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신앙생활하고 있는 교회는 모든면에서 규모가 다른 이민교회에 비해서 매우 크다. 모이는 숫자와 건물의 규모면에서.
따라서 부모님들을 따라 교회에서 신앙생활하는 자식들의 숫자도 굉장히 많은 편이다. 직장생활하는아이들, 대학생, 그리고 중고등학생등등.
그런데 참으로 신기(?)한것은 그들이, 교회밖에서는 차치하고라도, 교회안에서 서로 마주치거나 자리를 같이 할경우 윗사람 즉 자기네 부모들 되는분들한데 인사하는것을 거의 보기가 힘들다. 아니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로 눈이 마주쳐도, 안면이 있어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을 보면, 그부모를 알수 있다는 얘기는 특별한 문구가 아니다. 우리 기성세대 모두가 그렇게 인식하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아이들 즉 이민 2세 3세들이 잘되어야 부모로서의 할일을 다한것으로 인식된 1세대들은 그래서 열심히 아이들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그들을 통해서 부모로서의 이루지 못한 원대한 꿈을 이루어 그성취감을 맛볼려는 배상심리가 그저변에 깔려 있음을 모르는 이는 없다.
그래서 열심히 신앙생활하면서, 자식들과 함께 출석하는것이다.
우리 이민 1세들은 생활전선에서 거의 밤낯없이 열심히 뛰면서, 자식들을 또한 열심히 교육 시킨다. 어떤 부모는 이미 은퇴한분들도 있고, 현재 현업에서 생활기반을 닦고, 아이들 교육시키기위해 더 열심히 뛰고 있는 부모님들이 아직은 더 많은것 같다.
주어진 일에 이끌려, 때로는 아이들 뒷바라지를, 마음만 있을뿐, 같이 행동으로 받쳐 주지 못할때가 흔하다. 대부분 직장생활 아니면 소규모 Family Business를 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민자들의 설음(?)과 한이 맺힌 삶의 한단면이기도 하다. 그러한 바쁜시간을 쪼개어 부모들은 아이들과 함께 일주일에 한번, 교회출석하여 신앙생활에 매달리고, 아이들은 그들만의 모임인 EM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Fellowship을 한다. 부모님들은 아이들이 교회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을 영접하는 신앙생활을 하고 사회가 필요한 인간이 되기위한 기초 교육을 교회에서, 바쁘게 뛰고 있는 부모들을 대신하여, 담당해 주기를 무언의 약속으로 고대한다고 정의를 내린다면 너무나 공짜 승차를 한다는 발상이라고 비난 받지 않을까?라고 조심스럽게 생각해 보기도 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게만 돌아가지 않음을, 앞서도 언급했듯이, 아니 더 기대에서 어긋나게 자라고 있음을 보면서 교회의 중추가되는 1세 이민자인 부모로서 우리가 출석하고 있는 교회가 역활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곰곰히 되씹지 않을수 없는것 같다. 약 2년전에 코스타리카 여행중에 수도 산호세 외곽에 있는 한인교회를 방문해서 같이 예배보고 친교한 기억이 지금도 인상에 깊이 남아 있다. 그곳 교회도 우리처럼 힘들게 이민생활하고 있는 부모들이 모여 자체 성전을 짖고, 아이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곳이었다.
신기하고도 놀란것은, 교회에서 부딪치는 모든 부모님들과 처음만난 우리부부에게도 만나는 아이들마다 허리를 90도 각도로 굽혀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순수 우리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또 어떤 아이들은 '만나뵈서 반가워요' 라고. 예배후 친교 시간에 동석한 부모님들과 자연스레 아이들 인사하는 모습이 참 아름답고, 정겹고 가족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고 했더니, '많이 부족한 아이들입니다. 부모님들이 열심히 하고는 있지만, 교회의 역활이 아이들 예절 교육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지요 라고 대답해 주신 부모의 말이 지금도 기억에 뚜렷하다. 교회의 역활이 신앙생활하는, 특히 이민자교회에서는, 아이들한테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는데는 변함없는 나의 생각이다.
