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December 04, 2015

오늘 Governor - General, David Johnston's 시정연설. Justin Trudeau 자유당정부 정책 발표.

캐나다 연방총독, David Johnston은 오늘 오후 새로정권을 잡은 자유당정부의 정책이 담긴 Throne Speech를 오타와 의회빌딩내 상원의원실에서 생중계로 전국에 방송됐다.
이번 총독의 정책발표는 Trudeau수상의 선거공약이 많이 그대로 나타났다.


 새로 정권을 잡은 자유당 정부의 정책이 Throne Speech를 통해, 발표됐다. 선선거공약을 많이 이행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는데, 세금감면, 사회기간시설에 예산의 집중투자, 환경과 원주민지위향상등이다.  이러한 면에 새로 예산을 사용한다는것은 전보수당 정부에서 추진했던 국방예산을 삭감하겠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예상했던데로,  Throne Speech내용은 선거운동기간 동안에 자유당이 약속했던 공약을 추진하고 그외에는 새로운내용이 거의 없었다. 정책발표내용은 자세히 검토해봐야 겠지만, 어떤 정책약속에 대해서는 자세한 언급이 없었다. 예를 들면, 연간적자예산폭이 100억달러를 초과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그에 대해서는 전연 언급이 없어 궁금증만 더 커질뿐이다.
Throne Speech의 하이라이트

세금삭감: 자유당 정부의 첫번째 공약은 인컴텍스 조정으로 $44,701에서 $89,401 연간 수입자에게는 현재의 22 %에서 20.5%로 삭감될 것이라고 한다.  또한 연간 소득이 $200,000이상되는 납세자에게는 33%로 세율이 인상되며, 이는 전체 상위 납세자 1%가 이에 해당된다.

세제혜택(Benefits): 정부는 캐나다팬션플랜을 주정부들과 협의하여 더 강화시킬계획임을 밝혔다. 국민건강협약도 주정부와 그외 테리터리와도 머리를 맞대고 추진할것이라고 했다.  선거운동중 새로집권한 자유당은 연방보건예산을 어떻게 주정부와 테리터리에 전활할것인지에 대한 세부설명은 없었다. 또한 EI 실업수당에 대한 설명에서 캐나다경제와 이실업수당이 필요한 국민들에게 최대의 혜택이 가도록 조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사회간접시설(Infrastructure): 자유당 정부는 현실적인 새로운 투자에 집중할것이고 하면서, 대중교통, 환경을 중시한 사회간접시설 그리고 사회적투자를 거듭강조했다.
원주민정책(Indigenous people): 정부는 원주민들과의 관계개선을 위해 혁신을 하겠다고 했다. 이계획추진을 위해 정부는 진실한 화해위원회창설을 주의깊게 검토할것이며 원주민들과 원주민여학생들의 실종과 살인 조사를 조속히 실시하겠다고 다짐했다. 
국방예산(Defence spending): 자유당 정부는 반복해서 강조하기를 전보수당 정권에서 추진했던 새로운 군사장비구매에 신중한 자세를 취하거나 구매하지 않을수도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캐네디언들을 안전하고 필요시 즉각 대응할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할것이며, 현재 소유하고 있는 국방능력을 재검토해서 투명하고 공개적인 방향으로 정부는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필요한 시설에 투자하고,더신속하게, 더성능이좋은 군사장비를 갖출것이다"라고 정부는 Throne speech에서 밝히고 있다. 
법(Justice): 오늘 금요일 Throne Speech에는 가정폭력과 성학대로부터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보호하기위한 입법과 공격용 무기소지를 우리 사회로 부터 없앨것이며, 마리와나의 합법화로 발생할수 있는 제반문제점들을 강력히 단속할것이라고 했다.
Environment: The government devotes an entire page to environmental issues in the speech, pledging to work with the provinces on pricing carbon emissions. “To encourage economic growth, the government will make strategic investments clean technology, provide more support for companies seeking to export those technologies and lead by example in their use,” the government states in the speech. There is also a pledge to introduce new environmental assessment processes and to make decisions based on scientific evidence as well as consultation with the public and indigenous peoples.
Open government: “The government is committed to open and transparent government,” according to the speech. “The trust Canadians have in public intuitions – including Parliament – has, at times, been compromised. By working with greater openness and transparency, Parliament can restore it.” Specific measures promised in the speech include reforming Canada’s electoral system so that 2015 is the last federal election conducted under the first-past-the-post system. The government is also promising a new system to appoint Senators and more open debates and free votes in the House of Commons. The government is also pledging not to use government ads for partisan purposes, nor will it interfere with the work of parliamentary officers or use prorogation or omnibus legislation to avoid public scrutiny.

야당의 논평

보수당(Conservatives): 임시당수 Rona Ambrose여사는 평하기를 방만한 큰 정부를 강조했고, 경제정책에 대해서는 확실한 제안을 못했다. 또한 IS와전세계가 싸우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한마디의 언급도 없었다. 일자리 창출에 대해서도 전연언급이 없었고, 경제, 개인사업에역활, 자유무역, 농업,산림,에너지분야, 자영업 등등에 대한 언급도 전연없었다. 이런 내용들이 모든사람들의 관심사인데, 앞으로 많은 걱정이 된다.
신민당(NDP): 신민당수 Tom Mulcair는 그전에 언급했던 것들이 다시 언급되지않아 다행이라고 평했다. 또한 정부가 이런류의 정책을 광고하지도 않을 것임을 천명한데 매우 고무적이라고 평했다. 또한 원주민들, Inuit에 대한 자주권 을 언급한것에 대해 무척 가벼운 마음이라고 했다. 그러나 아동보호, 빌C-51에 대한 재정비언급이 없어 조금 안타깝다고 했다. 또한 65세가 되면 자격이 있는 노령연금에 대한 약속에 대해 언급이 없어 아쉽다고했다. "더욱 안타까운점은 어린이보호에 대한 시정연설에서 한마디의 언급이 없었던점은 매우 실망이었다" 라고 혹평 했다.

