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October 26, 2010

늙었다고 연금(Pension)을 신청 하란다. 벌써 내나이가?...




일상 해오던 일중의 하나인 우편함을 오늘도, 호수가로 이어진 Board Walk과 숲속을 통과 하여 이어진 Trail walk(산책로)을 끝내고 들어오면서 Condo 의 입구에 beehive처럼 진열되여 있는 Mail box에 가서 내 번호를 찾아, 열쇠로 문을 열어 수북히 쌓여 있는 Mail들을 꺼냈다. 그런데 그중에서 두툼한 흰봉투 하나가 나의 시선을 끌었다. 배달되는 Mail이라고 해보았자 뻔한것 들이긴 하지만..... 그래도 습관적으로 주말을 빼고는 매일 한번씩 들리는 곳이기에...... 대개 Junk mail이 대부분이고, 그다음에 분기별로, 아니면 매달 발생하는 각종 고지서들 뿐이다. 꺼내자 마자 대충 정리하여, Junk Mail들은 바로 휴지통에 버리고, 두툼한 봉투의 발신지를 살펴 보았다. CPA라고 적혀 있었다. 처음 받아보는 것이라서 또 혹시 내가 알지 못하게 내야할 고지서의 납부를 안해 Warning 편지가 아닌가? 하고 내용물을 살펴 보았다. CPA는 Initial로 Canadian Pension Agency를 뜻한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우선은 내가 잘못하여, 또는 Omit하여 벌금을 내라는 고지서가 아니라는점에 안도의 숨을 쉬고, 집에 들어와 자세히 들여 보았다. 아까 Mail Box에서 부터 다른때와 다르게 지체하는 나를 지켜봤던 Lunar가 뭔데 그렇게 심각하게 들여다 보느냐면서, 우선 shower 부터 하는것이 좋겠다고 한마디 거든다.

하던일을 좀 일찍 접고, 지난 몇년간을 지내 왔는데, 막상 Pension을 신청 하라는 Application을 받고 보니 기분이 좀 묘하다. 그것도 내것이 아니고 Lunar것이란다. Biologically 우리 부부는 같은 해에, 4일 먼저 아내가 세상에 태어났지만, 법적으로는 Lunar가 일년 먼저 태어난것으로 되여 있다. 그것이 사회생활할때는 하나의 Advantage로 작용하는면도 있어서 은근히 좋아 했었는데, 오늘은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왜 우리 아버지는 출생신고를 일년씩이나 늦추어 하셨을까?였다. 내자신이 지금처럼 캐나다로 이민가서 늙으면 국가에서 주는 연금을 수령하게 될것이라는것을 아셨더라면, 그렇게 하시지는 않았을것이라는것을 나는 확실히 믿는다. 고지서를 포함한 대부분의 Paper들에 대해서는 내가 주로 처리하여 왔기에, Lunar는 다른면에 더 신경을 쓰는 편이다. 벌써 우리부부가 그렇게 긴(?)세월을 살아왔다는게 꿈같이만 느껴진다.
더 잘살아 보겠다고, 한살반짜리 첫아이를 안고 낯선땅 이곳에 첫발을 내려 놓은지가 엇그제 같은데..... 그아이가 지금은 36세가 되였구나.
그때 이민온 우리 한인들은 다 같은 형편이었겠지만, 조국이 아직 너무나 가난 했기에, 빈손으로 나올수밖에 없었었다. 간혹 여유가 있었다 해도 국가정책으로 외화반출이 철저히 금지 되여 있었기에, 빈손으로 나올수 밖에 없었다. 간혹 빽좋고, 재주좋은 사람들은 예외인 경우를 그후에 살면서 알기도 했었지만.... 하물며 우리같은 서민의 입장에서야 더 설명이 필요 없이, 갖고 온것은 몇백달러와 간단한 옷종류등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오죽했으면, 김포공항 검색대에서, 이민가족인 우리를 점검할때, 휴대가방의 내용품을 살피기 위해 뒤집어 엎었는데, 보이는것은 싸구려 플라스틱 슬리퍼, 그리고 우리를 알고 있는 친지들이 환송하러 공항에 나오면서 들고 왔던 선물(?)들을, 우리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휴대용 백속에 넣었던 것으로 생각되는, 아이들 장난감 등등인것을 보고, 검색원이 미안했던지? "아니 이민가시는분의 가방이 뭐 이래요. 가셔서 잘사세요"라고 하면서 다시 가방에 넣어줄때, 어떤 장래 계획이나 정해진 목표도 없이, 그저 잘 살아 보겠다는 막연한(?) 희망만을 가슴에 안고, 그리고 젊음이라는 무기 하나만으로, 부모 형제 친척 친지들을 모두 뒤로 한채 조국을 떠나야 했던, 그런 한편으로는 자기네들만 잘먹고 잘 살려고, 조국을 등지고 떠난다는 따거운 시선을 받기도 했었던, 우리식구의 앞날을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설음의 눈물이 주르르 흘렀던때가 엇그제 같이 가슴에 느껴지는데..... 그리고 우리부부의 삶도 중요 하지만, 아이들의 좀더낳은 앞날을 위한 터전을 다지기위해 아침 새벽부터 저녁 한밤중까지 앞만 보고 뛰어왔던 수십년의 세월이었었는데..... 지금 이순간만은 한순간의 흐름같이만 느껴진다. 부질없는.....

