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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April 03, 2021

"오세훈 측에 폭행당했다" 오태양, 영상 공개로 이준석 반박, 그옛날 위선자 김대중 생각나게 하는 명연출이었네.

 "오태양" 후보가 어떤 성품의 사람인지 내 알바는 아니나, 상대방 후보를 흠집내기위한 선거운동 쑈라고 보기에는 너무도 챙피한 병신짖을 했구만, 아무리 생떼를 부려도 뻐스는 이미 떠났다.

아래의 사진을 보면서, 그옛날, 박정희 대통령께서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밤에는 휏불을 켜놓고, 할때의 순간들이 머리에 떠오르게 하는, 가슴아픈 기억을 생각하게된다.

"민주주의 신봉자"라는 가면을 쓰고, 경부고속도로 건설현장에서,  열심히 토지 정지작업을 하고 있는 불도져 Shovel앞에 벌렁 드러누워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방해하면서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군부 독재자 박정희를 비롯한 일당들이 드라이빙을 엔조이 하기위해서 건설하는, 국민들의 일상생활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고속도로 건설이다"라고.

그후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된후에 가장 많이 드라이빙으로 인생을 엔조이 한자는 바로 "위선자 김대중이었다.  그다음으로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수출용 물동량을 주야로 실어 나르는 추럭과 컨네이너선 운송 차량이이었고, 그다음에 민간인들에게 자가용 붐이 일어나, 경부고속도로는 문자 그대로 우리몸속의 혈관 역활을 해줬고, 오늘의 산업이 발달된 조국근대화의 초석역활을 해주었었다. 

김대중이가 부르짖은 "자유민주주의 국가 건설"이라는 케치 프레이즈는 완전 허구에 국민들 눈속임이었음을, 그의 Body Guard로 그를 신처럼 모셨던, 함윤식씨의 자서전에서 잘 나타나있다. 그속에서 기억에 남는 한구절을 인용한다.

"김대중이의 가신들이 동교동 집에 모여 회의를 할때, 모인 가신들의 몸자세는 완전히 두무릎꿇고, 부동자세로 앉아 있어야 했고 위선자 김대중이는 포근한 소파에 몸을 기대고 앉아 가신들을 선동했었다"라고. 미국의 대통령 집무실에 모인 보좌관들은 때로는 앉아있는 소파에 두발을 올려놓고 대통령과 대화하는 모습이 연상되게한다.

오태양을 비롯한 사이비 정치꾼들아, 선거운동은 이런식으로 상대방 후보를 모함하는게, 절대 아니다.  민주당을 비롯한 사이비 정치꾼들은 위선자 김대중이를 한국의 민주주의 선구자로 칭송한다.  그래서 지금 한국의 민주주의는 절름발이 자유민주주의 사회가 됐고, 그열매를 지금 간첩 문재인과 그일당이 즐겨사용하면서, 국민들의 입과 귀를 막고,  사법부의 재판은 획일적으로, '송철호같은 내편의 범죄자들은 재판개시를 아예 하지를 않고, 내편이 아닌 범죄혐의자들은, 전직 대통령들도 아랑곳 하지 않고, 재판을 열어, 남은 인생을 감옥에서 살다가 가도록 묶어 두고, 마음에 안드는 기업 총수역시, 프레임을 씌워 감옥에 가두어 경제활동을 못하게한다. 그희생자들중의 한명이 바로 삼성총수 이재용이다. 

국민들아 정신 차려요, 간첩 문재인과 같은 편인, 색마 박원순과 오거돈을 대신할 시장선거에는 인간의 탈을 쓴 민주당이라면, 아예 후보자를 내보내지 않았어야 했다.  그런데 그들은 지금 적반하장의 Negative campaign 날이 새는줄도 모를 정도다.  그만 해라. 그만해라. 쑈댓가로 받은 사례금은 민주당 찌라시에 돌려주고 잉....


이준석 국민의힘 선대위 뉴미디어본부장이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오태양 미래당 서울시장 후보의 육성이 담긴 영상을 게재했다.
 
앞서 이날 오전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 측으로부터 폭행을 당하는 장면을 촬영한 영상이 있으면 공개해달라’고 한 자신의 요구에 오태양 후보가 당시 상황이 담긴 영상을 올리자, 이 본부장은 “오태양 후보님 육성으로 반박하겠다”면서 이런 영상을 올렸다. 
 
영상에는 오태양 후보가 폭행이라고 주장하는 행위가 있은 후로 추정되는 상황이 담겨 있다. 
 
이 본부장은 “영상 1분 50초 지점에 누가 자신을 밀쳤는지에 대한 오태양 후보님이 ‘경찰이 밀쳐서 머리를 땅에 부딪혔다’는 육성 증언이 있다”며 “아무리 선거기간이라고 해도 정말 좀스럽고 민망하다”고 덧붙였다.
 
앞서 오태양 후보는 이날 오전 페이스북에 폭행 관련 영상을 공개하며 “명확한 선거법 위반 및 폭행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2일 목동 깨비시장에서 유세를 하던 오세훈 후보에게 용사 참사 발언에 대해 사죄하라고 말했다가 오 캠프 관계자들로부터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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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양 후보는 당시 자신에 대한 신체 폭행, 선거운동 피켓 파손 등 행위가 있었다고 거듭 주장하며 이를 뒷받침할 다수의 영상과 사진자료도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저와 선거운동원 폭행에 대해서는 서울선관위, 양천경찰서에 폭행죄로 고발을 앞두고 있다”며 “공정을 좋아하시니 공정하게 사법판단을 받아보자”고 덧붙였다.

 
김은빈 기자 kim.eunbin@joongang.co.kr


https://news.joins.com/article/24027120?cloc=joongang-home-newslistleft

https://news.joins.com/article/24027172?cloc=joongang-home-newslistleft

Saturday, October 26, 2019

박정희 前 대통령 40주기 추도식...국립현충원서 열려-지금같은 난세에 정말로 대통령각하 옆에 계셨더라면...

얼마전 동작동 국립묘지에 모셔져 있는 박정희 대통령 각하의 묘소 봉분에 수천개의 철못이 밖혀 있는것을 잡풀을 뽑던 인부에 의해서 발견되여, 백성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었던 일이 있었다.  국립현충원장은, 여러명의 대통령님들의 묘소가 모셔져 있지만, 유독히 박정희 대통령 각하의 묘소에서만 벌겋게 녹슬은 철못이 발견된것에 대한 해명한마디 없었다.  이를 항의하는 백성들을 현충원 직원들은 난동을 피면 오히려 법에의해 현충원에서 추방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었다.

오늘을 살아가는 백성들의 생활이 선진국보다 다양하게 발전돼고,  삶을 즐기는 그원천을 만들어주신분이 바로 박정희 대통령각하였었다. 매년 이른 봄이면 배고픔에 찌들어 누런 얼굴빛으로 마치 병자들 처럼 배고픔과 아픔에 시달렸을때, 백성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 넣어주시고, "우리도 하면 된다, 후손들에게 배고픔을 더이상은 물려주지말자,"라고 외치면서 5개년 경제개발계획을 세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새로운 판을 짜서, 경제건설에 매진했었다.



