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February 27, 2011

기독교인들의 "선교"라는 단어, 너무나 가볍게 사용되는것을 보면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주위로 부터 "선교" 또는 "선교사"라는 단어를 아주 가볍게 사용하는, 적어도 나의 느낌으로는,그단어의 뜻을 알고 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남용하는것으로 보여지는 신앙인들을 요즘은 많이 접하고 보게 된다. 하나님의 은혜로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고 거침없이 이야기를 하는 그분들과 평상시 교제하면서 보는 마음씀이나 행동을 보면, 도저히 이해를 할수없는 그점이 나를 무척이나 괴롭히고, 나는 왜 그렇게 하나님을 그들이 거침없이 입으로 내뱉는것 처럼 만나지도 못하고, 나는 하나님이 그의 선택받은 자손으로 받아주지 않을까?를 생각 하면서, 고민을 하곤 해 오면서, 현재도 똑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지난 토요일(Feb 26,2011)저녁에는, 내가 출석하는 교회에서 선교에 대한 강의 및 보고회가 있다는 연락을 며칠전 이를 담당하시는 장로님으로 부터 받고, 참석했었다. 핑계일수도 있겠지만, 약속시간에 댈려고 준비를 하고 집을 나섰으나,DVP의 교통이 예상외로 Heavy하여, 결국 20분 늦고 말았었다. Wycliffe에서 사역하고 계시는 선교목사님의 강의가 진행 중이었으며, 그분이 문밖에서 어물쩡 거리는 우리 부부를 먼저 보시고 "들어오세요" 라는 인사를 하시는고로, 본의 아니게 모두의 시선이 우리에게 집중됨을 화끈하게 느끼면서 빈자리에, 죄송스러운 마음을 안고, 착석했었다. 그분의 선교에 관한 강의는 항상 나와 아내의 마음을 긴장 시킨다. Power Point를 사용하면서, 질서있게 전개해 가는 강의 내용을 하나라도 더 기억하고, 실용하고져 함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선교체험에 대한 여러 참석자분들의 경험담 및 선교개념에 대한 발언을 들었다. 그중에는 부부선교사로 여러해를 이슬람 국가인 현지에서 활동하시다 은퇴하신분도, 단기선교로 아시아와 남아프리카 그리고 이곳 국내에서 인디언원주민을 상대로 선교활동 했었던 경험담을 하시는것을 들었다. 한결같이 한두분을 제외한 그분들의 얘기는, 내가 이해하고 있는 선교의 개념과는 동떨어진, 현지에 가서 활동했던 자신들의 이야기를 "선교"라는 단어에 접목시키고, 그위에 하나님의 은혜로 잘 했다는 내용이다. 본인이 됐던, 다른 선교팀이 계속해서 활동하고 있던간에 선교는 계속 되여 우리가 전파 하고져 하는 Good news를 현지인들에게 가르치고 그들이 현실생활에서 기독교를 통한 밝은 삶이 실행에 옮겨지는 성과에 대한 발표나 차후대책 등에 대한 바램이나 후속조치는 전연 언급이 없이 한번 여행을 다녀온 것으로 끝나는 여행객처럼, 가볍게 여기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주고 있음에 나의 마음은 더 무거워질 뿐이었다. 선교라는것이 그분들이 발표해준것 처럼, 한번에 효과가 나고 쉽게Gospel이 전파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 고민이 돼고, 염려할게 있겠는가? 성경이나, 평생을 선교에 헌신하신분들이나, 현재 선교의 개념을 열심히 포교하시는 분들의 얘기들과는 전연 연관성이 없는, 자칫 잘못 이해하면, 그분들이 진정으로 '선교'에 대한 목적이나 개념을 알고 현지에 갔었는지? 아니면 구경삼아 같이 참석하여 보고느낀것을 자랑스럽게 얘기해주는 사람들처럼 PR을 한것 그이상의 아무것도 느낄수도 찾을수도 없었음에, 파견하는쪽에서 부터 다시 정신을 차리고 체계적인 선교교육과 정신훈련이 선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 선교라는 단어를 쉽게 사용하는 양심과 지혜를 왜 나는 갖지 못하고, 책임과 고민을 하는 바보가 되였는가? 왜 나는 그분들이 쉽게 사용하는 '하나님의 은혜'라는 단어를 쉽게 활용 못하는가? 왜 나는 그렇게 그분들이 말하는 은혜로우신 하나님과 접촉을 하는 축복을 못받는가? 어쩌면 앞으로 남은 생애를 살아가는 동안에도, 신앙인으로서 양심상, 내입에서 그런 단어를 내뱉기는 쉽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분들이 무척 부럽다. 적어도 어느면에서는 말이다.

