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April 13, 2010

Gaze Antep Museun,Islahiye,Yesemik Acik Have Muzesi 탑방.





















































March 20,2010. Clear. Saturday, Daytime tour.

정말로 호텔에서 아침을 제공해줄까?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는다. Kitchen도 안보이고, 겨우 커피만 끓여 마실수 공간이 우리가 묵고있는 이층에 있고, 앉아쉴수 있는 소파가 두개 있고,그사이에 Tea Table이 고작인데...
시간이되자마자 이층공간으로 나가 보았다. 불빛만 희미하게 켜져 있고, 부엌(?)에는,상상했던,Cook이나 기타 음식준비하는 조짐이 보이지 않고, 부엌카운터위에 뭔가를 신문지로 덮어놓은것이 보일뿐이다. 신문지를 들춰내니, 아뿔사 그속에 큰 접시에 아침식사가 준비되여 있는게 아닌가. 신문지로 덮어 놓다니... 싱싱한 토마토Slice와 Olive요리, Iyran(터키식 요구르트) 그리고 빵이었다. 우리둘외에도 몇사람더 묶고 있다는것을 준비해논 Dish를 보면서 알았다. 둘이서 소파에 앉아 먹기시작했다. 영원히 기억에 남을 Episode가 될것같다.
다행히도 모든게 싱싱해서 먹는데는 별로 불편을 느끼지 못한다. 아마도 밤사이에 준비했던가? 아니면 우리보다 더 일찍 일어나, 준비해 놓지 않았을까? 아침을 먹고나면 점심을 먹을수 있다는 보장이 없는 Back Packer신분(?)이기에,기회 있을때 먹어 두어야 한다는 계산으로 Dish하나를 더 나누어 먹었다. 터키동쪽의 깊숙한 이곳 사람들의 민도를 측정케하는, 신문지로 덮어놓은 호텔음식....Turkish Tea도 넉넉히 한잔씩 마셨다. 어제밤에 빵집을 구경하면서,아침식사용으로 사두었던 '라마존'케밥은 점심으로 이용할수 있다는 계산도 해두었다. 아직 Check out하기에는 시간이 좀 남아 있어, 일층 Lobby 소파에 앉아 신문을 들춰본다. 오색찬란한것은 그림이고, 검정색은 글짜라는것을 아는것외에는 까막눈이다. 답답했다. 언어가 통하지 않으니, 앞으로는 잠자리를 구할때 최소한 기본 영어가 통하는곳에 정하리라 마음속에 다시 다짐해본다. 약속했던 두사람은 나타나지 않는다. 어제 늦어서 이루지 못한 박물관을 탐사하고 바로 Ha Tay(Antioch의 개명된 도시 이름)뢰 이동해야만 되겠기에, Checkout을 마치고, 호텔문문을 나서려는데, Mehmet이 호텔문을 열고 들어온다. 그가 약속을 지켰다는점에 경계의 끈이 조금은 느슨해진다. 걸어서 약 15분 거리에 있는 박물관을 향했다. 그가 Lunar의 Backpack을 어깨에 매겠단다. 시내 사거리중앙에는 Turkey공화국의 아버지 Artaturk의 동상이 우뚝 서 있는 모습을 보면서, 이양반은 정말로 터키인들로 부터 사랑을 참 많이 받고 있구나라고, 생각각하면서, 다시한번 조국 대한민국을 견주어 비교해 봤다. 우리조국에도 마음먹기에 따라서 이분보다 더 훌륭한 근대 조국의 리더가 있다고 나는 믿고 있는데도... 아담한 기념관 하나 없음이 씁쓸하다. 이번에는 Town centre앞을 지나친다. 그옆에는 조금만 쉼터가 있고, Mosaic으로 아름답게 새겨진 여인의 얼굴이 우리를 반기는것같다. 밑에 새겨진 설명서(운좋게 영어로 조그맣게 새겨져 있었다)에는 연대미상의 아주 오랜옛날에 존재했던 왕국의 Queen의 초상화라고도 하며,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아주예뻤던 Gypsy소녀의 초상이라고도 했다. 벤취에 앉아 쉬고 있던 늙은분이 웃으면서 인사를 나눈다. 자기가 역전의 용사였다고 설명하는것을 동행하는 Mehmet이 알려준다.