지금도 뚜렷히 기억나는것은,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할때, 군공병대를 투입해서 기술을 발휘하게 했었고, 건설업체들이 대통령과 뜻을 합심하여 산을 깍고, 하천에 다리를 놓고, 모두가 희망과 꿈을 안고 건설에 매진할때, 박정희 대통령을 가장 가슴아프게 했던 사람들은 다름아닌, 자칭 민주투사라는 김대중과 김영삼이었다.  그들은 고속도로 건설현장에서, 땅을 파는 불도져  Shovel앞에 드러누워 건설을 못하게 방해했었다. 그자들의 주장은 "차도없고, 먹고살기도 어려운데 고속도로를 건설해서 누가 이용할것인가? 고속도로 건설은 국가를 망하게 하는 길이다"라는 괴상한 논리를 펴서, 마치 자기들만이 애국자인양 거짖 술수를 썼었다.

https://lifemeansgo.blogspot.com/search?q=%EA%B2%BD%EB%B6%80%EA%B3%A0%EC%86%8D%EB%8F%84%EB%A1%9C%EA%B1%B4%EC%84%A4+%EB%B0%A9%ED%95%B4+%EA%B9%80%EB%8C%80%EC%A4%91

https://lifemeansgo.blogspot.com/2021/04/blog-post_18.html

은퇴후에 인생공부를 더 하기위해 세계 여러나라들을 여행 했었다.  잘사는 나라,못사는 나라 들을 탐방하기위해서는 먼저 방문하는 나라의 관문인 국제비행장을 통과 해야 했었다.  많은 나라들은 국가의 발전을 위해 노력했었던 대통령이나 리더들을 오래동안 기억하고, 후세들에게 알려주기위해, 가장 쉬운 방법중의 하나로 선택해서 사용하고있는것이 바로 국제공항에 그분들의 이름을 부쳐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오래전부터, 우리도 이제는 10대 경제대국 대열에 들정도로 경제적 정치적으로 성숙했으니, 이제는 국격을 높이고, 후세들에게 오늘의 잘사는 조국이 있게 해준 전직 대통령들을 경배하고, 기억하게 해주는 방법으로, 무려 15개가 넘는 국제공항중에서 선택하여, 최소한 인천국제공항을 "박정희 국제공항", 부산국제공항을 "이승만 국제공항"으로 개명 해야한다고 블로그에 또는 TV에 잘나오시는 분들에게 진언 했었다. 대답은 전부 "아니다"였었다.

오늘 박정희 대통령 40주년 추도식에서, 그분의 공적을 인정하고, 후세들에게 건국의 아버지와 경제개발의 영웅을 알려주기위해 Monastery라도 건설하자는것을 차치하고, 비용이 안드는 국제공항의 개명을 주창한 분은 눈을 씻고봐도 없었다.  제발 이제는 당리당략을 떠나 잘사는 국가건설을 위해 Open Mind를 가져 달라고 부탁한다.

레이건 대통령이 서거한지 채 2년도 안돼서, 미국은 와싱턴의 둘레스 공항을 "레이건 대통령 국제공항"으로 개명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외 터키의 Artaturk공항, 영국의 Heathrow공항, 필리핀의 Aquino 공항, Kennedy공항, 이스라엘의 밴구리온공항,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공항, 케냐의 캐냐타공항, 드골공항, 멕시코의 후아레스공항, 이태리의 레오날드다빈치공항 등등 그이름을 다 헤아릴수없이 많다.  제발 이제는 눈을 크게 뜨고, 영웅칭호를 백성들로 받을수 있는, 박정희, 이승만 정도는, 돈안들이고도 후세들에게 기억시킬수 있는 방법, 즉 국제공항의 명칭으로 사용하자.

https://lifemeansgo.blogspot.com/2019/03/ys-dj-3.html

김대중 대통령의 이름을 딴 각종 기념관, Arena, 도서관등등이 전국적으로 10개 넘게 건축되였다고 들었다. 너무나 편파적이고, 정치꾼들의 당리 당략을 따른 국정농단이 아닐까?

아래 조선일보의 추모식 보도 내용을보자.

황교안 "어떻게 한국을 부강한 나라로 만들었는지 리더십 생각해 봐야"
김문수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따님, 마녀사냥으로 탄핵…구하겠다"
구미 생가서도 추모제·추도식 열려…구미 지역 與 정치인 참석
與 소속 장세용 구미시장 "실용주의적 혁신가, 난국 돌파할 지침"


박정희 전 대통령 40주기 추도식이 26일 오전 11시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박 전 대통령 묘소에서 열렸다. 민족중흥회가 주관한 추도식에는 박 전 대통령의 딸 근령씨와 배우자인 신동욱 공화당 총재가 참석했다. 정치권에서는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 김진태·이헌승·정태옥·전희경·김현아 의원과 김문수 전 경기지사, 우리공화당 조원진·홍문종 공동대표, 무소속 이언주 의원 등이 참석했다.

황교안 대표는 추도식이 끝난 뒤 기자들을 만나 "박 전 대통령께서 어려웠던 대한민국의 경제를 되살리고 산업화를 이룩하는 큰 업적을 남겼다"며 "어떻게 어려운 대한민국을 부강한 나라로 만들었는가에 대한 리더십을 생각해봐야 한다. 특히 대통령의 경제 리더십은 본받을 게 많다"고 말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가 흔들리고 있다. 대한민국의 모든 역사가 물거품 되는 순간"이라며 "모든 대한민국의 역사를 거꾸로 하는 반(反)헌법적인 문재인 정권에 맞서, 다시 대한민국의 산업화 역사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추도식이었다"고 했다.


김문수 전 지사는 추도사에서 "당신께서 이룩한 한강의 기적을 송두리째 무너뜨려 김정은에게 갖다 바치는 자가 당신을 친미·친일 반공 수구 적폐세력으로 공격하며 역사를 뒤집고 있다"며 "당신의 업적, 우리가 지키겠다"고 했다. 이어 "당신이 가장 사랑하는 따님이자 저의 동년배인 박근혜 대통령은 촛불혁명 구호 아래 마녀사냥으로 탄핵되고 구속돼 32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지금 병원에 입원 중"이라며 "당신의 따님, 우리가 구하겠다"고 말했다.

이언주 의원은 추도사에서 "한국의 보수가 위기에 빠져있다. 기득권에 안주해버렸다"며 "대한민국 역사를 한 단계 발전시키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혁신적 세력이 필요하다. 그것이 박정희 대통령의 정신을 계승하고 실천하는 일"라고 했다.



경북 구미시 상모사곡동 박 전 대통령 생가에서도 이날 40주기 추모제와 추도식이 열렸다. 추모제·추도식은 박정희대통령생가보존회가 주최했고, 한국당 소속 이철우 경북지사와 백승주(경북 구미갑)·장석춘(경북 구미을) 의원, 더불어민주당 소속 장세용 구미시장과 김현권 의원(비례·경북 구미을 당협위원장) 등 800여명이 참석했다. 장 시장이 첫 술잔을 바치는 초헌관을, 두 번째 술잔을 바치는 아헌관은 김태근 구미시의회 의장이, 종헌관은 전병억 생가보존회 이사장이 맡았다. 지난해에는 장 시장이 참석하지 않아 이 지사가 초헌관을 맡았다.