나도 그분들처럼, 선교를 하고, 또 하나님을 만나고 축복을 받고, 은혜를 입어 보고픈 간절한 마음이 항상 가슴속에 살아 있기에, 우선 내자신을 훈련 시키고져, 오늘 강의를 해주신 선교사님이 선교학교를 몇년전에 처음 시작하셨을때도, 등록하고 열심히 강의를 듣고, 선교의 개념을 이해 하려고 노력하면서, 그에 따르는 보이지 않는 동원 사역과, 미쳐 생각지도 못했던 현지에서의 문화와 언어를 포함한 Culture difference와 그위에 현지인들에게 선교사인 나도 너와 똑 같은 존재임을 행동에서 보여줘야 하는 어려움 등등....많이 배웠었다. 선교라는 단어를 마음속에 깊이 묻어만 둔채, 그동안 문헌을 통해서, 설교를 통해서 들어왔던 지역들에 대해 우선 체험을 통해 선교 가능성을 이해 해야 겠다는 신념에서 우리 부부는 시간과 경제적 여건이 되면, 우리 기독교의 전파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그러면서도 아직 어렵게 살아가는 여러나라를 여행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생각이다. 왜 이들은 이러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 왜 선교가 머리속에서 생각해온것 처럼 쉽지가 않은가? 초기 한반도에 선교사님들이 오셔서 목숨까지 바쳐 가면서, 대를 이어 가면서 선교를 하지 않으면 안되였었던가? 등등의 의문과 이해를 할려고, 그러한 긴 여정속에서 보여 주시리라고 믿는 윗분을 하나의 의심도 없이 의지하면서 만나 볼수 있을까?라는 기대감과 설레임 그리고 책임감속에서 나의 삶은 이어지고 있다. 이제 겨우 깨달은 한가지는, 그래도 윗분이 '나를 완전히 버리시지는 않았구나'라는 한가지 확신을 내가슴속에 넣어주신것을 감사해 하고 있다. 그이유를 모든게 상대적으로 풍부하고, 안정된 사회속에서 삶의 터전을 이루게 해주신 은혜를 입었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언젠가는 지혜와 책임이 꼭 수반되는 '선교'라는 단어도 쉽게 입에서 나오게 되는 그날이 올것으로 믿고,의지하는 그분과도 쉽게 교제 하게되는 마음편한날, 축복의 그시간을 맞이하기위해 앞으로의 삶의 방향은 지금까지 해왔던것 처럼 이어질것이다.

Stoney Creek Trail Walk after heavy snow falls.



















우리 산행팀에 앞서 그 누군가가 눈속을 뚫고 지나갔기에 Trail 표시인 White blade의 표시를 굳이 보지 않아도, 그발자국들을 따라 전진하면, 산속을 헤멜 염려는 전연없는, 하늘을 향해 곧바로 서 있는 발가벗은 나무들을 제외하고, 온천지가 하얗게 뒤덮혀 있는 그속에서 한발 한발 옮기면서, 마치 가을철 철새때들이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일렬로 질서 정연하게 날아가는것 처럼, 길게 대열을 이루어 걸어나가는 대원들의 모습이 형형 색색으로 균형을 이루어 주위경관과 Harmony를 이루어 카메라 셧터를 누르는 내마음을 설레이게 까지 한다.

Stoney Creek 구간은 처음으로 걸어본 구간이다. Hamilton쪽을 향해 도심을 지나서 가야 하는곳이기에 즐겨 찾지 않았던 곳이었다. 서쪽으로 한구간만 더 가면 Grimsby구간으로 즐겨 찾는 곳이고, 다시 동쪽으로는 Hamilton 구간으로 꼭 한번 찾았었지만 이구간도 찾지않는 구간중의 하나이다. Bruce Trail이 Hamilton도심 구간을 피할수만 있었다면 아마도 피해 Route를 설정 했을텐데, 다른 방법이 없었던것으로 이해한다.
Hamilton 도심을 빠져 St. Catherine으로 길게 이어지는 이곳은, QEW를 타고 나이아가라쪽으로 달리면서 오른쪽으로 멀리보면 끝없이 이어지는 능선이 보이는 구간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지난 며칠사이의 포근했던때 얼어붙었던 지표가 녹아 흘러내리다, 갑자기 기온이 떨어짐과 동시에 다시 얼어붙은 그위로 소복히 쌓인 눈때문에 잘못 발을 내딧는 날엔 미끄러져 넘어지기 십상인, 대단히 험난한 Trail을 조심스럽게 걷기에 대원들의 발걸음에서 기러기떼들의 행진을 연상하기가 쉽지 않은것 같았다.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route는 올라가기도, 내려가기도 때로는 만들어 놓은 계단을 따라 오르기도하는데, 한발 떼는데, 밑에 덮혀있는 빙판 때문에 Crampon을 사용하는데도 평상시의 두번 세번 떼는 이상의 Energy를 사용하면서도 걸음은 거북이다. 조금 빨리 움직이면서 실족 하는것 보다는,만사불여 튼튼함이 대원들의 지혜인것 같다. 그래도 넘어지는 대원이 발생했지만, 뒤를 따르는 남편이 재빨리 Crampon을 adjust해주는 정겨움을 보여준다. 머리를 들어 위를 올려다 보니,능선의 정점에 커다란 Cross 형상이 뚜렷히 눈속에 들어 온다. 밤에는 조명전구가 환화게 비쳐줄것 같은 십자가 형상이다. 능선위쪽은 평평한 Farm임을 알고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능선의 끝에 만들어 놓은 Look out지점에 세워놓은 Guard rail에 부착시킨것 짐각이간다. 누눈가의 정성이 보는이들의 마음을 포근하게 해줄것만 같은 편안함이 그속에서 보이는것 같다. 숨겨진 빙판위로 이어지는 Trail을 걷는 조심스러운 마음을 달래주는 평안한 마음을, 윗분께서 영감을 나에게 보내 주는것 같다. 포근해 진다.

