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April 23, 2013

Ethiopia,Africa 3월22일 (금요일 오후):Addis에서 초기Bishop 동상, AU에 대한 역사적 탐방,한인식당점심,토론토집으로.



3월22일 (금요일 오후):Addis에서 초기Bishop 동상, AU에 대한 역사적 탐방,토론토집으로.


이태리가 애티오피아를 점령하여(1937년도) 식민지화 할려고 시도하는 계획의 일환으로 그들이 명령(Decree)을 내려 오래 믿어온 미신과 같은 전통을 몰아내고, 이태리식으로 의식을 개조하려 무진 노력을 했었으나 국민들의 반발과 저항이 심하여, 종교적으로 자체 지도자를 세워 그를 통해 정신적 합방을 하려고 주교(Bishop)를 서품, 임명했는데, 그분이 Bishop, Abuna Peter였다. 그분의 동상이 Addis의 시내 사거리 교차로에 세워져 있었다.

설명에 의하면 주교가 이태리 점령군의 명령을 원래 계획처럼 잘 받들어 주지를 않자, 이태리점령군은 최후 통첩을 그에게 내린다. "지금 이순간 우리가 내린 명령을 선포하여 국민들의 저항을 줄이던가 아니면 여기서 너를 추종하는 국민들앞에서 총살 시켜 버리겠다"라고. 그의 반응은 아주 냉담했었다. "차라리 나를 없애라. 애티오피아국민들을 당신들의 앞잡이로 만들수 없다"라고.  즉석에서 총살을 시켜 처단한곳이 지금 우리가 지나고 있는 네거리한복판이라고 한다.  국민들은 그후에 조국 애티오피아와 국민들을 위해 목숨을 바쳐 순교한 Abuna Peter주교의 뜻을 기리기고 있다한다.

 Addis에서 한인 식당 Arirang를 향해 시내의 한 네거리를 지날때, Johnny가 길건너편에 있는 높이 세워 진 Monument를 향하여 사진을 촬영하기위해 차창밖으로 카메라를 내밀었다. 그순간 네거리에서 교통정리를 하고 있던 경찰이 이를 목격하고 자기를 향해 촬영한것으로 오해를 하여, 차를 멈춰 세웠다. 그들만의 대화로 설명을 해도 소용없다. 결국 카메라속의 사진을 보여 주고서야 오해가 풀어지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당한다.






1977년도에 이웃나라 Somalia와 전쟁이 있었다. 그때 애티오피아를 도와준 나라는 쏘연방, 큐바 그리고 예맨이었다. Somalia를 도와준 나라는 미국이었는데, 결국 애티오피아가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당시 애티오피아는 공산독재자 Mangastu Regime이 정권을 잡고 국민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던 사회주의 국가면서 지식인들을 대거 숙청하는 독재정권으로 서방세계와는 등을 돌리고 있었기에 미국이 Somalia를 지원하여 그정권을 몰아낼려는 시도에서 했었던 것으로 이해됐다. 말썽을 일으키게 했던 Monument는 이전쟁의 승리를 기념하기위해 세워진 탑이라고 했다. 이공원의 명칭도 Ethio-Cuban Park으로 명명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고, 현정권은 전정권의 전쟁승리를 거의 인정하지 않고, 잘못된 점만을 강조하면서 자기네들의 실정의 원인이 전정권에 있음을 국민들에게 주지시키는 정치적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한다.

한편 애티오피아의 독재정권을 몰아내기위해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한 지하 게릴라들을 미국은 비밀리에 도와주어 애티오피아에 민주정권을 세우려고 노력을 했었다고 한다. 쏘련을 포함한 공산국가들은 Mangastu의 독재 정권을 앞잡이로 세워 그들의 아프리카 진출에 교두보를 만들려는 속셈이었었다.

선교사님과 Tour Guide가 거의 동시에 현대식으로 지어진 큰 건물을 지나칠때 그곳으로 시선을 돌리게 하면서 말문을 연다. AU(Africa Union)의 본부 건물이라면서, 중국정부가 2억 달러를 투자하여 건축하고, 2012년도에 AU에 기증했다고한다. Guide는 애티오피아가 아프리카연합에서 Leader라는 점을 강조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중국이 아프리카 진출에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는 증표로 보였다.
애티오피아 북쪽에서 부터 남쪽의 거리를 달리면서 많은 건설 현장을 보아왔는데 거의가 다 중국회사들이 맡아 하고 있음을 확인한 터라, 이제는 옛날처럼 총칼들고 점령하는게 아니라 "돈"이라는 무기를 앞세워 진출하는, 양상이 다른, 겉으로는 웃음을 팔면서 하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드디어 아리랑 한국식당에 도착했다. 미리 선교사님께서 연락을 해놓은 터라 성함도 모르는 주인분께서는 우리를 반가히 맞아 주신다. 애티오피아를 떠나기전 마지막 저녁이다. 원래는 Tour Guide가 소개하는 그들의 전통 음식점에서  Final Dinner를 할계획이었었으나, 지난번 이곳에서 식사를 우연히 하게된후 인연이된 선교사님과 주인분과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어 계획을 바꾼것이었다.


주인장께서 재치있게 Driver, Tour Guide의 음식은 닭고기를 Fry한 깐풍기로, 그리고 우리에게는 떡국과 순두부 그리고 돼지고기 볶음을 준비해 주셨다. 오랫만에 곁들여온 김치와 고추장 된장은 고향에 온 기분을 느끼게 하고도 남았다. 고마웠다. 이런 인연이 맺어지게 된것은 절대로 인위적인것은 아님을 깊이 느낀다. 뭔가를 도와드리고 싶지만, 준비된게 없어 미안함만 더한다. 다만 우리 부부의 마음의 일부라도 그분이 느끼면서 이해 하시기를 바랐을 뿐이다.