"여보, 당신 그동안 잘 살아 왔으니, 국가에서 연금 타가라고 신청서를 보내 왔다. 한번 봐. 이 두툼한 힌종이들이 그서류들이야"
"애이 징그러워. 내가 그렇게 늙었단 말이야? 혹시 당신이 잘 못본것 아니야?"
"내참, 그럼 찢어 없애 버릴까? "
"아니 그게 아니고 다시 한번 잘 살펴 보라는 뜻이야. 하여튼 살다보니, 국가에서 돈을 주겠다고 하는 날도 보네. 월말이 되면 항상 납부해야할 고지서 돈 준비하느라 신경을 곤두서곤 했었는데....."

다른 나라도 대충 비슷하겠지만, 만 65세, 우리 고국의 나이 방식으로 하면 66세 되면 국가에서 주는 연금수령자격을 얻게 되는 것이다. 연금도 여러종류라고 한다. 직장을 다니면서 매번 Pay roll에서 일정액을 제하여 국가에 납부했던 은퇴연금, 노령연금(Old Age Pension), 그리고 이러한 연금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운 은퇴자들에게는 신청시 생활 보조금을 주는등등....
남의 떡이 더 커보인다고, 울타리밖의 세상이 더 좋아 보인다고 했던가. 우리의 삶은 항상(?)그렇게, 마음속에 아쉬움을 간직하면서, 여기까지 살아왔던것 같다. 신청하여 연금을 수령하게 되면, 분명히 감사해 하는 마음보다는, "야 겨우 이것이야? 내가 낸 세금이 얼마인데..."라고 국가에 대하여 아쉬움을 먼저 나타내지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만약에 가난한 나라에서 이러한 연금을 받게 된다면, 어쩌면 고마움의 눈물을 흘릴지도 모르겠지만, 처해져 있는 현재의 상황에 만족해 할줄 모르고, 아쉬워만하는 인간의 모순성(?)인 두마음이 작동하게 되지는 않을지, 단단히 마음속에 다짐을 해두고 싶다. 적거나 많거나 감사한 마음으로 감사하게 그리고 값있게 잘 사용해야 겠다고 말이다.
현편으로는 살아갈날이, 살아온날 보다는 훨씬 적어지고 있다는 신호인것 같기도해, 좁은 부엌에서 우리 부부가 먹을 저녁준비를 하고 있는
아내의 모습을 물끄럼히 쳐다 보면서, 저여자가 아니였으면 오늘의 내가 존재했을까?라는 지나온 날들을 되돌아 보면서 무던히도 마음을 아프게만 했떤 내자신에 마음이 안쓰럽다. 머지 않아 Pension이 들어있는 봉투을 우편함에서 꺼내오는날, 그녀를 근사한 식당에라도 모시고 가서, 내가 노력해서 벌어들인 수입인양, 오늘 저녁은 내가 한턱 쓰는거야 라고 소리치면서,생색이라도 한번 내봐야 겠다는 나의 속마음을 알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지, "여보 저녁 준비 다 됐어요. 어서 와요" 라는 그녀의 신호 소리에 잠시나마, 살아온 지난날들속에서 헤매고 있던 꿈이 번쩍 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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