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970년대 중반까지 약 7년간 기술직 공무원을 했었다. 당시에는 나라전체가 너무도 가난하여, 외부세계에서 윗분들을 통한 봐주기 외압이 종종 있었던 시절이었었다.
비록 본청의 주임기사로, 기계설비 분야에서 근무했었지만, 소신껏 일하는데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고, 간혹, 외자로 기계설비를 도입하는데, 기계의 성능과 구매가격을 산정해야하는 일은 무척 신경을 써야 하는, 실무자로서의 양심도 많이 작용하는, 좀더 넓게 보면, 잘살아 보겠다고 불철 주야로 대통령부터 현장의 인부들까지 혼연일체가 되여 긍지를 갖고 뛰는 그런때였었다.
수입해오고져 하는 기계류에 대한 사양(Specification)을 작성하는데는, 끙끙 거리면서 각종 문헌을 참고하고, 뒤에 계시는 선배님들과의 discussion을 하고.... 때로는 위에서 부터 실질적으로 구입하고져 하는 기계류의 성능과는 딴판인 사양을 들이대면서, 검토해 보라는 지시가 떨어질때는 밤잠을 설쳐야 했던 때도 있었다. 검토해 보라는 뜻은 웬만하면 그기계를 수입할수있는 사양을 만들라는 뜻이기도 했기에....
독일 연수를 가서, 현지 사정을 파악하고, 더넓은 세상을 향해 눈을 더 크게 떠야 겠다는 생각을 갖고 귀국해서, 사표를 내고, 홀가분하게 짐꾸려 이민자의 고된 삶을 시작하게 됐던 것이다.
이민자로서의 어려움, 우선 언어문제, 생활습관, 기후변화 등등 더 큰 문제는 기계 기사로서의 자격을 현지사회에서는 인정을 안해 주는데, 이유는 현지 Experience가 없다는 핑계가 나를 무척 좌절하게 만들었었다. 요즘은 없었지만, 거의 반세기전에는 이곳 사회도 그랬었다.
이민짐을 싸서 외국생활을 한지 10년만에 조국을 처음 방문하여, 친정격인 옛근무지를 찾아, 선배님들, 동료분들, 그리고 후배분들과 반갑게 만나 시간가는줄도 모르고 얘기들을 주고 받은 기억이 지금도 뚜렷하다.
고국방문하기 몇년전, 서울에서는 경부고속철도 건설을 앞두고 계약회사를 일본으로 하느냐 아니면 불란서로 하는냐의 논란에 열이 한창 국가적 이슈로 올라 있을때, 나는 청와대와 해당부처에 무보수로 그리고 그분야의 기술자겸 통역관으로 봉사를 약 3년간 하겠다는 편지를 써 보냈었으나 아무데서도 답장이 없었기에 의아해 했었던 기억이 있었다. 그리고 조국 대한민국을 방문했었던 것이다.
위에 설명한것 처럼, 채용된다면, 현지 생활영어를 활용할수 있었기에 엉뚱한데서 벌어지는 실수는 최대한 막을수 있을것으로 기대를했었었다. 선배한분이 이렇게 충고를 해주신 내용은 아래와 같았었다.
"자네는 전에 여기서 근무할때도, 위에서 현실에 맞지않는 지시겸 부탁을 하면, "예'라고 대답을 하지않고, 그렇게 하면 왜 안되는지를 꼬박꼬박 설명하면서, 소신을 굽히지 않았었는데, 외국에서 살면서 그런 생각은 더 굳어졌을텐데... 자네같은 사람이 그들끼리 쌓아놓은 성(Castle)안에 들어오면 그성벽을 다 허물어 버릴려고 할텐데.... 절대로 받아들일수 없었겠지, 안그런가?"라는 설명을 듣고, 응답 안받기 참 잘했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한민호씨의 대담을 읽으면서, 특히나 요즘같은 좌파천국의 정부에서 패거리 인사를 한치의 부끄러움없이 자행하는 속에서 고생 참 많이 하셨겠구나 라는 연민의 정을 담뿍 느끼게 하는 슬픈 한국정부내 공무원 사회를 잘 설명해주셨다고 본다. 보신주의가 팽배해 있고, 나만 무사하면 그만이라는 Selfish한 좁아터진 생각으로 꽉차있는, 그래서 소신발언을 하는 단 한명의 국록을 먹는 고위직 공무원들이 없다는데, 이조시대때 임진왜란시 충신 이순신을 가두어야 한다는 간신들만 우글거리던때를 상상해 봤다.
