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July 18, 2014

김정일이 묵었던 칠보산 민박집에서 하룻밤 보낸 이야기-뒷돈주고 가능(?), 헛물켜는 문통 철도건설제안


http://www.bbc.com/travel/feature/20140529-sleep-in-kim-jong-ils-bed

우리 생전에 통일이 되면 나도 짐싸들고, 김정일 별장에서 하룻밤 지새면서 김정일의 행세를 해보고 싶은 바램이 있다.  그가 머물렀던 방에서 잠을 잘수는 있어도, 국민들 호령은 안되겠지? 사람목숨을 파리목숨 날리듯 했던, 인간이기를 포기했던 그만이 가능했던.... 나는 김정일이가 아니니까.  상상은 자유니까 별생각을 다해본다.   통일이 된다면 우선 다급한게 남북을 연결하는 고속도로, 또는 고속철도의 건설이 해야할 과제인것 같다.

몇년전 중국의 한 건설업체가 이북당국에, 고속전철, 고속도로를 무상으로 건설하고 일정기간동안 운영하면서 건설비를 다 회수하면 바로, 이북에 넘겨주겠다고 제안 했지만, 이북은 거절한것이다. 보안상의 이유였다. 이에 중국업자는, 철도와 고속도로변에 울타리를 세워서 일반 주민들이 일체 지나는 차량이나 기차를 볼수 없도록 하겠다고 했으나 이또한 거절한 것이다.

이런 제안을 문재인 대통령이 모를리 없건만, 이번 Chengdu에서 열린 3국(중국,일본, 한국)정상들이 모인 회담에서 또 철도 및 고속도로를 건설하겠다고 제안했다. 김정은이가 절대로 그제안을 받아 들이지 않을 것임을 알면서도.... 그의 진정한 의도가 뭘까? 5천만 국민들은 아무도 모른다. 오직 문재인만, 짝사랑식으로 애걸하는 제스처인데... "뭐주고 뼘맞는" 창녀같은 짖을 왜 계속해댈까? 한국대통령 맞아?


 2006년도에 나는 생전의 "김정일'이가 묵었었던 방에서 2일밤을 즐겼었다. 방바닥에 이불을 깔고, 부엌아궁이에서 아궁이에 불을 지펴서 방바닥을 따뜻하게 해주어, 이북에서는 수시로 발생하는 정전이 되여도 아무런 불편없이 잠을 잘 잘수 있었다.

영국은 이북과 외교관계를 하고 있기 때문에, 영국의 여행사들중에서 이북방문 여행객을 전문적으로 모집하여, 이북의 까다로운 여행조건을  그대로 다 수용하면서 방문객들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까다로운 조건들중에서는 예를 들면, 구경하는 동안에 주민접촉 절대 불가하고 이를 어길시는 연행 또는 추방 까지 할수 있다고 들었다.  여행경비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비싸다고 한다.  그래도 여행객이 있으니까 모집하고 있는것으로 알고 있다.  주로 미국시민들을 제외한 서양사람들인것으로 여행안내서를 본 기억이 난다.

여기에 한 여행객이 김정일 별장이 있는 칠보산에서 Homestay하면서 쓴 여행기를 옮겨본다.

전기불은 나가 버려 캄캄한 속에서 나는 온돌방에 드러누워 집밖의 해변가에서 파도치는 소리를 들으며, 생전의 김정일이가 여기서 자면서 지금 내가 듣고 있는 파도소리를 들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2006년도에 김정일이가 지금 내가 누워있는 이방에서 이틀밤을 보냈다고 한다.  전통식 온돌방에서 이불을 깔고서 말이다.  부엌아궁이에서 불을 때서 전기가 나갔어도 방바닥은 따뜻해 잠자기에는 안성마춤이었고, 전기가 들락 날락하는것은 북한에서는 하나도 이상할것이 없다고 생각하면 될것 같다.

김정일의 칠보산 방문은 Homestay의 서막이나 다름없다 - 이북에는 Homestay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만약에 한군데가 아니라면 그것은 외국인들 접대용으로 허용됐을 것이다 (모든 외국방문객들은, 미안 하게도 미국인들은 절대 사절, 낯시간동안에 방문허용이 되지만, 밤에 숙박하는것은 허용이 안된다.  칠보산 Homestay 주인들은 김정일원수가 생전에 자기집을 방문했었다고 자랑은 하지만, 어느방에서 묵었는지는 함구하고 있거나, 또는 방문객이 그방에서 묵을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역시 함구하고 있다.  그내용을 밝히는것은 고인이 된 김정일 원수를 모독하는 뜻으로 보일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운좋게도 안내자와 잘 사귀어서  비밀리에 그가 묵었다는 방에서 하룻밤 보낼수 있었다.( 내생각으로는 뇌물을 주었을것 같다.)



여행회사에 여행비를 별도로 내고,  북한의 최 북동쪽에 있는, 숲으로 아름답게 우거진 칠보산 주위에 살고 있는 북한 주민들의 생활상을 볼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예측했던데로 각본에 짜여진 그런집에서 살고 있어서,  전기 울타리를 쳐놓은 리조트 밖에 있는 일반 주민들이 살고 있는 집들과는 완전히 다른 20여채의 집들이었다.  울타리 밖의 주택에사는 주민들 접촉시 이름도 묻지말고,  사진촬영도 허용이 안되는, 단지 어둠침침한 모습의 민가들이었고, 주민들은 인근의 시내물에서 빨래를 하고 있었다.   우리가 묵은 Homestay 리조트에서는 수도물이 나오고 전기도 들어와 거실에서는 TV를 시청할수 있었다.

