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2일(금요일 오전): Addis에서 쇼핑도하고 또 한국전참전용사비 탐방.
The Ethiopia is one of 16 countries that dispatched their armed forces to Korea during Korean war( Civil war) erupted 1950 by sudden attack from northern part of communist regime in Korean peninsula and lasted for 3 years leaving nothing but ashes on both sides with a lots of loss of lives.
After 60 years from that time I and Lunar stood in front of monuments in memorial park in Addis Ababa,Ethiopia that made us think again those days when I was just 5 and 7years old with armistice was signed between UN forces and North Korea. I did nothing but cried for edible things to fill stomach at that time that made my parents felt so sorry for their kids including me.
I as former President of KVA Canada East and Lunar paid tribute on their sacrifices of 122 fallen soldiers and 536 wounded at that time especially. I thought that dispatching soldiers to Korean war means Ethiopia was richer than Korea at that time for sure. Today standing here in Addis Ababa after 23 days of tour through northern tip to south of Ethiopia, I clearly saw and felt that time and tide has stopped on Ethiopia since armistice of Korean war, nothings looks like have been improved or developed. The country is still very poor, also living standard of people too.
I felt deeply that undeveloped countries is much depending on their leader or leaders whether one country's development or achieving prosperity on economically, politically is or not.
기왕이면 일찍 출발하여 Addis에 가서 쇼핑도하고, 또 한국전 참전용사묘지를 탐방하고져 차를 달렸다. 마침 Lunar가 선교사 유Debbie댁을 가는길에 잠깐 들려 가자는 제안을 해, tour guide, Johnny가 전화로 우리 일행이 지금 가고 있다고 그녀에게 알려주었는데 반갑게 인사하면서 기다리겠다고 한다.
호텔을 나서기전에 우리는 이제 Kazoya와 헤여져야 했다. 우리는 오늘 Addis로 가서 애티오피아 여행을 마치지만 그는 앞으로도 한달 이상의 여정이 남아 있기 때문에 여기서 아쉬운 석별의 정을 나누어야 했다. 그가 남은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건강한 모습으로 귀국하기를 빌면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위해 이제 성장한 아이를 멀리 떠나 보내는 심정으로 며칠간에 나눈 부모와 자식간의 정을 이제는 접어야 했다. 그리고 우리가 탄 차는 움직이기 시작했고, Kazoya는 뒤에 남아서 손을 흔들었다.
문밖에 그녀가 벌써나와서 우리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옆에는 예쁜 아가씨도 같이 서 있었다. 어제밤 저녁 식사때 처음 인사를 했었는데, KOICA 봉사요원으로 이곳에 도착한지는 불과 한달도 안돼 아직은 현지언어훈련중이며, 앞으로 2년을 이곳에서 봉사활동을 하게 된것이라는 소개를 받았었다. 환경이 열악한 애티오피아에서 봉사활동을 하게되는 아가씨가 대견해 보였다. 유종의 미를 거두기를 마음속으로 기원해 주었다.
Lunar가 "Deet Mauer가 좋아하는 맥심커피봉지가 몇개가 남아 있어 주고 갈려고 들렸다. 혹시 지금우리 가는길에 동승하여 Addis갈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의견을 물었다. "아직 세수도 안했는데…..30분만 시간 주시면 준비하고 같이 동승, Addis에 가겠다"라고 하는게 아닌가. 남편 Deet Mauer가 물론 오히려 응원을 하면서 허락해주어, 그녀가 아리랑 식당주인에게 우리와 함께 동승하여 몇분후에는 일행 모두가 그곳을 향하여 달리게 될것이다라고 미리 연락한다.
유선교사댁 정원에는 커다란 거북이(Tortoise)4마리가 서식하고 있었다. 관상용으로 사육하고 있고, 먹이는 넓은 정원에서 그들 스스로 찾아서 먹는다고 한다. 정원의 큰나무위에는 Marabou들이 Nest를 짖고 있는 바쁜 모습이 보인다. Mauer씨가 이새에 대해서 처음듣는 얘기를 해준다. Marabou는 외부로 부터 적의 침략을 의식해서 꼭 나무가지에 가시(Prickle)가 있는 나무에 둥지를 튼다고 설명해준다. 정말로 나무가지에는 가시들이 달려 있는것이 보인다. 모든 생명체는 본능적으로 적으로 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위한 기발한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는 간단한 본성을 이곳에서 Marabou를 통해서 재조명하게 된다.
