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함과 시기에 시달리다 회장직을 년말에 도중하차하고, 이듬해 3월달에 Lunar와 단둘이서 애티오피아, 아프리카를 한달간 여행하면서, 여행 Gudie에게 간곡히 부탁하여 6/25 한국전 참전 용사 묘지가 조성된 공원을 방문하고, 그분들의 노고에 감사하고 영령들의 명복을 빌었었다.
나라가 가난하여 묘역하나 조성 못하고 있을때, 한국의 보훈처에서 2000년대 초에 애티오피아 정부와 협력하여 조성된 아주 아담한 묘역이었다. 그러나 방문록 하나 비치 해놓치 않은채 방치되다 시피 하고 있었다.
2014년 현재, 동부지회(토론토 소재)의 역사는 35년이 훌쩍 넘었다.
창설 초창기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한국의 본회에서 지원금이 많이 나와 여유있게 사용했는데, 후일을 위한 예산 적립같은것은 하나도 없이 다 소모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해외지회중에서 오랜 역사를 간직한 지회중의 하나가 동부지회지만, 아직까지 자체 회관은 고사하고, 사무실하나 없이 보따리 행정을 하고 있는 이름뿐의 단체로 전락해 오늘에 이르고 있지만, 전임회장들을 비롯한 회원들이 관심을 갖고 해결해 볼려는 의지는 아직도 없고 앞으로도 전연없을것으로 믿어진다.
최근 몇년 사이에 본부의 자금운영상태가 원활하지못한 통에 해외 지부에 지원되는 보조금도 운영에 타격이 심할 정도로 삭감되여 가난하게 운영되고, 근래에는 지회 소요예산의 절반이상을 Donation으로 충당하는 고충을 겪고 있는데 회원들은 무관심이고,교민사회의 반응은 쌀쌀하기만 하다
캐나다는 6/25 참전국으로 조국과는 깊은 혈맹관계에 있다. 또한 516명의 전사자가 발생 했었고, 또 많은 장병들이 부상을 당해 평생을 병원에서 보냈거나 보내고 있는 전우들이 많다. 조국이 경제적으로 많이 발전하면서, 6/25참전국들에 대한 보은 행사를 많이 해오고 있는것은 반가운 일이다.
본국의 보훈처가 주무 부서로 참전국 용사들에 대한 보은행사를 하고 이에 소요되는 예산을 해외 공관을 통해 지급해 오고 있다. 동부지회가 참석하는 보은행사중에서는 7/27 행사가 제일 크다. 그리고 6/25동란 추념행사가 오타와에서 있다.
매년 7/27행사에는 브람튼 Meadowvale Cemetery에서 참전용사들이 함께 모여, 공식적으로 먼저간 전우들의 넋을 기리고 생존해 있는 전우들을 대접하는 가장 큰 행사로, 행사 진행을 위해 캐나다쪽 향군이 주로 Plan을 짜서 필요한 예산을 총영사관과 협의하면, 총영사관은 보훈처로 부터 전달받은 예산을 캐나다쪽 향군에 전달해 주는, 그러나 동부지회는 이런 큰 행사진행 토론과정에서 거의 외면 당한채, 아니 토론과정에 참석할려는 의지도 없이, 초청객 신세로 전락하여 매년 행사를 치러왔었다.
동부지회원들은 꺼꾸로 캐나다 향군쪽으로 부터 초청받는 형식을 빌어 기념 행사에 참가하고, 곧바로 이어지는 Entertainment순서가 베풀어지는 연회에는 캐나다 향군쪽에서는 대략 500 내지 600여명이 참석하고 동부지회원은 참가코져하는 회원숫자에서 택도없이 적은 약 50명에서 90여명 정도가 점심식사가 포함된 Entertainment에 초청받아 참석해 오곤 했었다.
금년(2014년도)행사에서는 그나마 캐나다향군쪽에서 아예 점심식사가 포함된 초청장을 받지도 못하고 영사관에서 겨우 몇십장의 초청장을 얻어 제한된 회원만이 참석하는 촌극도 벌어졌었다고 들었다. 이유는 지회장단의 캐나다향군과의 평소 접촉이 전연 없었거나 Communication 부재 때문임을 다른 소식통으로 부터 후에 전해들어 알았었다. 이얼마나 챙피한 일인가. 오해가 있었던것으로 이해하고 싶긴 하지만.....
