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January 31, 2010
Dundas Valley, North방향 Trail Walk.
날씨가 너무나 춥다. 체감 온도가 27도 라고 한다. 어쨋던 걸으면 몸에서는 땀이 나고 열이나고, 외적 추위와는 별 상관이 없음을 잘 알고 있기에 짐을 꾸려 지난번 만났었던 모이는 장소로 아직 어두컴컴한 새볔을 가르면서 토요일의 한가한 QEW의 고속도로를 달린다.
오늘은 Noona(Lunar)가 참석을 못했다. 그녀가 몸살을 앓고 있어서 이다.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긴장이 풀어져서 인지, 아니면 여행지에서 너무나 몸에 무리를 주면서 까지 즐겨서인지, 아니면 신경을 많이 써서 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거의 매번 그런 후유증을 거친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어서, 어제도 끙끙 앓으면서, 몸을 추스려 내일 Trail Walk에 꼭 갈것이라고 나하고 약속아닌 약속을 하면서 준비까지 했었는데, 결국 새벽녘에는 더 힘들어 하는것을 보고, 무리하지 말고 쉬는게 좋겠다는 의견일치를 보았기 때문인것이다.
나만 극성인줄 알았는데, Tim Horton's 커피숖에는 상당수의 대원들이 벌써와 있고, 또 내뒤를 이어 계속 몰려 들기 시작했다.
K의 차로 Car Pool 하여, 차를 몰아 목적지 Parking장에 도착했을때는 벌써 다른 한인등산 구룹들이 Parking장을 선점 하다시피 차는 꽉 차 있었다. 파킹장 입구에 들어서면서, 아래쪽으로 내려다 보이는 Dundas Valley의 나무숲은 파란색이 아니고 끝없이 펼쳐지는 회색으로 계곡을 뒤덮고 있는 경관이 과연 장관이고 아름답고 넓다고 느꼈졌다. 약속이나 한듯, 먼저온 구룹은 남쪽 즉 Niagara쪽을 택해 우리구룹보다 먼저 걷기 시작했고, 우리는 그반대로 Calidonia쪽을 향해 발길을 내딛기 시작했다. 대원들 모두가 중무장이다. Crampon은 나만 빼고 다 착용한것 같다. 대신에 나도 오늘은 Mask까지 동원하고, 안경도 벗어서 아예 차에다 두었다. 왜냐면은, 안경을 착용하고 그위에 Mask를 하면 입김이 안경에 서려 오히려 앞을 가리는 불편을 주기에, 안경을 벗어, 앞쪽을 보는데 조금 괴로운 것 보다는 아예 벗어 던짐으로 해서, 김이서려 앞을 막는쪽 보다는 편할것 같아서 였다. Dundas Valley는 인근에 거주하고 있는 Hamiltonian은 물론, 토론토에서 부터 St. Catherine지역에 사는 주민들의 휴식 공간이나 마찬가지로 많이 Trail Walker들에게 또는 죠깅하는 사람들에게 사시사철 애용 되고 있는 구간이기도 한다. 대원들 거의 모두가 오랫만에 이구간 Walking을 시작하면서, 첫번째로 조우하는 Tiffany Water Falls가 전부 꽁꽁 얼어붙어, 물대신 하얗게 덮힌 아름다움에 잠시 발길들을 멈추고 눈길을 그곳에 주고, 아마도 기억속에 각인 하려는듯한 모습으로 응시 하기도 한다. 폭포로 떨어지는 물또한 얼음속에서 움직이기에 소리 마져도 고요하다. 옆에서 같이 걷고 있던 Mr. Tanaka 그앞에서 자세를 취하더니 나에게 눈짖을 한다. 그와 폭포를 배경으로 한컷 찰칵하니, 그가 미소를 지으면서 고맙다고 한다. 순간을 포착하는것으로 끝나는것이 아니고, 그에게 e-mail로 보내진다는 의미가 내포되여 있기 때문이다. Trail 구간 대부분이 넓게 잘 정돈, 관리가 되여 있어 많은 도움을 준다. 몇군데를 빼고는 거의 전 구간이 평평한 숲속을 관통하기에, 우리와 조우하는 어떤 구룹은 적은 숫자이기는 하지만, 마치 조깅하듯이 뛰는모습도 마주쳤다. 분명 그들은 나보다는 패기넘게 젊은 친구들이다. 나도 그런때가 있었나?라고 기억을 되돌려 보게 하는 촉매제 역활을 그들이 해주고 있음을 느낀다. 어느새 몸속에서는 열이나기 시작하고 땀이 배는 느낌을 살갖과 속옷이 부딪치는 감각에서 본다. 발길 한발씩 뗄때마다 신경을 더 써야 했다. Crampon을 안했기에 눈덮히고, 빙판으로 덮힌 Trail을 걸을때는 옆의 낙엽이 쌓인쪽을 택해 발길을 옮기는게 안전하기에 그런것이다. 윗자켓의 지퍼를 내려 바깥공기가 몸안으로 들어 가도록 해본다. 계속 걷는다. 몸속에서 계속 발산되는 열이 차단되니, 이번에는 두르고 있었던 목도리를 조금 느슨하게 해 본다. 발길은 여전히 제 Pace가 유지되고 있다. 이번에는 그속에 겹처있는 가벼운 재킷의 지퍼를 내렸다.
조금 시원한 느낌이 있어 한껏 상쾌하다. 36도의 몸속에서 태워 발생하는 에너지에서도 중무장된 옷으로 차단된 차거운 외부온도와는 상관(?)없다는듯 열이 쏟아져 나오는데.....아 그래서 핵이 분열할때 발산 된다고 하는 그높은 열을 인류 모두가, 개발은 해놓고, 그처리때문에 강대국들을 비롯한 여러나라들이, 핵개발 저지를 위해 노력 하는구나라고 연결지어 보기도 한다. 지금은 페쇄되여 옛정취를 살리기위한 역사적인 의미를 곁들이고 있는 기차역 걷는길 오른쪽으로 아름답게 그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재빨리 몇장 찰칵했다. 오래전, 아직 고속도로가 건설되기전에는 이곳역사를 이용해서 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렸을 것으로 추측하는것은 자연스럽기까지 한다. 계속전진이다. 같이 걷고 있는 후배 K도 이제는 훈련(?)되여 매주 참석하기도 한지만, 걷는 기술이 많이 향상되는것을 볼수 있어 좋다. 아까 Tim Horton's에서 만나자 마자 첫마디가 지난 2주간 빠졌더니 몸이 컨디션이 변한것 같다고 한 기억이 난다. 그가 한말은 몸을 움직이지 않거나 적게 움직이면, 특히 겨울철에는 몸속의 에너지 발산이 쉽지않아 몸이 뚱뚱히지거나 몸놀림이 불편해 진다는 확실한 증거 이기도 하다. 지난 2주간은 우리 부부가 큐바 휴가로 참석을 못했었다. 아마 그기간에 그는 참석을 안했던것 같다.
