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May 28, 2019

Nigeria,맹인 거지들의 안내원으로 이용키위해 소년 납치해서,한국에서도 오래전에...

나이지리아에서는 어린 아이를 납치하여, 사회의 한동안 격리시켜놓고,맹인거지들의 길잡이로 훈련시켜 맹인들이 동냥하는데 이용하고있다는 충격적인 보도가 전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납치 당시 7세였던  Samuel Abdulraheem 은 나이지리아의 북쪽 지방, Kano에서 납치 당할 당시의 기억을 완전히 잃어 버리고 있었다고한다.




그의 아버지는 4명의 부인으로 부터 17명의 자식들을 낳았으며,  납치되느날 그는 집안일을 돌봐주는 식모와 단둘이 있었다고한다.  그의 가족들은 자전거 놀이를 하느라 밖으로 나갔었던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날이후로 그의 가족들은  6년동안 그를 볼수가 없게 된다.

탐색작업

"그를 찾기위해 우리가 할수 있는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라고 큰 누나 Firdausi Okezie는 당시를 회고한다.  동생이 실종당시  그녀는 21세였는데, 처음에는 그의 실종을 알지 못했었다.
그녀가 다니던 대학에서 집에  전화를 걸때면, 동생은 달려가 전화를 받고, 한참동안 얘기를 하곤 했었는데, 언제 부턴가 그녀가 전화를 하면 동생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전화를 받곤해서, 그녀는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것을 의심하게 됐었다고한다.

어느날 오후, 학교 수업이 끝난후, 누나 Firdausi는 불시에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되돌아 가서, 건축사일과 호텔일을 하고 있는 아버지로 부터 가슴이 무너지는 얘기를 들었었다. 아버지의 설명에 따르면 동생이 실종된지 벌써 한달이 넘었다는, 청천벽력같은 아버지의 실토였다.





"이사건이 난후 아버지는 식모를 구속시켰으나, 당국이 조사후 그녀를 풀어줬다"라고 누나는 설명한다. 또는 그들은 이사건을, 가능한한 오랫동안 Samuel의 친어머니가 알지 못하도록 숨길려고했었다고한다.  매번 새로이사간 집에서 Samuel의 생모가 전화를하면, 그때마다 다른이유를 대곤했었다고한다.
결국에는 숙부를 시켜서 실종사실을 엄마에게 알려 주도록 했다고 한다.
또한 경찰은 계속적인 조사를 했었고, 가족들은 신문에 사람찾는 광고를 내고, 많은 사람들을 동원하여 거리를 샅샅히 뒤졌다고 한다.  혹시라도 그가 차에 치여 길가의 Ditch에 처박히지는 않았을까 라는 경우를 가정하고 주변의 Ditch를 세밀히 뒤졌었다. 또한 머슬림 종교의 학자로 알려진 성직자들과 상담하기도했었다.  아버지는 집안식구들에게 동생,Samuel은 죽은것으로 인정하는게 어떻겠느냐?라고 의견을내기도했었다. 즉 집안식구들이 할수있는 최선의  방법을 선택한것이다.

절규
누나 Firdausi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대학졸업논문을 뒤로 미루고 동생찾는데 시간을 사용했으며, 1년후에 졸업하면서, 직업을 찾기위해 남쪽지방인 Lagos로 이주 했었다.  그녀는 기도교인으로 개종하고, 시내에서 조금 떨어져있는 Ogun주에 있는, Nigeria에서 가장 큰 교회들 중의 하나인, Winner's Chapel에 참석 성경공부를 하기 시작했었다.  매년 12월에는 전세계로 부터 기독교 멤버들이 모여서 5일간 기도하며 공동생활을 해오고 있다.



Siloh 행사로 알려진, 교회출석 신자들에게 관심이 많은, 신도들은 자유로 교회내에서 그들의 물건과 써비스를 진열하고 상행위를 할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었다.  2000년 12월까지 직장이 없었던 Firdausi는 그녀의 어머니가 만든 타이-다이를 판매하기위해 조그만 스탠드 하나를 신청했었다.  목수가 물건을 진열할 스탠드를 만들고 있는 동안, 그녀는 의자에 앉아 잠시 머리를 식히고 있었다.  마침 그때 한거렁뱅이가, Allah의 이름으로 동냥을 구걸하고 있 는 광경을 목격하고, Firdausi는 고개를 들어 쳐다봤었다.

그거지는 갈색의 찢겨진 허름한 옷에 몸에 맞지않은 한소년의 왼쪽 어깨를 꽉잡고 있는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순간 Firdausi는 소스라치게 놀랐는데, 거지를 안내하고있던 그초라한 소년은 오랫동안 잃어버려 찾아 헤매고 있던 동생이었던 것이다.