Shashemene를 지날때 유선교사님이 이곳에는 음악을 통해서 Resurrection 할것이라고 굳게믿는,'자마이카'에서 흘러온 레계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세계도처에서 이주해와서 모여 살고 있는 곳이라고 한다. 또한 이슬람회교도들이 많이 살고 있다고 하면서 다른 도시와는 좀 특이하다고 설명해준다. Caribbean Islands의 자마이카에서 이곳에 이주해와서 살고 있으면서 레계뮤직을 즐기는 자들이 많다고 설명 해준다.
Addis에는 애티오피아에서 제일 규모가 크고 의료시설이 잘구비되여 있는 병원이 조국대한민국에서 지어준것으로 이곳 사람들에게 크게 알려져 있는 명성병원이 활발히 의료봉사를 하면서, 고국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고 고국에 대한 긍지를 한껏 높이 심고 있다고 유선교사님은 쉬지않고 설명을 해주신다. 그녀는 이곳에서 약 10년을 선교활동 해 오고 있는데, 마침 이곳에서 약 5년 먼저와서 선교활동하고 있는 현재의 남편 독일출신 Deet Mauer씨를 만나 결혼생활 하면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는 부부이다.
남편은 건축공학을 전공한 동독출신으로, 시골외진곳을 찾아서 그곳에 우물을 파서 Local people들에게 식수를 제공해주는 선교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의 설명을 종합해 보면, 애티오피아인들은 의지도 약하지만 관계를 맺고 잘지내다가도 끝에 가서는 꼭 Betray를 다반사로 하는 종족으로 그점에 신경을 많이 써야 낭패를 줄이게 된다라고 했다. 오랜 선교생활을 하면서 경험하고 터득한 결과에서 얻은 지혜일 것이다.
유선교사님은 이곳 애티오피아인 부부들의 생활에 대한 구체적 설명도 해준다.
남편들은 틈만 있으면 밖에 나가서 친지들에게 Show off를 좋아하고, 집안일은 개의치 않는 이상한 문화를 갖고 있다고 한다. 아내들은 집안일을 돌보고, 아이들 양육시키고 경제적 책임도 져야하는 고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문화라고 한다.
도심에서 부모들의 아이들에 교육열은 대단해서, 웬만하면 부부가 맞벌이를 하면서 열심히 돈을 모아 아이들 교육시키기위해, 집에는 Maid를 고용하는 부부들이 많다고 했다. 때로는 사고도 많이나서 이혼율도 높은 편이라고 한다. 어린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보내기위해서 꼭 Kindergarten 졸업장을 제출해야 한다고 한다. 세상에 이런 교육제도가 있다니. 유치원의 수업료는 엄청나게 비싸서 맞벌이 부부가 열심히 벌어야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라는 설명이다.
애티오피아 남쪽 지방을 동서로 가르고 있는 Rift Valley Mountains의 주위에는 7개의 Lakes가있다. 이호수들이 남부 지역의 평야지대에 젖줄역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Lake Chamo, Lake Abaya, Lake Awasa, Lake Shayla, Lake Langano, Lake Chew Bahir( Salt Lake)그리고 지금 탐방중에 있는 Lake Ziway이다.
Ziway호수가에 이르니 비린내가 코를 진동하고, 이곳에서도 역시 사람들이 Fishing을 하고 있었다. 잡힌고기를 포를 떠서 필용한 부분은 보관하고 나머지는 바로 버리면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Marabou들이 잘도 받아먹는다. 호숫가 주변에는 쓰레기들이 널려있어 이것들이 호수를 오염시키고 있다는 그점을 이들은 인식못하고 있는것 같다. 무척이나 더럽고 지저분하다.
꼬마들은 완전 Nake된채로 Marabou들과 어울려 물놀이를 즐기고 있는 천진한 모습이 어렸을적 나의 모습을 다시 보는것 같다.