이것은 어찌 보면 동부지회가 주관해서 해야할 큰 행사를, 객(?)이 주인 행세를 하고 주인은 초청객 신세로 전락하고, 그러는 것이려니 하면서 창설이래 오늘에 이르고 있어왔는데, 아직까지도 이런 수모나 챙피함을 인식하는 전임,또는 현 동부지장이나 회원들이 없다는점이 큰 문제이다.
총영사관은 캐나다 향군쪽에는 신경을 써가면서, 그들이 필요한 예산을 요구하면 100%다 들어 주어 그들의 환심을 살려고 노력을 하지만, 동부지회에 대한 태도는 좀 과장 한다면 귀찮은 존재로 여기고 있는 형편이다. 역대 회장들이 보조금 몇백불 얻기위해 총영사를 비롯한, 동부지회의 현지실정을 참고하지 않은 영사관의 지시에 가까운 협조사항에 제 목소리 한번 못내고 “예스”맨으로 현재에 이르고 있어, 대등한 위치에서 업무협의를 위해 논의 해야할 신분이 마치 상,하 관계로 전락해 오늘에 이르고 있는 실정이다.
총영사관은 국가 공무원으로 일정 월급외에 해외 근무수당까지 받으면서 대한민국 정부를 대신하여 캐나다 정부와 협조하면서, 교민들의 지위 향상을 위해 그존재 목적이 있다고 하겠다.
향군동부지회를 포함한 전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향군지회는 재향군인회원들의 명예와 조국에 대한 홍보를, 거주하고 있는 나라에 전달해주고, 친목을 도모하는 민간단체로 그역활은, 적어도 향군의 업무와 조국홍보면에서는 총영사관 보다 더 막중한 위치에 있다는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수평적 관계를 갖고 대등한 입장에서 업무 협의를 해왔어야 했다. 이를 위해서는 동부지회를 운영하는 회장단의 능력이 이를 좌우한다고 나의 지회장 경험에서 통감했다.
내가 향군회장직을 맡아 봉사하고 있은지 채 한달도 않되여 평소 존경하던 Senior회원님으로 부터 전화가 있었다.
“이회장, 브람튼 묘지의 행사장내 위령의 벽옆에 무궁화 동산을 만들어 보게나. 거기에 필요한 묘목은 내가 Donation 할테니…”라고 하시기에 “한번 알아보겠습니다.”라는 대답을 해드리고, 아직 향군에 대한 업무파악도 제대로 안된 상태에서, 곧바로 묘지측의 Manager, Mr. Nelson에게 전화 연락하여, 약속하고 다음날 만났다.
그meeting에는 또 다른 담당 여직원도 합석했다. 동부지회의 취지를 설명했더니, 아주 좋은 생각이라고 오히려 환영하면서, 절차상 이 의제를 본사 Board meeting에 올려 통과 시켜야 하는데, 별 문제는 없을 것이다 라는 희망을 주었었다. 며칠후 담당직원으로 부터 모든게 계획데로 됐으니, 날자를 정해서 식수할수 있다는 연락이 왔었다. 그회원님에게 바로 연락을 드렸더니, 이분은 더 깜짝 놀라는 기색이었다. “이회장이라고 별수 있겠나? 반신반의 하면서 얘기 했을 뿐인데…....사실은 전임 두회장때부터 이 Plan을 추진 해달라고 계속해서 부탁 했었는데, 이렇게 금방 해결될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었는데…고맙습니다” 라고 인사까지 하신일이 있었다. 실상은 우리 지회에서 그분에게 고마워 했어야 했는데…그분의 대답에는 많은 다른 함축성이 내포되여 있음을 알수 있었다.
http://www.lifemeansgo.blogspot.ca/2012/05/blog-post_17.html
문제는 식수를 하기위해 임원들을 비롯한 회원들에게 참석요청을 했는데, 불행하게도 묘목을 주신 회원님,또한분의 회원 그리고 나 뿐이었다. 묘지측에서는 담당직원과 현장 묘지 Manager까지 참석하여 Ceremony를 할려고 준비까지 하고 있었는데… 그들에게 면목이 없었다.
이무궁화 동산에 대한 내용은 본국의 "향군보"에도 특종 기사로 실렸었다. 본부회장님이 무척 반가워 했었다는 소식도 후에 한국 방문했을때 그곳에서 들었었다.