시리아난민들은 계속해서 캐나다에 도착하고 있는데, 그들에 대한 후속조치는 한마디의 언급이 없었다.  전보수당 정부가 걱정했었던, 난민을 받아 들이는데 세밀한 뒷배경과 신분확인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매일 900여명씩, 연말까지 25,000여명을 받아 들인다는데, 국가안전문제뿐만이 아니고, 거주할 집문제, 경제적 도움문제 등등 불안한 요소가 너무나 많은데, 전연 언급이 없었던점은 자유당 정부에 대한 믿음과 안보에 걱정이된다. 

http://ottawacitizen.com/news/national/trudeau-government-launches-parliamentary-agenda-with-quick-throne-speech

미국검찰,세계축구연맹(FIFA)부정관련 조사차 또 16명 기소 - 양파까기같은 부정의 소굴.




밤새도록 Baur au Lac호텔앞에 대기하고 있는 언론사기자들, 12월3일 
스위스경찰은 Zurich, Swiss은 이곳에서 FIFA관계자들 붙잡아 
구속시켰다.


이렇게 까지 썩어서 냄새가 온세상을 진동시키고 있을때까지, 월드컵 축구 

집행위원회를 포함한 관련자들의 부정을 모르고 있었다가 이번에 이렇게 

천지가 진동할 정도의 칼을 들이 대여 그들을 법의 심판대에 세운다고 

하는점에 대해, 그렇타면 조금 과장하면  어느 유명한 인사의 일거수 일투족을 

쪽집게로 집어내듯이 흩고 있는 세계 각나라의 정보기관에서 모를리 

없었을텐데.... 하는 의구심만 더 커진다.  

그나마 이번 기소조치도 부정부패가 판을 치고 있는 곳으로 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미국의 검찰이 기소를 했다니, 그속내용을 알다가도 모를일이다.  수억명의 

축구팬들은 비싼 관전료를 내고  축구영웅들의 묘기를구경했지만, 결국 그들 

몇명의 아구리에 내용도 모른채 갔다 바쳤다는 억울함을 뒤늦게 발견하지만.... 

대수술의 칼을 빼든 미국 검찰에 기대할수 밖에 없다는게  현실이다.  

그래서 노망이 들어서 똥칠을 할 나이인데도 꿈쩍않고 그자리를 지키기위해,

세계의 축구팬들을 배반한채, 온갖 썩은 냄새를 진동시켰었다는 그들의 똥뱃장에 

기가 찰뿐이다.  이를 한번 정화해 보겠다고 팔을 걷어 부쳤던 한국의 정몽준씨는 

아예 발을 부치지도 못하게 이들 도적들이 철조망을 단단히 쳐 놓은 투망에 

걸렸던것을 이제는 축구팬들이 알것 같기도 하다.

이들의 출신 지역을 보면 거의가  중남미의 후진국 출신들인데,  이들이 운영하는
FIFA를 서방세계의  정보기관이나 리더들이 과소평가하여, 결국 허를 찔린 
셈이다. 

"이곳에서 믿음을 배반으로 먹칠한 행동에 분노가 하늘을 찌르다" 

5명의 전,현직 FIFA의 집행위원회 위원들이 이번에 추가로 기소된 16명속에 포함되여 

기소됐는데, 죄명은 뇌물수수, 뒷구멍으로 뒷돈챙기기를 포함한 92개의 죄목으로 

기소된것이다.  목요일에 발표된 이들을 기소한 내용에 의하면FIFA의 만년붙박이들이자 

월드컵 역사이기도한 남미의 축구계 지도자들 전부가 포함된 것이다.  

FIFA의 집행위원회가 부정부패로 썩을데로 썩은 조직을 재정비 해야할지의 

여부를 놓고 투표를 준비하고 있는 그순간에 스위스 정부의 비밀부대가 그들이 

묵고 있는 고급호텔을 급습하여,  미국의 검찰이 축구협회의 부정부패를  

척결하기위해 이른 새벽에 두번째 기습작전을 펴 이들을 체포하기 직전과 

맞물려 체포한 것이다.  

"이곳에서 벌어진 신의에 대한 배반은 정말로 모두의 공분을 사게 하고도 남았다.  

이들의 부정부패의 깊이와 크기는 상상을 할수 없을 정도다" 라고 미국의 검찰총장 

Leretta Lynch여사는 설명하고 있다.  

Zurich에 소재한 Baur au Lac호텔에서 벌어진 이번 스위스 연방경찰의 

작전으로 붙잡힌 사람은, 남미축구연맹회장(CONMEBOL)으로 파라과이 

출신 Juna Angel Napout와 북미 그리고 중남미와 캐리비안군도(CONCACAF)를 

관할하는 혼두라스출신, Alfredo Hawit였다.  

지난 5월에 있었던 첫번째 체포기습작전이 벌어졌던 호텔에서 FIFA 

집행위원회 멤버들이 모여, 협회의 스캔달에 대한  조사에 불만과,축구협회의 

최고지도부가 오랫동안 반대해왔었던,  협회운영의 투명성에 대한 개혁을 하기위해 

모인 그순간에 전격적으로 경찰이 들어닥쳐 구속된 것이다.  

1990-94년까지 혼두라스의 축구협회장을 지냈고, 현재 FIFA의 TV광고담당및 

마켓팅위원인 Rafael Callejas, 과테말라의 헌법재판소 판사인 Hector Trujillo도 

함께 구속됐다.  

그외에 1994-2012년까지 브라질축구협회장을 지낸 Ricardo Teixeira가 

포함됐는데, 그는 1978-1998년까지 FIFA회장을 지낸 Joao Havelange씨의 

사위였었다.  또 전직 CONCACAF 회장이었던 Jeffrey Webb과 전직 

집행위원회 위원이었던 Luis Bedoya도 이번 기습으로 체포된 것이다.






http://time.com/4136057/soccer-fifa-corruption-indictment-investigation/?xid=homepage

Thursday, December 03, 2015

우리는 언제 이런 황홀함을 안겨주는 축제를 만들수 있을까? 우리 국민은 경험 못한, 특별한 프러포즈


우리 조국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감동스런 한편의 Non-fiction 드라마가 있었다면, 두고두고 영웅대접을 받았을텐데..... 그것은 나의 생각이고,  외눈으로 보기를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은 뭔가 뒷구멍으로 꿍꿍이 속이 있을거라고 소근거리고 비난했을 것이다.  빨간외눈이기에.

정말로 감동스럽다.