청와대를 비롯한 국가 주요기관에서 요직을 맡고있는 고위 공직자 여러분, 지금이 바로 당신들 같은 고위직 간부들이 실무행정의 책임을 지고 소신발언을 해야 할때인것을 깊이 깨달으시고, 국가백년대개를 위해서 목소리를 내시기를 권한다. 특히 탈원전, GSOMIA, 퍼주기식 대북관계정립, 외교왕따, 패거리끼리 주고받는 고위직인사 등등에 대해서 목숨걸고 외칠수 있는, 성웅 이순신같은 충신들이 꼭 필요한때다.
한민호씨의 고위공무원사회의 썩어 문드러진 대국민보고를 한 용기에 찬사를 보낸다. 건투 하시라.
아래는 한민호씨의 대담내용을 보도한 뉴스를 옮겨 놨다.
엘리트 국장급 공무원은 왜 파면됐나… 한민호 前 사행산업감독위원회 사무처장]
―청와대가 본인에 대해 '사상 검열'을 했다고 보나?
"청와대 방침에 동조하는 글을 올렸으면 이렇게 나를 찍어냈겠나. 청와대 창성동 별관에서 4시간 조사를 받았다. 담당 조사관이 반일 감정, 탈원전, 소득 주도 성장 등을 비판한 페북 글 수십건을 출력해놓고 왜 썼는지에 대해 물었다. 내가 답변하자, 그는 '옳은 말씀인데 너무 솔직하게 썼다. 근무시간에 한 것도 문제가 된다. 징계를 받을 것이다'라고 했다."
―조사를 받고 바로 다음 날에도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청와대 권력에 대한 반기처럼 비쳤겠는데.
"나는 처음부터 소명을 갖고서 했다. 서울대 사대 역사교육과를 나와 중학교 역사 선생을 8년 하다가 공무원이 됐다. 교사 시절 충신·애국자에 관한 얘기를 학생들에게 많이 했다. 그런 내가 공무원이 돼 눈앞에 뻔히 잘못된 걸 보면서 입 다무는 것은 옳지 않다. 제자들이 다 보고 있다."
―중앙징계위원회를 앞두고 8월 14일에는 '나 스스로 친일파라고 여러 번 공언했다. 지금은 친일하는 게 애국이다'라며 예민한 글을 또 올렸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글의 파장이 어떨지는 알았을 것 아닌가?
"중학교 교사를 하면서 썼던 석사 논문의 제목이 '한·일 간 상호 인식의 역사'였다. 역사적으로 우리가 일본을 잘 알고 교류하고 있을 때는 화를 안 당했다. 교류를 끊고 무시하고 일본을 모를 때는 화를 입었다. 지금 한국과 일본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 동북아 안보와 경제협력 측면에서 일본과 잘 지내는 친일을 해야 한다. 그게 애국이다. 징용공 배상 판결과 지소미아 파기로 한·일 관계를 망가뜨리는 것은 국익을 해치는 일이다."
―인사혁신처 중앙징계위원회는 파면 결정을 내리면서 '개전의 정이 없다'는 80년대식 표현까지 썼는데?
"중앙징계위는 40분간 열렸다. 당초 감봉 같은 경징계를 예상했지만 들어가 보니 굉장히 냉소적이고 적대적인 분위기였다. 특히 친일파 발언에 대해 '저런 친일파 놈이 있나'라는 싸늘한 시선을 느꼈다. 청와대의 오더가 있었다고 본다."
―당신은 스스로를 옳다고 여기겠지만, 한쪽 이념이나 진영에 치우쳐 있다고 볼 수도 있지 않겠나?
