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자신도 이민자로서 미지의 땅에 뿌리를 박고, 자식들을 부양하기위해 새벽부터 자정까지 바삐 움직일때는, 내자신을 많이 한탄도 했었다.
" 잘 나가는 직장을 내던지고, 더 좋은 삶을 살아보겠다고 이민 보따리를 싸서 이곳까지 왔는데, 잘 살기는 커녕, 3D 업종중의 하나라고 볼수 있는 Convenience Store를 하면서, 이민자로서의 억울한 차별도 많이 당하면서, 별보고 잠자리 뛰쳐 나와서 별보고 집에 들어 가야 하는 삶이 과연 옮은 선택이었던가? 이다음 은퇴 해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편하게 살아야 겠다"라는 말을 수도 없이 되뇌었었다.
지금은 다 자라서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아이들이, 가끔씩 만나서 Eating out할때면, 되묻곤 하는 질문이 있다. 그것도 서툴은 우리 한국말로. 그래도 우리끼리니까 의사 소통은 된다.
"아빠, 그때 우리들 앞에서 했던말 지금도 생각나?"
"아니, 뭔데 그렇게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나?"
" '나 이다음에 은퇴하면 짐싸들고 다시 한국에 돌아가 여생을 보낼거야'라고 한말.."
" 미안해, 그때는 아빠가 너무나 힘들고, 아침에 눈떠서 저녁에 침대에 드러 누울때까지 아무것도 못하고 오직 가게일만 해야 했기 때문에 심신이 지친 그런 삶이 싫어서 그랬던거야. 지금은 전연 아니야. "
" 아빠 지금 얘기지만, 그때 Elementary school 다니면서 어린 우리남매, 아빠가 그런 얘기 할때마다 마음이 얼마나 조마조마 했었는지 알아. 우리도 같이 걱정 많이 했었어. 아빠, 엄마 따라서 한국에 가야되나? 아니면 여기서 살아야 하나? 우린 돈 하나도 없는데...."
"엄마, 아빠는 여생을 여기 제2의 조국 캐나다에서 보낼거야. 이봐, 카테지도 있고 .... 지금 잘 지내고 있잖니. 매년 엄마 아빠 둘이서 해외 여행 다니고....너희들 앞날일들이나 걱정해, 엄마 아빤 이제는 편하게 잘지내고 있는것 알지?"
정말이지 그때는 삶이 뭔가를 되씹어 보고 또 보고, 그러면서 이민자의 삶이 이렇게 고달퍼야 하는가?라는 생각과 다른 친지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별생각을 다하면서 나만 이런 고생을 하는걸까?라는 자책을 많이 했었다. 내눈에는 남들은 여름철 휴가때면 짐싸들고 여행을 다닐때, 연말 연시 Holiday 즐길때, 우린 똑같은 휴가나 Holiday라는 말을 잊은채 소처럼 일만 했었다 정말로 아이들한테 미안할 정도로. 지금도 아이들 학교 다닐때 온식구가 같이 캠핑한번 하지 못했던 지난날을 생각하면 그져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슴을 여민다. 허지만 그때는 지겨운 젊은 날의 삶이었다고 표현하고 싶다.
10년 하고도 몇년이 훌쩍 넘었다. 생업에서 손떼고 은퇴생활을 하기시작한지가....
그러나 젊어서 소처럼 일만 했었던 지난날을 절대로 지금은 후회하지 않는다.
그런 희생의 댓가를 치렀기에,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무난한 은퇴생활을 하고 있다는 감사함을 가슴속에 깊이 새기면서 은퇴자로서의 하루하루를 뜻있게 보내면서 캐나다에 감사해 하고 있다.
그사이 고국을 방문하면서 이곳 저곳을 구경도 하고, 좋은 기억을 만들려고 좋은 쪽으로 많은 생각을 했었다. 사회가 잘못되여가는것을 봤을때도, 사람들의 행동이 때로는 상대방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나만을 위한쪽으로 보여도, 아직은 시기적으로 그럴수도 있겠다라고 좋게 이해 할려고 했었다. 그러면서도 마음속에서는 거부 반응이 너무나 많이 일어나, 나같은 사람이 다시 이곳 고국에서 살게 된다면, 일년도 못가서 갖인것 다 거덜나고, 얼키고 설킨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아 어려움을 겪게 될것이라는 생각이 자꾸 커지게됐다.
