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January 20, 2009
큐바 카데나스에 있는 M의 집을, 초청받아 방문했다.
큐바 휴양지에서 휴가를 보내는 외국인들이 큐바인들이 살고 있는 시내를 방문하는것은, 그것도 개인집을 방문한다는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여러가지로 제약이 따르지만, 여행객으로 그런 관계를 맺는것은, 보안면이나, 교통, 기타 보이지 않는 두려움등의 제약 때문이다. 그런데 이의 벽을 깨고, 하얀이를 들어내고 웃을 때는 수줍은 소녀같은 그녀가 우리 부부를, 그녀가 쉬는날 자기 집으로 초청해 주었다. 같이 골핑하던 일행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우리 부부는 18홀만 끝내고, 먼저 골프장을 나와 호텔로 와서, 그녀가 보내 준다고 하는 차를 약속시간에 맞춰 호텔 앞 큰길가에서 기다렸다. 약속시간을 약 20분이나 넘겼는데도 온다는 차는 나타나지 않아 속으로 은근히 걱정이 되기도 했다. 공산주의 사회라서 어떤 일이 벌어져서 약속을 못지키는것은 아닐까?라고 말이다. 그녀가 설명해준데로, 아주 조그만 빨간 고물딱지 차가 우리앞에 섰다. 그녀는 물론 차가 없기에 차를 사용하고 있는 그녀의 친구에게 부탁하여 온것이다. 큐바에는 개인 소유차량이 없다고 한다. 다만, 정부의 허가를 얻어 정부재산인 차를 개인이 자기것 처럼 사용은 가능하다고 한다. 그는 Dillio라고 하는 건장한 사내 였는데, 인상이 좋아 보였다. 그옆에는 골프장에서 field매니져를 하던 Shobi 였다. 그도 우리와 동행하여 마리아 집에 가기로 미리 약속했기에 일찍 일을 마치고 여기에 온것이다.
Shobi는 우리와 운전사를 서로 인사 시켰다. 운전사는 영어를 거의 못했지만, Shobi의 도움으로 의사 소통에 많은 도움이 됐다.
정말로 그의 차는 오래전 한국에서 보았던 티코처럼 작았지만, 우리에게는 융숭한 대접을 해준다는것을 느낄수 있었다.
골프장에서는 별로 말이 없이 업무적으로만 대하던 Shobi가 입을 열기 시작하면서, 그의 과거 이야기를 즐겁게 해주었는데, 그도 캐나다에서 약 10여년을 캐나다 여인과 결혼하여 살았었다고 한다. 이곳 골프장에 휴가온 캐나다 여인과 알면서 사귀게 되여, 결혼까지 꼴인한것 같다. 캐나다와 큐바를 오가면서 생활했는데, 그의 말에 의하면, 지금 현재 30년이 넘게 이곳 골프장에서 일을 해왔는데, 캐나다에서의 생활로 이직업을 놓칠것 같아, 캐나다 영주권을 포기하고, 큐바에 거처를 옮겨 살기를 거부하는 부인과 헤여져 고국인 큐바에서 삶의 터전을 틀고, 현재의 부인과는 현재 7년째 살아가고 있다고 솔직히 말해 주었다. 약 30분을 달려 마리아가 살고 있는 카데나스라는 도시에 도착했다. 이곳은 3년전에 골프여행 왔을때도 들렸던 도시라서 전연 낯설지는 않았지만, 시내를 지나면서 둘러본 시민들의 생활은 더 어려워 보였고,집은 더 망가져가고 있지만, 수리를 한 흔적들은 전연 보이지 않았다. 차에서 내려 좁은 골목길을 약 20 여미터 들어가니 그곳이 그녀가 살고 있는 초라한 집이었다.
그녀가 반가히 맞아 준다. 아내가 준비해간 몇가지의 선물을 그녀에게 건네 주면서, Shobi와 Dollio의 부인들에게도 줄 여자용 핸드백을 그들에게 주었다. 고마워 한다. Shobi가 잠깐 나갔다 오더니 자기 부인과 같이 왔다. 몸집도 크과 아담한 부인이었다. 아내와는 금새 친해진것 같다.
