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April 03, 2020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후보들 면상. 전부가 문재인씨의 주위에서 맴돌던 인물들.

이들의 전직을 여기 적힌데로 읽고 이해하는것은 매우 단조롭다.
후보들의 99%가 문재인 청와대 주위에서 뱅뱅 돌던 앵무새 들이다.

경제폭망에, 탈원전 그리고 Coronavirus Pandemic 초기 방역대책을 실기하여, 중국에서 발생한 Covid-19이 북미대륙으로 종횡무진으로 퍼지게한  Bridge역활을 한 문정권 때문에 대한민국의 이미지에 온갖먹칠을 다해놓고, 자화자찬하는 이사람들을 어떻게 이해를 해야하나.   자유중국에 Coronavirus Pandemic 전염자가 거의 없게 하는데, 진두지휘를한 자유중국의 두 의사분들의 역활이 더 찬란히 빛나 보이고,  반대로 노란자켓입고 탁상공론만 하면서, 의료전문가들의 건의를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폼만 잡다가 국제적으로 개망신 당한자를 하늘처렴  모셔왔던 이런자들을 다시 국회의원으로 뽑아 달라는데, 무슨 염치로 국민들에게 표를 달라고 하는가?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국민들은 이들의 면상을 잘보고  이들을 낙선시키기위해, 민주당에 표를 주어서는 절대로 안된다.

부동산 대책발표를 앞두고, 당시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김의겸은 동작동소재,상가건물에 투자하여 손도 안대고 코풀어 내는 식으로 거금을 손에 쥔자이다. 당시에 그들의 식구들이 아닌 다른 사람이 투자하면, 경찰의 감시를 받아야 했었다. 김의겸이는 예외로 아무도 그의 권력앞에 불법투자라고 진실을 얘기한 사람 없었다.  그가 국회로 진출하기위해 사표를 내고 인사할때, 문재인 대통령은 "수고많이 했다. 살아서 돌아오라"
극히 평범한 인사같지만, 그속에는 섬뜩함이 들어 있었다. 절대로 보수정당에 밀리지 말라는 메세지였다.

 열린 민주당 비례대표후보들 중에는 황희석, 전법무 인권국장, 최강욱, 전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이 상위권에 이름을 올려놨다. 이두사람은 ‘윤석열 검찰’에 대한 적대심을 가감없이 드러내왔고, 열린민주당 비례대표 후보들 역시 윤석열 검찰총장을 ‘공수처 수사대상 1호’라고 공공연히 주장해왔다.

https://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4/03/2020040300079.html

4.15 총선에서 표를 잘 지켜야 할텐데...



'소주성, 탈원전, 조국, 울산공작'이 총선서 이긴다면,거의 확실한것으로 보이는데, 그순간 Freedom은 쫒겨난다.


문재인 대통령 정부가 창조해낸 지난 3년간의 국가운영정책을 보면, 복장이 터질것만 같은 느낌이다.
많은 경제학자분들, 뜻있는 국가원로들이 하나같이 한숨지면서 하는 한마디의 말은 "문재인 정부 3년동안에 단 하나라도 잘한일 있으면 덩실덩실 춤을 추겠다"다.  한창일해야할 젊은이들, 직장에서 훈련받고 경험을 축적하여 한창 그 Know-how를 꽃피울 나이인 40대 중반부터 50대 중반까지의, 경체창출의 유능한 견인차 역활을 해온 인재들은, 문재인 정부의 정책에 밀려, 기업들은 살아남기위해 조기 명퇴를 시키거나, 분위기에 밀려 직장을 그만 두어야 하는 나라를 만들었다. 그대표적 기업이 원자력기술에 대한 Know-How를 가장 많이 축적하고 있는 두산공업이다.

내가 주워들은 "소득주도 성장론"은 문재인과 이해찬이 주동이된 근거도 이론도없는 엉터리, 국민들 홀리는, 내막적으로는 대한민국의 경제적 성장을 파괴하여, 겨울을 보내는 동안에 수백만명의 아사자를 내고있는 이북의 김정은 정권과 엇비슷하게 경제규모를 마추려는 '망국적 정책'정도로 알고있고, 경제전문가들이 기고한 글이나 방송에서는, 이런 이론은 세계 어느나라의 경제 정책이나 경제이론에서 존재치 않고, 앞으로도 없을,  A-4 용지에 적힌 메모를 보고 얘기를 꺼낼 정도의 지능을 소유한 문재인 대통령의 발상이라는 것으로 알고있다.



그이론을 요약해 보면, 굳은일 하기 싫어하고, 부모님에 얹혀사는 젊은 백수들에게 국가에서 월급주는 식으로 매월 일정액을 지급하여, 그돈으로 청년들이 소비를 하게되면 경제성장이 이루어진다는 이론으로 이해하는데, 이에 서울시장 박원순이가 맞장구를 치고 있는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젊은이들에게 퍼주는 돈이 문재인 또는 박원순의 개인주머니에서 나오는 돈이라면 하등의 이유를 달 이유가 없지만, 전부 국민들의 세금으로, 이돈을 갚기위해 후세들이 죽을 고생을 해야 한다.

문재인대통령을 연상하면, 그가 취임하자마자 자랑스럽게 시행한 "탈원전쟁책"이다. 탈원전 정책에 대해서는 더이상 설명할 필요와 이유가 없다. 너무도 큰충격을 국민들에게 안겨준 경천동지할 사건이기에....
한창 UAE에서 우리의 자랑스런 기술로, 원자력발전소건설 Deal을 수주하여, 주야로 중동 열사의 나라에서 자랑스럽게 근무하던 Engineer들에게 긍지를 상실하게 한것은 차치하고, 그소식을 들은 UAE에서는 정부의 실세인 왕자를 한국에 급파하여 그진의를 파악하기에 이르렀고, 믿지못할 한국이라는 불만을 토로하고 떠나자,  문재인정부는, 당시 임종석 비서실장을 대통령전용기에 태워 UAE에 급파하여 진정시키려 했었지만, 한번 의심을 품은 그들의 마음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결과 발전소 건설후의 Maintenance Project를 그들은 불란서에 맡기고 말았다. 계약당시 이명박 당시대통령과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르면, 발전소 건설에서 얻는 경제적 가치보다 훨씬 더 많은 이익을 한국에 가져올것이라는 희망으로 국민들은 환성을 끝이지 않은 쾌거였었는데....

 또 더큰 문제는 문재인 사회주의 정부가, 속된말로, "손도 안대고 코를 푼다"라는 말처럼, 자기네들에게 손해가 오지 않을 이슈들에 대해서는 마치 자기네가 개발 성공한것 처럼 자화자찬 하는데는 선수들이다.
세계적으로 Coronavirus Pandemic가  창궐하여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가 전전긍긍하고있는 이시간에 우리 한국의 일부기업의 Engineer들이 밤잠을 설쳐가면 새로 개발한 Coronavirus Pandemic의 확진 여부를 검사하는 Testing Kit를 비롯한 Face Mask가 인기를 끌면서 몇나라에서 문의를 해오자, 문재인 정권이 이를 가로채서, donation을 하는 선심을 쓰면서, 4/15총선에 정부의 치적으로 선전해대고 있지만,  그이면에서는 Face Mask공급부족으로, Testing Kits부족으로 국민들이 곤욕을 치르는것에는 눈을 감고있다.

