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ing posts with label 새마을운동. Show all posts
Showing posts with label 새마을운동. Show all posts

Tuesday, July 05, 2022

우파국가로 태어난 대한민국인데, 우파 국민이 없었다. 민도가 낮은건지?



우리 대한민국에는 좌빨도 좌빨다운 구룹도 없고, 시류에 흔들리는 사람들의 집단, 그렇타고 진정한 보수진영도 없는, 요상한 나라, 대한민국이다. 쓸개도 없는 버러지 같은 민족으로 변했는데, 어찌하여 우리 나라가 이렇게 변했는지.... 이런자들이 대한민국을 지난 70여년동안 다스린다고, 맡은 권력을 자기네들 사람들, 내편 사람들만 위한 편가르기 정치를 했으니....

그나마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할수 있도록 Foundation을 만들어주신분은, 박정희 대통령뿐이었었다.  나머지것들은 입으로만 까고, 기회를 봐서 주머니에 착복할 생각만 하다가 청와대를 기어 나가는놈도, 쫒겨가는놈도.... 입으로만 '자유민주주의'가장 많이 외쳤던 그놈도 은퇴후의 재산을 보면, 국민세금을 횡령하여, 재벌급 이상으로 긁어 모아 그재산의 대부분을 미국에 묻어 두었었다. LA에는 돈한푼 벌어본적 없는 아들놈에게 대저택을 구입하여 살게 하고....

우둔한, 사이비 좌빨, 사이비 우파들은 왜 좌파이고, 왜 우파인가를 논리 정연하게 설명하면서 나라를 이끌어간 조직은 없었다. 다만 시류에 따라 촛불 시위에 따라 줏대없이 흔들거리고, 그데모꾼들의 집사노릇을 하다가 청와대 생활을 마감하곤 했던, 악순환이 지난번  문재인 좌빨까지 이어졌었다.   윤석열 보수우파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최소한 100여일이 지난후 하는게 국민들의 대통령에 대한 Attitude 라고 생각되여, 그때까지는 밀월여행을 계속할 것이다.

현재 윤대통령이 집권후 정책시행을 보면, 문재인 좌빨이 너무도 나라경제를 포함한 에너지정책, 국방정책, 외교정책, 국민 편가르기식 정치로 그상처가 커서, 치료하는데 고생을 많이 할것 같다는 생각인데, 앞서 언급한것처럼, 쓸개빠진 인간들, 국민들이 시류에 따라 줏대없는 비난들만, 취임한지 불과 두달도 채 안됐는데, 쏟아내고 있으니, 그래서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 국민들이 누려야하는 진정한 Freedom을 누려야 한다고 나는 주장할수가 없다.  그러한 자유를 누리기위해서는, 그이상으로 주어진 의무(Responsibility)를 일상생활하듯이 이행 해야 하는데... 조금만 자기네 정치적 이상과 맞지 않으면  그대책을 발표할 생각은 엄두도 못내면서, 쪼아 대기만 하는 냄비근성을 먼저버려야 하는데...

지금 좌빨이든, 보수든간에, 앞서 언급한것 처럼,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 할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존경심, 또는 감사한 마음을 표하는 국민들은 거의 없다. 오직 좌빨들이 읆어대는것을 보면, "독재정치를 한 군바리"쯤으로 치부할 뿐이다. 반대로 입으로만 '민주주의'주창한 김때충같은놈을 추모한다고, 기념관, Arena, Library, 등등의 형상물들은 전국적으로 20개가 넘는다고 들었다. '햇볕정책'이라는 해괴망측한 괴변으로, 국민세금을 수십억달러씨 북에 퍼주었지만, 북괴는 그돈으로 지금 핵탄두 백여개를 개발했고, 대륙간 탄도미사일 불법 발사로 대한민국을 위협하고 있는데...그래도 김때충이를 추앙 할것인가? 국민들아.

외국여행을 나는 많이 한 사람중의 하나다.  약 100여개국, 그것도 잘사는 나라보다는 못사는 나라들, 특히 아프리카, 남아메리카, 그리고 동남아지역, 중동지역과 중국을 주로 탐방 했었는데, 지금도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는 국가 고위직 공무원을 한국에 파견해서 '새마을 운동'정신을 배워서 국민들에게 생활화 하도록 하고 있다는 Local 사람들의 증언을 여러번 듣곤 했었다.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새마을운동'에 대한 개념에 대해서 지난 정부들이 기억 또는 알고나 있었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문재인 같은 좌빨은 더 심했다.