캐나다쪽 향군은 당연히 한국전에 관련된 행사는 자기네가 하는것으로 그위세가 당당하다. 그분들을 위한 잔치이니, 순서데로 한다면, 그분들의 품격도 높여 주면서 동부지회의 위상과 명예도 지킬려면, 잃어버렸던 밥그릇을 되찾아와, 우리동부지회가 밥도짖고, 반찬도 만들어 그분들을 초대하여 위로와 감사의 잔치를 벌여야 순서가 맞다. 그래서 그분들이, 한국정부의 보은 행사가 동부지회를 통해 이루어져, 그분들로 부터 고마움을 느끼게 했어야 한다.
북미 대륙에 있는 모든 한국쪽 재향군인회는 이러한 비슷한 행사를 주관하고 현지 참전용사분들과 재향군인회원들을 초청하여 대접하고 그분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높이 기리는 행사를 주관하고 있는데, 유독히 동부지회만이 그대열에 참여 하지 못하고 얻어먹는 초청객신세로 전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음은 통탄할 일이다.
내가 회장을 맡아 봉사할때, 7/27행사를 위한 Plan을 만들기위해 3월부터 매달 한번씩 Meadowvale Cemetery에서 정기 모임이 있었고, 또 수시로 필요시 양측 회장단이 주로 묘지 사무실에서 모여 회의를 하고, 동부지회가 협조할수 있는, 예를 들면 어린이 합창단의 행사 참여등을 협의 했었다. 그때 동부지회장인 내가 회의에 참석하니 거꾸로 그들은 고맙다는 인사를 나에게 했을 정도로, 이전에는 거의 접촉이 드물었었다는 설명이었다.
잘기억은 못하지만 아마도 5월달 모임으로 생각되는데, 그때 영사관측은 큰 실수를 했었다. 그미팅에 참석하기로 했었던 2명의 영사들이 참석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소요예산 관계로 그분들이 꼭 참석해야 했는데, 미팅이 진행중인데도 참석은 커녕 연락도 없어, 내가 잠깐 잔머리를 굴려, 화장실에 다녀온다고 핑계를 대고, 밖으로 나와 영사관에 전화를 했더니, 그들은 깜깜하게 오늘 회의가 있었음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달려올테니 회의진행을 지연시키던가 또는 다른 의견을 제시하면서 그들을 붙잡고 시간을 보내줬으면하는 간절한 부탁이 있었다. 회의장소로 돌아와, 참석한 캐나다측 회장을 비롯한 임원들에게 지금 Hwy 401이 밀리는 차량으로 혼잡하여 늦어지고 있으니, 잠시 휴회를 하고 그들이 도착하면 다시 하자라고 제안했더니, Ben Mather 총무는 앞으로 시간이 얼마나 더 있어야 하나라는 식으로 물으면서 언짢은 얼굴을 나에게 드러내기도 했었다. 약 40분 정도면 되지 않을까?라고 계산된 대답을 해주고 그위기를 넘긴일도 있었다.
늦게 참석한데에 대한 어떤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Sorry”만 연발해대는 영사들의 모습에서 우리외교관들의 현장에서의 업무능력을 짐작할수 있었다. 왜 당당하게 그들을 사로잡을 말한마디 못하는가? 이미 교통혼잡으로 늦어진것이라고 배수의 진까지 쳐 놓았었는데…대신 내가 Traffic Jam 참 심각한 문제라고 너스레를 떨어야만 했었다.
그들은 회의 진행동안에 한마디 의견제시도 없었고, 다만 그들이 요구하는 예산외의 지출을, 예를 들면 Domestic Beer 35 박스가 추가로 필요하다고 하니, 무조건 “예스”로 응답할 뿐이었다. 그들을 예우 해주는것도 좋은 일이지만, 동부지회 향군에 대한 영사관의 행동이 문득 Overlap되기도 했었다. 도와 달라는 동부지회의 요구에는 예산이 없어서 곤란하다고 일언지하에 거절했던 영사관이었는데… 여기서 두얼굴을 본셈이다.
