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December 08, 2007

드디어 마추피추 입구에 도착







우르밤바를 떠나 한참을 달려 드디어 고대하던 마추피추 잉카제국의 옛 도시터를 보게되는 입구에 도착했읍니다.
먼저 전용차량을 타고 우리일행이 한참 달려,기차역 오얀따이땀보역에 도착하여 전용기차를 타고 약 1시간 30분 가량 달려 아구아스 깔리앤트역에 도착 다시 그들이 운영하는 뻐스를 타고 마추피추 옛 산상 도시입구에 도착했다. 여기까지 오기위해 비행기를,전용차량에, 기차에 그리고 다시 관광단지내에서 운영되는 뻐스를 타고.... 호텔을 아침 일찍나와 마추피추 입구까지 도착하는데는 3시간 30분가량이 걸렸다. 2400 미터가 넘은 고지라서 숨쉬기가 좀 고르지 못한때도 느꼈었다. 원치않은 비까지 내려 혹시나 제대로 구경을 못할까봐 은근히 걱정이 앞선다. 입구에서 바라본 산상도시가 있는 마추피추와 그주위 산꼭대기에는 구름이 덮혀있다. 그것도 힌구름이..... 오래전 나이아가라 폭포밑을 보팅할때 사용했던 비닐코트를 아내가 잘 보관 했다가 이곳까지 가지고온것을 꺼내 주면서 비맞지 말고 입으라고 꺼내준다. 그준비성에 그져 멍청히 고마움을 마음속으로 느낄뿐, 겉으로는 무관심한것처럼,아무것도 아닌것 처럼 치부해 버렸다. 한국태생의 나이먹은 남편들의 전형적인 태도인것을 알면서도 고치지 못하는 고질병(?).....좋고 나쁜감정을 표현 하는데 좀더 자유스러워야 하는데.....
기차를 타기전, 노점상에서 현지민들이 음식을 먹는장면이 옛날 서울역에서의 노점상을 연상케 하기에 한컷했읍니다.
산중턱에 하얗게 지그재그로 나타나 있는 선은 마추피추 관광단지입구에 올라가기 위한 자동차 도로입니다.

Friday, December 07, 2007

우르밤바 재래시장에서 어울려 본 순간들









이곳 쿠스코와 우르밤바지방의 특색으로 지붕한가운데에는 그들의 신을 모시는 십자가형의 나무걸이에 병과 동물의 형상을 걸어 놓았읍니다. 스페인 제국이 이곳을 점령하여 그들의 정신마져 없앨려고 모든 문화 유산을 스페인풍으로 변경할때,원주민들이 그에 대한 반항의 표시로 지붕에 그들의 전통신의 상징을 표시한것이라고 합니다. 이곳은 우리가 묵었던 성 어거스틴 호텔에서 약 2킬로 떨어진 원주민들의 재래시장을 우리 부부는 저녁 시간을 이용하여 구경 나갔다가 시장바닥에서 가락에 맞추어 흥얼거리면서 춤추는 이들과 잠간 어울렸읍니다. 그들과 같이 맥주도 마시고.... 이것이 사는 재미인것을 느껴보는 순간이기도 했읍니다. 호텔에서 이곳까지 우리를 운송해준 택시는 일본산 혼다 모터 싸이클을 3륜차로 개조한, 이곳 페루에서만이 볼수있는 자동차(?)였읍니다. 그들이 팔고 있는 슬리퍼(신발)는 자동차 타이어를 잘라서 만든것이었는데, 그들의 산업수준을 보여주는 바로미터이기도 했읍니다. 제가 묶고 있던 호텔바로 뒤에 새로 건물 짖는 장면입니다. 플라스틱 통에 시멘트 믹스를 넣어 어깨에 메고 올라가 철근 콩크리트를 하는 장면입니다.

쿠스코의 고원지대 원주민 농사짖기







해발 3600미터의 고지에서 농사짖는 원주민들과는 달리, 관광객인 우리들에게는 무척힘들었읍니다. 숨쉬기가 편치 않았고, 심한 경우 두통도 약간 있었읍니다. 우리를 안내한 가이드의 첫째 당부가 뛰지말고 천천히 걷고, 심호흡을 하라는 것이었읍니다. 그들은 두마리의 소가 끌는 쟁기로 밭을 갈고 감자를 심고 있었읍니다. 잠시 쉬는 동안에 그들은, 고국에서 맛보았던 막걸리 같은 토속주를 물마시듯 마시면서 흥얼 거렸으며, 차를 세우고 그들에게 접근하자 언어는 통하지 못했어도 웃음으로 맞아 주면서 술도 권하고, 쟁기도 갈아 보라고 하는 친절함을 보여주었는데, 그들의 모습은 우리와 비슷한 몽골족 인디언 같았읍니다. 그들의 삶을 볼때 몹시 궁색해 보였으나,그들은 그렇게 살아왔기에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 낙천적인 면을 보여 주어,욕심(?)없어 보이는 그들의 집단삶이 부러워 보이기도 했읍니다.

