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April 28, 2013

Cambodia 여행기(2005년 1월)

Killing Field in Cambodia


During the Pol Pot regimes in power, they killed more than 3 million his people and scattered it everywhere that
has been called 'killing field' by the world since.
Later survivors of genocide in Cambodia has collected remains of bones and displayed to commemorate their death.
Shown in the picture is one of those collections.

기내식


월남 하노이에서 캠보디아 Siem Reap 으로 가는데 프로펠러 비행기로 약 2시간 이상을 날았읍니다. 기내식이라고 제공받은 것은
군대생활할때 먹었던 건빵 비슷한 Biscuit 몇쪽이었답니다.
비교적 잘먹는 내자신도 다 먹지를 못하고 말았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습니다.


집 기둥 세우기,Siemrip,Cambodia
 

캄보디아 앙코르의 톤레삽 강가에 수상가옥을 짖기위해, 집 기둥을 박고 있는 광경입니다. 기둥위에 기어 올라가, 온몸으로 흔들어 대면은 깊숙히 기둥이 박히게 된다고 합니다.


석양에 바라본 타워의 붉은빛



해가지는 석양녘에 바라본 앙코르 사원의 타워부분은
신기하게도 붉은빛을 발하고 있었읍니다.


앙코르 사원 타워의 모습
 

대낯에 보이는 사원의 탑 모습은 돌본래의 검은 모습입니다.
승려들과 멀리 사원을 배경으로 했읍니다. 승려들이 입고있는
승복은 명주(Silk)천 이라고 합니다.


앙코르 톰 사원안의 코리끼 테라스
 

앙코르 톰 사원안에 Elephant Terrace입니다.
옛날 전쟁에서는 코끼리가 중요한 병기였다고 합니다.
돌벽에는 전부 코끼리 모습이 조각되여 있어, 코끼리 테라스
라고 후에 불란서 탐험가들이 부쳐준 이름이라고 합니다.
Jayavarman IIV세의 얼굴


앙코를왕국 전성기의 마지막 왕 Jayavarman IIV세의 인자한 얼굴이라고 합니다. 사원의 석탑이나 성벽에는 군데 군데 그이 얼굴이 새겨져 있었읍니다. 그이 재임시에, 그는 불교를 도입해서 국교로 삼았다고 합니다. 자세히 보면은 그의 재임시에 건축된 앙코르 왓트 사원은 건축 모양이 다르다고 합니다.
그전에는 힌두교가 앙코르왕국의 국교였었답니다.

 http://www.youtube.com/watch?v=eoSxWL5nYqY&feature=youtube 


관광객들과 어울려 노는 꼬마들,Siem Reap,Cambodia


톤레삽 호수를 관광중, 관광객들을 따라 다니면서 물건사기를 강요(?)하는 꼬마들이 잠시 자기들끼리 놀고 있는 순간입니다. 꼬마들은 한국말로 "이거 천원 이예요" 소리친다.


캠보디아 공항 입국장을 향해

2005-01-13 

Siem Reap 공항의 청사 앞쪽의 Tarmac에 타고간 프로펠러 비행기가 정차 했읍니다. 그곳에서 부터 청사로 입국 수속을 위해 걸어 가고 있는 장면입니다.

Wednesday, April 24, 2013

Ethiopia,Africa 3월23일(토요일) 애티오피아 여행 후기: 2013년 3월.



3월23일(토요일) 애티오피아 여행 후기:

생각나는데로 두서없이 기억에 남아 있는 내용들을 적어 본다.

A few months ago there was a shocking news on TV reporting that GDP of China had advanced to  2nd largest in the world after US which meant larger than Japanese GDP that used to be 2nd since WWll was over.  Chinese government has tried to expand their power on strategic continent all over the world, especially in African countries applying their economic strength instead of military power nowadays.  During Ethiopian tour this time I had seen so many Chinese construction companies on the construction sites including road construction or building plants in Ethiopia.  According to Johnny, my tour guide, Japanese products were used to be everywhere in Ethiopia but nowadays those phenomenon has been changed to Chinese products including constructions et'c.  China's economic growth, nowadays, could be seen everywhere all over the world even North America.  He pointed one big building sit on the downtown core that showed a big sign on top of building as "African Union"that Chinese Government had built last year putting more than $200 million dollars and contributed it to African Union which works for improvement and development of African continent.  Influence of those economic power should be alerted to world to avoid further conflict between well developed countries that I had felt strongly through this tour.

Public transportation couldn't be covered whole area I and Lunar travelled especially on visiting the village of Mursi Tribe, Harmer Tribe where needed more than 2 hours to get there from a main road where public transportations were available.  But we were possible since tailor-made tour package that included my own transportation we purchased through travel company.  Maybe cost of tour was a bit expensive but mobility and saving time a lot, I believe.





