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딱" 한번으로 2013년과 2014을 갈라놓은 소리 였다. 다른때의 똑딱 그소리는 아무런 의미를 모르고 한쪽 귀로 들어왔다 반대편 귀를 통해 지나쳤었다.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그순간의 똑딱 소리는 전연 다른 마치 생과 사를 가르는 깊고, 후회스럽다라는 의미가 깊은 음악소리같았다.
태평양 한가운데를 기준으로 북극점에서 부터 남극점까지 이어진 날자 변경선 서쪽 부터 시작되는 하루의 시작점에서 가까운곳에 있는 Australia에서 Fire Works로 새해를 맞이 하는 테이프를 끊은 것을 시발로 세계 각처의 새해맞이 축하연은 단연 화려한 불꽃 놀이들이었다.
새해 첫 머리기사에 올라온 북한 김정은의 고모부 장성택 처형에 대한 내용은, 새로운 소식이 아니지만 같은 내용이 또다시 첫머리 기사로 올라온 그의미를 잘 이해가 안된다.
CNN과 BBC인터넷의 머리기사가 똑같이 재탕과 같은 고모부처형기사였다. 왜 이들은 가슴아픈 그래서 다시 보기 원치 않은, 화려한 Fire Works로 신년맞이를 축하는 다른 뉴스 미디아들과는 전연 다른 처참한 기사를 내 보냈을까? 깊은 뜻이 내포되여 있겠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http://www.cnn.com/2013/12/31/world/asia/north-korea-kim-jong-un-speech/index.html?hpt=hp_t2
http://www.bbc.co.uk/news/world-asia-25565645
새해에는 나의 소망에 큰 의미를 두고 있지는 않다. 굳이 써 본다면 한반도의 좁은 남쪽에서 풍요하게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마음을 확트이게 하는 그런 경이로운, 믿기지 않을 사건이 일어나기를 염원해 본다. 다름 아닌 삼팔선이, 어떤 이유로든 남쪽의 젊은이들이 좁은 남쪽의 고속도로에서 달리지 못하고 답답해 한 가슴을 확 열어제치고 자동자의 핸들을 잡고 신나게 북쪽으로 달려 한패는 중국 대륙으로, 또 다른 부류는 시베리아 벌판을 달려 유럽까지 단숨에 달릴수 있도록 장막이 확터지는 기적아닌 기적이 일어나기를 빌어보는 것이 유일하다. 허락이 된다면 나도 그대열에 끼어서 달려 보기를 염원하는 바램이 가장 큰 소망이다. 바꾸어 애기하면 그져 주져 앉아 또 한해를 보낼수도 있다는 희망적이지 않은 소망일수도 있겠다.
어렷을적 기억이 하나 떠 오른다. 당시에는 모두가 음력설을 쇨때이다. 저녁 한밤중, 즉 새해 첫날, 설날이 가까워 오면 동네 어른들, 즉 청장년들께서는 동네 사랑방에 보관 하고 있던 농악놀이기구들( 징, 꾕과리, 장구, 북 등등)을 꺼내어, 머리에는 꽃갈을 쓰고 추운 동지섣달의 칼바람을 헤치면서, 동네 집집마다(약 30 가정) 들려서 신바람나게 두둘겨 패면서 집안의 잡귀를 몰아내고 새해에는 집안의 건강과 운수 대통을 빌어주는 굿판을 벌였었다. 농악놀이 소리를 그냥 지나칠리 없는, 나를 포함한 동네 꼬마들은 귀가 버쩍 뜨여 약속이라도 한듯이 굿판의 뒤를 졸졸 따라 다니면서 추위를 잊곤 했었다.
굿판의 맨 마지막에는 동네에서 당시에 비교적 밥굶지 않고 살고 있는 집에서 벌어졌었다. 추운데 수고 하셨다는 의미로 산해진미의 음식상( 그래야 안주상 정도 였었겠지만)이 준비 되여 있었고, 그럴때는 바늘과 실처럼, 막걸리가 곁들여져 어른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고 장시간 얼었던 몸을 녹혀주는 인심을 베풀곤 했었다. 꼬마들도 질세라 그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상위의 맛있는, 전같은 부침갱이를 넬름 집어 입으로 가져가곤 했었다.