박물관에 진열된 95%는 AD2-3세기경에 유적으로 보면 볼수록 그규모나 섬세한 표현에 놀랄뿐이다. 마친 여자 Usher,Esra가 영어로 설명을 더해주어 많은 도움이 됐다. Mosaic Museum오서는 세계에서 두번째로 많은 소장품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다카에 계속 담아 보아도, Flash light사용을 금하기에 그형상이 제대로 담앙지지 않아 안타깝기만 하다. 관람마지막에 입구쪽 왼편에 있는 구내 상점에 들렸다. 많은 관련자료를 판매하고 있었고, TV모니터에서는 소장된 Mosaic에 대한 사진과 설명이 영어로 흘러 나와 들어보니, 내용이 너무나 좋다. DVD한장을 5TL에 구입했다. Mehmet이 제의를 한다. Ha Tay가는길에 'Islahiye'라는 조그만 마을이 자기가 태어난 고향인데, 아직도 그곳에는 부모님과 여자동생이 살고 있고, 또 집안 친척들이 있는곳이고, 그옆의 Yesemek에는 또다른 Open Air Museum도 있고, 또 옛성터도 있어 꼭 구경했으면 한다고 하면서, 우리가 응하면 같이 동행 하겠단다. 내일 출근에 지장이 없겠느냐고 되물었더니, 자기는 새벽에 돌무쉬를 타고 출근하면 된다고 설명해준다. 그리고 우리는 그곳에서 구경을 마친후 다시 돌무쉬를 타고 Ha Tay로 떠나면 다음 계획에 차질은 없을 것이라고 한다. 기왕이면 구경할수 있는 기회가 있을때마다 더 보아야 된다는 생각에 Ok했다. 7TL이 Dolmush의 Fare다. 서울시내의 마을뻐스같이 지나는 마을마다 더 Stop 해서 손님을 태우고 내리기에 그의 고향에도착했을때는 2시간 이상이 지났다. 마치 내가 아주 어린 중학생 시절에 고향에서 시집간 누나가 살고 있는 부안을 갈때(약 22키로 구간) 포장안된 도로를 흙먼지와 배기까스를 품어대며 가는곳마다 손님을 태우고 내리게 했던 그순간이 머리에 되살아나게 하는 뻐스여행이다. 아주 조그만 시골마을같아 보인다. 길도 포장안됐고, 자연적으로 형성된, 그러나 상가들도 있어 보이는 그런 곳같이 보인다. 자기 아버지는 전에 은행에서 근무했었다고 자랑(?)이다. 은행빌딩앞을 지나면서 설명을 해주기에 디카에 한컷 담았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이지역은 이락, 시리아들과 인접해 있어, 모여사는 인종이 다양하다고 했다. 터키족, 쿠르드족(Kurdish), 그리고 아랍족속등등... 그러나 아주 화목하게 서로 잘 어우러져 살고 있다고 한다. 캐나다에서 들어왔던, 종족간의 마찰에 대한 뉴스와는 전연 다른 이야기 이다. 먼저 Uncle한테 들려서 그와 같이 그의 차를 타고 'Yesemik'의 옛성터와 Museum을 방문 하겠단다. 차를 타고 가야 한다면 이곳에서 상당히 먼곳이라는 직감이 일었다. 병원이라고 간판이 걸린 정문을 통과해 조금 들어가니, 상당수의 남자들이 어우러져'Tauler'(두개의 조금만 Dice를 Board위에서 굴려서 하는 놀이로, 우리 고유의 윷놀이와 비슷)게임을 즐기고 있다. Mehmet이 그들 모두에게 인사를 하고, 그들은 우리부부을 구경(?)하고, 한창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40대 후반의 듬직한 남자가 그의 외삼촌이라고 귀뜸해 준다. 우리때문인지 게임은 순식간에 끝났다. 그리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더니, 그의 차가 있는곳으로 가서 시동을 걸고, 그때서야 인사를 건넨다. 평평한 평야같은곳을 차는 계속 달린다. 약 30분을 달리더니 조그만 주차장에 세운다. 앞에는 강물이 흐르고, 그위에 놓인 조그만 다리를 건너 언덕에 오르니 옛성터의 페허가 보인다. 현재도 발굴중에 있어 다 볼수는 없었고, 일부 개방된곳만 볼수 있었다. "Tulmen Hoyok(The king Park)이라고 불려지는 성터인데, 기원전 4000-2000년 사이에 Hittitte족 왕조가 축조한 Castle로, 아직 외부에 알려지지 않아 구경꾼이 거의 없다고 한다. 이성에서 Hittitte왕과 그의 Enemy가 처음으로 화친을 위한 Meeting을 했었다는 전설이 내려져 오고 있다고 설명해 준다. 