이곳의 식당에서는 손님으로 부터 음식주문을 받을때 Waiters 또는 Waitress들이 order form에 기록하는 일이 거의 없다. 음식이 준비되여 식탁에 놓였을때는 의례히 빠지거나 다른것이 나오는 경우가 비일 비재 했었다. 분위기를 알아차린후부터는 꼭 기록하도록, 아니면 다시 Talk Back를 시켜 확인한점이 기억에 남는다. 그들은 실수를 했을때, 절대로 "미안합니다"라는 말을 할줄 모른다.

거의 대부분의 호텔이나 자동차는 Air Cond.설치가 아예 안되있거나, Vehicle에 장착되여 있다해도 사용하기가 쉽지 않음을 후에 알았다. 우리 부부가 찾아다녔던 대부분의 도로들이 비포장이라서 좀 심한 경우에는 짙은 안개속을 달리는 것처럼 먼지를 뒤집어 쓰기일쑤여서, 작동시키면 뿌연 먼지가 그대로 차안으로 들어오기 때문이었다. 우리와 계약한 여행사의 차량은 고장이 나있거나 아예 없어서 차창을 열어놓고 다니느라 코구멍이 고생을 많이 했다. 분명히 여행 계약을 할때는 Air Cond.이 구비되있다고 했었다. 한마디 해명이 없고, 다만 Tour Guide가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뿐이었다.


수도시설이 거의 전무였기에 곳곳에 있는 공동우물터에서  노란 플라스틱 물통이 길게 차례를 기다리는 장면을 많이 목격 했었다. 이런 광경은  Addis 에서도 흔하게 볼수 있었다. 그만큼 후진국임을 간접표현 하는 것으로 이해됐다.  그러나 과거 고국에서 "경제개발 5개년 계획"등의 장기 프로젝트를 실시하고 있다는 얘기는 못들었다.  다만 한국의 "새마을 운동"이 농촌계몽에 초점을 맞춘것이라는 점에 착안, 국가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대중교통수단으로 이곳에서는 말, 당나귀 그리고 노새가 큰 몫을 하고 있었다. 지역에 따라 Wagon을 사용하는곳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직접 이들의 등에 짐을 붙들어 매여 운송하는, 바쁘게 살아가는 서구인들에게는 수천년전의 조상들의 삶의 현장을 보는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이곳 사람들은 쓸데 없는 자존심이 강해서, 식당에서 먹고남은 음식을 Packing해서 집으로 가져가는 법이 없었다. 남은 음식을 싸가는것은 가축들에게 주기위한것 쯤으로 인식되여, 가축취급을 받는 손가락질을 받을수 있는 격멸의 뜻이 있어서란다. 호텔식당을 포함한 음식점에서는 남은 음식을 모아서, Bulk로 다시 배고픈 사람들에게 판매한다고 했다.

ATM이나 Credit카드는 널리 통용되지 않고 있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이러한 불편함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인터넷을 통해 현지 여행사(Imagine Ethiopia Tour and Travel Co.)와 계약을 맺을때, 그들은 현찰송금을 요구했었다. 그러나 이를 마음 편하게 받아 들일수가 없어, 여행사측에 긴 설명을 한후 합의한것이 Money Order를 만들어 직접 휴대하고 가기로 했었다. 여행시작 3일후 최후 통첩을 여행사 주인으로 부터 받았다. 72시간내에 다시 Wire를 통해 은행구좌에 입금을 시켜주지 않으면 Tour를 Holding 하겠다는 것이다. Money Order추심을 위해 40일을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라니….. 한편 이해가 되기도 했지만, 나는 더 황당할 뿐이었다. 다행이 아들녀석과 이멜로 연락이 되여 해결을 보고, 하마터면 휴지조각이 될번한 Money Order는 다시 Return받아었다. Credit Card결제도 할수 있는 Account Open을 위해 현재 은행측과 협의 중에 있다는 여행사 Owner의 뒤늦은 설명이 있었다.

애티오피아는 일년이 13개월인 Julian Calendar를 사용한다. 12개월은 각각 30일씩이고 13개월째는 5일, 윤년인때는 6일이다.  이들의 Daily시간도 틀리다. 우리시간으로 새벽 아침 6시경이면, 그들시간으로는 오후 1시경이다. 혼돈이 와서 처음에는 선뜻 이해를 못한적도 있었다. 애티오피아는  Orthodox를 믿는 기독교가 널리 펴져 있다. 따라서 달력도 그 종교에 따르기 때문에 날자나 명절들이 달리 표기 되는것 같았다.

애티오피아는 고산지대이고, 산악지대여서 옛부터 이웃과의 교통왕래가 흔치 않았던것 같다. 그결과로 주민들의 언어는 각부족끼리만 사용하다시피하여, 현재 비교적 널리 쓰이는 확인된 언어만 83개, 지방의 소수 부족들이 쓰는 언어종류까지 합하면 약 200여개에 달한다.  국가공용어로는 Amharic어를 사용하고 그외 Oromiffa,Tigrigna어가 널리 쓰인다.

