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September 09, 2011

추석명절은 다가오고...공허함은 늘어만 가고...



추석중추 가절은 내일 모레인것 같은데....(9월 9일, 2011)

정확히 내일인지 모레인지는 나도 잘 모른다. 어젯밤 같은 콘도에 사는 친지와 같이 온타리오 호숫가의 벤치에 앉아 하늘에 높이 떠 있는 거의 만월에 가까운 달을 보면서, 무심히 저속에 있는 계수나무는 잘 자라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인터넷으로 고국의 소식을 접하면서, 추석명절에 고속도로가 막힌다느니, 시장 보기가 어렵다느니 하는 뉴스를 보면서, 아 추석이 임박했구나 라고 어림짐작은 하지만, 실질적으로 피부로 와 닿는점은 전연 없다. 이렇게 고유명절의 분위기와 가족모임을 모른채 지내온 세월이 그얼마인가? 괜히 마음이 공허해짐을 느낀다.

35년전 이곳에 이민의 발길을 놓기전까지는 그래도 추석을 포함한 명절때는 부모님이 계시고 선영이 있는 고향땅을 찾아가는 설레임과 당위성을 잊지않고 살았었다. 고향에서 꿋꿋이 삶을 지키던 사촌형이 선산에 모셔져 있는 조상님들의 묘에 벌초를 해 놓은뒤에 들려 성묘를 하는것이었었지만...... 그때도 나는 이미 잠깐 들리는 나그네 같은 존재 였었다. 그리고 괜히 미안해 했었다.

더어렸을때는 추석날이 어서 오기를 손가락을 꼽아 가며서 고대하곤 했었다. 추석 며칠전부터 어머님이 진두지휘하여, 위로 두형수들과 제사상에 올릴 음식을 만드는, 튀김을 하는 기름냄새를 포함한, 맛있는 냄새에 괜히 부자가된 느낌을 느꼈고, 며칠 동안은 배고픔을 잊을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다음에 아버님을 선두로 추석날 아침에 제사를 지낸후, 조상님의 묘에 성묘하러가는 행열은 시골 동네에서도 유독 우리집안만이 돋보였었다. 우리집안은 대대로 이곳 고향에서 몇대를 살아왔기 때문이었음을 철이든 후에야 알았었다.

같은 또래의 어린 동네친구들은 우리집안의 성묘행열을 부러운듯이 쳐다보면 아직 어린 우리형제와 작은집 형제들이 더 의기양양하게 발걸음을 동동거렸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게 떠오른다. 객지에서 직장생활하고, 결혼하고..... 그후로 부터는 명절이 되면 겨우 고향에 찾아가 다 늙으신 부모님께 인사 드리고, 성묘하고, 그리고는 바로 핑계를 대고 고향을 등지고 직장이 있는 곳으로 발길을 옮기기에 바빴었다. 진심과 정성이 담긴 고향방문에서 성묘했다기 보다는 분위기에 휩쓸려서, 도리를 하기위한 귀향길이었었다. 그러다 그것마져도 등뒤로 하고 이민 보따리를 싸서 새로운 세상에 삶의 둥지를 틀고 살아온 세월이 고국에서 살아온 세월보다 훨씬 길어져 버렸음을 오늘 이저녁에 마음 시리게 느낀다. 물질의 풍요속에서 살면서, 전통과 정신적 풍요로움은 고사된 삶이었음을, 후회해본들 소용없는 일이지만, 이제라도 느낄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임을 알고나 있으란듯, 달빛마져도 구름에 왔다갔다 한다.

낯선 땅에서 경제적 기반을 닦아야 했기에, 밤과 낯도 없이 생업전선에서 뛰어야 한다는 핑계를 대고, 설날이나 추석명절을 푸짐한 음식 차려놓고 아직 어렸던 두아이들과 여유로운 명절의 기분을 내는 시간을 같이 즐겼던 기억이 거의 없었다. 대신에 설날과 추석명절날에도, 평상시와 똑같이 생업전선에서 손님을 맞이하기위해 입에서는 미소를 지어야만했던 기억만 새로울 뿐이다. 잘먹고 잘살고,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 이민짐을 쌌노라고 서슴없이 남들앞에서는 얘기를 하곤 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다 핑계였을 뿐인것 같다. 이저녁에도 다 장성하여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은 추석이 뭔지도 모르고 자기들 일에 매진하고 있을 것이다. 내일모레가 추석명절인데, 어쩌고 저쩌고..... 장광설을 늘어 놓으면서 그들에게 그의미를 말해 준들, 내가 어렸을때 몸소 보고 겪었던 경험들을 예로 들면서 얘기해준들, 실제로 아이들이 어렸을때 아버지인 내가 행동으로 보여준 기억이 거의 없으니, 허공에대고 얘기하는것과 틀릴게 뭐가있겠는가? 지금같은 심정이라면 확 가게문 걸어 잠그고 하루 쉬면서,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차려놓은 음식 같이 나누면서 명절의 기쁨과 조상님들에 대한 감사함을 즐길수도 있었을텐데라고 후회 막급이지만...... 다 부질없이 쏘아논 화살을 쳐다보는 꼴일뿐이다.