심지어 중국같은 공산주의 나라, 아랍같은 사회주의 나라에서도, 대한민국은 잘 몰라도, "박정희"에 대해서는 어느면에서는 내가 알고있는것 보다 더 상세히 알고 있는것을 보면서 놀랐었다. 대부분 그사람들은 "박정희와 한강의 기적"을 감명깊게 알고 있었다.  왜 5천년 역사속에서 한명 겨우 나온 탁월한 지도자 박정희를 깍아 내리기에만 열중하는 비겁한 국민과 나라가 됐는가다.

지난 5년간 문재인과 그좌빨들이 망처놓은 우리나라를 재건하는데는, 옛날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 있었던, 헌신적인 국가재건의 정신으로 다시 세우지 않으면 희망은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  박정희의 새마을 정신을 밑바탕으로 국민의 구심점을 한군데로 모아 매진해야한다.  이러한 국가적 재건 사업을 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노조놈들, 특히 민노총집단은 헌법을 개정해서라도 완전 박살내고, 건전한 노조활동을 할수있는 여건을 새로 짜야한다. 

헌법 개정 전이라도 , 민노총의 망국적 파괴 행위는 절대로 용납해서는 안된다.  경찰병역을 총동원해서, 그래도안되면 군대를 동원해서라도 완전 그뿌리를 뽑아야 한다.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다시 만들자.

 

태극기의 뜻 흰색 바탕은 밝음과 순수, 그리고 전통적으로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의 민족성을 나타냅니다. 태극 문양은 음(파랑)과 양(빨강)의 조화를 상징하는 것으로 우주 만물이 음양의 조화로 인해 생명을 얻고 발전한다는 대자연의 진리를 표현해낸 것입니다.

최진덕


단군 이래 처음으로 1948년 대한민국이란 이름의 민주공화국이 탄생했다.
이 민주공화국의 경제적 기초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였고 그 정치체제는
자유민주주의였다.

대한민국은 우파 국가로 태어났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파 국가를 받쳐주는 우파 국민이 아직 없었다. 애국애족의 마음은 가득했지만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제대로 이해한 사람은 대통령 이승만 말고는 거의 없었다.

해방공간에서 좌우를 가릴 것 없이 누구나 민주주의를 떠들었지만 자유민주주의와 인민(민중)민주주의 간의 구별은 늘 모호했다.

이런 상황에
1946년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의 70퍼센트가 경제체제로는 사회주의가 좋다고 답했다. 사회주의에 대한 지식인층의 선호도는 훨씬 더 높았을
것이다.

건국 당시 대한민국은 한 마디로 모래 위에 세워진 나라였다. 그 모래를 다져 단단한 땅으로 만드는 과정은 7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우파 국민이 없는 우파 국가는 1950년대에는 이승만 한 사람의 카리스마에 의해 간신히 지탱되었다. 이승만은 미국의 지원에 힘입어 6.25의
위기를 극복했지만 그의 개인적 카리스마에 의존하는 통치 행태는 독재를 부를 수밖에 없었다.

부정 선거를 계기로 일어난 4.19 학생의거는 독재를 몰아냈으나 인구의 절대 다수가 농민이고 우파 국민은 아직 형성되지 못한 상태에서
학생들의 때 이른 민주화 요구는 여전히 자유민주주의 우파와 인민민주주의 좌파 간의 구별이 모호한 가운데 정치사회적 혼란을 불러왔다.

이 위기를 극복한 인물이 군인 박정희였다.

박정희는 불과 18년 사이에 기아선상의 가난한 농업국가를 어엿한 산업국가로 바꾸었다. 천지개벽과도 같은 이 기적과 함께 중산층 우파 국민이
비로소 탄생했다. 그 이전에는 우파 국민은 존재하지 않았다.
박정희는 위대한 통찰력의 소유자였다.