국민들의 90% 이상에 농업과 축산업에 종사하여, 농업국가로 표현하는게 적절 한것 같다.
Cattle들이 도로를 점령하여 교통의 흐름을 자주 막는 현상이 비일비재 하다. 달리는 차량들은 조용히  Brake를 밟고, 정차하여 그들이 다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이런과정에서 사고가 많이 난다고 하는데, 차에 치인 Cattle은 이들은 Meat로 가공하지않고 버린다고 한다. 길가에 방치해둔 Corpse 는 하룻밤 지나면 말끔히 치워진다는 설명이다.  밤사이에 Hyena같은 동물들이 다 먹어 치우기 때문이란다.  이런 교통정체 현상은 수도 Addis Ababa에서도 흔하게 목격한다.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낮아, 성인남녀들, 특히 남자들이 노상방뇨하는것은 Routine이다. 그옆으로는 여인들도 지나친다. 순간적으로 사진을 찰칵 할려고 시도를 해보았으나 실기하곤 해서 사진으로 남은 기록은 없다. 달리는 차속에서 목격된, 가끔씩 주져 앉은 여인들은 분명히 가리고 Pee를 하는 중이라고 한다. 그만큼 공공편의 시설이 구비되여 있지도 않고, 또 이의 필요성을 국민들이나 정부가 깊이 느끼지 않고 있다는 증거일것 같다.

애티오피아는 어디를 가든, 어린아이들이 뒤따라 다닌다. 길을 가로 막으면서 돈을 달라고 칭얼댄다. 한국에서는 어린아이를 낳지않아 인구감소를 걱정한다고 한다는데, 이곳은 반대다. Birth Control에 대한 Concept이 전연 없다.
한번 잠자리를 하면 임신이 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것이 사회적인 통념인것 같다. 정부통계로는 전체 인구가 7천8백만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Tour Guide의 설명에는 약 9천만명이 된다고 한다. 사회적관념에서 많은 신생아들이 출생신고가 제때에 안되거나 아예 하지 않는 현실을 입증하는 결과인것 같다.

Tour guide와 Driver가 제대로 대접을 못받는 나라. Tour Company와 방문하는 식당이나 호텔로 부터 괄시받는 ,이상한 풍습을 지니고 있는 나라.  이들이 대접을 잘 받아야 같이 동행하는 관광객들이 더 많은 구경과 설명을 들을수 있는 interconnection의 간단한 원리를 무시해버리는 나라. 매일같이  Tour 회사 owner에게 일일 보고해야하는나라.

최근에는 남부 지방에 어마어마한 석유자원을 포함한 지하자원이 매장되여 있어, 세계 열강국가들이 침을 흘리고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나라.  중국이 발 빠르게 선점하고 있는것을 확실히 느낄수 있었다.

국민들에게 토지 소유권을 인정해 주지 않는 나라.  다만 99년 Lease를 해주는 나라.  나라의 정체는 분명히  Republic of Ethiopia인데...... 토지 재산권을 인정 안해주고, 전부 국가 소유다.

여행객과 Local people사이에 분쟁이 나면,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여행객이 불리한 대우를 받는 나라.  심한 경우에는 억울하게 유치장 신세도 질수 있는 나라.  즉 법이 공평하게 적용되지 않고 있다는 증거다.

국제기구(International organization), 원조기구( Aid Group)와 종교적 선교활동단체가 가장 많이 활동하고있는 나라, Ethiopia.  Johnny의 설명에 의하면 유엔기구를 포함하여 약 200여개가 넘는 국제 기구들이 애티오피아의 경제적 발전과 국민들의 의식구조를 개선하기위해 주야로 활동하고있지만, 결과는 크게 눈에 띄게 변화하지 않고 있다는 내용이다.

기독교 지도자들께서 꼭 한번 들려서 믿음의 선조들이 영감을 받아 인류의 유산으로 남겨놓은  암굴교회( Rock-hewn- Church)를 비롯한 종교와 관련된 유적들을 꼭 한번 현지 탐방 하시기를 권하고 싶은곳, 애티오피아.  흔히 말하고 회자되는 "성지순례"라는 거창한 이름을 부치지 않고도 그이상의, 마치 사도 바울이 영화로운 모든것을 버리고 굳이 생명의 위협까지 개의치 않으면서 기독교에 귀의하고 희열을 만끽했던것 처럼,  그러한 밑바탕에 흐르는 진정한 신앙의 맛이 무엇인가를 설파해야할 신앙의 친지분들에게 꼭 한번 탐방 해 보시기를 권하고 싶은곳, 애티오피아.  개략적인 tour route를 옮겨 놓는다.


