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March 26, 2010

이스탄불의 유적답사 및 시내 구경
























































3월 5일, 2010년.
아침 9시부터 Neon관광회사버스에 일행은 몸을 의지하면서 호텔을 출발, 이스탄불의 대명사격인 SultanAhmet Camii(Blue mosque)을 향해 좁은 시내길을 뱀처럼 흘러 들어갔다. Blue Mosque는 Old Istanbul의 끝쪽 Marmara 바다와 접해 있으며, Bosphorus해협쪽으로 같은 광장안에는 St.Sophia Museum과 그 뒷쪽으로는 Topika Palace가 자리잡고 있다. 그명승지들의 뒷쪽에서 내려다 보이는 보스포러스 해협의 경치는 과히 장관이었다. 대서양을 거쳐 지중해로 들어온 수많은 상선들이( Freight ships) 다시 Asia와 유럽을 갈라놓은 Marmara Sea를 헤쳐나와 다시 Bosphorus Strait를 통과하여 Black Sea로 항해를 계속하고, 반대로 빠져 나오기도 한다고 Guide의 설명은 쉴새가 없이 이어진다.
터키의 영토인 Dardanelle Strait, Marmara Sea 그리고 Bosphorus Strait를 통과하는 상선들에 대한 통과료만 징수해도 터키 정부의 재정에 많은 도움을 줄것 같아, 내가 Guide 에게 통과세는 어떻게 징수 하는가?라고 물었더니, 한마디로 No.라고 했다. 징수를 안한다는 뜻이었다.
자세한 내용은 알수 없으나, 흑해를 기지로 삼고 있는 러시아와 그주변국가들과의 협의를 거쳐 그렇게 된게 아닐까?라고 추측해 보았을 뿐이다.
Blue Mosque는 특히하게 높이 솟아 있는 Minerat이 6개가 있었는데 Main Dome이 있는 건물에 위치한 4개의 Minerat은 각각 3개의 발코니가 설치되여 있고, 나머지 뒷쪽에 있는 2개는 그보다 조금 낯게 각각 2개의 발코니가 설치되여 있는게 특징이라고 설명해 준다. Minerats는 옛날 왕조시대의 Rulers를 상징한다고 하는데 어느시대의 Rulers를 상징 하는지는 기억이 떠오르지 않아 상세한 기록을 할수 없음이 유감이다. 들어서니 크나큰 Column4개가 웅장한 돔을 중심한 지붕을 떠 받들고 있었으며, 정면쪽 벽에는 Imam이 설교 할수 있도록 Podium이 설치되여 있고, 중앙돔과 그주변의 돔과 벽에는 화려한 벽화들이 지금도 그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본당 뒷쪽으로는, 밖에서 보면 같은 건물로 보이는데, 안에서는 광장으로 보이는 넓은 공간의 가운데 조그만한 정각같은 집이 있는데, 이곳은 우물이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worshiping하러오는 사람들이 손발을 먼저 씻고 본당안으로 들어간다고 하는데, 현재는 전부 수도 꼭지로 대체되여 있었다. 광장의 바닥은 Marble로 잘 깔아 놓았다. 옛날에는 이성전의 절반은 예배와 기도하는곳으로 이용됐었고, 나머지 절반은 Imams와 관련자들이 거주했었던 곳으로 분류되여 있었는데, 아깝게도 지금은 거주지역은 전부 없어져 그자취를 볼수가 없었다. 21,043개의 Blue Tile로 내부가 장식되여 일명 Blue Mosque로 불리게 됐다고 하는데, 성전의 크기는 64 X72 m 이고, 가운데 돔의 직경은 33.60미터, 높이는 43미터라고 Guide라고 설명해 준다. 이 Mosque는 Sultan Ahmet 1세를 기념하기위해 1609년에서 1616년 사이에 당시의 Architect Sedefkar Mehmet에 의해 건축됐다고 한다. 1929년 현재의 터키 공화국이 창설된 뒤부터는 정부에서 Imams(모슬림 성직자들)에게 급료를 지급하고 있다고 설명해 준다.
뒷쪽의 넓은 Hippodrome에는 3개의 Monuments가 그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는데 그중의 하나는 3마리의 뱀이 서로 꼬여 뱀의 형상을 하고 있는 구리로 만든 Serpentine column이다. 고대 Greece가 Persia제국과 전쟁에서 승리하여 노획한 총기와 기타 장식물들을 녹여 모아 그리스의 아테네에 건설한 것이라고 했다. Constantinus황제가(BC 324- 222경?) 이스탄불을 건설하기로 결정하고 제국의 여러곳에 이미 건설되여 있는 Monuments를 이곳에 옮겨 놓기 시작한것중의 하나가 바로 이 Monument인데, 아깝게도 수송도중에 머리 부분을 잃어 버렸거나 또는 도둑맞고, 또는 부서져서 없고, 지금은 덩그러니 몸통만 그자리에 세워져 있다는 설명이다. 이 Monument는 직경 6.5미터 되는 정사각형 넓이에 3미터의 웅덩이를 파고 그안에 설치되여 있는게 특징이였다. 또다른 하나는 Laid Brick Column으로 원래는 황제의 이름을 딴 Column of Constantine 으로 불렸다고 한다. Constantine Vll가 자기 아버지를 기념하기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이탑의 한면에 있는 Marble에는 "Constantine Vll는 Rhodes시에 있는 거대한 탑과 경쟁하기를 원해 이 탑을 만들었다"라고 새겨져 있고, 그반대편 Marble에는