그는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했지만 먹고 살 만한 수준의 사유재산을 가진 자유시민의 양성이 없이는 자유민주주의가 불가능함을 잘 알았다.
그래서
그는 지식인층의 고급 취향과는 안 어울리는 “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세”라는 통속적인 슬로건을 내걸고 백 년 전 명치시대의 일본처럼 국가
주도로 기업과 기업인을 키우고 시장을 확대하면서 경제 개발에 박차를 가했다.

바깥으로는 북한의 남침 위협이 가중되고 안으로는 자유시민 즉 우파 국민이 아직 형성되지 못한 상황에서 경제와 안보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자니 정권 안정이 모든 사업의 대전제였다.

1969년 삼선 개헌과 1972년 시월 유신은 정권 안정을 위해 박정희가 내린 고뇌에 찬
결단이었지만 그의 애국심을 이해해주는 지식인은 거의 없었다.
대학생 교수 언론인 등 지식인에게 박정희는 그저 타도해야 할 군인 독재자에
불과했다.

당시의 지적 수준으로는 박정희에 대한 이해가 거의 불가능했던 것 같다.
박정희의 경제개발 덕분에 등장한 중산층 자유시민들 즉 우파 국민도
독재자 타도에 동참했다.

10.26은 표면적으로는 김재규가 저지른 시해사건이었지만 그 속내를 더 들여다보면 박정희가 낳은 자식들이 박정희를
죽인 역사적 비극이기도 했다.

박정희가 영구 집권을 꾀했다면 경제개발 따위는 하지 말고 자신이 살기 위해 나라를 말아먹은 김일성처럼 철저하게 독재를 해야 옳았다.

하지만 박정희는 조국을 살리기 위해 자신이 죽는 길을 택했다.
우파 국민이 형성은 되었으나 아직 성숙 단계에 이르지 못한 상황에서 박정희의
죽음과 함께 터져 나온 민주화 시위는 4.19 때처럼 혼란을 불렀다.
민주화 세력의 요구에는 또 다시 자유민주주의와 인민민주주의가 애매하게
섞여 있었다. 광주사태로 인해 혼란은 더욱 증폭되었다.

이 혼란을 신속하게 극복한 인물이 군인 전두환이었다.

전두환은 박정희 이상으로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했지만 혼란을 극복하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군부의 힘으로 정권을 안정시키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다고 판단했다.

당시 민주화 세력을 신뢰하지 않았던 그의 판단이 옳은지 여부는 좌파와 우파 사이에 두고두고 논란거리로 남겠지만 북한의
남침 위협과 우파 국민의 미성숙, 일부 정치꾼들의 수상한 선동, 그리고 제5공화국의 혁혁한 성취를 고려하면 전두환이 옳았다.

전두환은 북한의 위협에 맞서 안보를 지키는 한편 자유주의적 경제정책으로 한국 자본주의를 정상 궤도에 올려놓았고 중산층 우파 국민의 수를 크게
늘렸다. 88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는 대한민국의 도약을 전 세계에 알리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성공에도 불구하고 전두환은 자유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우파 국민의 마음을 얻지는 못했다. 실질보다 명분에 집착하고 군인을
저평가하는 습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우파 국민의 눈에 전두환 정권은 타도해야 할 군사 독재 정권으로만 비쳤다.
우파 국민의 성숙도가 아직 낮다는
단적인 증거였다. 전두환과 신군부는 대통령 직선제를 받아들이고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았다.

총칼로 권력을 잡은 군부가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고 떠나는 것은 중남미나 동남아시아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데에는 넥타이 부대를 앞세운 민주화 세력의 공로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육군사관학교에서 미국식 자유민주 교육을 철저하게 받은 엘리트
장교들의 애국심과 자부심 그리고 자제심이 더 결정적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80년대 말 민주화의 일등 공신은 아직 성숙단계에 이르지 못한 우파 국민이 아니고 그들의 요구 앞에 자기 희생을 각오한 전두환과 신군부였다는
사실을 눈치 챈 우파국민은 아직도 거의 없다.

전두환은 2021년 사망할 때까지 민주화를 내세우는 좌파 세력에 의해 30년 넘게 조리돌림을 당했고 우파 국민은 그냥 보고만 있었다.
전두환은 자신의 운명을 미리 알았을까.
설령 미리 알았다 해도 전두환은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는 바보짓을 감행했을 것이다.

