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May 31, 2019

지구상에서 살고있는 생존자중 가장 작은 남자에 대한 얘기. 이럴수가 있을까?


인구가 많은 나라에서는 별 희안한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는게 우리가 살아가는 인간사회의 한단면이다.
오늘은 한 Midget에 대한 얘기를 해보고싶다.

"난쟁이"라는 키가 작은 사람들은 가끔씩 길거리에서도 보곤 했다. 근데 태어나서 1년간 자란후부터는 그대로 청년이 되도록 살아가고 있다는 믿기지 않은 사실이 세상에 알려져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세상에 태어나서, 꼭 1년간만 자라고  그다음부터는 더 자라지 않고, 그대로 시간만 보내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을 쉽게 믿을수 있을까?  그리고 부모의 심정은 얼마나 애닮플까?
수명이 다해 부모가 이세상을 떠났을때, 그후의 그는 누가 보살펴 줄까?
많은 사람들은 이얘기를 들으면서, 하나의 Episode로 흘려버리고 웃어 넘기겠지만.....

실제로 그러한 현실 세계가 우리앞에 펼쳐지고 있다.
아래에 그 얘기를 들어보자.


26세의 Junrey Balawing씨는 외모가 마치 갖태어난 어린아이 같아 보일 정도로 키가 자라지 않고 있다.  원인은 잘 모르지만, 그의 성장은 1년후부터 정지 상태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11년, 드디어 그는 Guinness 세계 기록에, "살아있는 남자로서 지구상에서 가장  작은 인간임을 증명, 선언한다"라고.  이렇게 Guinnes세계기록에 등재되면서, 또 언론에 그의 신상에 대한 뉴스가 보도 되면서, Junrey와 그의 다른 가족들의 생활여건이 향상되는데 도움을 많이 얻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아들, Junrey의 부모님들은 Dapitan 시로 부터 일자리를 얻어 근무하게되였고, Junrey는 Theme Park에서 공원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난장이로 또 그의 상대로한 거인과 공동 모델로 등장하여 시선을 모으고 있다는 것이다.


Junrey의 형제 자매들은 발육과정에서 모두 정상적인 사람들과 같은 외모를 갖추고 있다. 유독 Junrey만 다르다.

Junrey의 아버지, Reynaldo Bulawing씨의 설명이 더 관심을 끌게 한다. "나는 내아들을  마치 신생아 처럼 보호하고 거두어 주고 있지만, 대화만큼은 성인들과 하는것 처럼 하고 있다.  때로는 나와 아들은 서로 의견이 맞지를 않아 다툴때도 있다.  그의 모든 동생들은 그를 형으로 깍듯히 대해주면서, 존경한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형의 불같은 성질때문에 형과 논쟁을 벌일 생각은 애초부터 접어두고 살아간다고 한다."

가족들은 그를  학교에 보낼려고 시도를 많이  했었으나, 다른 어린아이들의 조롱거리 아니면 눈총을 많이 받을게 두려워서 그만 포기하고 말았다고 한다.

메디칼닥터들은,신체적 성장을 주도하는, 뇌하수체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해 그에 비례하여  발육이 정지되는  고통을 받고 있는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의견이 많다고 한다.


https://news.cgtn.com/news/3d3d514e3555544f34457a6333566d54/index.html

Thursday, May 30, 2019

Ketone 음료수가 치매환자 치료에 사용된단다. 조속히 상용화 되기를...


지구상에는 많은 치매환자들이 고생을 하고 있고, 이를 돌보는  가족들 또한 무척많은 고생을 한다. 선진국일수록, 이들을 보호하는 시설이 비교적 잘 되여 있어, 어려움속에서도 가족들은 생업에 종사할수 있으나, 후진국에서는 가족들이 생계를 이어갈 직장을 버리고 보호에 매달려야 하는 무서운 질병이다.

이러한 무서한 질병치료약은 아직까지는 없어, 많은 과학자들이 연구에 연구를 하고 있어왔으나, 아직까지 이렇타할 획기적인 치료약이 개발됐다는  반가운 소식이  없어 안타까워 하던중에, 반가운 희소식이 전세계에 타전됐다.

코코넛에서 채취한 오일을 가공하여, 기억력 상실로 치매를 앓고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치료될수있다는 희망적인 소식이, 캐나다의 Quebec에 있는 연구소에서 발표되여 관심을 모으고 있다.

치매질환은 주로 노인들에게서 많이 발생하는데, 노인들의 뇌는 포도당이라는 영양분이 충분히 전달되여 뇌에 충분한 에너지를 뇌에 공급해줘야하는데, 그렇치 못할 경우, 모든사람들이 진저리치는 치매와 기억력상실로 이어지는것이다.


치매치료전문기관이(A new study published this month in Alzheimer’s & Dementia ), 노인들중에서  경미한 기억력상실로 인한 초기 어려움이 있는 경우, 코코넛에서 추출한 Ketones를 마시면서 이문제를 해결할수있다는 실험결과를 발표한것이다. 
이번  연구의 책임 연구관, Sherbrooke 대학의,Stephen Cunnane씨는 설명하기를, "뇌가 작동원리는  마치 하이 브릿을 부착한 자동차의 작동원리와 같다" 라고.
“The energy problem in the brain can be corrected by supplying the ketones to replace the problem with glucose,” he said.
“It was always thought that this energy problem was a consequence of the disease because the cells are starting to die,” Cunnane added. “We showed clearly that that’s not the case, because they’re utilizing this alternative fuel. We’ve shown convincingly, as far as I’m concerned, that ketones definitely help the ageing brain work better.”
For a period of six months, 52 seniors with mild cognitive impairments were given a daily placebo or 30 grams of “medium-chain triglycerides” (MCTs) in the form of a liquid dietary supplement. MCTs enhance the body’s production of ketones.
After a trial period, participants were tested for memory, word recognition and processing speed. Results from brain scans showed that those who took the daily dose of MCTs scored better on all tests.
“Brain regions that are starving, that don’t have enough energy, are now lighting up,” Cunnane said.
With just 52 subjects, the sample size wasn’t designed to assess those issues on a scientific scale, so researchers have launched a study double the size that will specifically address the effects of ketones on brain function.
Cunnane hopes the new study will to lead to the development of a ketone-rich beverage to protect the brain. He is currently partnering with a company to make more concentrated MCT.
But taste could be an issue. Eight participants dropped out of the study because they couldn’t tolerate the drink Cunnane and his team provided.
For 83-year-old Daniel Fricker, who stayed in Cunnane’s study, the beverage wasn’t appetizing.
“If you took milk and put some chalk dust in it, that might be what it would taste like,” he said.
Taste aside, the results are encouraging for researchers because most drugs tested to boost memory function by targeting plaques in the brain have failed.
“Some of the treatments that have not worked in the past might work better if we take care of the energy problem in Alzheimer’s disease at the same time,” said Cunnane.
“Changing the level of plaque in the brain doesn’t seem to have worked but if we try to change the energy level and try to get it back to normal, we have a better chance, we believe, of slowing down the disease,” he added. “Our cognitive results so far definitely lead to that impression.”
The research is also encouraging since MCTs are easily derived from coconut oil and palm kernel oil. MCT is already available in Canada as a food product with few known side effects.
Howard Chertkow, chair in cognitive neurology at Baycrest Health Sciences and the University of Toronto, called the research “very exciting.”
“The possibility that this relatively simple approach, a drink you take several times a day, might be enough to change the disease (is) very exciting and clearly has to be pursued in the future,” he said.
It’s also exciting for Canadian researchers, who Chertkow hopes will receive more funding for their work.
“Canadian research scientists can make a serious contribution in finding a cure for Alzheimer’s disease and we have to hope the government and the funding agencies will increasingly support this sort of research in the coming years,” he said.
Pressing questions remain about Cunnane’s research, according to Chertkow, including whether it will it work in everyone and whether its effects are only temporary.
“There are still more important steps to go, but it is a step in the right direction,” he said.



https://www.ctvnews.ca/health/ketone-drink-may-one-day-fight-alzheimer-s-disease-and-dementia-1.4438354

Tuesday, May 28, 2019

Nigeria,맹인 거지들의 안내원으로 이용키위해 소년 납치해서,한국에서도 오래전에...

나이지리아에서는 어린 아이를 납치하여, 사회의 한동안 격리시켜놓고,맹인거지들의 길잡이로 훈련시켜 맹인들이 동냥하는데 이용하고있다는 충격적인 보도가 전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납치 당시 7세였던  Samuel Abdulraheem 은 나이지리아의 북쪽 지방, Kano에서 납치 당할 당시의 기억을 완전히 잃어 버리고 있었다고한다.




그의 아버지는 4명의 부인으로 부터 17명의 자식들을 낳았으며,  납치되느날 그는 집안일을 돌봐주는 식모와 단둘이 있었다고한다.  그의 가족들은 자전거 놀이를 하느라 밖으로 나갔었던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날이후로 그의 가족들은  6년동안 그를 볼수가 없게 된다.

탐색작업

"그를 찾기위해 우리가 할수 있는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라고 큰 누나 Firdausi Okezie는 당시를 회고한다.  동생이 실종당시  그녀는 21세였는데, 처음에는 그의 실종을 알지 못했었다.
그녀가 다니던 대학에서 집에  전화를 걸때면, 동생은 달려가 전화를 받고, 한참동안 얘기를 하곤 했었는데, 언제 부턴가 그녀가 전화를 하면 동생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전화를 받곤해서, 그녀는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것을 의심하게 됐었다고한다.

어느날 오후, 학교 수업이 끝난후, 누나 Firdausi는 불시에 가족들이 있는 집으로 되돌아 가서, 건축사일과 호텔일을 하고 있는 아버지로 부터 가슴이 무너지는 얘기를 들었었다. 아버지의 설명에 따르면 동생이 실종된지 벌써 한달이 넘었다는, 청천벽력같은 아버지의 실토였다.





"이사건이 난후 아버지는 식모를 구속시켰으나, 당국이 조사후 그녀를 풀어줬다"라고 누나는 설명한다. 또는 그들은 이사건을, 가능한한 오랫동안 Samuel의 친어머니가 알지 못하도록 숨길려고했었다고한다.  매번 새로이사간 집에서 Samuel의 생모가 전화를하면, 그때마다 다른이유를 대곤했었다고한다.
결국에는 숙부를 시켜서 실종사실을 엄마에게 알려 주도록 했다고 한다.
또한 경찰은 계속적인 조사를 했었고, 가족들은 신문에 사람찾는 광고를 내고, 많은 사람들을 동원하여 거리를 샅샅히 뒤졌다고 한다.  혹시라도 그가 차에 치여 길가의 Ditch에 처박히지는 않았을까 라는 경우를 가정하고 주변의 Ditch를 세밀히 뒤졌었다. 또한 머슬림 종교의 학자로 알려진 성직자들과 상담하기도했었다.  아버지는 집안식구들에게 동생,Samuel은 죽은것으로 인정하는게 어떻겠느냐?라고 의견을내기도했었다. 즉 집안식구들이 할수있는 최선의  방법을 선택한것이다.

절규
누나 Firdausi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대학졸업논문을 뒤로 미루고 동생찾는데 시간을 사용했으며, 1년후에 졸업하면서, 직업을 찾기위해 남쪽지방인 Lagos로 이주 했었다.  그녀는 기도교인으로 개종하고, 시내에서 조금 떨어져있는 Ogun주에 있는, Nigeria에서 가장 큰 교회들 중의 하나인, Winner's Chapel에 참석 성경공부를 하기 시작했었다.  매년 12월에는 전세계로 부터 기독교 멤버들이 모여서 5일간 기도하며 공동생활을 해오고 있다.