목표점에 도착한후 다시 되돌아 오던길을 한참 걸어서, 아까 지나쳤던 역사안을 탐사하고져 발길을 옮겼다. 그곳에는 미리 발길을 돌려 걸었던 대원들 여럿이 앉아서 점심을 먹고 있다. 역사안의 상점은 여전히 Open해 놓고 고객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조용하기만 했다.
이곳에 들린 대원들 모두가 점심을 꺼내먹기 시작한다. 대원들이 상점을 보고 있는 할머니 점원에게서 음료수들을 구입하기도 한다. 아마도 자리값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그러는것도 일부 느낄수 있었다. K가 뭘 마시겠는가를 묻는다. 뜨거운물이 보온병에 있었지만, 시원한 Can Pop을 주문했다. 톡쏘는 Soft Drink는 때로는 소화제 역활을 한다고 믿음이 가기 떼문이었다. Trail Walk을 수십년째 해오고 있지만, 오늘처럼 추운날, 따뜻한 역사 안에서 점심을 먹는다는 기억은 오래오래 기억될 사건이 될것 같다. 아무튼 Dundas Valley Conservation을 관리하는분들에게 감사 안할수 없다. 상점 할머니 직원에게 슬쩍 몇마디 던져 보았다. " 상점매상은 괜찮은가? 매일 이곳 이용객은? 통근열차의 운행햇수는? 할머니의 수입은?" 등등..... 그점원 할머니의 대답은 의외였다. 토론토와 나이아가라쪽을 연결하는 철도일뿐, 여객열차의 운행은 전연없고, 주말에는 우리처럼 들리는 Trail Walker들에게 쉼터을 제공하고, 또 주중에는 많은 학교학생들이 집단으로 버스를 타고와서 이곳의 숲속에서 현장체험 학습을 주로 한다는 것이었다. 자기는 Conservation Authority에서 월급을 받기에, 매상과는 상관없이 지금 하고 있는 job 에 만족하면서 이렇게 사람들과 대화를 즐긴다는 것이다. 인근주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충분히 사랑받고, 애용되고 있음의 이유를 그할머니 점원과의 짧은 대화에서 찾을수 있을것 같았다. Trail Walk 하면서, 처음으로 오늘의 점심은 편안히 따뜻한 역사안의 편안한 의자에 앉아서 즐기는 기록을 세우는 셈이 된것이다. 조금더 걸으니 Hermitage Museum 으로 들어가는 Side Trail이 보인다. 그곳에 들려서박물관을 구경했으면 했지만, 의견들이 별로다. 사실은 그곳의 역사적 의미를 음미해 보는것도 이곳 산행의 중요 쟁점이 될수 있기 때문이다. 자료에 의하면, Hermitage는 귀신이 출몰하곤 했었다는 집터로 알려져 있다. 처음 이집은 Rev. George Sheed씨가 1830년에 건축했다고 한다. 그뒤 Colonel Otto Ives씨가 인수하여 2층으로 재건축하여 맨션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후 화재가 여러번 발생하여 타버리고 파괴된후 Hamilton시가 인수, 관리하면서 오늘날에는 관광명소로 각광을 받고 있는곳이다. 여기에 얽힌 전설이 재미있다. 1800년대 후반에 William Black씨가 당시 집주인이었던 Otto Ives씨의 조카와 사랑에 빠지게 됐었다고 한다. 그후 숙부 Otto Ives에게 결혼허락차 방문했으나 거절당하고 만다. 그거절에 실망한 Black 청년은 뒷뜰로가서 목매 자살했다. Otto씨는 그의 시신을 거두어 길넌너에 매장 했는데 그길이름이 오늘날에는 Lover's Lane으로 불려지고 있고, Trail Walk시에 그길옆을 지나게 된다. 보름달 밝은밤에는 Black청년의 영혼이 뒷뜰을 거닐고 있으면서 못다한 사랑을 지금도 찾아 헤맨다고 전해지고 있다. 얼마나 아름다운 전설이면서 소름 끼치게 하는 얘기인가? 그런데 오늘 Trail에서는 Skip하고 만것이다. 중간중간에 계곡의 얕은 물을 건너야 하는 구간에도 Board Walk이 잘 설치되여 편하게 걷게 해 놓은점도, 특히 오늘처럼 추운날 Trail Walking하는 사람들이 고마움을 느끼게 하고도 남을것 같다. 다시 지나치는 Tiffany Water Falls는 아까 그모습 그대로 의연히 이추운 겨울을 믿음직 스럽게 견디어 내고 있는 모습으로 다가선다. 오는 여름, 그때 다시 이곳을 찾게 된다면 그때는 빽빽한 숲으로 하늘이 보이지 않을것 같은 숲속의 터널을 걷는 기분일것 같다. 감사.본것이다.
Friday, January 29, 2010
휴양지의 시간은 빛처럼 빨리 흘러가서, 이젠 역사속으로
직장에 다닐때는 일주일을 보내는게 지겹고 지루하여 마치 일년을 보내는것 처럼 길고, 또 코뚤린 소가 끌려 가는것 처럼 그렇게 시간의 흘러감이 더디었었다. 긴캐나다의 겨울을 피해 남쪽의 따뜻한 캐리비안 섬나라로 피신(?)가서 보낸 8일간의 시간은 태양빛이 태양을 떠나 지구에 닿는 그시간보다 더 짧게 느껴질 정도로 흘러가, 몇시간전에 이곳에 놀러 온것 같은 착각속에서 다시 짐을 싸서, 추운 동토의 나라, 캐나다로 되돌아 가야하는 아쉬움은 마음속에 깊이 남을것 같다.
