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June 27, 2012

Ottawa에서 6/25 동란 62주년 행사에 참석, 뜻을 새기다


















세월은 즐거우나 괴로우나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일정한 속도로 흘러감을  깊이 느끼면서, 내자신이 살아온 발자취를,  Ottawa를 향해서 달려가는 뻐스에서 Scanning해 봤다. 줄을 서서 기다릴때의 몇분간은 참기가 힘들어 몇시간 아니 며칠을 기다려야 하는 기분이지만,  지나간 시간들은  찰라의 순간으로 기억되고 있을 뿐이다. 66년간을 살아 왔는데, 한순간의 기억으로 압축(?)되는, 살아온 삶의  묘기를 내가 해내고 있다는데 놀라고 말았다.

80중반을 넘긴 역전의 노장님들은 밤잠을 설치고, 몸은 쇠약하여 거동이 쉽지는 않지만, 목숨을 바쳐 조국을 사수했다는 그자존심과 그때의 기억때문에, 어떤회원님은 평생을 같이 삶을 살아온 부인의 부축을 받으면서까지, 새벽 4:30분 정각에 떠나는 뻐스에 몸을 싣고, 5시간이 넘는 장시간의 여행끝에, Ottawa에서 매년 거행되는 한국전 행사에 참석 하는것을 마다 하지 않는 Warrior의 기상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노장님들의 노고에 고개를 숙일 뿐이다.

세월앞에는 어느 누구도 거역을 할수 없음은 창조주만이 알고 계시는 비밀(?)일 것이다.  이번 62주년 Ottawa 한국전 행사 여행에서는 작년까지만 해도 보였던 상당수의 역전의 용사분들의 얼굴이 안보이는것을 보면서, 안타까움이 더해짐은 나만이 아니고 모두가 느끼는 서러움의 심정이었을 것이고, 다음 타자는 내가 아니라는 보장이 없는 현실앞에 숙연해졌음도 느꼈을 것이다.

먼저 한국전 참전에서 희생된 516명의 Canada측  Fallen Soldiers들을  기억하기위하여 Confederation Park에 세워놓은 기념비에서 묵념과 헌화를 하기위해 뻐쓰에서 내려, 대열을 이루고 걸어가는 용사분들의 걸음 걸이에서는 노인네의 모습이 역력했지만, 그마음만은 젊은이들을 능가하고 있다는것을 어렵지 않게 느낄수 있었다.

곧이어 전쟁광장에서 행해진 본 행사에는 고국에서 보훈처 차장, 정양성님, 캐나다정부를 대표한 Secretariat한분, MP Joe Daniel( Donvalley East), 캐나다군 참모총장, 참전 16개국을 대표한 외교사절과 Attache분들,  참전용사분들 그리고 가족들이 무명용사탑을 중심으로 모여서   헌화를 드렸고, 나도 동부지회장 신분으로 영령들앞에 헌화를 하면서, 순간적으로 아직 다섯살 정도밖에 안된 그어린 나이에,누나를 비롯한 온식구가 인민군들의 총구앞에서 집안에 있던 모든것들을 끌어 모아서 마당에 모아놓는 꼭두각시 노릇을 하면서 벌벌 떨고 있었던 모습이 어렴푸시 기억에 떠 올랐지만, 그때의 나는 왜 온식구가 그래야만 했는지를 알지 못하고 인민군들이 눈을 번득이면서 총구를 두려움과 공포에 떨고있는 우리 온식구들을 향해 돌리고 있을때, 신기한 눈으로 총구를 따라 다니곤 했던 순간이 어제일어났던 일처럼 기억속에서 번뜩임을 느꼈다.

60대 후반이 된 나자신도 6/25 동족 상잔에 한부분을,세상물정을 구별하는 성인 또는 군인의 신분으로서가 아니라 철없는 어린나이로 겪었을 뿐, 전후의 폐허가 되다시피한 처참함을 책과 뉴스미디어를 통해서 알고 있을뿐인데, 하물며 전후 세대들에게  참전용사분들이 겪고 느꼈던 참상을 같은 마음으로 느껴 달라고 기대하는것은 고사하고, 그져 종북좌파들이 부르짖는 "6/25는 북침이었다"라는 엉터리 괴변에 넘어가지나 말도록, 정부를 비롯한 관련 단체들이 앞장서서 바른 역사를 가르친다는 신념으로 홍보하고 교육 시켜야한다는 점을 깊이 느꼈다.