지난번 지방선거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그의 오랜친구를 울산시장에 당선시킨, 불법선거개입에 대한 검찰의 수사를 대통령직권으로 막아버려, 수사는 유야무야... 그렇게 현재에 이르고 있다. 불과 수개월전에 대통령 자신이 가장 믿고 의지할수 있는 인물로 생각했던 윤석열을 검찰총장에 임명했는데, 임명장 받는 Ceremony에서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헌법을 수호하기위해 혼신을 다할것이다"라고 전면에서 선언했던, 윤석열 총장이 대통령의 불법선거 개입 혐의를 조사하기위해 조사를 할려고 담당검사들을 청와대에 급파 했었으나, 문전박대를 받고 말았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대통령인데  감히..."
그이후로  검찰총장은 문재인의 눈에는 커다란 걸림돌이 되고 만다.

대통령을 둘러싼 찌라시들은 윤석열 총장을  죽이기위해 있는증거, 없는 증거 다 만들어서 4/15선거에 악용하고 있다. 그최전선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Maid,추한여인 '추미애'가 똬리를 틀고있고, 그녀의 치마속에서 덜렁덜렁 물건달고 아부떨고있는, 최강욱, 황희석이 그녀의 부하들로, 이번 총선을 이겨야 그들의 야욕을 끝까지 채울수있다는 계산이 깊이 깔려있음이 쉽게 보이는 꼼수인 것이다. 총선결과에 상관없이 7월달이면, 문재인 일당이 공들여 만들어낸 "공수처"법이 시행에 들어가면, 그첫번째 타킷이 윤석열 총장이라는 음모를 모르는 사람은 없는것 같다.  그러면 현재 재판중에 있는 좃국과 그일가들은 무죄로 다시 자유의 몸이 되여 대한민국은 더 시궁창속으로 빛의 속도로 달려갈것이다.

                                                   Eunach,황희석, 최강욱의 자랑스런 면상들.

문재인 정권의 망국적 정책과 행태는 그내용을 다열거하기에는 나같은 우둔한 머리를 갖인 사람은 엄두도 못낸다. 대한민국의 앞날에 신의 가호가 있다면, 대한민국의 운명을 가르게될 이번 총선에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지향하는 보수계열의 정당이 국민의 지지를 받는 결과로 나타나겠지만, 그렇치 못할경우, 국민 모두는 모든 행동을 접고, Coronavirus Pandemic으로 방콕하는식으로, 모든 활동을 제지당하고.... 그틈에 대한민국은 더 망가지고.... "자유 민주주의 대한민국"은 조종을 울리고 사라질것이다.  국민들은 다시한번 깊이 생각하고, Freedom을 지킬것인지 아니면 지금처럼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지지할것인지...잘 선택해야 한다.

양상훈 주필의 한탄을 옮겨놨다.

코로나 착시 덕 본다는데 이 정권이 운 좋으면 나라 운도 좋은가, 반대인가
경제 실정, 정치 비리가 선거로 정당화되면 잘못 고칠 기회 잃는 것
누구보다 정권의 불행








양상훈 주필
양상훈 주필
코로나와의 전쟁에서 한국은 어느 정도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많지 않은 나라 중 하나다. 전문가들의 얘기를 들어 보니 마스크의 힘이 가장 크다고 한다. 마스크를 거의 빠짐없이 챙겨 쓰고 있는 국민의 역할이 결정적이라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의 코로나 창궐은 무엇보다 마스크를 기피하는 문화와 마스크 자체가 태부족인 것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 백악관 담당관의 말대로 지금 세계에서 '서로를 보호하기 위해 일치된 대응을 하고 있는' 국민이 있다면 한국민이 빠질 수 없다.

다음으로는 민영 병원과 공영 건강보험이 조화를 이룬 우리 의료 시스템과 다른 나라에 비해 우수 인력이 몰린 의료진의 눈물 나는 헌신을 빼놓을 수 없다. 기업의 발 빠른 진단 키트 개발과 이를 신속하게 승인한 정부 질병관리본부의 공도 크다. 이런 강점이 정부가 초기에 중국 감염원을 차단하지 않은 큰 문제를 상쇄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덕을 민주당이 보고 있다고 한다. 재주 부린 사람과 돈 버는 사람이 따로 있는 꼴이다. 이런 코로나 착시 현상이 유권자들에게 영향을 미친다면 정권이 운(運)이 좋은 것이다. 그런데 나라의 운은 어떻게 되나. 코로나는 결국 지나간다. 7월에 나온다는 치료약이 효과를 보이면 서광이 비칠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 사태가 끝나면 세계경제가 반등할 것이라는 데 이론이 없다. 지금 우리가 정말로 물어야 할 것은 한국 경제도 그때 같이 반등해 경제가 성장하고, 양질의 일자리가 늘어나고, 자영업자들과 소상공인들이 다시 희망을 품게 될 것이냐는 질문이다.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한국 사회가 당면한 진짜 문제다.

코로나 사태가 발생하기 전인 2019년에 우리나라 경제는 이미 중병(重病)에 걸려 있었다. 절반 이상은 새 정권의 상식 밖 경제 실험이 불러온 인재(人災)였다. 경제성장률은 2%라고 하지만 막판에 세금을 퍼부어 억지로 만든 숫자다. 국민 총소득 증가율은 3년 연속 하락해 0.3%가 됐다. 3040 일자리는 21만5000개가 없어지고 60대 이상이 37만7000개가 늘었다. 제조업 일자리는 8만1000개가 줄고 농업에서 5만3000개가 늘었다. 산업 생산 증가율은 0.4%로 통계 작성 이후 최저, 광공업 생산 증가율은 -0.7%로 통계 작성 이후 최저, 설비투자 증가율은 -7.6%로 금융 위기 이후 최저, 제조업 평균 가동률은 72.9%로 외환 위기 이후 최저다. 수출은 올해 1월까지 14개월 연속 마이너스다. 작년 50대 기업 영업이익 -43%, 10여 년간 감소하던 개인 파산의 돌연 급반등, 폐업 자영업자 5배 폭증, 2018 년 휴·폐업 신용카드 가맹점 66만곳, 자영업 대출 불과 반년 만에 25조원 급증 등 암울한 경제지표는 끝이 없다. 3년간 국가 부채가 무려 100조원이 늘었다. 착실히 쌓아 온 건보 기금, 고용 기금은 다 거덜 직전이다.

글로 프로 부스트모드

소득 주도 성장과 반(反)기업·친노조, 탈원전과 같은 반(反)시장 자해(自害) 정책이 아니면 단기간에 이런 경제 급전직하를 만들 수 없다. 정권이 경제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도 선거 프레임 전환에 성공해 승리한다면 소주성, 반기업, 반시장, 탈원전을 그대로 밀고 갈 것이다. 경제가 어떻게 되겠나.