떠나기전날의 저녁식사는,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매일먹던 식당에서 아니고, 해변가의 야외에서 BBQ가 곁들인 부페식으로 우리를 더 즐겁게 해주는 이벤트를 호텔측에서 만들어 주었다. 야자수잎을 이용하여 만든 아취형 야외식당입구와 그위에 밝지는 않지만 조화를 이루어 장식한 조명등과 어둠침침한 야외조명속에서 Cook들은 고기를 굽고, 또 한편에서는 다른 음식을 식당 Cook들이 정성스레 준비해주고, Hall의 Hosts와 Hostess들은 바삐 음직이면서, Red Wine, White wine, Beer그리고 기타 Drink들을 그들의 떠나지 않는 웃음과 함께 씨비스하고, 우리는 마치 제왕이라도 된양, 그들의 써비스를 받으며, 미풍에 야자수의 큰 잎들이 흔들거리는 남국의 저녁 야외 간이식당에서, 그렇게 배를 채우면서 여행지에서의 마지막 밤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매얼 저녁 식사중에는 Live Show가 곁들여, 먹는 입과 보는 눈을 더 즐겁게하곤 했었는데, 오늘 저녁에는 야외에 임시로 설치된 밴드에서 귀에 익은 곡들이 연주되고 있다. 연주자들은, 내가 볼때는 참으로 머리가 좋은것 같다. 연주하는 곡의 악보같은 것은 아예 존재치 않는다. 연주되는 모든곡들이, 마치 유행가를 몇번불러 따라 하면 알고 있듯이, 그렇게 연주를 해대는것 같다. 어렸을때 귀에 익었던곡 Yesterday, Moon river, 그외 곡명은 모르지만, 흘러간 Classic들을 가슴애잔하게 잘도 연주한다. 그들이 캐나다나 기타 서구사회에서 생활한다면, 돈도 많이 벌고, 대접받으면서 풍성한 생활을 하련만.....이들은 이렇게 우리를 즐겁게 하기위해 연주를 하는데도, 우리가 먹고 있는 음식에 손을 대서는 않되는, 가련하고 배고픔을 참으면서, 얼굴에는 웃음을 띠고, 연주를 한다. 아마도 연주가 끝나고 하루의 일과가 끝나면 집에가서 저녁을 먹을 것이다. 비정한 통제사회의 한단면이다. 불빛이 침침하기에, 나는 더 자유스럽게 슬며시 그들중 한명에게 다가가서, 손에 꼬깃꼬깃 하게 꾸불친 2페소를 손에 쥐어 주었다. 너무나도 고마워 한다. 그돈이면 그들 큐바시민들이 사용하는 돈으로 환산해서, 약 50페소가 되는데, 그들 월평균임금의 약 1/8에 해당하는 거금이기 때문이다. 평상시 대식당안에서 Show를 하는 Performers 들도 마찬가지다. 낯시간에는 홀에서 식사 시중을 들고, 저녁식사시간이 되면 그렇게 훌륭한 Performers들로 변하여 식사하는 우리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다. Show의 내용이 저절로 박수를 힘껏치게 하고도 남는 수준이다. 거의 매일 저녁 2시간 이상씩을 하곤 했었다. 그들은 순박하다. 팁을 손에 슬며시 쥐어주면, 그렇게도 고마워한다. 그들의 생활에 큰 보탬이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보여주는 동영상중의 하나는 즉석에서 Show를 즐기는 여성들을 사회자가 차출하여 그들로 하여금 장기 자랑을 하게 하는 즉흥적인 Show를 연출하는 사회자와 관객의 Talent를 보여 주고 있는 내용이다. 들리는 말로는 Resort 안에서 근무하게되면, 출세했다고 주위에서는 부러워 한다고 들었다. 고국에서 6/25직후 미군부대에서 근무하는 주위친지들을 부러워 했었던 기억이 되살아나게 하고도 남는다. 그들이 근무하고 나오면서, 갖고온 Shortening을 조금이라도 얻는 날이면, 시래기국에 풀어서 먹으면 그렇게도 맛이 있었던 기억이 이밤에 더 되살아 난다. 경험이 있기에 그들의 마음을 더 깊이 읽을수 있는것 같다. 한번은 호텔방에서 나와 점심을 하기위해 식당을 향해 가는데, 바퀴달린 큰 쓰레기통을 밀고 가는 나이든 남자분을 만나게 됐었다. 괜히 안된 마음이 들어 주머니를 뒤져 손에 1페소를 슬며시 쥐어주었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호텔방으로 향하는데, 아까 그남자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가 웃음을 띄우면서, Lunar손에 두마리의 Locusts 를 쥐어주고 발길을 옮겼다. 야자수잎을 이용하여 만든 정말로 그럴듯한 매뚜기 모양을 한 Craft였다. 감사의 표시로 그사이에 급히 만들어 기다렸다가 이렇게 주고 간 것이다. 한마리는 나의 모자에, 다른 하나는 Lunar의 모자에 꽂아 한껏 모양을 내면서 작렬하는 태양빛을 막았었던 기억도 스쳐간다. 순수한 사람들...
또 생각나는것은, 해변가 원두막밑의 긴의자에 누워서 파란 대서양의 끝없이 펼쳐지는 바닷물을 보고 있으면, 가끔씩 눈에 띄는, 조그만한 이동식 잡화상이 모래사장과 바닷물이 맞닿기 직전의 단단한 모래밭위에 진을 치고 해수욕객들과 어울려 장사하는 모습이 보이곤 했었다. 자전거를 개조하여 그위에 좌판을 설치하고 선반을 다시 그위에 올려놓고, 손수 손으로 만든 공예품들을 보기좋게 진열해 놓고, 관광온 해수욕객들을 상대로 물건을 파는 것이다. 공예품들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아주 정교한것도 많이 보인다. 그러나 값은, 아주 싸다, 내가 싸다고 말하는것은 토론토 시장의 가격과 비교 해서 하는 소리다. 하얀 백사장위를 혼자서 밀고, 끌면서 옮겨 다니기에는 힘들어서인지, 꼭 둘이서 이동 잡화상을, 한사람은 조종하고, 다른 한사람은 뒤에서 힘껏 밀면서 이동한다. 때로는 고객(?)이 많을때는 이동잡화상앞쪽에 공예품들을 쓰러지지 않게 모래속에 쿡찔러 진열하면서 손님을 기다리기도 한다. 태양은 작열하고, 등에서는 땀이 나고, 갈증은 나고... 그럴때는 우리는 아무런 불편없이 바로 백사장뒤에 지천으로 준비되여 있는 Kiosk에 가서 시원한 음료수, Foods등을 써비스 받아 먹으면서 다시 한가롭게 딩굴면서 남국의 정취를 즐길수 있으나, 그들은 애처로운 눈길로 우리의 배부른 모습을 부럽게 쳐다보는것 같아, 풍요속에서 삶의 괴로움을 보기도 한다. 옆에 있던 Lunar가 갈증이 났던지 아니면 더위를 참지 못한 때문인지 일어나 쏜살같이 Kiosk에 다녀 오더니, 두손에 Ice cube이 둥둥 떠 있는 피나콜라다 쥬스가 담긴 두개의 컵을 들고 오더니, 나한테 주는게 아니고 그이동식잡화상들에게 가더니 그들과 담소하고 웃더니 건네 주고 온다. 그들의 갈증난 목을 추기는데, 그순간에는 더 이상 좋은 보약이나 음료수가 또 존재 할수 있었을까? 원래 인간의 본성은 성선설을 타고 났다는 옛성인의 말이 생각나면서, 인정이 서로 교차하는 현장을 양쪽에서 본다. 그들은 재빠르게 손목에 걸수 있는 조그만 수공예품을 Lunar의 손목에 걸어주면서 하얀이를 드러내고 웃으면서 감사해 한다. 그들의 처지를 잘알기에 값을 처줄려고 Lunar가 준비하자, 아니라고 손을 절래절래 흔들면서 반색을 하는 모습도 봤다. 조금만 신경을 써보면, 이렇게 서로의 마음문이 열려 마음과 웃음을 나눌수 있는 일이 흔한데..... 어찌하여 정치꾼들은 이러한 마음들을 읽지못하고 흘려 보내거나, 큰것만 생각할까? 그큰것 때문에 짖눌려 사는 보통사람들의 삶의 밑바닥을 눈여겨 본일이 있을까? 자꾸 생각이 엉뚱한 방향으로 달리는것을, 이광경을 보면서 보게된다. 별로 사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것 같다. 내일도 그들은 끝없이 펼져지는 백사장 위에서 딩구는 사람들을 상대로 또 이동식 잡화상의 두바퀴를 돌리기위해 한사람은 조정하고, 다른 한사람은 뒤에서 밀것이다.