납치극의 희생양.


"현재 30세인 Samuel은 어떻게 해서 그가 부모로 부터 떨어져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를 전연 기억못하고 있었다. "내가 오직 기억하고 있는 부분은 기차를 타고 여행을 했었던것 뿐이다"라고.  그는 불구자들이 모여사는 거렁뱅이들만이 살고있는 지역인, Lagos의 외곽지역에 살고있는 한쪽 팔뚝만 있는 여인에게 인계 됐었다.  그여인은 그어린 소년을, 하루에 500 Naira(약5달러, 2.50파운드, 당시 환율)를 받기로하고 장님 거렁뱅이에게 넘겨 주고만다.

눈먼 남자들이나 여자들이 소년 소녀들에 의해 안내되는곳은 Nigeria의 많은 거리에서 목격하는것은 하나도 이상한게 아닌 일종의 일상생활인 것이다. 특히 교통이 혼잡한 거리에서 그들은 차창을 두드리거나 회교성전 또는 교회주위를 맴돌면서 구걸하는 행위는 그들의 일상인셈이다.

Samuel은 그여인과 계속 허술한 그녀의 집에서 매트리스를 침대삼아 살아왔었다. Samuel의 설명에 따르면 지난 수년간 5명의 다른 소년들이 이곳으로 와서, 다른 소년들과 같은 지역에서 기거하면서 장님 거렁뱅이들이 그들을 고용해 구걸행위를 해왔다고 그간의 실상을 설명했다.



Samuel은 납치된 당시에 그에게 일어났거나, 아니면 알지못하는 물질을 먹였던 것으로 의심하고 있는데 왜냐면 그순간에 가족들을 생각할수 없었거나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는지 이상할 뿐이었다.
"나는  그어떤 감정이 있었었는지 확실치 않으며, 잠에서 깨어났을때 몸은 무기력했던것을  알수있었고, 그리고는 다시 맹인 거지들을 안내하러 밖으로 끌려 나갔었다.  다만 돈을 벌어서, 음식을 먹고 잠을 자고 그리고는 다음날에도 똑같은 일을 했을 뿐이었다."라고 그는 기억을 더듬었다.



노예로 살아온 인생.

Different beggars hired him for a period of anything from a week to a month.때로는 일주일 또는 한달간씩 그는  다른 맹인 걸인들에게 팔려 다녔으며, 하루의 일이 끝나면 Samuel과 걸인들은  여러곳의 편리한 공공장소에서 서로 맞대고 잠을 자곤 했었다. 만약에 맹인 걸인이 그와 함께 일하는것을 좋아하면 그들은 또  일정기간 그를 고용하여 그와 함께 지내곤 했었다.
"나는 마치 노예처럼 일했으며, 나는 내가 가고싶은곳으로 가고싶다는 얘기를 할수도 없었고, 아무것도 내마음데로 할수 없었다. 나는 항상 그주위에서 맴돌아야만했었다."라고 그는 설명이다.
또한 Samuel은 항상 그들과 함께 행동을 해야 했으므로 친구를 사귈시간도  없었고, 오직 할수 있었던것은 다른 걸인의 아이들과 가끔씩 같이 놀아준게 전부였었다. 그리고 잠자리로 드는게 그의 생활의 전부였었다.


오래전, 한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어린이 유괴하여 외딴섬으로 데려가, 외부와 차단시킨채 중노동을 시켰었던, 그래서 국민들의 분노를 샀었던 기억이 있었지요. 그때는 한국이 지금처럼 생활환경이 좋치 못했기에 가능했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느 나라이던, 국민들의 생활이 궁핍하면, 이런한 인신유괴범들이 창궐하는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Samuel의 큰 누나가 동생을 구출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점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답니다.

기적이 일어났다.

2000년12월에도 Samuel은  걸인을 안내하면서, Winners Chapel에서  프로그람이 이 있다는 뉴스를 들었는데, 그곳에서 그는 꿈에도 그리던 누나를 만난것이다.  처음에 누나 Firdausi는 그렇게도 찾아 헤맷던 동생을 보고 포옹하는 기쁨의 충격이 너무도 컸었다. 누나의 그때에 그녀가 괴성을 질렀던 순간을 기억하고있다.  "나는 땅바닥에 주져않고말았었다" 라고 누나는 울먹였다.
Samuel의  외모는 형편없이 지저분해 보였었고, 오른쪽 어깨는 많이 기울어져 있었다. 또한 그는 매우 바보같은 모습이었으며, 말한마디도 못하고 있었다. 그모습을 본 누나 Firdausi는 통곡을 할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멍하니 쳐다만 봤었는데  곧이어 내가 알고있는 사람임을 금새  알수 있었다. 이사람은 나와  가족관계에 있는 그 누구인것을 알수 있었다"라고 Samuel은 설명한다.