"나는 대학 시절 운동권에 몸담았다가 무기정학을 당해 간신히 졸업했다. 교사를 하면서도 좌파 이념을 버리지 못했다. 동구권이 무너진 뒤 어느 날 '골수 빨갱이'인 대학 선배가 본인이 의식화를 시킨 후배들을 모아놓고 '왜 공산주의를 버려야 하나'라는 발제를 했다. '공산주의는 생산수단의 국유화를 통해 계획경제를 하는 것인데 이는 독재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한국 경제는 이미 공산혁명이 불가능한 단계에 와 있다. 나는 운동을 포기하고 독일 유학을 가겠다. 너희도 빨리 전향하라'고 했다. 고맙고 훌륭한 선배였다. 그 뒤 나는 교사를 그만두고 1994년 행시를 쳐 문체부에 들어왔다. 내 과거를 반성하는 차원에서도 우리 사회의 비정상적 좌경화를 극복하는 데 힘을 보태고 싶었다."
―당신은 현 정권 들어 문체부 핵심 보직인 체육정책관에서 사행산업감독위원회 사무처장으로 밀려났다고 들었는데?
"정권이 바뀌고 첫 국장급 인사에서 나 홀로 대상이 됐다. 나 혼자만 콕 찍어 발령을 낸 것이다. 앞서 말한 대로 그 시점 문체부 노조의 투표에서 '바람직한 관리자' 부문 1등에 뽑혔으니 내가 업무상 잘못한 것은 없었다."
―왜 혼자만 좌천성 인사 대상이 됐나? 구체적으로 무엇이 빌미가 됐는지 느낌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내 성향에 대해 청와대 보고가 올라갔다고 본다. 박근혜 정부 시절 나는 80년대 좌파 운동권의 바이블인 '해방전후사의 인식'과 '전환시대의 논리'에 대해 '대한민국 지성사에 치명적인 해독을 끼친 책이다. 해당 출판사는 반성하는 의미에서 상응하는 책을 내라'는 식의 글을 올린 적 있었다. 현 정권 들어와서는 사드 배치에 대해 애매모호한 자세를 비판하는 글도 페이스북에 썼다."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페이스북에 글을 써왔나?
"물론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대우조선 구조 조정 방식 등에 대해 비판했다. 당시에도 문체부 차관의 구두 경고를 받았지만 페이스북에 글 쓰는 걸 멈추지 않았다."
―그때도 불이익을 받았나?
"박근혜 정부에서는 국장으로 승진해 핵심 보직인 미디어정책관과 체육정책관을 맡았다."
―통상 공무원은 위계질서를 인식하고 말을 신중하게 하는 편이다. 당신은 문 대통령에 대해 '외교 천재'라고 조롱하며 '지렁이, 아메바' 표현이 나오는 다른 사람의 게시물도 인용해 놓았다. 대통령은 공무원 조직의 최상급자인 행정수반 아닌가?
"중앙징계위에서 '적절한 행동이 아니었고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글을 쓴 것은 한·일 관계가 심각한 가운데 러시아와 중국의 전투기가 우리 독도 상공을 침범했을 때다. 속이 상해 '문빠'들이 썼던 '외교 천재'라는 표현을 빌려 해결해보라고 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지금과 같은 강도(强度)로 박 대통령을 조롱·비판하는 글을 올렸나?
"박 대통령은 국정 운영 스타일 등에 문제가 많았지만, 나라를 위기에 빠뜨리는 엉뚱한 짓은 하지 않았다. 지금처럼 정부의 반일 정책, 탈원전, 소득 주도 성장 같은 것은 없었다. 문재인 정부는 '평화 타령'을 하지만 북한 정권에 욕은 욕대로 다 얻어먹고 있다. 그러면서 '지소미아'를 파기해 안보 위기 상황을 초래했다고 본다."
그는 입바른 소신(所信)이 문제가 됐다. 하지만 정말 문제는 그와 같은 공무원 한 명을 포용 못 할 정도로 자신감 없는 정권일 것이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0/14/2019101400012.html
비록 본청의 주임기사로, 기계설비 분야에서 근무했었지만, 소신껏 일하는데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고, 간혹, 외자로 기계설비를 도입하는데, 기계의 성능과 구매가격을 산정해야하는 일은 무척 신경을 써야 하는, 실무자로서의 양심도 많이 작용하는, 좀더 넓게 보면, 잘살아 보겠다고 불철 주야로 대통령부터 현장의 인부들까지 혼연일체가 되여 긍지를 갖고 뛰는 그런때였었다.