Siloh 행사로 알려진, 교회출석 신자들에게 관심이 많은, 신도들은 자유로 교회내에서 그들의 물건과 써비스를 진열하고 상행위를 할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었다.  2000년 12월까지 직장이 없었던 Firdausi는 그녀의 어머니가 만든 타이-다이를 판매하기위해 조그만 스탠드 하나를 신청했었다.  목수가 물건을 진열할 스탠드를 만들고 있는 동안, 그녀는 의자에 앉아 잠시 머리를 식히고 있었다.  마침 그때 한거렁뱅이가, Allah의 이름으로 동냥을 구걸하고 있 는 광경을 목격하고, Firdausi는 고개를 들어 쳐다봤었다.

그거지는 갈색의 찢겨진 허름한 옷에 몸에 맞지않은 한소년의 왼쪽 어깨를 꽉잡고 있는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순간 Firdausi는 소스라치게 놀랐는데, 거지를 안내하고있던 그초라한 소년은 오랫동안 잃어버려 찾아 헤매고 있던 동생이었던 것이다.





납치극의 희생양.


"현재 30세인 Samuel은 어떻게 해서 그가 부모로 부터 떨어져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를 전연 기억못하고 있었다. "내가 오직 기억하고 있는 부분은 기차를 타고 여행을 했었던것 뿐이다"라고.  그는 불구자들이 모여사는 거렁뱅이들만이 살고있는 지역인, Lagos의 외곽지역에 살고있는 한쪽 팔뚝만 있는 여인에게 인계 됐었다.  그여인은 그어린 소년을, 하루에 500 Naira(약5달러, 2.50파운드, 당시 환율)를 받기로하고 장님 거렁뱅이에게 넘겨 주고만다.

눈먼 남자들이나 여자들이 소년 소녀들에 의해 안내되는곳은 Nigeria의 많은 거리에서 목격하는것은 하나도 이상한게 아닌 일종의 일상생활인 것이다. 특히 교통이 혼잡한 거리에서 그들은 차창을 두드리거나 회교성전 또는 교회주위를 맴돌면서 구걸하는 행위는 그들의 일상인셈이다.

Samuel은 그여인과 계속 허술한 그녀의 집에서 매트리스를 침대삼아 살아왔었다. Samuel의 설명에 따르면 지난 수년간 5명의 다른 소년들이 이곳으로 와서, 다른 소년들과 같은 지역에서 기거하면서 장님 거렁뱅이들이 그들을 고용해 구걸행위를 해왔다고 그간의 실상을 설명했다.



Samuel은 납치된 당시에 그에게 일어났거나, 아니면 알지못하는 물질을 먹였던 것으로 의심하고 있는데 왜냐면 그순간에 가족들을 생각할수 없었거나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는지 이상할 뿐이었다.
"나는  그어떤 감정이 있었었는지 확실치 않으며, 잠에서 깨어났을때 몸은 무기력했던것을  알수있었고, 그리고는 다시 맹인 거지들을 안내하러 밖으로 끌려 나갔었다.  다만 돈을 벌어서, 음식을 먹고 잠을 자고 그리고는 다음날에도 똑같은 일을 했을 뿐이었다."라고 그는 기억을 더듬었다.



노예로 살아온 인생.

Different beggars hired him for a period of anything from a week to a month.때로는 일주일 또는 한달간씩 그는  다른 맹인 걸인들에게 팔려 다녔으며, 하루의 일이 끝나면 Samuel과 걸인들은  여러곳의 편리한 공공장소에서 서로 맞대고 잠을 자곤 했었다. 만약에 맹인 걸인이 그와 함께 일하는것을 좋아하면 그들은 또  일정기간 그를 고용하여 그와 함께 지내곤 했었다.
"나는 마치 노예처럼 일했으며, 나는 내가 가고싶은곳으로 가고싶다는 얘기를 할수도 없었고, 아무것도 내마음데로 할수 없었다. 나는 항상 그주위에서 맴돌아야만했었다."라고 그는 설명이다.
또한 Samuel은 항상 그들과 함께 행동을 해야 했으므로 친구를 사귈시간도  없었고, 오직 할수 있었던것은 다른 걸인의 아이들과 가끔씩 같이 놀아준게 전부였었다. 그리고 잠자리로 드는게 그의 생활의 전부였었다.


오래전, 한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어린이 유괴하여 외딴섬으로 데려가, 외부와 차단시킨채 중노동을 시켰었던, 그래서 국민들의 분노를 샀었던 기억이 있었지요. 그때는 한국이 지금처럼 생활환경이 좋치 못했기에 가능했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느 나라이던, 국민들의 생활이 궁핍하면, 이런한 인신유괴범들이 창궐하는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Samuel의 큰 누나가 동생을 구출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점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답니다.

기적이 일어났다.

2000년12월에도 Samuel은  걸인을 안내하면서, Winners Chapel에서  프로그람이 이 있다는 뉴스를 들었는데, 그곳에서 그는 꿈에도 그리던 누나를 만난것이다.  처음에 누나 Firdausi는 그렇게도 찾아 헤맷던 동생을 보고 포옹하는 기쁨의 충격이 너무도 컸었다. 누나의 그때에 그녀가 괴성을 질렀던 순간을 기억하고있다.  "나는 땅바닥에 주져않고말았었다" 라고 누나는 울먹였다.
Samuel의  외모는 형편없이 지저분해 보였었고, 오른쪽 어깨는 많이 기울어져 있었다. 또한 그는 매우 바보같은 모습이었으며, 말한마디도 못하고 있었다. 그모습을 본 누나 Firdausi는 통곡을 할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멍하니 쳐다만 봤었는데  곧이어 내가 알고있는 사람임을 금새  알수 있었다. 이사람은 나와  가족관계에 있는 그 누구인것을 알수 있었다"라고 Samuel은 설명한다.


Sometimes people gave them food while they were out begging. At other times they hung around restaurants and ate the leftovers or scavenged in dustbins.
"I was always hungry. During the daytime when you work, you hardly sit down to eat," he recalls.
"I didn't feel the beggars were bad. They wake up, beg, the way people wake up and go to work."
Day after day, Samuel walked from one end of Lagos to the other with a beggar's right hand gripping his shoulder.
Sometimes, they trekked to neighbouring states or across the border to Benin. If the beggars received news of potential benefactors gathered somewhere, they told Samuel and he took them there by bus.
"There were times when you get so tired and you start bypassing people, but blind people are very sensitive - their hearing - so they pick up sound. Sometimes they would twist your shoulder and say: 'There is someone there. Why are you moving away?'
"They try to make as much money as they can."


 Image caption David Oyedepo, founder of the Winners Chapel, held Samuel and prayed for him 

 
Soon a crowd gathered and drawn by the commotion, church officials also arrived. They managed to make sense of Firdausi's barely coherent joy and decreed that it was a "miracle" worth sharing with the entire congregation.
They ferried Samuel to a corner and gave him a quick wash. They found him fresh clothes to wear and rushed them both to the stage of the 50,000-seat auditorium where Firdausi was given a microphone.
In tears, she narrated how she had just found her brother who had been missing for six years.
Firdausi recalls how the entire congregation leapt out of their chairs in shouts of praise and thanksgiving.
The founder of the church, David Oyedepo, then held Samuel and prayed for him.



You may also be interested in:



That night they slept on the church premises in a car, as it was a long way to get back to where Firdausi lived.
She remembers waking up throughout the night and touching her brother to make sure he was real.



The recovery

Today Firdausi says that she regrets being so engrossed in finding her brother that she did not try to rescue the others from where he was kept.
Shortly before his rescue, a new young child had arrived in the yard, Samuel says.
At first, the boy wept non-stop and refused to eat. Suddenly, he became silent, leading Samuel to suspect that something had been done or given to the boy to quieten him.



"In a developed country, you would just go and tell the police. But, here, the police would ask you to give them money for fuel and all that, and I didn't even have a job," Firdausi says.
Besides, reintegrating her 13-year-old brother into normal life was proving more difficult than she had imagined. He had not returned to live with his father and she was taking care of him.
Boils and rashes had broken out all over his body, giving off a foul stench.
His right shoulder remained bent for more than a year, requiring X-rays and physiotherapy before it finally stopped showing signs of the pressure from years of being gripped by beggars.
Their mother did not recognise the youngest of her seven children - who was now rough and haggard.
She had to raise his arm and search for a birthmark before she finally believed that the person in front of her was actually her son.




The student

After six years of no formal education, Samuel was barely literate.
Firdausi was left frustrated with the search for a school - with many saying he was too old to join at primary level.
Just when she had almost lost hope, Firdausi met a school proprietor who had seen them on the stage at the church.
The woman agreed to admit him, while Firdausi made arrangements for additional private classes.


In three months, Samuel zoomed from primary one to primary four. Within a year, he had passed the entrance exams to secondary school.
Samuel spent only three years in secondary school when, aged 17, he felt confident enough to sit for university entrance exams.
He passed with flying colours, attaining the best result in his entire school, and gained admission to study chemical engineering at the Ahmadu Bello University in Zaria.
But Samuel's academic prowess would eventually lead to the sudden end to his studies.
Other students often sought his assistance with assignments and he was expelled during his fourth year after being caught writing another student's answers during exams.

'No grudges'

Samuel now works as a supervisor on construction sites.
"Someday when I am comfortable financially, I hope to continue my education," he says, adding that computer science might be an option as he is good with gadgets.
Samuel Abdulraheem
If anyone asks for money, I'd rather buy them food. Because, back then, it was better giving me food than money because the money went to the beggar and none came to me"



Samuel holds no ill feelings about what he went through while in captivity. He believes that all those years shaped him and taught him to try to always be nice to people.

"Nothing that people do actually gets to me. I just see it as a way of life. I don't hold grudges," he says.
Memories of the constant hunger have affected the way he relates to beggars and their guides today. He never gives them money.
"I'd rather buy them food. Because, back then, it was better giving me food than money because the money went to the beggar and none came to me."
Samuel hopes that, by sharing his story, people will pay more attention to beggars and the children who often guide them.
"When they see a beggar with someone, they should have a second thought that, possibly, this child could need help," he says. "Don't just see and give money and walk away."
Illustrations by the BBC's Manuella Bonomi

https://www.bbc.com/news/world-africa-48219377

Sunday, May 26, 2019

트럼프 4일간 일본국빈방문에,김돼지 언급했지만, 동맹국큰형님의 한국언급 전무. 뭉가는 어디에?

문재인 대통령은 도대체 이시간 현재 어디서 뭘하고있는거지?

동맹국의 맏형격인 미국 대통령이 4일간 일본방문위해 첫발을 내딛으면서, 북괴의 김정은이가 최근에 시험 발사한 미사일에 언급하면서, "신경쓸 정도가 아닌 조그만 미사일 발사여서, 대수롭지 않다"라고 트윗까지 보내면서, 한국의 문통정부에 대한 언급은 한마디가 없었다. 이미 미국으로 부터 팽당했다는 강한 메세지.

도쿄에 도착하기 전날인 토요일, Bolton안보 보좌관은, 지난 5월초에 발사된 북한의 미사일에 대해 그행위는 분명 유엔안보리의 Resolution을 위반한 중대한 사건이라고 먼저 바람을 띄웠었는데, 막상 트럼프 대통령은 그까짖껏, 가볍게 미국같은 대국에서 신경쓸 일이 아님을 강조한 그 내막에 숨겨진 진의를 한국의 문재인과 북한의 김정은이는 잘 간파해야 하는데...