우리가 걷는 아래로 멀리 민가들이 촌락을 형성한 평화로운 마을이 눈속에 파묻혀 있고, 그더 멀리로는 온타리오 호수가 아스라히 보이고, 바로 걷는 산길과 민가들 사이에는 CP철도가 나이아가라쪽에서 토론토쪽으로 끝도 없이 이어지고,마치 철길과 Trail이 서로 사이좋게 어깨를 맞대고 이어지는 정겨운 느낌이다.
때마침 앞뒤가 서로 보이지 않은 긴화물열차가 우리의 기분을 더 깊이있게 느끼게 해주려는듯이 빠르지 않은 속도로 지나친다. 덜커덩 덜커덩.... 우리의 모습을 기관사(Locomotive engineer)가 보았는지 손짖을 잊지 않는다. 정겹다. 이순간이 지나면 기관사는 아무도 없는 정막감속에서 지루하게 앞만 보고 달릴것이다. 내가 어렸을때 기관사가 되는 꿈을 갖고, 철도학교까지 다녔었던 희미한 기억이 교차된다. 결국 그꿈을 현장에서 해보지는 못한 아쉬움이 지금도 조금은 있다. 무사히 긴 여정을 그분이 마치기를 빌어 주었다.

우리 부부가 속한 제1차 팀은 중간에서 쉬면서 더 전진을 멈추고, 제2팀은 더 전진을 하는 사이, 우리는 점심을 나누었다. 눈속에서 음식을 먹는다? 그맛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들은 이해를 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따뜻한 물한모금을 보온병에서 따라 입을 청소하면서 목에 넘기는 그맛....어쩌면 Trail Walk의 하이라이트일수도 있겠다싶다. 제2팀은 되돌아 올때는 지름길이고, 걷기에 편한 Rail route를 따라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 갑자기, 능선을 따라 걷고 있는 우리눈에 들어왔다. 그들의 철길위를 걷는 광경이 마치 멀리서 달려오는 기차의앞쪽처럼 보였다. 복잡한 도심의 생활과는 영 다른 모습을 그속에서 볼수 있어 좋았다. 한컷 했다. 아직 감기의 고통속에서 완전 해방되지 않은 Lunar와 함께 하기위해 1팀에서 같이 걸었는데, 그러한 걱정을 느껴보지 못한채 무사히 산행을 끝마쳤다. Lunar가 착용한 Crampon이 눈속에 묻힌 빙판에 너무나 시달려서 였는지? 아니면 잘못 Tie 해서 였는지 옆으로 벼껴 있었음을 발견 하면서 오늘 산행은 쉽지 않았었구나 하는 것을 실감 했다. 무사히 마침을 감사 하면서 돌리는 핸들은 가볍기만 했다. 오늘 걸은 구간은 Bruce Trail Map 6에서 찾아 볼수있으며, 그곳까지 도착하는 운전구간도 보여준다.감사.

Thursday, February 24, 2011

마지막날, 그들을 연민의 눈으로 볼수밖에....Cuba.












Feb.14,2011. 아침에 식당에 들어서니, 만나는 Waiters, Waitress들의 인사가 'St.Valentine's day'다.
처음에는 생소했지만, 곧 우리귀에 익은 'Happy Valentine's day'를 의미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적어도 Resort안에서만은 종업원들이 인사를 건네도록 훈련을 받은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었다. 아무튼 인사가 고마웠지만, 그들에게 답례로 줄 초코릿이 없음을 깨달았다. 토론토에서는 젊은이들 사이에서만 Celebrating하는 정도로 별의미를 둔 기억이 없이 살아왔는데, 이곳에서 많은 인사를 받고 보니...옆에 있는 Lunar에게 눈치가 보인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오늘처럼 특별한 날이라고 해서, 일년에 한두번 찾아오는 의미있는 날에, 그녀에게 마음먹고, 모든게 형편없는 나와 함께 살아온 고마움의 선물을 해본 기억이 나지 않은 무심함이 가슴속을 후벼 파는것 같다. 가볍게 입으로만이라도 표시를 해보지 못한것이다. 오늘도 똑 같다. 마음은 안그러는데....

같이 라운딩한 Russia에서 온 젊은 부부는, 전연 Communication이 되질못했다. 그흔한 영어 한마디가 안통하는데, 그용기가 가상했다. 더욱히 놀란것은 골프클럽을 이곳에서 처음 잡아 본다는 그의 고백에 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말이나 통하면 그래도 좀 나을텐데.... 그는 Alexander라고 자기 이름을 알려줬다. 여자친구는 카트를 타고 다니면서 Movie찍기에만 정신이 없어 보였다. 드라이버를 포함한 각종 Club의 Grip하는것 부터 시작해서....
만약에 우리 부부가 골프점수에 신경을 쓰는 골프광이었더라면, 한홀도 같이 라운딩못하고 갈라섰던가 아니면 교체 해달라고 Complain했을 것이지만, 우린 그런것 보다는 골프야 돼던 안돼던 상관없이 즐기는 편이기 때문에 부담없이 같이 어울려, 그의 옆에 붙어서, Fairway wood, Iron, pitching, putter등의 클럽을 사용하는 때와 장소를 아는데로 가르쳐 주면서, 그것도 Body language를 사용하면서, 18홀을 즐겼다. 여행 다니면서 러시아인을, 그것도 이제 30 전후로 보이는 젊은,만나 보기는 처음인것으로 기억될것같다. Camcorder도 오랜 구식인것으로 보아, 러시아인들의 삶의 일부 모습을 그려 볼수 있을것 같았다.