Greek어로 "이사각형의 거대한 탑은 보수를 할수 없을 정도로 그동안 망가졌는데 이제 전황제 Constantinius와 그의 아들 Romanos 때보다 더 좋게 만들어 놓았다"라고 새겨져 있다고 Guide 설명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이스탄불에서 가장 오래된 Monument로 알려진 Obelisk는 BC 1500년경에 애집트의 왕 Pharaoh Tutmosis lll세를 기념하기위해 Hierapolis에 세운것이라고 한다. 그후 Constantinus l세(337-361)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시민들에게, Alexandria에서 당시 동로마제국의 수도였던 Constantinople 즉 현재의 '이스탄불'로 이기념탑을 옮기겠다는 편지를 써 보내고 옮겼다고 하는데, Monolithic Stone 이라고 한다. 기억하면서 받아 쓰려니, 괜히 내가 뭐 역사 공부하러 이곳에 왔나?라는 자문도 생겼다. 그러나 기억할수 있는데 까지는 해서 서로 여행얘기를 나누는것도 재미 있을것 같이 생각되여 또 열심히 경청한다. 다시 자리를 옮겨 St. Sophia Museum으로 Guide는 우리를 양떼 몰듯 앞장서서 이끈다. 현재의 건물은 3번째 중건 한것으로 첫번째와 두번째 건물은 당시의 시민들의 폭동으로 불타 없어졌다고 하는데, 특히 두번째 폭동은 이곳 Hippodrome에서 시작된 Nike 폭동때 불타 없어졌다고 한다. 그후 Iustinianus l세( AD 527-565)가 다시 건축하기로 결정하고, 1차 2차 건축때의 양식인 목재를 사용한 지붕과 돌로 벽을 쌓는 방식을 지양하고, 당시의 유명한 건축가 Isidore와 Anthemius가 주동이 되여 오늘까지 웅장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St.Sophia 성전을 짖게 한것이라고 한다. 이성전은 처음 916년간은 교회로, 그후 481년간은 이슬람 성전으로, 그후 1935년부터는 새로 출발한 터키 정부의 결정으로 박물관으로 변경시켜 관람 시키고 있었다. 이건물은 Byzantine 양식의 최대 걸작품중의 하나라고 했다. 성전안에는 3개의 벽화가 그위용을 자랑하고 있었다. 첫번째는 왼쪽에 Constantine 대제와 중앙에 예수초상 그리고 오른쪽에 왕비 Zoe의 모습이었고,
그다음 벽화는 중앙에 에수상과 왼쪽에 동정녀 마리아상 오른쪽에 세례 요한의 상이 그려져 있었는데 절반은 흰페인트로 덮어버려 보기가 흉했다.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될 당시에 이렇게 회색칠을 한 것이라고 설명해 준다. 또 다른 하나는 Ioannes ll와 왕비 Eirene가 양쪽에 그려져 있고, 가운데는 동정녀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형상이었다. 왕조의 흥망성쇠를 잘 보여주는것 같았다.
본건물 옆으로 2개의 적은 건물이 지붕은 돔형상으로 이어져 있었는데, 그곳에는 Ruler들의 Tombs가 있다고 설명만 해주고 그안에는개방이 안되 들어가 보지는 못했다. 모슬림을 국교로 한 Ottoman제국은 약 600년의 흥망성쇠를 누렸다고 하는데 시기적으로 보면 우리조국의 이씨조선과 왕조건설시기와 망한 시기도 비슷한것 같아, 이씨왕조가 없어진후 그후손들이 고생하는것을 보면서, 이곳의 후손들의 상황도 별로 다를게 없을 것으로 혼자 생각해 보면서, 권력의 무상을 느꼈다. 이성전의 안에는 벽쪽으로 붙어있는 이층에 Gallery가 있다는것을 미쳐 알아차리지 못했던 나는, 성전 입구에서 일행들을 잃어 버려 한참 헤매는 소동을 벌이기도한 Happening이 있었다. 나는 일행들 보다 좀 늦게 밖에서 사진 몇장을 찍고 뒤따라 곧바로 넓은 성전안으로 들어 갔는데 일행이 보이지 않은 것이다. 이리저리 해매다 안되겠다 싶어, 마지막 성밖으로 나가는곳으로 보이는곳으로 걸어가 관리자에게 '나가는곳은 이곳 말고 또 있는가?' 물었더니 없다고 대답해 줘 일단은 안심이 되였다.
다시 성전 안으로 들어가 수많은 관람객들 사이로 휘저으며 찾아 다녔으나 보이지가 않았다. 벽한쪽에는 힌색으로 칠해버린 벽을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하기위해 공사를 하느라 막아놓은곳도 보였다. 다시 성전 입구쪽으로 나가려는데 Lunar가 멀리서 나를 알아보고 손짖하면서 불편한 심기를 들어냈다. 그녀로서는 당연 한 행동이지만.... 그녀는 나를 데리고, 나는 생각지도 않았던 이층으로 데리고 올라 갔다. 이층 맨끝에서 일행들이 나를 보고 박수를 쳐 댄다. Guide가 내가 보이지 않자 제대로 설명을 못하고 있었다고 Lunar를 비롯한 일행들이 귀뜸해 줬다.
일행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어쨋던 무산히 Happening은 끝났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다시 사진도 찍고 설명도 경청하고..... 관람은 계속됐다. 또 성전으로 들어가는 정문앞에는 The German Fountain으로 불리는 8각정의 건축물로 장식된 우물이 있다. 당시 German Kaiserll세가 1898년에 이곳을 방문한 기념으로 건축했다고 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던가? 잠시 구경을 접고 인근의 식당으로 Guide가 일행을 안내 했다. 터키는 요구르트가 무척 발달해 있다. 우리가 물마시듯 그들은 그렇게 요구르트를 상용화 하고 있다. 주로 양고기와 닭고기를 잘게 썰어 얇은 빵으로 감싸 만든 음식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래도 이름은 제각기 다르다. 내눈으로는 그게 그것 같은데....음식이름을 기억 할려고 애썼으나 금방 잊어 버려, 세월을 살다보니 기억력이 쇠퇴해서인지? 잘 떠오르지 않았으나 아무튼 배가 채워지니 다시 또 시작이다.
이번에는 옛날 커피집이었던 Caferaga Medresseh 사람의 이름을 유적지를 둘러 보았다. 1559년 당시 전세계에서 유명한 건축가로 10위안에 들었던 Sinan이 설계하여 지었다고 하는데 이커피집은 오직 왕족들만 출입이 허용됐었는데, Caferaga는 왕족이 아닌데도 예외로 출입이 허용돼고, 또한 왕족들의 아녀자들이 거주하는 Harem에도 출입이 허용됐다고 하는데, 그는 Eunuch(내시)였었다고 설명해 준다. 조그맣게 본래의 모습을 유지한 커피샾과 왕족들이 거주했었다는 집들은 현대식으로 많이 개조돼여 개인들이 현재는 살고 있었다.