이러한 Police State 탈이 언제 벗겨져 저들도 우리처럼 자유롭게 삶을 살수 있는 날이 올까? 큐바 혁명 61주년이 지나가는데....
2일전에, 평소 토론토에서 친히 잘 알고 지내는 선배친지분들을 만나 같이 Golfing했을때, 여자분들팀에서 Hole-in-one을 하신분이 그렇게도 좋아하시면서, 파안대소 하시던 모습과, 같이 라운딩 하셨던 Lunar와 선배 아주머님들의 모습이 머리에 떠 오른다. 그분들도 지금 이시간에 그들이 묶고 있는 호텔식당에서 저녁을 즐기고 계실것으로 짐작된다. 토론토에 돌아가면 거기서 정식으로 홀인원 파티를 하자고 약속을 할수밖에 없었던 그순간의 아쉬움이 지금도 뚜렷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평생에 골퍼로서 한번 할까말까하는 행운(?)인데..... 그날 스코어 카드를 들고 프로샾에 찾아가서 얘기 했더니, 프로샾의 매니져가 한 조치는 들고간 스코어 카드에 그의 Signature와 간단한 축하의 단어를 써준게 전부였었다. 어찌 그인들 팬난트며 기타 선물을 하고 싶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제한된 현실의 벽안에서, 그가 할수 있는 최대한의 아량을 베풀어 준것이라고 나는 믿고 있다.
또 행운(?)인것은 골핑후 해수욕하면서 우연히 만난 PGA Pro Golfer 라고 자기를 소개한 건장한 사내를 만난것이다. 그는 약 10년정도 PGA 에서 현역 선수로 뛰고 있으며, 약 4번정도 Win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귀에 익지않은 생소한 것이었다. 여기에 오기전주에는 Jamaica에서 골프를 즐겼고, 이곳에서 끝나면 다시 Bahamas로 날아가 그곳에서 골핑한다고 스케쥴을 말해주기도 했었다. 그린이 좋지도 않는 이곳에서까지 라운딩 하는 이유를 물었더니, 프로는 좋은곳에서, 또 나쁜곳에서도 적응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해 줬었다. 그러면서 Toronto의 북쪽 외곽도시 Markham, Onatario에 있는 Sheraton hotel에서 1월말에 프로선수 여러명이 Signature 파티를 갖게 되는데, 그때 참석해 보라고 권하기도 했었다. 거기서 만나면 골프볼에 정식으로 서명을 해 주겠다고 약속도 했었다. 지난 며칠동안에 정신없이 보냈던 시간과 기억들이 주마등 처럼 지나간다. Live Band Show에서 흘러 나오는 멜로디와 어울려 더 빨리 추억속의 뒷전으로 시간은 쏜살같이 달아나는것을 이밤에 더 깊이 느낀다. Red Wine잔은 계속 비워지고.... 평상시에는 한글라스도 목에 넘기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알코홀과는 별로 인연이 없는데..... 이밤에는 슬슬 잘도 넘어 간다. 이밤의 환상적인, 낭만적인 정취를 뒤로 하고, 몇시간 후면 추운 토론토에 있어야 하는, 또 다른 삶을 이어가야한다는 무거움 때문일까? 이제 내방으로 돌아가서 짐을 Packing해야 한다. 아쉽지만.....
마지막으로 이곳 휴양지에서 사용되는 큐바돈 즉 Peso의 남은돈을 점검해 보았다. 왜냐면은 큐바공항을 나갈때 Airport Tax 를 개인당 25Peso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조금 모자란다. 호텔 Front Desk에 가서 다시 환전 해야 할것 같다. 국제 무역을 하는데 미달러가 기축통화인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상식이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미국 달러가 맥을 추지 못한다. 환율은 미화 100달러를 바꾸면, 그들 페소로 80페소를 준다. 그들페소와 미달러사이에는 환율이 불변이다. 캐나다 달러는 Up and Down한다. 첫날 와서 캐나다달러 100 불을 바꾸었더니 82페소를 주었었다. 오늘은 79페소만 준다. 환율이 떨어져서란다. 그들식의 환율방법이다. 큐바밖에 나가면 큐바돈은 휴지조각으로도 사용되지 못하는 종이조각일뿐인데..... 그래서 국제시장에서 큐바돈은 상장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큐바에서만은 캐나다 달러가 미국달러보다 더 값이 나가는, 이해못할 나라 큐바.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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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피서여행중에 느꼈던 기억들을 모아서 적어 봤다.Jan25th
Thursday, January 28, 2010
Chobi 집에 초대를 받고....