Pro shop에서 아쉬운 작별을 해야만 했다. 이시간이 지나면, 다시 이들을 만나 본다는 기약이 없다. 동생 조카들 같은 혈육의 정으로 며칠간을 잘 지냈었는데....M과 C가 몹시 아쉬워 하는것을 느꼈다. 많은 도움을 받고, 좋은 시간을 보냈는데도, 그들의 말은 한결같이 '잘해 주지 못해 미안하다'였다. 빅터, 어네스트 그리고 금년에 새로 알게된 Security Guard manager 알렉스도 환한 웃음으로 우리를 떠나 보낸다. 어네스트가 우리 부부가 타고 18홀을 달렸던 카트에 올라 타더니 '이제 호텔로 가자. 내가 데려다 주겠다'라고 한다.
그가 몰고가는 카트에 몸을 싣고 달리면서, 지나온 지난 8일간의 시간들을 기억에 되살려 보았다. 우리 보통사람들의 삶에는, 정치적 체제에 상관없이 정을 나누면서 즐거워하고, 살아가는 얘기들도 스스럼없이 나누고...순박함이 저면에 깔려 있음을 깊이 느낀다. 카트를 몰고 호텔로 향하고 있는 '어네스트'도 키가 큰 순진한,조카같은 친구라는것을 매년 만날때마다 진하게 느낀다. "내년에도 꼭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라고 몇번이고 다짐받드시 인사를 건넨다. 호텔앞쪽의 울타리에 도착하자 그가 잠겼던 문을 활짝 열고, 카트를 몰고 호텔로 향한다. 특별히 나름데로의 정을 표시하는것 같다. 호텔 프론트에 도착하자, 우리의 클럽을 손수 들어서 홀안에 옮겨놓고, Lunar와 Hugging을 하고, 악수를 하고.... 헤여짐을 아쉬워 하면서, 되돌아 가는 모습이 그져 선하게 보인다. 도움을 받은 고마움을 달리 표시할 형편이 못되는 우리의 처지를 그는 충분히 이해 하고 있었다. 골프카트로 호텔까지 ride받는 경우는 흔치않은 우정의 징표라고 생각되였다.

Liz가 이층의 자기 방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헤여짐의 시간이 가까워짐에 그녀 또한 잠시나마 같이 있고 싶어하는 마음에서 였을 것이다. Cuban Rum을 한병 선물로 건넨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선물의 뜻이 그속에 담겨 있음을 느낀다. 고맙게 잘 받았다. 내년에도 꼭 만났으면 좋겠다는 인사를 잊지 않는다. 그녀에게 뭔가를 우리도 건네주고 싶은데 마땅한게 없어, 입고갈 최소한의 옷을 제외하고, 전부를 꺼내서 비닐빽에 넣어, 다시 그녀 방을 찾았다. 좋아하고 사랑하게 되면, 계산이 따로 있을수 없음을 살아온 경험에서 알고 있다. 그런 심정으로 그녀에게 우리의 마음을 되돌려 주고 싶어서다. 저녁에 그녀가 가족들에게 우리부부의 마음을 설명할것을 그려보면 마음이 하늘같다. 그들이 큐바밖의 세상을 보게되는 날은 언제일까? 그들을 보면서, 연민의 정을 느끼게 되는것은 그들이 품고 있는 능력의 잠재력이 사장되고 있음을 나는 보기 때문이다.

해변가의 길목에 있는 Snack Bar에서 항상 사람들에게 웃음으로 맞이하면서 피자와 핫도그 그리고 햄버거를 구워주던 Lazaro를 찾았다. Lunar가 그의 손에 여성용 Shawl을 건네 주면서, '그동안 도와줘서 고맙다 Lazaro,오늘 저녁 우리는 다시 토론토로 돌아간다. 잘있어. 이것은 네 부인에게 주렴'인사를 했다. 그가 한던 일손을 멈추고, Lunar와 포옹을 한참 하더니 '내년에 또 올래? 기다릴께'라고 아쉬워 한다.

공항에서 특히 큐바 공항에서 기다리는것은 불편하기 그지없다. 안내방송도 없고, 구경거리도 없고....
출국수속을 다 마치고나니 아직도 2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즐겁게 지냈던 시간들도 이러한 복잡하고 지루한 절차 때문에 희석되는것 같다. 토론토에 도착했을때는 새벽 1시3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륙후 3시간 30분 정도를 날아온것이다. 윗분의 보살펴주심에 감사.

Tuesday, February 22, 2011

필요치 않는 Rules. 소걸음 인터넷,Beach bus tour,















Feb.12-13,2011. 아침에 골프를 시작하기전, 우연히 Pro shop앞의 Bulletin board에 붙여져 있는 여러 규제(Regulations)들 보았다. 너무나 하지 말라는 내용의것들로 꽉 차있음을 보면서, 공산주의의 한 증표인것으로 해석을 해보았다. 사전에Booking을 꼭 할것, Tee off 시간 엄수,Green fee영수증 꼭 지참할것. Local Rules을 지키지 않으면 퇴장시킴 등등.... Riding Cart에 실려있는 두개의 골프백 사이에는 Sand bunker의 모래를 평평하게 하는 Rake가 실려 있다. 세상에 골프하면서, Rake를 카트에 실고 다니는 곳은 여기 큐바에서 처음이자 마지막같다. 그이유를 아직도 나는 모른다.