Tuesday, April 23, 2013

Ethiopia,Africa 3월22일 (금요일 오후):Addis에서 초기Bishop 동상, AU에 대한 역사적 탐방,한인식당점심,토론토집으로.



3월22일 (금요일 오후):Addis에서 초기Bishop 동상, AU에 대한 역사적 탐방,토론토집으로.


이태리가 애티오피아를 점령하여(1937년도) 식민지화 할려고 시도하는 계획의 일환으로 그들이 명령(Decree)을 내려 오래 믿어온 미신과 같은 전통을 몰아내고, 이태리식으로 의식을 개조하려 무진 노력을 했었으나 국민들의 반발과 저항이 심하여, 종교적으로 자체 지도자를 세워 그를 통해 정신적 합방을 하려고 주교(Bishop)를 서품, 임명했는데, 그분이 Bishop, Abuna Peter였다. 그분의 동상이 Addis의 시내 사거리 교차로에 세워져 있었다.

설명에 의하면 주교가 이태리 점령군의 명령을 원래 계획처럼 잘 받들어 주지를 않자, 이태리점령군은 최후 통첩을 그에게 내린다. "지금 이순간 우리가 내린 명령을 선포하여 국민들의 저항을 줄이던가 아니면 여기서 너를 추종하는 국민들앞에서 총살 시켜 버리겠다"라고. 그의 반응은 아주 냉담했었다. "차라리 나를 없애라. 애티오피아국민들을 당신들의 앞잡이로 만들수 없다"라고.  즉석에서 총살을 시켜 처단한곳이 지금 우리가 지나고 있는 네거리한복판이라고 한다.  국민들은 그후에 조국 애티오피아와 국민들을 위해 목숨을 바쳐 순교한 Abuna Peter주교의 뜻을 기리기고 있다한다.

 Addis에서 한인 식당 Arirang를 향해 시내의 한 네거리를 지날때, Johnny가 길건너편에 있는 높이 세워 진 Monument를 향하여 사진을 촬영하기위해 차창밖으로 카메라를 내밀었다. 그순간 네거리에서 교통정리를 하고 있던 경찰이 이를 목격하고 자기를 향해 촬영한것으로 오해를 하여, 차를 멈춰 세웠다. 그들만의 대화로 설명을 해도 소용없다. 결국 카메라속의 사진을 보여 주고서야 오해가 풀어지는 어처구니없는 일도 당한다.






1977년도에 이웃나라 Somalia와 전쟁이 있었다. 그때 애티오피아를 도와준 나라는 쏘연방, 큐바 그리고 예맨이었다. Somalia를 도와준 나라는 미국이었는데, 결국 애티오피아가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당시 애티오피아는 공산독재자 Mangastu Regime이 정권을 잡고 국민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던 사회주의 국가면서 지식인들을 대거 숙청하는 독재정권으로 서방세계와는 등을 돌리고 있었기에 미국이 Somalia를 지원하여 그정권을 몰아낼려는 시도에서 했었던 것으로 이해됐다. 말썽을 일으키게 했던 Monument는 이전쟁의 승리를 기념하기위해 세워진 탑이라고 했다. 이공원의 명칭도 Ethio-Cuban Park으로 명명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고, 현정권은 전정권의 전쟁승리를 거의 인정하지 않고, 잘못된 점만을 강조하면서 자기네들의 실정의 원인이 전정권에 있음을 국민들에게 주지시키는 정치적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한다.

한편 애티오피아의 독재정권을 몰아내기위해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한 지하 게릴라들을 미국은 비밀리에 도와주어 애티오피아에 민주정권을 세우려고 노력을 했었다고 한다. 쏘련을 포함한 공산국가들은 Mangastu의 독재 정권을 앞잡이로 세워 그들의 아프리카 진출에 교두보를 만들려는 속셈이었었다.

선교사님과 Tour Guide가 거의 동시에 현대식으로 지어진 큰 건물을 지나칠때 그곳으로 시선을 돌리게 하면서 말문을 연다. AU(Africa Union)의 본부 건물이라면서, 중국정부가 2억 달러를 투자하여 건축하고, 2012년도에 AU에 기증했다고한다. Guide는 애티오피아가 아프리카연합에서 Leader라는 점을 강조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중국이 아프리카 진출에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는 증표로 보였다.
애티오피아 북쪽에서 부터 남쪽의 거리를 달리면서 많은 건설 현장을 보아왔는데 거의가 다 중국회사들이 맡아 하고 있음을 확인한 터라, 이제는 옛날처럼 총칼들고 점령하는게 아니라 "돈"이라는 무기를 앞세워 진출하는, 양상이 다른, 겉으로는 웃음을 팔면서 하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드디어 아리랑 한국식당에 도착했다. 미리 선교사님께서 연락을 해놓은 터라 성함도 모르는 주인분께서는 우리를 반가히 맞아 주신다. 애티오피아를 떠나기전 마지막 저녁이다. 원래는 Tour Guide가 소개하는 그들의 전통 음식점에서  Final Dinner를 할계획이었었으나, 지난번 이곳에서 식사를 우연히 하게된후 인연이된 선교사님과 주인분과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어 계획을 바꾼것이었다.