일본 방문길에 한국에 들려줄것을 나름데로 비밀리에 협상을 벌렸으나, 헌신짝 걷어차 버리듯, 트럼프의 행정부와 보좌관들로 부터 팽 당한것이 챙피(?)해서 인지는 모르겠으나, 또 청와대는 그런 Negotiation이 없었다고 잡아 뗐다.  그말을 믿을 국민들이 있을까?

트럼프대통령은 도착하자마자,  골프회동에, 새로 용상에 오른 Naruhito를 왕궁으로 방문하고 왕의 첫번째 외국정상을 맞이하는 깊은 만잔회동을 했고 , 일본의 전통스모 씨름대회에 참석하여, 그것도 Ring side에 앉아 시합이 끝날때까지 구경하고, President Trophy를 직접 우승자에게 수여하는 여유를 보여주는 모습에, 우리 한국의 문재인씨가 자꾸 오버랩된다.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일본 국빈방문은 국정현안을 토의 한다는 외형적 격식 보다는, 마치 Travelling을 하는것 같은 색갈이 짙다. 현재까지 그가 방문해서 연설한것은 상공인 협회에서 간단하게 얼굴 내민것 뿐이었다.

일년전만해도, Abe 수상은 미국으로 부터 지금처럼 대접을 받지 못했었다.트럼프대통령이 이북의 김정은과  중국의 시진핑과 밀월여행같은 분위기를 이어갈때였었다.  그럼에도 Abe수상은 꿋꿋히 트럼프와 정상외교를 하면서 동맹국으로서의 일본의 안보를 앞세워 미국과 보조를 꼭 마추어 오늘에 이르렀는데, 그는 마침내 그가 공들인 열매를  지금  일본땅에서 맛보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문재인은, 북한 김정은에 대한 유엔봉쇄정책을 미국및 일본처럼 일관되게 유지했어야 했는데, 미국의  Warning을 무시하거나, 슬쩍 거짖말로 포장하고, 김정은에 퍼주고, 개성공단 재개 한다는, 또 인도적 차원의 원조를 한다는등등의 미운 오리새끼처럼 김정은집단을 옹호하는 헛소리만 하는 한국을, 절대로 좋아할 트럼프 및 Abe가 아닌것을 진직부터 알아 차렸어야 하는데, " 설마 어떨라고"라는 요행을 바라다, 완전 팽당한것이다.  일본처럼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시종일관 유지해 왔었다면, 이번 일본 방문에서 분명히 한국방문으로 최소한 2박 3일 정도는 만들수 있었을 것이다.  외교의 본질을 꿰뚫어 보면서 대통령을 보좌해야하는 외교부의 간경화는 한 Section chief로서는 훌륭할수 있으나, 외교수장으로서는 Qualtiy미달자임을 확실하게보여주었고, 외교참사를 계속 만들어 내고 있어왔다.  중국방문에서는 혼밥을 하지 않나, 힘들게 미국가서는 겨우 백악관에서 몇마디 정상회담하고 발길을 되돌렸어야 하는, 마치 적국을 방문한 대통령 취급을 받고 돌아오는 수모를 겪었었다. 되돌아와서는 아전인수격으로  청와대는 "있는말  없는말을 꾸며대고, 정상외교결과는 훌륭했다"라고 국민들을 우롱하기만 했었다.

외교를한다는 자들은 전부촛불 집회에서 설치던 자들로 메꾸었으니, 그들에게서  기대할게 뭐 있었겠는가?
이번 일본 방문시  잠시라도 한국 방문 해 달라고 매달렸던 사실이 알려지게 되자, 청와대는 또 거짖말로, "절대로 구걸외교 한일 없다"라고 잡아뗐는데, 그것이 또 거짖말이었음을 그들 자신들이 스스로 폭로하는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한국은 자유진영의 최전선에 있다. 따지고 보면, 일본보다 훨씬 더 중요한 동맹국으로서의 지위와 요구를 당당하게 요구 할수 있는, 지리적 여건이 주어져 있는, 전임 정부때까지는, 진정한 동맹국이었었다. 동맹국으로서의 지켜야할 최소한의 예의와 지조를  헌신짝 버리듯, "내갈길을 간다"라고.  확신이나 동의를 얻지 못한채 중국에 아부하고, 김정은에 퍼주다가, 오늘과 같은 참사를  맞은것, 반공을 첫째로 삼고 자유를 사랑하는 국민들만 방향잃고 물결에 흔들거리는 일엽편주가 돼버린 참담한 결과를  맞고 말았다.

과거 36년간 일본의 식민지로 살았던것은,  당시에 우리 선조들이 조국을 지킬만한 힘이 없어서 였음을 직시하고, 다시는 그러한 식민지로 전락하는것을 막기위한 국력을 키우는데 All-in 했어야 했는데,  소녀상을 주한 일본 외교 Facilities앞에 만들어 전시하면서, 일본의 점령군으로서의 악행을 계속 비난해 왔다. 인도는 400여년 이상 영국의 식민지로 지냈었고, 한국과 같은 시기에 독립한 일종의 신생 국가다.

인도인들의 대부분은, 적어도 내가 현지에서 만나본 많은 인도사람들은 영국을 비난하기 보다는 조상들이 힘이 없었음을 부끄러워하면서, 그래도 그들이 지배했기에 철강업이 발달하고, 철도가 발달하고, 도로가 뚫리는 혜택을 입은것에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점이었었다.  일본과 지난날의 식민지때를 염두에 둔 감정싸움은 결국은 한국만 더 고립될수 있는 위험이 있다는것 지금이라도 깨달아야 한다. 서로 협조해서, 서로 상생의 길을 찾아야 한다. 이러한 절차를  밟는데는 전적으로 한국이 Leading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을, 언론을 비롯한 한국민들은 비난만 해왔다.  트럼프가 한국에 대해서 뭘 그렇게 욕먹을 짖을 했었는지? 자국의 이익을 보호하기위해 정책을 펴고 국정을 운영한게 한국에  잘못한짖인가? 미국의 중부지방 이남은 트럼프대통령 찬양일색이다.  미국의 실업율은 지난 50년 동안에 최저를 기록하고 있고, 수출도 계속늘어나고 있다. CNN은 그러한 Trump와는 마치 적군과 아군관계로 하루종일 비난하는 뉴스만 날린다. 이번 일본 방문도 중요함을 보도하기 보다는 비난하는쪽으로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는 이를 개의치 않고,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 열심히 뛰고 있다.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도 국가의 경제와 국민들의 안녕질서를 위한 정책을 폈으면.... 굉장한 환영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적국 수장에 메아리없는 아부만 해왔다.  그결과는 외교참사에 수출경쟁에서 뒤지고, 재벌들은 마치 도적같은 사람들로 몰아부쳐, 부정적인 이미지만 심어줬고, 선진국에서도 그유례를 볼수 없었던,최저임금인상으로 소상공인들 사업을 다 망하게 하고, 자기네 좌파들이 저지른 거짖말은, 위장전입, 부정대출로 부동산 투기, 5.18당시 태어나지도 않은 사람을 유공자로 추겨세웠고, 깜이 안되는 부적격자를 장관에 맘데로 임명해왔고, 주재국 대사로 부임하는자의 언어실력을 국민들이 걱정해야 하는 수준의 자기쪽 사람을 보내고.... 그악행이 열손가락으로 다 꼽을수 없을 정도다.
적폐청산을 입으로는 부르짖으면서, 그들 스스로가 적폐를 하늘 높은줄 만들고, 국가망신과 신용을 국제적으로 떨어뜨린 결과에서, 트럼프와 Abe는, 더이상은 동맹국으로 믿음이 없어, 일본에서 한시간 비행거리에 있는 한국을 완전히 따돌려 버린것이다. 얼마나 이같은 비참함을 더 견디어 내야 할것인가?



조선일보의 기사 내용일부를 여기에 옮겨 놓았다.

"낮엔 골프 셀카, 밤엔 선술집…트럼프·아베 '총 12시간' 한미 정상선 못 봤던 장면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6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의 골프로 방일 일정을 시작했다. 새 일왕 즉위 후 첫 국빈으로 전날부터 일본을 방문 중인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부터 귀국 전까지 12시간 이상을 아베 총리와 함께 보내며 ‘브로맨스’를 과시할 것으로 보인다. 경제·군사 분야 등에서 부쩍 밀착하고 있는 미·일동맹의 현 주소를 보여준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미동맹에서나 대법원 강제징용 판결 문제와 군사 갈등 등으로 우리와 최악의 관계로 치닫고 있는 대(對)일본 관계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장면이 미·일 간에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이날 일본 수도권 지바현 모바라시에 있는 골프장에서 아침 식사를 함께한 뒤 2시간 30분간 골프를 쳤다. 먼저 도착한 아베 총리가 헬기 착륙장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맞았다. 아베가 직접 카트를 운전해 조식 장소로 이동했으며, 두 정상은 라운딩에 앞서 웃는 얼굴로 기념촬영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라운딩 직전 트위터에 글을 올려 아베 총리와의 대화 내용을 소개했다. 그는 "아베 총리와 지금 골프를 치려고 한다"며 "일본은 이 게임(골프)을 사랑한다. 잭 니클라우스, 타이거 우즈, 필 미컬슨의 엄청난 팬들이다. 게리 플레이어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더니 그들은 ‘게리도 사랑한다’고 했다"고 썼다. 라운딩 후에는 "아베 총리와 매우 즐거웠고 훌륭한 만남을 가졌다"며 골프장에서 찍은 사진을 올렸다.

제목부터가  미일정상회담자체를 무척부러워하는 내용이었다.  지금의 좌파문재인 정부가 정책을 바꾸지않는한, 이런 소외된 관계는 지속될것이며,  미일관계는 더욱더 혈맹관계로 갈것이고,  한미, 한일관계는 더 구렁텅이로  빠질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타고 중국이나  김정은집단으로부터 "Thank you"소리한마디라도듣게 된다면.... 대신에 김정은으로 부터는 공갈협박만 당하고있고,  중국으로부터는 6월중에 방한하기로한  시진핑이 일방적으로  약속을깨서 방한계획은 무산되고 말았다. 청와대는 이에대해서 국제간의 협약 또는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기 당하는 수모를 겪어도 한마디의 항의또는 그이유를 물었다는 얘기는 못들었다.
지금 처럼 얽히고 설킨 국제관계에서, 한국이 번영하고 자유국가로  살아남는 길은, 한미일 동맹관계를 더 돈독히 해야 하는 길밖에는 차선책이 없다.
이것이  한국의 문재인 정부의 외교적 현주소다.  아무도 자신있게 국민들에게  설명하는자 한명도 없고,
문재인은 "한국경제 튼튼하다" 라고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만 내뱉고 있다.  이찌하면 좋단 말인가.


https://www.bbc.com/news/world-us-canada-48412016

https://www.foxnews.com/politics/trump-awards-presidents-cup-at-sumo-match-in-japan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5/26/2019052601172.html

https://www.cnn.com/2019/05/23/asia/trump-abe-japan-china-korea-intl/index.html

https://www.cp24.com/world/trump-awards-trophy-at-marquee-sumo-event-in-tokyo-1.4437760

https://www.nytimes.com/2019/05/25/world/asia/trump-japan-north-korea.html 

Friday, May 24, 2019

운동권의수장,장기표 “5·18민주화운동 보상? 줘도 안 받아” 이해골찬,김대중가족들은 낼름 받아갔는데...


이해골찬이는 문통의 혓바닥이자, 더불당 대표로 있다.  그는 5/18 유공자로 명단이 올려져 있음은 이제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삼척동자도 알고있다.  김대중이의 일가족들이 전부 5/18유공자 명단에 들어있다.  김대중이는 현재 그의 이름을 따서 불리는 기념관, 도서관, Arena 등등.... 무려 10가 넘는다고 한다.