조상님이 계셨기에 오늘 내가 존재하고 있음을 감사하는 뜻으로 제사를 지내는 추석명절을, 나는 우리 아이들과 같이 어울려 정성스런 제삿상을 차리면서 살아본 경험이 없기에, 그들로 부터 조상님들에 대한 감사함과 존경하는 마음을 품고 살아가라는 훈계(?)를 할 생각은 엄두도 안나지만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삶을 살아가는 이시점에서 괜히 더 외로워지고,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생각해 보면 마치 무인도에 홀로 떨어져 살아가야만 하는 처지임을 고백하지 않을수 없다. 처음 아이를 낳고 이민짐을 쌀때만 해도, 하얀 백지에 머리속에 있는 아름다운 꿈을 그려내듯, 늙어서는 손자손녀들과 어울려 명절을 보내면서 그들과 다시 한번 동심의 세계에서 앞날에 대한 걱정없이 황혼의 삶을 맞이 하리라 했었지만..... 현실은 나의 뜻데로 움직여지지 않음에 마음이 아파지고 공허해진다. 연령이 꽉차버린 그래서 결혼을 해서 그들이 보금자리를 만들고, 손자 손녀을 낳아 기르는 숭고한 모습들을 보고싶은 마음이, 오늘 저녁의 만월달을 보면서 더 간절해 짐을 느낀다. 물질의 풍요함도 좋지만, 이제는 생각이 바뀌어 자손들이 제때에 자기 할일들을 하면서 대를 이어주는것을 더 기대하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어 버린 내자신을 보면서, 종족보존의 목적이 그렇게 중요 했었기에 그옛날 춥고 배고프고 어려움 삶을 살면서도 자식들을 길러내었던 조상님들의 뜻을 조금이나마 이해 할것 같은 마음이다.

중천에 뜬 달은 너무나 깨끗해 보인다. 모습도 그옛날 어렸을때, 철없이 굴면서 손꼽아 기다렸던 추석전야에 보았던 그대로다. 그때는 계수나무와 토끼가 절구질을 하고 있었던, 미래에 대한 끝없는 상상으로 꽉차보였던 달이, 오늘 저녁에는 경주를 마치고 맨 꼴찌로 골인지점에 도착하려는, 허탈에 빠진 운동선수의 후회로 가득한 그런 느낌으로 차겁게 보여지는것같다. 주위의 친지들이 손자손녀들의 얘기를 하면서 삶의 맛을 느낀다는 얘기를 들었던데로, 나도 그들과 같은 분위기속에서 만월달을 쳐다 보고 있었다면, 또 다른 생각으로 지금 이순간 보다는 더 삶의 의미를 되새겨 보고 있을수도 있었을텐데.....

지난 7월에 발생한 호우로 우면산 일대에 산사태가 발생해 살고 있던 몇가족들과 집을 통째로 잃어 버린 유족들의 쓸쓸한 추석맞이를 보도한 고국의 뉴스를 보면서, 그들의 어려운 형편에 마음이 아프고, 빨리 그러한 어려운 여건속에서 헤여 나기를 빌어봤다.
이곳에서 살고 있기에, 추석 명절의 전통을 아이들과 함께 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그러한 재난과는 상관없는 삶을 누리고 있는점에 대해 감사함을 느낀다. 세계 2차 대전이 끝난후인 5살때 부모님을 따라 네델란드에서 캐나다로 이민와서 한평생을 살아온 한 친지가 몇년전에 나에게 해준 한말이 생각난다. 즉 이민 1세대는 그렇게 삶의 뿌리를 내리기위해 열심히 일을 하다가 때가되면 가고, 다음세대가 이를 이어받아 세상을 살아가고..... 그렇게 3대쯤 되어야 제대로 조상님들이 지켰던 전통과 정신적 여유를 갖고, 정상적인 생활을 하게 되는것이다 라고 말이다. 그친지의 말을 기억에 떠올리면서, '맞아 나는 이민 1세대니까 할일을 하면서 여기까지 왔어. 내가 잘못 살아온 삶이 아니야' 라고 핑계를 마음속에서 외쳐대니, 송편한점 준비하지 않은 무덤덤한 마음에 조금은 위안이 되는것같다.

내년 추석절에는 나에게도 사위가 있고, 며느리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더해진다. 늙어 간다는 증거일까? 아니면 종족 보존의 본능에서 오는 간절함에서 일까? 몇년전만 해도 같은 또래의 친지들과 골프 라운딩을 하고 저녁식사를 할려고 하면 손자 손녀와 딩구는 재미에 삶의 맛을 느끼러 가야한다라고 하면서 빠지는경우를 보거나, 바삐 집에 가야된다는 얘기를 들었을때는, 속으로 '병신 육갑하고있네'라고 비아냥 거리곤 했었는데, 그런 병신육갑떠는 측에도 끼지못하는 지금의 내처지가 '너라고 별수 있냐?' 라고 그 친지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는것 같은 기분을 중천에 높이 떠 있는 만월달을 보면서 느낀다. 조상님들이 계시는 선영에 추석성묘도 못가고 멀리 떨어져, 살아온 삶에 대한 넋두리를 하면서 살고 있는 부족한 후손의 마음을 어여삐 봐주시옵소서.

2 comments:

나는 나 said...

공허가 남지않은 삶을 살기란 참 어려운거 같아요. 채워지지 않은것들에 대한 미련이 계속 우리을 움직여서 살게 했다가 나이가 들면서 멈춰진듯한 느낌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글 계속 잘 읽고 있어요. 그래도 참 대단하십니다. 그만큼의 글들을 연재할 마음의 힘이 있으니까요.

추석...두분이서 잘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lakepurity said...

살아온 세월을 보름달 그속에 집어넣고 계산을 해 보았을 뿐입니다. 고국에서 살아왔다해도 별뽀쭉한 수가 있었겠읍니까만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들 하지요. 더불어 살아간다는 뜻같은데, 살아가는 Society의 분위기도 보름달을 그렇게 오랫동안 쳐다보게 한 요인이었던것 같읍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