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June 05, 2011

30년전 오늘,공포의 질병AIDS 의학지에 처음 발표된날


전세계를 공포속으로 몰아 넣었던 HIV/AIDS 라고 명명된 질병이 1981년 6월5일 의학계에서 처음으로 세상에 발표된지 30년이 되는 날이라고 한다. 가정생활을 하는 많은 여성들은 평생을 통해서 자기남편만 Sex partner로 여기며 부부관계를 하기 때문에, 그렇게 무서운 질병이 세상을 공포속에 몰아 넣어도 자기와는 상관없는, AIDS라는 질병은 강건너 등불식으로 여기고 지내 왔었지만, 결혼생활의 실상은 그렇치만은 않은 것이라는것이 AIDS/HIV로 불리는 질병이 예상치도 않은 곳에서 발생하면서, 지금까지의 잘 지내왔던 건전한 가정들속으로 깊이 파고 들어 결국 파탄되고, 깨지고 더 나아가서는 목숨까지 잃는 무서운 병이라는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 당시의 AIDS질병에 감염된 한 부부의 긴박하고 절망적인 상황에 처했던 상황을 소개한다.

Tony Rasberry는 그의 남편에게 전화를 하기위해 다이알을 돌리는데 몸이 좀 흔들리는것 같고, 신경이 마음먹은데로 작동안되는 것을 느꼈었다. 그녀가 다이알을 힘겹게 돌려 겨우 전화를 했을때, 그녀의 남편은 기다렸다는듯이 즉각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내 검사결과가 나왔어" 라고 그녀는 남편에게 말했다.
잠시동안 침묵이 허공에 흐르고 있었다.

"의사의 말은 뭐래?" 남편이 물었다. 처음으로 그녀의 입에서 "나 HIV/AIDS 양성이래" 라고 전화 수화기를 통해서 그녀의 말이 흘러 나왔다. 그말을 듣는 순간 그는 수화기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전화기는 병원 바닥에 깔린 타일에 박살나고 말았다. 이어서 남편의 목놓아 우는 소리를 들을수 있었다. - 그통곡 소리는 고통, 자괴감으로 놀라, 보통 울음소리가 아닌 절규였었다.

"내가 당신 인생을 망쳤어. 우리 식구 모두를 죽이고 말았어" 라고 그는 그렇게 그녀에게 고백했다.
그녀의 남편이 AIDS균을 몸에 지니고 다녔고, 그녀는 AIDS/HIV로 판명이 난것이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에 그녀의 남편을 집에서 쫓아 내고픈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대신에 3아이들을 안고, 그를 떠나는 길을 택한것이다. 즉 그녀는 그를 용서한 셈이다.

HIV/AIDS 는 지난 30년 동안에 사람들의 섹스에 대한 개념을 바꾸었으며, 무방비 상태에서의 관계는 공포의 상징으로 사람들의 뇌리에 박히게 됐다.

1981년 6월 5일에 처음으로, 이병균에 대한 보고가 있은후 이질병으로 25백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고, 오늘현재 약 3천3백만명이 HIV/AIDS균을 몸속에 지닌채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그중에서 약 백만명 이상이 미국에 거주하고 있다한다.

미국에서 1980년까지는 동성애 남자들 사이에 급속히 퍼져 나갔으나, 1990녀와 2000년대에 와서는 Heterosexual관계를 맺고 있는 소수계 여성들에게 널리 퍼져 나갔으며 특히 아프리칸-어메리칸들과 히스패닉계 사람들이 많이 감염 됐었다.

"지난 수십년간 감염자 숫자는 줄지도 늘지도 않은 현상을 유지해 왔으나, 이병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은 비율로 감염된 것이다. 새로운 감염자들중에서 백인여성들이 지금은 19-22배 더 많이 감염돼고 있는데 이통계는 모든이에게 경종을 울리고 있다" 라고 이질병을 연구하는 기관인 CDC'S national Center for HIV/AIDS의 책임자 Dr. Kevin Fenton씨는 걱정이다.

36세의 Rssberry씨는 현대 사회의 전염병에 대한 도전을 자기가 직접 접해 보기로 작정하고, 국민건강을 위한 홍보의 일을 하면서 HIV/AIDS라는 질병을 알게 됐었다. 그러나 그질병이 그녀 자신에게 까지 옮겨질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었기에 그녀는 결혼을 하게 된다.
"많은 여성들은 섹스를 한남성과만 하는 것으로 믿고 살아가지만, 나중에야 섹스파트너로 부터 HIV/AIDS가 자기에게 까지 전염됐다는것을 알게돼곤 한다" 라고 Harlem가에서 HIV양성의 여성치료를 담당하고 있는 Iris House의 책임자인 Ingrid Floyd 씨가 설명 한다.
"당신의 섹스파트너가 당신에게 AIDS 보균자임을 미리 알려주지 않는한 알아낼 방법은 없는것 아니냐?"라고 말합니다. 이바이러스는 몸속의 면역체계를 공격해서 결과적으로 감염자는 배신감으로 휩싸이게 되는데 그런 사람들이 다시 다른 사람을 믿을수 있겠는가?