얼마전 교회 담임목사 청빙을 위한 후보목사님을 모셔다가 EM 설교를 한다기에 처음으로 아이들과 함께 어울려 영어 설교를 들은일이 있었다. 담임목사로서의 우리교인 모두가 원하는 자질을 가지신 분인가를 탐색하는 중요한 설교를 통한 만남의 시간이었었다. 당연히 목회팀들은 그설교에 참석했어야 했다. 그러나 교회의 책임을 맡고 있는 목회자분의 모습을, 평상시 항상 앉아 있는 자리에서 볼수가 없었다. 참석하셨다면 분명히 그자리에 있었어야 했는데.... 아마도 영어권이기에 나하고는 상관이 없다라고 판단 하셔서 였다면, 리더로서의 자질을 의심하기 이전에 신앙관을 떠나 책임감의 결여를 생각지 않을수 없음을 느꼈었다. 평신도인 나를 포함한 여러 뜻있는 부모들의 얼굴도 많이 보인 그런 중요한 순간이었는데... 며칠전 송구영신 예배를 보았다. 그전부터 합동으로 송구영신 합동예배가 있다고 광고를 했었다. 불행하게도 EM 목회자를 포함한목회팀은 전연 보이지가 않았다. 합동예배때면 항상 앉아있었던 자리가 비어있어, 참석안한것이 증명되는 것이다. 분명히 송구영신예배인데.....어찌보면 부모와 자식관계같은 한신앙조직인데, 분명히 뭔가 잘못되가고 있음을 마음속으로 봤다.
예배가 끝나고 축도기도전에 목사님께서, 목회자청빙건과 교회를 위해 통성으로 기도하자고 선창하면서 기도가 시작됐다. 그러나 30초도 채넘기기전에 장내가 조용해졌다. 물론 목사님의 기도역시 멈췄다. 이송구영신 예배에 모인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신자들은 보다 낳은 신년을 맞이하기위한 '서원기도'를 받던가 아니면 직접 자신이 큰 소리내여 하기를 간절히 원하면서 이예배에 임했을 것으로 안다. 불행하게도 목사님으로 부터 '새해서원(New year's resolution)기도'라는 단어를 설교나 기도속에서 들어보지 못했다. 장소와 시간에 적절한 기도를 해야 함은 신앙인이라면 모두가 십시일반으로 느끼며 해오고 있는 일반적인 통념이요 믿음 생활인 것이다. 알갱이 없는 겉도는 기도 선창에 어느 누가 깊은, 간절한 기도속으로 뛰어 들수 있겠는가? 이를 어떻게 해석 해야 할까? 그런속에서 교인들의 사랑과 믿음 그리고 영적 성장를 기대 하고 있다면 고목에서 꽃피는것을 기대하는것과, 이단으로 여겨질수 있는 하나님의 기적을 보는것이나 다를바 없을것으로 믿어진다.
예배가 끝난후 무의식적으로 지하친교실로 모두의 발걸음이 움직이는 대열에 나도 있었다. 아뿔사 지하실에는 아무런 친교준비가 되여 있지 않은것 까지는 그런데로 이해 한다고 하겠으나, 그곳에 EM 목회자가 이이들과 담소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 것이다. 밀려 들어오는 윗어른들에 대한 간단한 목례도 전연 없다. 자연히 그와 같이 있거나 그옆에 있는 우리의 아이들도 물론 마찬가지였다. 이곳에서 낳고 자라고 교육을 받았기에 서양식 문화라서 그럴수 있다라고 이해해 달라고 할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절대로 용납 안되는 회피책에 불과하다. 이곳의 서구쪽 아이들도 관계가 맺어지면 자연스럽게 인사하는것은 기본이고, 눈인사라도 꼭 한다.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가 그목회자를 통해 아이들에게 어떻게 전해질까? 안타깝기만 했다. 맨날 입을 통한 설교로, 잘해야된다, 기도해야된다, 윗사람을 존경해야 된다 등등의 미사여구만 늘어 놓고, 행동이 뒤따르지 않으면.... 아이들도 그렇게 닮아 가기 쉽상인것은 상식이 아니겠는가? 책임은 때로는 목숨과도 바꾸어야만 할정도로 조직생활에서, 신앙생활에서 첫번째로 꼽히는 중요한 항목인 것이다. 그책임을 무사히 실행할때, 그것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명예가 상금으로 뒤따르는 것이다.