이틀전 그러니까 수요일(1월20일,2010)에 Chobi로 부터 토요일(1월 23일)에 자기집에서 Dinner Party를, 우리부부를 위해 하겠다고 초청을 해왔다. 그것도 12번홀 페어웨이에서 볼을 치고 있는데까지 와서 말이다. 마침 Walter도 그날은 골프를 접고, Havana Tour를 예약해 놓은 상태 였기 때문에 혼쾌히 승락했었다. 그런데 금요일에 골프 Rounding을 하고 있는데, Maria가 와서, 계획이 변경되여 오늘 저녁에 했으면 한다는 연락을 해 주었다. 골프는 열두시 반 경이면 끝나기에, 시간이 충분하여, Ok동의를 했었다. 그러면서 나와 Lunar가 묶고 있는 호텔에서 택시로 약 5분 거리정도 될거라면서, 주소를 적은 쪽지를 넌네 주었다. 받아 읽어보니 스페인어라서 그뜻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재치빠른 Maria가 "Paul, 걱정 하지마라, 이쪽지를 택시 타자마자 운전수에게 건네 주면 만사 끝이다" 라고 웃으면서 설명해 줬었다. 지난해에 Cadenas에 있는 Maria집에 저녁 초청을 받아 갔을때, 동석했던 Chobi가 내년에는 우리집에서 저녁 초대를 했으면 하는 약속아닌 약속을 하면서, 자기가 사는집은 우리 부부가 묶고 있던 Resort지역인 Varadero 반도의 초입에 있다는 설명을 들은 기억이 떠 올랐다. 관광객으로 큐바를 방문하면서 Resort구역 밖의 다른지역에 있는 개인집을 방문한다는것은 생각보다 쉬운일이 아니라는것을, 큐바 여행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대개 알고 있는 현실이다. 어느집앞에 차를 세우더니, 운전수가 혼자 차밖으로 나가, 그집문앞에 가서, 주소를 확인하고 오더니, 여기가 네가 찾는 주소라고 하면서 차문을 열어준다. 골프장에 갈때 택시를 타면 5페소를 기본으로 주는데, 방향은 틀리지만, 거리가 비슷한것 같아 5페를 건네주니 'Gracious'하면서 고맙다고 한다.
우리부부보다는 조금 젊어 보이는 낯설은 여인이 나오더니, 먼저 인사를 하면서, Chobi의 누나라고 자기를 소개한다. 의외였다. 평소에 누나에 대한 얘기를 들어본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안내를 받아, 집안으로 들어가서 다시 이층으로 올라가니 그곳에는 벌써 Maria와 그녀의 친구이면서, 우리 부부가 묶고 있는 호텔에서 Coordinator로 근무하고있는 '리스베스'도 와 있고, Chobi는 비좁은 부엌에서 음식을 준비 하는라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모두가 반가워 하면서, Welcome이다. Maria가, 그동안 말로만 들어왔던, 리스베스를 우리에게 소개 시켜 주었다. 그녀는 호텔에 묶고 있는 동안에 어렵거나 부탁하고 싶은 일이 발생하면 연락을 달라고 주문까지 하면서 반겨했다.
Chobi의 부인은 보이지 않았다. Maria의 설명에 의하면, Cadenas의 집안식구들과, 갑자기 회동할 일이 생겨 지금 그곳에 있다고 설명해 주었다. 얼른 보아서 Chobi가 살고 있는 집은 상당히 좋아 보이는 측에 끼는것 같았다. 작년에 Maria집에 초대되여 갔을때 보았던 그녀의 집과는 비교가 안돼게 좋은 집 같았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토론토의 기준으로는 빈민가에 있는 초라한 집일 뿐인데도, 이곳 큐바에서는 좋은 집에 속하는것 같았다는 뜻이다. Maria와 Lizbeth가 같이 설명해준다. 즉 이집에는 Chobi가족과, 그의 누나 가족이 같이 살고 있다고 설명해주낟. 즉 누나댁은 아랫층에 Chobi댁은 이층에..... 관광지인 Varadero 지역에 거주한다는것은 상당한 영향력이 있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확실히는 모르겠으나, 누나 아니면 Chobi 둘중의 하나가 그런 연관(?)이 있을 것으로 나혼자서 추측해 보았다.
Chobi가 Cooking하고 있는 부엌은 좁고, 시설도 엉망이다. 보통큐바사람들의 생활보다는 상층인 이들의 집이 이꼴이라면, 언뜻 몇년전에 관광왔을때 Cadenas로 구경나와서, 마차를 렌트하여 시내를 구경할때, 우리를 자기 마차에 싣고 구경시켜줬던, 이름이 기억안나는 마부의 집을 구경하던 생각이 났다. 그가 살고 있다는 집은 쓰러지기 직전의 구조에 방한칸에 부엌과 침실을 같이 겸용하면서, 맨바닥에 판자대기 얻어놓고 그위에서 잠을 자는 침대라고 설명해 주던 기억이 떠올랐다. 모두가 너무나 가난하게 살고 있는데도, 대부분의 주민들의 얼굴에는 미소를 머금고 있는것 같다는것이 이곳의 특징인것 같다. Chobi도 맨날 흥얼거리고 궁뎅이 흔들어 대고.... 이러한 환경을 어떻게 설명해야 될까? Maria와 Liz가 부엌으로 갔다 나오면서, 아름답고 싱싱한 꽃다발, 그것도 붉은 장미꽃 부케를 곱게 셀로판지로 싸서, 리본을 묶은 꽃을 Lunar에게 선물한다. '초대에 응해 줘서, 그리고 우리의 만남을 축하한다' 라고 하면서, 그녀들은 다시 hugging한다. 너무나 의외였다. 평생 거의 40여년을 같이 살아온 남편인 나도 그런 기회를 만들어서 Lunar에게 건네줬던 기억이 거의 안나는데..... 가슴이 뭉클 해졌다. Lunar도 표정으로 보아 반가워하고 좋아 하면서도 의외인것 같이 보인다. 즉석 사진을 찍었다. 그들의 성의가 고맙고....Chobi도 부엌에서 음식만들면서, 우리쪽으로 고개를 가우뚱하고 내밀더니 웃으면서 '우리의 재회를 축하한다' 라고 또 표현한다. 좋은 친지들.
Lizbeth 가 부엌과 벽하나로 붙어 좁은 공간에 놓인 낡은 소파에 앉아 있는 우리 부부에게 맥주를 제의 한다. Ok했더니 부엌에 있는 색바랜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와서 컵에 쏟는다. 어쨋던 더웠었는데, 시원함을 느끼게 해주는 한모금의 맥주맛으로 전율을 느끼게 해준다. Chobi는 나를 부르더니 이것은 Lobster이고, 이것은 큰 Crab Meat이고, 이것은 채소볶음이고.... 등등의 이야기를 하면서 열심히 Frying하면서, 노래 부르고, 맥주도 한잔 건배하고... 무척 낙천적이다. 아까 처음 만났을때 부엌에서 음식하다말고 뛰어나와 우리 부부을 포옹해 주던 그의 모습이 무척 낙천적이라는것을 더 확실하게 해주는 행동을 그가 지금 비좁아 터진 부엌에서 우리를 위해 음식 하면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집뒷뜰에 있는 Picnic Table에 음식이 진열되고, 그래봐야 종류는 많지 않았지만..... 그로서는 우리부부에게 최대의 예우를 갖추어 대접하는 정성을 보여 주고 있는 모습에 우리 부부는 마음으로 부터 고마움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식탁에는 우리가 알고 있는 친지들외에 3명의 식구가 더 늘었다. 아까 우리를 안내했던 누나와 그녀의 18살된 딸, 그리고 이곳의 전력공사 사장이라고, Maria가 소개해준 Chobi의 친구인 Hochi 였다. 그의 인상도 선하고 웃음이 얼굴에서 떠나지 않는 인상인데, 불행하게도 영어는 먹통이었지만, 서로간에 의사 소통은 몸짖 발짖 그리고 한마디씩 서로 이해하는 영어, 스페인어를 통해 가능했지만, 그과정에서 일어나는 애피소드로 더 웃음이 끝이질 않게 한다.