내가 태어나고 조상님들의 모든것이 묻혀 있는 조국이기에 절대로 잊을수는 없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조국이 부강한 나라가 되고, 평안하게, 여유롭게 그리고 믿음이 공존하는 사회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희망을, 시집간 딸의 심정으로 빌면서 살아 가지만, 역이민을 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기회가 주어지면 방문하는것으로 족할 것이다. 역이민을 하기에는 나는 너무나 고국의 현실을 모르고, 두렵기 때문이다.
고국을 이끌어가는 정치꾼들, 먹물많이 먹은 지성인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철딱서니없는, 그리고 정부에서 일하는 고위급 지도자들, 그래서 그영향이 젊은이들과 국민들에게 어떻게 반향을 미칠지 심사숙고한 다음에 써야할 글들을 SNS에 마음데로 써 갈겨대는, 반짝 빛나는 인기위주의 까십같은 칼럼들, 언론사들의 어린아이들 작문쓰는식의 무책임한 기사들, 한치의 양보도 할줄 모르는(?) 사회구조와, 외모를 중시하는 구태를 벗어 버리지 못하는 악습이, 여생을 조국에서 보내고 싶어하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뒤집어 놓고 있다는것을 이제는 인식했으면 싶다.
오늘은 정말로 황당한 기사를 보았다. 장관급에 속하는 검사장이라는 사람이, 그것도 박대통령이 주창하는 부패척결, 개혁을 앞에서 이끌어가야 할 사람중의 하나가, 이유야 어쨋던 여학생 앞에서 짐승도 하지 않을 개수작을 했다는 뉴스는, 개혁의 주체가, 바로 개혁의 첫번째 대상자임을 여실히 나타내는 한국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꼴이 됐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8/16/2014081600234.html?news_top
"내가 누군데.... 나는 개혁대상에서 예외야.... "라는 고정관념이 머리속에 꽉박혀 있는 그런사람들이 개혁을 하겠다고? 박대통령이 괜히 안쓰러워 보이게 하는 Cancer Cell같은 존재들이 지도층으로 있는한, 개혁, 부패척결은 물건너간것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이다. 오죽 했으면 '관피아'라는 신조어까지 탄생했을까. '검사장'하면 울던 아이도 울음을 그치는 무서운 존재로 인식되여 있는 관직인데, 부패, 부정척결을 위해 앞장서서 분골쇄신해야할 현직 검사장이 자기 딸같은 여고생 앞에서 물건을 꺼내놓고 농락을 했다는 뉴스는 충격을 넘어, 부정부패 척결은 고사하고 호시탐탐 적화통일을 꿈꾸고 있는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존재 여부가 심히 걱정되는 현실이 너무나 불쌍하기만 하다.
국가의 공권력을 최일선에서 맡아 수고하고 있는 경찰관들을 마치 개패듯이 해대는 무지한 국민들, 법은 이들 무법자에게 너무나 관대(?)하다. 오히려 경찰관들이 욕먹는 대상이 되는 나라, 파출소가 술주정꾼들의 행패 부리는 장소로 전락한 나라.... 취중에 한 행동이라는 명분을 주어 그냥 풀어주는 나라.... 이곳 캐나다의 경찰관들이 폭력을 당한다거나, 경찰관들의 업무를 방해하는 행동은, 하나님이라도 용서를 하지 않는다. 일단 철창행이다. 이렇게 해야 국가의 기본인 질서가 유지 되기 때문이다. 고국은 선진 외국의 모방은 잘하면서도 이런 공공질서범에 대해서는 너무나(?)관대하기만 할까? 그래서 행여라도 역이민은 두렵다.