다시 Tokapi Palace Museum을 둘러 보았다. 이성은 1460년부터 1478년 사이에 Sultan Mehmed ll세에 의해 건축됐다고 한다. 이성에는 3개의 문이 있는데 첫번째문은 오직 Ottoman왕족들만 출입이 허용됐고, 두번째문은 왕족들과 내시들이 거주하는 Harem들어가는 문이고, 부엌은 별채로 건축되여 있었는데, 우리가 방문했을때는 보수공사 중이어서 안을 볼수 가 없는 아쉬움이 있었다. 세번째 문은 일명 Ceremonial gate라고도 불리는데 왕족 자손들이 교육받는 학교로 통하는 문이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내려다 보이는 Marmara 바다물은 파랗고 해협 반대편에는 아시아쪽 이스탄불 도시가 한눈에 들어왔다. 이궁전은 그규모가 무척컸다. 언덕위에 세워진 이궁전은 일종의 전략적 요충지 역활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 또 사고 가 터진 것이다. 두번째 문을 들어갈때 모든 관람객들의 소지품을 검색대에 올려 놓고, 또 그옆검색대에는 어깨에 메고 다니는 가방들을 포함한 물건들을 검색한후 들여 보내는데 나와 Lunar도 일행들과 함께 대열에 끼어 검색대를 지나와서 카메라와 기타 소지품을 챙겨 일행과 함께 관람을 했다. 한참후에 갑자기 Lunar가 '아 내가방?"하고 나에게 소리친다. 순간 나도 내가방이 어깨에 메여 있지 않음을 알고, 급히 Guide 에게 알렸다. 혹시 날치기들이 많다고 들었는데 우리가 당한게 아닌가?하고 겁이 났다. 설명을 열심히 하고 있던 Guide가 알았다는 듯이 빠른 걸음으로 검색대쪽으로 걸어가면서, 그안에 돈이나 여권같은것은 없느냐고 물었다. 그런것은 없다고 대답했더니 그러면 안심이라고 우리를 안심 시킨다. 검색대에 도착하니 그밑에 우리둘의 가방아 얌전히 보관되여 있는것이 금방 보였다. 검색원이 건네주어 다시 목에 메고 오면서 안을 확인해 보니 모든게 그대로 였다. 그안에는 여권도 있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만약에 없어 졌었다면 우리의 여행은 끝장이나 마찬가지일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감사함과 고마움이 저절로 입에서 튀어 나왔다. Thanks so much.
교육장으로 사용되였던 세번째 문안의 성전의 길바닥 일부는 조약돌로 모자이크를 만들어 포장을 한것이다. Lunar가 한컷 했다.
Tokapi Palace의 3번째 문을 통과하여 College로 운영됐던 건물 맨뒷쪽에서 Bosphorus해협 건너편 아시아 대륙에 있는 아시아쪽 Istanbul시내를 보면서 짧은 동영상을 만들면서, 오랜전 영국의 Charles 황태자 부부가 왕실의 호화 유람선을 타고 여름 휴가를 즐기기 위해 지중해를 거쳐 이곳 Bosphorus해협을 지나 흑해로 향했었다는 뉴스를 접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들이 지날때 아마도 수많은 local People들고 여행객들의 시선이 그곳에 집중됐을것을 상상해 보면서, 동물원의 원숭이가 따로 있는게 아닐것이다라는 망상(?)을 해 보기도 했다.