[두 다리 잃은 참전용사 위해… 두 전직 대통령이 만들어준 감동 이벤트]

아프간서 두 다리 잃은 군인, 부시 父子가 저택으로 초청
"여친 생겼어요" 말했더니 부시 "여기서 청혼해요" 제안
여자친구 불러와 눈물의 청혼 "前대통령의 군인 사랑 느껴…"

'무쇠 다리'를 가진 청년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나와 결혼해주겠어?"

금발의 여자 친구가 답했다.

"좋아!"

아프가니스탄전에서 두 다리를 잃은 미국 상이용사가 역대 미 대통령 두 명의 도움을 받아 청혼에 성공했다.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은 10일(현지 시각) 자신의 트위터에 아프가니스탄전 참전 용사 타일러 제프리스(26)가 부시가(家)의 여름 저택에서 여자 친구에게 프러포즈를 하고 있는 사진을 게시했다. 부시 전 대통령 내외와 아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내외가 지켜보는 가운데였다.

사진 속의 제프리스는 이날 양쪽 다리에 의족을 달고 지팡이를 짚으며 미 메인주 케네벙크포트에 위치한 저택을 방문했다. 이날 아버지 부시는 작년 자신이 서문을 쓴 책 "부러지지 않는 유대(Unbreakable Bonds): 부상 장병과 강인한 어머니들"에 등장한 상이용사들을 집으로 초대했다. 제프리스도 그중 한 명이었다. 2012년 10월 아프가니스탄에서 복무 중 폭탄 공격을 받고 두 다리를 모두 잃은 그는 "한쪽 다리는 무릎 조금 위까지, 다른 쪽 다리는 무릎 조금 아래까지 남았다"고 했다.

무쇠다리 청년의 프러포즈, 증인은 전직 대통령 두명 - 미국 상이용사 타일러 제프리스가 10일(현지 시각) 미 메인주 케네벙크포트에 위치한 부시가(家) 저택에서 여자 친구 로런 릴리 앞에 무릎을 꿇고 청혼하고 있다. 이날 청혼은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과 아들 부시 전 대통령의 깜짝 제안으로 이뤄졌다. 휠체어를 탄 아버지 부시와 휠체어를 잡고 있는 바버라 여사, 녹색 셔츠를 입은 아들 부시 등이 제프리스와 릴리를 바라보고 있다.
무쇠다리 청년의 프러포즈, 증인은 전직 대통령 두명 - 미국 상이용사 타일러 제프리스가 10일(현지 시각) 미 메인주 케네벙크포트에 위치한 부시가(家) 저택에서 여자 친구 로런 릴리 앞에 무릎을 꿇고 청혼하고 있다. 이날 청혼은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과 아들 부시 전 대통령의 깜짝 제안으로 이뤄졌다. 휠체어를 탄 아버지 부시와 휠체어를 잡고 있는 바버라 여사, 녹색 셔츠를 입은 아들 부시 등이 제프리스와 릴리를 바라보고 있다. /조지 H W 부시 트위터
아버지 부시는 아내 바버라 여사가 미는 휠체어를 타고 참전 군인들을 맞았다. 91세 고령의 그는 지난 달 집에서 넘어지면서 목뼈 골절상을 입어 목에 깁스를 한 채였다. 편안한 셔츠 차림의 아들 부시 전 대통령과 로라 부시 여사도 함께했다.

이날 제프리스의 청혼은 부시 부자(父子)의 '돌발 제안'으로 이뤄졌다. 제프리스는 아버지 부시와 대화를 나누던 중 "만난 지 3개월 된 여자 친구가 있는데 만나자마자 '나를 위한 사람'이라고 느껴졌다"며 "곧 청혼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아들 부시는 그 자리에서 "지금 여자 친구를 불러 이곳에서 청혼을 하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제프리스는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이 말을 듣고 심장이 마구 뛰었다. 이런 기회는 인생에 한 번 올까 말까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당시 흥분됐던 심경을 전했다.

제프리스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여자 친구 로런 릴리(24)에게 전화를 걸었다. "부시 전 대통령의 저택으로 와줘." 얼마 후 릴리가 도착하자 아버지 부시는 "당신이 우리가 기다리던 바로 그 여성이군요"라며 그녀를 환대했다. 아버지 부시 내외와 아들 부시 내외가 지켜보는 가운데 제프리스는 두 친구의 도움을 받아 릴리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가 가지고 다니던 반지를 내밀며 떨리는 목소리로 "나와 결혼해줄래?"라고 말하자 릴리는 주저 없이 "예스!"를 외쳤다. 이후 두 사람은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 부시는 이날 트위터에 "제프리스와 릴리의 약혼을 축하하며, 평생 함께하는 행복한 인생이 되기를"이라는 글을 올려 그들을 축복했다. 제프리스는 "군인을 사랑하는 마음이 느껴져 감동했다"며 "역대 대통령을 둘이나 증인으로 뒀다니!"라며 기뻐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8/13/2015081300368.html

아시아 6개국 여행중 만든 동영상 일부.(Vietnam, Burma, Laos, Cambodia, Korea, Okinawa)

Okinawa 여행중, 고래쇼 관람중 일부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kHD9N5KGPfw

https://www.youtube.com/watch?v=fS1BvP6cjiA

월남, 사이공 시내의 한복잡한 교차로에서 모든 교통수단이 어우러져 묘기를 부리면서
제각기 제갈길을 용케도 달려가는 서민들의 삶의 일부이다. 신기한것은 사람들이 거의
Honking을 안한다는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qqfecTAHecw


루앙푸라방, 라오스의 새벽은 Monks에게 공양하는것으로 하루의 문을 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민들은 Monks 공양하기위해 새벽에 일어나 흰밥을 지어, 먼저 Monks에게 공양하고 그다음에 식구들이 모여앉아 아침 식사를 하는 아름다운 전통이 수천년 이어지고 있었다.
https://youtu.be/QZ7mPngKEdY

루앙 푸라방에서 목선을 타고 물결을 헤치고 역으로 약 30분 달리면 그곳에 커다란 동굴이 있고, 그안에는 수천개의 불상들이 모셔져 있다.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https://youtu.be/vXO7OmjfwRk