주인장께서 재치있게 Driver, Tour Guide의 음식은 닭고기를 Fry한 깐풍기로, 그리고 우리에게는 떡국과 순두부 그리고 돼지고기 볶음을 준비해 주셨다. 오랫만에 곁들여온 김치와 고추장 된장은 고향에 온 기분을 느끼게 하고도 남았다. 고마웠다. 이런 인연이 맺어지게 된것은 절대로 인위적인것은 아님을 깊이 느낀다. 뭔가를 도와드리고 싶지만, 준비된게 없어 미안함만 더한다. 다만 우리 부부의 마음의 일부라도 그분이 느끼면서 이해 하시기를 바랐을 뿐이다.

선교사 Yu Debbie씨의 설명에 따르면, 식당 주인아주머니께서는 정신적, 물질적 고통을 같은 동족인 한국사람들상의하고 나누는 대모역활을 지난 오랫동안 해오고 있으나, 되돌아 오는것은 비난과  의도적인 접촉등의 악의에 찬 비난만이 되돌아와 마음의 상처가 큰 분이라고 한다. 우리 부부의 경험을 비추어 볼때 그설명이 충분이 이해됐다. 그래서 같은 한국인들이면서도 Relationship을 조심스러워 하면서 정신적 Partner만나는것이 가장 어렵다는 현지 실정을 선교사님이 대신해서 설명해 주신다.

선교사님이 애티오피아의 대표적 건강식품(혈압과 콜레스테롤 조절)으로 애용되고 있는 Moringa Powder를 Awasa에서 그녀의 집을 방문했을때 선물로 주셨었다. 저녁을 먹으러 아리랑식당에 가기전에 한군데 꼭 들려야 할곳이 있다하여 차를 그곳으로 돌렸다. 아주조그만 구멍가게 같아 보인곳이고 허름하기 이를데 없었다. Lunar와 같이 들어가더니 한참후에 나온다. 손에는 Green색갈의 Powder가 들어있는 비닐봉지가 들려 있다. Moringa Powder였다. 귀국해서 꼭 정기적으로 복용해서 콜레스테롤 처방약을 손에서 떼어내셔야 한다고 권하시더니 이곳까지 안내 하신것이다. 정말로 고마웠다. Driver IU와 Johnny도 꼭 상복해 보라고 권한다. 애티오피아에 여행와서 구입한 최고의 선물이 될것으로 확신됐다.

이민자로 이루어진 교민사회, 이곳에는 약 300 여명이 살고 있다고한다. 상사원, KOICA직원, 공관원들과 교민들이라고 하는데, 특히 이곳에 정착한 교민들의 성분을 금방 파악할수 있었다. 같은 이민조건이면 더좋은 나라 캐나다 또는 미국등으로 진출 했을텐데, 왜 하필이면 모든게 가난하고 후진 이곳 애티오피아를 택해 와서살고 있을까?를 분석해 보면 금방 그해답은 나온다. 한국식당 2개를 운영(하나는 남편이운영)하면서, 동병상련이라고 어려움을 보고 들으면 이를 그냥 흘러 듣지 못하고 구원의 따뜻한 손길을 보내면 거의가 다 이를 악이용하고 끝에 가서는 식당 장사를 위한 접근이었다라는 악담을 서슴치 않았다고 한다. 우리한국인들의 속성을 여기서 또보게 된것이다. 안타까웠다.

심신이 사업에 지쳐 정신적 안식처를 찾는 차원에서 한인들이 출석하는 종교적 모임에 참석하고 싶어도 장사속으로 나온다는 오해를 받는게 싫어 참석도 못하고…  인생의 살아온 얘기를 Lunar와 함께 나누면서, 이민자의 어려움과 서러움, 또 자식을 키우는데 힘드는 과정등이 비슷하여 Lunar는 그녀의 살아온 인생 경험담을 듣고 나누면서, 자신들의 설움에 볶바쳐 눈시울을 많이 적시느라, 자리까지 식당안의 다른 방으로 옮겨가면서 서로 위안을 하고 받았던것 같다. 부모가 못이룬 꿈을 자식들에게서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자식교육에 All-in하는데, 때로는 꼭 뜻한데로 아이들이 자라주지는 않았던 경험이 있었기에, 이제  Teenager가 된 주인장의 자식키우는 어려움이 우리부부의 일처럼 여겨져, 이를 극복하고 살아온 경험담을 통해서 애환을 나누곤 했다고 Lunar가 비행기안에서 설명해 주어 알았다.  그분의 하는 사업에 그리고 커가는 아이들이 건강하고 이사회가 필요한 제목으로 커가기를 마음속에서 기원을 했다.