Sometimes people gave them food while they were out begging. At other times they hung around restaurants and ate the leftovers or scavenged in dustbins.
"I was always hungry. During the daytime when you work, you hardly sit down to eat," he recalls.
"I didn't feel the beggars were bad. They wake up, beg, the way people wake up and go to work."
Day after day, Samuel walked from one end of Lagos to the other with a beggar's right hand gripping his shoulder.
Sometimes, they trekked to neighbouring states or across the border to Benin. If the beggars received news of potential benefactors gathered somewhere, they told Samuel and he took them there by bus.
"There were times when you get so tired and you start bypassing people, but blind people are very sensitive - their hearing - so they pick up sound. Sometimes they would twist your shoulder and say: 'There is someone there. Why are you moving away?'
"They try to make as much money as they can."


 Image caption David Oyedepo, founder of the Winners Chapel, held Samuel and prayed for him 

 
Soon a crowd gathered and drawn by the commotion, church officials also arrived. They managed to make sense of Firdausi's barely coherent joy and decreed that it was a "miracle" worth sharing with the entire congregation.
They ferried Samuel to a corner and gave him a quick wash. They found him fresh clothes to wear and rushed them both to the stage of the 50,000-seat auditorium where Firdausi was given a microphone.
In tears, she narrated how she had just found her brother who had been missing for six years.
Firdausi recalls how the entire congregation leapt out of their chairs in shouts of praise and thanksgiving.
The founder of the church, David Oyedepo, then held Samuel and prayed for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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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at night they slept on the church premises in a car, as it was a long way to get back to where Firdausi lived.
She remembers waking up throughout the night and touching her brother to make sure he was real.



The recovery

Today Firdausi says that she regrets being so engrossed in finding her brother that she did not try to rescue the others from where he was kept.
Shortly before his rescue, a new young child had arrived in the yard, Samuel says.
At first, the boy wept non-stop and refused to eat. Suddenly, he became silent, leading Samuel to suspect that something had been done or given to the boy to quieten him.



"In a developed country, you would just go and tell the police. But, here, the police would ask you to give them money for fuel and all that, and I didn't even have a job," Firdausi says.
Besides, reintegrating her 13-year-old brother into normal life was proving more difficult than she had imagined. He had not returned to live with his father and she was taking care of him.
Boils and rashes had broken out all over his body, giving off a foul stench.
His right shoulder remained bent for more than a year, requiring X-rays and physiotherapy before it finally stopped showing signs of the pressure from years of being gripped by beggars.
Their mother did not recognise the youngest of her seven children - who was now rough and haggard.
She had to raise his arm and search for a birthmark before she finally believed that the person in front of her was actually her son.




The student

After six years of no formal education, Samuel was barely literate.
Firdausi was left frustrated with the search for a school - with many saying he was too old to join at primary level.
Just when she had almost lost hope, Firdausi met a school proprietor who had seen them on the stage at the church.
The woman agreed to admit him, while Firdausi made arrangements for additional private classes.


In three months, Samuel zoomed from primary one to primary four. Within a year, he had passed the entrance exams to secondary school.
Samuel spent only three years in secondary school when, aged 17, he felt confident enough to sit for university entrance exams.
He passed with flying colours, attaining the best result in his entire school, and gained admission to study chemical engineering at the Ahmadu Bello University in Zaria.
But Samuel's academic prowess would eventually lead to the sudden end to his studies.
Other students often sought his assistance with assignments and he was expelled during his fourth year after being caught writing another student's answers during exams.

'No grudges'

Samuel now works as a supervisor on construction sites.
"Someday when I am comfortable financially, I hope to continue my education," he says, adding that computer science might be an option as he is good with gadgets.
Samuel Abdulraheem
If anyone asks for money, I'd rather buy them food. Because, back then, it was better giving me food than money because the money went to the beggar and none came to me"



Samuel holds no ill feelings about what he went through while in captivity. He believes that all those years shaped him and taught him to try to always be nice to people.

"Nothing that people do actually gets to me. I just see it as a way of life. I don't hold grudges," he says.
Memories of the constant hunger have affected the way he relates to beggars and their guides today. He never gives them money.
"I'd rather buy them food. Because, back then, it was better giving me food than money because the money went to the beggar and none came to me."
Samuel hopes that, by sharing his story, people will pay more attention to beggars and the children who often guide them.
"When they see a beggar with someone, they should have a second thought that, possibly, this child could need help," he says. "Don't just see and give money and walk away."
Illustrations by the BBC's Manuella Bonomi

https://www.bbc.com/news/world-africa-48219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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