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March 28, 2013

Ethiopia,Africa, 3월5일 (화요일 오전) Rock Hewn 교회 : 2nd Group Church in Lalibela



3월5일 (화요일 오전) Rock Hewn 교회 : 2nd Group Church역시 호텔에서 불과 차로 15분 정도 걸렸다.

첫번째,두번째로 우리를 맞이하는 교회는 역시 바위를 깍아 세운, Raphael church와 Gabriel Church가 나란히 벽을 사이에 두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런 엄청난 건설작업을 그것도 하나가 아니고 11개의 교회를 23년 동안에 했다니…  이두교회에는 또지하 턴넬이 있다고 설명은 해주고 있으나 접근은 허용 안된, 일종의 비밀이라고 하는데, 아직도 미스터리라고 한다. Priest도 모른다니……교회안의 장식은 이미 탐방한 다른 교회와 비슷했다.

Second group of Churches that were same structures compared with first group contains 5 rock-hewn churches. Among them churches named as Raphael and Gabriel were looks like combined as one church building if I didn't meet wall which divides into two.




구경을 마치고 공항으로 달리면서 많은 사람들이 흰천으로 온몸을 휘감고 모여서 의식을 하는것을 보았다. 이곳 주민의 주검을 두고 예배를 드리는 것이라고 한다. 장례의식은 보통 10여일 진행되는데, 매장후에 며칠을 동네 친지,가족들이 모여서 Orthodox 기독교 의식으로 진행한다고 한다.  무덤의 봉분은 신기하게도 돌로 단단히 쌓여져 있는것 몇개를 봤다. 봉분을 돌로 쌓기까지는 많은 경제적 부담이 들텐데…..언뜻 이해가 되지안는다.









관람객은 절대로, 한국에서 옛날에 많이 사용했던 "뒤주"같은 나무 궤짝은 안을 들여다 볼수 없는, 보물같은 존재였지만, 그들의 말로는 일종의 언약궤라고 설명을 해주었다.  그러나 나라가  가난하여서인지 관리상태는 거의 없이, 나무상자는 관리가안돼 거의 망가진 상태였 으나, 자물통은 잠겨져 있었고, 그주위의 청결상태는 그림에서 보는것 처럼, 허술하기 이를데 없었다.








세번째 교회는  Bethlehem Church라고 했는데, 예배를 드리는 교회라기 보다는 공동으로 애티오피아인들의 주음식인 Ingera를 공동으로 만들어서 Orthodox식 세례를 할때 이용했던, 일종의 Furnace역활을 했다고 한다. 멀리서만 보고 지나쳤다. 바쁜 일정에 그곳까지 가서 볼만한 의미가 없다는식의 설명이다.

네번째 교회는 임마누엘 교회로 규모가 큰 교회건물같다. 지붕이 더 산화 부식되는것을 막기위해 UNSCO에서 지붕을 만들어 씌어 비바람과 풍화작용의 영향을 덜 받도록 해 놓았다. 경관을 망친셈이지만, 보호하기위해서라니, 한번 지나가는 구경꾼들이 뭐라 할말이 있겠는가?. 교회 Worshiping Hall 앞의 Altar뒤켠에는 커텐으로 가리워져 있다. 그곳에는 성십자가(Holy Cross)가 모셔져 있단다. 다만 예배드리는 본당에는 4개의 기둥이 지붕을 바치고 있다. 일요일에만 교인들에게 열람이 가능하다고 한다. 가는곳마다 관람객을 기다리고 맞은 Priest가 구경꾼이 나가면 바로 따라나와 문을 잠근다.  그들도 지겨울것이다. 어두컴컴한 바위속에서 계속 있을려니……

다섯번째 교회는 "마르코리우스"라고 명명되여 있다.  이교회건물은 Lalibella에서는 두번째로 큰 교회라고 한다. 이교회는 Lalibella왕이 동로마제국의 왕 마르코리우스에게 헌납하기위해 지은 바위교회라고 한다.  기독교를 박해했던 로만제국의 왕들과는 달리, 마르코리우스왕은 시민들에게 기독교의 믿음을 허락하는 최초의 왕이 었기에 그럴만도 하겠다 싶었다.