장 시장은 추도사에서 "첨단 공업 도시 50년의 역사를 태동시킨 박정희 전 대통령의 풍운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세상의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은 실용주의적 혁신가로 박정희 대통령님을 기억하고 난국을 돌파할 지침으로 삼겠다"면서 "시민의 화해와 통합으로 지금의 경제난국을 돌파하자"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이 1937년부터 4년간 서부심상소학교(현 문경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며 하숙한 문경시 문경읍 청운각에서도 당시 제자와 시민 등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40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0/26/2019102600897.html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10261428001&code=620115

Monday, May 17, 2021

“소형 원자로, 신한울 3·4호는 더 급하다"라고 문통 면전에서, 與대표 송영길대표 일갈, 국민들 공감하는 옳은 소리했네.

 정치꾼, 송영길이가 처음으로 국민들 속마음을 읽는 바른 소리를 했구만요.

가짜 문딩이 문재인이가 2050년 탄소중립화정책을 발표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탄소생산을 가장 많이 하는 애너지 정책을 지원하고, 탄소생산이 거의 없는 원자력 발전소 건설의 Master Plan을 다 떼려 부시는 짖거리를 더 이상은 두고 볼수가 없어, 면전에서 한방 먹인 것으로 이해된다.

요즘은 사용후 핵연료를 연료로 재활용할수있는 신기술도 개발되고, 그렇게 되면 사용후 핵연료 처리문제도 사실상 해결된다.  이러한 원자력 발전의 세계적 추세에도 문재인의 탈원전 정책이 지속돼 국내 원자력 Infrastructure가 붕괴되고 나면 차세대 원전경쟁에 우리나라가 끼어들 자리는 없어지게 될것을 송영길 민주당 대표가 문재인 앞에서 지적한 것이다.

현재 건설막바지인 신고리 5.6호기의 주요설비 납품이 거의 끝났다. 앞으로는 기존원전보수와 운용외에는 원자력 기술력을 보유할 일감이 끊기게 되서, 원자력 업체들에서 기술인력이 해외로 빠져 나가면, 다 없어져버린 원자력  Infrastructure를 다시 구축하고 싶어도 그걸 뒷받침 할만한 기술인력과 연구를 위한 후속세대 유지가 불가능해진다는 심플한 진리를 왜 문재인은 굳이 왜면 하는 것일까?  선거공약이라서? 대한민국의 비극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원자력 황무지인 대한민국에 원자력기술의 터전을 만들어, Resource거의 없는, 우리나라의 실정에서는 원자력만이 국가 경제를 일으키는 유일한 길이라는것을 간파하고, 당시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에서 원자력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인재들을 영입하여, 그들이 중심이 되여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고, 거기서 생산되는 값싼 전기를 수출품을 제작하는 회사에 공급하여,  공업입국으로서의 터전을 만들어 주셨던것이다.

박정희 대통령부터 박근혜 대통령때까지 대한민국의 에너지 정책은 오직 원자력 발전소 건설과, 원자력 기술향상을 시켜서 해외에 수출하는길이, 대한민국을 경제 대국으로 올려놓은 첩경인것을 대통령들과 국민들은 혼연일체가 되여 밀어 부쳤었고, 그결과 세계 10대 수출국으로 발전 시켰던, 고마원 원자력 발전기술을, 문재인은, 북한의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 독재자들이 사람 목숨을 파리잡듯이 죽이는 정책을 그대로 답습하여, 원자력의 맥을 끊어 버린것이다.  

문재인의 탈원전 정책으로,  원자력 Engineering분야에서 양성됐었던 많은 젊은 인재들이 짐을 싸서 외국으로 살길을 찾아 조국을 등지고 떠났었다.  그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중국은 지금 중국의 맨동쪽, 우리쪽에서 보면 서해바다를 항해하면 첫번째로 닿은 지역에 원자력 발전소 100개를 짖고 있다는 뉴스를 가끔씩 본다.  "옛말에 죽쒀서 개준다"라는 말이 지금 시진핑에게 꼭 맞는 우문현답(?)이다.  

송영길 대표가, 지난 4년간 문재인 대통령의 친중국 정책을 많이 눈여겨 봤었던것 같다. 문재인에게 "Biden"정부가 탄소 중립화를 위해 추진하는 소형모듈원자로 분야에서 미국과 전략적 협력을 통해 세계 원전시장을 지배하는 중국 러시아를 견제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한것이다. 여당 대표가 문재인면전에서 대통령이 고집하는 탈원전 정책을 치받는 공개발언을 한것이다.   그것 뿐만이 아니고 2년전에는 "신한울 3.4호기 건설재개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라고 의견을 냈던적도 있었다고 한다.  

송영길이는 문재인과는 뿌리가 달라, 대한민국이 편안하게 살아갈길은 친중국 또는 북한정책 보다는 지난 70여년 이상을 혈맹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와 맺으면서 자유대한민국을 유지해왔던 길로 다시 되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인것으로 이해된다. 

여당출신 3명의 대선후보자들은, 송영길대표가 걱정하는 탈원전 정책을 오히려 지지하여 문재인으로 부터 눈도장을 받으려는 꼼수를 쓰기에 바쁜 행동을 하는것을 보면서, 이들 3명은 국가의 장래를 내다보기 보다는, 얼마후에는 어쩌면 감옥에서 여생을 보내게될 문재인 대통령에게 아첨하는 소인배의 추잡한 Farce show를 하기에 여념이 없다.

나이들도 먹을 만큼 세월을 살았으니까, 박정희 대통령의 구만리 혜안을 조금이라도 이해한다면, 탈원전 정책고수를 주장하는 문재인에게, 송영길 대표한 지적한 탈원전의 잘못을 바로 수정하도록 비난 하던가, 압력을 넣었어야 했다.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과정에서 때로는 "필요악"이 절대적으로 절실한 경우를 맞이할때도있다. 박정희 대통령때의 일부 자유제한 정책을 실시한 그 근본 목적이 뭐였었나를 제발 3명의 대선주자들은 알아야 한다. 

김대중같은 거짖민주투사는, 경부고속도로건설당시 현장에 투입된 불도져의 Shovel앞에 드러누워 건설을 방해하면서, "우리 형편에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세금낭비고, 건설된 후에는 군사독재자들이 드라이빙 하면서 그들만의 호화판 삶을 증기기위해 건설되는 고속도로건설을 그래서 반대한다"라는 선동질을 하면서 박정희 대통령을 괴롭혔었다.  

일본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비난하는 망국적 행위를 하다가 납치되여 조그만 고속정에 실려 현해탄을 건너면서 바닷물속에 집어 던질려고 한다는 첩보를 접한 박정희 대통령은 즉시 '행동을 중지 시키고, 김대중의 집으로 정중히 모셔다 드려라'라는 조치를 취해 그가 후에 대통령까지 하게 했었다.