이 정권 최대 정치 사건은 울산 선거 공작이다. 경찰을 동원해 야당 후보 사무실을 덮치는 1960년대식 수법이었다. 희대의 파렴치 조국을 기어이 법무장관에 임명했다. 선거 공작과 조국을 수사한 검찰을 인사 학살했다. 공수처 만든다고 선거법을 강제로 바꾸더니 선거를 코미디로 만들었다. 그렇게 만든 공수처의 1호 수사 대상이 윤석열 검찰총장이라고 한다. 이 모든 비리가 코로나에 묻혀 넘어가고 '울산 선거 공작' '조국 임명' '검찰 학살' '선거법 코미디'가 총선에서 승리해 정당성을 얻는다면 앞으로 누구든 같은 일을 벌일 수 있다. 이게 나라인가.

선거 결과는 투표함을 열 때까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여당 내부에선 과반수(151석)를 넘어 180석 얘기까지 오간다고 한다. 이 예상이 실현된다면 그것은 '코로나의 승리'로 끝나지 않는다. 바로 소주성, 탈원전, 반기업, 친노조, 울산 선거 공작, 비리 공직자 은폐, 헤아릴 수도 없는 내로남불, 조국 임명, 검찰 학살, 선거법 폭거가 선거에서 승리하는 것이다. 전통 우방들과의 궤도 이탈, 북에 굴종, 중국에 안보 주권 양보가 승리하는 것이다.

국민이 소주성, 탈원전, 조국, 선거 공작이 옳다고 생각해 그 길을 선택한다면 어쩔 수 없다. 이들이 다수라면 나라가 그 길로 가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코로나 착시가 만드는 결과라면 크게 잘못된 것이다. 한국의 유권자들은 늘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필요할 때 필요한 선택을 해왔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존재할 수 없다. 이번 총선으로 경제를 망친 실험과 선거 공작, 조국 임명과 같은 실정(失政)이 정당화되면 정권은 잘못을 고칠 기회를 잃는다. 나라는 물론이고 이 정권에도 불행이다.



https://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4/02/2020040200024.html

Thursday, April 02, 2020

1968년,수백명의 여인들 악몽에 시달리게 만든 한해. 이념전쟁은 승자,패자 다 고통만 선물로 남는다.


전쟁은, 후세 사람들이 얘기할때는 왜 그랬을까?라고 전쟁의 참혹함을 안타깝게 얘기도 하지만...
적과 총구를 겨누면서 싸울때는, 내가 적을 사살하지못하면 내가 죽는게 전쟁인것을 참전용사들은 그처절함을 알지만...

월남전에서 용맹을 떨쳤던, 맹호부대, 청용부대의 무용담은 전사에 길이 남을 전공과, 그전쟁을 통해서 우리 한국이 경제적을 성장할수있는 Foundation을 만들어 주었음을 부인 할사람은 없을 것이다.

작전을 나가면, 후환을 없애기 위해서, 작전지역에 있는 마을 사람들은 어쩔수 없이, 특히 아녀자들은 타켓이 되는 경우가 있었다고, 월남전에 참전했었던 친지들한테 들었던 기억이 있다.

오늘 BBC가 당시 전쟁의 참혹함속에서 살아남은, 지금은 할머니가된 월남여인의, 과거 인생담을 다큐멘타리로 만들어 보도 한 내용을 봤다.

변명이 아니라, 전쟁은 그렇게 참혹한것임을, 굳이 보도한 그내용과 진의는 속시원하게 파악할수는 없지만, 당시 상황에서는 그래도 목숨을 살려 줬음을 감사해 했을법도 하지만, 45년 이상이 지난 지금이시간에 당시를 회상하면, 따이한들의 무자비함으로만 보일수 있을수 있을것 같아 무척조심스럽다.

전쟁은 있어서는 안된다.  더욱 눈에는 보이지않는 Coronavirus Pandemic과의 싸움에서 전세계는 손발 다들고, 무릎꿇고, 총한방 쏘지 못하고 굴복당하다 시피 하는것을 보면서, 더욱 인간과 인간사이의 전쟁은 승자도 패자도 고통이라는 선물만 남게 된다는 교훈을 잊지 말았으면 하는 바램이다.

아래 주인공으로 소개된 월남 여인의 얘기를 읽으면서,  이조시대에 중공오랑케의 침략으로 왕과 신하들이 피란까지 갔었던 "병자호란"당시를 떠올리게 하는데, 월남전 당시, 죄없는 젊은 여인들이 평생 잊을수 없는 곤욕을 치렀던것 처럼, 한국의 당시 젊은 여인들과 처녀들이 너무도 많이 Rape 당했었다는 역사를 배웠던 기억이 Overlap된다.  좀 과장된 표현일수 있겠지만, 그때 능욕을 당해 태어난  많은 아이들은 중공오랑케들의 피가 몸속에 흐른다는 점을 이해하는 방향에서 아래언급된 월남여인의 삶을 이해하면 좀 마음이 편해질것 아니겠는가.

더 깊이 파헤치면, 월남과 한국간의 외교관계는 최고의 정점에 있고, 이와 병행하여 경제적 협력및 무역은 동남아시아에서 중국 다음으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점을 생각한다면, 들취낸다고해서 양국 국민들에게 득이 될것은 하나도없다고 믿는다.


1968 - the year that haunts hundreds of women

When Tran Thi Ngai was raped, she did not get justice, or even sympathy. Instead she ended up in prison.

The man had come in to buy soy sauce. Tran Thi Ngai was working as a midwife and nurse, but that morning she was looking after her parents’ shop in southern Vietnam while they were out. 
He had grenades hanging from his armour, guns on his belt. It was the summer of 1967, and the Vietnam War - pitting South Vietnamese forces, the US and its allies, against the North Vietnamese Communists - was escalating.

As he approached the counter, he held out the money. As Tran reached to take it, he grabbed her arm, then her hair, and dragged her into the back room of the shop. There he raped her. 
“It felt as if my life was over,” Tran says. All she could do was channel her energies into working harder than ever.  
When she noticed her stomach swelling she assumed she was just putting on weight. Then one day she felt a kick and realised she was pregnant.
Her parents were horrified that she was expecting a baby out of wedlock - a major taboo. The country’s social mores were heavily influenced by Confucianism, and women were expected to remain virgins until they were married.
“My parents called me ‘chửa hoang' (pregnant out of wedlock) - they beat me up badly.
“I didn’t want to carry on living. I felt completely dead inside.”
She tried to kill herself several times but survived - “it felt as if the foetus was fighting for me”.
Her parents only stopped beating her once she gave birth - in February 1968. She was overwhelmed by how beautiful her baby girl was, but was soon overtaken by anxiety. 
“I was worried about my child growing up, worried about money, worried about how I could get back to work to earn a living.”