Tour Guide, Jaw는 보기드물게 친절하기도 했지만, 직업의식을 떠나서 인간적으로 서로 정을 나누면서 여행을 즐겼다. 양곤시내에 있는 가장큰 Shwedagon Temple을 관광하는데, 가장 괴로웠던 것은 Temple안은 성역 Area여서 맨발로만 입장이 허용됐는데, 바닥은 햇볕에 달구어져 발바닥이 뜨거워 마치 고문을 당하는 기분이었고, 더 괴롭힌것은 조금만 돌조각이 많이 굴러다녀 잘못 그위를 밟으면 더 괴롭게 한 기억이 새롭다.
https://youtu.be/a14GS6OBv8Q

Bagan, Burmar( Myanmar) 의 평야지대에는 지금도 약 3,000개 이상의 Stupa가 옛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한창 번성할때는 약 10,000 개 이상이 있었다고 했다.  이들의 개념을 이해하면서, 고국에서 어렸을때 각 시골 동네마다 성황당 또는 동네 입구에 수많은 장승들이 세워져 동네의 수호신 역활을 했었던 기억과 교차돼기도 했었다.  이곳 Bagan 에서는 훌륭한 관광자원으로 버마의 외화 벌이에 한몫 단단히 하고 있었다.
https://youtu.be/og5O5n9hNcM


Inle Lake안의 섬에 있는 조그만 동네를 방문했는데, 그곳에서 여인들이 베짜기를 하고 있었는데, 보통의 배틀에서 베짜는 모습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씨줄을 넣어주는 실꾸리그릇이 무척 많았는데, 아마도 무늬를 만들기위해 그렇게 많은 씨줄을 사용했는데, 여인들의 손놀림과 그분들의 계산이 참으로 신기하게 보여지기도 했었다.
https://youtu.be/1J58wFRt5TM

Wednesday, December 02, 2015

위대한 만남-박정희와 박태준 - 지금 한국은 박통같은 민족지도자가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 민주화라는 미명하에, 어수선하기 그지없는 현 대한민국의 현실을 멀리서 바라보면 볼수록 , 돌아가신 박통과, 돌아가신 포항제철의 신화를 만든 두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가슴속 깊은곳에서 솟아나오고,  이들 두분들에게  다시한번 삶의 기회를 창조주께서 주셔서  생전에  못다했던 일들을  그두분들로 하여금  다시한번 하게 한다면  그래서  이렇게 정신없이 어지러운 대한민국을  정리라도 해주었으면 좋을것이라는 망상을 수도없이 해본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세계어디에 내놓고 비교해 보아도, 정치꾼 몇명을 제외하고, 민주주의를 향유하고, 국민들이 자유롭게 살아가는 나라는 많치않을것 같다고 단언한다. 서구의 잘사나는 나라? 미국, 캐나다, 유럽여러나라들도 한국과 같은, 권리만 주장하는, 그런 나라는 못된다. 과연 한국은 특권국가다.

    두분들이 지하에서 아니면 하늘나라에서 생전에 심혈을 기울여 가난의 허물을 벗고, 잘사는 나라의 터전을, 아니 튼튼한 기초를 다져 놓은 그위에서 막난이짖들을 하면서, 이들 두분에 대하여 독재자라는 누명을 씌우고 헐뜻어 대는것을 보면서도 막걸리 한잔에 "허허 그럴수도 있겠구만....더 시간이 흐르고 철들면 이해하겠지"라고 할테지만, 앞으로 전진할려고 발버둥치는 대한민국과 국민들을, 소위 말해서 국민의 대표라고하는 국회의원들이 당리당략과 다음선거에서 표를 얻기위해, 반인륜적, 반 국가적행동을, 국가의 앞날을 걱정하는것보다 앞세워 꼴깝떠는 작태를 보면은 지하에서도 벌떡 일어나 일갈할것 같다. 

    "당신들은 태생이 어느쪽이냐? 한시간, 아니 일분 일초가 사느냐 죽느냐의 길을 가름하는 중요하고 아까운 시간들인데, 잘사는 국가를 만들기위해 끌고가는 수레를 뒤에서 국민들의 대표자로서 밀어주지는 못할망정, 꺼꾸로 당겨서 뭘 얻겠다는거냐? 누구 좋으라고?"

    "내무덤에 침을 뱉어라. 그러나 나는 미래세대에 태어날 후손들에게 잘사는 나라를 만들어주는게, 나를 미워하고 욕하는 당신들에게 비위를 맞추어 주는것 보다, 훨씬 더 급하다." 

    시대와 장소가 영웅을 만들어 준다고들 말한다.

    세종대왕시대는 지금 생각하는 자유란 있을수 없었다. 곧 임금의 입에서 나오는 말한마디가 법이고 명령이었다. 그래도 후세 사람들은 그분을 대왕이라고 존경한다.

    돌아가신 박통시대에는 지금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민주주의 보다, 우선 배고픔의 고통을 없애고, 잘사는 나라를 건설하는 명제가 최우선이었다.  경제적 밑받침과 부흥 없이 외치는 자유와 민주주의는 국민들 가슴에 헛바람만 집어넣어 결국 혼란만 가져온다는것을 깊이 간파했기에 일부 자유를 유보하고, 한때는 장발족까지 단속한 일이 있었다. 참고 견딘 그결과로 오늘의 대한민국이 건재하는 것이다.  독재자가 세상을 떠났다고, 서울에 봄이 온다 라고 좋아들 했지만, 그리고 후에 대통령까지 만들어주었지만, 그분들이 국가를 위해 한것이 무엇인가?

    며칠전 세상을 뜬 김대통령은 일제잔재를 없앤다고 역사의 산물인 중앙청 건물을 헐어내면서, 다른곳으로 이전 복원하겠다고 국민들에게 약속했었다. 들리는 말로는 약속한 복원은 온데간데 없어져버리고 지금은 옮겨온 돌조각하나 보관못하고 있다고 들었다. IMF를 불러온 망국적 행위는 거론도 안하겠다.

    이보다 먼저 떠난 김대통령은, 현재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중에서 그의 이름을 딴 가장 많은 기념관들을 만들었다. 기념관, 체육관, 도서관, 동교동아방궁 등등...국민들 몰래 다 쓸어져가는 북한의 김씨왕조에게 조공을 바쳐, 생전에 그렇게도 부르짖었던 "햇볕정책"이 적의 심장부에 꽃히게해서 결론적으로 통일의 길을 더 어렵게 만들어버린 인물이었다.