5천만 국민들의 줄기찬, 공식적인 정부발표의 5/18유공자 명단 공개를 요구해 오고 있으나, 문통좌파 정부는, "너희들 떠들어라, 나는 내갈길간다. 8백만달러 김정은에 상납하는게 먼저다"라는  오만과 독선으로 국민들을 괴롭히고 있는, 대한민국 역사상 유례없는 역적질하는 대통령으로 군림하고 호령하고있다.

어두운 시기에 민주화 운동을 하느라 햇볕을 보지 못하고 도망자 신세로 살아오면서 고생했던, 장기표씨가그가 겪었던 5/18 당시의 상황과,엉터리수혜자들에대한 실상을 자세히 고발하면서, 특히 이해찬과 김대중가족들, 그리고 현재도 여의도 및 국가고위직으로 행세하면서, 5/18보상금 명목으로,국민세금 훔쳐먹는, 얼굴에 철판깔고 정치무대에서 활보하는 위선자들임을 발표한 내용을보면서, 그래도 이런분들이 계셔서 자유민주주의 명맥이 한국땅에서 이어지고 있음에 희망이 조금은 살아있음을 확신할수 있었다.  아래는 그분의 기자인터뷰내용이다.


[일요신문]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 수많은 정치권 인사가 5·18민주화운동 보상금을 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보상 범위에 대한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광주에 없었거나 그 전에 구속된 사람까지도 폭넓게 보상금을 받은 까닭이다. 상황이 이렇자 민주화운동에 투신하고도 보상금을 받지 않은 인물에 대한 조명이 쏟아졌다. 그 중심에는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이 있었다. 그는 1970년대부터 약 20년간 도망자로 살며 가장 오래 수감 생활을 한 운동권의 수장이었다. 하지만 보상금은 단 한 푼도 받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그를 직접 찾았다.



https://lifemeansgo.blogspot.com/2019/01/518.html


  장기표 원장은 1971년부터 1993년까지의 22년 세월 중 9년을 감옥에 갇혀 지냈다. 12년은 도망자 신세였다. 민주화 유공자로 보상금을 신청하면 한국에서 가장 많이 받을 수 있는 위치다. 10억 원은 넘는다는 게 그의 계산이다.

유혹은 있었다. 그는 말했다. “정치하면서 돈이 부족할 때마다 주변에서 ‘10억이면 크지 않나. 그거 좀 받아다가 뭐 좀 하자’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내가 그랬다. ‘그 돈 받아가지고 되는 게 아니다. 그 돈을 안 받는 모습을 보여서 더 많은 사람이 우릴 지원할 수 있도록 하자.’“

왜 받지 않았을까. 그는 “나는 국민 된 도리, 지식인의 도리로 안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 돈은 박정희 돈도 아니고 전두환 돈도 아니다. 국민이 낸 돈이다. 그런데 내가 왜 보상을 받나. 민주화운동이든 독립운동이든 의로운 일은 명예를 선양해야 한다. 자꾸 돈으로 보상하면 퇴색된다”고 덧붙였다.

그에게는 데모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그래서 돈을 받으면 안 된다고 했다. 그는 “대한민국 대학생이 독재 정부를 물리치기 위한 데모를 하는 건 매우 당연한 일이었다. 대학이라는 캠퍼스가 있었고 친구도 있었다. 우리는 데모를 할 수 있는 좋은 환경에서 살았다. 데모를 하는 건 우리가 누린 특권이었다. 동대문 시장에서 포목 장사하는 사람이 민주화 운동 의지가 있어도 데모할 수 있겠나. 노동자는 데모하기 어렵다. 국민 된 도리로 지식인이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거다. 그래서 민주화 보상 받으면 안 된다”고 했다.

그는 민주화가 모두의 업적이지 운동권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했다. “민주화 운동을 한 사람만 보상해줘야 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 사업하다 망한 사람은 보상해주면 안 되나? 공장에서 일하다 죽은 사람도 있다. 민주화 운동가랑 노동자랑 그 시절 누가 더 고생했나. 죽은 사람이 더 고생했지. 나는 살아있지 않나. 민주화 운동을 했다고 하면 좋은 대접을 받아 왔다. 그런데 사실 대한민국에 나 같은 사람만 있었으면 벌써 망했을 거다. 전부 농사도 안 짓고 공장에서 일도 안 하고 학교에서 글도 안 가르치고 데모만 했으면 나라가 안 망했겠나.”


이어 “누군가는 ‘그 사람은 자기 먹고 살려고 그랬다’고 할 수 있다. 나도 내 나라 잘 살라고 한 거였다. 따져 보자. 그 사람이 자기만 먹고 살았나. 그 사람 노력으로 나온 물건을 우리도 사서 쓰고 그랬다. 사회는 다양한 부문에서 다양한 노력이 총화를 이뤄서 발전한다. 어느 한 부분의 노력만 추켜세우면 안 된다”고 말했다.

장기표 원장은 운동권이 보여준 ‘챙기기’에 대한 비판을 쏟아냈다. 특히 5·18민주화운동 때 광주에 없었던 이해찬 대표가 보상금을 받고 또 ‘희생’했다는 이유로 유공자가 된 데에 대해 비판을 빼놓지 않았다. “희생자란 말은 법률적 용어가 될 수가 없다. 사망했거나 행방불명이거나 상이를 당했어야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이해찬이 보상금 받은 것도 다시 살펴 봐야 한다. 해명한 거 보니까 말을 잘못했더라. 이해찬이 ‘나는 광주에 있지 않았지만 그때는 광주에 들어갈 수도 없었다. 광주 밖에서 광주 지원 운동을 했다. 그래서 나는 5·18민주화운동 관련자’라고 했더라. 그럼 대한민국에서 그때쯤 민주화 운동한 사람은 다 관련자다. 둘러대다 실수했다고 본다. 게다가 이해찬은 5·18민주화운동 전에 구속됐다. 밖에서 운동을 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이해찬 대표는 1999년 보상금 1억 2300만 원을 받았다. 이 대표는 당시 집권 여당이던 새정치국민회의 정책위원회 의장을 할 때 이 돈으로 ‘오월정의상’이란 상을 만들었다. 이에 대해 그는 정당성 부재가 안타깝다고 했다. “광주항쟁은 5월의 정의다. 5월 하면 누구나 광주를 떠올린다. 이해찬이 민주화운동을 했다지만 광주 사람도 아니고 5월의 정의를 정립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다. 돈 있다고 해서 아무나 4·19 혁명상을 제정할 수 있나? 정당성이 있어야 한다. 5월의 정의가 얼마나 중요한 건데 개인이 나서서 하는 건 상식에 안 맞는다”고 했다.

수상자 선정에 대한 비판도 이어갔다. 상을 받은 사람 가운데 언론인도 포함돼 있었던 까닭이다. 그는 “이해찬이 언론단체에게 상을 주기도 했다. 언론이라는 건 정부에 항상 비판적이어야 그 의무를 다 하는 거다. 집권 여당의 정책위원회 의장이 언론인에게 돈을 주고 또 언론단체가 받는다는 게 난센스다. 이해찬이 상 준다고 하면 난 안 받는다”고 말했다.

장기표 원장은 인터뷰 내내 한국 사회의 운동권이 보여준 ‘제 식구 챙기기’에 대한 비판을 거침 없이 이어갔다. “김대중 사람 가운데 서울대 교수 하나가 있었다. 이 사람은 장관이 된 2000년쯤 1980년대 해직 교수 약 60여 명 정도를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로 선정해 각각 1억 3000만 원씩 약 80억 원을 나눠줬다. 이 사람들 가운데 광주랑 관련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는 적어도 1980년 5월 17일 전에 이 일과 관련해 해직됐어야 한다. 교수 가운데 1985년과 1986년에 해직된 교수도 있었다. 그런 사람도 전부 관련자라고 해서 돈을 줬다.”

“이 사람들은 김영삼 정부 들어서 이미 복직됐고 밀린 월급을 2억~3억 원씩 받았다. 그런 뒤 다들 장관도 하고 총장도 하고 이사장도 하고 국회의원도 됐다. 그렇게 다 받아 먹고 10년 이상 지난 시점인 2000년대에 광주 항쟁과 무관한데도 약 80억 원을 주고받는 걸 보며 ‘진짜 나쁜 놈들’이라고 생각했다.”

운동권끼리 뭉쳐 자기들끼리 세상을 만들어 가는 행태도 비판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라는 단체가 있다. 민주화운동공제회도 있다. 민주화 운동을 한 사람끼리 모여 서로 어려움을 해결한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조직이다. 그런데 민주화 운동 안 한 사람은 어쩌라는 거냐. 민주화 운동을 했든 안 했든 사람이 어려우면 사회적으로 해결해야지 민주화 운동 한 사람들끼리 해결하는 건 철학이 잘못됐다.”


장기표 원장은 동지든 누구든 비판의 칼을 거두지 않는다. 늘 홀로 외롭게 싸워왔다. 지금 몸이라도 뉠 공간이 있는 건 모두 전태일 덕이라는 그는 지금 서울에 위치한 82.5㎡(약 25평) 규모 아파트에 산다. 수입은 이 아파트를 저당 잡고 받는 ‘역모기지’ 95만 원이 전부다. 아파트는 전태일이 남긴 선물이다. 전태일의 모친이 소개했던 서울 도붕구 쌍문동 인근 29.7㎡(약 9평)짜리 무허가 집이 재개발을 거쳐 지금의 아파트로 변모했다.

그는 “평생 민주화 운동을 해오며 돈 한 푼 벌어 본 일이 없다. ‘없는 사람 위한다, 국민을 위한다’고 말하면서 내가 좋은 집에 살면 사기치는 거다. 그런 사람이 잘 살면 거짓으로 살아온 거나 마찬가지가 된다. 25평 아파트도 과하다”고 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
 
장기표는 누구? 타협 없는 정치고집 ‘고난의 길’

장기표 원장은 5·18광주민주화운동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끌었던 국민연합의 조직국장이었다. 서울 쪽 행동대장이기도 했다. 5·18세력의 사령탑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서울대 법대 재학시절 단과대 학생회장을 역임했다. 노동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1970년 11월 전태일의 분신자살 소식을 듣고 서울대 학생장으로 치르겠다고 전태일 유가족에게 제의한 인물이기도 했다.

이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 체제와 전두환 전 대통령의 군부독재에 대항해 지속적인 민주화 운동을 펼쳤다. 1972년 서울대생 내란 음모 사건을 시작으로 10년 가까이 감옥에 갇혔다.

1990년 재야 운동의 제도권 진입을 목표로 이재오 전 의원, 김문수 전 지사 등과 함께 민중당을 창당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했고 끊임없이 정계 진입을 노렸다. 하지만 타협 없는 자신만의 정치 고집으로 고난의 길을 걸어 왔다. 그는 현재 신문명정책연구원을 꾸려 민주시장주의라는 자기 정치가 실현될 그날을 기다린다. 외곽에서 여전히 자신만의 운동을 계속 이어가고 있다.

최훈민 기자
  심재권도 보상금 안 받았는데…왜?

운동권이었던 심재권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보상금을 받지 않아 화제가 됐다. 장기표 원장은 심 의원이 보상금을 받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도 털어놨다.