그러나 칠보산 같은곳에서 Homestay를 하면 생각지도 않는 여러면을 만날수 있다.  관광객은 가이드나 보안원이 아닌 북한 주민들을 만날수 있을뿐만 아니라, 그들역시 Homestay마을을 상당히 자유롭게 오가고 있는것을 보는데,  이런 나라를 여행하는 방문객들은 집단버스나 또는항상 가이드가 옆에서 떠나지 않는 불편함이 따르는데, 신기할 정도로 자유스러워 보였다.

민박마을 밖을 넘어서는, 어쨋든간에, 절대로 안된다. 정문에서 검사원이 새벽부터 혹시 슬쩍 밖으로 나가는 관광객들이 있는지의 점검하고 있기 때문이다.



칠보산 민박촌에는 독재자의 나리임을 실감케하는것을 보게 된다. 내가 묵은 16호에는 죽은 김정일과 그의 아들 김정은의 초상화들이 방마다 붙어있는데, 이광경은 북한 전체 주민들의 집에서 보는것과 마찬가지였다.  여기서는 김정일의 또다른 사진이 눈길을 끄는데, 그는 그가항상 즐겨 입었던 카키색의 옷을 입고 내가 묵고 있는 16호 밖의 포장길을 걷고 그의 뒤에는 당간부들과 군장성들이 뒤따르고,   16호의 주인(?)은 식구들을 대동하고 그를 맞이하고 있는 모습이다.

지금은 성장하여 십대들이 되였버린 사진속에서의 아이들은 김정일의 방문을 쉽게 기억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하늘이 내려주신 기회나 마찬가지일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영어 몇마디를 섞어 가면서 김정일 원수가 이틀밤을 이곳의 이층방에서 머무셨다고 자랑스럽게 설명을 해주었다.  그가 묵은후로 그방에는 당시 그대로의 모습으로 지켜지고 있었다.  이광경을 보면서 1960년대에 북한전체가, 1948년 김씨왕조가 탄생한 그때로 부터 모든것이 얼어붙어 변화된것이 없이 그상태로 가난하게 모두가 살고 있었던 모습이 생각나게 했는데,  벽과 천장은 도배를 했고, 폴리에스터천으로 만든 커텐이 쳐져 있고, 화병에는 플라스틱꽃이 꽂여 있었다.  전기줄로 이어진  흰색커버의 선풍기가 있었다.  내모습을 보기위해 벽에 길게 걸린 거울을 보았다. 김정일의 기분을 내고 있는 내전체 모습을 보기에는 하나도 문제점이 없었다.  거울의 길이가 1.6미터나 됐기 때문이다.

국수와 생선튀김 그리고 김치로 점심을 마친후 북한 주민들이 많이 좋아하는 배구를 하기로 했다.  팀을 어떻게 짤것인가, 혹시 남 녀로 나누어볼까를를 논의하고 있었는데, 민박집 주인은 벌써 결정을 통보했다.  외국관객객팀과 주민들팀으로 나뉘었다. 관광객팀과 주민들과의 게임에서 관광객팀을 챙피할 정도로 깨지고 말았다. 이북주민들은 재빠르게 잘해냈다.



게임이 끝나자마자, 우람하게 생긴 주민 한명이 씨름을 하자고 제안했다. 약 40쯤 되여 보이는 미국인이 상대가 되여, 서로 인사를 정중히 하고 난다음, 상대방의 삽바를 잡고 게임을 시작되였다.  그들은 응원을 열심히 했고, 구경온 아이들은 서로를 밀쳐 내면서 좀더 좋은 위치에서 보려고 하는 장면도 있었다. 재미로 한다는것 보다는 그들은 자기네 선수들을 응원하는데 열중이었고, 우리는 미국인을 응원했다.  씨름은 팽팽했으나, 갑자기 북한측 선수가 미국선수를 모래바닥에 내동이치면서 끝나고 말았다.

우리 안내원들이 우리에게 이일을 주선한분들에게 조그만 선물을 해주면 좋겠다고 해서, 우린 마음이 내켜서 했다기 보다는 어쩔수 없이 스낵과 담배 그리고 쌀이나 보리 또는 밀로 빗은 소주를 구매해서 줬다.  해변가에서 캠프파이어 하면서 북한 노래를 부르면서 시간을 보낸후 잠자리에 들기전 한잔 하기위해 집으로 향했다.

온종일 우리를 시중 드느라 수고한 통역원에게 이제는 가도 된다고 해서 그를 먼저 보냈다. 지금 부터는 한국말 하는사람은 우리 구룹에는 아무도 없다.  우리는 손짖, 발짖으로 그곳 주민들과 의사소통을 하면서 웃기는 일도 많이 있었다. 민박집의 여인은 우리를 환영하면서 준비된 식탁으로 안내했다. 밥그릇과 소주잔을 꺼내 놓았다.  몇분후 그녀의 남편이 집에 도착하자 마자 12명의 관광객이 - 북한인도, 중국인도 아닌 - 리빙룸에 있는것을 보고 깜짝 놀란다.  우리가 소주병을 꺼내자 그는 병마개를 따고 밥그릇에 한잔 따르더니 단숨에 단 넘긴다. 그의 술실력을 잘한다고 치겨세워줬다. 그랬더니 한잔 더 마셨다. 그리고 또 한잔....
작은잔은 소주잔이 아니고 물잔이었음을 알게됐다.  흥미로운점이네.


Practicalities
Foreign travellers must arrange visits to the Mt Chilbo Homestay through a tour agency. Four tour groups that offer trips to the region also include stays at the homestay: Young Pioneer ToursBestway Tours and Safari,Uri Tours and Koryo Tours. Those who want to stay in Kim Jong-il’s bed should ask for House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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