호텔안에 인터넷이 연결되여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Liz로 부터 들었다. 호텔프론트 데스크의 이층방에 별도로 설치되여 있는데, 바로 그녀의 옆방이었다. 프론트 데스크에서 임시 ID와 PW를 배정받아 인터넷방에 들어가 보았다. 컴퓨터는 2대가 있었다. 젊은 Couple이 한대를 Occupy하고 열심히 Key board를 두드리고 있었다. 나와 Lunar도 나머지 한대를 붙들고, ID와 PW를 넣고 Key board를 두들겨, 우선 e-mail을 열어 볼려고 시도해 보았다. 실망이었다. 속도가 느려 기다리는데 지치고 말았다. 특별히 꼭 확인해야할 일도 아니고, 인터넷이 가동중이라는 말에 호기심으로 시도해 본것이기에, 차라리 백사장에 가서 오후 시간을 보내는 편이 좋겠다는라는 판단이 서, 바로 Give up하고 내려왔다. 토론토에서 인터넷 사용하는것과는 하늘과 땅차이임을 다시 알게 되였고, 또한 좋은 환경속에서 살고 있으면서 평상시에 느끼지못하고 지냈던 고마움과 감사한 마음을 다시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였다. Liz는 그녀가 우리에게 인터넷을 소개해 줄때는, 큐바에도 이제는 관광객들이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교환할수 있는 나라가 됐음을 우리에게 알리고져 했을 자랑도 내포되여 있었을 것이다. 그녀로서는 빠르고 느림에 상대적 비교에 대한 감각을 거의 못느낄것이기에 어쩌면, 불편을 모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나마 우리는 Liz가 알려주어 인터넷이 가동 되고 있음을 늦게야 알았지만, 우리부부가 만난 많은 휴양객들이 인터넷이 우리가 묵고 있는 호텔에 있다는것 자체도 알지 못할 정도로 홍보가 전연 없었음도 이상하게 느껴졌다.

해수욕 하기엔 좀 쌀쌀한 기분이어서, 대신에 Varadero Peninsula에 있는 여러 호텔과 Market을 하루좋일 순회하는, 이름하여 Beach tour bus를 타보기로 하고, 호텔을 나와 버스 주차장으로 향했다. 골프라운딩할때, 지나가는 버스를 여러번 보면서, 우리도 한번 타 보리라 마음에 다지고 있었는데, 마침 오늘이 기회였다. Bus fare는 5peso였는데, 버스는 35분마다 지나간다고 알려 주었다. 이곳에 여러번 왔었지만, 골프장 동쪽으로는 한번도 가본 기억이 없어 항상 궁금 했었는데....
우리가 탄 버스는 우리가 가보지 않았던 동쪽을 돌아 이제 Varadero반도의 서쪽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Double deck으로 된 버스의 윗층은 Open car여서 시야가 뻥 뚫려 구경하기에는 그만이었다. 자리하고 앉아 지나치는 광경을 보는것은 공항에서 들어올때 탔던 버스에서 느끼는 기분과는 달랐다. 시장에서, 호텔입구에서, 정차하여 관광객들을 싣고 내리곤 했다. 반도 입구에 있는 '푼타리나호텔'입구까지 가서 다시 이제는 우리가 보고 싶어했던 동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관광객들을 상대로 하는 먹거리 지역에서 정차 했을때, 젊은 사내가 자기네 식당에 들려 맛있는 요기를 먹고 가라는 신호로 접시에 lobster를 담아 춤추는 장면도 보았다. 그가 서있는 길가 뒷쪽의 야외 식탁에는 몇사람들이 앉아 음식을 먹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가 묵고 있는 호텔을 지나고, 골프장을 지나서, 버스는 계속해서 동쪽으로 향했다. 새로운 호텔들이 많이 보였다. 호텔들과 우리가 탄 버스사이에는 넓고 평평한 빈 공간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이곳이 C로 부터 들었던, 새로운 골프장을 건설하기위한 부지가 아닐까?라고 생각도 해 보았다. 호텔들은 서쪽에 비해 비교적 규모가 크고 새로워 보였다. 대개가 5스타 호텔임을 알수 있었다. 그러나 서쪽처럼 민가도 없고, 사람사는 냄새가 덜 나는, 그런 분위기를 느낄수 있었다. 해안가를 따라 달리는 고속도로 오른쪽에는 Marina같은 곳이 건설되고 있는것 같았는데.... 설치해 놓은 Cranes는 움직이지를 않는것 같았다. 부딪치는 바람에, 몸에 싸늘한 기가 들어 아랫층에 내려와서 자리를 잡았다. 운전수 뒷쪽의 벽의 반도의 지도에는 버스가 지나다니는 route가 자세히 표시되여 있었다. 버스는 반도의 끝에서 끝을 달린다는것을 알았다. 버스 안내양은 철저하게 버스표를 조사했고, 이버스는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 운행 되는데, 한번 버스표를 구입하면 그시간내에는 몇번이고 사용할수 있었다. 필요한 곳에 내려서 구경하고, 다시 버스를 타고.... 우리 부부는 구경보다는 우선 반도전체의 모양새를 보고져 하는 목적이 더 컷기에 차에서 내고 다시 타는 법석은 떨지 않았다.
큐바 주민들이 이용하는 시내버스는 달릴때는 굴뚝 같이 연기를 품어 대었고, 차체는 다 낡아 덜덜 거리면서 거리를 달리고 있는것도 우리가 타고 있는 버스와는 아주 대조적이었다. 그들이 우리 관광객을 보면서 뭘 느낄까? 지도상에서 보는 골프장은 반도의 중앙지점에서 약간 서쪽, 즉 Mainland쪽에 위치해 있음도 알게됐다. 한바퀴 돌고, 호텔앞에 내렸을때는 약 2시간 40분 정도가지난 뒤였다.

Monday, February 21, 2011

한손잡이 골퍼 Ric과 라운딩... 그리고 Nap 단맛에 젖어들고..