그는 육군사관학교에서 조국을 위해 죽는 것이 영광이라 교육받은 군인이었다.
그가 목숨 걸고 대통령 시해 사건을 공정하게 수사하다가 대통령까지
되어야 했던 것도 사관학교 교육의 효과였다.

그런데 민주화 세력에게 그런 전두환을 속죄양으로 바친 것은 우파 국민의 죄였지만 다른 한편
80년대 대학가에서 독버섯처럼 자라나고 있던 주사파에 대해 너무 관대했던 것은 전두환의 죄였다.

서울대와 연고대에 다니는 전도 유망한 학생들이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 “위대한 지도자 김정일 동지”를 외칠 때 한국의 언론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대학가의 이 해괴 망칙한 정치 코미디에 대해 제대로 보도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대학가가 온통 붉게 물들었다는 사실을 아는 국민도 별로 없었거니와 설령 안다 해도 심각하게 걱정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말도 안 되는
그 주사파가 30년 뒤 청와대를 장악하리라고는 그때는 상상조차 못했다.
전두환과 신군부 또한 우파 국민과 마찬가지로 순진하고 어리석었다.
주사파를 탄압해도 탄압의 강도가 세지 않았고 사회로부터 격리해야 한다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았다.

전두환과 신군부의 자진 퇴장으로 권력이 마침내 민주화 세력에게 넘어갔다.

30년 가까이 우파 국민을 대신해서 우파 국가를 지탱해온 군부의 힘이 사라지자 주사파 중심의 운동권이 민주화 세력의 비호와 은폐 아래 정계를
위시해서 각계각층으로 퍼져나갔다. 80년대 말부터 공산권의 붕괴가 시작되었고 90년대 초에는 북한 동포 3백만이 굶어 죽었다. 그런데도
대학가의 주사파는 요지부동이었다. 혹시 누군가 전향을 하면 배신자로 찍어 몰매를 가했다. 우파 국민 대다수가 그런 사실을 몰랐고 알아도 “설마
그럴 리가 있겠냐”고 했다. 심지어 좌파 같은 것은 없다는 물정 모르는 낙관론도 떠돌았다.
그러는 사이 우파 국가 대한민국의 좌경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민주화 세력은 겉으로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듯했지만 김영삼 정권에서 김대중 정권을 거쳐 노무현 정권으로 갈수록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에
대한 비판과 조롱과 부정은 당연지사가 되었고 성장보다는 분배를 더 중시하면서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반감을 자주 드러냈다.


민족주 



Sunday, November 10, 2019

북괴 김정은 Regime, 이번 겨울에도 식량기근, 미사일은 왜 만드나? 그는 배고픔 모르니까..


또다시 북한의 금년 겨울은 북한 주민들에게는 고난의 행군이 계속되고, 아사자들이 속출할것 같다.  풍년이 들어 수확이 최고로 높다해도 모자라는 판인데...

며칠전에도 수십억달러의 귀중한 외화를 탄도미사일, 핵무기개발에 탕진한것 봤는데, 그목적이 무어였었나? 대한국민들 죽일려고? 아니면 일본을 공격할려고? 무엇때문에?

전문가들의 주장에 따르면, 탄도미사일의 기술개량으로 이제는 미국본토까지 핵공격을 할수 있다고 걱정이 태산이지만, 너무나 과장된 허구인것으로 나는 이해한다. 만약에 발사했다해도 태평양 상공에서 터지게 돼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바보가 아니니까.

김정은과 Regime이 아까운 외화를 하늘에 날려서 불태우는 멍청한 짖을 하지 않고, 주민들을 위해 식량구입과 자유를 주었었다면, 미국을 포함한 서방세계와 사회주의 공산주의 국가인 중국과 러시아로 부터도 열렬한 박수와 사랑의 원조가 쏟아져, 북한 주민들을 배고픔으로 부터 "아사"라는 비극은 자취를 감출 것이다.

