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terans of Forgotten Korean War honoured
2013년에서 1953년을 Subtract하면 정확히 60년이 된다. 7월27일을 기준으로하면 정확히 한국전쟁이 총성을 멈추고 휴전에 들어간 그날로 부터 60주년이 지났다는 슬픈 얘기이다.
참전 16개국중에서 유난히도 미국과 캐나다에서 참전용사들에 대한 뒤늦은 Respect와 Honour를 정부중심으로, 특히 정전 60주년을 크게 Event화 해서 애도의 뜻을 기리는 것 같다.
세월이 무심코 쉬지 않고 흘러감에 용맹을 떨쳤던 그젊은 병사들이 노인이 되고, 또 생을 마감하고 이제는 eternal life가 있는 곳으로 가버림으로서, 생존자들의 숫자가 눈에 띄게 줄어듬을 깊이 깨달았기에, 살아있는 동안에 그들에게 한번이라도 더 자유수호의 공로를 치하 해 드리고 싶은 안타까움이 보은의 잔치 그뒤에 있음도 읽을수 있을것 같다.
세월이 무심코 쉬지 않고 흘러감에 용맹을 떨쳤던 그젊은 병사들이 노인이 되고, 또 생을 마감하고 이제는 eternal life가 있는 곳으로 가버림으로서, 생존자들의 숫자가 눈에 띄게 줄어듬을 깊이 깨달았기에, 살아있는 동안에 그들에게 한번이라도 더 자유수호의 공로를 치하 해 드리고 싶은 안타까움이 보은의 잔치 그뒤에 있음도 읽을수 있을것 같다.
미국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중 처음으로 이번 추모식에 참석했었고, 캐나다 또한 많은 참전용사들에 대한 대접과 생계면에서도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흔히들 한국전쟁을 "잊혀진 전쟁" 이라고 불려지고 있고, 그잊혀진 전쟁이 다시 사람들의 기억에 떠올려져 처참했던 전쟁을 세상에 알리고, 당사자였던 조국 대한민국과 침략자였던 북한의 잔인했던 그순간들을 뇌리에서 떠올리게 한데는 조국 대한민국의 경제적 위상과 국제정치무대에서의 활동이 Motive가 됐다고 생각된다. 만약에 조국 대한민국도 이북처럼 가난뱅이로 살아가고 있는 미개국으로 남아 있다면, 한국전쟁은 영원히 잊혀진 전쟁으로 인류의 뇌리에서 사라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참전용사분들의 노고 또한 같이 묻히고 말았을 것이다.
많은 북미대륙의 언론들은 한국이 전쟁의 참상에서 남은것은 혈육을 잃어버린 슬픔과 잿더미 밖에 없었는데, 그위에서 다시 팔을 걷어 부치고 한손에는 북한의 재침을 막기위해 총칼을 들었고, 다른 한손으로는 삽과 괭이를 들어 주야로 건설의 현장에서 피땀흘려 오늘의 잘사는 조국이 있게 한 Foundation을 놓은 선배 동료들의 헌신으로 잘살게 되면서, 그동안 잊고 지냈던 한국전 참정용사들에 대한 보은을 베풀기 시작하면서 "잊혀진 전쟁"이 아니고 아직도 갈길이 멀다라는, 그래서 참전용사분들의 노고에 더 감사함을, 조금이라도 보답코져 전쟁을 치렀던 현장으로 그분들을 초대하여 고마움을 표시하고, 그들이 다시 자기네 나라로 되돌아와 "목숨걸고 한국전에 참전했음이 헛되이 되지 않았음" 알리게 되면서 그동안 가려져 있던 Korean War가 햇볕을 보면서 그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고 그들의 이름이 우뚝 서게됨을 자랑스러워 한것으로 이해된다.
내가 Summer Residence로 거쳐하고 있는 이곳 Brighton에서 주간지로 발간되는 The Community Press지에 "Forgotten War veterans receive honours"라는 제목으로 Belleville지역을 중심으로 거주하고 있는 참전용사분들이 "참전증서"를 캐나다 정부로 부터 수여받고 감개무량한 느낌들을 인터뷰에서 나타낸 내용들이 가슴에 와 닿았다.