이곳 북미, 특히 캐나다에서는 많은 유럽쪽 이민자들이 은퇴후 조국으로 돌아간다. 심지어 연방정부 장관까지 했던 사람들도 은퇴후 모든것 버리고 자기 조국으로 역이민 간다. 그것이 정석(?)으로 받아들여지는 풍조다. 여기서 일생동안 일해서 모은 재산을 처분하여 자기 조국으로 가면, 편하게 살수 있는 그들 나라의 구조가 우선 나는 부럽게 느껴진다. 스페인, 포투갈, 터키, 이태리, 파키스탄, 인도 그리고 옛 동구권 유럽여러나라 사람들이 이들 범주에 속한다.
우리 조국에서 살려면, 우선 경제적으로 따져 보았을때, 있는재산 다 처분하여 되돌아 간다해도 그돈으로 반듯한 아파트 한채 사기가 힘들 정도로 생활비가 무척 비싸다고 한다. 그리고 항상 잔머리를 굴려야 하는 어려움이 함께 하는것을 많이 보아왔다. 그런점들이 여기서 오랜 이민의 삶을 살아온 사람들의 마음을 두렵게 한다. 가끔씩 역이민이 있는것을 보는데, 이분들은 이민의 역사도 짧으면서 또 여기서 이민의 삶속에 적응못하고 할수없이 되돌아가는 분들이 있긴 하다. 나는 그래서 조국의 품으로 돌아가 여생을 보낼 꿈을 깨끗히 접고, 이곳 제2의 조국 캐나다에서 이씨 가문의 시조로 남아 자손들의 번영을 도우면서, 심신이 허락하는한 조상님들과 친지들 방문으로 족할 것이다.
여기에 친지한분이 보내온 어느 외국인의 칼럼을 옮겨 놓았다. 절절히 옳은 말이다. 한편 챙피 하기도 하다. 내분수는 내가 알아야 하는데.... 남이 장에 가니 나도 구럭 짊어지고 가야 한다는 일종의 Show off하는 그런 삶의 자세는 선진국이 될려면 과감히 버려야 할때가 됐다고 본다.
" 잘 나가는 직장을 내던지고, 더 좋은 삶을 살아보겠다고 이민 보따리를 싸서 이곳까지 왔는데, 잘 살기는 커녕, 3D 업종중의 하나라고 볼수 있는 Convenience Store를 하면서, 이민자로서의 억울한 차별도 많이 당하면서, 별보고 잠자리 뛰쳐 나와서 별보고 집에 들어 가야 하는 삶이 과연 옮은 선택이었던가? 이다음 은퇴 해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 편하게 살아야 겠다"라는 말을 수도 없이 되뇌었었다.
지금은 다 자라서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아이들이, 가끔씩 만나서 Eating out할때면, 되묻곤 하는 질문이 있다. 그것도 서툴은 우리 한국말로. 그래도 우리끼리니까 의사 소통은 된다.
"아빠, 그때 우리들 앞에서 했던말 지금도 생각나?"
"아니, 뭔데 그렇게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나?"
" '나 이다음에 은퇴하면 짐싸들고 다시 한국에 돌아가 여생을 보낼거야'라고 한말.."
" 미안해, 그때는 아빠가 너무나 힘들고, 아침에 눈떠서 저녁에 침대에 드러 누울때까지 아무것도 못하고 오직 가게일만 해야 했기 때문에 심신이 지친 그런 삶이 싫어서 그랬던거야. 지금은 전연 아니야. "
" 아빠 지금 얘기지만, 그때 Elementary school 다니면서 어린 우리남매, 아빠가 그런 얘기 할때마다 마음이 얼마나 조마조마 했었는지 알아. 우리도 같이 걱정 많이 했었어. 아빠, 엄마 따라서 한국에 가야되나? 아니면 여기서 살아야 하나? 우린 돈 하나도 없는데...."
"엄마, 아빠는 여생을 여기 제2의 조국 캐나다에서 보낼거야. 이봐, 카테지도 있고 .... 지금 잘 지내고 있잖니. 매년 엄마 아빠 둘이서 해외 여행 다니고....너희들 앞날일들이나 걱정해, 엄마 아빤 이제는 편하게 잘지내고 있는것 알지?"
