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July 23, 2017

착시현상에 빠져있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고하는 절규- 옮겨온글, 청와대는 부채질하고 있고....

친지가 보내온 글을 읽으면서, 나 자신이 그속에서 청춘을 보냈던 시절이 가슴 저미게 떠올라, 이글을 여기에 옮겨 놓았다.

글쓴이는 굳이, 돌아가신 박대통령을 명시하지 않았지만, 그시대의 경제개발과, 보릿고개를 없애기위해, 국가 지도자를 중심으로 "하면된다"는 굳은 신념으로, 당시에 민주주의를 주창하던 몇몇 위선자들을 제외하고는, 국민 모두가 하나로 똘똘 뭉쳐, 오늘의 한국이 있게하기위한
초석을 쌓아 놓던, 그시대의 힘들고 어려웠던 사회상을 자세히 그려 놓은것으로 확신한다.

나는 그때 말단 공무원으로 재직하면서, 멀리 독일에 기술연수차 떠나던 기억이 새롭게 떠오른다.  초청국 서독에서 달랑 비행기표 한장 보내온것을 들고, 정말로 주머니에, 요즘은 그렇게도 흔한, 미국달러 한장없이, 그래도 조국의 경제건설과 후손들에게는 보릿고개를  다시는 넘겨주지 말자는 무언의 다짐으로, 의기도 양양하게 오직 신기술을 배워야 살수있다는, 젊은 패기하나만으로 김포공항으로 갔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http://lifemeansgo.blogspot.ca/search?q=독일연수

지금같이 편하게 잘살면서, 무일푼으로 비행기표 한장에 의지하고 여행, 그것도 기술 배우러 떠나라고 하면, 마치 군대3년 생활을 마친자들에게, 또다시 군에 입대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면, 차라리 생을 마감하고 말겠다라고 피하는것 처럼,모든걸 포기하고 비행기를 타지 않을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당시를 생각하면, 언어도 서툴은데도, 조국건설에 일조해야 한다는 의지와 신념 하나로 달려갔던 그때가 어제일처럼 또오르는것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젊은이들과 촛불집회를 통한 Collusion으로 정권을 쟁취한 문통의 국가통치 형태를 보면, 가슴이 쓰라린다.  조국의 앞날이 밝게 보여야 하는데, 그반대의 길로, 마치 Break가 고장난 화물차 처럼 달리고 있는것 같아 조바심이 끝이지 않는다.




이런꼴을 볼려고, 박대통령 시대를 살았던, 지금은 인생의 황혼기를 힘없이 보내고 있는 젊은이들의 부모, 또는 조부모님들이 혼신의 힘을 쏟아 부었던것은 절대 아닌데... 젊은이들이여
정신을 차려라. 직장이 없다 한탄말고, 백만명이 넘는 외국의 노동자들이 한국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그진짜 이유를 깨달아라.

문통과 그세력들은 재벌들 흠집 잘을려 하지 말고, 지금 당장에라도 수해로 고생하는 국민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달래주는 자세를 보여줄수있는 현장으로 달려가 함께 어깨를 맞대라.
넥타이 풀어제끼고, 이바구 하는것은 국민들을 Deceiving하는것임을 명심하고....


🔵젊은이들에게 가슴에서 호소합니다 카이스트 경영학과 이병태교수 페북에서 펌 2017.7. 🔵


이 땅에 헬.조선이라고 할 때, 이 땅이 살 만한 정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욕할 때 한 번이라도 당신의 조부모와 부모를 바라보고 그런 이야기를 해 주기 바랍니다.


초등학교부터 오뉴월 태양 아래 학교 갔다 오자 마자 책가방 팽개치고 밭으로 가서 김을 메고 저녁이면 쇠 먹이를 거두려고 강가로 가고 겨울이면 땔감을 마련하려고 산으로 갔던 그런 분들을 처다 보면서 그런 이야기를 하시라.



초등학교 졸업하는 딸을 남의 집 식모로 보내면서 울었던 당신의 할머니를 보면서 그런 이야기를 하시라.


대기업이 착취를 한다구요?

한국에 일자리가 없어서 대학을 나오고도 독일의 광산 광부로 갔고 간호사로 갔던 그래서 국제 미아가 되었던 당신의 할아버지 할머니 시대의 이야기를 물어 보고 그런 이야기를 하시라.


지금도 대학을 나오고도 우리나라에 불법 취업을 와서 노동자로 일하는 필리핀과 몽고의 젊은이들을 보면서 이야기 하시라.


신혼 초에 아내와 어린 자식을 두고 지하 방 반칸이라도 마련해 보려고 중동의 때약볕으로 건설 공사장의 인부로 갔던 당신의 삼촌들을 보고 그런 응성을 부려라.


월남전에 가서 생명을 담보로 돈 벌이를 갔던 당신의 앞 세대를 생각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하시라.



조금은 미안하고 죄스럽지 않나?

앞 세대의 성취와 피땀을 그렇게 부정하고 폄하하고도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지 않나?