    정작 말없는 대다수의 국민들의 추앙을 높이 받고 있는 돌아가신 박통과 포철의 신화를 만든 박씨에게는 기념관 하나 만들어 놓지 못하고, 겨우 국립묘지에 안장하는것으로 끝났다.  물론 나는 확신한다. 후세에 이분들에 대한 평가는 다시 세워질 것이라고.

    뉴스에 나오는 '포항제철의 현실'을 보면 기가차서 말도 안나온다.  전부 여의도 정치꾼들의 입맛을 맞추어주느라 무쇠를 주무르는 포철도 별수없이 녹아내린 것이다.  그런자들이 민의의 전당을 독차지하고 있으니, 지하에서 두분이 통곡하다 목이 쉬었을 것이다.  정말로 미안할 뿐이다.

    당시, 대다수의 보통 서민들은 생활에 큰 불편을 느끼지 못했었다. 열심히 생업현장에서 불철주야 뛰면서 국가건설에 참여했었다. 그러나 세상물정 모르고, 얄팍하게 알고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지식을 앞세워,  이제는 이세상 사람이 아닌 두 전직 대통령들은 경부고속도로 건설당시에, 자유와 민주주의를 실시하라고 온갖 모함과 욕설을 해가면서 방해했던 대표적 인물들이었었다.  불도저앞에 드러누워 '배째라'는 식으로 고속도로 건설을 막았던 그들이었다.  '배고픔의 고통과,자유와 민주주의'라는 두개의 이슈를 놓고 택하라고 하면, 아마도 현재를 살아가는 국민들은 후자를 택할수 있겠지만,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은 배고픔의 해결을 최우선으로 삼았었다. 

    돌아가신 박통의 업적을 기리기위한 방법의 하나로, 인천국제공항을 '박정희 국제공항'으로 개명해 보자는 개인의견을 블로그에도 썼었고, 여의도 정치꾼들에게 여러경로를 통해서 개진해 보기도 했으나, 당리당략과 목에 힘주기에 너무나 바쁜 모양이다. 답장은 고사하고 댓글하나 없는것을 보면은.

    http://lifemeansgo.blogspot.ca/2011/05/516-50.html


    소설가 이대환의 글을 옮겨 놓았다.


    박정희와 박태준의 혼령이 한강을 내려다보며 막걸리를 마신다면…

  • 이대환
    소설가
    E-mail : phreser@hanmail.net
    영일만 갯마을에서 1958년 태어나 10세 때 포항제철이 들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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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7.09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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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큰 일꾼 박태준, 그가 사양한다 할지라도 그에게 포스코 공로주를 단 한 주도 권유하거나 선사(膳賜)할 줄 몰랐던 대한민국 정부가 그의 죽음을 위하여 ‘마지막 예의’를 차렸으니, 그것은 서울 동작동 국립 현충원에 두세 평짜리 유택을 마련해준 것이었다. 국가유공자 묘역의 한 귀퉁이, 거기는 박정희의 유택과 이웃이다. 박정희를 그리워한 박태준. 저승의 박정희와 박태준을 이웃으로 맺어주는 과정에는 박정희의 외아들 박지만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박태준의 유택을 마련하는 일에 박지만은 아버지의 유택을 찾듯이 성심껏 뛰어다녔다.

2011년 12월 17일, 영하 10도의 차디찬 동토 속으로 들어가는 박태준을 지켜보며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 마지막 연을 떠올리는 이들도 있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만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밤중에 ‘박태준 조각상’에 헌화 묵념하는 포스텍 학생들.
밤중에 ‘박태준 조각상’에 헌화 묵념하는 포스텍 학생들.
박태준의 ‘님’은 조국이었다. 그것도 일류국가인 조국이었다. 그 ‘님’을 만나려고 애를 태우는 그의 신념과 열정과 소원을 가장 북돋은 이가 박정희였다. 박태준이 이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에 인연을 맺었던 숱한 사내들 가운데 박정희는 그가 임종을 다투는 시각에도 그리운 사람으로 그의 영혼 속에 살고 있었다. 10시간에 가까운 대수술의 마취에서 깨어난 박태준이 구미에서 열리는 ‘박정희 동상 제막식’에 참석하지 못하는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비서에게 감추지 못했을 때, 늙은 환자의 가슴에는 그리움이 고여 있었다. 오죽했으면 비서가 미리 준비해둔 원고를 꺼내 읽어드리고 싶었으랴.

박태준이 박정희 동상 앞에 바치려 했던, 이제는 그의 유언처럼 남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그 유고(遺稿)의 전문은 다음과 같다.

이 뜻 깊은 자리를 빛내주시는 시민 여러분, 그리고 내빈 여러분.

어느덧 저의 인생은 황혼에 와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사무치게 그리운 얼굴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고(故) 박정희 대통령입니다. 그리운 각하. 고향 사람들과 시민들이 성의를 모아 동상을 세우고 제막하는 오늘, 불초 박태준이 가슴 속에 쌓인 회한을 불러내듯이 ‘박정희’라는 존함을 불러보고, 거듭 명복을 빕니다.
영정 앞에서 하직을 고하는 박정희 대통령의 세 자녀.
영정 앞에서 하직을 고하는 박정희 대통령의 세 자녀.
돌이켜보면, 63년 전 저 태릉 골짜기의 초라한 육사 강의실에서 저는 처음으로 박정희라는 특출한 분의 눈에 띄었고, 결국 그것은 저의 운명이 되었습니다. “나는 임자를 알아. 아무 소리 말고 맡아!” 이 한마디 말씀에 따라 저는 제철에 목숨을 걸고 삶을 바쳐야 했습니다. 지난 1992년 10월 3일, 4반세기 대역사 끝에 포항제철소와 광양제철소를 완공하고 동작동 국립묘지의 영전 앞에서 임무완수 보고를 올렸습니다. 그때, “각하께서 저를 조국 근대화의 제단으로 불러주셨다”고 토로했습니다만, 박정희라는 한 사람을 조국 근대화의 제단으로 불러낸 것은 우리의 시대였고 대한민국의 역사였습니다. 또한 그것은 각하의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그리운 각하.
드디어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 경제강국으로 일어섰습니다. ‘오천년 빈곤의 대물림’을 확실하게 끝장냈습니다. 그 물적 토대 위에서 민주주의를 성장시키고, 문화를 꽃피우고, 평화통일을 추구하고, 복지사회를 다시 설계하고 있습니다. 정치 후진성, 청년실업, 남북관계 등 거대 과제들을 안고 있지만, 우리의 역량과 자신감은 얼마든지 해법을 구할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왼쪽)과 박태준 회장.
박정희 대통령(왼쪽)과 박태준 회장.
문제는 지도력의 위기입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과 다름없었던 조국 근대화의 성공 비결은, 현명하고 근면한 국민과 사심 없고 탁월한 지도력이 좋은 짝을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21세기 대한민국은 국민의 역동성과 다양성을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는 힘으로 승화시킬 지도력을 부르고 있습니다. 시민의 이름으로 세운 이 동상은 하나의 기념물이 아닙니다. 한국사회에는 여전히 ‘박정희 대통령’의 공과(功過)를 따지는 시비가 있지만, 무엇보다 지도력에 대하여 진실로 고뇌하는 사람은 여기에 와서 사색해야 합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제 조국 번영, 민족 중흥, 민안(民安) 복지의 영원한 길잡이로서 여기 생가 곁에 서 계시는 것입니다.