어떤분들은 모병당시 만약에 한국전에 참전하는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지 않았을 것이다. 또 어떤분은 당시 17세로 아동보호소에서 거주하고 있었는데, 한국전에 참전하기위해서는 아직 미성년자이기에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집을 뛰쳐나온 잘못때문에 대신 모병관이 Guardian의 자격으로 서명을 해서 참전했었다는 얘기도 있었다.
어떤분은 조국대한민국을 방문하여 잘사는 그들을 보면서 자랑스러웠으나, 반대로 지금도 기아선상에서 헤매고 있는 북한을 생각할때는 별로 마음이 편지 않다는 얘기도 했다. 전쟁중에는 서로 먼저 죽여야 살아남는 생지옥이었지만, 이제 생을 마감할 황혼기에 접어들어서는 과거는 묻어두고, 현재의 삶의 질에 더 걱정을 하는 인간 본성을 그들에게서 본다.
고국정부의 참전용사들에 대한 보은은 정말로 참 잘하는 행사중의 행사인것 같다. 이런 값있고 영원히 기억될 잔치에 정치꾼들 특히 야당 정치꾼들이 참석하여 그분들의 노고를 칭찬해 주었다는 뉴스는 아직 접하지 못했다. 그들이 마음데로 떠들어 댈수 있는 분위기와 자유를 어떻게 얻었는가를 생각할수 있는 자질이 있는 정치꾼들이라면, 누가 뭐래도 그 현장의 중앙에 서 있어서 같이 어울려 감사의 표시를 했어야 했다. 국민의 혈세만 축내는 버러지 같은 시정잡배만도 못하는, 입만 열면 국민들을 위하는척 해대는 사이비 인간들......
금년의 보은 행사에 "잊혀진 전쟁"이었기에 참석못했었다라고 핑계를 대는것 자체가 챙피한 일이니, 내년에라도 행사주관 부처와 협조하여 참석하면 정말로 주최측이나 초청받은 측이나 웃음이 끝이지 않게 되는 멋진, 그래서 그분들이 Eternal life를 찾아 이승을 떠나면서도 마음 가벼울 것이다. 더 늦기전에.... 내년의 보은 행사참석을 위해 준비해 보시기를 권하고 싶다. 이제 몇분 안남은 그분들 마져 우리 곁을 떠나기전에......
금년 3월달에 아프리카 애티오피아라는 나라를 한달간 여행 했었다.
수도 아디스아바바의 시내에 한국전 참전용사의 묘역이 조성되여 있었다. 2006년도에 고국의 보훈처에서 예산을 들여 조성해 놓은 것이라고 설명되여 있었다.
관리인이 상주하지 않아 관람하면서 무척 안타까움을 느꼈었다. 따라서 방명록도 비치되여 있지 않았었다. 관광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이묘역이 조성된후로 Korean 이 방문한것은 우리 부부가 처음일것이라는 설명을 해준 기억이 난다. 애티오피아의 참전용사분들은 거의다 이세상을 떠났고, 몇명 안남았는데 살기가 어렵다고 했다. 이번 60주년 행사에 대한 뉴스를 접하면서 고국에서의 참전용사에 대한 보은 행사가 혹시라도 한쪽으로만 기울어져 있는게 아닐까?라는 염려를 해본다. 보은 잔치에서의 사진을 보면 거의가 다 북미에서온 분들만 보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지역신문의 기사내용을 옮겨 싣는다. 그런데 기사를 쓴 기자분이 조금 실수를 한것 같다. 휴전 협정은 유엔군과 북한군 사이에 이루어 졌는데, 남한과 북한측이 서명 했다고 기술했다. 기회가 되면 그에게 연락해서 바로 알려 주어야 겠다.
Veterans of “the forgotten war” received honours Saturday for their role in six decades of relative peace between North and South Korea.
흔히들 한국전쟁을 "잊혀진 전쟁" 이라고 불려지고 있고, 그잊혀진 전쟁이 다시 사람들의 기억에 떠올려져 처참했던 전쟁을 세상에 알리고, 당사자였던 조국 대한민국과 침략자였던 북한의 잔인했던 그순간들을 뇌리에서 떠올리게 한데는 조국 대한민국의 경제적 위상과 국제정치무대에서의 활동이 Motive가 됐다고 생각된다. 만약에 조국 대한민국도 이북처럼 가난뱅이로 살아가고 있는 미개국으로 남아 있다면, 한국전쟁은 영원히 잊혀진 전쟁으로 인류의 뇌리에서 사라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참전용사분들의 노고 또한 같이 묻히고 말았을 것이다.