쿠스코,페루의 태양의 신전








도시명"쿠스코"는 배꼽의 뜻이라고 합니다. 해발 3600미터의 고원에 이루어진 잉카제국의 수도였읍니다. 산위에 세워진 동상은 초대잉카제국 황제의 동상이고, 잉카제국의 황제들이 기거했던 궁전은 Qorikancha Temple이라고 불리며, 일명 태양의 신전이라고도 합니다. 스페인이 잉카제국을 점령하여 그들의 흔적을 말살하기위해 그신전 중앙에 스페인풍의 산타도밍고 신전을 짖고, 넓은 광장을 그앞에 만들었는데 1535년에 건축이 완공되였으나, 현재의 궁전은 1950년도의 지진으로 파괴된것을 재건축한것이라고 설명했읍니다. 그곳 원주민들이 고유의상을 입고, 공항대합실 한쪽에서 연주하면서 관광객을 맞이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읍니다. Donation을 조금 했읍니다. 1532년 잉카제국은 스페인의 신부와 프란시스코 피사로 장군의 꾐에 빠져 2시간만에 완전 점령당하여 그운명을 마쳤다고 하는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었읍니다.

나스카,남미 페루에서 지상그림 보기










페루의 리마시에서 자동차로 6시간 달려 나스카에 도착, 6인승 경비행기를 타고 지상그림을 보았읍니다. 독수리보다 큰 Condor,원숭이,고래,허밍버드,솔개,나무,파충류등의 모양이 허허벌판에 선명히 나타나 있었읍니다. 오랜세월을 지내는 동안에도 지워지지 않고, 그대로 그모습을 간직하고 있을수 있었던 것은 날씨가 건조하고 비가 오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많이 흔들리는 경비행기안에서 지상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가 쉽지가 않아 아쉬운점이 많았었읍니다. 산계곡에서 물이 흘러 내렸던 물줄기 흔적이 아직도 뚜렷히 보이기도 했읍니다. 많이 찰칵했지만, 눈으로 보았을때 처럼 선명하게 나오지 않았읍니다. 여러대의 경비행기가 관광객을 계속적으로 탑승시켜 30분씩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안의 이미지위를 날으면서 그신비함을 보여주어, 멋진 감상을 눈으로 할수 있었읍니다. 이그림들이 어떻게 형성됐는지는 아무도 모르고 다만 여러설이 있는데, 몇가지 예를 들면, 신(Gods)들이 만들었다고 하고, 혹은 외계인들이 그렸다고하기도 하고, 또는 사람들이 그렸다라는 가이드의 설명이 있었읍니다.

Monday, November 19, 2007

리스본,포투갈의 옛영화와 현재를 보다.





포투갈의 수도 리스본강변에 1960년도에 세워진 동상인데,항해사요 흥행가였던 Prince Henry의 새대륙발견 500주년을 기념하는 동상입니다. 탐험가로서의 정신이 돋보입니다. 강변에서 안쪽으로 보이는 건물은 16세기에 건축된Jeronimos Monastery인데,오늘날에는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적 유산으로 남아있어, 옛날 포두갈의 영화를 그대로 보여주는 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었읍니다. 

 그앞에서 같이 여행한 친지들과 한컷한것입니다.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면 세계지도가 보이고 그에 따른 여러 형상들이 진열되여 있는데, 당시의 포투갈인들은 생각하기를 지구의 절반은 포투갈이, 나머지 절반은 스페인이 점령해서 세계를 지배하는 민족으로 자부심이 대단 했다고 합니다. 

이다리는 그길이가 무척 길지만, 모양도 아름다웠읍니다. 리스본에서 강하구를 거쳐 내륙지방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다리입니다. 건설된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옛날 영화에 비해볼때 오늘날의 포투갈인들의 생활상은 유럽연합에서 바닥을 헤매는 아주 발달안된 나라로 남아 있었읍니다. 젊은이들은, 마치 고국에서 흔히 보았던 기억처럼, 시골 청년들이 모두 대 도시로 빠져 나가, 유럽의 잘사는 다른 나라로 달아나(?)버려, 보이는 사람들은 부녀자와 노인들이 대부분이었고, 안내를 맡았던 Armando는 이를 심각하게 설명 했었읍니다.

산위의 요새이자 주거도시






적과의 싸움에서 살아남기위해 산위에 군사요지겸 도시를 건설하여 생활했다고 합니다. 도시안의 성당에 Chapel 에는 한개의 Mummy를 포함하여 약 5천명의 뼈를 모아 전시하고 있었는데,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이 산상도시를 건설할때 이미 그도시 계획선안에 있던 공동묘지를 옮기면서,모아진 뼈를 Chapel안에 벽처럼 쌓아 모시면서 오늘에 까지 이르고 있다고 했읍니다. 신통하게도 산 꼭대기의 도시 한복판에는 당시에 주민들이 사용했던 우물이 그대로 보존되고, 눈으로 들여다본 우물에는 지금도 물이 고여 있었읍니다.
포투갈의 알그라브부주에 남쪽에 있는 옛날도시 입니다.