이호수에는 애티오피아산 기러기들이 서식하고 있었다. 깃털의 색갈은 캐나다산 기러기처럼 검은 색갈이 아니고 옅은 갈색이다. 애티오피아인들이 너무나 새까맣게 보여서 이들이 대신 옅은 색갈을 갖추어 Balance를 맞출려고 그러는것은 아닌지?라는 엉뚱한 상상도 해본다.
Tour Guide,Johnny가 이곳 호수에 대한 전설을 한마디 보태준다.
옛날에 언약괘( Ark of Covenant)가 모셔져 있는 Axumite가 Jewish와 이스람들의 침략이 있어 함락의 위기에 있을때, 언약괘를 이곳 Ziway호수에 있는 섬에 피신시켰다가 후에 평정이 된후 다시 Axum으로 되돌려 보냈다는 이야기다. 그만큼 Ziway 호수가 역사적으로 깊은 뜻을 내포하고 있다는 얘기다.
Addis에 가까워 지면서 교통체증이 말이 아니게 골치를 아프게 한다. 길은 좁고 또 정비도 제대로 안된곳에 갑자기 소나기같은 장대비가 쏟아져 길은 마치 시내물이 흐르듯 한다. 지금까지 후덮지근하고 더웠던 기분이 비가 내린후 기온이 바뀌어 서늘해 진다. Driver가 자켓을 덮어 입는다. 나에게는 아주 시원하고 덮지 않아서 좋은데………
내가 재향군인회원이라는 설명과 함께 그들의 희생을 기리는 묘역이나 기념공원이 혹시 있는가?라는 질문을 들은 Johnny가 차를 세운곳은 한국전 참전용사들의 희생을 기리는 공원묘역이었다.
2006년도 2월26일날에 한국의 보훈처와 춘천시가 합동으로 현충탑을 건립했다는 설명이 있었다. 애티오피아군의 6/25동란 참전중 희생자는 122명, 부상자는 536명이었다.
애티오피아군들은 강원도의 산양리, 화천,문동리, 금화등지의 오지에서 싸웠다고 한다.
참전기념탑에는 다음과같이 문구가새겨져 있었다.
"자유수호를 위하여 한국전쟁중 젊음을 바친 영웅적인 애티오피아 제국의 용사들에게 바친다"라고.
묘역에는 높게 세운 Monument가 중앙에 있고, 앞쪽에는 산화한 122명의 명패가 비석에 새겨져 있었고, 한국분 증정자들의 이름이 그옆에 새겨져 있었다.
Lunar와 선교사님도 같이 묘역 이곳 저곳을 둘러 보면서 깊은 생각을 하는것 같다. Lunar는 지난 일년간 나와 같이 보내면서 마음고생을 많이 한 고뇌를 이곳에서 털어 버릴려고 그러는것 같아보인다.
괜히 그녀에게 미안한 생각이다. 있지도 않은 모함으로 나를 괴롭혔던 그사람들중 어느누가 감히 이곳 애피오피아군의 희생을 꿈에라도 생각해 볼 진정한 재향군인회원이 있을까?
산화한 젊은 영령들 앞에 가슴깊은곳으로 부터 고마움의 뜻을 전한다. 애티오피아를 여행지로 선택한것도 잘한 결정이지만, 이곳 현충탑을 방문한것은 재향군인회의 감투를 맡았던분들중에서는 내가 아마도 처음인것 같다. 그점에 대해서 자부심을 갖는데 하나도 꺼리낌이 없다.
계획에 없었던 이곳까지 인도하신 그분의 뜻이 무엇일까? 두려움이 함께하는 느낌이 온몸을 엄습한다. 영령들이시여 고히 마음편히 잠드소서. 당신들의 희생에 나자신도 오늘 이곳에 서서 감사의 묵념을 올리지만, 같은 마음으로 대한민국은 이제 당신들의 희생에 헛되지 않게 발전하여 지금은 G20국가 대열에 안착한 당당한 회원국이며 작년에는 G20국가들의 모임을 서울에서 개최 하기도 했음을 보고 드리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