송구영신예배에서 성찬식을 했다. 예수님의 살과 피에 비유되는 떡과 포도주를 나누어 주는 의식에서 많은 장로, 권사님들이 보여준 거룩한 행동은 엄숙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한 행동이 예배후 친교실에서도 이어졌었으면 얼마나 빛나고 또 고마워 했을까? 한해를 보내고 신년을 새마음으로 맞이하는 예배후 친교실에서 나누는 커피한잔, 다과 한조각은 무한대의 뜻을 의미한다고 믿는다. 거룩함을 나타내는곳에는 그렇게도 많이 나서더니, 차거운 날씨에 그것도 신년을 막 맞이한 첫날에 따뜻한 차한잔 나누어 마실수 있게 자리를 마련해 주는 여유가 그들에게는 없었단 말인가? 책임과 명예. 혹자는 그러면 당신은 뭐했는가?라고 묻는다면, 나도 할말이 많지는 않다. 그러나 분명히 대꾸할수 있는것은 나는 내가 부족한 사람이기에,그들 장로와 권사님들을 신앙생활에서 본보기로 보면서 따를려고 노력은 하고 있다고 말이다.
내려온 모두가 오히려 어색하여 바로 발길을 돌리는 모습은, 말로만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리더의 미덕이 정말 중요하다는것을 절실히 본것외는 아무것도 없었다. 따뜻한 사랑의 바람은 한점 불지 않았고, 살을 애이는듯한 차가운 엄동설한의 찬바람만 불어오고, 지나감을 느꼈을 뿐이다. 나만 이런 춥고 차거움을 느꼈다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모두가 십시일반으로 보았고, 느꼈을 것이다.
연말에 교회목회팀과 당회원들이 보낸 연하 카드를 받았다. 반갑게 열어 보았는데, 소요된 비용이 아깝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목회팀이나 당회원들의 정성이 담긴 Signature하나 없이 교회 비서가 볼펜으로 쓴것으로 보이는 '목회팀과 당회원 드림' 그것이 전부였다. 최소한 친필 서명정도는 곁들였어야 했다. 차라리 내년 부터라도 그런 허레 허식은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어느교회의 목회팀이 교인들이게 연하장 보내면서, 비서가 대필 서명했다는 소리 들어본 기억이 없다. 정성이 없는 겉치레. 왜 내가 이런 값싼 취급을 받아야 하는가?
나는 교회에서 서리집사 직분을 매년 받았다. 금년 2010년에도 예외는 아니다. 본인의 의사와는 거의 관계없이 교회에서 임명하는것 같다.
장로,권사직은 본인이 하겠다고 이력서를 교회앞에 제출하고, 교인들의 투표를 통해 인정받아 그직책을 하게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책임과 명예를 다 이행하겠다는 것으로 해석할수 있다. 서리집사는 그런 절차는 없다. 이번 새해 첫예배에서 담임목사님이 '서리집사'임명 받은분은 자리에서 일어서십시요 라고 광고를 했다. 나는 그냥 자리에 앉아 있었다. 장로, 권사 투표때는 필요한 조건등등을 다기억할수 조차 없이 거론하곤 하는데, 서리집사는 한마디의 설명도 없었다. 벌써 몇년전에 설명을 다 해줬기 때문인지는 나는 모른다. 너무나 형식적이고 알맹이가 없다. 나는 서리집사를 감당하는것도 내자신의 살아온 신앙생활에 비추어 볼때, 너무나 어렵고 무겁고,부족하기에 받아 드릴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라고 왜 집사, 장로를 하고 싶지 않겠는가? 허지만 내 자신을 내가 잘알고 있기에 감히 받들지를 못하는 안타까움이 항상 내마음을 조이는 것이다. 그래도 2년전까지는 년초 재직 수련회에 참석하곤 했었다. 그때 말씀 전달 하시는 목사님의 알맹이 없는, 틀에 밖힌 설교내용을 들은후, 즉 지난해 부터 아예 참석을 하지 않았다. 신앙의 식구들끼리 친교 잘하고, 서로 사랑하고, 전화 연락이라도 자주 하면서 신앙생활을 하라는게 주된 내용이었는데, 정말 옳은 말씀이었다. 최소한 말로만 할때는 말이다. 양떼들이 풀밭에 들어가면 자연적으로 풀을 뜯어 배를 채운다. 그러나 그 풀밭까지 가는데는 목자의 안내와 도움이 필요한것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은퇴후부터 이곳에서 신앙생활해오고 있지만, 그렇게 많은 목회자들중에서 신방은 고사하고, 전화한번 받아본 적이 없이 신앙생활하고 있다. 우리 부부는 그런것 때문에 교회출석하는데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 년초 예배때 광고를 기억한다면, 정기심방이 곧 시작되는데, 원하시는 분은 신청을 하세요 라는 것뿐이다. 정기심방을 신청 받아서 한다니.... 우리 한국인의 정서는, 최소한 이민1세대들은, 아직도 한국적 사고 방식이 고루하여 겸양의 미덕을 좋아한다. 그것을 모를리없는 목회자가 어찌 그렇게 무책임한 말을 한단말인가. 정기심방만큼은, 그것이 형편에 따라 실행이 안될처지라면은 최소한 전화라도 일년에 한번은 해야 하는것이, 신자들에게 본보기가 되는 자세 아니겠는가? 그많은 신자들을 어떻게 다 하느냐고 이유를 댈수 있을수도 있겠으나, 그래서 부목사님들을 열손가락으로 다 꼽지 못할 정도로 모시고 있지 않은가? 분담하면 쉽게 해결되는, 그래서 신자들의 살아가는 환경과 친목과 교회에 대한 사랑도 더 길어지게 할수 있는것 아니겠는가? 책임에는 행동이 수반되는 간단한 신앙의 진리를 나는 어느 리더로 부터 볼수 있을까?