이스탄불 하면 그유명한 Grand Bazaar를 빼놓을수 없단다. 무척 규모가 컸다. 우리 부부가 상점앞을 지날때 많은 상인들이 한국말로'이것 싸요 사세요"라고 소리를 쳐댔다. 그만큼 한국사람들이 많이 다녀 갔다는 증거이기도 하리라. 우리가 관광객임을 알기에 그들이 부르는 값은 굉장히 비쌌다. Guide가 물건 구입은 삼가라고 귀뜸해 준다. Lunar가 여행 떠나기전 친구들로 부터 꼭 사오라고 부탁 받았던 Belly Dance costume들도 값이 무척 비쌌다. 형편 없는게 20-40TL을 달란다. 이곳에는 온갖 잡화들이 꽉들어차 있었다. 제한된 시간에 대충 이스탄불의 맛을 본것 같은데 하루가 지나 버렸다. 내일은 다시 뻐스를 타고 다음 목적지로 향하기위해 짐을 싸서 Istanbul을 떠나야 한다.


Thursday, March 25, 2010

Finally touched down on Turkey soil. 그것도 심장부 이스탄불에서



























3월 4일,2010년.

토론토 공항에서 Air Canada를 타고 장시간 날아가 독일 Frankfurt에 내려, 다시 그곳에서 Istanbul, Turkey를 향해 Lufthansa Airline을 타고 날아가 이스탄불 공항에 내렸을때는 거의 10시간 이상을 하늘에 떠 있다가 땅을 밟은 것이다. 공항에는 여행사에서 보낸 Guide가 피켓을 들고 우리 부부를 기다리고 있었다. 원래는 미국의 VA주에 있는 여행사가 주관하는 구룹여행이기에 미국 뉴욕 케네디 공항에서 출발 했어야 하나 내가 살고 있는 토론토에서 그곳으로 날아가 다시 유럽행을 하는것은 시간과 돈의 낭비이기에 Tour package를 구매할때, 협의를 해서 Air값을 빼고, 개별적으로 날자에 맞추어 개인적으로 항공권을 구매했기에 실질적으로는 현지에서 모두가 합류하여 Tour 를 하게된 것이다.