터키어로 Cadesh라고 했다. 물(water)의 중요성은 지금이나 옛날이나 똑 같다. 설명서에 의하면, 지금 옆을 흐르고 있는 강에서 물을 끌어올려 Castle안에서 서용할수 있도록 Irrigation설비를 갖추었었고, 성주위를 돌고 빠저나가는 강줄기는 적의 침략을 막아주는 Fortification역활을 해 주었다고 한다. 문외한인 내가봐도 그럴듯하게 보였다. 지금은 개울물처럼 강바닥만 겨우덮은 양의 물이 몇천년전에 흐르던 그 줄기를 따라 졸졸 소리를 내면서 내닺는것 같이 느껴진다. 이지역 'Yesemek'도 옛날에 유명했던 Silk Road가 통과했었던 곳이라고 한다. 옛성터에는 회의실, 침실,Throne이 있었던곳, 왕족이 살았던 곳.... 다 기억못할 수많은 페허를 보면서,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의 사회적 불협화음으로 종족간이 국지전이 끝이지 않고 일어나는 양상이 고대로 부터 물려받은 유산(?)이 아닐까?하는 엉뚱한 생각을 대입해 본다. 다시 숙부가 운전하는 차는 달리기 시작한다. Yesemek Acik Hava Muzesi( Yesemek Open Air Museum)으로. 개울건너편 언덕에 넓은 비탈에 군데군데 미완성된 큰 비설같은 돌둘이 일정간격으로 세워져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이곳이 Museum이라고 했다. 차에서 낼자 동네 꼬마들이 모여든다. 그들 눈에도 우리 부부가 신기해 보이는가 보다. 옛날에 인근의 사는 부자들이 기념으로 쓸 비석이나 기타 Monumnet가 필요하면 미완성으로 진열되여 있는 돌덩이를 사서 석수쟁이에게 이런모양의 비문이나 모양으로 만들어 달라고 주문하면, 그대로 만들었다고 한다. 규모로 보아 큰 사업장이었던것 같이 느껴졌다. 터키정부 관광부에서 관리하고 있다고 하지만, 관리인도 눈에 안보인다. 그대로 방치상태인것 같다. Islahiye에서 동남쪽으로 정확히 27킬로 지점에 있는 이 박물관은,1890에 고대문명의 발상지를 주고 개발하는 Zincirli사의 책임자 Felix von Luschan씨에 의해 발견됐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는 박물관이라기 보다는 채석장(Quarry)이라고 부르는게 합당할것 같았다. 이곳 박물관을 통해 옛날 Hittite제국의 전후시절에 번성했던 조각문화의 흔적을 볼수 있다고 하며, 그규모는 그곳 지역에서 가장 컸었다고 전해 지고 있는데, 그내용을 간추려 보면, 큰 검은 쑥돌(Basalt)의 조각방법, 이완성인 사자상, 스핑크스상,기타 각종동물형상의 조각과정을 파악할수 있고, 당시의 돌조각술이 현대에도 그대로 전수되고 있다라고 평가 할수 있다는 점이라고 한다. 1957-1961년 사이에 고고학자 Bahadir Alkim에 의해 탐사를 해서 발굴했다고 한다. 이때 수백개의 미완성 돌조각들을 발견해 냈다고 하며 그에 따른 기술과 도면크기들로 여겨지는 자료들도 발견했다고 한다. 두번째 발굴작업은 1989-1991년 사이에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때 공식적으로 "Yesemek Open Air Museum"이라고 명명됐단다. 이 Yesemek 유적지는 지도상에도 잘 나타나 있지않은 동남쪽 맨끝의 시골구석인데, Mehmet이 아니였으면, 어떻게 이런곳을 답사할수 있었겠는가? 우연히 만난 그였지만, 너무나 고맙다. 이다음에 유적지 발굴이 완료되면 세상에 더 많이 알려질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Mehmet도 고맙지만, 조카의 청을 거절하지 않고, 즐겁게 친지들과 놀던 게임을 접고, 손수 차를 몰고 그곳까지 안내해준 Mehmet의 Uncle에게도 너무나 감사하다. 벌써 서쪽으로 해가 기운다. 시간이 무척 빨리 흘러갔다. Mehmet의 부모님이 살고 있는 Islahiye로 되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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