여기서 분명한것은 영사관에서 지원하는 향군관련 예산은 본국의 보훈처소관 예산임을 명백히 알아야 한다. 이곳 동부지회의 실정을 그대로 본국의 정부조직운영에 대입해 본다면, 보훈처 예산을 외교부가 좌지 우지 한다는 격인데, 이는 있을수도 있어서도 안되는, 향군행사와 관련된 제밥그릇을 못찾아먹는 지회의 무능과 무지임을 깊이 깨닫고, 동부지회가 주관하여 캐나다쪽 향군, 영사관측과 회합을 해서, 행사주최권을 동부지회로 되찾아오는 이유를 주지시켜야 한다는 점을 동부지회장을 비롯한 회원에게 강력히 주장한다.
3월,4월,5월 매달 한번씩 정기 미팅을 갖고 행사에 대한 구체적인 Plan을 다 만들었고, 그자리에는 물론 항상 위에서 언급한것 처럼 영사들이 참석했었다. 행사 20여일을 남겨놓고, 어느날 교민담당 영사로 부터 전화를 받았다.
“회장님, 행사내용을 조금 바꾸었으면 하는데…라고 운을 떼면서, Entertainment Plan을 전면 수정하자는 어처구니 없는 요구를 하는것에, 화가 잔뜩난 나는 “이는 내소관 사항이 아니니 직접 캐나다 향군회장에게 요구하시요”라고 대답후 전화를 끊었다. 일종의 측면 지원을 나를 통해 캐나다 향군에 해달라는, 원군이 되여 달라는 내용이었다.
4개월에 걸쳐 완성된 원래 행사순서에는 총독의 축사, 총영사의 축사,캐나다쪽 향군 회장의 축사, 동부지회장의 축사가 있은후, 동부지회에서 준비한 Entertainment순서로, 어린이 합창단의 재롱섞인 연주회를 하게돼 있었다. 영사관측의 일방적인 횡포로, 양측 향군회장들의 축사는 다 빼버린, 즉 알맹이가 빠진 행사를 치르게 된것이다. 뒤에 알게됐지만, 한인사회의 어느 인사가 총영사관과의 개인적인 친분을 이용하여 행사에 고전춤을 비롯한 다른 프로그램을 넣어 달라는 요청을 수용하면서 순간적으로 수개월동안 머리를 맞대고 수립해온 행사내용을 일방적으로 바꾸는, 국가기관으로서의 책임성과 참전용사들에 대한 신의를 저버리는 우를 범한 것이다.
캐나다 회장으로 부터 다음날 연락이 와서, 같은 내용의 얘기를 하면서, 이번 행사 참석 전면 Boycott 하겠노라고 노발 대발이었다. 나의 의견을 묻기에 우리는 한배를 탓으니 전적으로 너의 의견을 존중 할것이다라고 했다. 이를 어떻게 회원들에게 설명을 해야 할지 방법을 찾고 있는데, 며칠후 다시 캐나다 회장으로 부터 연락이 왔다. 주총독(Lieutenant Governor)을 특별 VIP로, 관례에 따라 이번에도 초청했기에 행사 거부를 재고 하여, 참석은 하되 극히 의례적인것이 될것인데 이해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충분히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대한민국 외교의 망신살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수준낮은 현주소를 보여준꼴이었다.
6/25참전 행사도 매년 Ottawa에서 열리고 있다. 우리 동부지회원들은 뻐스를 대절하여 새벽부터 잠을 설쳐 가면서 그행사에 참석해 오고 있다. 그행사는 오타와소재 캐나다향군 소속 Legion 7 지회가 주관하고 있다. 7/27 행사를 주관하는 브람튼 소재 캐나다쪽 Legion23회원들은 참석하지 않는다. 내가 회장 재직시 오타와 행사에 참석할때, 지회장 명의로 된 공식 문서를 캐다다 대사관을 통해 보훈처에 전달했었다. 내용은 연로한 회원들의 오타와 행사 참석을 위한 별도의 예산을 산정하여 요청했던 것이다. 회장직 사퇴후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동부지회 향군웹에는 아직까지 전연 언급이 없다. 운영진의 Follow-up이 없다는 뜻이다. 이러한 예산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갈수록 연로한 회원들의 오타와 행사 참석은 어렵게 되고, 결국 불참으로 까지 이어지게될것이다.