장기표 원장은 “내가 수배 번호가 1번이었다. 나를 굉장히 잡고 싶어했다. 학생들 다 동원해서 데모할 준비를 해놓고 김대중 당시 의장한테 보고했다. 의장이 고개를 끄덕 끄덕해서 내란죄가 됐다”며 5·18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국민연합의 조직국장이었고 심재권 의원은 홍보국장이었다. 둘은 잘 도망 다녔다. 3년 반 동안 안 잡혔다. 하지만 영원한 도망은 없었다. 심 의원이 1983년 말 먼저 중앙정보부에 잡혀가 ‘씻김굿’을 당했다. 이른바 탈탈 털렸다. 유화 국면이라 구속까지는 가지 않았다. 풀려난 심 의원은 곧바로 호주로 유학을 가서 2000년대에 귀국했다.

심재권 의원이 없는 동안 장기표 원장 등 운동권 주요 인사는 치열하게 싸웠다. 장 원장은 “다른 사람들 다 받을 때 왔으면 받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안 그랬을 거다. 아마 동지에게 미안함이 남아서 그럴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훈민 기자


http://m.ilyo.co.kr/?ac=article_view&toto_id=&entry_id=334395

Wednesday, May 22, 2019

영국 ARM사는 전직원들에게 Huawei사와 공동개발작업중단 엄명하고, 美,'화웨이와 전쟁' 선포,동참요구에 한국은 "유보".

나는 거의 같은 시간에 Huawei에 대한 한국의 조선일보 기사와 BBC기사를 읽었다.

여기서 웃기는것은, 한국의 뉴스기사는, 영국의 Chip Designer ARM이 이시간 현재 Huawei에 어떤 조치를 내리고 있는가에 대해 한마디 언급도 없었다. ARM은  Huawei에 Chip 공급을 전면 중단하고, 계약사항 이행도 중지 하라는 지시를 전직원에게 내렸다.  그이유는 Huawei제재를 요구하는 Trump 행정부의 요구에 적극 동참한다는 뜻이다.



한국은, 동맹국 미국의 요구에는 유보적인 조치를 취하고있다고전한다.  수십억 달러의 손해가 무서워 한국의 안보를 목숨바쳐 지켜주고 있는 동맹국 미국의 동조협조를 애매하게 피해가는, 문재인 좌파정부의 진짜 동맹국은 어느나라인가? 미국인가? 중국인가?

중국에 진출한  많은 한국기업들이 줄줄히 도산하고, 사업못하게훼방 당하고, 롯데백화점은 장비값도 못건지고 파산당하다시피 철수했었다.  그손해액은 수백억 달러가 됐을 것이다. 그렇게 당하고도 한국 문통좌파 정부는 배알떼기도없나? 신의가 없는 중국이 그렇게 무섭게 느껴지면, 양다리 걸치지 말고, 중국쪽으로 붙어 버리던가?

미국의 햄버거 체인,  '인앤아웃 버거'…점에는 새벽부터 Long line up으로
장사진을 쳤다는 뉴스를 보면, 한국의 젊은이들은 미국과 중국사이에서 어느나라를  더선호하는가를 잘 알고 있을것이다.  왜 문통정부와 외교부는 당당하게 한국의 입장을 밝히지 못하고, 바보짖을하나?  결국이런 외교행보로는 양쪽으로부터 다 팽당한다는 역사적 교훈을깨닫지못한, 바보 Imbecile들로 꽉찬 좌파 문재인 정부는 5천만 국민들의 장래를 끝없는 나락으로 결국 전락시킬것인가?

국무부, 여러 채널로 정부에 전달 "한국서 화웨이 완전 아웃시켜야"
외교부는 中 의식해 유보적 입장… 日·호주 '反화웨이', 獨·佛은 불참

미국이 최근 우리 정부에 '반(反)화웨이 캠페인'에 동참하고 지지해 줄 것을 수차례에 걸쳐 요구한 것으로 22일 확인됐다. 서울의 외교 소식통은 "미 정부가 여러 외교 채널을 통해 '화웨이 제품을 사용하면 보안 문제가 생길 우려가 있다'는 메시지를 우리 외교부에 지속적으로 전달해 왔다"며 "한국이 동맹국으로서 미국의 대중(對中) 정책에 적극 협조해줄 것을 요청한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에 대한 무역 압박과 화웨이에 대한 전면 규제에 나선 미국이 한국 등 동맹국들에도 동참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미 국무부 관계자는 최근 우리 외교부 당국자를 만난 자리에서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는 LG유플러스를 콕 집어 "이 통신사가 한국 내 민감한 지역에서 서비스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당장은 아니더라도 최종적으로 한국에서 화웨이를 전부 아웃(out)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통신·IT 업계에 따르면 우리 정부가 미국의 요청에 따라 화웨이 장비 수입을 중단할 경우 기업 피해액이 수십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이 우리 기업에 대한 보복 조치를 취할 경우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 미 정부는 외교부에 "화웨이 장비가 동아시아 지역에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삼성전자 등 한국 기업이 힘써 달라"는 뜻도 전했다고 한다. 미 국무부는 23일 태국 방콕에서 우리 외교부와 한국 업체 등과 함께 아세안 지역 통신 사업 진출 방안과 관련한 비공개 워크숍도 열 예정이다.

UK-based chip designer ARM has told staff it must suspend business with Huawei, according to internal documents obtained by the BBC.
ARM instructed employees to halt "all active contracts, support entitlements, and any pending engagements” with Huawei and its subsidiaries to comply with a recent US trade clampdown.
ARM's designs form the basis of most mobile device processors worldwide.
In a company memo, it said its designs contained “US origin technology”.
As a consequence, it believes it is affected by the Trump administration's ban.
One analyst described the move, if it became long-term, as an “insurmountable” blow to Huawei’s business.
He said it would greatly affect the firm's ability to develop its own chips, many of which are currently built with ARM’s underlying technology, for which it pays a licence.
These are used in the Chinese company's 5G base stations and computer servers in addition to its smartphones.
Cambridge-headquartered ARM had been described as the UK's largest tech firm until its takeover by a Japanese fund. It employs 6,000 workers and lists eight offices in the US.

자세한 보도내용은 아래 링크를 보면 확실하게 느낄수 있다.

https://www.bbc.com/news/technology-48363772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5/22/2019052203503.html 

文대통령, 한국당 추천한 5·18 진상조사위원 2명 임명 거부. 국민의 뜻을 버린 문대통령.

선거가 끝난후 문재인 대통령은 "나에게 투표하지 않은 국민들의 뜻도  겸허히 받아들겠다"라고 당선소감 첫마디에서 그렇게 밝히고있다. 국민들은 기대를  많이 했었다.  

문재인씨가 5/18 폭동에 대해,너무도  이해가 되지 않게  한쪽으로만 치우치는  한쪽 대통령임을 확실히 이번  광주 5/18 기념사에서  보여줬다.  그렇게 광주시민들에게  아부하면서도,  정작 5/18 유공자들  명단은 밝히기를 완강히 거부하고있다.

자유한국당에서 추천한 5/18진상위원을  퇴자놓고, 다시  국회에 보냈다고 한다.
진상위원회 설치목적은5/18에 대한 정확한 당시의 실상을 공정하게 조사해서 이를 국민들에게 공청회를겸한 평가를 할수있도록 기회를 줘야하는데, 이를 다 깔아뭉개고,  쉽게말해서 5/18은 "민주화의운동"에 전적으로 동의하는쪽의 사람들만  위원으로 위촉하겠다니....그렇다면 굳이 진상위원회를 만드는 이유가뭔가?




많은  사람들이  광주 5/18운동은 폭동으로, 그이유가 이북에서 내려온 특수군 부대원들이 침투하여 시민군들을 학살한  사건이라고 주장하고, 그특수군 장교로 참여 했다가 후에 탈북하여  남한에 정착한 증인들의폭로가 You Tube를  타고  전국을 떠돌고 있는데도.... 이들의  폭로를 과학적으로 실사하고 증명한  "지만원"씨의  증언은  아예  들어볼 마음의 여유가 없는 문 정부의 진상위원회는 역사의 획을 역으로 돌리는 망국적  정치행위임을  지금이라도 인정하고, 진상위원들을 민주당, 한국당  공히  절반씩 선출하여 심도깊게 조사해야, 역사적 Bickering 없게 될것이다. 그리고 후세에 떳떳한 선배들이 됐으면 하는 바램이다.

 아래의 기사는 문통이 광주 5/18 현장에서 기념사를  한 보도 내용중 일부다.

문 대통령은 이날 기념사에서 “아직도 5·18을 부정하고 모욕하는 망언들이 거리낌 없이 큰 목소리로 외쳐지고 있는 현실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너무나 부끄럽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5·18 이전, 유신시대와 5공 시대에 머무는 지체된 정치의식으로는 단 한 발자국도 새로운 시대로 갈 수 없다”고 했다. 취임 첫해인 2017년에 이어 두 번째로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을 찾은 문 대통령은 희생자 묘역 참배 때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이 ‘독재자의 후예’를 언급하며 한국당을 강도 높게 비판한 것은 자신을 ‘좌파 독재’라고 비난하고 5·18 폄훼 발언 의원들에 대한 징계를 결정하지 않는 세력과는 협치가 어렵다고 선언한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내년 총선을 앞두고 확실히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보혁 간 전선을 분명히 하겠다는 것이다.

http://news.donga.com/Main/3/all/20190520/95598842/1




입력 2019.02.11 17:56 | 수정 2019.02.11 21:30
대통령, 한국당 추천 이동욱·권태오 위원 재추천 요구...차기환 변호사는 임명키로
청와대, 발표 시점 두 차례 늦추며 고심...한국당 일부 의원 ‘5·18 폄훼’ 발언 논란에 임명 거부 강행한 듯

문재인 대통령이 11일 자유한국당이 추천한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위원 3명 가운데 이동욱 전 월간조선 기자와 권태오 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에 대한 임명을 거부하고 국회에 재추천을 요구했다.

임명 거부 이유는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이하 ‘5·18진상규명법’ )이 정한 자격 요건 미달이다. 문 대통령은 차기환 변호사(전 수원지방법원 판사)에 대해서는 재추천 요청을 하지 않았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오후 춘추관 브리핑을 통해 이같은 내용의 공문을 국회로 보냈다고 전했다.



김 대변인은 차 변호사에 대해서는 "5⋅18 운동에 대해 왜곡된 시각이라고 우려할 언행이 확인됐으나 법률적 자격 요건을 충족해서 재추천을 요청하지 않았다"며 "향후 진상조사 활동과정에서 이런 우려를 불식하기를 기대하며 역사적 진실을 밝히는데 최선을 다해줄 것을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앞서 국회는 지난해 2월 본회의에서 5·18진상규명법을 의결했다. 한국당은 이 법에 따라 만들어지는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위원으로 이들 3명을 지난달 14일 추천했다.

5·18진상규명법은 일정한 자격 요건을 갖추고 있고 국회가 추천하는 9명의 위원(국회의장 1명, 더불어민주당 4명, 자유한국당 3명, 바른미래당 1명)을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돼 있다.

이 법이 정한 위원의 자격 요건은 총 5가지로 이 중 한가지를 충족하면 된다. ▲판사·검사·군법무관 또는 변호사의 직에 5년 이상 재직한 사람 ▲대학에서 역사고증·군사안보 관련 분야, 정치·행정·법 관련 분야, 또는 물리학·탄도학 등 자연과학 관련 분야 등의 교수·부교수 또는 조교수의 직에 5년 이상 재직한 사람 ▲법의학 전공자로서 관련 업무에 5년 이상 종사한 사람 ▲역사고증·사료편찬 등의 연구 활동에 5년 이상 종사한 사람 ▲국내외 인권분야 민간단체에서 5년 이상 종사한 사람 등이다.