금년 1월달 사랑의 식탁은 목회팀, 당회원, 권사님들이 맡아 하신다고 광로를, 긴설명을 곁들여 하신다. 좋은 일이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생각해 보고 싶다. 왜 평상시 해오던 사랑의 식탁이 문을 닫을 정도로 사랑이 식어 버렸는지에 대한 해답부터 찾을려고 그분들은 깊이 숙고 했어야 했다라고. 신앙은 사랑이다라는 행동을 전연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단언한다. 그래서 유심히 식당안을 들여 봤다. 광고를 하신 목회자를 포함한 목회자분들의 모습은, 내가 안경을 써서 그런지는 몰라도, 못보았다. 다른 여러 업무로 바쁜것은 알지만, 말보다는 실천한다는 의미에서 한번 부엌을 들려 수고하시는분들께 격려 한마디 해주는 아량이 없이, 말로만 하는 그런것은 누구나 지껄일수있는, 어렵지 않은 것이다.
들리는 바로는 우리 교회는 캐나다 장로교단 소속이기에, 목회자가 한번 임명되면 본인이 사임을 청하기전에는 그직이 철밥통이나 마찬가지로 보장되여 교회교인들의 의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또 교회건물도 교단을 탈퇴할시는 잃게 된다는 말을 친교를 하면서 여러번 들었다. 기분나쁜 소리이다. 웹싸이트를 뒤쳐 캐나다 장로교단의 헌법과 운영에 관한 내용을 읽어 보았다. 그런 내용과 비슷한 법조항은 찾지를 못했다. 어떻게 해서 그런 유언비어가 교인들 마음속 깊이 박히도록 퍼뜨려졌는지는 몰라도, 너무나 기가 막혔다. 교인들을, 일반사회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표현한다면, 공갈로 협박한것이나 다름 없다고 생각된다. 그런 루머만 무성했지, 실제로 그내용을 자료를 들춰가면서 자세히 설명해주는 교인은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누가 정말로 내가 이렇게 주장하는말이 틀린것이라고, 그래서 나의 생각을 바로 잡아주기위한 헌법이나 규례내용을 보여 줬으면 좋겠다. 그만큼 우리 신앙인들은 순수하고 교회리더들을 따라 움직일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증거로 보이기도 했다. 그것을 역으로 이용하는것은 주님께서 결코 용납하지 않을거라고 믿는다.
우리 부모님들은 이성과 자아를 발휘하여, 무조건적인 신앙생활은 지양하고,신앙생활을 빙자한 순종에 강요 당해 어쩔수없이 따라하는 무속신앙적인 생각을 버려야하고,목회자님들은 하나님의 기름부은 종이라는, 절대권력적인 자세를 이제는 버리고, 이치와 순리에 맞은, 그리고 그위에서 하나님을 숭배하고 찾아, 모든것을 내려놓고 간구하는 겸허한, 예절바른 신앙자세로 일상을 살아가지 않는한, 우리 아이들이 뭘 배우고 실천하고, 헌신하기를 바랜다는것은, 앵무새의 지껄임에 불과한것 그이상 아무것도 아닐것이다. 욕심이다.
그증거가 바로 위에서 언급한것 처럼, 웟어른 즉 부모에 대한 예의법절의 표현을 모르는 아이들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내아이들이라고 예외는 절대 아니다. 나도 똑 같이 그범주에 속하는 속된 신앙인의 탈을 쓴 불쌍한 인간임을 숨길수 없다. 지식면에서는 잘 발달된, 성숙된 아이들일수 있겠으나,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한, 기본 예의 정도는 표현할줄 아는 아이들을 보는 부모가 되였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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