많은 북미대륙의 언론들은 한국이 전쟁의 참상에서 남은것은 혈육을 잃어버린 슬픔과 잿더미 밖에 없었는데, 그위에서 다시 팔을 걷어 부치고 한손에는 북한의 재침을 막기위해 총칼을 들었고, 다른 한손으로는 삽과 괭이를 들어 주야로 건설의 현장에서 피땀흘려 오늘의 잘사는 조국이 있게 한 Foundation을 놓은 선배 동료들의 헌신으로 잘살게 되면서, 그동안 잊고 지냈던 한국전 참정용사들에 대한 보은을 베풀기 시작하면서 "잊혀진 전쟁"이 아니고 아직도 갈길이 멀다라는, 그래서 참전용사분들의 노고에 더 감사함을, 조금이라도 보답코져 전쟁을 치렀던 현장으로 그분들을 초대하여 고마움을 표시하고, 그들이 다시 자기네 나라로 되돌아와 "목숨걸고 한국전에 참전했음이 헛되이 되지 않았음" 알리게 되면서 그동안 가려져 있던 Korean War가 햇볕을 보면서 그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고 그들의 이름이 우뚝 서게됨을 자랑스러워 한것으로 이해된다.
내가 Summer Residence로 거쳐하고 있는 이곳 Brighton에서 주간지로 발간되는 The Community Press지에 "Forgotten War veterans receive honours"라는 제목으로 Belleville지역을 중심으로 거주하고 있는 참전용사분들이 "참전증서"를 캐나다 정부로 부터 수여받고 감개무량한 느낌들을 인터뷰에서 나타낸 내용들이 가슴에 와 닿았다.
어떤분들은 모병당시 만약에 한국전에 참전하는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지 않았을 것이다. 또 어떤분은 당시 17세로 아동보호소에서 거주하고 있었는데, 한국전에 참전하기위해서는 아직 미성년자이기에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집을 뛰쳐나온 잘못때문에 대신 모병관이 Guardian의 자격으로 서명을 해서 참전했었다는 얘기도 있었다.
어떤분은 조국대한민국을 방문하여 잘사는 그들을 보면서 자랑스러웠으나, 반대로 지금도 기아선상에서 헤매고 있는 북한을 생각할때는 별로 마음이 편지 않다는 얘기도 했다. 전쟁중에는 서로 먼저 죽여야 살아남는 생지옥이었지만, 이제 생을 마감할 황혼기에 접어들어서는 과거는 묻어두고, 현재의 삶의 질에 더 걱정을 하는 인간 본성을 그들에게서 본다.
고국정부의 참전용사들에 대한 보은은 정말로 참 잘하는 행사중의 행사인것 같다. 이런 값있고 영원히 기억될 잔치에 정치꾼들 특히 야당 정치꾼들이 참석하여 그분들의 노고를 칭찬해 주었다는 뉴스는 아직 접하지 못했다. 그들이 마음데로 떠들어 댈수 있는 분위기와 자유를 어떻게 얻었는가를 생각할수 있는 자질이 있는 정치꾼들이라면, 누가 뭐래도 그 현장의 중앙에 서 있어서 같이 어울려 감사의 표시를 했어야 했다. 국민의 혈세만 축내는 버러지 같은 시정잡배만도 못하는, 입만 열면 국민들을 위하는척 해대는 사이비 인간들......
금년의 보은 행사에 "잊혀진 전쟁"이었기에 참석못했었다라고 핑계를 대는것 자체가 챙피한 일이니, 내년에라도 행사주관 부처와 협조하여 참석하면 정말로 주최측이나 초청받은 측이나 웃음이 끝이지 않게 되는 멋진, 그래서 그분들이 Eternal life를 찾아 이승을 떠나면서도 마음 가벼울 것이다. 더 늦기전에.... 내년의 보은 행사참석을 위해 준비해 보시기를 권하고 싶다. 이제 몇분 안남은 그분들 마져 우리 곁을 떠나기전에......
금년 3월달에 아프리카 애티오피아라는 나라를 한달간 여행 했었다.