원자력강국이 그냥 우연히 된것은 절대 아니다.  위에서 언급한 수많은 우여곡절을 거쳐 세계에서 첨단을 걷는 원자력 Technology강국이 된것을 발판삼아,  UAE에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원자력 Plant수출을 성사시킨 대한민국의 보배같은 신기술을 문재인이 어떤 권리로 때려 부시는 만행을 저지르는데도, 국민들은 물론이고, 지식인들은 왜 침묵만 하고 있는지?  특히 이번에 과기처 장관이 된 임혜숙은 원자력 Technology에 대한 생각이 어떤것인지? 묻고싶다.  장관직이 좋아서, 원자력필요성을 버리고 탈원전의 문통에 읍소하는 그맘은 편할까?

대한민국이 경제 대국으로 더 강성해지기위한 Resource는 오직 선진기술뿐이다.  여당, 야당 가리지 말고, 우리나라가 잘살기위한 유일한 방법은 기술개발인데, 그첫번째 요소가 원자력 Engineering을 다시 원위치로 돌려놓아야 한다는 나의 지론이다. 

내가 송영길 대표의 정치적 방향을 Misunderstanding하지 않았기를 바라면서....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청와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지도부 초청 간담회에서 송영길 대표와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14일 청와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지도부 초청 간담회에서 송영길 대표와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터를 닦아놓은 상태에서 현 정부 임기 초 건설이 중단돼 방치된 신한울 3·4호기 예정지. /이진한 기자
터를 닦아놓은 상태에서 현 정부 임기 초 건설이 중단돼 방치된 신한울 3·4호기 예정지. /이진한 기자

송영길 민주당 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바이든 정부가 탄소 중립화를 위해 추진하는 소형 모듈 원자로(SMR) 분야에서 미국과 전략적 협력을 통해 세계 원전 시장을 지배하는 중국·러시아를 견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여당 대표가 대통령 면전에서 대통령이 고집하는 탈원전 정책을 치받는 공개 발언을 한 것이다. 송 대표는 2년 전에는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한 적이 있다.

소형 원자로는 한 용기에 원자로, 증기 발생기, 냉각재 펌프 등을 모두 담은 일체형 원자로로, 대형 원전의 5분의 1에서 100분의 1 정도까지 다양한 크기로 지을 수 있다. 공장에서 핵심 부품을 제작한 후 트레일러로 운반해 현장에서 조립할 수 있기 때문에 건설비가 싸게 먹힌다. 원자로 전체를 큰 수조에 잠기게 할 수 있어 유사시 방사선 누출 위험도 극도로 줄인 차세대 원전이다. 미국은 2029년까지 12기 건설을 계획 중이고 여기에 두산중공업도 전략적 투자자로 참여하고 있다.

원자력 기술은 계속 진화하고 있다. 소형 원자로만 아니라 사용후핵연료를 연료로 재활용할 수 있는 기술도 개발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도 사실상 해결된다. 그러나 탈원전 정책이 지속돼 국내 원자력 생태계가 붕괴하고 나면 차세대 원전 경쟁에 우리가 끼어들 자리는 없어진다. 현재 건설 막바지인 신고리 5·6호기의 주요 설비 납품이 거의 끝났다. 앞으로는 기존 원전 보수와 운용 외에는 원자력 일감이 끊기게 된다. 원자력 업체들에서 기술 인력이 빠져나가면 나중에 원자력 부흥을 하고 싶어도 그걸 뒷받침할 기술 인력과 연구 후속 세대 유지가 불가능해진다.

소형 원자로에도 힘을 기울여야 하지만 당장 더 급한 것은 10% 공정에서 중단된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재개하는 일이다. 이미 7000억원 이상이 투입됐는데 포기한다는 것부터 어리석은 일이다. 미세 먼지 해결과 탄소 중립을 주장하면서 원전을 외면한다는 것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정부는 무려 48조원을 들여 신안 앞바다에 어마어마한 규모의 해상 풍력을 건설하겠다는데, 10조원을 들여 신한울 3·4호기만 완공해도 신안 해상 풍력 수준의 전기 생산이 가능하다.

문 정부 임기가 끝난다고 원자력 산업이 바로 재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세계 최초의 상업용 원전 운용 국가인 영국도 40년간 원전을 짓지 않다가 최근 다시 원전 건설로 돌아섰지만 전적으로 해외 기술에 의존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원자력 산업과 연구의 맥(脈)을 이어가려면 하루라도 빨리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재개해야 한다. 대통령은 자존심 때문에 나서기 힘들다면 여당이라도 뭔가 조치할 것이 없는지 검토해봐야 한다. 다음 정권이라도 원자력 산업을 다시 일으킬 수 있도록 원자력 기술의 명맥은 남겨둬야 할 것 아닌가.

https://www.chosun.com/opinion/editorial/2021/05/17/I5TWLC7OXFFH5PGGTJ4RGOHJTM/

Tuesday, November 16, 2021

공산좌파 더불당다운 목포지역이구만, 윤석열과 저녁 먹었다고…與 목포지역위 “해당 행위 진상조사”한다네.

19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중국 쏘련 이북에 사는 공산주의 사람들은 우리와는 다른, 때로는 이마에 뿔이난 괴물들로 상상하면서, 공산주의를 증오하고 철천지 원수로 생각하면서 국민학교 중학교 시절을 보냈었던 기억이 있다.

오늘 윤석열 후보가 목포지역을 찾아서 지역원로분들과 만찬을 하면서 살아가는 얘기들을 나누었는데,  참석자중 더불당 좌파 공산주의 당적 보유자의 해당행위가 확인되면 전남도당에 징계를 요청하겠다는 뉴스를 봤다. 그하는 짖들이 당시 1960대 느꼈던, 그런 소름 끼치는 공산당식 당운영을 하면서도,  당명은 '민주당'이라고 한다.  마치 이북 공산당 정부 김정은이가 "조선 인민 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크게 떠벌리고 선동하는것 처럼.  

그러니까 내고향 전라도가 "하와이 개똥쇠''라는 듣기에 매우 불편한 소리를 다른 지역 사람들로 부터 듣는것이다.  내고향 사람들아 정신좀 차리고 살아가세요.  지금은 공산당도 간판 걸어놓고 활동하는 겉으로는 'Freedom Country'라는것을 몸속 깊은곳에 넣고 살아가세요. 목포가 네놈들 좌빨 공산주의를 찬양하는놈들의 전용 개인 땅이냐? 

선동가 사기꾼 김대중이가 당신네 목포 사람들이 우상이냐?  벽에 걸린 포스터를 보면 참 가관이다. "10년세도 썩은정치, 못참겠다 갈아보자!" 그럴듯한 마치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격언들중의 하나같다.  그의 말대로 김대중이가 대통령질을 했다.  목포사람들의 삶의 질이 좋아졌었다고 단 1분만이라도 느낀적 있었나?   

https://lifemeansgo.blogspot.com/2021/11/blog-post_24.html

그가 대통령질 하면서, 김정일에 상납하느라, 국민들 세금 훔쳐서 북에 보내준게 수십억 달러였었다.  김정일이가 흐믓해서 그를 평양에 초청하니까,  기다렸다는듯이 달려가 껴안고 지랄발광을 하면서, 김정일이가 남한 답방을 약속했었다. 그로 부터 40여년이 흘렀지만,  답방은 고사하고 지금은 두놈다 지하 6피트에서 꿈쩍하지 않고 잠만자고 있다. 

