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가 Lunar Calendar로 설날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못살았었지만, 그런속에서도 부모님 따라, 위로 형님 누나들 따라 추석명절, 설명절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조상님 묘소에 성묘갔었고, 설날 새벽에는 어머니가 준비해 주신 깨끗한 옷으로 갈아 입고,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부모님께 새배하고, 윗 형님 누나들에게도 세배겸 인사하고, 제사지내고 다시 동네 같은 또래의 친구들과 어울려 동네 어른들댁에 찾아가 세배하고나면, 꼭 음식상을 차려 주어서 배불리 먹고.... 남의 자식들이었지만, 그렇게 나의 부모님은 남의 자식들을, 동네의 어르신들은 또 나를 포함한 남의 자식들을 그렇게 설날만큼은 풍부하지 않은 속에서도, 그날만큼은 풍부(?)하게 보살펴 주었고, 그기억이 해가 거듭될수록, 설날이 되면 떠오르곤 한다. 당시 그분들이 그렇게 하는것이 좋은일을 하는것으로 여기고 하셨다기 보다는, 오랜시간 조상님들로 물려 받은 전통( valuable tradition) 생활속에서 보편적으로 해오셨던 것이다. 세상이 발전하고, 먹고 사는데에 대한 사고 방식이 바뀌면서, 생활화 되다시피 하면서 이어져오던 그런 오랜 전통이, 손익계산식으로 바뀌어져, 생활속에서 별수 없이 자취를 감추어져, 가끔씩 고국을 방문해 보면, 안타까움을 참 많이 느낀다. 그래서 요즘은 내가 어렸을때에는 흔희 보아왔었던 일상생활 Pattern들이 선행으로 언론에 크게 부각되여 지면을 장식하거나 TV화면을 타게 되는것을 본다. 생활수준이 향상될수록 비례해서 사람들은 살아가기가 힘들다고, 그래서 편하게 살려고, 향락생활을 영위 할려는 욕망때문에 끔찍한 범죄를 저질러 결국 구렁텅이로 깊이 빠져 버리는 경우를 많이 본다. 이렇듯 사회적 구조면에서 극과 극을 치닫는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는 조그만 선행(?)을 해도 사람들의 눈에 크게 부각되는 것 같다. 오늘 아침 고국의 동아일보 인터넷판을 보면서, 가슴뭉클함을 보았다. 21년전 4쌍둥이 자매를 Delivery했던 병원장이, 그것도 당시에 생활이 어려웠던 신생아의 부모님들에게 무료로, 제왕절개 수술( C-section 또는 Caesarean section operation)을 통해 무사히 분만을 시키고, 그후 대학까지 마칠수 있도록 후원해 주고, 이다음 사회생활을 시작할때의 구직도 도와 주겠다고 약속했었다고 한다. 만약에 당시 예정일 보다 일찍 진통이와서 병원으로 달려 갔는데, 분만비부터 챙기려 했었다면, 일은 낭패로 끝나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사회가 아직 오늘날 처럼 경제적으로 풍부하지 못했기에 손익계산을 먼저 계산했을법도 한 일들이 비일비재 했을법 한데, 그분은 의사로서의 본분을 먼저 지켜, 무사히 분만 시키고, 위로의 말을 하면서, 험한 세상을 살아갈 신생아를 포함한 가족들에게 용기를 부어주는 말과 행동으로 보살펴 주었단다. 그들이 잘 자라, 사회생활의 첫발을 내딧는 일터를,보은의 뜻이 담긴 곳에서 시작하게 됐다는 마음 훈훈하게 해주는 기사를 읽으면서,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길을 되돌아 보면서, 내자신을 더 부끄럽고 초라하게 하는 각성의 시간을 갖게 한것이다. 이들의 주고 받은 행적은 특별한 것이 아니고, 일상에서 벌어지는 차원의 바른 생활태도요, 정도를 걸어온 생활인들의 삶일 뿐이다. 진흙탕속에서 피어나는 연꽃은 아름답지만, 그것은 연꽃자체의 삶일뿐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사회 현실이 진흙탕처럼 혼돈의 연속이어서, 돋보일수 밖에 없는 것 뿐이다. 이러한 설명절의 선물들이 계속 이어지는 사회가, 일상생활속에서 자리매김하는, 못살았지만 쉽게 목격했었던 어린시절의 그때로 Time machine을 타고 달려가게 해 주는것 같다. 동아일보의 기사를 이곳에 옮겨 놓았다.
http://news.donga.com/People/New/3/06/20100216/26217382/1&top=1
창문너머로 보이는 온타리오 호수의 얼음위에는 새떼들이 새까맣게 마치 해변가의 조약돌 무덤처럼 모여 있다. 그들의 삶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한게 없어 보인다. 그져 평화롭게 보이기만 한다. 적어도 그들에게는 총이 필요치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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