영원할것 같았던 로마제국의 흔적들




로마제국의 흔적들입니다. 이곳 남쪽의 알그라브 지역에는 아랍권의 문화가 아직도 산재해 있지만, 옛 로마제국의 점령지였던 이곳에는 로마제국의 유적들이 많이 있었읍니다. 뒤에 보이는 큰 기둥들은 로마제국 문화의 상징으로, 로마제국이 번성했었던 지역에서 흔히 볼수 있는 장면들입니다. 이렇게 점령하고 지배하기위해 그얼마나 많은 서민들의 희생이 있었을까? 오늘은 사는 우리가 그래도 조금은 위안을 받을수 있는 모티브가 되는것 같읍니다.

적을 막기위한 방편으로 만들어진 도로





옛날 유럽 도시들의 대부분이 그렇듯, 도시의 주거지안의 집들은 독립가옥이 아니고 시장바닥의 집들처럼 같이 붙어 있었음이 특히 했읍니다. 도로는 바닥이 조각돌로 깔아 놓았지만, 폭은 굉장히 좁습니다. 바로 적과의 싸움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으로 이러한 도시형태가 형성됬다고 합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가 보기에는 선뜻 이해가 안가는 것도 무리는 아닌것 같읍니다.

성경에 나오는 빨래터와 인근 주민들,알그라브,포투갈






포투갈의 남부 지방인 알그라브는 한때 아랍제국의 지배를 받았던 역사를 지니고 있었읍니다. 그흔적들 즉 아랍권 문화의 자취가 군데 군데 남아 있었는데, 여기보이는 빨래터에서는, 이곳 주민중 한분이 우물가에서 성경에서 보고 배웠던 그대로 하고 있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본것입니다. 우물물은, 고국에서 어렸을적에 동네 한가운데 있던 우물물이 넘쳐 흘러 바로 아래의 미나리깡으로 갔던 생각을 되뇌이게 했으며 동네 고삿길을 걸어 다닐때는 많은 동네 삽살개들이 짖어 대고 기웃거리는 모습 또한 어릴때의 기억을 되살리기에 충분 했었읍니다. 길거리에서 만난 동네 여인들과 같이 어울려, 오랫동안 기억을 간직하고파 한컷한 모습입니다. 바로 이동네 입구에 우리 일행이 묶었던 호텔이 있었읍니다. 이곳에서는 주산물이 Cork (와인병마개를 만드는 원료)라고 합니다.

성당안에 진열되어 관람시키고 있는 유물들

톨리도에 있는 한 성당안의 보물 전시실에 보관되여 있는 금빛 찬란한 왕관 및 다른 보물들의 모습입니다. 항상 느끼는 점이지만, 이렇게 호화스러운 영광뒤에서는 얼마나 많은 무고한 민중들의 희생이 뒤따랐을까?를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읍니다. 대부분의 이렇게 찬란한 유물들은 스페인제국이 지구의 절반(?)을 식민지화 해서 힘을 과시할때, 착취한 것들이라고 합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세대들은 섬세함에 감탄을 연발 하면서 관람하는 영광(?)을 소유하고 있음에 감사를 해야 하는건지 아니면 어떻게 처신해야 할것인가? 두고두고 생각해 볼 숙제인것 같다.

수없이 많은 성당안의 종과 멀리 보이는 투우장

성당의 종탑에는 육중한 종들이 매달려 있었읍니다. 지금도 시간에 맞춰 타종한다고 들었읍니다. 종탑에서 내려다본 멀리 보이는 경기장은 스페인들이 가장 인기있게 좋아하는 야외 경기장인데, 이곳에서는 지금도 정기적으로 투우사와 투우사이의 싸움이 열린다고 합니다. 저희가 갔을때는 시간이 늦어 직접 경기를 볼수 없은 아쉬움만 있었읍니다. 꼭 한번 직접 눈으로 경기를 보고 그들과 어울려 환호(?)도 하고 싶었는데....

똘리도 성당안의 콜럼버스관과 회의실



신기하게도 성당안에는 콜럼버스의 관(Coffin)을 병사 4명이 어깨에 메고 있는 동상이 있었읍니다. 실제로 콜럼버스의 시신이 지금도 그관속에 있다고 설명했읍니다. 믿어지지는 않았지만, 믿기로 했읍니다. 다른쪽에는 깊숙한곳에 회의실이 있었읍니다. 옛날에 실세들이 모여서 회의를 했던곳이라 했읍니다. 이곳역시 사진 촬영이 금지되여,후랏쉬가없이 하다보니 dark 면이 많습니다. 간혹 고국에서 나들이온 분들을 마주치곤 했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