남북이 화해 했다고 얼마나 선동질하고 사기를 쳤으면 '노벨상위원회'가 노벨평화상을 김대중과 김정일을 공동으로 지명하고 수상까지 했을까?  상금 1백만 달러수상하러, 김대중이는 현지로 달려갔지만, 김정일이는 비행기가 없어서 또 신변안전이 두려워 가지도 못하고 평양에서 상금을 전달 받았었다.

김대중이는 수상소감에서 "이 상금은 대한민국 국민들과 함께 적절히 사용하겠다"라고 전세계에 선언했었는데,  얼마전에는 그아들놈들이 서로 그돈의 주인이 되겠다고 싸움질하는 촌극이 벌어져 언론에서 대서특필한것을 읽었었다. 

윤석열이가 김대중 기념관 방문하면서 정말로 "김대중이가 진정한 민주투사고, 나라를 위해 헌신한 정치가였다"라고 추앙했을까?   윤석열씨도 잘 알고 있다 "김정일, 김정은이가 어떤 돈으로 핵무기를 개발,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개발하여 남한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서방국가들을 위협하고 있는가를...." 목포 더불당 찌라시들아, 이젠 좀 솔직해 지자.  대선후보가 목포를 방문해서 지역유지들을 만났다는게 그렇게도 큰 죄를 저지른 것이냐? 라고 묻는다.

대통령되겠다고 후보로 나선 인물들은 내나라 어느구석이던, 주권을 행사하는 국민들 또는 시민들이 거주하는곳을 방문해서 지역 주민들을 만나고, 의견을 주고 받는것은 극히 정상적인 선거운동의 과정일 뿐이다.  

목포지역 위원회의 발언은 마치 "김정은 Regime이 북한 주민들에게 엄포와 공갈을 치는 장면을 연상케 해서 온몸에 닭살이 돋아나게 한짖이었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이라고 헌법 전문에 정확히 밝히고 있다. 차라리 헌법을 완전히 없애고 공산당 나라로 신분을 밝히고 당원들이나 국민들을 억압하라고 문재인에게 청원을 하는게 더 효과적일것 같다는 생각뿐이다.

더불당 목포지역위원회의 공산당식 공갈에 윤석열은 아마도 할말을 잃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정신차려 "오랫동안 권노갑 전의원을 도왔던 분들을 만나 덕담을 나눈것뿐이며, 그분들이 민주당 당적을 가졌는지는 모르겠다"라고 답변했다고 한다.  

다시 목포더불당원들에게 묻는다. "김대중이가 대통령질 하면서 국가 경제개발과 건설을 위해서 한일, 그중에서 목포지역에 이득을 준것이 있었던가?.  독재자라고 입에 달고 살았던 김대중이가 박정희가 경부고속도로 건설할때 불도져 앞에 누어서 방해했던 선동꾼 김대중이가 후에 제일많이 경부고속도로 운전을 즐겼던것 기억하고 있지?" 

이젠 솔직해 지자, 박정희가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케 하는 Foundation을 잘 만들어 주신 은혜에 대해서 단 한번만이라도 '고맙소'라고 읊어본적 있나?  오죽했으면 전세계의 유명한 정치인, 학자들이 "박정희는 영웅"이라고 칭찬 일색을 지금도 하고 있을까? 민주주의국가, 공산주의 국가를 통털어서 "민족의 영웅이다"라고... 시진핑, 등소평, 푸틴, 키신저, 리콴유 등등. 한국에서만 독재자로 폄하하는 못된 민족의 근성.  

https://lifemeansgo.blogspot.com/2020/11/blog-post_12.html

문재인 좌파 공산정권은 슬쩍 수저 얹혀놓고, 생색만 내는, 전형적인 사기 선동꾼일뿐이다.  G20, G7 그외 국제적 행사에 세계 각국의 정상들이 모이는곳에 문재인은 꼭 참석한다. 누가 대한민국을 그들과 어깨를 같이 하는 잘사는 나라로 개발 발전 시켰었는가? 가슴에 손얹어놓고 깊이 생각해 보거라. 숫가락 슬쩍 올려놓는 꼼수는 이제 아무도 반가워하지 않는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11일 오전 전남 목포시 김대중 노벨평화상기념관을 방문, 전시관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11일 오전 전남 목포시 김대중 노벨평화상기념관을 방문, 전시관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전남 목포를 방문해 지역 원로 정치인들과 만찬을 한 사실이 알려지자 더불어민주당 목포시지역위원회가 참석자 중 민주당 당적 보유자의 해당 행위가 확인되면 전남도당에 징계를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목포지역위는 15일 보도자료를 내고 “목포에서 윤석열 후보와 이광래씨 등이 만난 후 (윤 후보 측은) DJ계와 면담했다고 밝혔다”며 “그들은 DJ를 대표한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이어 “정통 DJ계를 만나고 싶고, 김대중 정신을 계승하고 싶었다면 오랜 시간 변함없이 민주당을 지켜온 원로 당원들을 만나 쓴소리를 들었어야 한다”며 “목포는 5·18 광주민주항쟁의 한복판에서 광주시민과 함께 싸웠으며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해온 자랑스러운 곳”이라고 했다.

민주당 목포지역위는 “당일 저녁모임에 참석한 이들 중 민주당 당적 소유자에 대해 전남도당에 참석 경위와 해당 행위 여부 등에 관한 진상조사와 적절한 조치를 요청하겠다”고 했다. 진상조사에서 해당 행위가 확인되면 전남도당에 징계를 요청할 방침이다.

앞서 윤 후보는 지난 10일 1박2일 일정으로 광주전남을 방문, 5·18 민주묘지에서 ‘전두환 발언’에 대해 사과한 후 목포로 이동해 이광래 목포민주동우회 고문과 지역 정치인 10여 명과 저녁 식사를 했다. 윤 후보는 “DJ 정신을 제대로 배우면 나라가 제대로 갈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광래 고문은 윤 후보에게 “목포 방문을 환영한다”며 “DJ의 화합과 포용의 정신으로 나라를 잘 이끌어 달라”고 했다.

이와 관련해 윤 후보 측 관계자는 “오랫동안 권노갑 전 의원을 도왔던 분들을 만나 덕담을 나눈 것”이라며 “그분들이 민주당 당적을 가졌는지는 모르겠다”고 설명했다.

https://www.chosun.com/politics/politics_general/2021/11/16/YWU7T2DAHVAN5G4VMQXUAOLLCQ/

Sunday, June 07, 2015

눈물로 쓴 ‘박정희 방독 소감(訪獨所感), 사리사욕에 눈 멀었던 김대중-Henry Scott Stocks의 기사, 비교된다.


돌아가신 박통에 대한 기록은 내가 중학교 다닐때부터, 후에 사회생활을 하면서 직,간접으로 많이 보았고 또 미디아를 통해서 들었기에 비교적 소상히 알고 있다고 할수 있다.  