남한은 1970년도 초반까지만 해도 지금의 김돼지 북한과 거의 다를바 없이, 춘궁기가 되면 국민들은 얼굴이 노랗게 뜨고, 부황이 들어 초근목피를 해서 겨우 살아남았었다. 배고픔을 달래기위해 백성들은 산야를 헤매면서 풀뿌리와 나무껍질을 벗겨 허기를 채우곤 했었는데, 그로인해 산야는 민둥산이 되여 비가조금만 와도 홍수가 나는 또다른 재난을 당해야만 했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새마을 운동과  "우리도 할수있다"라는 구호를 내걸고, 주야로 관민이 혼연일체가 되여 경제개발과 산림녹화를 해서, 가난을 극복해내고, 산야는 푸른 동산으로 변화 시켰다. 백성들은 배고픔이 해결되자, 자신의  Talent를 발휘할수있는 곳에 눈을 돌려, 기술이 지금은 모든 면에서 세계의 잘사는 나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경쟁 대열에 서는 대성공을 이루었고, 국민들은 5천년 역사이래 최고로 경제와 기술면에서  부유한 삶을 즐기고 있다. 지난 2년반과 앞으로의 2년반은 전연 다른 얘기가 되고 있지만....

풍년이 들건 안들건 상관없이,  배고픔의 춘궁기를 보내기에는 항상 식량이 모자랐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특출한 영도력에 1970년대 말부터는 백성들의 "배고픔"이라는 국가적으로 넘어야할 과제는 없어졌고, 여력을 몰아 경제 개발은 물론이고, 기술 선진국으로의 기지를 발휘하여, 수출을 대한민국이 살아나갈 가장 안전한 길이라는 터전을 만들면서, 충분한 외화를 확보하게되여, 지금은 쌀농사를 짖던 들판은 특화작물 농장으로 변하여  오늘을 사는 젊은이들은 "배고픔"의 과거사를 부모님들이 얘기하면, 우스갯소리로, "쌀이 없었으면 라면을 먹었으면 될텐데..."라고 응수하고있는 배부른 젊은이들이 많다는 소리도 있다.

김정은아, 너도 박정희 대통령의 Leadership을 본받아 북한주민들에게 최소한 중국사회주의 국가처럼 자유를 주고, 자유경제개발에 동참시켜, 삶을 향상 시켜라.  우리 한민족은 우수하여,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준다면,  단언 하는데 10년안에 중국 베이징, 상하이에 사는 주민들이 즐기는 수준의 문화생활을 일상생활화 할것이다.

한국의 좌파 문재인 정권에 또 공갈쳐서 뜯어갈 생각일랑 접고, 영구적으로 배고프지 않고 백성들이 살아갈수있는 방법을 세워라. 네가 싫어하는 성경에 보면, 베드로는 "Long term으로 봤을때, 고기를 잡아서 배고픈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것 보다는, 배고픈 사람들에게 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어, 그들 스스로 일어나게 하는 지혜를 가르쳐 줬었다".  

대한민국 백성들이 이제는 더이상 문재인 정권이 국민적 합의가 없이 너희들에게 퍼주는식으로 국고를 축내는짖은 못하게 막을 것이다. 

그런 다음에 핵무기를 만들던가, 탄도미사일을 만들던가 하거라.  배고픔을 먼저 해결해주어야할 책임과 의무가 너에게 있음을 직시하거라. 이를 계속거부하고, 주민들을 굶겨 죽이는 살인행위가 계속되면, 앞날의 삶을 보장받지 못할것이다.  트럼프의 인내도 이제는 한계에 달한것 같고, 중국도 등을 돌릴것이다.  개발된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은 절대로 사용할곳이 없다는것을 곧 탄식하게 될것이다. Soviet Union이 망한 이유는 김돼지처럼 백성들의 삶개선을 무시하고, 핵무기,탄도미사일 확충에 온국력을 쏟아, 경제가 도탄에 빠져, 결국 스스로 무너지고 항복하는, 그래서 쏘 연방이 해체되고 말았었다는 교훈을 상기하거라.

지난 봄과 여름에도 북한은 심한 가뭄으로 주민들이 누렇게 부황들어 힘들어 고생하면서도 동원에 끌려나갔었고, 이번 수확철에는 남쪽 필리핀으로부터 태풍이 몰려와 다 파괴시켰었다. 그즈음에 김정은이는 탄도 미사일 수발을 동해 공해상으로 쏘아댔다. 주민들 먹여 살리고도 남을 귀한 돈을 공중에 날려버리는 죄악을 또 한국과 미국 일본을 비롯한 전세계에 저질렀었다. 기근이 오는것은 당연한 윗분의 심판인것이다. 북한 주민들이여 조금만 더 인내 하시길..반드시 자유를 맘껏 누릴수있는 광명의 날이 오니까요. 그날까지...