Feb.11,2011. Richard와 Dominic, 그리고 우리 부부가 같이 라운딩을 하게됐다.
Ric은 왼팔이 불구여서, 오른팔 하나로만 Golfing을 했다. 체구는 건장했다. Dominic은 나와 동년배같아 보이는 깡마른 친구다. 처음에는 그가 어떻게 한손으로 Aim하고, 흔들리지 않고 볼을 때릴수 있을까?라고 관심이 그에게 쏠렸던것이 사실이었다. 그는 아주 자신만만하게, 정확하게 샷을 날리는데, 감탄하지 않을수 없었다.
Miss shot이 두팔을 사용하는 나머지 3사람보다 훨씬 적었고, 볼이 날아가는 비거리도 우리와 막상 막하로 비교적 정교했다. 퍼팅또한 젊묘하게 잘했다. 그는 부침성도 좋아 라운딩하는 멤버들을 웃음도가니 속으로 계속 밀어 부치면서, 그가 Disabled 라는점을 전연 느끼지 않게, 당당했다. 이번에는 혼자 왔는데, 다음에 올때는 Girl friend와 같이 와서 즐기겠다고 다음 계획까지 털어 놓는 여유를 보였다. 그는 Ottawa에서 살면서
중장비 수출입을 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고 자기를 소개했었다. 그는 그가 운영하는 사업이 작년에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호황을 이루어 무척 바빴었다고 말하면서, 금년에도 아직까지는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데, 이는 캐나다의 건설,즉 집짖는분야와 도로 간척사업같은 Industry가 불황을 모르고 바삐 움직이고 있는 증거가 아니겠느냐고 설명해 줬다. 그의 설명이 약간은 이해 하기가 쉽지 않았다. 우리 한인들이 주로 많이 종사하고 있는 Small retail사업은 계속 침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해, 속을 태우고 있는 현실과는 대조적으로 보여졌기 때문이다. 그의 사업이 계속 번창 하기를 빌어줄 뿐이다.

Dominic은 묶는 호텔도 우리와 같았다. 매년 이곳에 오는데 이번에도 아내와 같이 왔다고 한다. 그러나 아내는 골퍼가 아니기에 이시간에 호텔 어딘가에서 딩굴거나 아니면 백사장에서 Sun tan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하기에, 같이 배워서 같이 즐기면 좋았을 것인데..... 라고 아쉬움을 표하자, 많이 시도해 보았었노라고 말못한 고충 비슷한 설명을 해준다. 이친구는 Montreal, Canada에서 날아와서, 우리와 연을 맺은 셈이다.

우리의 신상에 대해서도 그들에게 대충 설명해 주었었다. Ric이 하도 웃겨서 18홀을 어느새 다 돌았나 싶게 끝냈다. 아침에 기온이 내려간 영향으로 생각보다 라운딩하는 골퍼들이 적어, 다른때 보다 일찍 끝난것 같았다. 그러나 우리가 라운딩을 끝낼때는 기온이 상승하여 시원한 맥주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오늘은 On Time에 점심을 먹게 된셈이다. 자리를 잡고, 우선 Serving하는 Waiter에게 부탁하여 세잔의 맥주를 들이켰다. 뱃속이 시원하다. 먹고싶고, 마시고 싶으면 Order만 하면 대령해 주는 이런 분위기속에서 나는 마치 King이라도 된양, 천국이 따로 있으랴 싶게 기분이 좋기만 하다. Lunar도 맥주로 목을 추긴다.
같이 라운딩 했던 Dominic이 우리 테이블 옆을 지나치면서 인사를 한다. 그는 우리보다 조금 늦게 호텔에 도착한것 같았다. 그는, 우리와 다르게,택시를 타고 호텔에 도착 했을 것이다.

노곤하다. 이곳에서 할일이라고는 먹고, 쉬는것 외에는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식권증이라고 해야하나? 졸음이 온다. 침대에 벌떡 드러누워 은은히 돌아가고 있는 에어콘을 벗삼아 Nap의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배도 불렀고, 시원한 맥주도 마셨고....

Sunday, February 20, 2011

런던,온타리오 친구와 골프 그리고 야자수열매속의 천연음료수의 맛, 삶의 애환...













Feb.10,2011. 오늘은 우리가 마음속으로 생각해 왔던 Tee off시간이 조금 늦었다. 예상치 않았던 조그만 차질이 빚어졌기 때문이었다. 약속한데로 시간에 맞추어 호텔을 나와, 골프장 카트를 기다렸는데,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약 15분을 더 기다리다, 급한 마음으로 택시를 타고 골프장에 도착했다. M이 택시타고 왔지?라고 먼저 묻는다. 우리의 Pick up을 위해 보낸 직원이 다른데로 가서 기다리다 그냥 왔다는 것이다. 호텔 프론트에 연락했더니 우리부부가 골프하러 나가는것을 보았다는 대답을 들었기에 알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Paul and Lunar, 미안해 내일부터는 이런일 없을거야"라고 오히려 미안해 한다. 내가 더 괜히 미안해 진다. 계약한 것도 아니고, 그녀는 친구인 우리에게 도움을 줄려고 했었던것 뿐인데...