Chobi가 초대에 응해워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면서 재미있게 시간을 보냈으면 하는 인사말을 곁들이고, 자기가 Chobi 누나라고 다시 소개하고, 옆에 앉아 있는 딸을 가리키면서 대학 1년생이라고 소개했다. Hochi는 별도의 자기 소개없이 우리에게 웃으면서 건배를 제의하고...
적도의 큐바, 바라데로에서 이저녁을 낯설은, 이곳에서 사귄 친지의 집에서, 대접 받으면서 삶을 같이 나누고 있는 순간이 자랑스럽다. 이렇게 좋은 관계가 이어지기 까지는, 언어가 잘통하지도 않는 Lunar의 역활이 무척 컸음을 나는 잘알고 있다. Lobster, Crab그리고 채소볶음과 불면 날아갈듯한 밥, 그리고 검은콩을 삶아 그위에 그들의 독특한 Broth를 부어 놓은 콩반찬 등등. 지난해 Maria댁을 방문했을때 보다 훨씬 더 숫자가 많은 음식들이다. Chobi가 더 잘 살고 있다는 증거라고 나혼자 잣대질을 해 본다. Maria의 집을 방문했을때 동석했던 Chobi와 그의 부인이, Maria가 준비해준 음식의 cost 가 큐바 서민들이 한달 월급을 다쓰고도 모자랄 큰 비용이었었다고 뒤뜸해 주었던 생각을 떠 올리면서, 이친구는 이밤의 준비를 위해 더 많은 거금(?)을 썼겠구나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계산된다. 고맙기만 하다.
이번에 큐바 방문길에는 그들에게 건네줄 다른 선물도 일부 준비해가긴 했었으나, 우리 부부가 특별히 준비해 간것은 화실실의 Toilet Seat였었다. 작년에 Maria의 집에 갔을때, 변소를 사용할 기회가 있었는데, 변기에 앉는 Seat가 없이 그냥 몸체만 있는것을 보고, Lunar와 내가 measuring해서, 이번 여행길에 잊지않고 그것을 준비해 갔었다. 하나는 Maria, 다른 하나는 Chobi, 그런데 Chobi집의 변소에 갔는데, 그Seat가 벌써 설치되여 있는게 아닌가. Maria 도 분명히 설치 했을것으로 미루어 짐작이 갔다. 비싼것은 아니지만, 서로간에 친구로서의 마음이 이심전심으로 통하고 있다는 확신감이 우리 부부의 마음을 가볍게 해주고, 이렇게 어려운 대접까지 받고 있다는것을 느낄수 있었다.
음료수로 맥주와 Red Wine이 나왔으나, 나는 맥주를 선택하여, 주는데로 마시고 또 권하고, ... 옆에 앉아 있는 Lunar가 걱정 되는지 그만 마시라고 하자, 옆에서 있던 Chobi와 Hochi가 아무 걱정 말고, 맘껏 마시라고 더 부추낀다. 기분이 좋은데, 좋은 친구들속에 묻혀 이렇게 좋은 시간을 보내는데..... 뭘 걱정한단 말인가? 더 마시고, 가볍게 목구멍을 통해 잘 넘어 가는 맥주맛이 그렇게 좋을수 없었다.
호텔로 돌아 올때는 Hochi가 자기차를 이용하여 운전수역활을 하겠단다. 속으로 끙끙대고 있었던 걱정거리가 금새 해결됐다. 택시를 어떻게 불러야 하나? 아니면 지난해 Chobi가 도와줘서 Cadenas의 Maria집에서 올때, 관광지역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을 위해 별도로 운영되는 뻐쓰를 타고 호텔에 온 기억데로, 그뻐스를 Chobi가 또 연결 시켜 줄것인가? 등으로 머리를 굴리고 있었는데, 너무나 고마웠다.
뒷좌석에 나와 Lunar그리고 Maria가 앉고, 앞좌석에는 Lizbeth 가 탔다. 처음에는 나보고 앞좌석에 타라고 권하더니, 어찌된 영문인지, Liz 가 앞좌석에 올라탄 것이다. 차가 달리기 시작하면서 차안으로 Fume이 들어와서 숨을 쉬기가 어려울 정도가 나를 힘들게 했다. 그러나 얼굴에는 내색을 할수 없었고, 계속 저녁먹으면서 즐겼던 얘기를 이어갔다. 이런차가 토론토거리를 달린다면 당장에 경찰에 압수되여 페차장으로 직행 시켰을 그런차다. 호텔 로비에 도착하기전에 있는 Check Point에 도착하자, 보초병겸 감시원이 차를 가로 막는다. Liz가 차창을 열고 인사를 건네자, 그는 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하고 통과 시킨다. 그때에야 Liz가 호텔 Uniform을 그대로 입고 있었던 이유와, 앞좌석에 탔던 이유를 알수 있었다. Maria의 설명에 의하면, 개인차량이 관광객으로 큐바를 방문한 사람을 싣고 다니다 적발 되면 골치가 아프게 된다고 구뜸해주었던 생각이 차타고 오는 동안 내내 떠올라, 검문에 걸리지 않기를 바라기도 했었다. 며칠전에 골프라운딩을 끝내고, 호텔로 오기 위해 택시를 탔었는데, 고속도로상에서 불시검문을, 감시원으로 부터 당해 고속도록 Shoulder에 세웠던 기억이 난다. 그때 감시원은 운전수에게 운행일지를 보여 달라고 했는데, 운전수가 보여 주니 이상이 없다는듯 통과 시킨 기억이 난다. 그때 운전수는 운행일지에 시간과 승차인원과 호텔이름을 적는것을 보았었다. 왜 저렇게 매번 적는가? 하는 의문이 이검문에서 풀리게 했었다. 바로 큐바 공산정권의 통제사회(Police State)를 피부로 느낄수 있게하는 순간을 목격했던 것이다. 오늘저녁 이렇게 감시대상이 될수 있는 위험(?)을 무릅쓴 Hochi가 고마웠다. 그는 다시 Maria와 Liz를 태우고 그녀들의 집까지 운전해 준다고 한다. 마음으로 이들과 주고 받는 우정을 오래 오래 간직하고 싶다. Maria와 Chobi의 선물속에 같이 곁들인 조금만 New Testament 한권씩을 주면서, 너희들이 읽으면 좋은 소설책 한권씩이 그속에 있다고 얘기해준 생각이 갑자기 떠오른다. 이렇게 또 휴가지에서의 늦은 밤속으로 우리부부는 흘러 들어간다. 기억에 남을 그런 밤이 될것같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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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bi댁에서.,
현지에서 사귄 친지들과 저녁파티. Jan22nd. 저녁
Tuesday, January 26, 2010
Playa Larga 지역과 Guama 악어농장 및 Taino 인디언 유적지 탐사
아쉬웠지만, 골프를 제치고, 악어농장 투어 팩키지를 구입해서 수요일 아침부터 그곳으로 달렸다. 큐바섬의 맨위 동쪽에 위치해 있는 Varadero에서 남쪽으로 곧바로 한시간 30분 이상을 달려 약 90 킬로쯤 내달려서, 그유명한 Bay of Pigs가 있는 Playa Largo지역에 도착했다. 그곳으로 부터 인근에 있는 Guama Crocodile Farm에서 사육되고있는 악어들을 구경하기에 앞서, 먼저 소형 모터보트를 타고 Lake of Treasure 의 수로를 약 15분이상 달려 Taino Indian Village 유적지에 도착했다. 소형보트에 같이 탄 일행 6명과 함께 오늘의 투어 가이드 Philips의 안내를 받아 Marina에 정박 시키고, 유적지 탐사에 들어갔다. Guama라는 이름은 원래 이곳에서 거주했던 인디언 추장의 이름에서 유래 한다고 했다.