수입해오고져 하는 기계류에 대한 사양(Specification)을 작성하는데는, 끙끙 거리면서 각종 문헌을 참고하고, 뒤에 계시는 선배님들과의 discussion을 하고.... 때로는 위에서 부터 실질적으로 구입하고져 하는 기계류의 성능과는 딴판인 사양을 들이대면서, 검토해 보라는 지시가 떨어질때는 밤잠을 설쳐야 했던 때도 있었다. 검토해 보라는 뜻은 웬만하면 그기계를 수입할수있는 사양을 만들라는 뜻이기도 했기에....
독일 연수를 가서, 현지 사정을 파악하고, 더넓은 세상을 향해 눈을 더 크게 떠야 겠다는 생각을 갖고 귀국해서, 사표를 내고, 홀가분하게 짐꾸려 이민자의 고된 삶을 시작하게 됐던 것이다.
이민자로서의 어려움, 우선 언어문제, 생활습관, 기후변화 등등 더 큰 문제는 기계 기사로서의 자격을 현지사회에서는 인정을 안해 주는데, 이유는 현지 Experience가 없다는 핑계가 나를 무척 좌절하게 만들었었다. 요즘은 없었지만, 거의 반세기전에는 이곳 사회도 그랬었다.
이민짐을 싸서 외국생활을 한지 10년만에 조국을 처음 방문하여, 친정격인 옛근무지를 찾아, 선배님들, 동료분들, 그리고 후배분들과 반갑게 만나 시간가는줄도 모르고 얘기들을 주고 받은 기억이 지금도 뚜렷하다.
고국방문하기 몇년전, 서울에서는 경부고속철도 건설을 앞두고 계약회사를 일본으로 하느냐 아니면 불란서로 하는냐의 논란에 열이 한창 국가적 이슈로 올라 있을때, 나는 청와대와 해당부처에 무보수로 그리고 그분야의 기술자겸 통역관으로 봉사를 약 3년간 하겠다는 편지를 써 보냈었으나 아무데서도 답장이 없었기에 의아해 했었던 기억이 있었다. 그리고 조국 대한민국을 방문했었던 것이다.
위에 설명한것 처럼, 채용된다면, 현지 생활영어를 활용할수 있었기에 엉뚱한데서 벌어지는 실수는 최대한 막을수 있을것으로 기대를했었었다. 선배한분이 이렇게 충고를 해주신 내용은 아래와 같았었다.
"자네는 전에 여기서 근무할때도, 위에서 현실에 맞지않는 지시겸 부탁을 하면, "예'라고 대답을 하지않고, 그렇게 하면 왜 안되는지를 꼬박꼬박 설명하면서, 소신을 굽히지 않았었는데, 외국에서 살면서 그런 생각은 더 굳어졌을텐데... 자네같은 사람이 그들끼리 쌓아놓은 성(Castle)안에 들어오면 그성벽을 다 허물어 버릴려고 할텐데.... 절대로 받아들일수 없었겠지, 안그런가?"라는 설명을 듣고, 응답 안받기 참 잘했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한민호씨의 대담을 읽으면서, 특히나 요즘같은 좌파천국의 정부에서 패거리 인사를 한치의 부끄러움없이 자행하는 속에서 고생 참 많이 하셨겠구나 라는 연민의 정을 담뿍 느끼게 하는 슬픈 한국정부내 공무원 사회를 잘 설명해주셨다고 본다. 보신주의가 팽배해 있고, 나만 무사하면 그만이라는 Selfish한 좁아터진 생각으로 꽉차있는, 그래서 소신발언을 하는 단 한명의 국록을 먹는 고위직 공무원들이 없다는데, 이조시대때 임진왜란시 충신 이순신을 가두어야 한다는 간신들만 우글거리던때를 상상해 봤다.
청와대를 비롯한 국가 주요기관에서 요직을 맡고있는 고위 공직자 여러분, 지금이 바로 당신들 같은 고위직 간부들이 실무행정의 책임을 지고 소신발언을 해야 할때인것을 깊이 깨달으시고, 국가백년대개를 위해서 목소리를 내시기를 권한다. 특히 탈원전, GSOMIA, 퍼주기식 대북관계정립, 외교왕따, 패거리끼리 주고받는 고위직인사 등등에 대해서 목숨걸고 외칠수 있는, 성웅 이순신같은 충신들이 꼭 필요한때다.