본국의 뉴스미디어에서도, 6/25전쟁의 전후 실정과 전쟁의 원흉및 원인에 대해서도, 물질적으로 풍요로움속에서 살아가는 젊은세대들에게 역사적의미와 애국심이 뭔가를 알려주는 내용의 기사는 전연 보이지 않아, 형식적인 구호와, 일부 참전서방세계에서는 "잊혀진 전쟁"으로 불려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과 하나도 다를바 없다는점도, 해외에 살면서 조국안보의 첨병역활을 하는 나자신을 포함한 향군회원들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광장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이어진 도로위를 달리는 차량들의 경적소리와 소음은 분위기를 산만하게까지 했다.  오직 이행사에 참석한 자들만이 그날의 참혹했음을 기억하는 순간일뿐, 그들에게는 아무상관없는 ' 뭔가 행사가 진행되고 있구나'라는 정도의 그림으로 보여졌을 뿐, 그이상 또는 이하의 의미를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향군대열이 사열과 분열을 위해 열을 지어 행진할때, 길옆에서 구경하고 있던 관중들, 특히 할머님들이 눈에 많이 띄었는데, 분명 그분들은 남편 아니면 가족 누군가가 6/25 전쟁과 깊은 관련이 있었을 것이라는 점은 쉽게 느낄수 있었다.

늦은감은 있지만, 조국이 G20국가 대열에 나란히 서서 활동하는, 잘사는 나라로 발전했음이, 결코 우연이 아니고, 참전국가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음을 고맙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또 보은을 한다는 차원에서  많은 국가돈을 들여 잔치(?)를 베풀어 주는, 조국의 정부에 경의를 표하지만, 그러한 고마움의 표현들이 종북파를 포함한 온국민들의 밑바닥 가슴으로 부터 한마음이 되여 나왔었으면 더 좋았을것을..... 하는 아쉬움도 떨쳐 버릴수가 없었다.

점심은 오타와에서 가장 오랜된 고급호텔중의 하나인 Chateau Laurier Hotel에서 풍부하게 치러졌다.  내가 만났던 모든 캐나다 참전용사분들은, 최근에 조국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분들이었는데, 목숨걸고 공산주의에 맞서 싸웠던 보람과, 발전상에 깊이 고무 되였었노라고 고마워 하시느라 맛있는 음식을 입안에 집어 넣는것 조차 잊은듯한 인상을 받았다.

다시 토론토까지 되돌아오기 위해 장시간이 필요하기에 끝까지 남아 있지를 못하고 중간에 빠져 나와야만 했던 아쉬움이 있었다.  우리 일행 50 여명과 몬트리얼에서 참석하신 20여명의 참전용사분들이 빠져 나온 그빈자리의 깊은 의미를 우리말고 어느누가 인지하고 있었을까?
연로하신 참전용사분들의 오늘 행사 참여에 깊은 사의를 표해 드린다.

Hwy 401의 Exit 497 입구에 있는 'Big Apple'의 애칭으로 불려지고 있는 Apple Pie제조 공장겸 관광 명소에 들렸다. 매번 볼때 마다, 관광 명소로서의 특징을 하나씩 하나씩 쌓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관광객들의 숫자도 계속 늘어 나고 있음도 보인다.  서양사람들의 후식으로 즐겨 애용되는 Apple Pie를 만드는 전공정을 관광객들이 직접 눈으로 볼수 있도록 유리벽을 통해 Lay out해놓은점이 크게 Hit를 치고 있는것 같다.  회원님들이 Apple Pie를, 그리고 Apple Chip도 기념으로 구입하신다.  집에 돌아가서, 가족들과 함께 둘러앉아, 오늘의 행사얘기도 하면서, Apple Pie를 한조각씩 나누어 먹으면서 맛을 음미 하실 것이다.

무사히 행사를 마침을 행사의 책임자로서 고맙고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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