한국당이 추천한 이 전 기자와 권 전 처장은 이 자격 요건 중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실제 두 사람은 한국당의 추천 당시부터 논란이 있었다. 5·18 관련 단체들은 "한국당 추천 위원을 거부한다. 재추천하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다른 정당들도 "과거 5·18 단체로부터 공개 사과 요구 인사를 받은 인사가 포함됐다"(민주평화당), "5·18 영령들에 대한 모독"(민주당), "위원 자격이 없다"(바른미래당)고 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한국당 추천 위원 임명을 거부하면서도 상당히 고심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오전에는 오후쯤 5·18 조사위원 임명 관련 입장이 발표된다는 이야기가 나왔다가 오후 5시 15분, 오후 5시 30분으로 발표 시점이 수차례 연기됐다. 이는 국회 합의로 만들어진 특별위원회형 조사위원회에서 야당 추천몫 조사위원을 임명권자인 대통령이 거부한 사례가 극히 드물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다만 최근 일부 한국당 의원들의 ‘5·18 폄훼’ 발언 논란이 인 것은 청와대의 부담을 덜어준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뿐 아니라 한국당을 제외한 야4당이 모두 한국당 일부 의원들의 ‘5·18 폄훼’ 발언을 ‘망언’으로 규정하고 의원직 제명까지 요구하고 나선 만큼 청와대로서도 임명 거부의 명분이 있다고 봤다는 것이다. 한국당 일부 의원이 촉발한 ‘5·18 정국’의 주도권을 여권이 쥐게 된 것도 영향을 줬다는 분석도 있다.

한국당 김진태 이종명 김순례 의원은 지난 8일 국회에서 '5·18 진상 규명 대국민 공청회'를 주최하면서 '5·18 북한군 개입설'을 거듭 주장하고 있는 지만원씨를 발언자로 초청했다. 지씨가 주장하고 있는 5·18 북한군 개입설은 법원 등에서 허위 사실로 인정된 사안이다.

지씨는 이 자리에서 "5·18은 북한 특수군 600명이 일으킨 게릴라 전쟁"이라고 말했다. 한국당 원내대변인을 맡고 있는 김순례 의원도 이 자리에서 "종북 좌파들이 5·18 유공자라는 괴물 집단을 만들어내 우리의 세금을 축내고 있다"고 했다. 국회 국방위 한국당 간사인 이종명 의원은 "1980년 5.18 사태가 발생하고 나서 5.18 폭동이라고 했는데 10년, 20년 후 민주화운동으로 변질됐다"며"그렇게 변질될 때 과학적 사실을 근거로 한게 아니라 정치적인, 이념적인,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세력에 의해 폭동이 민주화운동이 됐다"고 말했다.

김의겸 대변인은 이같은 발언과 관련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는 이미 역사적·법적 판단이 끝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5·18 당시 헌정질서 파괴행위자들에 대해 이미 법적 심판을 내렸고, 5·18 희생자는 이미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예우를 받고 있다"며 "이런 국민적 합의를 위반하는 발언"이라고 했다.

http://news.donga.com/Main/3/all/20190211/94059008/1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2/11/2019021102461.html 

Tuesday, May 21, 2019

어렵게 탈북한 여성들, 송환되기보다는,창녀로,성노리개로 지옥생활, 같은시간 문재인은 김돼지에 8백만불 상납하고...

BBC의 보도에 따르면, 더좋은 삶을 꿈꾸며, 김정은 감시의 눈을 피해,  어렵게 북한을 탈출한 북한여성들이, 중국에 도착 하면서, 인신밀매범들에 붙잡혀, 그들로부터 갖은 협박과 공갈, 특히 시키는데로  하지 않으면 북한으로 되돌려 보내겠다는  위협을 하여,  여성들이 창녀촌에  팔리거나 성적 노리개가 되여,  북한에서  지낼때보다  더 지옥같은, 죽지못해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천인공로할 만행을 저지르고 있는 김정은  정권과, 인간의  탈을 쓰고는 할수 없는 나쁜짖으로, 동족여성들을 지옥으로  몰아가고 있는 중국인들에게 저주를 쏟아붇고싶은  심정이다.

이런 북한 김정은 정권에, 오늘 보도된 외신에 따르면,  문재인 공산정부는 인도적 차원에서 8백만달러라는 거액을 북한 김정은의 금고에 속히 보내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뉴스는 한국의 뉴스미디어에는 전연 없다. 몰라서인지? 아니면 보도관제에 걸려서 보도를 못한것인지?  이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https://www.cp24.com/world/s-korea-vows-to-act-quickly-in-providing-8m-worth-of-aid-to-n-korea-1.4429570

문재인 좌파 정부는, 집권 첫날부터, 그의 혀바닥 노릇하는 윤석렬이를 시켜, 박근혜, 이명박 대통령을  감옥에 붙잡아 넣고, 외부세계와 완전차단 하고 있다.  또한 두대통령을 보필했던 고위공직자들을 굴비엮듯이 엮어 감옥에 꽁꽁묵어 두고있다. 문재인공산정권의 눈높이에서는 당연한 조치일지는 몰라도..

북한  김정은집단의  북한주민들의 인권유린과 주민들을 먹여 살려야할 국고를 맘데로 끌어내서, 남한을 박살낼 원폭과 미사일을 만들기에 여념이 없는, 김정은 살인마가 저지른 범죄와, 위의 두대통령의 죄과(?)와 비교해 보면, 누구를 감옥에 보내야 할것인가는 삼척동자도 훤히 알고 있는데, 어찌해서 문재인과 좌파일당은, 김정은 괴뢰 집단에 국민들의 세금을 주머니돈 쓰듯히 맘데로 퍼주는가?


감옥에 보내는것은  고사하고,  김돼지 집단에 비난이나, 항의 한마디 없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수많은 국민들이 문재인 정부를 몰아내야 한다고 원성이 하늘에 닿고 있지만, "너희는 짖어라, 나는 내길간다"라는 식으로, 국민들을 우롱하고 있는 그들이 인간이기를 거부한, 인신밀매단보다 더 악질집단으로 보인다.

좀더 낳은  삶을 살기위해 목숨바쳐, 북한탈출 중국에 도착한 수천명의 북한 여성들과 어린여학생들이 성매매의 덫에 걸려 죽지못해 살고 있다는 실상을, 영국에 본부를 두고있는 인권구룹이 전세계를 향해 보도했다.

어떤 여성들은 그곳에서 납치되여 창녀로 팔려가고, 또는 중국인들과 강제적으로 결혼을 시키고 있다라고,한국장래의삶 협회(Korea Future Initiative)가 자세히 설명하고있다.


범죄조직이 성매매를 통해 챙기는 거래액은 연간 약 1억달러가 넘는다고 밝히고 있다.  많은 탈북 여성들은, 중국정부에잡히면, 북한으로  되돌려보내지면, 그곳에서 갖은 고문과 때로는 평생 감옥에서 살게된다는 공갈협박에걸려 별수없이 응할수밖에 없다는것이다.


"창녀로 팔려서 성을 팔게되면 하루에 30유안($4.3달러)가 전수입이고, 만약에 중국인의 아내로 팔려가면 1000유안을 받게된다. 또 온라인상에서 성적유혹을 보여주고,인신밀매를 시켜, 성매매를 하게된다"라고 윤희순씨는 설명한다.

이번 대담에 응한 소녀와 여성들은 보통 12세에서 29세였지만, 때로는 이들보다 더 어린소녀들도 있다고 보도되고있다. ( The girls and women in question are usually aged between 12 and 29, but can sometimes be younger, )

북한 여성들은 위협속에서, 물건처럼 팔려가거나 또는 납치당하거나, 때로는 북한에서 직접 중국으로 밀매된다고 한다. 많은 여성들은 적어도 한번 이상 팔려간 경험이 있으며, 북한의 가족을 떠난지 일년안에 한번이상,성노리개 노릇을 하도록 강요당했다고 한다.

중국의 동북부 지역은 수많은 이민노동자들이 살고있는 지역인데, 그곳에서 북한여성들은 그곳에 있는 창녀촌에서 노예처럼 성을 제공해야 한다.  특히, 때로는 9세로 보이는 소녀들과 여성들은 인터넷 사이버에서 성행위를 하도록 강요받고 있으며, 성학대를 웹컴앞에서 당하곤 한다. 많은 웹컴 이용자들은 대개 한국에서 방문온 자들이라고 한다.  결혼을 강요받는 많은 북한 여성들은 대개 시골지역에서 1000에서 1500유안에 팔려와서,  강간을 당하기도하고, 남편들로 부터 많은 학대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The group collected its information from victims in China and exiled survivors in South Korea.
One woman, named as Ms Pyon from Chongjin City, North Korea, is quoted as saying in the report:
"I was sold [to a brothel] with six other North Korean women at a hotel. We were not given much food and were treated badly...After eight months, half of us were sold again. The broker did bad things to me."
"When I arrived [at the new brothel] I had bruises on my body. [The broker] was beaten then stabbed in the legs by some members of the gang."
Another, Ms Kim, said: "There are many South Koreans [in Dalian, China]...We put advertising cards under their doors [in hotels]...The cards are in the Korean-language and advertise what we offer...We are mostly taken to bars [by the pimp].
"South Korean companies want [North Korean prostitutes] for their businessmen...Prostitution was my first experience of meeting a South Korean person."




https://www.bbc.co.uk/news/world-asia-48340210

Monday, May 20, 2019

잘 나가는 국영기업체, 대기업들만 골라서, 고사시키는 문정부의 정책, 이들은 아군인가 적군인가?


드디어 한전의 소액주주분들이 들고 일어섰다.  개미주주들의 성난분노를 문재인 일당은 이제라도 제발 경청 하기를 바란다.  잘나가던 한국경제성장지표는 OECD 22개국중 꼴찌였다고 한다. 그목적이 뭐길래?

Monday, May 06, 2019


한국형 차세대 원전, 美서 안전성 인정 Certificate,그러나 하늘이 준 국운융성의 기회를 문통과 좌파 정부는 버렸다.

세상 살아가는 이치는 다 똑 같다.  적와대 문재인과 그충신(?)들이 이번만은 꼭 경청하기를 바라면서, 이글을 다시 여기에 옮겨 놓았다.

커다란 방파제를 개미들이 뚫기 시작하면, 뚝은 무너지고 만다. 멍청한 뭉가와 그집단은 그말뜻을 이해할지 잘 모르겠으나, 전 국민들은 상식적으로 잘 인지하고 있다.  더이상 방치해둘수는 없다.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5/20/2019052002285.html#bbs

식당에서 음식잘 만드는 Chef와 Cook들이, 수십년간 공들여 만든 Recipe를 이용해서, 잘 만들어진 음식을 이제 세상을 향하여, "건강식 음식을 많이 좋아들 한결과, 전세계의 식품관련자협회에서 그기술을 인정하고  Certificate까지 발행해 주어, 그 기술을 고가의 가격으로 수출할려고 하는 찰라에, 새로운 Chef가 부임하더니,Former Chef와 있었던 악연을 보복하기위해 당치도 않는 분풀이 선언을 했다 "본인은 정작 먹으면 몸에 해로울수 있으니, 나와 내식솔 은 먹지 않고, 대신에 비만과 건강문제에 치명적인 Instant food를 만드는 시설을 더 확장하여, 그곳에서 생산되는 음식을 먹을 계획이다 "라고 전세계를 향해 선언해버렸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5/07/2019050703153.html

그 식당과 Cook은 살아남을수 있을까?  앞으로는 잘모르겠지만, 현재로서는 오직 단하나 그어려운, 품질보장하는 Certificate 수여자는 오직 Former Chef와 Cook 들이었었다. 세상에 이런 멍청하고 사리에 맞지않는 행동을 하는 그런자가 Restaurant을 운영해서확장되기를 바란다는것은 "죽은자식 뭐 만지는 격이다"라는 말과 똑 같다.  New Chef는 전임 Chef와 Cook이 개인적으로 밉다해도, 식당의 장래번영을 위해, 좋은 Recipe는 그대로 계승받아 식당의 확장과 종업원들의 안락한 삶을 위해 밀고 나가야야 했다.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5/14/2019051402184.html?utm_source=dable


지금 대한민국에는 그 어벙한 Chef와 Cook들이 하는 행동을 그대로 국가운영에 도입해서, 독점적으로 전세계를 향해, 가장 안전한 Energy를 공급할수 있는 "원전건설"정책을 실천하기를 원하고 있는, 국민정서와 희망과는 정반대로 가고있는, 역사에 영원히 남을 역적질을 하고 있는 "촛불 대통령"이 대한민국을 끝이 보이지 않는 벼랑으로 밀어넣고 있다.