She named the baby Oanh. But, hard as it is to comprehend, she wanted to recognise the baby’s father in some way. The middle name would be Kim. That was the soldier’s surname. Her rapist was neither Vietnamese nor American. He was South Korean. 
Four years earlier his nation had joined the US in fighting the Communist Vietcong in South Vietnam.  
Not long after giving birth, Tran woke one night to find that Kim had appeared again, looking for her.  
“He didn’t say a word, stood there for one or two minutes, then left,” she says.


A few days later, another South Korean soldier arrived. He had been sent by Kim to take Tran and the baby to his base - that of the 28th regiment of the South Korean White Horse Division - in a remote mountainous area south of her home town. 
Ashamed and isolated, she felt she had no other choice. She got into the car and spent the next two years with her rapist. She was terrified the entire time, fearing for her life and that of the child.
“It was coercion, rape, no love was there,” she says.
Tran had another baby girl with Kim, before being abandoned when he moved to another base.

She found her way back to her parents in Phu Hiep, trying to work as many hours as possible to feed her children, until Kim once again sent a comrade to her. But this time the soldier - whose name she recalls was Park - was there, at least ostensibly, to help with the children. 
“He carried them in his arms, fed them, cared for them while I was out working.”
And then one day, Park, too, assaulted her. Tran conceived another baby - a boy this time. 
Her family’s social standing was now irrevocably damaged.
“It got to a point when living in the village became too difficult. Villagers shunned me, accused me of having a Korean husband, [luring the Koreans] here to kill the Vietnamese,” she says.
She and her parents fled to another part of the province, but her reputation followed her. 
“If I introduced myself as ‘Ngai’, people would say ‘Oh yes, Ms Ngai. Beautiful, but she doesn’t have a husband.’” 
They would ask her why she hadn’t aborted her children. She says that as a midwife she couldn’t entertain the idea.
“My job was to help other women give birth - I took care of their babies, I carried them, I embraced them, washed them, cut their cords. How could I even think of destroying my own baby?” says Tran, her voice breaking.



In the same month Tran was giving birth to her first child, 11-year-old Nguyen Thi Thanh’s life was also changing forever.
On the morning of 25 February 1968 Nguyen heard screaming coming from the far side of her village of Ha My - not far from the now-popular tourist town of Hoi An - and saw smoke filling the sky. She ran down the lane to see what was happening. South Korean soldiers were pointing their guns at her.
She ran back to the house to tell her mother, Le Thi Tho, that the village was surrounded. 
“As I finished my sentence they poured into our house.”
Later reports were to suggest the soldiers were members of the Blue Dragon Division, a notorious South Korean marine corps.
They ordered her entire family, along with another woman and her children, and a friend of her younger brother, into the underground shelter in their front yard.



They threw grenades in after them, killing Nguyen’s aunt and her infant cousin instantly. 
She says her mother tried to shield her and her brother. “‘We are doomed, my baby,’ my mother cried out.
“My whole body was burning and then felt numb... I could see other people’s blood all over me,” Nguyen says.
Nguyen’s eight-year-old brother lost a leg and eventually died of his injuries in hospital. Only Nguyen and one of her cousins, both badly injured, survived, crawling to a neighbour’s for help.
She says that the soldiers then burned her house down. 
“I could hear the popping and crackling sounds from burning bamboo. I smelt smoke, fire.”
More than 135 people in Ha My were killed that day, with just a dozen of the villagers surviving, she says.
Although she says South Korean soldiers had regularly visited Ha My before, looking for Vietcong, she has no idea why 25 February 1968 was different. 
“We don’t know why they were so aggressive that day. They even killed three and four-month-old babies.”



What is known is that this period marked a turning point in the Vietnam War. 
In late January of that year the North Vietnamese and Vietcong launched the infamous Tet Offensive - a bloody military campaign against the South Vietnamese, the US and their allies. The retaliations were vicious, the most notorious being the My Lai massacre - the gang rape and mass murder of Vietnamese civilians by US troops in March 1968.

Nguyen did not witness the immediate aftermath of the killings in Ha My - she was taken to hospital in Da Nang. But her older brother told her he watched as the soldiers returned the next day with tractors to flatten the village, destroying the bodies. 

While there has not been an apology for the atrocities perpetrated by the US during the 20-year Vietnam war, there has been an acknowledgement in the form of reparations and a damning war crimes tribunal.
But South Korea’s government, which now has close economic ties with Vietnam, appears unwilling to engage in a review of its role in the war. Seoul sent approximately 320,000 troops in a move analysts say was rooted in a fear of a “domino effect” spread of Communism.
South Korea’s ministry of defence sent a letter to Nguyen and 102 other survivors last September saying it has no record of any civilian killings carried out by its military in Vietnam and there needs to be a joint investigation by both governments in tandem to check the facts, but that this is currently unachievable.



The South Korea Veterans’ Association also attempted to sue her for defamation and fraud, although the case was dropped.
It is not possible to prove who was responsible for the massacre that killed Nguyen’s family in Ha My. But one South Korean veteran, Ryu Jin-sung, says his division was responsible for a similar massacre just two weeks before the Ha My killings.
Ryu’s company was on patrol when a bullet was fired at them from the direction of Phong Nhi and Phong Nhat, two villages a few miles from Ha My. Attacks began as retaliation - the company dividing into three units to attack the villages from three different directions.



Ryu’s unit was the first to move out, after his comrade shot dead an unarmed elderly man. That evening he heard his comrades boasting about killing young children and women, and the next day he saw bodies of civilians laid out on the side of the road.

https://www.bbc.co.uk/news/extra/lhrjrs9z9a/vietnam-1968

외교문서 공개 "임수경 방북주도한 임종석부분 쏙 뺏다" 중고등학교 역사책에 박정희는 독재자로 둔갑.. 빼고 박고...

나의 조국 대한민국, 그역사는 5천년쯤 된다고 해서,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 어쩌고 저쩌고....'라는 인용구를 참으로 많이 사용하는것을  어려서 부터 보아 왔었다. 반만년이라는 단어속에는 우리는 그정도로 품위있고 예절바르고 불의를 못참는 의리가 있고 뿌리가 깊은 단일민족이다라는 뜻을 품고 있는 것으로 나는 국민학교때 부터 그렇게 배웠었고, 지금도 눈딱감고 그좋은 점만 이해할려고 안간힘을 쓰는 황혼인생이다.

민주주의 대한민국이 이승만 박사의 주도아래 창설될때, 이북에서는 김일성 독재왕조가 같은 시기에 선언된것을 역시 국민학교시절에 맨처음 배웠었다. 좀과장되긴 했었지만, 그때 어린꼬마였던 우리들은,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얼굴이 나처럼 정상적이었고, 북한주민들은 우리와 같은 똑같은 민족으로 얼굴도 똑같은 한민족이었지만, 김일성독재자는 사람을  맘데로 죽이고, 감옥에도 처넣는, 이마에는 괴상한 뿔이나고, 얼굴형상은 만화에서 본 무서운 괴물로 상상되는, 지금 생각하면, 철저한 반공교육을 받았었다.