사람들은 내가 미국 가서 박사하고 KAIST 교수하고 반기업 정서에 대응하니까 무척 금수저인 줄 아는 가 보다.


​나는 위에 적은 일들을 직접 경험했고 보고 자랐기 때문에 당신들처럼 그런 배부른 소리를 못 할 뿐이다.


나는 부모 모두 무학의 농부의 아들이고, 그 것도 땅 한평 없던 소작농의 아들로 자랐다.


중학교 때까지 등잔과 호롱불로 공부했다.

나보다 더 영특했을 우리 누이는 중학교를 가지 못하고 초등학교 졸업하고 공장으로 취업해 갔고 지금까지도 우리 어머님의 지워지지 않는 한이다.


나는 대학 내내 입주 아르바이트로 내 생활비를 마련하면서 다녔고 때로는 부모님께 도움을 드리면서 다녔다.


나는 돈 한푼도 없이 결혼했고 집없는 설움을 겪으며 신혼 초에 치솟는 전세값 때문에 서울을 전전하며 살았다.


단돈 3백만원으로 가족을 데리고 유학을 가서 배추 살 돈이 없어서 김치를 만들어 먹지 못했고 내 아내는 남의 애들을 봐 주고 우리 딸은 흑인애들이 받는 사회보장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아서 우유와 오렌지 쥬스를 사 먹이면서 학교를 다녔다.


나는 회사에 취업해서 주 6일을 근무하던 때에 입사 첫 해에 크리스마스 날 단 하루 쉬어 보았다.


공장 창고의 재고를 맞추려고 퇴근 안 하고 팬티만 입고 냉방도 안 되는 높다란 창고 위를 기어 올라 부품을 세면서 생산을 정상화 하려 애썼다.


그렇게 야근하는 날은 세상에서 제일 맛 있는 음식은 삼겹살인 줄 알고 살았다. 그렇게 살아 왔기에, 무책임한 노조가 망가뜨리는 회사를 보아 왔기에, 우리보다 잘 사는 것으로 알았던 많은 나라들이 꼬꾸라지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그리고 미국과 일본이 어떻게 잘 사는 사회인지 보았기 때문에 나는 당신들처럼 아프다고 못하고 힐링해야 한다고 응석을 부리지 못한다.


제발 당신의 고결한 조부모와 부모들을 더 이상 능멸하지 말라.


당신들이 우습게 아는 대한민국 기업들 가발공장에 납품하는 하청업체부터 시작해서 배워서 지금까지 일군 것이다.


정부의 벤처 지원책도, 금융도 없었고, 대학도 없었고, 컨설팅 없이 매일 자유수츨지역에 진출한 일본인들에게 술 사주고 기생 접대하면서 배우고 일군 것들이다. 당신의 이모 고모가 그렇게 술 따르면서 번 돈으로 동생들을 공부시켰다.


제발 응석부리고 빈정거릴 시간에 공부하고 너른 세상을 보라. 우리 사회가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사람 값이 싸다고 투덜대기 전에 누구 한 번 월급 줘보고 그런 철 없는 소리를 하고 월급 보다 더 가치있는 직원이라고 증명해라. 그런 직원 찾으려고 기업주들은 눈에 불을 켜고 찾는다.


나는 당신들의 그 빈정거림과 무지에 화가 난다.

그러니 나보다 더 고생하고 생존 자체를 위해 발버둥처야만 했던 나의 앞세대, 내 부모님 세대는 오죽했겠나?


당신들이 아프다고 할 때, 나는 그 유약하고 철없음에 화가 머리 끝까지 난다.


당신들이 누리는 그 모든 것들, 스타벅스 커피, 스타크래프트 게임, 해외 배낭여행, 그 어떤 것들도 당신들이 이룬 것은 없다.


당신들은 지금 이 사회를 더 좋은 사회로 만드는 것으로 지금 누리는 것에 보답해야 한다. 우리 세대는 누리지 못 했기에 당신들이 누리는 것을 보는 것으로 행복할 따름이고 부러울 따름이다.


그러나 당신들에게 조롱받을 아무런 이유는 없다.


당신의 앞세대는 그저 물려 받은 것 보다 몇십 몇백배로 일구어 넘겨준 죄 뿐이고 당신들에게 인생은 원래 고달픈 것이라는 것을 충분히 알려주지 못 한 것 뿐이다. 사기꾼들이 이 나라 밖에는 어디 천국이 있는 것처럼 거짓을 전파할 때 미리 막지 못한 죄 뿐이다.


당신의 부모들이 침묵하는 것은 어이가 없거나, 말해도 못 알아 듣거나, 남보다 더 해 주고 싶다는 한 없는 자식에 대한 애정의 표현이지, 당신들의 응석이 옳아서가 아니다. 그들은 속으로 울화통이 터지거니 울고 계실 것이다. 나는 그렇다.



P.S. 개인적인 이야기를 안 하는 것이 원칙인데 제가 우리사회가 사람 값이 똥값 취급한다는 댓글을 보며 참지 못해 개인적인 이야기를 했습니다..


[출처] KAIST 이병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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