정말이지 그때는 삶이 뭔가를 되씹어 보고 또 보고, 그러면서 이민자의 삶이 이렇게 고달퍼야 하는가?라는 생각과 다른 친지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별생각을 다하면서 나만 이런 고생을 하는걸까?라는 자책을 많이 했었다. 내눈에는 남들은 여름철 휴가때면 짐싸들고 여행을 다닐때, 연말 연시 Holiday 즐길때, 우린 똑같은 휴가나 Holiday라는 말을 잊은채 소처럼 일만 했었다 정말로 아이들한테 미안할 정도로. 지금도 아이들 학교 다닐때 온식구가 같이 캠핑한번 하지 못했던 지난날을 생각하면 그져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슴을 여민다. 허지만 그때는 지겨운 젊은 날의 삶이었다고 표현하고 싶다.
10년 하고도 몇년이 훌쩍 넘었다. 생업에서 손떼고 은퇴생활을 하기시작한지가....
그러나 젊어서 소처럼 일만 했었던 지난날을 절대로 지금은 후회하지 않는다.
그런 희생의 댓가를 치렀기에,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무난한 은퇴생활을 하고 있다는 감사함을 가슴속에 깊이 새기면서 은퇴자로서의 하루하루를 뜻있게 보내면서 캐나다에 감사해 하고 있다.
그사이 고국을 방문하면서 이곳 저곳을 구경도 하고, 좋은 기억을 만들려고 좋은 쪽으로 많은 생각을 했었다. 사회가 잘못되여가는것을 봤을때도, 사람들의 행동이 때로는 상대방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나만을 위한쪽으로 보여도, 아직은 시기적으로 그럴수도 있겠다라고 좋게 이해 할려고 했었다. 그러면서도 마음속에서는 거부 반응이 너무나 많이 일어나, 나같은 사람이 다시 이곳 고국에서 살게 된다면, 일년도 못가서 갖인것 다 거덜나고, 얼키고 설킨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아 어려움을 겪게 될것이라는 생각이 자꾸 커지게됐다.
내가 태어나고 조상님들의 모든것이 묻혀 있는 조국이기에 절대로 잊을수는 없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조국이 부강한 나라가 되고, 평안하게, 여유롭게 그리고 믿음이 공존하는 사회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희망을, 시집간 딸의 심정으로 빌면서 살아 가지만, 역이민을 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기회가 주어지면 방문하는것으로 족할 것이다. 역이민을 하기에는 나는 너무나 고국의 현실을 모르고, 두렵기 때문이다.
고국을 이끌어가는 정치꾼들, 먹물많이 먹은 지성인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철딱서니없는, 그리고 정부에서 일하는 고위급 지도자들, 그래서 그영향이 젊은이들과 국민들에게 어떻게 반향을 미칠지 심사숙고한 다음에 써야할 글들을 SNS에 마음데로 써 갈겨대는, 반짝 빛나는 인기위주의 까십같은 칼럼들, 언론사들의 어린아이들 작문쓰는식의 무책임한 기사들, 한치의 양보도 할줄 모르는(?) 사회구조와, 외모를 중시하는 구태를 벗어 버리지 못하는 악습이, 여생을 조국에서 보내고 싶어하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뒤집어 놓고 있다는것을 이제는 인식했으면 싶다.
오늘은 정말로 황당한 기사를 보았다. 장관급에 속하는 검사장이라는 사람이, 그것도 박대통령이 주창하는 부패척결, 개혁을 앞에서 이끌어가야 할 사람중의 하나가, 이유야 어쨋던 여학생 앞에서 짐승도 하지 않을 개수작을 했다는 뉴스는, 개혁의 주체가, 바로 개혁의 첫번째 대상자임을 여실히 나타내는 한국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꼴이 됐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8/16/2014081600234.html?news_top
"내가 누군데.... 나는 개혁대상에서 예외야.... "라는 고정관념이 머리속에 꽉박혀 있는 그런사람들이 개혁을 하겠다고? 박대통령이 괜히 안쓰러워 보이게 하는 Cancer Cell같은 존재들이 지도층으로 있는한, 개혁, 부패척결은 물건너간것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이다. 오죽 했으면 '관피아'라는 신조어까지 탄생했을까. '검사장'하면 울던 아이도 울음을 그치는 무서운 존재로 인식되여 있는 관직인데, 부패, 부정척결을 위해 앞장서서 분골쇄신해야할 현직 검사장이 자기 딸같은 여고생 앞에서 물건을 꺼내놓고 농락을 했다는 뉴스는 충격을 넘어, 부정부패 척결은 고사하고 호시탐탐 적화통일을 꿈꾸고 있는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존재 여부가 심히 걱정되는 현실이 너무나 불쌍하기만 하다.