아마도 국민학교 3-4학년쯤 됐을때,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거운동하는것을 아버지로 부터 설명듣고, 선거를 잘해야 한다는 말씀 하시면서, 이승만 대통령의 독재정치 종식을 외치는, 그리고 잘살아보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전국을 유세했었던, 신익희 선생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때 이승만 대통령은 재선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었다. "갈아봤자 손해다. 구관이 면관이다(?). 라는 선거구호도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다.

당시의 여당대 야당의 선거전략은, 아버지가 설명해주신것을 이해하기로는,  독재를 없애고, 국민들 잘살게 하겠다는게 선거전략의 전부였었다. 지금처럼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자들이,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에서, 내놓고, 이북을 불법으로 드나 들면서 이북을 찬양하는 자들이 국민들앞에서 선거운동한다는것은 상상도 못했었다. 현문재인 정부가 지난해에 헌법개정을 위한 Draft를 만들고, 발표한것을 보면 온몸이 섬뜩해지는것을 느끼기도했었다.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정부체제"를 그들은 그럴듯하게 사탕발림해서 "민주주의 대한민국체제"로 슬쩍 바꾼것이다.

내가 공무원 졸병으로 사회생활 시작한지 얼마안돼, 당시 서독에 기술연수차 출장을 갔을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까지도 대한민국의 당시 나같은 젊은이들의 이북공산국가와 세계 공산국가의 종주국 쏘련, 그리고 모택동의 중국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선입견은 우리와 다른, 위에서 언급한 괴상한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머리속에 꽉박혀 있었고, 그런사람들을 한번 만나면 어떻게 처신해야 하나?로 상상했었다.

독일로 가는 직행 비행기가 없었기에, 일본 하네다 공항에서 독일 "루프트한자" 비행기로 바꾸어 타고, 대한민국 촌놈이 기내에 들어가 좌석을 찾아 앉았는데, 내옆에는 장발의 젊은 일본청년이 앉게됐다. 입은 옷이나 모든 면에서 나보다 훨씬 세련된 외모였었다. 긴시간  달리면서 그와 얘기를 나무었는데, 나에게 던진 말한마디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폴란드에 장사(무역)하러가는 길이다"였다. 속으로 깜짝 놀랬었다. 공산국가 폴랜드는 나의 머리속에는 뿔난 괴상한 사람들이 사는동네로 생각했었는데... 장사를 한다?

국민들의 정치적 사상은 보편적으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만 생각했을뿐 그반대의 공산국가는 괴물들만의 세상으로, 학교에서 배웠고,  6/25남침 전쟁을 치른 어른들의 말씀에서 배웠었다. 물론 보이지 않는 사회의 음침한 곳에서는 북괴를 신봉하는 공산주의자, 간첩들이 득실 거리고 있다는것을 후에 알았지만...

이북은 그때나 지금이나 국민들은 굶주리고, 추운겨울에는 아사자가 발생하고, 평양에 사는 특수층들만이 경제적, 문화면에서 조금 나은 생활을 하는, 지옥같은 세상이라는 인식이 전세계적으로 잘알려져 있다.  훨씬 잘사는 대한민국이, 같은 동족이라는 이름으로 정치제제를 떠나 인도적으로 도와주는 온정의 손길을 보낸 아름다운 면도 근래에는 자주 봤었다.  그만큼 대한민국에서는 자유가 보장돼고, 국민들은 능력껏 벌어서 잘먹고  잘산다는 뜻이다. 이런 Beacon을 올리고 계승시킨분은, 영웅 박정희 대통령임을 모르는 대한민국 국민은 없다고 본다. 현정부는 개정된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경제발전의 영웅의 이미지는 쏙 빼고, "독재자"로 낙인찍어 어린 꿈나무들에게 가르치고 있고, 김일성의 기습남침을 남한에서 북침한 민족전쟁으로 둔갑시키고, 민족의 지도자로 추앙하는 내용으로 한국의 역사를 다 바꾸어 꿈나무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자유를 악용하면 방종이되고, 사회는 더 시끄러워진다. 이틈을 타서 이북공산정권은 수많은 간첩을 남파하여, 아직 정신적으로 어린 대학생들에 침투하여, 모두가 평등하게 잘먹고 잘산다는 공산주의 사상과 Marxism–Leninism을 주입 시켜, 꿈많은 젊은이들을 빨간공산주의 환상에 빠지게 만들어왔고, 공산주의 사상은 허용이 안됐고 현재도 허용안되는 대한민국에 뿌리를 깊이 내려, 1980년대에는 "전대협"이 탄생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음이다.  1980년대 말의 전대협회장은 누구나 잘알고있는 "임종석"이었다.

임종석이가 북한 김일성 괴뢰정부와 비밀리에 협잡하여, 1989년도에 레닌사상에 흠뻑 젖어있던 "임수경"를 평양에 비밀리에 보내, 바로 정기 항공로를 통해 평양에 입국하면 금새 들통날것을 피한다는게
‘서울→도쿄→서베를린→동베를린→모스크바→평양’루트를 통해, 대한민국의 주적, 이북의 김일성이를 만났고, 평양시내의 환영대회에서 영웅적 환대를 받았었다. 헌법에 의하면 그러한  역적행위를 저지른 반역자들을 법에 의해 이세상과 작별 시켜야 함에도, 당시 남한사회는 자유의 물결을 타고 사회질서가 어수선하고, 그사이 사법부에 침투한 전대협출신들이 판사로 재직하면서, 법은 이들에게 관대한 처분을 했었다.
그임수경이는 그후 "국회의원"까지했다. 그만큼 빨간색의 국민들이 저변에 풀뿌리처럼 깔려있는 증거였다.

골수공산분자인 임종석이가 문재인 정부의 초대 비서실장을 했다는것은, 대한민국에는 공산주의자들이 정부조직의  각부서에 뿌리를 깊이박고,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국민들에게 큰 위협이 되고 말았다.  모두가 자유롭게 잘살고 계급없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문재인씨의 감언이설에 푹빠진, 넋빠진 국민들은 그를 대통령으로 선출했고, 그후 3년이 지난 현재, 경제폭망은 물론, 대한민국에는 민주주의 방식의 법운영은 없고,필요시 문통의 명령은 초헌법적이다. Coronavirus Pandemic방역을 위한 초기대응책을, 그는 의료전문가들의 건의를 한마디로 거절했고, 그결과 대한민국을  Covid-19 Pandemic의 온상으로 만들어 전세계로 퍼지게하는 Bridge역활을 한 반역죄는 당장에 단죄해야하는데....

며칠전에는 그동안 비밀에 잠겨있었던 외교비사를 법적으로 허락된 보관 연도가 만료됨에 따라 공개를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국가의 생존이 걸린 극비사항은 제외될수 있으나, 그외의 모든 외교비사는 공개됐었던게 관행이었고, 모두가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그렇게도 궁금해 하던, 전대협 임종석이가 주관하여 임수경이를 이북에 정부몰래 평양에 보냈던, 방북사건은 쏙 빼고, 그에 설명도 없었다.  외교의 수장은  강경화다.
문재인의 승인없이 가능했을까? 