입국비자는 공항 현장에서 받을수 있다는 정보에 따라 그냥 떠났었는데, 이스탄불 공항에서 비자를 신청하자 $60.00 US를 지불하라는 남자 창구 직원의 퉁명스런 주문이었다. 조금은 의외였다. 정보에 따르면 약 US 25 달러 정도였는데.... 미국인들은 US 20달러였다. 공항 입국수속대에는 여행객들로인산인해를 이루어 차례를 기다리기가 지루할 정도였다. 이곳도 브라질과 마찬가지로 관세청 소속직원들이 출입국 수속을 하는게 아니고 국립 경찰들이 맡아 처리하고 있는게 이곳 북미나 다른 서구 나라들과 달랐다. 그내용은 내가 알 소관이 아니라서....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Guide를 따라 Luggage를 미니 버스에 싣고, 시내에 있는 호텔을 향해 달렸다. 다행인것은 시내를 달릴때는 오후 2시경이라서, 아시아 대륙과 유럽을 갈라놓은 Marmara Sea의 해변가를 따라 뚫린 도로를 타고 달리면서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을 잘 볼수 있었다는 것이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바다에는 수를 셀수 없을 정도로 많은 큰 화물선 배들이 떠 있어 장관을 이루었고, 시내에 거의 도착했을때는 오랜 옛날에 쌓았던, 지금은 페허가된 성벽이 끝없이 이어지는 역사의 순간을 느껴보게 하기도 했다. 두개밖에 없는 눈으로는 한번에 다 소화시키기에는 역부족인것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시내로 들어 서면서 비교적 곳바로 뚫려 있던 도로는 구불구불하고 또 비좁고, 수많은 자동차들은 서로 먼저 달리겠다고 경적을 둘려대고.... 도로 한쪽면에서는 Tram이 달리고..... 뉴욕이나 서울거리 못지 않게 사람들은 북적거리고.... 달리는 차안에서 보는 현지사정은 나의 상상과는 완전히 다르게 바삐 돌아가는것 같다. 이리저리 시내의 좁은 길을 약 40분 달려 우리가 묵을 호텔 Crowne Plaza Hotel에 차를 세운다. 호텔 직원들이 문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우리의 Luggage를 들고 앞서 호텔로 들어간다. 호텔은 예상외로 5 스타급이었다.

생각보다 훨씬 저렴한 Tour Fee로 계약을 했기에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었는데.....아무튼 조금은 의외로 받아 들일수 밖에 없었다. Check-in을 할려는데, Rev.Kim께서 먼저와서 우리 부부를 기다리고 계셨다. 우리가 집을 떠나기전 만나뵙고 싶어 미리 연락을 드렸었는데 이렇게 호텔까지 찾아오신 것이었다. 기쁜 마음이기도 했고, 또 의외이기도 했다. 약 15년 전에 토론토를 떠나 이곳 이스탄불에서 선교를 하고 계시는 분인데, 얼굴이 잘 기억은 안됐었으나 얘기 몇마디 나눈 다음부터는 금새 옛기억을 되찾을수 있었다. Lunar는 금새 알아보고 더 반가워 하는것 같았다. 오늘은 공식 일정이 없기에 Rev.Kim께서 시내로 구경나갈것을 제안하시어 같이 호텔을 나섰다.

15년전 그분이 토론토를 떠날때는 한창 젊음을 발산하는 건장한 청년의 모습이었었는데, 시간의 흐름에는 장사가 없는것을 실감케라도 하듯
그분의 머리에도 잔서리가 내려 있음을 볼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의 앳땐 모습은 안보이고, 듬직하고 어깨를 기대어도 되겠다는 선교의 경륜이 몸에서 배어 나옴을 느낄수 있었다. 어찌 낯선 아랍권의 땅에서 사명을 수행하는데 평탄만 했으랴? 곱게 연마돼 있음을 봤다.