1994년 5월에 이들 부부는 처음 만났었다.
당시 19세의 Rasberry는 시아틀에 있는 한 Seafood식당의 종업원으로 일하면서 바쁜 하루를 보내고, 그녀의 여자친구들과 밤새워 놀기로 계획을 세우고, 미니스커트와 하히힐을 신고, 길을 건너고 있을때 한남자가 그녀앞에 갑자기 나타났다고 회상한다. 그남자는 그녀에게 말하기를, 자기 친구들과 내기를 했는데 그내용은 내가 당신과 같은 키크고 예쁜여자를 만나서 얘기를 할수 있는지의 용기를 시험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남자는 그녀보다 키가 더적은 볼품이 없는 Old man으로 보였으며, 어깨가 딱 벌어진 모습이었다. 그이 이름은 Eric이라고 했다. 그녀는 금방 그남자가 다른 남자들과 크게 다를것도 없다고 판단하고 사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고급식당에 데리고 가서 샴페인을 터트리는등의 신사로 행동 했으며, 그런 행동은 그녀를 금방 사로 잡았다.

일년후에 첫아들 Seaduan을 낳고, 2년후 딸 Erykah를 낳고 다시 일년후 두번째 딸 Tionne를 낳았다.

그후 2000년도에 그들은 캘리포니아에서 가든파티 결혼식을 올렸고, 아이들을 잘 키우면서 '시아틀'의 한 아파트에서 삶의 터전을 마련 했다. 남편은 수시로 여행을 다녔는데, 건설현장에서 일하기 때문이라고 그녀를 안심 시켰다고 한다. 이에 그녀는 의심을 품기 시작하고 추적해본 결과 그는 '오하이'에 또 다른 집이 있었으며, 캘리포니아에는 음악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는것을 알아냈다.

그녀는 남편의 이러한 이중 생활을 청산하고,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정상적인 가정생활을 하자고 간청 하면서, 만약에 이를 수용치 못할경우 그를 떠나겠다고 경고까지 했었다.
"그는 삶의 방향을 그녀의 요구데로 바꾸는 것으로 느꼈고, 다시 가정을 꾸려 가기로 마음을 다져 먹었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얼마되지 않아 남편은 몸에 병이 생겨 아프기 시작 했었다" 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2002년도 여름에는 병세가 악화되여 남편 Eric씨는 거동이 불편하게 된다. 피자로저녁식사를 먹기로 하고 피자를 사서 집에 들어오자 마자 그는 마루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처음에는 당뇨병일것으로 그래서 피속에 당이 너무나 많은것일것이라고 생각 하고 바로 병원으로 달려 갔는데, 그의 몸 오른쪽은 움직일수가 없었고, 얼굴절반은 무감각상태였고, 오늘쪽 팔이 꼬이고 있었다.

나이 32세에 뇌에 종양이 생겨 결국 뇌졸증을 앓고 말았다. 담당의사들은 그이 이같은 병증상을 놓고 원인이 무엇인가를 찾을려고 많은 노력을 했지만 미궁속으로 계속 빠져들고 말았다.
여러번의 시험끝에 담당의사는 "당신은 AIDS균 보균자 입니다" 라고 설명해 주었는데, 목숨을 연장하면서, 치료할수 있는 약은, 이병균이 수시로 변형되는 통에 치료가 되지 못했다.

지금 현재도 아프리카 대륙을 비롯한 후진국에서는 무방비 상태에서의 Sexual intercourse로 계속 이질병은 번져 나가고, 그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세상에 태어나면서 부터 AIDS감염자로 어두운 살을 살아간다고 한다. 아직도 좋은 치료약이 개발 됐다는 반가운 뉴스는 없는것 같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종족 보존을 위해서만 섹스를 하기 때문에 인류가 겪는 무서운 질병은 없는것 같다. 그대가를 지불하라는 창조주의 깊은 뜻이 이질병속에 포함된 것같은 생각을 하는 내가 이상한것일까? 복잡하고, 과학이 발달 했다고 하는 사회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인류의 무력함을 두려움으로 볼수밖에 없다.

http://www.cnn.com/2011/HEALTH/06/05/HIV.AIDS.2000/index.html?hpt=hp_c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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