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November 23, 2009

당시에는 쳐다 보기도 싫었던 .'시래기'를, 오늘은 보물 모시듯...


과거속의 추억은 그내용이 풍부한것이나, 그렇치 않은 것이라 할지라도 미화되여 되살아나게 마련이다.
며칠전 한국식품점에 아내를 따라 들렸었다. 김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규모가 적지만, 그래도 닥아오는 겨울을 그냥 보내기는 뭔가 허전하기에, 배추 한상자를 구입했었다. 그리고 무우 한상자를 구입했는데, 무우상자가 훨씬 적은데도, 값은 배추보다 2배를 더준것같다. 그것으로 김장에 필요한 재료는 다 구입한줄 알았는데, 아내가 수북히 쌓여 있는 '시래기'진열대에 가더니 몇개를 집는다. 나는 옛날 생각을 하면서, 고맙게도 이렇게 고객들에게 무료로 공급해주나 싶어, '이걸 뭐에 쓸려고? 아무리 공짜라지만 나는 별론데...' 아내가 나를 뻔히 쳐다본다. 그러면서 가격표시가 있는곳을 손으로 가르킨다. 아뿔사 순간 내가 착각을 해도 너무나 많이 하면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것을 직감했다. 공짜로만 생각했던 시래기는 얼른 머리를 굴려 계산해 보았을때, 배추보다 더 비싸다는것을 알았다. 기억에서 아스라히 떠오르는, 시래기에 대한 추억이 뇌리를 스친다. 서리가 하얗게 내린 늦가을 아침에 어머니에게 끌려 텃밭에 나가 땅속에 깊이 몸둥이를 쳐박고 있는 '왜무시'를 고사리 같은 두손으로 힘껏 뽑아 당겨, 광주리나 지게 바작에 쌓아, 집으로 나르던 생각이 가슴 저리게 생각난다. 손은 시렵고 무시(무우)잎에 달린 하얀털같은 가시가 손등을 스치면 따끔하게 아파해 했던 생각도 난다. 집앞마당에 다 부려 놓으면 어린마음에서 보는 무시더미는 산처럼 크게 보였였다. 형제가 많았던 우리집은 먹는입이 참 많았었다. 겨울을 나기 위해서는, 수도 셀수 없을 정도로 많은 김장 배추를 하루종일 동네 아주머님들과 어머니는 품아시를 해가면서 소금에 절이고 씻고, 김치를 담았고, 형들은 부엌뒷켠에 있는 장독대 옆에 구덩이를 파고 김장 항아리들을 묻고, 그위를 영을 엮어 덮어주어 겨울에 동파하지 않도록 했었다. 무시에서 떼어낸 시래기는 지붕을 이는 날개 엮듯이 묶어 처마밑이나 집뒤 언덕의 감나무가지에 매달아 말려, 겨울양식으로 보관하곤 했었고, 동네에서 우리보다 못사는 사람들은 그것을 얻어다 그들나름데로 겨울양식에 보태곤 했었다. 그래서 시래기는 의례히 나도먹고 남에게 나누어 주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한, 값이 안나가는 그런정도로만 지금까지 생각해 오고 살았었다.
1950년대 중반기부터 기억되는 지긋지긋한 가난은 아직 어린 나에게는 정말로 기억하기 조차 싫은 시간이다. 겨울중반이 되면 의례히 식량이 떨어져, ,안방 윗목에 겨울양식대용으로 쌓아놓은 고구마를 먹어야 했었고, 간혹 밥을 하게되면, 쌀과 보리가 부족하기 때문에, 그대체품으로, 고구마밥, 무시밥 그리고 시래기를 같이 밥솥에 넣고 삶아 시래기밥을 만들어 먹었었다. 철모르는 어린나이였기에 왜 이렇게 먹기싫은 밥을 우리 어머니는 만들어서 주는가? 결론도 없는, 투정도 부리곤 했었던, 그럴때마다 대답은 '너는 아직 배가 덜고파서 배부른 타령을 하고 자빠졌구나' 라고 속으로는 귀한자식들(?) 맘껏 못먹여 아파해 하시면서도,겉으로 나무라시던 모습이 오늘따라 기억에 생생하다. 오늘 아내는 그렇게 천대받고 괄시받았던 무시래기를 거금(?)들여 사와 정성스레 삶아 물기를 짜낸후 말려서 시래기를 만들겠다고 정성스럽게 손질한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곳은 개인집이 아니고 베란다가 없는 콘도이기에, 삶으니 부피가 줄어 몇개 안되는 무시래기를 손에 들고 말릴곳을 찾느라 전전 긍긍이다. 아내가 갑자기 세탁물을 맡겼다 찾아올때 끼어오는 철사로된 옷걸이 하나를 옷장에서 꺼내 오더니 그위에 몇가닥의 시래기를 걸친다. 아직 물이 뚝뚝 떨어지기에 부엌싱크대에서, 시래기 밑부분을 내가 손으로 꾹짜서 물기를 일부 제거하니 물이 떨어지지는 않는다. 그러더니 그옷걸이를 창문쪽으로 들고 가더니 창문을 열고 그가운데, 통풍이 잘되는곳에 걸어 놓는다. 바람에 조금씩 흔들린다. 물방울이 떨어져 마루바닥을 적실까봐 그밑에 아내는 목욕타올을 깔아서 물이 떨어지는것을 흡수하게 한다. 그광경 뒤로는 Yacht들이 클럽야드에, 겨울을 보내기 위해 정박해 있는 모습이 약간은 서로 격이 맞지 않은 모습으로 어루러진다. 이광경을 호수가를 지나는 산책객이라도 보게 된다면? 어쨋던 아내의 그모양이 너무나 정성스럽다. 남편인 나를 대하는것 보다 더 정성을 쏟는것 처럼 보인다. 보물이 별거더냐? 바로 이런것을 보물 모시듯 한다고 하는것 아닐까? 불과 60 여년 사이에 이렇게 세상살이가 변했음을 오늘 이순간을 통해서 본다. 우리의 두아이가 이런 광경을 보면 엄마나 아빠를 어떻게 생각할까? 다 말려서 다시 시래기를 먹게 되는날 다시 그옛날 그시절을 생각하게 될것이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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