각지역에 있는 캐나다쪽 향군지회에서 형편에 맞게 하나씩 한국전 관련 행사를 맡아 진행하고 있다는 얘기인데, 우리 동부지회는 아직 캄캄한 새벽부터 6시간 이상 달려가서 참석하는, 그리고 점심 한끼 얻어먹고 오는 좋지 않은 역사를 자랑(?)해 오고 있는 현실이 무척 안타깝다.
물론 이행사의 모든 예산 지원역시 보훈처에서 오타와 대사관을 통해 지원하고 있다. 오타와대사관의 체면을 살리기위해, 초창기에 교민들이 많이 살고 있는 토론토 지회에 협조요청이 왔었던 것으로 알고는 있지만, 동부지회가 제 밥그릇을 지킬려면 그곳까지 가지 않고, 본국의 보훈처와 토론토 총영사관과 협의 하여 이곳 토론토 현지에서 동부지회가 행사를 주관하고 캐나다쪽 향군회원들을 초청하여 서로 위로하고, Fellowship을 나누는 알맹이 있는 한국전 참전 추념행사로 기념해야 한다.
동부지회가 제역활을 하기위해서는 적어도 회장단은 조직을 운영하는 행정능력, 외부유사단체와 협력관계, 조직 장악능력이 필수일것으로 사료되며, 현지 사정 때문에 최소한 다음 회장부터는 Leadership은 물론이고, 행정경험과 영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불편없이 구사할수 있는 회원중에서 회장으로 선출되어야 할것으로 믿는다.
현캐나다 향군쪽의 회장단으로 부터 하소연 하는목소리가 자주 들린다. 오래전 역사까지는 언급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내가 회장 할때를 전후로, 회장단들과 일어난 일들에 대한 Episode를 자주 듣는다. 이들의 한결같은 볼멘목소리는, 행사관련 업무협의를 위한 e-mail과 전화통화가 너무나 어렵거나 아예 연결이 안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설명이 필요없이 회장을 비롯한 임원진들의 능력에 달려 있다고 본다.
일예로 지난해 5월달에 본부 향군회장님이 토론토를 방문 하셨었다. 이를 캐나다쪽 향군회장과 임원들도 인지하고, 동부지회장의 초청이 있을것으로 기대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물론 본부향군회장님 및 수행원들도 이를 은근히 바래고 있었을 것으로 예측됐지만, 캐향군측에 한마디 연락도 없이 그냥 동부지회원들끼리 사리원식당에서 북치고 장구치고 했다고 들었다. 본부회장님의 동부지회 방문목적도 한국전참전 캐나다 전우들을 격려하기위한 계획도 포함되여 있었을 것이다. 동부지회장단은 멀리 이곳까지 격려차 오신 그분들에게 행사내용면에서 너무도 큰 실망을 안겨주고 만것이다.
며칠후 실망에 가득찬 이멜을 캐향군회장,Terry씨로 부터 받았는데…… 낯이 뜨거울 정도로 챙피하게 느꼈다. 생각이 부족해서 였을까? 아니면 의사소통에 자신이 없어서 였을까? 독자의 상상에 맞긴다. “7/27행사, 6/25행사같은 한,캐 합동 추모식에 초청객 대접을 받으면서, 우리끼리식의 향군행사는 이제는 안된다. 조국이 부강한 나라의 대열에 서서 큰 목소리를 내는것 만큼 동부지회 향군도 제목소리를 내서 참전용사들을 대접을 해주되, 행사주관자로서의 대접을 베풀어야 한다.
몇달전(7월초)에 미국의 어느 향군지회장으로 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서울의 향군공식행사에서 몇번 만나 Fellowship을 하게된 사이여서 안부 전화를 한것이다. 그리고 충격적인 얘기를 해주었다. 지난 5월달에 시카코에서 북미에 있는 전체 향군지회장들이 모여 미팅을 했는데, 캐동부지회장은 참석을 안했다는것이었다. 의외의 소식에 그분에게 이해가 안간다는 얘기와 함께 이곳 향군웹에 보면, 동부지회장이 3박4일로 시카고 출장을 다녀온다는 공지 사항이 올라와 있고, 현재도 그대로 올려져 있는것을 확인 했기 때문이었다.