그렇게 쏘아 올렸다고해서, 주민들로 부터 진정어린 환영을 받았었다면, 나도 박수치겠다. 미국과 한국으로 부터 "김위원장님 제발 우리 위협하지 마세요. 잘 협조하겠습니다"라고 화답을 들었었다면, 나는 또 박수치겠다.  귀중한 수억달러를 순식간에 공중에 날린 효과는 역풍뿐이었음을 솔직히 시인 하거라. 그리고 뭐하고 난후처럼 허전했을 것이다.  미친짖 그만하거라. 

백성이 없는 지도자는 존재할수가 없다.  너와 찌라시 측근들은 배고픔의 그참상을 절대로 모를것이기에, 그의미를 이해 못할 것이다.  중국은 너의 정부보다 더 혹독한 공산 독재를 했었다. 그러나  등소평의 도박에 가까운 Open 정책으로 오늘의 잘사는 중국이 있게됐고,  너희가 염려하던 중앙공산정부의 붕괴는 한낯 허구였음을 증명해 주었다. 그길을 과감하게 따르거라. 너 자신과 북한 주민들의 질좋은 삶을 개척하기위해서...

중국이 무기경쟁을 포기하거나 줄이고, 경제개발에 혼신의 힘을 기울일때, 네가 걱정하는것 처럼, 미국의 중국침략은 한번도 없었고 또한 Regime Change 노력도 없었고, 오히려 무역하는데 개발도상국에 주는 혜택을 주어 관세를 부과 하지 않고, 중국 생산품을 받아들이는 혜택을 주었었다. 그래서 지금은 국가경제 규모가 미국 다음으로 큰 세계 2번째 경제대국이 된것 기억하라.


North Korea's harvest is predicted to be worse than usual, exacerbating already severe food shortages in the country, a monitoring group says.
Using satellite images, Swiss-based Geoglam said drought had affected crops in an area known as the "cereal bowl".
The UN says four in 10 North Koreans need food aid and crop production is at its lowest level in five years.
Shortages are made worse by international sanctions on North Korea over its weapons programme.
In May food rations - which feed about 70% of the North Korean population - were cut from 550g (19.5 oz) to just 300g per person following poor results in this year's early harvest.
The country's main harvest in the southern provinces of South and North Hwanghae and South Pyongyan was complete but was estimated to have produced a below-average quantity of crops, Geoglam said.
This was due to "irregular rainfall and low reservoir levels during the summer", the organisation said, adding that North Korea's overall food situation was not expected to improve.
North Korea experienced severe droughts in spring and summer, and in September the country was hit by Typhoon Lingling, which flooded farmland.






In September the UN's Food and Agriculture Organisation (FAO) said poor rice and maize harvests had left more than 10 million people in urgent need of assistance.
The country has also had to cope with a regional outbreak of swine fever in its pig herd, leading to reduced pork production.
Earlier this year a UN team found families surviving "on a monotonous diet of rice and kimchi most of the year, eating very little protein", according to a report by the World Food Programme. The report said some families were eating protein only a few times a year.





China and other countries have already provided North Korea with food aid so far this year.
However, North Korea has refused to accept 50,000 tonnes of rice from South Korea. This is reportedly because of tensions with the South linked to stalled talks between Pyongyang and the US over the North's nuclear programme.
North Korea suffers regular food shortages. In the 1990s a severe nationwide famine is thought to have killed hundreds of thousands of people.

https://www.bbc.com/news/world-asia-50359435 

Monday, March 25, 2013

Ethiopia,Africa, 3월3일 (일요일 오후 탐방): Rock Hewn St. George 교회탐방-Lalibela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3월3일 (일요일 오후 탐방): St. George 교회탐방을 강행해야한다. 몸의 컨디션이 썩 좋지는 않지만, 여기까지 온 목적이 뚜렷히 있기에 강행했다.

