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August 27, 2010

전통 숯가마속에서 찜질방을 즐긴다니.....마음은 그곳으로


옛날 조상님들이 즐겨 했던 전통 찜질방이 되살아나고 있다는 소식이다.
문명의 발달로 그동안 자취를 감추다 시피했던 참나무숯을 굽는 숯가마를 이용하는것이 바로 이것이란다.
참나무숯을 굽는데, 참나무 기둥을 가마솥(Kiln)에 쌓아놓고 약 1주일을 계속 불을 지펴 땐다. 다된다음 가마 입구를 헐고, 갈구리로 잘 탄 숯을 끄집어 내어, 시장에 내다 파는 것이다. 가마속에서 하얗게 힘차게 타오르는 불꽃을 서영감님은 '내가 만들어낸 불꽃'이라고 설명한다. 그때의 온도는 섭씨 1400도쯤 된다고 하니, 옛날 어렸을때 시골 동네를 돌아 다니면서 구멍난 냄비를 납으로 때워주던 땜쟁이 아저씨가 사용했던 조그만 용광로의 온도보다 더 훨씬 높을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후에 약 200도 정도로 식으면, 동네 사람들이나 관광객들이 화학섬유가 아닌 무명옷이나 수건을 몸에 두르고 그숯가마속으로 들어가 열탕을 즐기는데, 그온도가 약 2일간 지속된다고 하는구나. 완전히 열이 식으면 숯굽는 서영감님은 다시 그안에 참나무기둥을 차곡차곡 쌓아 놓고 다시 약 일주일간 불을 땐단다. 즉 또다른 Cycle이 시작되는 것이다.
보통 그안에 들어가면 약 5시간 정도를 비지땀을 흘리면서 즐기는데, 구슬땀을 흘리다가, 다시 밖으로 나와 펼쳐져 있는 멍석위에 누워서 땀을 식히고, 갈증을 해소하기위해 연속 몇컵의 물을 마셔대고....
소문은 소문을 타고 널리 퍼지는법. 전국적으로 퍼져 이러한 전통 숯가마 찜질방이 대유행이라고 한다. 아무튼 못말리는 한국사람들의 특성을 여기서도 보는것 같다. 요즘은 아니지만 1970년대말에서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이곳 토론토에서도 그러한 비슷한 현상이 있었다. 교민들의 삶의 주업종인 Convenience Store가 성업중일때, 어느가게가 좀 잘된다는 소문이 나면, 얼마후에는 그옆에 새로운 가게를 Set-up하곤 해서 죽자 살자식으로 경쟁을 했었던, 결국 둘다 피해자가, 실패자가 되곤 했었던 기억이 떠오르게 한다.
강원도 횡성에서 처음 이사업을 우연히 시작했던 '서 석구'씨는 걱정이 많다고 한다. 이소문이 언론에 나자 전국에서 우후죽순격으로 비슷한 참숯찜질방이 문을 열어, 지금은 전국적으로 약 150개가 넘게 사업경쟁을 벌이고 있어, 이제는 돈벌이 되는 사업이 아니라고 한다. 지금까지는 곁가지로 발생했던 찜질방에서 수입의 주종을 이루었는데, 이제는 옛말이 되여가고, 다시 원래의 참숯구어 파는 수입으로 명맥을 이어가게 됐단다.
한참 사업이 전성기였던 2002-2004년경에는 전체 38개의 숯가마중에서 6개씩 관광객들에게 개방하여 하루에 약 450여명씩, 일인당 약 11,000원( 미화 약 9달러)씩 받고, 많은 수입을 올렸었단다.
숯가마 찜질방이 성공할수 있었던 것은 참숯과 질흙이 몸의 건강에 좋은 효과가 있다는 오랜전통의 민간 요법에서 유래 한다고 한다. 옛날에는 새색씨가 아기를 낳으면 출입문 입구에 참숯덩이를 매달은 금줄(탯줄?)을 매달어놓고 잡귀의 침입을 막아냈었다는 풍습이 있었다. 요즘에도 새로 집을 지을때는 거실한곳에 숯덩이를 보관하여 냄새를 없애고 또 공기정화를 시킨다고 한다.