옛날에 인디언들이 융성하여 이곳에 거주 할때는 3개 부족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중의 하나인 Taino부족의 유적지를 고고학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재생된 유적지를 보는 것이라고 설명해준다. 이들 인디언들은 1700년경에 완전히 존재가 사라져 버렸다고하는데 그이유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었다. 옛날 인디언들이 거주했던 원추형의 집들과 또 한곳에서는 숯을 만드는 곳도 있었다. 유적지를 둘러보기에 편하도록 Board Walk을 만들어 그위를 걸으면서 구경할수 있게 해주어 편했다. 한곳에 가니 옛 인디언 여인들의 나상이 진열돼 있었는데, 아주모양이 예뻤다. 인디언 여인들이 그렇게 아름다웠었다고 하는데..... 그옆에는 고구마 넝쿨이 자라고 있었다.가이드가 이름을 알아 맞혀 보라고 우리에게 물어 보는데, 아무도 밝혀 내지를 못했다. 그러나 나는 어려서 식량으로 고구마를 부모님들이 경작하는것을 보았고, 수확을 도왔기 때문에 쉽게 알수 있었다. 고구마순이라고 대답하자, 오히려 신기한지? 나를 쳐다 보면서 가이드는 알고 있는 이유를 묻기까지 했었다. 공식적인 이름은 고구마 대신에 '야카'라고 한단다. 토론토에서도 가끔씩 수퍼마켙에서 쇼핑해서 삶아 먹은 기억이 떠 오른다. 그외에 옥수수를 재배했었다고 한다. 또 한곳에는 옛날 인디언들이 집에서 길렀다고 하는 큰 개가 큰 나무를 향해 짖으면서 기어오를 기세로 응시하고 있었고, 그위의 나무줄기에는 큰 들쥐들이 개를 피해 나무꼭대기로 도망하는 모습이 재현되고 있었는데, 개가 사냥해 오면 인디언들이 식용으로 썼다고 설명해 준다. 들쥐들을 잡아 먹었다니... 각부족들의 생활 양상도 각양각색이다. 인디언들의 전통가옥속으로 들어가니 인디언 모습을 재현하고 있는 젊은 일행들이 우리를 반겨준다. 인디언 전통에 따라 그들 일행중 한 여인이 우리들의 얼굴에 붓으로 먹물을 칠한다. Lunar가 그들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팁을 주면서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하니, 반갑게 응해 주기도 했다. Lunar가 머리에 쓰고있는 녹색의 모자는 특히하다. 그녀가 호텔안의 Towel교환소에서 근무하는 종업원으로 부터 3Peso를 주고 구입한 것인데, 야자수 잎을 이용하여 틈틈히 만들어 해변가에 수영하러 가는 길에 Towel을 빌리려고 들리는 사람들에게 과외로 파는것을 그녀가 사달라고 하기에 한개를 구입하여 쓰고 다니는 것이다. 기념으로 토론토집에 가지고 갈 생각인것 같다. 그모자에는 역시 야자수나무잎을 사용하여 만든 메뚜기가 한마리 붙어 있어 가까이서 보면 꼭 진짜 매뚜기가 푸른잎사귀에 앉아 있는것 처럼 보이는 모습이 어렸을때 매뚜기 사냥을 논두렁 다니면서 하던 연상을 하게 한다. 그들중 한명이 캐나다화 $10달러 지폐를 Lunar(Noona)에게 건네면서, 큐바돈고 바꾸자고 제의했다. 마침 Lunar가 소유한 큐바돈이 5페소라고 했는데도, 돈의 가치에 상관없이 교환하잔다. Lunar는 바꾸어 주면서, 네가 손해를 보는 교환이라고 하면서 미안해 하자, 괜찮다고 하면서, 오히려 큐바돈을 손에 쥔게 그들에게는 더 편하고 안전하다는것을 느낄수 있었다. 전통음료수를 파는 곳으로 안내됐다. 야자수잎으로 지붕만 씌우고 벽은 거의 없다시피하는 곳에서는 각종 음료를 팔고 있었는데, 가이드가 얘기해준데로 전통음료수를 한잔 주문했다. 다른 팀들도 신기해서 인지 같은 음료수를 주문하는데, Cocoa Shell에 큐바산 Rum을 섞어 만든, 별로 맛이 없는 음료수였다. 맛을 보았다는데 의미를 부여하는편이 편할것 같다. 써브하는 바텐더의 손님맞이하는 기술이 무뚝뚝하기 이를데 없다. 그 흔한 인사 한마디도 그에게서는 인색하게 보였다. 그래서 맛이 더 없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다시 모터보트를 타고 악어농장이 있는 곳으로 가기위해 보물호수의 물길을 가르고 달리기 시작하는데, 보기드분 한마리의 펠리칸새가 나무위에 앉아 있는 모습이 무척 쓸쓸해 보였다. 그새도 큐바의 독재자 카스트로의 영향을 받아서 일까? 힘도 없어 보였다.
악어 농장에는 여러단계로 구분되여 악어들이 서식되고 있었다. 새끼를 부화하여 다 자란 성인악어가 되기까지는 약 7년이 걸린다고 한다.