그리고 굿판이 끝난후에는 꼬마들끼리 친구집에 몰려가, 뜬눈으로 밤을 지새곤 했었다. 섣달 그믐날 잠을 자면 눈섭이 하얗게 된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무서워, 끄름이 천장까지 닿을 정도인 호롱불빛 아래서 졸리는 눈을 비벼 대면서 지냈었다.
문명이 발달되고 더 살기 좋아졌다는 요즘에는 그런 인심이 묻어나는 시골 동네의 축제가 이어지고 있다는 소리를 들어본 기억이 없는것 같다. 어찌 보면 풍요속의 매마른 삶의 한 증거이기도 하리라.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를 새해를 맞이 하면서 많이 느낀다. 이곳 내가 살고 있는 곳의 TV들은 신년을 맞이 하는 축하행사 또는 연예인들이 중심이 되여 만들어지는 축하 프로그람이 전연 없다. 반대로 고국의 방송사들은 연기 대상 축하 행사가 화려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오직 CNN만이 뉴욕의 맨허탄에서 벌어지고 있는 신년 맞이 축하행사가 Live로 생중계 되는게 고작인것 같다.
시계는 벌써 새벽 1시 20분을 가리키고 있다. 12시간 후에는 나의 분신인 두아이들과 소원 성취를 빌어보는 뜻에서 떡국을 먹는것으로 신년 첫날은 그렇게 보낼 것이다. 그래도 바쁘게 살아가는 아이들이 시간을 내어 세배를 온다는것에 내심 반갑게만 느껴진다.
어렷을적 New Year's Eve 에 벌어졌던 인심이 묻어나는 아름다운 농악놀이에 대한 설명을 해본들 장성한 아이들이 그내용을 머리속에 상상하면서 이해하기를 바란다는것은 너무나 큰 무리인것 같다. 괜한 나의 욕심이겠지?
온타리오 호수의 차거운 물을 박차고 솟아오르는 새해 첫 해돋이는, 절반은 구름에 가려 내가 원하는 장면을 담을수는 없었다. 아쉽고 왜?라는 의문이 가슴속에 일어나기 시작 했었다. 그러나 이것 또한 나의 부질없는 욕심(?)임을 금방 깨닫고, 새해 첫날을 무사히 밝혀 주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다시 한번 칫솟는 해를 바라보았다. 이순간만은 TV도 켜 놓지 않았었다.
태평양 한가운데를 기준으로 북극점에서 부터 남극점까지 이어진 날자 변경선 서쪽 부터 시작되는 하루의 시작점에서 가까운곳에 있는 Australia에서 Fire Works로 새해를 맞이 하는 테이프를 끊은 것을 시발로 세계 각처의 새해맞이 축하연은 단연 화려한 불꽃 놀이들이었다.
새해 첫 머리기사에 올라온 북한 김정은의 고모부 장성택 처형에 대한 내용은, 새로운 소식이 아니지만 같은 내용이 또다시 첫머리 기사로 올라온 그의미를 잘 이해가 안된다.
CNN과 BBC인터넷의 머리기사가 똑같이 재탕과 같은 고모부처형기사였다. 왜 이들은 가슴아픈 그래서 다시 보기 원치 않은, 화려한 Fire Works로 신년맞이를 축하는 다른 뉴스 미디아들과는 전연 다른 처참한 기사를 내 보냈을까? 깊은 뜻이 내포되여 있겠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http://www.cnn.com/2013/12/31/world/asia/north-korea-kim-jong-un-speech/index.html?hpt=hp_t2
http://www.bbc.co.uk/news/world-asia-25565645
새해에는 나의 소망에 큰 의미를 두고 있지는 않다. 굳이 써 본다면 한반도의 좁은 남쪽에서 풍요하게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마음을 확트이게 하는 그런 경이로운, 믿기지 않을 사건이 일어나기를 염원해 본다. 다름 아닌 삼팔선이, 어떤 이유로든 남쪽의 젊은이들이 좁은 남쪽의 고속도로에서 달리지 못하고 답답해 한 가슴을 확 열어제치고 자동자의 핸들을 잡고 신나게 북쪽으로 달려 한패는 중국 대륙으로, 또 다른 부류는 시베리아 벌판을 달려 유럽까지 단숨에 달릴수 있도록 장막이 확터지는 기적아닌 기적이 일어나기를 빌어보는 것이 유일하다. 허락이 된다면 나도 그대열에 끼어서 달려 보기를 염원하는 바램이 가장 큰 소망이다. 바꾸어 애기하면 그져 주져 앉아 또 한해를 보낼수도 있다는 희망적이지 않은 소망일수도 있겠다.