Driver IU와 Johnny가 시간이 되여 공항까지 바래다 주었다. 식당에서 헤여질때는 차마 껴안았던 팔들이 쉽게 풀어 지지가 않았었다. 마치 수십년을 알고 지냈던 이웃사촌과 헤여지는것 처럼. 저녁 한끼를 먹으러 식당을 찾았던것은 뒷전이고, 지금은 헤여짐의 아쉬움속에서 며칠전에만 서로 만났어도 짧은 만남의 시간에 못다한 애환들을 나누면서 울고 웃고 했을텐데… 그점을 모두가 애닲아 했다.

끝내 Tour Co.주인 Shambel은 식당에 나타나지않았다. 올것으로 기대 했었는데……..
Driver와 Guide에게, 이곳 식당 주인장의 조언을 참고삼아 섭섭지않게 Tip 봉투를 만들어,
마지막 헤여 지면서 그들손에 꼭 쥐어 주고 부디 성공을 빌어 주면서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그들의 마지막 말이 귓전에서 맴돈다 "Papa, Mama 건강하셔서 약속했던 10년후에 다시 꼭 만나요"

Rome에서 비행기 주유하느라 한시간 지체한것과 2시간 넘게 지각출발한것 포함해서 18시간을 좁은 비행기안에서 쪼그리고 앉아 있다 토론토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 마중나온 아들녀석이 반가히 맞아 준다. 혈육의 정을 아들녀석을 통해 깊이 느낀다. 윗분에게 이런 축복을 주신것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아들녀석이 운전하는 차의 뒷좌석에 몸을 던졌다. 아주 편안하다. 긴장이 눈녹듯 풀어진다.  여행 후유증이 이번에는 좀 길게 이어질것 같다.

Ethiopia,Africa 3월22일(금요일 오전): Addis Ababa에서 쇼핑도하고 또 한국전참전용사비 탐방. Ethiopia.



3월22일(금요일 오전): Addis에서 쇼핑도하고 또 한국전참전용사비 탐방.

The Ethiopia is one of 16 countries that dispatched their armed forces to Korea during Korean war( Civil war) erupted 1950 by sudden attack from northern part of communist regime in Korean peninsula  and lasted for 3 years leaving nothing but ashes on both sides with a lots of loss of lives.
After 60 years from that time I and Lunar stood in front of monuments in memorial park in Addis Ababa,Ethiopia that made us think again those days when I was just 5 and 7years old with armistice was signed between UN forces and North Korea.  I did nothing but cried for edible things to fill stomach at that time that made my parents felt so sorry for their kids including me.








I as former President of KVA Canada East and Lunar paid tribute on their sacrifices of 122 fallen soldiers and 536 wounded at that time especially.  I thought that dispatching soldiers to Korean war means Ethiopia was richer than Korea at that time for sure.  Today standing here in Addis Ababa after 23 days of tour through northern tip to south of Ethiopia, I clearly saw and felt that time and tide has stopped on Ethiopia since armistice of Korean war, nothings looks like have been improved or developed.  The country is still very poor, also living standard of people too.
I felt deeply that undeveloped countries is much depending on their leader or leaders whether one country's development or achieving prosperity on economically, politically is or not.

 기왕이면 일찍 출발하여 Addis에 가서 쇼핑도하고, 또 한국전 참전용사묘지를 탐방하고져 차를 달렸다.  마침 Lunar가 선교사 유Debbie댁을 가는길에 잠깐 들려 가자는 제안을 해, tour guide, Johnny가 전화로 우리 일행이 지금 가고 있다고 그녀에게 알려주었는데 반갑게 인사하면서 기다리겠다고 한다.


호텔을 나서기전에 우리는 이제 Kazoya와 헤여져야 했다.  우리는 오늘 Addis로 가서 애티오피아 여행을 마치지만 그는 앞으로도 한달 이상의 여정이 남아 있기 때문에 여기서 아쉬운 석별의 정을 나누어야 했다.   그가 남은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건강한 모습으로 귀국하기를 빌면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위해 이제 성장한 아이를 멀리 떠나 보내는 심정으로 며칠간에 나눈 부모와 자식간의 정을 이제는 접어야 했다.  그리고 우리가 탄 차는 움직이기 시작했고, Kazoya는 뒤에 남아서 손을 흔들었다.