국가의 공권력을 최일선에서 맡아 수고하고 있는 경찰관들을 마치 개패듯이 해대는 무지한 국민들, 법은 이들 무법자에게 너무나 관대(?)하다. 오히려 경찰관들이 욕먹는 대상이 되는 나라, 파출소가 술주정꾼들의 행패 부리는 장소로 전락한 나라.... 취중에 한 행동이라는 명분을 주어 그냥 풀어주는 나라.... 이곳 캐나다의 경찰관들이 폭력을 당한다거나, 경찰관들의 업무를 방해하는 행동은, 하나님이라도 용서를 하지 않는다. 일단 철창행이다. 이렇게 해야 국가의 기본인 질서가 유지 되기 때문이다. 고국은 선진 외국의 모방은 잘하면서도 이런 공공질서범에 대해서는 너무나(?)관대하기만 할까? 그래서 행여라도 역이민은 두렵다.
이곳 북미, 특히 캐나다에서는 많은 유럽쪽 이민자들이 은퇴후 조국으로 돌아간다. 심지어 연방정부 장관까지 했던 사람들도 은퇴후 모든것 버리고 자기 조국으로 역이민 간다. 그것이 정석(?)으로 받아들여지는 풍조다. 여기서 일생동안 일해서 모은 재산을 처분하여 자기 조국으로 가면, 편하게 살수 있는 그들 나라의 구조가 우선 나는 부럽게 느껴진다. 스페인, 포투갈, 터키, 이태리, 파키스탄, 인도 그리고 옛 동구권 유럽여러나라 사람들이 이들 범주에 속한다.
우리 조국에서 살려면, 우선 경제적으로 따져 보았을때, 있는재산 다 처분하여 되돌아 간다해도 그돈으로 반듯한 아파트 한채 사기가 힘들 정도로 생활비가 무척 비싸다고 한다. 그리고 항상 잔머리를 굴려야 하는 어려움이 함께 하는것을 많이 보아왔다. 그런점들이 여기서 오랜 이민의 삶을 살아온 사람들의 마음을 두렵게 한다. 가끔씩 역이민이 있는것을 보는데, 이분들은 이민의 역사도 짧으면서 또 여기서 이민의 삶속에 적응못하고 할수없이 되돌아가는 분들이 있긴 하다. 나는 그래서 조국의 품으로 돌아가 여생을 보낼 꿈을 깨끗히 접고, 이곳 제2의 조국 캐나다에서 이씨 가문의 시조로 남아 자손들의 번영을 도우면서, 심신이 허락하는한 조상님들과 친지들 방문으로 족할 것이다.
여기에 친지한분이 보내온 어느 외국인의 칼럼을 옮겨 놓았다. 절절히 옳은 말이다. 한편 챙피 하기도 하다. 내분수는 내가 알아야 하는데.... 남이 장에 가니 나도 구럭 짊어지고 가야 한다는 일종의 Show off하는 그런 삶의 자세는 선진국이 될려면 과감히 버려야 할때가 됐다고 본다.
한국에서 여생을?
[너무도 잘못된 한국사회]
지난 주 서울에서 발행되는 일간에
어느 유명한 외국인 초빙교수가 한국에 살면서 목격한
한국인들의 이중인격에 대한 소감이 실렸다.
이 교수는 정신의학계의 세계적인 권위자인데,
한국을 떠나면서 후임으로 부임한 교수(외국인)에게
자신의 눈에 비친 한국인의 이미지에 관해
다음과 같이 평했다고 한다.
“한국인은 너무 친절하다.
그러나 그것이 그 사람의 인격이라고 판단하면 오해다.