수도 아디스아바바의 시내에 한국전 참전용사의 묘역이 조성되여 있었다. 2006년도에 고국의 보훈처에서 예산을 들여 조성해 놓은 것이라고 설명되여 있었다.
관리인이 상주하지 않아 관람하면서 무척 안타까움을 느꼈었다. 따라서 방명록도 비치되여 있지 않았었다. 관광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이묘역이 조성된후로 Korean 이 방문한것은 우리 부부가 처음일것이라는 설명을 해준 기억이 난다. 애티오피아의 참전용사분들은 거의다 이세상을 떠났고, 몇명 안남았는데 살기가 어렵다고 했다. 이번 60주년 행사에 대한 뉴스를 접하면서 고국에서의 참전용사에 대한 보은 행사가 혹시라도 한쪽으로만 기울어져 있는게 아닐까?라는 염려를 해본다. 보은 잔치에서의 사진을 보면 거의가 다 북미에서온 분들만 보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지역신문의 기사내용을 옮겨 싣는다. 그런데 기사를 쓴 기자분이 조금 실수를 한것 같다. 휴전 협정은 유엔군과 북한군 사이에 이루어 졌는데, 남한과 북한측이 서명 했다고 기술했다. 기회가 되면 그에게 연락해서 바로 알려 주어야 겠다.
Veterans of “the forgotten war” received honours Saturday for their role in six decades of relative peace between North and South Korea.
The reception at Belleville's Royal Canadian Legion Branch 99
happened 60 years to the day that South and North Korean officials
signed a cease-fire agreement.
But the war never really ended: the two countries have fired upon each other periodically and the North continues to make threats against its southern adversary and western powers.
This is Canada's Year of the Korean War Veteran.
Legion life member Joe Drummond, who organized Saturday's reception, said the branch has “never done anything other than at Remembrance Day” to honour those who fought in Korea.
“It's a long time ago and it's easy to forget,” Drummond said, adding he hoped marking the anniversary would keep the war in the public consciousness.
Drummond applied for federal certificates of recognition for about a dozen local veterans.
“We were all volunteers and the Americans couldn't believe that,” said Marcel Bourgoin, who lost two comrades and suffered two machine-gun bullet wounds to his leg during one assault.
Belleville's Walter Mudd enlisted in December 1951. He said veterans like him now receive “more recognition than we got in the last 50 years.
“From the get-go we always felt we were left out.
“I was only 17,” he said. “Growing up in the Children's Aid, I couldn't get my parents' permission.
“The enlisting officer signed me up – as my guardian,” he said with a laugh.
“If I'd known what I was going into I might've backed out.”
Mudd was a cook in the Royal Canadian Army Service Corps and later attached to the Royal Canadian Regiment.
He recalled working near the front line and hearing an incoming mortar round.
“I thought, 'That's getting awful close. So I moved, and where my feet had been standing in the sand is where the dud landed.”
Tweed native Edmund Davis also had a very close call with mortar fire.
He was a radar operator aboard the destroyer HMCS Iroquois as it bombarded shoreline positions.
“I was volunteered,” he said. Davis enlisted in October 1949 – before the war.
In August of 1952, a mortar blasted through the ship not far from his station, knocking him unconscious.
“It went right through the operations room, through the petty officers' mess and hit the B gun,” Davis said, referring to the second gun from the bow. Seven men died.
“One of my best friends, Lt.-Cmdr. Mike Quinlan, was completely gone. He was an old Madoc boy.
“It changed things completely for everyone on board. We weren't as gung-ho after that,” said Davis.
Davis said he's glad South Koreans have recovered, but “I feel sorry for the North Koreans.”
John McIntyre was a 19-year-old farm boy from Ameliasburgh when he enlisted July 1, 1952.
He said he was looking for “adventure” but found “hell.”
Assigned to The Royal Canadian Regiment's 3rd Battalion, he fought Chinese and North Korean troops in a static position near the 38th parallel.
“The thing that got me was the devastation war causes ... The poor civilians – they're the ones that take a s---kickin'.
“Canadians were there to stop the progression of communism,” McIntyre said.
McIntyre said veterans are recognized but he also finds happiness in the prosperity of South Korea, which he visited three years ago.
“You've got to take your hat off to those people,” he said. “In 60 years they've come from poverty to wealth.”