한민호씨의 고위공무원사회의 썩어 문드러진 대국민보고를 한 용기에 찬사를 보낸다. 건투 하시라.
아래는 한민호씨의 대담내용을 보도한 뉴스를 옮겨 놨다.
엘리트 국장급 공무원은 왜 파면됐나… 한민호 前 사행산업감독위원회 사무처장]
"朴정부, 국정 운영에 문제 많았지만 나라를 위기에 몰진 않아
지금처럼 반일·탈원전·소득 주도 성장 같은 엉뚱한 짓 없었다
산업부 공무원이 불이익 감수하고 탈원전에 한마디 했다면…
외교부 한 명이라도 지소미아 파기 반대했다면 내가 안 나섰다"
한민호 전(前) 사행산업감독위원회 사무처장이 9월 20일 파면됐다.
사유는 '근무시간에 수시로 페이스북에 VIP(대통령)와 정부를 원색적으로 비판하거나 친일 게시물을 올렸고 청와대 감찰 조사를 받은 다음 날에도 이런 글을 올린 걸 보면 개전의 정이 없다'로 되어 있다. 국가공무원법 56조(성실 의무)와 63조(품위 유지)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장차관도 아닌 국장급의 파면이라 별로 '뉴스'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 대통령과 청와대를 공개 비판한 이렇게 간 큰 공무원은 없었다. 그런 사유로 잘린 경우도 유례없다. 약속 장소에 그는 삭발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사유는 '근무시간에 수시로 페이스북에 VIP(대통령)와 정부를 원색적으로 비판하거나 친일 게시물을 올렸고 청와대 감찰 조사를 받은 다음 날에도 이런 글을 올린 걸 보면 개전의 정이 없다'로 되어 있다. 국가공무원법 56조(성실 의무)와 63조(품위 유지)를 위반했다는 것이다. 장차관도 아닌 국장급의 파면이라 별로 '뉴스'가 되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 대통령과 청와대를 공개 비판한 이렇게 간 큰 공무원은 없었다. 그런 사유로 잘린 경우도 유례없다. 약속 장소에 그는 삭발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징계에 대한 항의 표시로 머리를 밀었나?
"머리가 빠져서 20년 전부터 이렇게 다녔다. 나를 마뜩잖게 보는 이도 있겠지만, 조직 안에서 나는 일 잘한다고 사랑받아왔다. 전임자가 손대지 않고 미뤄둔 숙제를 잘 푼다고 '해결사'라는 말도 들었다. 2007년에는 '우수공무원 대통령 표창'을 받는 등 근무 평가에서는 늘 몇 % 안에 들었다. 재작년 문체부 노조 투표에서 '바람직한 관리자' 부문 1등으로 뽑혔다."
―본인의 페이스북 글이 문제가 됐는데, 공무원들이 저마다 하고 싶은 발언을 해대면 국정 운영이 제대로 되겠나?
"지금 문제는 공무원들이 모두 입을 다물고 있는 데 있다. 공무원 숫자가 약 100만명이다. 자신에게 불이익이 있을까 나라의 기반을 흔드는 현 정권의 정책에 대해 한마디도 안 한다.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고 했나. 정말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본인 담당 업무와 무관한 정책에 대해 말하는 것은 주제넘는다고 보지는 않나?
"노무현 정부 시절 도입된 '고위공무원단 제도'는 소속 부처와 상관없이 국정 전반에 자기 식견을 갖춰야 한다는 취지였다고 본다. 나라가 위중한 상황에서 직언하는 게 고위 공무원의 소명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탈원전 정책에 대해 담당 산업부 공무원이 한 명이라도, 지소미아(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에 대해 외교부나 국방부에서 한 명이라도 반대 발언을 했으면 내가 안 나섰을 것이다."
―직속 상급자인 문체부 차관에게서 '페북에 글 쓰는 것을 자제하라'고 주의를 먼저 받은 것으로 아는데?
"페이스북은 내 개인 계정이다. 상급자가 하라 말라 할 법적 근거가 없다. 내가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냐?'고 묻자, 차관은 '개정은이라는 표현이 그렇고…'라고 말했다. 그 뒤 '개정은'이라는 표현은 안 썼다."
―'개정은'을 '김정은'으로만 고치고 페이스북 글쓰기를 계속했다는 것인데, 상급자가 주의를 주면 따르는 시늉을 해야 하지 않나?