전망대 위에서 호수위에 떠 있는 악어떼들을 보는것은 마치 큰 전투함들이 기동훈련에 참가하는것 처럼 보였다. 물위에 떠서 잠을 자는건지, 전연 미동도 않는다. 호수를 나와 풀위에도 한떼의 악어들이 늘어져 있다. 큰놈은 우리 인간들보다 훨씬 커 보이기도 했는데, 어떤놈은 커다란 입을 짝 벌리고 꿈쩍도 않는다. 어렸을때, 악어와 악어새들이 서로 공생한다는것을 학교에서 배운 기억을 떠 올리게 했는데, 현장 체험을 해보니 이제야 확실히 이해를 할수 있을것 같이 느껴진다. 그러나 말로만 들었던 악어새는 보이지 않아 조금 서운(?)함이 있었다.
야생에서 자라는 악어는 보통 60-70여년의 수명을 간직하는데,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이곳 농자에서 자란 악어는 7년으로 끝난다고 했다. 악어요리는 매우 인기 있다고 가이드는 설명해준다. 오늘 점심은 투어비용에 포함되여 있으나, 악어요리는 별도로 캐나다화로 약 10달러를 지불해야 일인분 요리가 준비 된다고 했다. 일행 6명이 합의하에 일인분을 주문하여 맛을 보는것으로 했다. 실망스럽게도 meat ball 크기의 10개 정도가 전부였다. 내입맛에는 무척 Salty했다. 맛은 어떤 사람은 닭고기라고하고, 어떤 사람은 생선맛이라고도 하고, 나는 독특한 맛을 느끼지 못했다. 생전 처음으로 이곳 큐바 Guama에서 악어고기를 먹어보는 행운(?)을 얻었다. 앞으로 악어음식을 먹어볼 기회가 주어진다면, 글쎄 나는 선뜻 응하고 싶은 마음이 내키지 않을것 같다. 점심을 먹는 동안에 여행객들을 즐겁게 해주기위해 피아니스트의 가벼운 연주가 계속되였다. 감미롭고 가벼워서 귀를 즐겁게 해 주었다. 음악을 듣다보니, 어느새 내가 주문한 닭고기 디쉬를 다비워 버렸다. 팁을 그녀의 손에 쥐어 주었다. 다른팀에서도 같은 행동을 한다. 그녀가 앵콜 뮤직을 연주한다. 그녀와 사진도 한장 했다. 그녀의 실력으로 서방세계에서 거주한다면, 수입도 좋고, 인정 받으면서 생활할수 있으련만.....그녀에게 연민의 정이 생긴다. 우리의 삶에 너무나 감사함을 그녀를 보면서 느낀다. 친절하게도 그녀는 이멜 주소까지 소개해줬다. 이멜을 보내면 정말로 그녀가 마음데로 볼수 있고, 또 답장도 할수 있을까?라는 의문점이 꼬리를 물면서, 안쓰럽다. 몇명의 정치인들때문에 수많은 군중이 이렇게, 외부세계와 격리된 사회속에서 어렵게 살아간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1961년 4월 16일, 혁명을 일으킨 카스트로는 큐바를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선포 했다고 하는데, 미국의 후원을 받은 '피그만'공격을 격퇴한 직후였다고 한다. 오래전부터 큐바를 탈출하여 미국에서 거주하고 있던 큐바인들이 중심이 되여 조국 큐바를 공산주의로 부터 되찾고져 '아이젠하워' 대통령 때부터 조직된 일종의 유격대원들이 훈련을 지속해 오다가 당시 새로 대통령에 당선된 '캐네디'가 최종 공격 명령을 승인 하여 약 1,400 여명의 큐바망명자들이 중심이된 유격대원들이, 미국의 후원을 얻어 공격을 감행 했었다고 한다. 이러한 계획을 사전에 감지한 '카스트로'도 작전을 세웠었다고 한다.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것 처럼 실패로 끝나긴 했었지만.... 피그만에는 지금은 휴양지로 개발되여 호텔도 있었으나, 휴양객은 거의 없다는것을, 피그만 백사장을 보면서 느꼈다. 주위 경관도 휴양지로서는 별로 인것 같다. 백사장에 서서 멀리 바다를 보면서, 어떻게 당시에 미군들이 작전을 세웠었기에, 세계 최강이라고 하는 미군이 퇴페하고 말았을까?를 머리속에서 상상해 보았지만, 내가 무슨 결론을 얻을수 있단 말인가. 차라리 오늘 보는 현실을 체험하면서, 다 조물주의 정해진 순리였을것이라고 쉽게 생각하고 싶었다.
Sugar Plant를 보여줄것을 기대하면서 왔던 길을 달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운전수가 길가에 차을 세웠다. 가이드를 따라 차에서 모두 내렸다. 길 양쪽에는 키가 사람보다 훨씬큰 수수깡같기도 하고, 옥수수대 같기도한 사탕수수가 울창하게 자라고 있는곳을 가리키면서, 설탕을 만드는 사탕수수라고 한다. 줄기 하나를 꺽어서 토막을 내어 각자에게 주면서 맛을 보란다. 씹어보니 설탕처럼 단맛이 난다. 1990년대 중반부터 설탕생산공장이 폐쇄되기 시작하여 지금은 큐바에서 설탕생산은 거의 없다고 보아도 된다고 가이드는 설명한다. 기대했던 폐쇄된 설탕공장 방문은 기대를 접어야 했다. 실망이다. 그러나 다른 방법이 없다. 차를 몰고 출발하여 사탕수수밭이 거의 끝나는곳을 지나갈때, 큰 추럭이 뒤에 트레일러를 달고 밭의 빈공간에 정차해 있고, 그위에 사탕수수대를 싣고 있었다. 궁금했다. 과연 어디로 운송하는것일까?하고.
Varadero를 향해 달리는 차속에서 보이는 주거지는 모두가 가난함을 그대로 나타내고 있었다. Cadenas의 중심가를 통과하면서, 작년에 이곳에 왔었던 생각이 새로워진다. 길위에는 여전히 말이 끄는 마차가 주요교통수단이 되고 있음을 증명해 주고 있었고, 가옥들은 파손되여 있는데도 보수의 흔적은 보이지 않고.....큐바밖의 세상을 구경해 본 경험이 없는 세대들이기에 삶의 질을 비교할 능력조차도 없는, 답답하고 순진한 큐바인들의 얼굴에는 그래도 웃음이 떠나질 않는것 같이 보인다. 여전히 궁뎅이들 흔들어대고..... 어느면에서는 더 편한 삶을 그들은 즐기고 있는것 처럼 느껴진다. Resort밖의 세상을 보고온 후의 저녁식사는 다른날 저녁먹을때보다 더 감사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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