각하께서 가족과 함께 포항제철을 방문하신 시절에는 아리따운 아기씨였던 맏따님이 어느덧 이 나라의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지도자로 성장해 있습니다. 참으로 장하고 자랑스러운 그 모습을 통해 한편으로는 세월이 참 빠르다는 사실도 깨닫게 됩니다. 각하, 이제는 저의 인생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재회하여 막걸리를 나누게 되는 그날, 밀리고 밀린 이야기의 보따리를 풀어놓겠습니다. 며칠은 마셔야 저의 이야기를 어느 정도는 마칠 것 같습니다. 부디 평안히 기다려 주십시오.

아마도 박정희의 혼령과 박태준의 혼령은 밤에 짝을 지어 마실 나가듯이 가끔씩 동작동 현충원을 빠져 나와서 ‘한강의 기적’의 추억을 더듬어볼 수 있는 어느 호젓한 자리에 앉아 막걸리 잔을 기울이곤 할 것이다. 한 번쯤은 국가도 민족도 다 덮어두고 이런 소박한 대화를 나누기도 했을 것이다.

“아무래도 요새 막걸리는 우리 때하고는 맛이 많이 다른 거 같은데.”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는 막걸리도 아껴야 했으니 물을 엄청 타지 않았습니까? 요새는 물도 안 타는 데다 각하가 그렇게 금했던 쌀로 막걸리를 만든다는 걸 아셔야 합니다.”
“아, 맞아. 그렇군, 그래.”

이러고는 둘이서 누구의 귀에도 들리지 않은, 그러나 밤하늘에 너울 같은 파문을 일으킬 만하게 한바탕 호방한 웃음을 날렸을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왼쪽부터), 육영수 여사, 박태준 사장의 함박웃음.
박정희 대통령(왼쪽부터), 육영수 여사, 박태준 사장의 함박웃음
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7/07/2015070701597.html

Tuesday, December 01, 2015

왜 그리스인들은 부모의 무덤을 파헤져야만 하는가 - 포퓰리즘의 참담한 결과, 정치꾼들에게주는 교훈.


많은 그리스인들은 그들의 부모묘를 파헤쳐 놓고 한숨뿐이다. 이유가 뭘까?
 


얼마전 까지만 해도 그리스는 유럽연합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자인 파판도르 수상의 포뷸리즘에 신이나서 국가재정이야 어떻게돼든 마약에 중독되여 미쳐날뛰는 미치광이가 되여 국가재정을 거들 내었었다.  몇번이나 유럽연합으로 부터 구제금융지원을 받았지만, 조건도 잘 지키지 않고, 한번 마약에 취해서 환락을 맞본 그들은 정부의 긴축정책을 반대하여 거리를 뛰쳐 날뛰는 폭도들로 변했었다.  그여파가 결국 부모님들이 모셔져 있는 무덤에까지 고액의 사용료를 부과하게되는 결과를 낳았고, 자녀들이 이비용을 감당못해 안절 부절하는것으로 나는 이해한다.

한국의 현실정을 보면, 정치꾼들의 인기영합주의(Populism)이 극을 달하고 있는것을 보면서, 이런 사회적현상이 계속이어지면, 그비용을 누가 감당할것인가? 결국 국민들의 세금인데, 세금도 Man Power가 일을 할수 있는 직장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동안 수차례 예측해 왔던데로, 미국이 연말에 이자율을 올리면, 그나마 한국에 투자되여 있었던 외국자본들이 썰물처럼 빠져 나가면, 그연쇄 반응이 일어날것을 뻔한데, 철딱서니 없는 정치꾼들, 특히 야당 구케꾼들은 선거에서 표를 얻기위해 공짜로 더 퍼주지 못해서 안달을 하고 있는 꼬락서니는 치를 떨게한다.

특히 서울시장 박원순의 직업을 찾는 청년들에게 월 50만원씩 조건없이 지급해준다는 해괴망칙한 Populism은 지나가는 소도 걱정하게 하고 있다.  대통령은 하나라도 더 수출해서 국익을 높이겠다고 뛰어 다니는데, 안에서는 이런 무리들이 발목을 잡고 있으니, 그리스의 재판이 될까봐 무섭기까지 하다.

사랑하는 가족, 특히 부모님의 묘를 유지할 비용이 없어 파헤쳐야 하는 그리스의 현실을 직시했으면 한다.


Grave plots


그리스의 큰도시에 있는 공동묘지는 빈자리가 없어,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이 묻혀있는 무덤을 3년밖에 사용

할게 없게하고있다. 가족들을 무덤을 파헤쳐 남아있는 뼈를 모시는데 수고료를 지불해야하고, 이뼈를 정리하여

납골당에 모셔야 한다. 그러나 많은 가족들이 이것마져도 감당못해 절절매고 있다는 슬픈소식이다.

