를 그렇게 올가갈수 없었으며 친구들과 그러한 놀이를 더이상은 할수 없어 무척 괴로웠고, 불구자가 된것을 확실히 알게됐었다"라고 구아바열매를 따서 나무 아래에서 쳐다보고 있는 친구들에게 던지곤 했었던 기억을 되살리며 Phuc은 과거를 회상한다.
본인도 모르게 신경이 퍼져있는 피부를 잘못 건드리면 그고통이 너무도 심했는데, 1990년대 초에 그녀의 남편과 함께 캐나다와 이주해와 살면서, 계절이 바뀔때에는 더 심한 고통이 그녀를 괴롭혔었다. 이들 부부는 토론토시 외곽지역에 살면서 현재 21살, 18살된 두아들을 두고 있다.  그녀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가 되여, 참을수 없는 고통,"증오와 괴로움, 고통, 희망이 없는 삶"속에서 헤여날수 없을 절망상태에서도, 육체적 정신적 평화를 마음속에 유지할수 있었다 라고 고백하고 있다.
"수술, 치료약, 의사들도 내 육체적 정신적 괴로움을 치료해주지 못했다.  오직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라는 기적을 그리면서 이러한 고통으로 부터 해방되는날을 항상 염원했었다"라고 아픔을 설명했다.
당시의 기자 Ut씨는 Phuc을 마치 딸처럼 여겨 수시로 전화를 해서 그녀의 상태를 걱정하고 염려 했고, 그때마다 Phuc은 그녀의 고통을 호소하곤 했었다.  그는 Vietnam을 방문해서 병원 방문을 하고 그곳에서 Agent Orange와 또 Napalm탄에 맞아 Phuc처럼 고통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전쟁의 흔적들이 아직도 진행되고 있는 광경을 보면서 이렇게 세월이 흘러간다면 Phuc을 위해서 할수 있는 희망이 과연 있을까?라는 절망감속에서 헤맸었다고 한다.
Ut씨는 그녀의 치료에 대해서 희망보다는 낙망이 더 커져가고 있었다. "43년이 지난 오늘, 이러한 치료를 하는데 Laser가 어떻게 이용되고 있는가? 훌륭한 의사가 그녀를 치료할수 있을거라고 희망을 걸고 있다.  그녀가 이제 막 18 또는20세의 젊은이라면 더 쉬울텐데, 그녀는 이제 50세가 넘었다. 너무나 긴 세월이 흘러가버린 것이다"라고.


담당의사 Waibel씨는 laser광선을 이용하여 화상을 입은 환자, 특히 Napalm탄으로 화상을 입은 환자들을 상대로 10년 넘게 치료를 해온 전문의 이다.  환자 한명을 치료하는데 US 달러로 약 $1,500 내지 2,000달러가 소요된다.  그러나 닥터 Waibel은 Phuc씨가 치료상담을 위해 그녀에게 전화를 걸와 왔을때 무료로 치료하겠다는 제의를 한것이다.  의사 Waibel씨의 시아버지가 몇년전 교회모임에서 Phuc여사가 자기의 이야기를 신앙고백처럼 할때 그녀의 과거를 알게되면서, 며느리인 Waibel에게 그녀를 치료해줄수 없겠느냐?라고 의견을 개진했었다고 한다.

Waibel씨의 진료실에서 처음 치료를 시작하면서, 향이 나는 촛불을 켜놓고 laser치료로 피부가 타는 냄새를 정화시키면서 그녀의 남편은 그녀의 손을 꼭잡고 기도를 드렸었다.
Phuc씨는 의사 Waibel에게 "고통은 하나도 없어지지 않았고", 너무도 괴로웠었다 라고 치료를 받으면서 호소했다.
닥터 Waibel씨가 Phuc여사를 치료하기위해 사용되는 laser치료는 원래는 눈가의 주름살을 없애기위해 개발된 치료법이라고 설명한다.  laser광선에서 나오는 열은 물이 끓는 온도까지 올라가 상처난 피부의 티슈를 태워 날려 보내는 방법이다.  그렇게한후 바로 피부에 두껍게 치료를 하게되는 크림을 바르고, 동시에 Dr. Waibel씨는 보호안경을 끼고 laser광선을 쏘게된다. 몇번이고 반복해서 하게되면 Phuc여사의 피부에 빨간 사각형모양의 반점이 나타나면  '빕' 소리가 나는 laser광선을 쏘아 태우게 되면 옆에서 시중들고 있는 간호사는 배큠클리너 호스를 그부위에 대고 타고남은 재를 흡입처리한다.
이러한 치료과정을 거치면 아주 미세한 구멍이 피부에 생성된다.  그러면  laser를 쪼인 피부의 티슈를 통해 의학적 약품성격인 담백질형성(Collgen-building)이 자리잡게 된다고 한다.  이렇한 치료를 적어도 7번 이상 하게되는데 그기간은 약 8-9개월 걸릴거라고 닥터는 설명한다.
담요로 꽁꽁 덮혀있고, 고통을 줄이기위해 사용된 약으로 졸음은 쏟아지고, 치료를 받으면서 생겨난 조그만 빨간 반점이 피부에 생겨나고, Phuc여사는 손가락이 약간 손바닥쪽으로 굽어지는 현상이 일어났다.  그녀가 어렸을때 피부이식수술을 했었던 때와 비교하면,  이번 laser치료는 그때에 비해서 고통을 견뎌내기가 무척 쉽다고 했다.
"이번 수술은 그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라고.
몇주후에는 그녀는 캐나다의 살림집으로 되돌아가게된다. Phuc여사는 그녀의 피부치료부위에는 빨간흔적이 있으며 피부가 땡기고 가려움증이 있는데, 이런현상은 피부의 상처가 회복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고통쯤은 넉근히 참을수 있어 치료를 계속할것이라는 결의를 보여주기도 했다.
"어쩌면 이번 치료는 일년 이상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회복될수 있다는 희망에 맘껏 부풀어 있고, 모든것에 감사해 하고 있다" 심경을 밝히고 있다.

제발 깨끗이 완치되여 월남전의 상징으로 각인되였던, 꼬마 Phuc이 수십년이 지난후까지 그녀의 피부에 남아있는 전쟁의 상처를 깨끗이 걷어내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게됐다는 이후에 소식이 좋은 결과를 안고 다시 세상에 알려졌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다.

http://www.thestar.com/news/world/2015/10/25/laser-treatment-could-end-pain-for-iconic-napalm-girl.html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