그녀의 역량을 의심치 않을수 없다. 그녀는 UN의 한부서에서 과장( Section Chief)로 근무 했었는데, 문재인이가 발탁하여, 수직상승하여 장관직 회전의자에 앉았으니,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Puppet 노릇하는게 문재인에 은공을 갚는것 쯤으로 여기고, 외교문서 비밀 해제 하는데도, 문재인 공산사회주의 정책에 반하는내용은 다빼고, 조작하는 행위를, 처음부터 현재까지 밀어부치고 있다는것 국민들은 애통해 하고 있다. 

서방세계, 특히 미국과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은, 문재인 정부의 친북정책에, 그동안 혈맹국, 동맹국으로 우의를 다져왔던 믿음을 더 이상 신임할수없어, 직간접으로 직소도해보고, 회유도 해보고, 최악의 경우 외교전쟁까지도 해봤지만.... 문재인과 그세력들은 오히려 더 난리를 편다.  지금 한국은 사회저변에 사회주의 공산주의 뿌리가 너무도 깊이박혀, 4/15총선에 자유민주주의를 지킬려는 야당의 보수진영의 선거운동에 까지 온갖 방해을 하고 있지만, 공권력을 Front Line에서 지키는 경찰은 수수방관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선거판에 "임종석"이가 앞장서서 공개적으로 그들 패거리의 대변인을 했던, 한젊은 여인을 당선시킬려는 선거공작운동을 하고 있다는 뉴스는, 자유민주주의 한국을 지킬려는 보수진영을 여지없이 짖밟고 있다.  앞날이 너무도 암울하다.  아래에 임종석의 선거운동 보도내용을 링크해놨다.

https://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4/02/2020040204212.html

이번 선거에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수호할려는 보수진영이 참패하게되면, 희망은 완전히 없다. 국민들은 이점을 명심하고, 투표하는것도 중요하지만, 개표시 도둑맞지 않도록 Virgilant 해야한다.



입력 2020.03.31 12:02 | 수정 2020.03.31 15:15

기밀해제 24만쪽하며 최대사건 '임수경 사건'은 비공개
임종석 전 청와대 실장 연루사건이라서?
외교부, 정확한 이유 해명 못해


외교부가 31일 30년 지난 외교 기밀문서 1577권(24만여쪽)을 전면 공개했다. 외교부는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 마련된 ‘연례 외교문서공개제도’ 시행에 따라 1994년부터 연례적으로 일부 극비를 제외하고는 가급적 많은 기밀문서를 해제해 국민에 공개하고 있다.

하지만 외교부가 이번에 기밀해제 대상연도인 1989년에 발생한 최대 국민적 관심사였던 ‘임수경 무단 방북(訪北) 사건’은 공개 대상에서 쏙 빼 논란이다. 별도의 설명도 없었다. 외교부가 외부 심사 등 기밀해제 범위를 정하는 과정에서 북한 문제에 예민한 현 정권의 코드를 맞추려 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일고 있다.

임수경 방북은 임종석 전 청와대 실장 등 현 정권의 실세로 일컬어지는 전대협(全大協) 출신이 기획·주도한 사건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유엔 인권 고위직(Section Chief-한국정부조직의 과장급) 출신이지만 장관이 된 이후 이례적으로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를 공석으로 두는 등 유난히 북한과 관련 문제될만한 일은 꺼리는 경향을 보인다. 이런 정책 기조가 이번 외교문서 공개 과정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준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최근 미국 국무부 연례 인권보고서는 강 장관의 ‘북인권 대사’ 공석 조치를 반인권 사례로 꼬집었다.

이번에 공개된 외교문서에는 노태우 정부가 헝가리 등 동유럽 국가와 수교하기 위해 거액의 차관을 건넨 사실, 아키히토(明仁) 당시 일왕의 방한 관련 사항 등 노태우 정부 초기의 주요 이슈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 밖에 노태우 정부가 국제노동기구(ILO) 가입 여부를 놓고 노동운동 격화 우려에 따라 갈팡질팡했던 과정을 엿볼 수 있는 문서도 이번에 공개됐다.

하지만 외교부는 24만여쪽에 달하는 방대한 기밀 문서를 공개하면서도 당시 남북 최대 문제이자 국제적 관심사였던 임수경 방북 사건은 거의 통째로 누락했다.

임수경은 당시 일반적인 베이징 경로가 아닌 ‘서울→도쿄→서베를린→동베를린→모스크바→평양’이라는 특이한 방북 루트를 거쳤다. 당시 해외 공관에서 임수경의 방북 과정과 이를 도운 이들의 행적 등이 파악돼 기밀 문서로 정리됐다면, 이번에 해제될 수 있었다.

당시 외교부는 임수경 방북 이후 국제사회를 대상으로 각종 외교 활동을 벌였으며, 일부 활동은 이미 국내 언론 보도 등 다양한 형태로 알려졌다. 그런데도 외교부는 임수경 방북 사건 관련 주요 문서를 비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아직 국민에 알려지지 않은 내용은 물론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 담긴 외교문서도 국민에 공개하지 않은 것이다. 


대신 외교부는 ‘임수경 사건’과 관련해, 일부 해외 친북(親北) 정부 관계자들이 당시 한국 외교관들에 “왜 임수경을 구속했느냐”고 압박하는 상황을 포함한 문서는 공개했다. 북한 외교관이 한국 외교관에게 임수경 구속 건을 문제 제기하는 장면도 공개됐다. 문서에 따르면, 중남미 페루 주재 리인춘 북한통상대표는 한 리셉션장에서 한국 대사에게 “임수경은 왜 구속하는 것이요”라고 계속 추궁했다. 중남미, 아프리카 국가의 정부 관계자들이 임수경 구속은 부당하다며 당시 한국 정부를 비방했다고 보고된 문서도 이번에 공개됐다.

전직 외교부 차관은 “외교부가 임수경 사건과 관련해 다른 나라들이 부당하다고 지적하는 내용은 공개하면서 해당 사건의 본질을 아는데 참고가 될 문서는 공개하지 않은 것은 공정성과 형평성 차원에서 문제가 있다”면서 “국민에게 편향된 인식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외교부는 이번 기밀문서 해제에서 1989년 중대 사건이었던 ‘임수경 방북’ 관련 문서는 공개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외교문서 공개 심의제도가 여러 단계로 되어 있는데 모든 단계에서 비공개 판정이 나왔다”고 답했다. ‘비공개 판정이 나온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알기 어렵다”고 답했다.

‘임수경 방북 사건’은 1989년 6월 30일부터 8월 15일까지 당시 한국외대 불어과 학생 임수경씨가 북한을 무단 방문해 당시 남북한에 큰 파장을 일으킨 사건이다.