문밖에 그녀가 벌써나와서 우리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옆에는 예쁜 아가씨도 같이 서 있었다.  어제밤 저녁 식사때 처음 인사를 했었는데, KOICA 봉사요원으로 이곳에 도착한지는 불과 한달도 안돼 아직은 현지언어훈련중이며, 앞으로 2년을 이곳에서 봉사활동을 하게 된것이라는 소개를 받았었다.  환경이 열악한 애티오피아에서 봉사활동을 하게되는 아가씨가 대견해 보였다.  유종의 미를 거두기를 마음속으로 기원해 주었다.

 Lunar가  "Deet Mauer가 좋아하는 맥심커피봉지가 몇개가 남아 있어 주고 갈려고 들렸다. 혹시 지금우리 가는길에 동승하여 Addis갈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의견을 물었다. "아직 세수도 안했는데…..30분만 시간 주시면 준비하고 같이 동승, Addis에 가겠다"라고 하는게 아닌가. 남편 Deet Mauer가 물론 오히려 응원을 하면서 허락해주어, 그녀가 아리랑 식당주인에게 우리와 함께 동승하여 몇분후에는 일행 모두가 그곳을 향하여 달리게 될것이다라고 미리 연락한다.



유선교사댁 정원에는 커다란 거북이(Tortoise)4마리가 서식하고 있었다. 관상용으로 사육하고  있고, 먹이는 넓은 정원에서 그들 스스로 찾아서 먹는다고 한다. 정원의 큰나무위에는 Marabou들이 Nest를 짖고 있는 바쁜 모습이 보인다.  Mauer씨가 이새에 대해서 처음듣는 얘기를 해준다. Marabou는 외부로 부터 적의 침략을 의식해서 꼭 나무가지에 가시(Prickle)가 있는 나무에 둥지를 튼다고 설명해준다. 정말로 나무가지에는 가시들이 달려 있는것이 보인다.  모든 생명체는 본능적으로 적으로 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위한 기발한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는 간단한 본성을 이곳에서 Marabou를 통해서 재조명하게 된다.

Shashemene를 지날때 유선교사님이 이곳에는 음악을 통해서 Resurrection 할것이라고 굳게믿는,'자마이카'에서 흘러온 레계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세계도처에서 이주해와서 모여 살고 있는 곳이라고 한다. 또한 이슬람회교도들이 많이 살고 있다고 하면서 다른 도시와는 좀 특이하다고 설명해준다. Caribbean Islands의 자마이카에서 이곳에 이주해와서 살고 있으면서 레계뮤직을 즐기는 자들이 많다고 설명 해준다.

Addis에는 애티오피아에서 제일 규모가 크고 의료시설이 잘구비되여 있는 병원이 조국대한민국에서 지어준것으로 이곳 사람들에게 크게 알려져 있는 명성병원이 활발히 의료봉사를 하면서, 고국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고 고국에 대한 긍지를 한껏 높이 심고 있다고 유선교사님은 쉬지않고 설명을 해주신다.  그녀는 이곳에서 약 10년을 선교활동 해 오고 있는데, 마침 이곳에서 약 5년 먼저와서 선교활동하고 있는 현재의 남편 독일출신 Deet Mauer씨를 만나 결혼생활 하면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부부이다.
남편은 건축공학을 전공한 동독출신으로, 시골외진곳을 찾아서 그곳에 우물을 파서 Local people들에게 식수를 제공해주는 선교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의 설명을 종합해 보면, 애티오피아인들은 의지도 약하지만 관계를 맺고 잘지내다가도 끝에 가서는 꼭 Betray를 다반사로 하는 종족으로 그점에 신경을 많이 써야 낭패를 줄이게 된다라고 했다.   오랜 선교생활을 하면서 경험하고 터득한 결과에서 얻은 지혜일 것이다.

유선교사님은 이곳 애티오피아인 부부들의 생활에 대한 구체적 설명도 해준다.
남편들은 틈만 있으면 밖에 나가서 친지들에게 Show off를 좋아하고, 집안일은 개의치 않는 이상한 문화를 갖고 있다고 한다. 아내들은 집안일을 돌보고, 아이들 양육시키고 경제적 책임도 져야하는 고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문화라고 한다.

도심에서 부모들의 아이들에 교육열은 대단해서, 웬만하면 부부가 맞벌이를 하면서 열심히 돈을 모아 아이들 교육시키기위해, 집에는 Maid를 고용하는 부부들이 많다고 했다. 때로는 사고도 많이나서 이혼율도 높은 편이라고 한다. 어린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보내기위해서 꼭 Kindergarten 졸업장을 제출해야 한다고 한다. 세상에 이런 교육제도가 있다니. 유치원의 수업료는 엄청나게 비싸서 맞벌이 부부가 열심히 벌어야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라는 설명이다.

애티오피아 남쪽 지방을 동서로 가르고 있는 Rift Valley Mountains의 주위에는 7개의 Lakes가있다.   이호수들이 남부 지역의 평야지대에 젖줄역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Lake Chamo, Lake Abaya, Lake Awasa, Lake Shayla, Lake Langano, Lake Chew Bahir( Salt Lake)그리고 지금 탐방중에 있는 Lake Ziway이다.