혁명후 돈을 빌리러 미국에 갔다가 퇴자를 받고 망연자실하면서, 어떻게 하면 배고프게 살아온 반만년의 역사틀에서 국민들이 빠져 나올수 있을까를 고심하던중, 2차대전 끝난후 신생국가나 다름없었던,당시 서독( West Germany)로 부터 보내온 구원의 손길을 꼭 붙잡고, 조국 재건의 실날같은 희망을 안고, 어렵게 독일을 방문하여 현장시찰 하면서, 조국 건설이라는 과업을 실행하기위한 고뇌와  우리도 할수 있다는 희망을 보면서, 눈물로 방문소감을 쓴 기사를 여기에 링크 시켰다.

같은 대통령인데, 어쩌면 박정희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의 살아온 삶과 국가와 민족을 위한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수행한 두분의 업적이 이렇게 하늘과 땅차이로 가슴을 울리는가.  눈물로 쓴 방독소감에 대한 기사를 링크해 놓았다.

외국 여행을 하면서 현지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하다보면, 김대중 대통령은 몰라도, 박정희 대통령에 대해서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이 기억을 하고 있다는것을 알았는데, 그내용이 가슴을 아리게 하는 내용들이었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 We remember former President Park Chung Hee who developed and put the foundation of what Korea is nowadays.   We now need a leader like him for our country's prosperity"

애집트, Viet Nam, Myanmar, Cambodia, Laos, Turkey 그리고 South America 등등에서 들었던 얘기들이다.  그리고 나는 그들에게 더 자세히 박통에 대한 얘기를 해주기도 했었고, 그들은 진지하게 듣곤 했었던 기억이다.


http://news.donga.com/Main/3/all/20150522/71426033/1#replyLayer

내가살고 있는 이곳 토론토 한인 Community의 초기 형성은, 독일에 파견됐었던 광부와 간호원들의 이민자로서의 피땀흘려 이룩한 형설의 공을 빼놓고는 토론토의 한인 이민사를 얘기할수 없음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지난해에 이곳 토론토 한인회 주관으로 "한인 이민사" 를 발간 했었는데, 이들에 대한 얘기는 한마디의 언급도 없었다.  한마디로 졸작이고 한인이민사를 적었다고 할수 없는, 실적없이 이름내기 좋아하는 몇사람들의 작난에 온 토론토 한인회가 놀아나고 만 것이다.   이점을 지하에 계시는 박통이 알고 계신다면, 부강한 조국을 만들기위해 불철주야 뛸때, 방해꾼들에게 겪었던 고통과 감회에 젖어 한숨을 쉴것같은 생각이 든다.



Former President,김대중에 대한 나름데로의 느낀점은 본국에 있었을때나, 삶의 터전을 옮겨 살아가면서 관심있게 지켜보곤 했었다.  그의 행적은 한국 현대사에서 빼놓을수 없는, 애증을 많은 국민들에게 심어놓고, 가버린, 아주 유능한 광대꾼으로 나는 감히 평가한다.

얼마전 동아일보의 자료사진을 보면서, 지금은 돌아가신 박통께서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위해 투입한 건설장비 Catapillar 앞에 드러누어 공사를 방해하고 있던 모습이었다.  그후 그분이 고속도로를 가장 많이 이용했던 사람중의 하나였고, 대통령 전용 전동차도 가장 많이 애용했던 전직 대통령중의 하나였음을 알게 되면서, 그분의 주장은 전부 선동적이고, 능숙한 배우의 Performance에 다를게 없었다는 것을.

김영삼씨에게 선거에서 패배하고, 정치에서 손떼고, 영국으로 떠나면서 국민들에게 했던 말의 내용을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내생애에서 다시는 정치에 손대는 일은 없을 것이다."라고.  그약속은 채 일년도 안되여 손바닥 뒤업듯이, 그의 특기를 살려, 국민들을 선동하여, 동정을 얻어 드디어 청와대에 입성하는 집념을 보여 주기도 했었다.

그분이 대통령이 되여, 고향 광주를 찾았을때, 나는 그래도 개인적으로 많은 기대를 했었다.  야당의 Leader 로 있으면서 정부정책을 수를 셀수도 없을 정도로 비난하고, 방해했기 때문에, 같은 호남출신으로 관직에 있던 당대의 사람들은 직, 간접으로 승진하는데 영향을 많이 받아서 불이익을 당하고, 운이 더 나쁘면 능력이 있어도, 일찍 옷을 벗어야 하는 불이익을 당한 고향사람들을 향해 최소한 예의를 갖추어 위로의 말한마디 언급할것이라고 말이다. 

즉 "나로 인해서 관직에 있던 고향사람들중에서 직, 간접으로 차별을 받아 승진에서 늦어지거나 탈락하고, 또는 옷을 벗게된 분들에게, 진정으로 감사와 위로의 말을 이자리를 빌어 전해 드린다"라고.

그러나 나의 기대는 완전히 180도 빗나가 버렸다.  자화자찬으로도 부족하여, 광주에 새로 건설된 체육관(Arena)에 자기의 이름을 부쳐 '김대중 체육관',  연세대에는 '김대중 도서관' 그외에 여러곳에서 그의 이름을 기리는 상징물들이 세워졌다는 뉴스를 보았다.  그리고 국립묘지에서 휴식하고 있다.  건국의 아버지로 여겨지는 대통령이나, 보릿고개를 없애고,  오늘의 발전된 조국을 만들기위한 Foundation을 굳건히 만들어준 대통령을 기리는 기념관이나 명칭은 대한민국 어디에도 찾아볼수 없는점과는 너무나 대조가 된다. 

이제는 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과, 오를 객관적으로 평가해서 후손들에게 정확히 알려 주어야할때가 이미됐다고 믿는다.  당리 당략과 지역 감정을 앞장세워 편가르기를 하면서 국력을 소모하기에는 경제적, 정치적,기술적인면에서, 한국이라는 나라의 일거수 일투족은 세계적 뉴스가 되고 있음을 5천만 국민들이 인식을 제대로 한다면, 수긍이 갈것이라 생각된다.  더늦기전에.....

오늘 친지로 부터 이멜을 받았다. 그내용이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한, 분석기사였다. 여기에 옮겨 놓았다.  이기자는 한국분이 아닌, 영국 출신의 중견 기자같았다. 


사리사욕에 눈 멀었던 김대중

(Henry Scott-Stokes 전 뉴욕 타임즈 동경. 서울 주재 특파원이 저술한 한 저서 중에서)

카메레온과 같았던 정치인 김대중

김대중 한국 대통령은 2000년에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이 해에 한국의 대통령 중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 남북간의 긴장 완화에 공적을 남겼다는게 수상 이유였다.
그런데 오늘날 남북관계가 조금이라도 개선되었다고 말할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어떻든 노벨 평화상이란 상은 적당히 주고 받는 상인 모양이다.

2009년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 상을 받았었다. 대단한 인기를 안고 대통령에 취임한 그는
취임 8개월반만에 이 상을 수상했다. 독일 베르린에서의 연설에서 핵무기 근절을 호소 했다는게
수상 이유였다. 그렇다면 <지상에서 병마를 영구히 추방한다>고 큰 소리를 쳤어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할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하게 한다.
2013년의 노벨 평화상은 화학무기 금지조약에 의해서 설립된 화학무기 금지기관인 OPCW가 수상했다. 시리아가 화학무기를 포기하겠다고 약속한 직후였기 때문에 주목을 받았었다. 그러나 시리아의 독 가스 무기의 제거작업은 다만시작만 했을 뿐 그 작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될 것인가의 여부는 의심스러웠을 따름이다.