먼저 현지에서 사용해야할 터키돈을 바꿀려고 Rev.에게 물어보니, 절대로 호텔에서는 환전을 하지 말란다. 오히려 거리 곳곳에 있는 환전소가 은행보다 높게 가치를 계산해 준다고 하신다. 우선 사용해야할 약간을 환전했다. Tram을 탔다. 토론토 시내의 전차 같지만, 속도는 더 빠르고 더 깨끗해 보이고, 사람들도 빈틈이 없이 꽉 들어 찬다. 놀란것은 요금이 너무나 저렴한 것이었다. 1.5TL(터키는 돈단위가 리라). 얼른 토론토의 TTC요금이 생각났다. 토론토에서 한번 승차할 돈이면 이곳에서는 거의 3번을 탈수 있는 것이었다. Tram을 타고 Sultan Ahmet를 가는 동안에 Rev.Kim께서는 차창을 통해 보이는 여러 고적들을 보면서, 여기는 Blue Mosque( Sultan Ahmet Camii), 저곳은 Bazzar, 또 이동네는 Hammam.....계속 이어지는 설명이지만, 하나도 기억에 남아 있질 않는다. Sultan Ahmet역에서 내리니 군밤장사하는분이 구어대는 군밤의 구수한 냄새가 코를 진동시킨다. 한봉지 우선사서 시식(?)으로 이스탄불의 맛을 느껴본다. 그오른쪽으로 Bosphorus strait가 보인다. 수많은 관광유람선과 또 아시아와 유럽대륙을 연결시켜주는 연락선들이 쉴새 없이 들락 거리고... 검은 연기는 아니지만 디젤을 태우는 버스에서 나오는 매연은 나를 괴롭게 하고, 넓은 포구광장에는 어디서 몰려 들었는지 사람들로 북적 거린다. 거의가 다 관광객들인것 같이 보인다. Rev. Kim께서 이곳에 오시면 이스탄불 김치국 'salgam'을 곁들여 생선 빵, 즉 Balik Ekmek를 먹어봐야 제격이라고 말씀 하시면서.

수많은 식당중에서,부둣가에 바짝붙어 물위에 떠 있는 배에서 빵을 구어 만들고 그것을 부두에 있는 직원이 받아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판매하고 있는 간이식당앞에 비집고 자리를 잡았고 .... 정신없이 바삐 움직인다. 살감을 맛을 보았더니 구수하게 익은 한국의 김치국맛과 비슷하고 색갈은 조금 짙은 핑크이다. 식당들이 모여 있는 넓은 Square에는 우리처럼 간단한 음식을 사서 먹는 관광객들로 붐볐다. 우리도 자리를 겨우 찾아 앉아서 빵을 입속으로 몰아 넣기 시작했다. 북적북적하는 주위 분위기에 괜히 우리자신도 들썩 거려 지는 기분이다. 한국의 아가씨들로 보이는 두명의 처녀가 우리가 구입한 빵을 사는것이 보였다. 누가 먼저랄것도 없이 눈인사를 나누고 대화가 이어져 합석을 하면서 입을 바삐 움직인다.

그녀들 둘은 친구사이가 아니라 이곳에서 조금전에 만나 같이 돌아다닌다고 하면서 이곳 이스탄불에 도착한지는 여러날 됐다고 한다.
참으로 좋은 세상이라고 그녀들을 보면서 느낀다. 씩씩하게 대화도 잘하고 귀여워 보이기도 하고..... 하여튼 그녀들이 무사히 여행을 마치고 좋은 추억 만들어 귀국하기를 마음속에서 바랠뿐이었다. 눈을 들어 사방을 봐도 Camii(Mosque)들 뿐이다. 그리고 돌로 쌓은 성벽과 역사적 건축물들이다.

저녁 6시에 같이 여행할 Team Member들의 오리엔테이션이 호텔 로비에서 있기에 서둘러 Rev. Kim과 다시 호텔로 되돌아 왔다. 바쁘실텐데 다시 호텔까지 안내 해 주시고 그분은 가셨다. 고마웁고 미안하기도 하고.... Rev.Kim께서, 미리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Tour의 맛을 보여 주신 것이다.
시간이 돼여 호텔로비의 한쪽에 마려된곳에 가니 벌써 면도로 머리를 빡빡 밀은 중년의 사내가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부부뒤를 이어 같이 여행할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모두 14명이었다. 원래는 16명이었는데 한부부가 갑자기 몸이 안좋아 되돌아 갔다고 한다.