Ziway호수가에 이르니 비린내가 코를 진동하고, 이곳에서도 역시 사람들이 Fishing을 하고 있었다. 잡힌고기를 포를 떠서 필용한 부분은 보관하고 나머지는 바로 버리면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Marabou들이 잘도 받아먹는다. 호숫가 주변에는 쓰레기들이 널려있어 이것들이 호수를 오염시키고 있다는 그점을 이들은 인식못하고 있는것 같다. 무척이나 더럽고 지저분하다.
꼬마들은 완전 Nake된채로 Marabou들과 어울려 물놀이를 즐기고 있는 천진한 모습이 어렸을적 나의 모습을 다시 보는것 같다.








이호수에는 애티오피아산 기러기들이 서식하고 있었다. 깃털의 색갈은 캐나다산 기러기처럼  검은 색갈이 아니고 옅은 갈색이다. 애티오피아인들이 너무나 새까맣게 보여서 이들이 대신 옅은 색갈을 갖추어 Balance를 맞출려고 그러는것은 아닌지?라는 엉뚱한 상상도 해본다.






Tour Guide,Johnny가 이곳 호수에 대한 전설을 한마디 보태준다.
옛날에 언약괘( Ark of Covenant)가 모셔져 있는 Axumite가 Jewish와 이스람들의 침략이 있어 함락의 위기에 있을때, 언약괘를 이곳 Ziway호수에 있는 섬에 피신시켰다가 후에 평정이 된후 다시 Axum으로 되돌려 보냈다는 이야기다.   그만큼 Ziway 호수가 역사적으로 깊은 뜻을 내포하고 있다는 얘기다.

Addis에 가까워 지면서 교통체증이 말이 아니게 골치를 아프게 한다. 길은 좁고 또 정비도 제대로 안된곳에 갑자기 소나기같은 장대비가 쏟아져 길은 마치 시내물이 흐르듯 한다.  지금까지 후덮지근하고 더웠던 기분이 비가 내린후 기온이 바뀌어 서늘해 진다. Driver가 자켓을  덮어 입는다. 나에게는 아주 시원하고 덮지 않아서 좋은데………

내가 재향군인회원이라는 설명과 함께 그들의 희생을 기리는 묘역이나 기념공원이 혹시 있는가?라는 질문을 들은 Johnny가 차를 세운곳은 한국전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기리는 공원묘역이었다.









2006년도 2월26일날에 한국의 보훈처와 춘천시가 합동으로 현충탑을 건립했다는 설명이 있었다.    애티오피아군의  6/25동란 참전중 희생자는 122명, 부상자는 536명이었다.
애티오피아군들은 강원도의 산양리, 화천,문동리, 금화등지의 오지에서 싸웠다고 한다.
참전기념탑에는 다음과같이 문구가새겨져 있었다.

"자유수호를 위하여 한국전쟁중 젊음을 바친 영웅적인 애티오피아 제국의 용사들에게 바친다"라고.




묘역에는 높게 세운 Monument가 중앙에 있고, 앞쪽에는 산화한 122명의 명패가 비석에 새겨져 있었고, 한국분 증정자들의 이름이 그옆에 새겨져 있었다.

Lunar와 선교사님도 같이 묘역 이곳 저곳을 둘러 보면서 깊은 생각을 하는것 같다. Lunar는 지난 일년간 나와 같이 보내면서 마음고생을 많이 한 고뇌를 이곳에서 털어 버릴려고 그러는것 같아보인다.
괜히 그녀에게 미안한 생각이다.  있지도 않은 모함으로 나를 괴롭혔던 그사람들중 어느누가 감히 이곳 애피오피아군의 희생을 꿈에라도 생각해 볼 진정한 재향군인회원이 있을까?

산화한 젊은 영령들 앞에 가슴깊은곳으로 부터 고마움의 뜻을 전한다. 애티오피아를 여행지로 선택한것도 잘한 결정이지만, 이곳 현충탑을 방문한것은  재향군인회의 감투를 맡았던분들중에서는 내가 아마도 처음인것 같다. 그점에 대해서 자부심을 갖는데 하나도 꺼리낌이 없다.

계획에 없었던 이곳까지 인도하신 그분의 뜻이 무엇일까?  두려움이 함께하는 느낌이 온몸을 엄습한다. 영령들이시여 고히 마음편히 잠드소서. 당신들의 희생에 나자신도 오늘 이곳에 서서 감사의 묵념을 올리지만, 같은 마음으로 대한민국은 이제 당신들의 희생에 헛되지 않게 발전하여 지금은 G20국가 대열에 안착한 당당한 회원국이며 작년에는 G20국가들의 모임을 서울에서 개최 하기도 했음을 보고 드리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