선교사 Yu Debbie씨의 설명에 따르면, 식당 주인아주머니께서는 정신적, 물질적 고통을 같은 동족인 한국사람들상의하고 나누는 대모역활을 지난 오랫동안 해오고 있으나, 되돌아 오는것은 비난과  의도적인 접촉등의 악의에 찬 비난만이 되돌아와 마음의 상처가 큰 분이라고 한다. 우리 부부의 경험을 비추어 볼때 그설명이 충분이 이해됐다. 그래서 같은 한국인들이면서도 Relationship을 조심스러워 하면서 정신적 Partner만나는것이 가장 어렵다는 현지 실정을 선교사님이 대신해서 설명해 주신다.

선교사님이 애티오피아의 대표적 건강식품(혈압과 콜레스테롤 조절)으로 애용되고 있는 Moringa Powder를 Awasa에서 그녀의 집을 방문했을때 선물로 주셨었다. 저녁을 먹으러 아리랑식당에 가기전에 한군데 꼭 들려야 할곳이 있다하여 차를 그곳으로 돌렸다. 아주조그만 구멍가게 같아 보인곳이고 허름하기 이를데 없었다. Lunar와 같이 들어가더니 한참후에 나온다. 손에는 Green색갈의 Powder가 들어있는 비닐봉지가 들려 있다. Moringa Powder였다. 귀국해서 꼭 정기적으로 복용해서 콜레스테롤 처방약을 손에서 떼어내셔야 한다고 권하시더니 이곳까지 안내 하신것이다. 정말로 고마웠다. Driver IU와 Johnny도 꼭 상복해 보라고 권한다. 애티오피아에 여행와서 구입한 최고의 선물이 될것으로 확신됐다.

이민자로 이루어진 교민사회, 이곳에는 약 300 여명이 살고 있다고한다. 상사원, KOICA직원, 공관원들과 교민들이라고 하는데, 특히 이곳에 정착한 교민들의 성분을 금방 파악할수 있었다. 같은 이민조건이면 더좋은 나라 캐나다 또는 미국등으로 진출 했을텐데, 왜 하필이면 모든게 가난하고 후진 이곳 애티오피아를 택해 와서살고 있을까?를 분석해 보면 금방 그해답은 나온다. 한국식당 2개를 운영(하나는 남편이운영)하면서, 동병상련이라고 어려움을 보고 들으면 이를 그냥 흘러 듣지 못하고 구원의 따뜻한 손길을 보내면 거의가 다 이를 악이용하고 끝에 가서는 식당 장사를 위한 접근이었다라는 악담을 서슴치 않았다고 한다. 우리한국인들의 속성을 여기서 또보게 된것이다. 안타까웠다.

심신이 사업에 지쳐 정신적 안식처를 찾는 차원에서 한인들이 출석하는 종교적 모임에 참석하고 싶어도 장사속으로 나온다는 오해를 받는게 싫어 참석도 못하고…  인생의 살아온 얘기를 Lunar와 함께 나누면서, 이민자의 어려움과 서러움, 또 자식을 키우는데 힘드는 과정등이 비슷하여 Lunar는 그녀의 살아온 인생 경험담을 듣고 나누면서, 자신들의 설움에 볶바쳐 눈시울을 많이 적시느라, 자리까지 식당안의 다른 방으로 옮겨가면서 서로 위안을 하고 받았던것 같다. 부모가 못이룬 꿈을 자식들에게서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자식교육에 All-in하는데, 때로는 꼭 뜻한데로 아이들이 자라주지는 않았던 경험이 있었기에, 이제  Teenager가 된 주인장의 자식키우는 어려움이 우리부부의 일처럼 여겨져, 이를 극복하고 살아온 경험담을 통해서 애환을 나누곤 했다고 Lunar가 비행기안에서 설명해 주어 알았다.  그분의 하는 사업에 그리고 커가는 아이들이 건강하고 이사회가 필요한 제목으로 커가기를 마음속에서 기원을 했다.

Driver IU와 Johnny가 시간이 되여 공항까지 바래다 주었다. 식당에서 헤여질때는 차마 껴안았던 팔들이 쉽게 풀어 지지가 않았었다. 마치 수십년을 알고 지냈던 이웃사촌과 헤여지는것 처럼. 저녁 한끼를 먹으러 식당을 찾았던것은 뒷전이고, 지금은 헤여짐의 아쉬움속에서 며칠전에만 서로 만났어도 짧은 만남의 시간에 못다한 애환들을 나누면서 울고 웃고 했을텐데… 그점을 모두가 애닲아 했다.

끝내 Tour Co.주인 Shambel은 식당에 나타나지않았다. 올것으로 기대 했었는데……..
Driver와 Guide에게, 이곳 식당 주인장의 조언을 참고삼아 섭섭지않게 Tip 봉투를 만들어,
마지막 헤여 지면서 그들손에 꼭 쥐어 주고 부디 성공을 빌어 주면서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그들의 마지막 말이 귓전에서 맴돈다 "Papa, Mama 건강하셔서 약속했던 10년후에 다시 꼭 만나요"

Rome에서 비행기 주유하느라 한시간 지체한것과 2시간 넘게 지각출발한것 포함해서 18시간을 좁은 비행기안에서 쪼그리고 앉아 있다 토론토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 마중나온 아들녀석이 반가히 맞아 준다. 혈육의 정을 아들녀석을 통해 깊이 느낀다. 윗분에게 이런 축복을 주신것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아들녀석이 운전하는 차의 뒷좌석에 몸을 던졌다. 아주 편안하다. 긴장이 눈녹듯 풀어진다.  여행 후유증이 이번에는 좀 길게 이어질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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