"법적으로 내가 따라야 할 의무가 있는 지시라면 따르지만 이는 내 직무와 상관없는 권고다. 말 안 들었다고 기분 나쁘면 인사 조치를 하면 된다. 나는 우리나라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에 대해 발언하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고 봤다. 지금 공무원들은 나라가 망할 때까지 입을 다물고 있겠다는 심사다. 이는 내가 배웠던 충신(忠臣)의 자세가 아니다."
―차관의 주의가 있고서 일주일 뒤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공직 감찰을 받았다. 근무시간에 페이스북에 계속 글을 올린 것은 징계 사유가 되지 않겠나?
"내가 일을 안 하면서 페북질을 하면 욕하겠지만, 내 일을 다 하고 플러스로 나라 걱정을 했다. 내가 징계를 받아야 한다면 '죽창가' 등 폭풍 페북질을 하던 조국은 왜 괜찮은가. 조국이 '강제징용 배상 대법원 판결을 부정하면 친일파'라고 페북에 글을 올린 다음 날 '그래 나는 친일이다'라고 썼다. 그리고 그다음 날 민정수석실에서 내게 조사를 받으러 오라고 했다."
―날짜를 계산해보면 '나는 친일이다'라는 글이 청와대 조사의 결정적 빌미가 된 것 같다. 당시 대통령까지 나서서 반일 감정을 부추기는 상황에서 공무원이 대놓고 맞받은 셈인데?
"역대 정권마다 반일 감정을 국내 정치에 이용했고 국민은 그냥 끌려들어 간다. 국민은 반일 메시지에 반사적으로 분노한다. '나는 친일이다'라는 표현을 쓴 것은 한·일 관계를 냉정하게 보자는 취지였다. 일제 식민지 시절 일본의 과오를 비판해야지, 해방된 지 74년이 지난 지금까지 일본을 악마화하는 것은 우리 국익을 위해 전혀 도움이 안 된다."
"머리가 빠져서 20년 전부터 이렇게 다녔다. 나를 마뜩잖게 보는 이도 있겠지만, 조직 안에서 나는 일 잘한다고 사랑받아왔다. 전임자가 손대지 않고 미뤄둔 숙제를 잘 푼다고 '해결사'라는 말도 들었다. 2007년에는 '우수공무원 대통령 표창'을 받는 등 근무 평가에서는 늘 몇 % 안에 들었다. 재작년 문체부 노조 투표에서 '바람직한 관리자' 부문 1등으로 뽑혔다."
―본인의 페이스북 글이 문제가 됐는데, 공무원들이 저마다 하고 싶은 발언을 해대면 국정 운영이 제대로 되겠나?
"지금 문제는 공무원들이 모두 입을 다물고 있는 데 있다. 공무원 숫자가 약 100만명이다. 자신에게 불이익이 있을까 나라의 기반을 흔드는 현 정권의 정책에 대해 한마디도 안 한다.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고 했나. 정말 자존심 상하는 일이다."
―본인 담당 업무와 무관한 정책에 대해 말하는 것은 주제넘는다고 보지는 않나?
"노무현 정부 시절 도입된 '고위공무원단 제도'는 소속 부처와 상관없이 국정 전반에 자기 식견을 갖춰야 한다는 취지였다고 본다. 나라가 위중한 상황에서 직언하는 게 고위 공무원의 소명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탈원전 정책에 대해 담당 산업부 공무원이 한 명이라도, 지소미아(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에 대해 외교부나 국방부에서 한 명이라도 반대 발언을 했으면 내가 안 나섰을 것이다."
―직속 상급자인 문체부 차관에게서 '페북에 글 쓰는 것을 자제하라'고 주의를 먼저 받은 것으로 아는데?
"페이스북은 내 개인 계정이다. 상급자가 하라 말라 할 법적 근거가 없다. 내가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냐?'고 묻자, 차관은 '개정은이라는 표현이 그렇고…'라고 말했다. 그 뒤 '개정은'이라는 표현은 안 썼다."
―'개정은'을 '김정은'으로만 고치고 페이스북 글쓰기를 계속했다는 것인데, 상급자가 주의를 주면 따르는 시늉을 해야 하지 않나?