어렷을적 기억이 하나 떠 오른다. 당시에는 모두가 음력설을 쇨때이다. 저녁 한밤중, 즉 새해 첫날, 설날이 가까워 오면 동네 어른들, 즉 청장년들께서는 동네 사랑방에 보관 하고 있던 농악놀이기구들( 징, 꾕과리, 장구, 북 등등)을 꺼내어, 머리에는 꽃갈을 쓰고 추운 동지섣달의 칼바람을 헤치면서, 동네 집집마다(약 30 가정) 들려서 신바람나게 두둘겨 패면서 집안의 잡귀를 몰아내고 새해에는 집안의 건강과 운수 대통을 빌어주는 굿판을 벌였었다. 농악놀이 소리를 그냥 지나칠리 없는, 나를 포함한 동네 꼬마들은 귀가 버쩍 뜨여 약속이라도 한듯이 굿판의 뒤를 졸졸 따라 다니면서 추위를 잊곤 했었다.
굿판의 맨 마지막에는 동네에서 당시에 비교적 밥굶지 않고 살고 있는 집에서 벌어졌었다. 추운데 수고 하셨다는 의미로 산해진미의 음식상( 그래야 안주상 정도 였었겠지만)이 준비 되여 있었고, 그럴때는 바늘과 실처럼, 막걸리가 곁들여져 어른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고 장시간 얼었던 몸을 녹혀주는 인심을 베풀곤 했었다. 꼬마들도 질세라 그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상위의 맛있는, 전같은 부침갱이를 넬름 집어 입으로 가져가곤 했었다.
그리고 굿판이 끝난후에는 꼬마들끼리 친구집에 몰려가, 뜬눈으로 밤을 지새곤 했었다. 섣달 그믐날 잠을 자면 눈섭이 하얗게 된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무서워, 끄름이 천장까지 닿을 정도인 호롱불빛 아래서 졸리는 눈을 비벼 대면서 지냈었다.
문명이 발달되고 더 살기 좋아졌다는 요즘에는 그런 인심이 묻어나는 시골 동네의 축제가 이어지고 있다는 소리를 들어본 기억이 없는것 같다. 어찌 보면 풍요속의 매마른 삶의 한 증거이기도 하리라.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를 새해를 맞이 하면서 많이 느낀다. 이곳 내가 살고 있는 곳의 TV들은 신년을 맞이 하는 축하행사 또는 연예인들이 중심이 되여 만들어지는 축하 프로그람이 전연 없다. 반대로 고국의 방송사들은 연기 대상 축하 행사가 화려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오직 CNN만이 뉴욕의 맨허탄에서 벌어지고 있는 신년 맞이 축하행사가 Live로 생중계 되는게 고작인것 같다.
시계는 벌써 새벽 1시 20분을 가리키고 있다. 12시간 후에는 나의 분신인 두아이들과 소원 성취를 빌어보는 뜻에서 떡국을 먹는것으로 신년 첫날은 그렇게 보낼 것이다. 그래도 바쁘게 살아가는 아이들이 시간을 내어 세배를 온다는것에 내심 반갑게만 느껴진다.
어렷을적 New Year's Eve 에 벌어졌던 인심이 묻어나는 아름다운 농악놀이에 대한 설명을 해본들 장성한 아이들이 그내용을 머리속에 상상하면서 이해하기를 바란다는것은 너무나 큰 무리인것 같다. 괜한 나의 욕심이겠지?
온타리오 호수의 차거운 물을 박차고 솟아오르는 새해 첫 해돋이는, 절반은 구름에 가려 내가 원하는 장면을 담을수는 없었다. 아쉽고 왜?라는 의문이 가슴속에 일어나기 시작 했었다. 그러나 이것 또한 나의 부질없는 욕심(?)임을 금방 깨닫고, 새해 첫날을 무사히 밝혀 주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다시 한번 칫솟는 해를 바라보았다. 이순간만은 TV도 켜 놓지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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