http://kvacanadaeast.net/bbs.php?table=board_02&query=view&uid=324&p=2
그후 캐동부지회장으로 부터 참석못하게된 연유를 시카코 지회측에 연락해와, 그곳으로 부터 들었는데, 갑자기 Stroke이 와서 공항까지 갔었다가,시카코행 비행기를 탑승하지 못하고 되돌아 왔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을 동부지회원들은 전연 모르고 있다. 이어찌된 일인가? 과연 동부지회장이 건강상 Stroke이 왔었다면, 며칠뒤 있었던 본부향군회장님 환영 파티가 열렸던 사리원 식당에도 참석 못했어야 앞뒤 설명이 맞는 셈이다. 그리고 지회의 향군웹에도 그사유를 밝혔어야 옳았다. 시카코 회의에서도 북미지회장들은 동부지회를 많이 걱정 했었다는 얘기도 들려 주었다. 아마도 3년 임기를 마치지않고, 1년만에 사퇴한 나의 사건을 염두에 두고 걱정 했었던것 같다. 이사건역시 Rumor 이기를 바라긴 하지만.....
내가 회장직을 잠깐 할때에 향군선배 몇분은 “이회장, 그냥 시간만 떼워, 일벌려서 고생하지 말고….”이런 내용으로 나를 실망시킨분들이 여러분 계신다.
동부지회가 명실상부한 지회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해왔던 관습에서 벗어나 혁신을 해야 한다. 역전의 용사, 전쟁 무용담도 중요하고 존경 받아야 한다. 그러나 조직을 lead 하는것은 이와는 달리 생각해야 한다. 행정능력과 leadership, 대외접촉을 원활히 할수있는 자질이 필수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앞에서도 언급한, 이곳 캐네디언 사회에서 Leadership을 포함한, 제일 필요한 Bilingual에 불편이 없는 그런 회장을 뽑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성원을 보내야 한다. 회원들의 적극적인 후원도 절실히 요구된다.
상당수의 친구회원들은 내가 회장하는 3년동안의 년회비를 일시불로 납부해준 고마운 분들이 계셨다. 그러나 내가 사임한후로 그분들이 년회비 납부명단에는 아예 빠져 있다. 그의도가 무엇인지? 사무착오만은 아니라고 본다. 왜냐면, 서류 인계 인수시 임시회장단이 눈을 부릅뜨고 행여나 약점이 없나 확인했기에, 정확이 명단과 그사유가 적혀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캐나다쪽 향군회장 Mr. Terry씨로 부터 내가 향군회장을 하면서 부터 매달 News letter 받아오고있다. 최근에 받은 News letter에서 동부지회의 새회장에 S 가 된것을 알았다. 그분은 내가 향군전용묘지조성을 위해 작업을 추진할때, 한배를 타고 임원직을 하고 있으면서 "향군묘지를 조성하는것은 Multi million Dollar가 소요되는 Project인데, 코미션 먹지 않고 추진 하겠는가?"라는 터무니없는 Slandering으로 나를 괴롭힌 사람이다. 이제 그가 회장이 됐으니, 다시 한번 그에게 간곡히 권유하고싶다. "향군전용묘지 조성은 역사에 남을 뜻있는 사업이니, 직접 추진 해보시기를 권유합니다. 그리고 그렇게도 눈독을 들였던 커미션도 많이 챙기시요" 라고. 캐나다에서는 Prime Minister 또는 장관을 지냈어도 묘지만은 자기가 직접돈주고 구입해서 안장된다 라는 평범한 사실을 S 회장은 좀 알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또 다른 전임 부회장되시는분은, 내가 존경하고 많은 일들을 상의하곤 했었는데, 한번은 통화중에 다른데서 그분에게 전화가 들어와서 잠깐 기다리는 사이, 그분의 통화 내용을 본의 아니게 도청하면서 깜짝 놀랄 소리를 들었었다.
“이회장 바꾸어 치어야 돼, 그친구 말도 안듣고 엉뚱한 일을 벌리니 그냥 놔두어서는 안돼. 참전용사의 관을 태극기로 덮는 의식에 회장이 참석해야 하는데 안간단 말이야. 이러다간 큰일 나겠어…..” 등등의 나에 대한 뒷통수를 치는 소리에 맥이 쭉 빠지게 됐다. 그래도 못들은체하고 마져 통화를 끝낸일도 있었다. 그분은 두얼굴을 갖고 그렇게 내뒤에서 나를 괴롭혔다.