우리는 토론토에서, 어떤분은 Oregon에서, San Francisco에서, Atlanta에서, India에서, 아차 그리고 Kingston, Ontario에서 온분들임을 알았다. 전형적인 서양백인들과의 여행인 것이다. Guide는 자기 이름을 Mustafa이며, 현재 살고 있는곳은 이스탄불이 아니고 터키의 수도 앙카라이며, 가족으로는 아내와 9살된 아들아이 한명이 있다고 소개했다. 그리고 돌아가면서 자기들 소개를 했다.
대부분 senior couple들이었고, 우리와 동년배들도 몇분 보이는것 같았다. 따라서 거의 모두가 Retiree들이었다.
환영인사에 이어 몇가지 당부를 해 주었다.
첫째: 절대로 수돗물을 그냥 마시지 말것
둘째: 도로변의 Side Walk이 턱이 진곳이 많으니 꼭 주의 해서 걸을것.
셋째; 교통신호들을 꼭 주의 할것. 이곳에서는 자동차나 길건너는 행인들이 신호를 잘 지키지 않기에 차들이 그냥 밀어
부치기 때문에 사고의 위험이 높다고 설명을 덧부쳤다.
넷째; 시내를 포함 관광지에서 변소사용은 유료임을 명심할것. 한번 사용하는데 0.5- 1.0 TL 임.
다섯째; 오늘 저녁과 내일 아침식사는 포함되여 있지 않으니 자체 해결할것.
여섯째; 팁은 강제 사항이 아님을 주지 시켜주고, 여행이 다 끝난후 그래도 성의 표시를 하시고 싶으시면
헤여질때 개인각자가 알아서 행동해 주면 된다고 말해, 팁때문에 마음의 갈등이 일었던 LA의 한인 여행사를 통해
몇년전 남미 여행을 할때의 고뇌가 있었던 기억이 떠 오르게 했다. 아무튼 마음이 가볍다.
그리고 이스탄불의 인구수는 13백만 내지 15백만 명이라고 설명해 주면서, 2백만명의 차이가 있는것은, 하루에 입출국하는 외국관광객들의
이동상황에 따라 변동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오늘은 편히 쉬고, 내일 아침 출발 시간은 8시라고 명시하면서 헤여졌다.

그가 설명해준 여행 코스를 지도를 보면서 미리 보니, 먼저 이스탄불, 그리고 지중해 서쪽 끝에 있는 Gallipoli반도를 지나 지중해 연안 유적지를 따라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Antalya까지 가서, 그곳에서 북상하여 Konya를 지나, 그유명한 Cappadocia에서 발룬을 타보고, 다시 더 북쪽으로 달려 이나라의 수도 앙카라에서 Artaturk Mausoleum 이 있는곳을 보고 출발지였던 이스탄불에서 끝나는 약 4000킬로의 대장정이었다. 호기심과 기대감이 생겼다.

서로 얘기를 해보니 우리가 한것처럼, 거의 대부분이 개인별로 Air Line을 이용하여 이곳에 도착했음을 알았다.
모두가 제각기 거리로 나가는것 같았다. 왜냐면은 호텔에서 돈내고 음식먹기에는 너무나 비싸기 때문이다. 그들도 우리 부부만큼이나 여러곳을 구경해온것 같았다. 대화에서 그것을 쉽게 느낄수 있었다. 호텔에서 바닷가쪽으로 걸어내려 갔다. 식당들이 즐비하고 호객행위에 여념이 없었다. 식당의 윈도우를 통해 보이는 터키식 고기굽는 grill은 좀 특이 했다. 양고기나 닭고기를 쇠꼬챙이에 끼워 수직으로 세워 천천히 빙빙 돌리면서 바로 옆에 달려 있는 Gas heater를 통해 익히고, 음식칼로 익은 부위를 조금씩 떼어내 주문하는 음식의 내용에 따라 그들 고유의 Pita Bread에 싸서 만드는것이다. 우리가 그러한 내용으로 주문을 하고, Salad Dish를 시켜 먹었다. 나올때 12.5 리라를 지불했는데 캐나다 돈으로 환산해 보면 약 8달러쯤 된다. 값이 저렴한 편이다. 우선 내가 알고 있는 음식의 이름은 캐밥,Doner, 라마존 등이다. 더이상은 기억력이 부족하여 입력이 없다. 터키에서는 음식을 주문하면 식방은 의례히 무료로 따라 나오는것도 터득했다. 알아두면 좋을것 같다.
Jet leg 탓인지 졸립다. 내일을 일정을 위해 일찍 휴식처로 발길을 돌렸다.

Wednesday, March 03, 2010

Turkey여행, 어떻게 진행될까? 순리에 따를것이다.