바라건데 하늘이 도운 국가융성의 기회를, 걷어차내지 말고, 겸허히 받아들이고, 탈원전 정책을 버리고, 원전만이 장래에 살아갈 후손들이 안전하게 사용할뿐만 아니라, 그축적되고 전세계적으로 공인된 최첨단의 원전 기술을 고가로 전세계에 수출하여 국운을 더 융성하게 할수 있는 정책을 공표하고, 적극 지원하기를 조국을 사랑하는 한  Senior의 말에 경청하기바란다.



신고리 3∼6호기 APR1400 모델, 美 원자력위원회 설계 허가 받아
유럽 등 해외수출에 큰 도움될 듯
한국이 독자 개발한 차세대 원전이 미국에서 설계 허가를 받았다. 이로써 미국은 물론 유럽 등 세계 시장에서 한국 원전의 수출길이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형 차세대 원전 ‘APR1400’이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미국 원자력 규제기관에서 설계인증서(DC)를 취득했다. 원전 기술 종주국 미국으로부터 한국형 원전에 대한 기술력과 안정성을 인정받은 것이다.

미 원자력규제위원회(NRC)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각) "한국전력과 한국수력원자력이 2014년 12월 제출한 APR1400에 대해 더 이상 기술적 이슈가 없어 신속한 법제화 절차를 진행한다"고 발표했다. 올 7월 말에는 법제화 과정이 마무리 돼 법률안이 최종 공표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한국 원자력 산업이 해외에선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인정받는데, 정작 국내에서는 탈원전으로 홀대받는 현실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정용훈 카이스트 교수(원자력·양자공학과)는 "우리 원전 산업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전성기를 맞은 상황에서 정부가 탈원전을 추진하는 것은 스스로 원전 선두주자가 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라며 "생다리를 잘라내는 것과 같다"고 했다.





신고리 3·4호기 전경./한국수력원자력 제공
◇ 한국 원전 ‘APR1400’ 美 원자력규제위 인증...외국기업으론 최초

APR1400이 미 원자력규제 당국의 설계인증을 받은 것은 외국 기업이 개발한 원전으로는 처음이다. 지금까지 NRC가 원자로 사용을 인증한 것은 웨스팅하우스와 GE가 신청한 5건이 전부였다. 미국 외 다른 국가에서도 NRC의 설계인증을 받은 원전은 안전하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원자력 업계는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수출 기회를 잃어버리고 있다고 허탈하다는 반응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6월 고리 1호기 영구 정지 선포식에 참석해 "원전 정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고 원전 중심의 발전정책을 폐기하고 탈핵시대로 가겠다"며 "새 정부는 탈원전과 함께 미래에너지 시대를 열겠다"고 밝혔다. 정부의 방침에 따라 한수원 이사회는 지난해 6월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와 신규 원전 4기 사업 백지화를 결정했다. 신한울 3·4호기는 공사가 중단된 상태다.

정동욱 중앙대 교수(에너지시스템공학부)는 "NRC는 매우 권위 있는 기관으로, 프랑스 아레바와 일본 미쓰비시도 설계인증을 받으려다 실패했다"면서 "원전 기술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는데 (국내에선)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니 허탈하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아랍에미리트(UAE) 왕세제가 올 2월 청와대에서 열린 한·UAE 정상회담에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연합뉴스
◇ 탈원전 국가에 원전사업 맡길 나라 있을까?

문 대통령은 지난달 카자흐스탄을 국빈 방문해 실권자인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전 대통령에게 "한국은 40년간 원전(원자력발전소)을 운영해 오면서 높은 실력과 안정성을 보여줬다"며 "(카자흐스탄 원전 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한다"고 했다.

올 2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의 정상회담에서도 인도의 원전 건설 사업 참여 요청에 "기회를 달라"고 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안드레이 바비시 체코 총리와의 회담에서 "한국은 24기의 원전을 운영 중인데 지난 40년간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대통령까지 나서 해외 원전 세일즈에 나서고 있지만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빈손일 수 밖에 없는 것은 탈원전 정책의 영향이 크다고 지적한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탈원전을 하게 되면 원전 산업이 망가지고 경쟁력도 저하될텐데, 앞으로 수십년의 원전 유지보수를 생각하면 누가 한국에 원전 건설을 맡기겠느냐"고 말했다.

정용훈 교수는 "탈원전을 추진하면 설사 수출이 이뤄져도 국내에서 산업· 공급망이 무너지고 가격경쟁력도 떨어질 것"이라면서 "한국이 원전 수출에 다급하다는 것을 상대국들이 알고 있다는 것을 가정하면 제대로 된 가격을 받고 수주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정동욱 교수는 "APR1400이 웨스팅하우스 등 해외 기업과 협업해 미국 시장에 진출할 가능성도 있다"면서도 "우리의 장점을 살리지 못하는 탈원전 정책은 중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http://news.donga.com/Main/3/all/20190502/95343097/1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5/03/2019050302953.html 

Saturday, May 18, 2019

뉴욕타임스 기자, Trump와 Tiger의 역사적 대통령 메달 수여식을 엉터리라 비난-불쌍한 기자. 뭐가 뒤틀렸나?

자유를 수호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미국시민들에게 수여하는 "대통령 매달수여는 미국과 세계평화를 위해 희생한 용감한 시민들에게 수여하는것으로 나는 알고 있다. Tiger Woods는 돈벌기위해 골프를 쳤을뿐인 골퍼일 뿐이다."라고 대통령 매달수여를 비난하고 나선 뉴욕타임스 기자의 논평에 많은 비난을 받고 있다.  "아마도 그는 그러한 대통령 매달 수여에 대한 기억을 되살릴수없을만큼 오랫동안 삶을 살아가고있는가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Google의 Search Engine을 사용하면서 자료를 활용하고 있는지를 알아야 하고, Search Engine은 정말로 좋은 기능을 갖고 있는데..."라고한 시민은 그를  혹평하기도했다.

Kruman 기자는 전임 대통령 George W. Bush가 프로골퍼 Arnold Palmer, Jack Nicklause에게 2004와 2005년도에 대통령 매달을 수여 했었고,  대통령 Barack Obama는 2014년도에 처음으로 PGA선수인 흑인미국시민,Charlie Sifford에게 매달을 수여 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기억못하고,비난한것으로 보인다고 댓글들은 떠들어 대고 그를 비난하고 있다.  도대체 뭐가 뒤틀렸나?

”자유수호의 대통령 매달은 미국과 세계를 위해 헌신하고, 용기를 보여준 사람에게 수여하고있다는것을 기억할만큼 나는 세상을 살만큼 살아왔다. Tiger Woods....그는 돈을 벌기위해 골프볼을 날렸을 뿐이다."라고 뉴욕타임스의 컬럼리스트, Krugman씨는 월요일 Tiger Woods를 혹평하는 트윗을 날렸었다.

Tiger Woods became the fourth golfer to receive the Presidential Medal of Freedom on Monday, the highest honor that can be bestowed on an American civilian, but the honor drew criticism from some who say the golfer is undeserving.
“I'm old enough to remember when Presidential Medals of Freedom were given for showing courage and making sacrifices on behalf of the nation and the world,” Paul Krugman, an op-ed columnist for The New York Times, tweeted on Monday. “Tiger Woods... hits golf balls for money.”
TRUMP PRESENTS ‘TRUE LEGEND’ TIGER WOODS WITH PRESIDENTIAL MEDAL OF FREEDOM
However, Krugman seemed to be forgetting President George W. Bush awarded pro-golfers Arnold Palmer and Jack Nicklaus the honor in 2004 and 2005 respectively and President Barack Obama bestowed the medal on Charlie Sifford, the first African American in the PGA, in 2014.
Many were quick to point out that fact in responses to the veteran columnist's tweet.
"Apparently, he’s old enough to not remember well anymore," one person wrote.
"It's amazing how many people don't know how to use Google search features. It's a great tool," another said.
However, others also criticized Woods' being given the honor -- but for different reasons.
Woods is also a longtime business associate of Trump, where he was worked to design a golf course in Dubai run by the Trump Organization and has made numerous appearances to support and bolster Trump business endeavors.
Although some have blasted Trump for using the office of the presidency to honor his business partner, others have pointed out that Woods isn’t the first medalist to financially contribute to the benefit a sitting president.
Bruce Springsteen was given the award, which can be bestowed at the sole discretion of the president, honoring his contributions in music that have “shaped American music and have challenged us to realize the American dream,” Obama said in 2016. Springsteen was also a vocal Obama supporter who performed at his campaign events. Amongst the honorees at Obama’s ceremony included 11 other campaign donators including talk show host Ellen DeGeneres and actors Robert De Niro and Tom Hanks.
Speaking at the White House Monday, President Trump heaped praise on the champion golfer.
TIGER WOODS FACES CRITICISM AHEAD OF TRUMP'S PRESIDENTIAL MEDAL OF FREEDOM HONOR
"In addition to his incredible playing career, Tiger is a successful entrepreneur, to put it mildly, and devoted philanthropist," Trump said, acknowledging Woods’ work with the TGR Foundation, which he co-founded in 1996 and provides support to over 165,000 students, particularly minorities, to pursue degrees in STEM fields.
"Tiger, we are inspired by everything you've become and attained. The job you've done is incredible. Your spectacular achievements on the golf course, your triumph over physical adversity, and your relentless will to win, win, win. These qualities embody the American spirit of pushing boundaries, defying limits and always striving for greatness."
“Tiger Woods is the epitome of what people should try to be like in this country,” Lara Trump, the president’s 2020 senior campaign advisor said on “Fox News @ Night with Shannon Bream,” on Monday. “He had a downward spiral. Things were looking a little bad for him. He came back not only on the golf course but in life.”
CLICK HERE FOR THE FOX NEWS APP
Trump announced he would be honoring Woods' after he won the Masters at Augusta National Golf Club in April, his first major championship win in over 10 years since he dominated at the 2008 U.S. Open.
Over the course of his career Woods, 43, has won 81 PGA tournament titles, including 15 majors, cumulatively earning $118 million in prizes over 24-years as a pro golfer.


https://www.foxnews.com/entertainment/new-york-times-tiger-woods-trump

Friday, May 17, 2019

"혈육의 정" 이민자로서의 그뜻은 마음,가슴을 뛰게한다. 오랫만에 만난 꼬마 조카는 벌써 50대 초반. 짧은 시간이 아쉬웠었다.

얼마전에, 지금은 70을 목전에 둔 막내 동생이 전주에서 카톡을 보내왔었다.  내용은 '누나의 막내아들 D가 토론토, 캐나다에 업무차 출장 간다는 소식을 Facebook에서 봤는데, 알고 계신가요?'였다.