그 전 해에는 유럽 공동체가 수상했다. 그런데 유럽 공동체 역시 경제 파탄의 소용도리에 휩쓸려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나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취재를 위해 30회 이상 단독으로 만났다. 아마도 내가 인터뷰한 아시아의 요인들중에서 가장 횟수가 많았던것 같다.

김대중씨는 한국의 서남부 전라남도 하의도 출신이다. 그는 매스컴이 자신을 어떻게 다루는가에 대해 필요 이상으로 민감하게 신경을 쓰는 사람이었다. 코미디언들 처럼 장면 장면 마다 화장을 바꾸며 , 상황에 따라 자신을 변신하는 카메레온(chameleon, 주위의 환경에 따라 몸의 색갈을 자유자재로 변화시키는 새의 총칭)과 같은 변신의 달인이었다. …
전 생애를 통해 가장 극적으로 연출한 것은 그가 한국의 현직 대통령으로 북한을 처음 방문했을때의 일이었다. 바로 이 북한 방문이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민주화 운동의 투사를 가장한 김대중

내가 그를 처음 만난것은 그가 아직 야당생활을 하던 70년대 였다. 그는 미국과 일본에 체재하면서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추진하는 한편 인권활동가로서도 활약 해 주목을 받았다.
73년 8월 김대중씨는 동경의 구단시타에 있는 그랜드 팔레스 호텔에서 행방불명이 되었다. 한국 중앙정보부가 그를 납치한 것으로 뒤에 밝혀 졌다. 일본의 한 항구를 출항한 화물선에서 그를 수장하려 했지만 바로 그 시각에 군용기가 상공에서 감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살해의도는 중지되었다. (역자 주:이 주장은 김대중씨의 증언에 의한 것이지만 관계자들의 증언으로 이 수장계획은 사실 무근으로 판명되었다)

그 뒤 그는 서울의 자택에서 연금상태에 놓이게 되었고 76년에는 <민주 구국 선언>을 발표, 다시 체포되었다. 80년 2월 사면되었지만 5월에 재 구금되었다. 바로 이 사건이 원인이 되어 광주 사태가 발발했다. 군부가 민주화 요구의 데모를 진압했고 유혈의 참사로 진행되었다.
김대중씨는 미국에 대해 강한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다. 미군이 한국에 계속 주둔하고 있어야 하는가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김대중씨의 항의 주장은 과격했고 주목을 끌었다. 한국 국내에서 그만큼 강력한 항의를 주장한 지도자는 아무도 없었다.

나의 인터뷰 요청을 받아 들인 김대중씨는 민주화 운동의 투사로서의 이미지를 빈틈없이 연출했다.
70년대 후반에 이르러 박정희 대통령이 돌연 암살되었다. 박 대통령은61년 부터 70년대까지 정권을 유지했다. 박대통령의 암살 사건 후 권력은 곧바로 신 군부에 넘어갔고 군부가 모든것을 장악했다. 당시의 군부는 김대중씨를 반 군정의 중심인물로 간주, 적대시하고 제거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나는 김대중씨의 자택을 방문했다. 그는 자택 연금 상태에 놓여 있었고 군에의해 엄중한 감시를 받고 있었다.

뉴욕 타임스 특파원으로 자택을 몇차례 방문하면서 나는 김대중씨가 뉴욕 타임스 지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음을 알수 있었다. 다른 모든 언론 매체와 나를 대하는 태도가 눈에 띄게 달랐다.
김대중씨의 자택 밖에는 언제나 보도진으로 둘러 쌓여 있었다. 그러나 뉴욕 타임스의 특파원이 취재를 위해 방문한 것을 알면 곧장 집안으로 안내되었다.
그의 이 같은 특별한 배려가 미국으로 하여금 김대중 자신의 생명을 구하도록 하는데 큰 역할을 감당하도록 한 것이었다.
미국의 민간 조직과 언론이 김대중의 보호세력으로 등장했다. 뉴욕 타임스는 그 선두에 선 모습이었다.

나는 1980년 봄에 서울을 거점으로 해서 동경을 오가며 특파원의 업무를 할수 밖에 없었다. 김대중씨가 가장 위험한 상황에 부딧쳤을 때에 직접 만나 취재활동을 한 나는 김대중씨를 한국의 민주화 활동의 중심인물로 치켜 세웠고, 사설을 통해서도 김대중씨는 어떤 이유에서든 쳐형되어서는 안된다는 주장을 거듭했다.

광주 사건을 사주한 장본인

그러나 김대중이란 인물은 가짜(fake)인물이었다. 진짜 인물(real person)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사기꾼(imposter)이었고 위선자(pretender) 였다. 언제나 술수를 노리는 연기자였다. 사람들의 속 마음을 교묘하게 이용해서 뒤에서 조종하는데 몰두 했다. 측은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었다.
나도 그의 연기에 놀아난 한 사람이었다. 수많은 한국인들도 그에게 속아 넘어 갔다. 김대중씨의 대단한 능력은 이 같은 그의 술수가 오랜동안 발각되지 않은채 계속되었다는 점이다.

김대중씨가 저지른 최대의 범죄 행위는 민주주의의 대의를 그의 속임수의 소재로 이용했다는 것이다.
광주 사건이야 말로 김대중씨의 기만행위를 그대로 들어낸 사건이었다. 1980년 5월, 김대중씨는 신 군부의 정점에 있던 전두환 세력에의해 체포되었다. 광주에서 소란 사태가 발생하자 김대중씨는 그 배경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김대중씨가 탐한것은 권력이었다. 그는 항상 자신의 입장만을 생각했다.광주 사태가 발생한 시기에 그가 가장 마음을 쏟은 것은 자신이었고 이 광주 사태를 이용해서 자신이 권력을 장악하는 일이었다.
광주 사건으로 부터 20주년을 맞은 2000년에 광주 봉기(kwangju Uprising)란 책이 뉴욕의 출판사에서 간행되었다. 이 책은 내가 편집한 책인데 당시의 사건 취재에 임했던 10명의 유럽 및 미국의 기자와 10명의 한국인 기자가 집필했다.

이 책의 출간으로 사건 당시에 쓸수 없었던 사실들이 햇볓을 볼수 있었다. 공동 집필자들은 모두 기꺼히 옛 일을 되색여 볼수 있었다.
광주 봉기의 참 모습은 <김대중 폭동>이었다. 광주 사건은 김대중씨 자신이 민주화의 기수라는 가면을 쓰고 폭동을 사주해서 대통령이 되고자 했던 폭동이었다. 우리 저널리스트 들도 그의 연출에 영낙없이 속은 꼴이었다. 우리들은 꼭두각시(puppet)에 불과했다.
나의 처는 전업주부이지만 예리한 감성을 지니고 있었다.당시에 그녀는 김대중씨가 깔아 놓은 연극에 놀아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나에게 주의를 주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광주 봉기는 그 발단부터 김대중씨가 깔아놓은 연극이었다.