마침 1번홀 Tee box에는 밀리지 않아, 애디가 우리 부부를 그곳으로 나가라고 손짖해 주었다. 한팀이 Teed-off를 하고 있었다. 그들이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건장한 젊은 친구가 내곁에 오더니 같이 라운딩 해도 되겠느냐고 인사를 건넨다. 애디가 보냈다는 것이다. 거절할 이유가 없다. 같이 라운딩 하게되여 오히려 우리가 더 고마워 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그도 좋아한다. 자기는 Mark라고 소개하면서, 카트에 타고 있던 여자를 가리키며,내여자 친구인데, Christine이라고 소개해준다. 나도 그와 같이 우리부부를 소개하고 라운딩을 시작했다. 이젊은 Couple은 건장했다. 몇홀을 치면서 그가 장타이고 수준급의 골퍼임을 알게됐고, 여자 친구는 아직 Lunar보다는 골프에 익숙해 있지 않음을 알았다. 우리 부부는 토론토 온타리오에서 왔다고 했더니, 자기네는 London, Ontario에 왔다면서, 직장은 토론토에 있다고 했다. 토론토? 3시간반 이상의 장거리 운전구간인데.... "매일 어떻게 장거리 운전을 하느냐?", "하루 일하고 이일간 쉬는 소방관으로 근무 하기 때문입니다" 라고 애기해 준다. 이번에 그를 통해서 알은 사실인데, 소방관은 대개 24시간 근무하고, 48시간 즉 2일간을 Off 하는 순번제로 운영되고 있다는것을. "토론토로 거주지를 옮기면 더 편하고 시간 절약도 될텐테.....",라는 나의 의견에, 그의 대답이 " Christine이 London에서 살기를 더 좋아하고, 또 그녀가 그곳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은 매우 만족해 한다." 라고 설명해 준다. 여자들이 친 볼이 잘나가면 마치 약속이라도 한듯이 우리 남자둘은 'Nice shot'을 연발 하면서 그녀들을 encourage시켜주는것을 잊지 안았었다. 끝까지 18홀을 같이 라운딩 했으면 좋았을텐데, 호후에는 다른 구경을 가야 하기 때문에 9홀을 마치자 떠나야 한다고 Mark가 아쉬움을 표한다. 같은 캐나다에서 온 인연하나만 으로 이곳 큐바에서 처음 만난 그들이 마치 고향친지를 만난것 처럼 느껴지는 마음의 동요가 묘하다.서로 Shoot할때 마다 snap했던 사진들을 보내주기위해 e-Mail 주소를 교환하면서, 남은 휴가 잘 보내기를 서로 기원하면서 그들은 떠나고 우린 다시 Back 9으로 달렸다.

이제는 우리 둘이서 라운딩하고, 또 마침 우리 앞뒤에도 골프들이 붐비지 않아 여유롭다.
12번 홀에 올라 서려고 하는데, 조그만 트렉터를 타고, 현장에서 일하고 있던 일꾼 한분이 우리를 보더니 오라고 손짖을 한다. 그는 재빨리 트렉터 위로 올라가서, 다시 긴 장대같은 것으로 야자수 열매를 건드려 몇개를 Bunker속의 모래위로 떨어 뜨린다. Lunar가 서로 통하지도 않는 손짖 발짖등을 동원해서 의사 표시를 하는것을 나는 카트에서 그냥 처다 보고 있었다. 그분이 떨어진 야자수열매중에서 하나를 골라 잡더니, 밀림도끼로를 사용하여 익숙한 솜씨로 껍질을 벗겨내더니. Lunar에게 마셔보라고 건네 준다. 얼굴은 새까맣고, 몸도 깡마른 모습이다. 그러나 마음만은 좋은 중년의 티없이 맑은 얼굴을 가진 현장일꾼임을 알수 있었다. 순간적으로 우리도 뭔가 보답을 해야만 될것 같아, 마침 가지고 온 여러개의 모자중에서 하나를 골라서 Lunar에게 건네 주면서 씌워주라고 했다. 그리고는 더워서 벗어 두었던 얇은 T-shirt 하나도 같이 곁들였다. 고마워 하는것을 보면서...."왜 하필이면 우리 부부를 향해 그런 Gesture를 보여 주었을까?" 그도 혼혈족임이 내눈에 비쳐졌다. 주로 보이는 백인들 속에 흔치 않은 동양인부부인 우리가 그의 눈에도 특이하게 보여서?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됐다. 아니면 가끔씩 보이는 라운딩하는 한국사람들의 잔정(?)을 알고 그랬을까? 어쨋던 고마웠다. Lunar도 나도 한모금씩 마셔 보았다. 뜨거운 태양아래서만 있었기에 찬맛은 없었다. 첫 한모금은 비릿내 냄새가 풍기더니 더 마실수록 갈증을 해소해주는 고소한 맛이다. 다른 soft drink를 마시는것과는 다른 뒷맛이 개운했다. 모랫사장에서 현지인들이 젊은 휴양객들을 상대로 야자수 열매를,재빠르게 밀린 도끼를 사용해서 껍질을 벗겨 판매하는것을 본 기억이 떠 오른다. Straw를 대고 쭉쭉 빨아 대면서 바닷물속으로 들어가던 젊은이들의 모습이 말이다. 어떤 젊은 친지들은 그속에 다시 Snack Bar에서 다른 음료수를 REfill해서 마셔대던 모습도 떠 올랐다. 이곳 휴양지가 아니면 어디서 이런 맛을 느낄수 있겠는가? 이런맛을 잘아는 Lunar의 기분이 얼굴에 나타난다. 적시 적소에서 서로 필요한것을 나누면서 살아가는 맛을 느낀때문일것다.