북한은 1989년 2월, 7월 1일로 예정된 평양 세계 청년학생축전을 개최하면서 조선학생위원회 명의로 한국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에 초청장을 보냈다. 이 초청장은 조선학생위원회, 조선(북한)적십자사, 대한적십자사, 국토통일원(현 통일부)을 거쳐 전대협에 전달됐다. 이에 당시 임종석 전대협 제3기 의장은 '평양축전 참가 준비위원회'를 두어 축전 참가를 준비하면서 임수경의 평양 방문 건을 추진했다.

https://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3/31/2020033103045.html

Wednesday, April 01, 2020

Coronavirus Pandemic과 싸우면서 내가 보내는 요즘의 하루일과 - 단순하다. 젊은이들은...



코로 맏는 냄새와 눈으로 보는 주위풍경은 분명 화창한 봄날이 오고 있음을 확실히 느낀다.  지난해의 경험을 잠시 뒤돌아 본다면, 이맘때쯤에는 Lunar와 둘이서 차를 몰고, 봄의 전령을 Wild Field에서 찾아가서 만나고져, 멀리는 거의 2시간, 적게는 한시간 이상을 달려서 새로 솟아나는 봄의 전령들과 인사(?)도 하고, 한치의 오차도없이 변화하는 계절의 신비함을 음미하곤 했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집에서 거의 24시간을 보내야 한다.

어디서 부터 잘못됐는지는, 오직 우리가 살고있는 지구의, 내가 믿고의지하는, 창조주만이 알고 있을것이지만, 금년도 1월말경 부터 이곳 내가 살고있는 대륙을 불법으로 침범하기 시작한 Coronavirus Pandemic에 총한방 쏴보지 못하고 당하고있는 나를 포함한 국민들은 전쟁에 패배하여, 많은 아까운 목숨들이 숨을 거두는 공포에 사로잡혀 살아가고 있어 왔는데, 이제는 Coronavirus Pandemic과 싸울 능력이 없어, 그냥 집에서 24시간 방콕하라는 지휘관들의 명령에 따라, 아무런 Outdoor활동없이 TV를 보거나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는 정도이고, 유일하게 허용된  밖의 출입은 뒷뜰의 넓은 온타리오 호수가를 운동삼아 걷는것이 전부다.  걷기가 하루의 일과중 가장 의미있고, 나의 숨통을 트이게 하는 활력소 역활을 해주기에 오늘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운동을 시작한지가 벌써 한달반이 넘는다. 오늘도 낯시간에 괘종시계의 추처럼 움직인다.


온타리오 호숫가를 걷기위해 지하차고를 통해 뒷뜰로 연결된 뒷문을 열고 발을 대딛으면 바로 잘 가꾸어진 화단이 눈에 들어온다.  3일전만 해도 아직 차거운 날씨에 나오던 화단속의 Shoots 가 겨우 움트는것을 봤었는데....오늘은 벌써 꽃이 활짝 펴서 나의 발길을 잠시 멈추게 유혹하는것 같았다.  내가지금 Covid-19와 싸우는 심정으로, 야생화는 긴겨울을 그렇게 고생(?)하면서 오늘을 기다렸을 것같다는 생각이다.


구쏘련이 무너지기전까지, 그후에도 우리 인류는 남의 나라를 정복할려고, 다른 한쪽에서는 잡아 먹히지않을려고 GDP의 20-30%을 투자하여 신무기를 만들고, 한시도 감시를 늦추지 않고 오늘에 이르렀는데, 지금 그러한 신무기들은, 인류가 살고있는 지구를 완전 초토화 시키고있는 Covid-19에는 휴지조각만큼의 가치도 발휘하지 못하고, 그대로 당하여 병들게 하고, 더러는 목숨을 파리잡듯이 거두어 가고있는 공포속에서 벌벌 떨고 있는 것이다.  미사일이 있으면 뭘할것이며, F-35최신예 전투기가 있으면 뭘할수 있으며, 원자폭탄을 소유하고 있다고 뽐내면 뭐에 사용할수있단 말인가? 지구전체가 Coronavirus Pandemic과의 싸움에서 백전백패 당하고 있는것을 보면서, 우리 인류끼리 싸우고, 미워하고.... 이순간에 내가 느끼는것은 전부 "도토리 키재기"라는 어리석음일뿐이다.


온타리오 호숫길은 항상 너그러운 마음으로 가슴을 활짝 열어놓고, 우리 부부를 비롯한 다른 친지들을 맞이 하는것을 느낀다.  내가 걷은 호숫길 오른쪽의  숲속에는 나의 이웃들이 사는 보금자리들이 즐비하다. 내가 호숫가를 걷고있는 이시간에 그친지분들은 어떻게 Coronavirus Pandemic과 전쟁을 치르고 있을까?


전에는 새로 짖고 있는 고층 Condo빌딩을 보면서, 일면 부러워 하기도 했었고, 이빌딩이 완성되면, 내가살고있는 온타리오 호숫가의 새로운 명물이 될것을 기대하면서, 혹시나 하고 Show room에 들려 구입할려는 사람처럼 행세하면서 구입 가능성을 물어 보기도 했었는데, Receptionist 대답은 아주 간단하게 "Sold out"이었었다.  그랬던 저높은 빌딩을 쳐다보는 나의 시선은, "다부질없는 짖인데...."였다.



어제 까지는 내가 걷는 호숫가의 넓은 주차장에는 잠시 나처럼 산책하러 나온 시민들의 차들이 즐비 했었는데, 아 이게 웬말인가? 지금 나의 눈에 보이는 주차장 입구에는 바리케이트가 드리워져 있었고, 커다란 안내표시가 걸려 있었다. "Covid-19 Alert" 싸인이 보였고, 그아래에는 Covid-19 전염병 때문에 공원안의 모든 시설을 폐쇄한다 라고.  그래서 좁은 차도에 상당수의 차량이 주차되여 있는 이유를 알수 있을것 같았다.




한쌍의 청둥오리가 넓은 온타리오 호수를 싫다(?)하고, 어제 내린비로 잠시 물이 고여있는 Trail Walk의 옆에 고인물속에서 유영하고 있었다. 이들도 우리가 가끔씩은 간식 또는 외식을 즐기는것 처럼, 잠시 이곳의 Pond(?)를 즐기는가 보다. Lunar가 옆을 지나 걷고 있지만, 오히려 우리의 밀월행사에 초치지 말라는듯이 유유자적이다.  그만큼 평상시에 친분을 다져왔다는 뜻일것도  같다는 생각이지만.....



봄이 오는것을 싫어 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직 뱃놀이 하기에는, 비록 햇쌀이 쨍하다해도, 쌀쌀한 날씨지만, 이들 두 젊은이들에게는 최상의 날씨로 느껴졌었나 보다. Motor boat를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세대간의 간격이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수 없다. 걷는것 만으로 나는 만족하지만....



요즘에는 주위에서 알을 품고 있거나 짝짖기를 하기에 바쁜 Waterfowls를 심심찮게 목격한다.  한쌍의  Swan이 벌써 알을 품고 있는 광경은 지난해 봤을때보다 더 멋있어 보이고, 종족의 소중함을 더 깊이 느끼게 해주고 있으며, 청둥오리는 아마도 보금자리를 찾고 있는것 같아 보였다.  Lunar가 그들에게 응원의 몸짖을 해주었다.