젊은 청춘들에게는 SNS에서 생활하는게 Routine이 되여 있지만, 나에게는 그럴 능력이나 관심도 적었기에 알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런내용으로 응답했더니, 아마도 막내동생이 막후 연락을 해서 직접, 조카 D로 부터 카톡으로 안부인사와 함께 "삼춘, 직장 업무 처리를 위해 토론토에 가요. 삼춘 뵐 생각하니 여러모로 어렷을적 생각도 많이 납니다. 도착해서 뵐께요".  아마도 Facebook에 올리면 당연히 볼것으로 인식했었던것 같다.  막내 동생의 연락이 없었다면, 그대로 지나쳤을, 많은 아쉬움만 남겼을것이다.

조카 D는 지금은 80대 중반이 되신 누나의 막내 아들이다. 그를 만난 기억은 꽤 오래전, 그가 국민학교, 아니면 중학교 다닐때, 내가 이민 오기 전후였던 시기로 여겨졌었다.  갑자기 조카의 토론토 도착날자가 기다려졌었다.  코흘리게 꼬마였던 그의 어릴적 모습이  아스라히 희미하게  기억에서 떠올려 보았지만, Clear한 기억을 찾기는 쉽지 않았었다. 그만큼 오랜시간  이민자로서의 삶을 개척하느라 접촉의 기회가 적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사진들은, High Park에서 조카 D와 외숙모가 함께 벗꽃길을 걷고있는 순간들이다.
갑자기 조카 D로 부터, 약간의 계획변경이 있을것 같다는 카톡이 날아왔었다.  내용인즉, 나의 집에서 첫날 묶을려고 했던 계획을 변경하여, Fair Mont Royal York Hotel에서 짐을 풀기로 했고, 바로 저녁에 치러지는  농구경기 결승전, 토론토의 Raptors와 76ers와의 경기를, 결혼 며칠 앞둔, 아들, Lyon과, 또 같이 출장온 동료와 함께 관전하기위해 Scotia Bank Arena로 갈계획이기에 다음날 찾아뵙겠습니다 라는 내용이었다.  내기억으로는 아들과 조카는1987년에 온가족이 한국으로 고향나들이할때, 아들이 9세였을때뿐인것으로 알고있었는데,  카카오톡으로 몇번 주고받더니, 모든계획을 뒤로 놔두고,  농구경기를 구경하기로했다니.... 피를 나눈 혈육이 아니었다면 상상할수도 없는 상봉후의 행동인것이다.   



조카는 어쩌면, 돌아가신 매형님과 똑 같을수  있을까?  창조주의  신기함이 고마우면서도  두렵기만 하다.

우리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 Sparrow와  비슷한 Tiny한 새가 겁도없이 Deck 으로 날아와 뭔가를 쪼고 있다.  그들이 제일 좋아하는 Little Worm인것으로 보였는데....





지금의 나자신은 활동무대에서 떠나 뒷전에서 생활해온지가 벌써 16년이 지났는데, 조카와 아들의 의견을 존중해 주어야만 내 할도리를 하는것으로 생각되였기에,그이유를 묻지않고 그가 제안한 그다음날 만나기로 약속했었다.  원래는 나의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으로, 공항 Pick up부터 시작해서 모든걸, 그가 토로토에 체류하는 동안에 함께 하거나 advice를 줄생각이었었는데.... 아뿔사 내생각이 너무도 고리타분했다는 것을 금새 알수 있었다.

"삼춘, 공항에도 나오실 필요 없어요. 제가 공항에서 Car Rent해서 바로, 필요한곳으로 움직일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내일 뵈요, 삼춘 살고 계시는 주소만 카톡으로 찍어서 보내주시면 됩니다. "라고.


때가 되면 미련없이 활동무대에서 내려와야 하고, 또 무대에서 내려오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확고하게 들게 한 멘트였었다. 조카D의 카톡때문에.  그래서 결혼을 며칠 앞둔 아들 아이와도 때로는 결혼 행사 진행을 놓고, 아들과 엄마 그리고 아버지인 나 사이에 의견충돌이 있었구나라는 뒤늦은 이해를 확실히 하게 됐었다. 아들 아이도 정신적 고생을  엄마 아빠 때문에 많이 했을것 같다는 생각에, 괜히  많은 도움도 주지 못하면서, 앞에서 그들의 갈길을 막지는 않았을까라는 아쉬움과 미안함을  많이 깨달았었다.  조카 D에게 오히려 감사함을 표할수 밖에 없었다. 겉으로는 아니고 속으로만.


다음날, 조카와 정말로 오랫만에 상면했다.  그가 약속했던 시간에 마추어, 내콘도로 차를 몰고 찾아온 것이다. 그를 보는 순간, 우리 부부는, 벌써 50대 초반으로 성장한 그의 모습을 보면서, 돌아가신 매형을  다시뵙고 있다는 착각이  일어날 정도로, Resemble한 그의 모습에서, 아 시간이 참 많이 흘렀구나 라고. 동시에 이민자의 신세로, 혈육을 떠나 살아온 세월이 너무도 길었구나 라는 회한과 아쉬움으로 마음이 뒤범벅이 됐었다. 혈육이 뭐길래, 그오랜세월동안 떨어져 각자의 삶을 살아왔는데도, 금새 항상 같이 부대끼면서 살아온것 같은 따스한 느낌, 그러면서도 내눈으로 보이는 조카 D를 생각하는 나의 마음은, 그리고 그에게 해준말은 "운전조심하고, 밤거리는 가능하면 다니지 말고...."였었다.


다니는 회사의 임원 신분으로, 출장왔기에 많은 시간을 같이 하지는 못했다. 마침 벗꽃이 만발하기 시작한 High Park에서, 상춘객으로서의 벗꽃의 향기(?)가 넘쳐나는 산책로, 그리고 밤에는 콘도뒷뜰의 Humber Bay Park West에서 토론토 시내 야경을,  나 자신도 정말로 오랫만에, 우리부부와 조카 셋이서 즐겼었다.
늦은밤에 콘도뒷뜰의 Humber Bay Park West에서 Lake Ontario위에 떠있는것 처럼 보이는 Toronto 심장부의 야경을 참으로 오랫만에, 조카에게 보여주면서 우리 부부도 즐겼었다.

그에게는 외숙모인, Lunar는 나보다 더 뚜렷하게 어렸을적 조카에 대한 기억을 하고 있어 깜짝 놀랐었다.
나는 기억이 거의 없었는데, 조카와 외숙모는, 우리부부가 아직 한국에 있을때, 삼춘인 내가 일본과 독일 기술연수차 다녀올때 지금은 돌아가신 매형, 즉 조카의 아버지에게 선물로 사다드린 테니스 라켓, Aiwa녹음기 얘기를 서로 나누는 것이 아닌가.  조카왈 "그때  아버지는 테니스 칠때나, 또는 녹음기를 사용하실때는, 꼭 처남이 선물로 외국에서 구입해서온 것이라는 단서를 부치시곤 했었다" 라고 전했다.  나는 정작 기억이 희미한데....


3형제중 막내인 조카D는, 위로 두형들과 만났던 기억은 좀 있는데, 거의 머리속에 남아 있는 추억은 없는것 같았다.  그가 하는 얘기로는 서울 방문시 함께 했었던 기억들을 하나씩 꺼내서 설명해 주는데... 기억 못하고 있는 내가 조금은 미안하기도 했었고... 조카의 아들이 20대 중반에 이르렀다고 하니...
정말로 오랫만에, 조카와 우리 부부는 함께 CN Tower에 올랐었다.  세상은 단 1초도 머물지 않고, 계속해서 그것도 빛의 속도로 변해 왔다는것을 뚜렷히 실감할수 있었다.  조카도 그변화의 대열에서 열심히 성장했고, 사회생활을 해 왔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그런데 나의 생각은 그당시 그가 아직 꼬마였을때의 기억에서 머물고 있었으니.... 대화가 잘 됐었을까? 괜히 설명이 안되게 마음이 저려왔었다. 50대초반의 젊은이가 혈육이 아니었었다면?  나와는 아무상관없는 우연히 지나친 사람들중의 하나였었다면?  한아릿다운 Staff 아가씨와 한컷했다.  그녀도 마냥 즐거운 표정으로  나의 Cell Phone 카메라를 응시한다.



Centre Island의 집들이  지난 며칠사이  내린 비로 불어난 Lake Ontario의 물에 거의 잠길정도로  주민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는 전경이다. 방송에서는 계속해서 주의를 상기 시키고 있고....



관광객들의 시선은  위 아래 옆 정신없이 400미터 위에 떠 있는 전망대에서 숲으로 덮혀있는 시내전경을 카메라에 주워 담느라 무척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순간 포착이다.
이사진과 아랫쪽 사진들의 맨윗쪽 부분의 Lakeshore를 따라 눈길을 옮기면,  내가 살고 있는 콘도와 그근처의 빌딩블락이 아스라히 눈에 들어왔다.  콘도에서 시내를 바라보는 기회는 자주 있었지만, 그래서 보이는 전경이 항상 똑 같은것 쯤으로 여기고 있었는데, 오늘은 반대로 Tower에  올라 반대편쪽을 바라보는 나는 속으로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언제 이렇게 변했단 말인가?라고. 높은 콘도미니움 왼쪽으로 낮게 보이는 하얀 빌딩들중 하나가 내가 살고 있는 콘도미니움인것을....


토론토의  새로운  명물, Aquarium 건물지붕과 그위에 새겨진 Shark의 모습이, Tower의 Glass Floor를 통해서 훤하게 보인다.

Tower의 Observation Room의 Floor의 일정부분은 유리로 되여 있어, 그아래로 보이는 경관 역시 오랫만에 다시 Exploring하는 것이다. 여기도 많이 변했있었음을 금새 알수 있었다.  조카와 상면했기에 세상이 빛의 속도로 변해가고 있음을 인식할수 있었다. 오히려 조카에게 고맙다는 생각이다.


어제는 조카와 동료직원은 Niagara Falls에서 폭포구경과 함께  주위 경관을 Exploring하고, 지금(금요일)이아침에는 다시 한국으로 되돌아가기위해 준비하여, 차를 몰고 공항으로  달리고 있을 것이다. Rent한 Car는 공항에서 Return한다고 들었었다. 동료친구와 같이 간다고 하기에 합석하지는 못했지만, Niagara- on-the-Lake를 시작으로 Niagara Parkway를 달리고 맨나중에 Niagara Falls를 보도록 설명은 해주었었는데... 어쨋던 구경 잘 했으리라 믿고싶다.

다음에 다시 만날때는 업무차  만나는게 아니고 관광객 신분으로 만나서, 여유롭게 넓게 펼쳐진 캐나다의 대자연속에서  Relaxation 하면서 좋은 시간 보내기로 약속을 했는데, 그꿈이 이루어질지의 여부는 장담이 안된다. 그러나 노력을 해볼 것이다.  공항에 도착하면 전화로나 출국인사를 해올것이다.
조심히 그리고 무사히 귀국하기를 바랄뿐이다.

조카 D는 아침 9시 반경에  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다 마치고, 마지막  인사를 하기위한 전화를 했다.
아쉬운 이별을, 만나자 마자,  다시 하게된 것이다. 마음은 아니지만, 사는곳이 다르고,  또 생활 전선에 띄어 들어야 하기에.... "있는 동안에 혈육의 정을 깊이 느끼게 해주신, 따뜻한 정성어린 대접에 감사하면서 오래오래 기억속에 담고 있겠습니다. 삼춘 외숙모님 건강하세요" 조카가 조그만  Cell Phone을 통해  들려준 인사 목소리였다. 좋은 일만 있기를 기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