권력 있거나 유명한 사람에게는
지나칠 정도로 친절하지만,
자기보다 약하거나 힘없는 서민에게는
거만하기 짝이 없어 놀랄 때가 많다.
특히 식당 종업원에게는 마구잡이로 무례하게 대해
같이 간 사람이 불쾌할 정도다.
잘 나가는 엘리트일수록
이 같은 이중인격을 지니고 있어
인간적으로 사귀고 싶지가 않았다.”
공감이 가는 소리다.
서울에서 온 점잖은 사람이
미국의 코리아타운 식당에서 종업원에게
“야, 이봐, 너” 하면서 큰 소리치는 광경을
한인들도 많이 봤을 것이다.
그 사람이 친구나 친척이면
‘미국서는 그러면 안돼’하고 충고를 해주겠지만,
잘 알지 못하는 사이거나 VIP인 경우는 난감하다.
한국에서 엘리트 계층에 속한다면 배운 사람이다.
배운 사람일수록 겸손해야 하는데 오히려 거만을 떤다.
지식은 많은데 지혜롭지가 못하다.
말은 유식한데 행동은 무식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준법정신이 엉망이다.
노블레스 오블리지를 어찌 알겠는가!
서울에서 내가 겪은 일이다.
어느 회사 중역과 저녁을 먹고
그의 차로 호텔에 돌아오게 되었는데,
한가한 길에서 빨간 신호등이 켜져
운전기사가 차를 멈추자
중역이 “아무 차도 없잖아? 그냥 건너가”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 후부터 그 사람을 다시 보게 되었다.
힘 있는 사람부터 법을 안 지키니
부정부패가 만연할 수밖에 없다.
대법관으로 임명된 인사가
청문회에서 위장전입을 인정할 정도니
정부 요직에 있는 다른 인사들이야 말해서 무엇 하랴.
한국 엘리트들의 또 다른 모순은
자기 잘못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 점이다.
회사에서도 뭐가 잘못되면
전부 윗사람 아랫사람 탓이고
자기반성은 조금도 없다. 모두가 남의 탓이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너무 네거티브하다.
모여 앉으면 정치 이야기인데,
완전히 흑백논리로 평한다.
호남친구들과 만나면
박정희, 박근혜 혹평하는 것 듣다가 시간 다가고,
경상도 친구들과 만나면 김대중을 얼마나 미워하는지
저녁자리가 피곤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한국에는 존경받는 대통령이 없다.
모두가 이래서 죽일 놈이고 저래서 죽일 놈이다.
벼락부자의 단점이 무엇인가?
국민소득은 2만3,000달러 수준인데,
국민의식은 500달러 수준(1970년대)이다.
경제가 눈부시게 발전했다고 자랑하지만
그것은 곧 벼락부자가 되었다는 뜻이다.
그저 남에게 내가 이만큼 가졌다고 자랑하는 것이다.
재산이 사람평가의 기준이다.
역이민을 절대 말리고 싶다
요즘 미주 한인들 중에
한국에 가서 여생을 보내면 어떨까하고
역이민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돈 없이 한국에서 살면
사람취급 제대로 못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돈 없는 사람은 동창들 사이에서도
냉대 받는 곳이 한국이다.
미국에서 재산 몽땅 정리해도
한국에서는 아파트 하나 사기 힘들다.
성공의 의미가 너무 좁다.
몇 평짜리 아파트 사느냐,
강남에 사느냐 강북에 사느냐가 사람평가의 기준이다.
돈 있고 잘사는 데도
자기보다 더 잘사는 사람을 부러워하며
항상 뭔가 불만족이다.
역이민? 절대 말리고 싶다.
불만족의 뿌리는 정치꾼들에게 있는 것이다.
한국을 대표하는 대통령을 무시하고,
북을 찬양하는 종북자가 국민의 혈세를
빨아먹으면서 활개를 치고,
어린이들을 학대하는 걸 보고도 수수방관하고,
경찰관들을 우습게 보는 국회의원들!
국민들 위에 군림하지 말고, 임시국회를 열어서라도
법의 미비한 점을 지체하지 말고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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