서영감님의 숯가마 아궁이에서 안을 들여다 보면 하얗게 발열하는 불빛을 보면서, 관광객들은 자기네 마음까지도 깨끗해짐을 느낀다고 토로하고 있다. 40세의 임현오씨는 원래 쓰래기 소각장을 운영 했었는데, 그영향으로 온몸에 피부병이 생겨 의사의 치료를 계속 받았었으나 효과가 없어, 금년초에 우연히 이곳에 들려 찜질방을 이용해 본후 주기적으로 찾아 이용했는데 지금은 피부병이 거의 낳아, 아예 이곳에서 Part-time Job을 잡아 참숯가마에서 일하면서 돈을 벌어,참숯가마 찜질방을 이용하는 비용으로 사용하고 있다면서 좋아 한다.
"관절염이나 암환자들이 몇개월씩 장기간 숯가마를 세내어 그곳에 기거 하면서 치료를 하고 있어요. 아마도 숯가마에서 나오는 열이 몸속에서 묻혀 있는 노폐물들을 땀으로 빠져 나오게 하는 역활을 하고 있다는것을 믿어 의심치 않고 있읍니다" 라는 설명이다.

서영감님의 옆에서 같은 사업을 벌이고 있는 경쟁자들은 많은 자금을 투자하여 샤워시설과 정원을 아름답게 꾸며 손님들을 유치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어떤곳은 아예 참숯구이 불갈비 식당도 겸하고....
그러나 서영감님 영업장에는 그러한 현대식 시설이 거의 없다. "우리는 우리의 할일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기에, 우리는 숯가마에 불을 때서 참숯을 만들뿐, 이곳은 스파가 아니다"라고 변형된 영업을 간접적으로 질타했다. 돈의 위력을 무시 하는것은 아니지만, 문명을 탈피하고, 못살았을때 서민들이 즐겨 찾았던 민간 요법을 그대로, 비록 이용하기에 불편하다해도, 체험 하도록 해 보는것도 큰 의미가 있을텐데.....

문득 높은 굴뚝을 상징으로 길게 만들어진 벽돌가마가 세워져 있었던, 고향동네가 생각난다.
매일 아침 저녁 학교를 오가면서 그곳을 지나쳤었다. 한번 벽돌을 굽게 되면, 며칠간을 긴가마 여러곳에 있는 아궁이에 장작불을 피워 벽돌을 굽던, 굴뚝에서는 새하얀 연기가 하늘 높을줄 모르고 피워 올랐었던, 특히나 초가을의 구름한점없던 파란 하늘위로 솟아 오르는 연기는 때로는 바람에 휩쓸려 끌려가듯 옆으로 날리기도 했었고, 바람이 없는 날에는 곧바로 위로 뻗어 올라가는 모습을 고개가 빠져라 올려다 보곤 했었다. 이제는 기억속에서만 볼뿐이다. 그기억속에 있는 고향으로 마음은 바삐 달려간다. 이미 다 변해 버렸겠지만..

서영감님이 운영하는 참숯찜질방과 같은 현대판 찜질방이 전국의 각도시에, 참숯대신 전기히터를 이용하여 성업을 하고 있음을 나도 알고 있다. 지난번 고국을 방문했을때, 처음으로 말로만 들어왔던 그찜질방을 두번, 친구분들과 함께 이용했었다. 겉모양은 참숯가마처럼 검댕이도 칠해져 있었고....그것마져도 나에게는 옛정취를 충분히 느낄수 있게 했었다. 이방인이어서 였을까? 아니면 시간의 흐름속에서 찾아 볼려고 했던 희미한 기억의 망상에서 였을까? 서영감님의 사업이 계속 잘되기를 바랄뿐이다.


http://www.nytimes.com/2010/08/27/world/asia/27iht-kiln.html?_r=1&ref=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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