따듯한 봄날씨가 땅속에 숨어지내던 Wild life들 까지도  밖으로 나오게 만든것을 본다.  Skunk  같기도하고  Raccoon같기도한, 이친구가 나를 응시하고 있다.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치 나를 조롱하는듯이....
"네가 기어오를 능력(?) 있는가? 한번 시도해 보거래이...."라고


Purple의 야생화.... 옆을 지나는 많은 시민들의 사랑을 많이 받겠다는 수줍은 모습으로,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었다.  총도없고, 전투기도 없는 야생화는 Covid-19 Pandemic에 아무런 두려움없이 아름다움을 보내면서 Conquering하고 있는데.... 나는 겨우 방콕으로 방어 할뿐이고....



경찰의 Patrol Car가 눈에 보였다. 불의의 사고라도 발생할까봐 이곳까지 납시셨나 보다.  어제밤 뉴스에서는 내가 살고있는 이곳 도시의 경찰병력중 500명 이상이 Coronavirus Pandemic의 검진결과, 양성확진자로 판명되여 2주간 Self-isolation하게 됐다는 슬픈 소식이 있었다. 이경찰관은 제발 무사히기를 걸으면서 기원해 보았다.



온타리오 호수에 둥둥 떠 있는 Downtown의 Skyscrapers들이 지금은 거의 유령의 도시가 되다시피 환경이 완전히 변해 버렸다.  흔들리는 물결에 거대한 도시의 다운타운 빌딩들이 같이 춤추는듯한 상상을 해보는것은 어렵지 않다.  이도시의 명물, CN Tower도 폐쇄 당한지가 벌써 몇주째다.
각국의 리더들에게 주문해 본다. 앞으로는 미사일, 원자폭탄, 최신 전투기 등등의 개발에 국민세금을 낭비하지 말고, Coronavirus Pandemic을 쉽게 퇴치할수있는 신무기 개발에 전력투구해 주시기를....


다운타운의 Skyscraper 에서 두발짝만 오른쪽으로 옮기면, 바쁘게 승객들을 실어 나르던, Island Airport가 보이는데, 지금은 이곳역시 조용하다. 이곳도 Coronavirus Pandemic에 초토화 됐다는 뜻이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뜨고 내리던 근거리 비행기들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 이런게 바로 유령의 도시라는 것일까?
지금 걷은 이 Trail을 걸으면서, 머리위로 날으던 비행기의 모습이 지금 막 나타날것 같은 느낌이다.

 
Humberbay Park West 끝지점에는 조그만 Lighthouse가 있다. 이곳에서 등대를 바라보고 계속항해하면 미국 뉴욕주의 도시  Rochester 항구에 도달하게 된다.  선배들의 옛얘기를 들으면, 1950년말까지만 해도 Yacht 를 타고 그곳에서  이곳으로 건너와 주말을 즐기곤 했었다고 한다.

Rochester는 나에게 또하나의 추억이 깊은 도시다. 1970년대 중반에, 같이 근무했었던 후배 두분이 Car Wheel Lathe 기술훈련차 이도시에 왔을때,  막이민온 나와 연결이 되여 그곳까지 달려 갔었던 기억이다. 시민권자가 아니기에 미국비자를 받았어야 하는데.... 만난다는 기쁨에취해 달려 갔었는데, Border Security Officer에게 서투른 영어로 사정을 얘기했더니, 너그럽게 국경을 넘게 해줘서 머나먼 이국땅에서 그두후배분들을 만났던 소중한 기억이다. 한국방문때 그분들을 만나면 지금도 그얘기를 나누곤 한다.

꿈많은 어린 소년 소녀들이라면  막연히 그리움속에서 Rochester에 대한 동경심을 많이 자아낼것 같은 옛얘기들이다.



날씨가 봄기운을 생산해 내면서, 바위틈 굴속에서 겨울을 나던, Beaver가 세상으로 모습을 드러 냈는데, 나보다 앞서 걷고있던 한 젊은 Couple이 친구가 되기위해 갖은 제스처를 다 쓰면서, 이친구와 대화를 할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한컷 했다. 내가 가까이 가자 손짖을 하면서 이놀라운 광경을 보라는 신호를 보낸다.
보통 이친구는 사람을 보면 바로 옆의 숲속으로 도망가는 습성이 있는데.... 오늘은 횡재를 한 셈이다.

나의 기억으로는 이친구는 수륙양용의 동물이어서 밤에는 물가에서 쉬고있는 청둥오리, Baby Swan 들을 몰래 습격하여 먹이로 꿀꺽하는 못된 친구다.  오늘의 모습에서는 그러한 생각을 할수없게 한다. 그래서 지난해에는 나의 콘도 창문을 통해서 Lake Ontario의 물위에서 여유있게 Swan 부부가 새끼들을 돌보면서 물을 헤처나가는 광경을 보곤 했었는데....결국 성인으로 자라는 광경을 볼수가 없었던 기억이 있다.




가끔씩 만났던 수상 스키어를 오늘 또 만났다. 많은 얘기를 나누지만 않았지만, 마주치면 인사를 하고 몇마디 주고 받았기에 안면이 있어, 오늘도 내가 먼저 "또 만났구나, 날씨가 최적인것 같아 맞지? 나는 이제 15 Lapses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야. 스키 즐기길 바란다 " 그가 환하게 웃으면서 "반가워, 오늘이 최적인것 같아서 다시 왔어. 아 벌써 15번 공원끝쪽 구간을 돌았다고? 장하다. 우리 모두 건강하자." 부담없이 나눈 몇마디에 조금은 힘들어 했었는데....싹없어지는 기분이었다.





집에 도착했을때는, 항상 그랬드시, 전화기의 Function중 하나인 걷기앱을 열어서 확인해 봤다. 예측했던데로 11,500보. 약 한시간 40분에 약 8키로를 걸었다. 이만하면 만족할수밖에... 지금의 비상시국에 뭘 더 바라겠는가.  두다리가 아직은 건강하다는 증거 아닐까?  이제부터는 내일 이시간까지 다시 방콕해야한다.
TV를 보고, 인터넷을 설렵하고...

요즘 우리부부는 아침에 눈뜨면 "여보 출근해야지, 늦으면 안되니까..."로 인사한다.
저녁에는 "야 이젠 퇴근하자 내일 아침 출근 시간에 늦으면 안되니까..."라고.
침실에서 문열고 거실로 나오는것을 출근, 거실에서 침실로 되돌아가는것을 "퇴근"이라고 한다.
그만큼 Coronavirus Pandemic이 우리 부부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에게 족쇄를 채워 꼼짝 못하게 한다는 뜻이다. 모두가 건강하게 그리고 슬기롭게 이비상 시국을 무사히 넘기시기를 기원한다.
오늘도 하루가 저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