지난해 11월부터 준비해온 터키 여행이 오늘 드디어 시작된다. 우리부부의 여행을 축복이라도 해줄려는듯, 햇살도 봄냄새를 느낄수 있도록 화창하고, 콘도뒤쪽의 온타리오 호수에도 그동안 꽁꽁 얼었던 것들이 풀리는 것을, 이곳을 살림집(?)으로 삼고 삶을 살아가는 갈매기떼, 오리떼, 기러기떼 그리고 백조떼들이 바삐 먹이를 찾아 헤매고 있지만, 내눈에는 한가로히 물위에 떠서 수영을 즐기는 모습으로 보인다.
가끔씩은 얼어던 얼음이 녹으면서 Break되는 소리가 귓가에 까지 들린다. 그들의 노래 소리, 특히 갈매기들의 노래(?)소리가 제일 요란하다.
3주 동안을 미지의 세계 터키를 돌아 보기위해 자료를 보고, 또 인터넷을 서핑하고..... 기억속에 넣어 보려고 애를 써 보았지만, 지금 나의 머리속은 텅빈 깡통처럼 아무것도 떠 오르지 않는다. 아내는 마지막 점검을 하느라 왔다갔다 부산하다.
복잡한 공항 수속은? 혹시 Luggage는 무게가 오버 하지 않을까? 몸무게를 달아보는 Scale을 갖다놓고 그위에 올려놓고 보고, 그러면서 혹시 Scale이 잘못 작동해서 정확한 무게를 표시 못하는것은 아닐까? 이생각 저생각, 끝이 없이 상상이 이어진다.
주위의 친지들은 우리부부가 여행하는것은 경험이 많아 쉽게 짐꾸리고, 저렴하게 여행하고, 여행지에서의 생활도 무척 쉽게 하니까, 시간이 되면 그냥 짐을 싸고, 비행기 타고 날아간다는식으로 간단히 말들을 해 주지만.... 이렇게 이궁리, 저궁리를 하면서 여행의 자료와 여행할 국가에 대한 사전 정보를 찾아 헤매는 보이지 않은 그이면의 외로움과 어려움을 그들은 알리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리라. 기왕에 여행 가는것, 다시는 또 올기회가 없기에, 가능하면 하나라도 더 보고, 더 역사적 의미를 체험하고....그곳 사람들과 친해 질려고 노력해 볼려고 하는 우리 부부의 여행 자세와 습관이 항상 비행기 타기직전까지 머리를 꽉 차지하고 있어왔다. 이번 여행은 토론토에서는 우리 부부만 출발하여 현지 이스탄불에서 미국으로 부터 날아온 여행객들과 합류하여 2주간 공동여행하고, 나머지 일주간은 우리 부부가 다시 Backpack차림으로 구석구석을 발품을 팔아 여행할 계획이다. 그래서 인지 마음속에는 어떻게 효과적으로, 더 많이 현지답사를 할수 있을까?를 더 생각해 보는 것이다.
노아의 방주가 있다는 아라랏산도 보고 싶지만, 터키군이 주둔해 있어, 방문이 어렵다고 한다. 그래도 하고 싶으면 사전에 당국의 허가를 얻어서 할수 있다고는 하나, 낯설은 관광객인 우리에게는 기다리는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아 아예 생각을 접었다. 북쪽으로 흑해, 남쪽으로 지중해, 유럽과 아시아를 가르는 Sea of Marmara와 흑해를 가기위해 보스포러스 해협을 통과하고, 다시 남쪽의 지중해로 가기위해서 '다다넬스'해협을 통과한다는 정보를 머리에 입력해 본다. 그외 7000년이 넘는 긴역사를 간직한 터키의 옛선조, Ottoman제국의 셀수도 없는 수많은 유적들, 성경에서 나타나는 초대 교회가 있었던 곳들....동쪽 내륙지방으로 들어가면 전연 다른 나라같은, 산악지대와 기후변화등등....
그곳 사람들의 생활양식, 음식, 예절, 생활수준..... 끝도 없이 이어진다. 언어가 안통하면, Body language로 판토마임을 했던 기억도 여러번 겪었던 경험이 떠 오른다. 상대방은 자기나라말로, 우리는 영어로.... 상상만 해봐도 웃기는 조크다. 여행이 아니면 이러한 어린애 같은 행동들이 통하는 그런 짜릿한 경험을 어디서 해 본단 말인가? 그맛에 또 이렇게 가방을 꾸려, 부디치러 떠난다.
이제 Pearson International Airport로 자동차의 핸들을 돌린다. 이제부터 새로운 세상속으로 뛰어 들어서 사람사는 구경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