Katerina Kitsiou씨는 데살로니카시내에 있는 한 공동묘지에 있는 그녀의 아버지묘앞에서 슬피울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아버지 Christodoulos묘가 파헤체지는것을 우두커니 처다만 봐야하는 비참함에 처해있다.  그녀의 아버지는 7년전에 돌아가셔 이곳에 모셔졌으나, 자손들이 이묘지에서 더이상은 비용관계로 모실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우리 자손들은 4년간 더 이곳에 모시기위해 관리비용을 지불했었으나, 더이상은 버틸수 없었다"라고 Katerina씨는 사유를 설명한다. 묘지를 파헤쳐 남아있는 뼈만 쳐다본다는것은 너무나 슬프게 할뿐이다. "그뼈는 바로 사랑했던 가족이다. 생전의 그를 생각하면서 바로 남아있는 몇개의 뼈만 쳐다본다는것은 또한번 장례를 치르는 기분이다" 라고.






Katerina Kitsiou and her brother Kostas Kitsou
Image captionKaterina Kitsiou and her brother Kostas at their father's grave

이러한 상황이 대부분의 그리스인들이 생전에 처할수 있는 상황임을 알고 있지만, 안장되여 있는 분들에 대한 존경의 의미로 이런 묘지 파헤치는 의식에 참석해야하는 참담함이다.

지난 50년 동안에 그리스의 도시인구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팽창하여, 그리스 국민의 절반이상이 아테네와 데살로니카 두도시에 거주하고 있다. 이렇게 도시가 팽창됨에 따라 도심안에 있는 묘지는 더이상 묘지를 확장할 여분의 땅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묘지에 안장하는 기간은 3년으로, 임대하여 사용하게되며 만약에 계약을 연장하게 된다면 그비용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폭등하게된다.  이렇게 함으로써 묘지는 다시 다른 사람을 위해 재사용할수 있기 때문이다.

관을 묻을 묘자리를 파는, Petros Bakirtzis의 설명에 따르면 현재 매주 평균 15개의 무덤이 파헤쳐지며, 이작업은 전부 기계로 하고, 그는 마무리작업만 조그만 손삽(Spade)을 들고 뛰어 들어가 한다고 했다.  가끔씩은 이런 작업을 할때 가족들없이도 한다고 하면서 또다른 묘지를 파기에 여념이 없었다.
"여기모셔진 분은 그래도 괜찮은편이지요. 어떤 경우는 아직 다 탈골된 상태가 아닌 경우도 있어요"라고 남아있는뼈를 모으면서 설명한다.
아직도 신발과 긴검정양말형태가 그대로 있는 옷조각을 들어 올리자 그안에 무릎밑의 뼈조각이 그대로 떨어져나오고, 윗옷자켓을 흔들자 그속에서도 뼈가 나왔다. 모아진뼈는 흰천에 모아두고, 옷종류들은 그옆에 있는 쓰레기 모으는 커다란 녹색빈에 덤핑한다.
Listen to Greece: No Place to Die on the BBC iPlayer, or watch Our World on BBC World News and the BBC News Channel on Saturday 28 November.

3년후에 계약에 따라 묘지를 파면, 시체중 약 1/4은 아직 완전히 탈골되지 않은 상태로 있다.  이럴경우 처리에 문제가 많아지게된다.  사망했을때 시체에 방부제처리 및 다른 약품을 사용했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한다.
많은 유럽여러 나라에서는 묘지에서 발생하는 이러한 사건들을 줄이기위해 화장을 권장하고 있다. - 영국과 Denmark에서는 약 75%가 화장을 한다.
2006년에 그리스에서는 법을 제정하여 장례시 모두 화장을 하도록 했으나, 그리스 정교회소속 목자와 신도들의 반대로 실행이 거의 중지상태에 있어, 그결과 10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남아있는 묘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스 정교회의 기본 교리는, 사람이 사망하면 제2의 부활을 믿기때문에 꼭 매장을 해야 한다는 논리다. 데살로니키의 주교, Anthimos씨는 화장한다는것은 인간존재의 흔적을 아예 없애버리는 행위라고 맹비난이다.





Archbishop Anthimos of Thessaloniki

"우리 정교회는 화장을 인정하지 않아요. 2000년 이상을 지켜온 우리의 교리를 지금에 와서 부정한다는것은 있을수 없는 일입니다." 라고 그는 강변한다.
그는 요즘 대부분의 그리스인들이 가족묘를 파헤지고 있는 현실을 알지못하고 있는것 같았다.
"나는 가끔씩 공동묘지에 가보지만, 묘지를 파헤지는 광경을 목격한적이 없다."라고 일축한다.
많은 그리스인들은 가족들을 화장하기위해 이웃나라 '불가리아'에 있는 화장터로 돌아가신 분들을 모셔 화장을 하는 경향이 높아지고 있다고한다.
Thessaloniki 시장 Yannis Boutaris씨는 그리스내에서 가장 와인생산농장을 소유한 부자다. 그는 그의 부인과 어머니를 화장시켰다.

"어머니는 생전에 말씀 하시기를 내시체가 지렁이들에게 파먹히게 하지말라"라고 유언하셨던때를 기억하면 웃는다.

"나는 아내를 화장시킨후 그재일부를 조금만 통(Urn)에 보관해서 옷장 선반에 간직하고 있으며 매일아침 옷을 갈아입을때 한번씩 흔들어 보곤 한다"라고 설명한다.

교회는 만약에 장례식후 화장을 하게된다는것을 알게되면 장례의식을 주관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른 한적한곳에 매장할계획이라고 그순간을 모면한다고한다.  Boutaris의 경우는 주교에게 나를 거짖말하는 사람으로 만들지 마시요라고 요청한후 조용히 처리했다고 설명한다.

유가족들은 묘지에서 남아있는 뼈를 깨끗히 씻어 금속으로 된 상자안에 보관 시키지만, 나라법이 묘지밖으로의 반출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많은 유족들은  마치 역사적 자료를 보관해 놓는것 같은 캐비넷안의 납골당에 모시게된다는 것이다.




Yannis Boutaris시장은 내년에 그리스에서는 첫번째 화장터를 건설할려고 계획중이다. 이를 이위해 자금을 준비중인데 쉽지는 않은데다, 성공할 확률은 극히 희박하다고 한탄이다.