"법적으로 내가 따라야 할 의무가 있는 지시라면 따르지만 이는 내 직무와 상관없는 권고다. 말 안 들었다고 기분 나쁘면 인사 조치를 하면 된다. 나는 우리나라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에 대해 발언하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고 봤다. 지금 공무원들은 나라가 망할 때까지 입을 다물고 있겠다는 심사다. 이는 내가 배웠던 충신(忠臣)의 자세가 아니다."
―차관의 주의가 있고서 일주일 뒤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공직 감찰을 받았다. 근무시간에 페이스북에 계속 글을 올린 것은 징계 사유가 되지 않겠나?
"내가 일을 안 하면서 페북질을 하면 욕하겠지만, 내 일을 다 하고 플러스로 나라 걱정을 했다. 내가 징계를 받아야 한다면 '죽창가' 등 폭풍 페북질을 하던 조국은 왜 괜찮은가. 조국이 '강제징용 배상 대법원 판결을 부정하면 친일파'라고 페북에 글을 올린 다음 날 '그래 나는 친일이다'라고 썼다. 그리고 그다음 날 민정수석실에서 내게 조사를 받으러 오라고 했다."
―날짜를 계산해보면 '나는 친일이다'라는 글이 청와대 조사의 결정적 빌미가 된 것 같다. 당시 대통령까지 나서서 반일 감정을 부추기는 상황에서 공무원이 대놓고 맞받은 셈인데?
"역대 정권마다 반일 감정을 국내 정치에 이용했고 국민은 그냥 끌려들어 간다. 국민은 반일 메시지에 반사적으로 분노한다. '나는 친일이다'라는 표현을 쓴 것은 한·일 관계를 냉정하게 보자는 취지였다. 일제 식민지 시절 일본의 과오를 비판해야지, 해방된 지 74년이 지난 지금까지 일본을 악마화하는 것은 우리 국익을 위해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청와대가 본인에 대해 '사상 검열'을 했다고 보나?
"청와대 방침에 동조하는 글을 올렸으면 이렇게 나를 찍어냈겠나. 청와대 창성동 별관에서 4시간 조사를 받았다. 담당 조사관이 반일 감정, 탈원전, 소득 주도 성장 등을 비판한 페북 글 수십건을 출력해놓고 왜 썼는지에 대해 물었다. 내가 답변하자, 그는 '옳은 말씀인데 너무 솔직하게 썼다. 근무시간에 한 것도 문제가 된다. 징계를 받을 것이다'라고 했다."
―조사를 받고 바로 다음 날에도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청와대 권력에 대한 반기처럼 비쳤겠는데.
"나는 처음부터 소명을 갖고서 했다. 서울대 사대 역사교육과를 나와 중학교 역사 선생을 8년 하다가 공무원이 됐다. 교사 시절 충신·애국자에 관한 얘기를 학생들에게 많이 했다. 그런 내가 공무원이 돼 눈앞에 뻔히 잘못된 걸 보면서 입 다무는 것은 옳지 않다. 제자들이 다 보고 있다."
―중앙징계위원회를 앞두고 8월 14일에는 '나 스스로 친일파라고 여러 번 공언했다. 지금은 친일하는 게 애국이다'라며 예민한 글을 또 올렸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글의 파장이 어떨지는 알았을 것 아닌가?
"중학교 교사를 하면서 썼던 석사 논문의 제목이 '한·일 간 상호 인식의 역사'였다. 역사적으로 우리가 일본을 잘 알고 교류하고 있을 때는 화를 안 당했다. 교류를 끊고 무시하고 일본을 모를 때는 화를 입었다. 지금 한국과 일본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 동북아 안보와 경제협력 측면에서 일본과 잘 지내는 친일을 해야 한다. 그게 애국이다. 징용공 배상 판결과 지소미아 파기로 한·일 관계를 망가뜨리는 것은 국익을 해치는 일이다."
―인사혁신처 중앙징계위원회는 파면 결정을 내리면서 '개전의 정이 없다'는 80년대식 표현까지 썼는데?
"중앙징계위는 40분간 열렸다. 당초 감봉 같은 경징계를 예상했지만 들어가 보니 굉장히 냉소적이고 적대적인 분위기였다. 특히 친일파 발언에 대해 '저런 친일파 놈이 있나'라는 싸늘한 시선을 느꼈다. 청와대의 오더가 있었다고 본다."