Prince Edward-Hastings MP Daryl Kramp and Andy Anderson, president of both Legion Branch 99 and the Belleville Veterans Council, presented Saturday's certificates.
“We thank you. The world thanks you,” Kramp said.
He described standing in a building in the demilitarized zone between North and South Korea. A glass wall marked the border; a North Korean sentry stood on the other side.
“When I stood and looked into the eyes of the sentry ... I looked into nothing,” he said. “There was no expression of humanity.”
McIntyre said he's never felt forgotten as a veteran but the government terminology contributed to a lack of recognition of the war and those who were involved.
McIntyre noted it started in 1950, five years after the end of the Second World War – and after conscription had ended. Canada needed volunteers.
“If they called it a war, they'd get nobody to go. So they called it a police action.
“War is hell, no matter how you fight it.”
But the war never really ended: the two countries have fired upon each other periodically and the North continues to make threats against its southern adversary and western powers.
This is Canada's Year of the Korean War Veteran.
Legion life member Joe Drummond, who organized Saturday's reception, said the branch has “never done anything other than at Remembrance Day” to honour those who fought in Korea.
“It's a long time ago and it's easy to forget,” Drummond said, adding he hoped marking the anniversary would keep the war in the public consciousness.
Drummond applied for federal certificates of recognition for about a dozen local veterans.
“We were all volunteers and the Americans couldn't believe that,” said Marcel Bourgoin, who lost two comrades and suffered two machine-gun bullet wounds to his leg during one assault.
Belleville's Walter Mudd enlisted in December 1951. He said veterans like him now receive “more recognition than we got in the last 50 years.
“From the get-go we always felt we were left out.
“I was only 17,” he said. “Growing up in the Children's Aid, I couldn't get my parents' permission.
“The enlisting officer signed me up – as my guardian,” he said with a laugh.
“If I'd known what I was going into I might've backed out.”
Mudd was a cook in the Royal Canadian Army Service Corps and later attached to the Royal Canadian Regiment.
He recalled working near the front line and hearing an incoming mortar round.
“I thought, 'That's getting awful close. So I moved, and where my feet had been standing in the sand is where the dud landed.”
Tweed native Edmund Davis also had a very close call with mortar fire.
He was a radar operator aboard the destroyer HMCS Iroquois as it bombarded shoreline positions.
“I was volunteered,” he said. Davis enlisted in October 1949 – before the war.
In August of 1952, a mortar blasted through the ship not far from his station, knocking him unconscious.
“It went right through the operations room, through the petty officers' mess and hit the B gun,” Davis said, referring to the second gun from the bow. Seven men died.
“One of my best friends, Lt.-Cmdr. Mike Quinlan, was completely gone. He was an old Madoc boy.
“It changed things completely for everyone on board. We weren't as gung-ho after that,” said Davis.
Davis said he's glad South Koreans have recovered, but “I feel sorry for the North Koreans.”
John McIntyre was a 19-year-old farm boy from Ameliasburgh when he enlisted July 1, 1952.
He said he was looking for “adventure” but found “hell.”
Assigned to The Royal Canadian Regiment's 3rd Battalion, he fought Chinese and North Korean troops in a static position near the 38th parallel.
“The thing that got me was the devastation war causes ... The poor civilians – they're the ones that take a s---kickin'.
“Canadians were there to stop the progression of communism,” McIntyre said.
McIntyre said veterans are recognized but he also finds happiness in the prosperity of South Korea, which he visited three years ago.
“You've got to take your hat off to those people,” he said. “In 60 years they've come from poverty to wealth.”
Prince Edward-Hastings MP Daryl Kramp and Andy Anderson, president of both Legion Branch 99 and the Belleville Veterans Council, presented Saturday's certificates.
“We thank you. The world thanks you,” Kramp said.
He described standing in a building in the demilitarized zone between North and South Korea. A glass wall marked the border; a North Korean sentry stood on the other side.
“When I stood and looked into the eyes of the sentry ... I looked into nothing,” he said. “There was no expression of humanity.”
McIntyre said he's never felt forgotten as a veteran but the government terminology contributed to a lack of recognition of the war and those who were involved.
McIntyre noted it started in 1950, five years after the end of the Second World War – and after conscription had ended. Canada needed volunteers.
“If they called it a war, they'd get nobody to go. So they called it a police action.
“War is hell, no matter how you fight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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