광주는 김대중씨의 근거지였고 이곳 주민들은 군사정권의 압정에 시달려 왔다. 김대중 때문에 압정에 시달린 것은 아니지만 이 점이야 말로 그의 집권 전략에 꼭 들어 맞는 환경이었다. 광주 사태는 김대중씨가 의도해 온 그대로 였다.
나는 <광주 봉기>가 출판 되었을 당시 까지도 김대중씨의 역할이 그렇게 큰것으로 상상할수 없었다.김대중은 봉기가 폭발했을 당시에 투옥된 상태에 있었고 그 이후의 재판에서 사형 판결을 받았었기 때문이다.

김대중씨의 생명을 구한것은 그 뒤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로날드 레이간의 측근 관계자들이었다. 1980년 가을, 군을 장악한 전두환 한국 대통령과 레이건대통령의 측근들 사이에 한 밀약이 맺어졌다. 레이건 신 대통령을 만나는 최초의 외국원수로 전두환 대통령이 되도록 워싱턴행 초대장을 받는 것과 수감중인 김대중을 처형하지 않는 다는 것을 서로 교환키로 한 약속이 밀약의 내용이었다.
레이건 대통령이 사형수 김대중을 처형하지 못하도록 노력한 것은 미국의 일반인들이 당시의 김대중씨가 한국의 민주화운동의 기수라고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광주에서의 광란사태가 김대중 파의 리더들에 의해 일어났고 광주가 점거되었을 때에 서방측 미디어가 한결같이 김대중을 한국의 민주화를 추구한 착한 동아리 (good guys)로 치켜 세웠었다. 물론 당시의 군부는 사악한 무리(bad guys)로 그려졌다.
이 같은 <착한 동아리>와 <사악한 무리>의 단순한 2분법은 수년간 지속되었다. 아마 아직까지도 이 2분법이 여전히 살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까지도 미국에서는 김대중이 한국의 민주화를 꽃피운 영웅이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흔히 있어 보인다.

그러나 김대중은 착한 동아리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나는 지금도 후회막급일 뿐이다. 광주에서 300명 이상이 학살당했다. 시민뿐만 아니라 군인도 살해되었다. 그 책임은 김대중이오직 혼자 져야할 일이었다.
광주사태를 일으킨 사람들, 김대중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 김대중이 얼마나 세속적인 지위와 돈에 집착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일족의 축재를 위해 돈줄 만드는데에 혈안이 되어 있었는가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들 서방측 져널리스트들에게는 이런 사실을 숨겨왔던 것이다.

져널리스트로서의 과오를 부끄러워 할 뿐

그런데 그의 죄상은 개인 축재보다 훨씬 더 무거운 국가반역죄에 해당되는 매국행위였다. 그것은 말할것도 없이 북한과의 관계에서 뚜렷하게 들어났다.
김대중씨는 뼈속 깊은곳 까지 부패해 있었다. 한국의 서민들 사이에서 그가 대통령에 취임한 후 얼마되지 않아 그의 본명은 김대중이 아니라 돈(금)을 너무 많이 사랑한다는 뜻의 금대호로 불리어야 한다는 죠크가 나돌기까지 했었다.

한국은 어디까지나 중국 문화권에 속해있는 나라이다. 오늘날 중화인민공화국을 포함해서 역대의 중국과 조선의 권력자들은 횡령이나 착복에 깊숙히 빠져들어 있었다. 김대중씨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었다. 민주화의 기수라는 간판 외에 노벨 평화상이란 명예를 얻고자 그의 부하들을 동분서주케 했다. 그는 물욕과 명예욕을 주체할수 없었다. 말 그대로 사리사욕의 화신 그 자체였다.

내가 1968년처음 한국을 방문했을 때에 한국은 아직 가난한 국가였다.박정희 대통령이 현재의 한국을 만든 기초를 구축했다. 박정희 장군은 일본국내에서 훈련을 받고 만주국의 군 장교가 되어 있었다. 그는 20년 만에 한국을 현대 국가로 변신시키는데 성공했다. 만약 그가 이때에 암살되지 않았더라면 더 많은 업적을 쌓을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60년대에서 80년대에 걸쳐 한국은 끊임없이 위험한 상황의 연속이었다.실제로 나도 암살 대상자의 리스트에 올라 있었다. 특파원의 입장에서 한국의 정계와 군 관계에 관한 공개되기를 꺼려한 많은 것들을 보도해 왔기 때문이다.
한국의 중앙정보부는 나를 총이나 칼로 해치는 것이 아니라 사고를 가장한 환경을 조성해서 죽이려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의 마이크 맨스필드 주일 미국대사는 내가 한국을 방문할 때 마다 보디 가드의 역할을 담당할 대사관 경호원들을 동행토록 하겠다고 제의하기도 했다. 그 제의를 나는 거절했지만 암살 위협은 광주 사태 이후 상당기간 계속되었다.

오늘날 이런 위험은 이미 사라졌다. 서방측 져널리스트의 생명이 총구의 표적이 된다는 것은 어불성 설이다. 하지만 당시의 한국에는 독기(toxic air)가 충만해 있었다.
나의 주변 인사중의 한 사람이 오래 전 부터 “김대중은 신용할수 없는 사람이다. 북조선의 포켓속에 있는 사람이다. 그는 북한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지 한국을 위해 일하는 사람은 아니다.”라고 말해 왔다. 나는 “그런 바보같은 소리가 어디 있어. 그는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노력해 온 정치지도자이다. 크리스쳔이며 선량한 사람이다”라고 반론을 제기해 왔다. 하지만 김대중에 대한 나의 당시의진단은 과녁 밖으로 한참 빗나 가 버렸다.

대통령에 당선 되어 얼마 되지 않은 시기에 그는 자신이 북한의 괴뢰임을 스스로 들어 내었다.
나는 져널리스트로서 자신의 불민했음을 부끄럽게 여길수 밖에 없다. 정말 부끄럽고 죄송하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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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주
이 글을 쓴 헨리 스캇 스토우크스 기자는 어떤 사람인가, 간단한 설명이필요할것 같아 부연한다. 그는 영국에서 태어나 옥스포드 대학에서 수학, 1962년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즈에 입사해서 언론인 생활을 시작했다 (그의 아버지도 옥스포드 졸업생이었고 그의 어머니는 옥스포드 제1호 여자 졸업생으로 알려져 있다). 64년 동경 지국 초대 지국장으로 임명되었고 67년 영국의 더 타임즈 동경 지국장, 78년 뉴욕 타임즈 동경. 서울 특파원을 역임했다. 드 타임즈 특파원 시기에 김대중 전대통령의 납치 사건이 발생한 후 집중적으로 이 사건을 취재 했고 뉴욕 타임즈 특파원에 임명된 뒤에는 동교동 취재를 거의 독점적으로 취재한 외신 기자로 명성을 날렸다. 내 외신 기자들의 동교동 접근이 거의 불가능 한 시기에 그만이 김대중씨와 자유스럽게 독점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언론계에서는 그를 동교동 통으로 부른 시기가 있을 정도였다. 일본의 김대중 지지세력에게는 둘도 없는 고마운 파랑눈언론인으로 사랑과 존경을 받았었다. (라디오 코리아 고문 양준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