―당신은 스스로를 옳다고 여기겠지만, 한쪽 이념이나 진영에 치우쳐 있다고 볼 수도 있지 않겠나?
"나는 대학 시절 운동권에 몸담았다가 무기정학을 당해 간신히 졸업했다. 교사를 하면서도 좌파 이념을 버리지 못했다. 동구권이 무너진 뒤 어느 날 '골수 빨갱이'인 대학 선배가 본인이 의식화를 시킨 후배들을 모아놓고 '왜 공산주의를 버려야 하나'라는 발제를 했다. '공산주의는 생산수단의 국유화를 통해 계획경제를 하는 것인데 이는 독재가 아니면 불가능하다. 한국 경제는 이미 공산혁명이 불가능한 단계에 와 있다. 나는 운동을 포기하고 독일 유학을 가겠다. 너희도 빨리 전향하라'고 했다. 고맙고 훌륭한 선배였다. 그 뒤 나는 교사를 그만두고 1994년 행시를 쳐 문체부에 들어왔다. 내 과거를 반성하는 차원에서도 우리 사회의 비정상적 좌경화를 극복하는 데 힘을 보태고 싶었다."
―당신은 현 정권 들어 문체부 핵심 보직인 체육정책관에서 사행산업감독위원회 사무처장으로 밀려났다고 들었는데?
"정권이 바뀌고 첫 국장급 인사에서 나 홀로 대상이 됐다. 나 혼자만 콕 찍어 발령을 낸 것이다. 앞서 말한 대로 그 시점 문체부 노조의 투표에서 '바람직한 관리자' 부문 1등에 뽑혔으니 내가 업무상 잘못한 것은 없었다."
―왜 혼자만 좌천성 인사 대상이 됐나? 구체적으로 무엇이 빌미가 됐는지 느낌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내 성향에 대해 청와대 보고가 올라갔다고 본다. 박근혜 정부 시절 나는 80년대 좌파 운동권의 바이블인 '해방전후사의 인식'과 '전환시대의 논리'에 대해 '대한민국 지성사에 치명적인 해독을 끼친 책이다. 해당 출판사는 반성하는 의미에서 상응하는 책을 내라'는 식의 글을 올린 적 있었다. 현 정권 들어와서는 사드 배치에 대해 애매모호한 자세를 비판하는 글도 페이스북에 썼다."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페이스북에 글을 써왔나?
"물론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5년 대우조선 구조 조정 방식 등에 대해 비판했다. 당시에도 문체부 차관의 구두 경고를 받았지만 페이스북에 글 쓰는 걸 멈추지 않았다."
―그때도 불이익을 받았나?
"박근혜 정부에서는 국장으로 승진해 핵심 보직인 미디어정책관과 체육정책관을 맡았다."
―통상 공무원은 위계질서를 인식하고 말을 신중하게 하는 편이다. 당신은 문 대통령에 대해 '외교 천재'라고 조롱하며 '지렁이, 아메바' 표현이 나오는 다른 사람의 게시물도 인용해 놓았다. 대통령은 공무원 조직의 최상급자인 행정수반 아닌가?
"중앙징계위에서 '적절한 행동이 아니었고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글을 쓴 것은 한·일 관계가 심각한 가운데 러시아와 중국의 전투기가 우리 독도 상공을 침범했을 때다. 속이 상해 '문빠'들이 썼던 '외교 천재'라는 표현을 빌려 해결해보라고 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지금과 같은 강도(强度)로 박 대통령을 조롱·비판하는 글을 올렸나?
"박 대통령은 국정 운영 스타일 등에 문제가 많았지만, 나라를 위기에 빠뜨리는 엉뚱한 짓은 하지 않았다. 지금처럼 정부의 반일 정책, 탈원전, 소득 주도 성장 같은 것은 없었다. 문재인 정부는 '평화 타령'을 하지만 북한 정권에 욕은 욕대로 다 얻어먹고 있다. 그러면서 '지소미아'를 파기해 안보 위기 상황을 초래했다고 본다."
그는 입바른 소신(所信)이 문제가 됐다. 하지만 정말 문제는 그와 같은 공무원 한 명을 포용 못 할 정도로 자신감 없는 정권일 것이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0/14/201910140001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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