참전용사가 서거시 관에 씌우는 태극기는, 참전용사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회칙에( 김광웅 당시 참전용사회장) 따르면, 먼저 향군회원이면서 지정된 회비를 납부한 자에 한해서 영구용 태극기를 증정하고 관에 띄운다 라는 내용으로 되여 있다. 그런데 그분들은 이를 완전히 무시하고, 회장한테 태극기 지참하고 참석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무식한 짖을 수도 없이 해대서 나는 그런 원칙에 어긋나는 일을 못합니다라고 응수 했더니 그렇게들 뒤에서 씻어 댔던 것이다.
어떤 회원들은 Meadowvale Cemetery가 향군전용묘지인것으로 크게 착각하고 있다. 향군회원들이 이미 그곳에 묘지를 구입해서 묻히고 있는데 무슨헛소리 하느냐는 것이다. 전임 회장중의 한분은 위패가 모셔서 있는 위령의 벽 바로 옆에 묘지를 구입하고 다른회원들 보란듯이 의기 양양해 한것을 본적도 있다. 그때 향군전용묘지 조성에 대한 거대한 계획을 구상 했거나 묘지측과 협의 했어야 했다.
향군묘지조성한다해서 특별히 더 많은 비용도 드는게 없다. 묘지측과 협의 하여 일정구역을 정해서, 구역앞에 “향군전용묘지” 또는 “군인가족묘지”등등 명칭의 상징물을 세우고, 희망하는 회원들에 한해서 묘지를 각자 구입하게 하고, 고국의 국립묘지에서 처럼 똑 같은 규격의 비석을 각자의 묘앞에 세우면 훌륭한 향군묘지가 되는 것이다.
비용이 더드는것은 절대로 없고, 오히려 단체 구입을 하게 됐을때 받는 혜택이 있을수는 있다.
Brampton Meadowvale Cemetery는 한국전 참전용사 전용 행사장으로 공식화(?)는 되여 있으나 향군전용묘지는 절대 아니다. 그래서 묘지앞에 “향군전용묘지”라는 표시판은 세워져 있지도 않고 묘지안 어디에도 없다. 묘지내 자체법으로 세울수 없게 되여 있다. 이제라도 다시 추진하여 후배향군들에게 전용묘지의 상징성을 전수해 주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향군 동부지회는 부단의 노력과 협력으로 총영사관, 캐나다쪽 향군과 머리를 맞대고 협의를 통해 한국전관련 행사를 주관하고, 오타와 6/25동란 행사도 직접 토론토에서 주관 하도록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이런 행사외에도 캐나다 사회에 우리 향군의 존재이유를 홍보하여, 우리 한인은 물론 케네디언들의 공감을 얻을수 있는 사리에 맞는 활동을 해야 제밥그릇을 되찾았다고 할수 있겠다.
나는 회장직을 맡아 일하면서 주어진 밥그릇과 명예를, 동부지회의 무능력으로 잃어버렸음을 알고, 되찾기위한 구상을 펴는것이 지회장의 Leadership인것으로 믿고 이어려운일을 시작하면서부터, 시기와 모함에 시달리다 이런 막중한 임무완수를 하지 못하고 임기중에 사퇴하고만 실패한 회장으로 기록될것이다.
역대지회장님들 자기네들 PR은 많이 하는것 보았어도, 빼앗긴 향군밥그릇 찾기와 향군묘지 조성을 위한 고민과 공관과의 상하 관계가 아닌 수평적 관계유지로 향군의 위상제고를 위한 노력의 흔적을 나는 느껴보지 못했다.
지회창설 35년이 훌쩍 넘은 긴 세월 동안에, 자체 회관운영은 차치하고라도, 왜 사무실 하나 마련 못하고 오늘에 이르렀는지? 전임 선배님들에게 불만을 말하지 않을수 없다. 전에는 본부의 지원금도 지금과는 비교가 안돼게 많았었다고 한다. 지금은 예산때문에 사무실 운영은 엄두도 안나지만, 사무실 운영한다해도, 이를 지킬 임원들 및 회원들의 호응이 없다. 통탄할 일이다.
훗날에 활성화돼서 제자리를 지키는 동부지회를 염원하기에 다시한번 강조하는 의미에서 동부지회의 현상황을 블로그에 남기는 것이다.
이내용은 Naver blog에 올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