이교회는 어제 Local Market을 갈때 멀리서 봤던 교회다. 모습이 눈에 많이 익는다. 많은 Rock hewn Church를 표현할때 이교회의 건물이 항상 보여졌기 때문이리라.
UNESCO에 등재된 세계인류문화유산으로 많은 사람들이 한번 보고 싶어 하는 독특한 Rock Hewn Church다.  마침내 지금 나와 Lunar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 확인 하고 있는 시작점에서 기독교 믿음의 선배들이 만들어 하나님께 헌납한 성전을 탐방하는 것이다.

교회의 외형역시 십자가 형상이다.  현재의 기술로도 이렇게 바위산을 뚫어 그속에 교회를 세운다는것은 큰 공사일텐데..... 그시대에 한개가 아닌 12개의 Rock Hewn 교회를 세웠다니,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위대하다고 해야할지? 아니면 인간의 끝없는 도전의 결과라고 봐야 할지.




















King Lalibela가  23년에 걸쳐 바위교회를 건축하면서 마지막으로 만든작품이라고 한다. 그는 이교회가 완성되여, 애티오피아의 영웅, St.Goerge에게 헌납했다해서 그의 이름을 따라 교회이름의 붙혀졌다 한다.  St.George에 대해서는 설이 난무하다고 한다.  영국에서도 St. George가 성자로 추앙받고 있고, 같은 인물로 여겨지는 그사람이 이곳 애티오피아에서는 성자중의 성자로  사람들 특히 Orthodox기독교인들사이에서는 최고로 숭배 받는 인물이라고 한다.

교회건물은 3층구조였다. Ark of Noah를 의미한다고 하며, 맨윗층은 노아가 한것처럼 날짐승들이 홍수를 피해 살수 있도록 했고, 가운데층은 노아를 비롯한 가족들이 들어갈곳, 그리고 바닥층은 짐승들이 살수 있도록 하는 상징성을 품고 있다한다.  2층에는 벽에 12개의 창문이 만들어져 있다. 12제자들을 상징한다고 했다. 바닥층에는 9개의 문을 내고 그곳에는 나무문이 꽉 막고 있었다. 홍수가 났을때 물이 들어오지 못하도록하는 상징성을 지니고 있단다.  실제로 현장을 확인하고난 소감은 불가사의한 어느 초능력의 존재를 내눈으로 확인하는 기분이다. 경이롭다.  망치와 정으로 이렇게 만들었으니........

교회안의 Altar뒷면에는 커틴이 드리워져 있었다. 가려진 방에는 Holy Cross, 그리고 언약괘를 모방하여 만든 형상이 모셔져 있다는 것이다. 정면앞 양쪽에는 똑같은 크기의, 마치 옛날 어렷을적에 보았던, 쌀뒤주같은 모양의 나무상자가 두개 모셔져 있다. 설명에 따르면, King Lalibela가 교회를 건축하면서 사용했던 모든 자료들이 그안에 모셔져 왔었는데, 지금은 빈통이라고 한다. 모두가 도둑을 맞았는데, 아마도 이태리의 무쏠리니 군대가 원흉아닐까?라는 추측을 할뿐이라고 했다.

3층의 지붕끝에는 물이 흘러 내리는 통로가 돌출되여 있다.  King Lalibela가 그런데까지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는 설명이다.

어제 공항에서 만났던 KOICA의 젊은 친구들이 호텔로비에 앉아있어 깜짝 놀랐다. 어제 같이 교회를 구경 할려고 했었는데, 입장료가 비싸 그들은 못했었다. 결국 요구하는 입장료를 다내고 구경을 하긴 했다고 한다.  오늘 다른 곳으로 떠나는데 인사차 들린것이라고 했다. 고마웠다. Lunar가 재빨리 캐나다 국기가 새겨진 손수건 3개를 기념으로 나누어 준다.  그들은 우리에게 캔깻잎을 한통건넨다.
정작 고국대한민국에서는 "새마을 운동"이라는 단어가 사람들의 대화속에서 사라져 버린지 오랜데, 이곳에서 고국에서 파견된 봉사자들이 새마을운동의 휏불을 다시 밝히고 있다니……

얼마전에 서거한 이곳 애티오피아의 수상은 한국을 너무나 사랑했다고 한다. 그는 지금도 애티오피아인들의 삶속에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Axum 관광시 시가 행진을 하는것을 보고 느꼈었다.
그들의 말에 의하면 5시간 이상을 차를 타고 간단다. 그들의 여정이 잘 이루어지기를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