오늘은 호텔에 조금 늦게 도착했기에 늦은 점심을 해야만 될것 같다. Lobby에서 Liz를 만났는데, 그녀가 먼저 같이 점심을 했으면 하고 제안해 온다. 그녀도 처리할 일 때문에, 우리처럼 늦었나 보다. 그녀와 식사를 같이 하는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Liz가 다른 여인 한명을 손짖하여 동석 시킨다. 그녀의 이름은 Vivian이라고 했다. 그녀도 호텔직원인데, 식당밖의 낯무대에서 MC를 보는, 낯익은 얼굴이다. 그녀도 혼혈족으로 크지 않은 등치에 이쁘고 재치있게 보인다. MC답게 얘기도 정감있게 잘하면서 금새 우리는 친해 졌다. 있다가 식당밖에 큰 수영장에서 수중 배구를 할때, MC를 보게 되는데, 그때 꼭 우리 부부가 와서 보기를 원하단다고 설명해준다. 호텔 로비를 구거나 뒷편의 바닷가를 갈때마다 거쳐야 하는 옥외 수영장을 지나칠때, 마이크에서 흘러나왔던 허스키한 MC의 음성이 그녀였음이 파악된다. Liz가 Vivian과는 오랫동안 알고 지내는 친구이면 또한 같은 동네에 살고 있다고, 매우 재치있는 친구라고 추겨주고, Vivian은 Liz는 호텔 매니져로 매우 바쁘게 활동하고 있다라고 하면서, 그와 같이 일하는게 즐겁다라고 쉴새없이 입을 놀린다.
우리 부부도 Liz를 알게된게 큰 행운이라고 맞장구 쳐주었다. 내년에도 꼭 다시 와야 한다고 둘이서 다짐을 받아 두려는듯이 우리의 의향을 묻는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했던가. 오게되면 다시 이호텔로 오는것은 거의 당연한 것이나 다름 없기에, 주저없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너희들 둘때문에 다른 호텔로 갈수가 없게 된것을 너희가 더 잘 알텐데..... 오늘의 점심은 의미가 새롭다.

늦은 오후에 바닷가로 Lunar와 함께, 해변가를 걷기위해 나갔다. 바람이 다른때에 비해 세게 불고, 또 기온도 내려가 자켓을 하나 걸쳐야만 될것 같은 이상 기후다. 텅빈 백사장에는 감시원 한명과 덩그러니 모래사장 이곳 저곳에 흩어져 있는 이동용 의자들 뿐이다. 마음도 추워지는것을 느낀다. 백사장에는 24시간 감시원이 꼭 있다. 휴양객들의 안전과 재산보호를 위해서 보초를 세우는 것임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감시원이 우리를 보자 먼저 인사를 건넨다. 정적속에 파도소리만이 철석 철석하고 들리는 늦은 이시간에 우리를 보는것은 어쩌면 그에게는 반가운 말벗이 되고, 지루함을 달래주는 매개체 역활을 우리가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는 두툼한 잠바를 걸치고 있었다. 태양이 작열하는 낯시간에는 쉼터를 제공해 주고 있는 입구쪽의 원두막을 이동용 의자로 빙둘러 병풍을 쳐 놓은것이 눈에 띈다. 밤동안에 불어오는 찬바람을 막기위해 그가 설치해 놓은 것임을 알수 있었다. 자기는 늦은 오후 다섯시부터 다음날 새벽 다섯시까지 근무한다고 했다. 밤바람이 차겁고 또 아무도 없는 찾지 않는 밤시간 동안에 혼자서 감시를 한다는것은 쉽지 않을 거라고 운을 뗏더니, 오랫동안 해온 일이라고 가볍게 넘겨 받는다.
그가 입고 있는 두툼한 잠바를 가리키면서 좋아보인다 라고 했더니, 회사에서 제공해주는 Uniform이라고 설명해준다. 엄청나게 비싼것으로만 알고 있을뿐,개인적으로는 감히 구입할 엄두도 못내는 고가품으로 정확한 가격은 모른다고 했다. 이곳 캐나다에서 같으면 Sale 할때면 약 백불 정도는 충분히 될것 같았다. 한참을 같이 Shelter에 앉아 얘기를 나누는 중에 자연스럽게 그들의 삶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매우 고달픈 삶이었다. 한달 월급( 캐나다 돈으로 약 25달러정도)으로는 자식키우고 먹어야 하고....턱없이 부족하여, 할수만 있다면 또 다른 일을 찾지 않을수 없다고 했다. 호텔에서 근무 하는사람들은 팁이라도 받을 기회가 흔치만, 이친구는 그런 수입도 없는것 같아 보인다. Lunar가 약 30분 후에 다시 올테니 그때 만나자고 하면서, 나에게 눈짖을 한다. 벌써 나는 그녀의 마음을 알기에 같이 일어서서 호텔 우리방으로 발길을 옮겼다. 옷가지 몇개를 정성스럽게 Luanr가 비닐봉투에 넣었다. 우리가 입을려고 가져온 옷가지들이다. 그친구가 우릴 다시 보더니 웃으면서 반가워 한다. Lunar가 비닐백을 건네 주면서, 새옷은 아니지만 너에게 주고 싶어서 들고 왔다고 설명해준다. 그가 너무나 고마워한다. 있는자에게는 하찮은 헌옷가지일수 있겠으나, 그들에게는 꼭 필요하지만, 형편이 안되 구입할수가 없는 꼭 필요한 것들인것이다. 우리아이가 좋아할것이고, 아내가 또 좋아 할것이라고 몇번이고 감사해 한다.
6/25이후 어린 나이로 어려웠던 시절을 거쳐온 우리이기에, 이들의 어렵고 아픈 마음을, 쉽게 그들의 입장이 되여 느낄수 있기에 금새 마음에 와 닿는다는것이 어쩌면, 그들보다 조금 형편이 좋게 살고 있는 우리의 마음을 쉽게 움직이게 하는 Motive역활을 해주는것 같다. 조그만것들의 나눔이었지만, 그친구는 식구들의 삶에 보탬이 될수 있는것을 얻어서 좋고, 그친구가 좋아하는것을 보면서 나눔의 참뜻을 터득해서 마음 흐믓하고.... 적게나마 조그마한 행동을 실천으로 올겼다는것에 감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