교회안의 여러개 벽화중에서 유독히 눈에 띄는 것은 로마병정이 말을 타고 창으로 사람을 찍어 죽이는 모습이다. 창에 맞은 사람은, 기독교인들을 핍박했던  로만제국(Roman Empire)의 여러왕들중에 한명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호텔에서 여기까지 오는길은 포장이 잘되여 있는데, 아스팔트 포장이 아니고 돌을 쪼아 맟춘 세련된 포장이다. 이것을 보면 옛날 왕조의 융성했음을 이해 할것도 같지만 지금의 이곳 Lalibella는 너무도 열악한 주거환경인것 같다.





Orthodox Church Worshiping은 오늘날의 기독교와 뿌리가 같다고 하지만, 그들의 Worshiping 의식은 기독교 예배방식이라기 보다는, 이슬람 예배의식에 가깝다는 면을 확실히 느꼈었다.





무덤의 봉분은 신기하게도 돌로 단단히 쌓여져 있는것 몇개를 봤다. 봉분을 돌로 쌓기까지는 많은 경제적 부담이 들텐데…..언뜻 이해가 되지안는다.



Tour Guide와 조그만 차질이 있어, 어제 오후에 관람하게될 2nd Group Church관람을 아침에 바삐 한것이다. 아침 10시 50분에 출발하는 Gondar행 비행기를 타기전에 서둘러서 구경을 한것이다.

Gondar공항에 12시경에 도착했었다. Tour Guide와 Driver가 자기를 소개한다. 가이드는 요하네스(Johanese), 운전수는 알렉스(Alex)다.





차에 오르자마자 Gondar에 대한 설명을 한다. 셀라시에 황제를 몰아낸 공산 독재자 Mangasutu집권 17년 동안의 정치적 암흑 시기에 애티오피아의 시민 약 백만명 정도가 처형된것으로 추측만 할뿐 정확한 숫자는 아직도 모른단다. 소위 말해서 먹물먹은사람들 부터 처단했다고 한다.  그래서 언제 당할지 모르는 공포에 떨던 많은 주민들이 이웃나라 수단으로 도망쳐서, 그곳에서 다시 유럽이나 북미로 이민을 갔는데, 그사람들중에서 북미로 간 피난민들이 열심히 일하여, 돈을 모아 이곳의 친척, 가족들에게 경제적으로 도와주는데, 이곳에서 도움을 받고 있는 사람들은 그들이 고생해서 보내준 그고마움을 잊으채 게으르게 살고 있다고 한탄이다.  우리한인들의 캐나다 이민초기에 잠시 혼돈됐던 그시기가 Overlap된다.

Gondar는 애티오피아의 3번째 수도 였었단다.  이곳은 Godar 대학이 유명하고, 도시도 Axum, Lalibella에서 처럼 도시계획없이 엉켜서 살다가 커진 도시가 아닌, 비교적 정돈이 된것 같았고, 도시의 길도 거의다 포장되여 있어 우선 먼지가 덜나서 숨쉬기가 쉬웠다.

Mangasutu의 공산정권 관리들은, 시체를 찾으러온 가족 또는 친지들이 허가없이 옮기려 하면 이유를 묻지도 않고 또사살했었다고 한다. 그리고 가족이나 친척이 통보를 받고 시신을 수습하러가면, 사살하는데 소요된 총알값을 거두어 가는 짐승만도 못한 악질 정권이었었다고 하면서, 가이드의 아버지는 현재 59세인데 그역시 젊었을때 무진 고난을 당해 온몸이 흉터 투성이라고 안타까워 한다. 그래도 자기아버지는 살아 남아서 행운이라고 웃는다. 독재자나 공산정권의 말로는 대부분 비슷하게 망하게되는것을 여기서도 본다. 반란군 소위 말해서 시민군들이 여러곳에서 의병처럼 일어나서 결국 Mangasutu를 포함한 Regime을 무너 뜨렸는데, 지금 앞서도 얘기 했지만, Mangasutu는 옆나라 "짐바붸"로 피신하여 현재그곳에서 여생을 살고 있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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