Ossuary

납골당을 찾은 유족들은 보관함에 들어있는 뼈들을 꺼내서 경의를 표하고 때로는 목사님들의 축복기도를 받게한다.  그러나 납골당에서도 보관료를 요구하고, 그러나 지난 수년동안에 그리스의 경제가 완전히 파멸상태에 이르러, 이마저 감당하기도 힘들어 하고 있는 지경이다.  특히 납골당에 모셔져 있는 가족이 한명 이상일때는 그부담이 너무나 크다.

만약에 묘지를 파낼때 유족이 나타나지 않거나 납골당에 보관중인 뼈 보관료를 납주하지 않을때, 담당자들은 커다란 지하구덩이(Digestive pit)던져 버리고, 이들에 대한 어떤 의식도 행해지지않는다.  묘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이뼈들을 다른 수많은 뼈들이 있는 구덩위속에 던져 버리는것으로 유족과의 관계는 끝이다.

그러나 이런 커다란 구덩이 마져도 이제는 만원이 돼가고 있단다. 아테네에 있는 제3의 공동묘지에있는 커다란 구덩이는 이제 꽉차서 더 이상 던져버릴 여융가 없어, 이들 뼈가 들어잇는 상자들은 별수없이 그옆에 있는 가건물안에 쌓아두고 있는 실정이라고한다.

경제사정이 어려운 그리스인들은 시체를 매장하기전부터 심한 스트레스에 쌓장인다고한다. 그리스의 장례협회의 설명에 따르면 1/3 이상의 사람들이 사랑하는 가족의 장례식 비용을 감당못해 절절 매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런 고민을 해결하기위해 장례비용을 저축해 두고 했었는데 지금은 그돈을 자라나는 아이들 도와주는데 저축해 두었던 돈을 다 사용하고 남은게 없다는 얘기다" 라고 협회의 Nasos Kostopoulos씨는 한숨이다.  아테네에 있는 4개의 큰 병원의 관계자에 따르면 유해보관소에는 유족들이 장례비용을 감당못해 인수해 가지 않은 쌓여가고 있다고한다. 한병원의 소식통에 따르면 일주일에 최소한 1건이상이 발생하고 있단다.





Gravestones

"여기 그리스에서는 사랑하는 가족의 장례식, 특히 묘지에 안장하는 의식을 가장 성스러운 의식의 하나로 간주되고 있는데 그비용을 지불할 능력이 안돼 시신을 모셔가지 못하는 고통을 당한다는것을 볼때 너무나 가슴아픈 일이다. 지금은 가족들이 그러한 어려움을 감추려 하지 않고 있는그대로 보이고 있다"라고 Attiko 종합병원의 Maria Tsikaloudaki씨는 고통스러워한다.

Elpis 병원 책임자, Theo Giannaros의 설명에 따르면, 비용을 댈만한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무료로 묘지를 제공해야 하기 때문에 가끔씩은 이런 가난한 사람들을 묘지측에서 받아들일려고 하는 않는 경향이 있다라고 설명한다.

"몇년전에 우리는 수개월동안 시신을 그냥 병원에 안치한일이 있었다. 왜냐면 공동묘지에서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묘지측에 '만약에 시신을 안받아주면, 대신에 시장(Mayor)사무실로 갔다놓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은일도 있었다"
묘지의 한직원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그리스에서 가장 큰 공동묘지에서는 적어도 일년에 8백만 유로을 벌어서 지방정부에 바치고 있다고 투덜댄다.



Nikos Pahoumis' child's grave

어린 아이의 묘지를 파헤치는일은 부모님 묘를 파헤치는일보다 더 고통을 준다.
'데살로니카'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장례식장을 운영하고 있는 주인, Nikos Pahoumis씨는 수천명의 묘지를 파헤치는 일에 동참했었지만, 정작 앞으로 닥칠 그의 아들의 묘를 파헤치는 준비는 전연 하지 못하고 있다고 있다고 한다. 
약 3년전에 아들은 백혈병으로 죽었는데 그때 그들 부부는 화장을 할려고 했었는데, 주교가 화장은 안되고 매장해야 된다고 주장해서 그의 의견을 따를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Pahoumis씨는 그의 아들묘를 다시 찾는다는것을 너무도 괴로운데, 그의 아들 묘를 파헤쳐서 다시 아들의 남아있는 부분을 본다는것은 절망적일것이라고 한탄이다.
"우리는 아들을 매장할때 그가 좋아했던 장난감과 다른 기타 그의 물건들을 함께 묻었었는데, 그것들은 썩지 않는것이어서 나를 더 괴롭힐 것이다. 그것은 정신적으로 매우 고통스러운 경험을 나에게 남길일이다"라고 한숨이다.




Digestive pit


Katerina Kitsiou씨는 가끔씩 그녀의 아버지 묘를 참배하고, 담배를 꺼내 불을 붙친후 아버지의 머리가 있을것으로 생각되는곳에 꽂아놓고, 아버지와 같이 담배를 피우는것으로 상상을 해왔었다고 한다.

"나는 아버지가 영생토록 쉬는곳으로 여겼었고, 그래서 매장했었던것이다. 사람들이 이러한 심각한 문제를 알아야할 필요가 있다. 이대로는 안된다"라고 그녀는 지금은 아버지의 시신을 파낸후 텅빈 구멍을 바라보면서 설명한다.
그녀는 납골당에 모셔져 있는 아버지의 남아있는 뼈를 방문할수 있다는점에 일부 위안을 받고 있지만, 이곳에서도 머지않아 대부분의 사람들뼈가 다시 큰 구덩이속으로 던져지는것 처럼 그의 아버지 역시 그곳에 버려질것을 생각하지 않을수 없다고 한숨이다.
대부분의 그리스인들은 이러한 고통을 받아 들일수밖에 없고, 경제적 파탄의 늪에서 언제쯤 헤여날지 불확실하기만 하다. 지금 그리스에서는 가족들의 사랑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는일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너무나 비일비재하다.



Jewish cemetery gateImage copyrightIstock


출생의 기쁨, 결혼의 환희, 마지막 죽음 - 이세가지 일들이 가족간에 긴장감을 조성하고 있다. 그러나 자녀양육과 결혼문제는 끝도없이 이야기 하곤 하지만, 문제는 가족중 생을 마감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는 계속해서 풀기어려운 과제로 남아있을수 밖에 없다,라고 Sharmini Selvarajah씨는 설명히다.

http://www.bbc.com/news/magazine-349200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