듣던데로 거실에는 늙으신 노모가 조그만 낡은 의자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노모는 젊어서는 예쁜얼굴였을것 같았다.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고 꽂꽂했다. 앉은 자세로 우리를 반겨주는 미소를 짖곤 했지만, 소리는 없었다. 나와 아내는 노모아 hugging으로 대신 인사하고 미소로 답례했다. 부엌에는 냉장고를 비롯한 몇가지의 가전 제품이 있었다. 그녀는 그래도 큐바에서는 비교적 상류층에 속하는 구룹에 속해 있는것 같았다. 3년전 이곳에 와서 마차를 타고 시내를 구경할때의 마부집에서는, 지금 마리아가 소유하고 있는 그러한 가전제품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의 집은 방2개, 거실, 그리고 부엌이 전부였는데, 우리의 방문때문이어서 였는지는 확실치 않지만, 깨끗히 청소는 되여 있었다. 변소에는 변기위의 앉는 seat는 아예 없었다. 볼일을 볼때 얼마나 불편할까?를 곰곰히 생각타가, 사이즈를 주머니에 있던 볼펜을 이용하여 측정했는데, 이다음에 또 큐바에 오게 된다면 그때 하나 구입해서 갖다줄 생각에서 였다. 답답하고 불쌍하고, 공산정권에 대한 증오가 더 타오르게 하는 순간이었다. 시장에서 그러한 부품을 구입할수 없거나 있다해도 너무나 비싸서 못했을 것이다.
부엌의 조그만 식탁에 둘러 앉아 이야기의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아내와 마리아는 거실고 가서 무슨 얘기들을 하는지 부엌에 얼굴을 내 비치지 않는다. 식탁에는 우리를 대접한다고, 치즈 슬라이스와 Cold meat를 초코릿 청크 크기로 잘라서 plate의 끝부분에 빙둘러 몇조각씩 놓고, 접시 가운데는 올리브를 떨어뜨려 놓았다. 그옆에는 Lobster meat를 소스에 버무려 놓은 dish가 하나 놓여 있었고, 우리에게는 너무나 어이없는 음식대접으로 보였었는데, Shobi와 Dollio는 선뜻 포크를 대지 못하고 눈치만 보는것 같았다. 한점을 먹고난 Dollio는 먼저 집으로 간다고 일어난다. 나는 고맙다고 다시인사하고, 우리는 다시 식탁에 앉아 이바구를 했다. Shobi의 설명에 의하면, 이러한 고급(?)음식은 일년에 한번정도 먹을수 있는 귀한 음식이라고 배경설명을 해줬다. 충분히 이해를 할수 있었다. 그래도 이북의 굶어죽는 동포들에 비하면 이들의 생활은 신선놀음 같아 보였다. 전에 방문했던 마부의 집을 생각해 보면서, 마리아의 생활은 엄청나게 좋은 환경이라는것을 느꼈다.
큐바에서는 좋은 직장이, 물론 공산당들이 필요에 따라 인력을 배치 하기는 하지만, Resort, 골프장 같은, 외국관광객들이 머무는 곳에서 근무하는것이 최상의 직장이라고 한다. 왜냐면은 팁을 얻을수 있기 때문이란다. 상류층구룹에 속하는 마리아나, Shobi의 한달 월급은, 큐바돈으로 약 400 패소라고 하는데, 우리 관광객들이 Resort 안에서 사용하는 패소와는 약 25대1로 가치가 없는, Money trading market에 상정도 안돼있는, 그들만이 사용하는 패소라고 한다. 지난번 왔을때는 미국달러와 1대1로 맞바꾸어 사용하곤 했었는데, 그사이 미국과의 관계가 더 악화되서 인지, 아예 미국달러는 사용이 거의 중지 상태에 있었고, 유로달러, 영국 파운드 그리고 캐나다 달러가 통용되고 있었다. 캐나다 돈 1.50달러가 관광객이 사용하는 1패소인점을 감안하면, 캐나다 돈으로 그녀의 월급은 약 30 또는 34달러 정도 밖에 안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큐바인들은 퇴근후 싸이드잡을 뛰어 여분의 수입을 만들어 생활에 보태고 있다고, Shobi는 설명한다. 마리아는 노모와 그녀의 여자동생과 같이 살고 있었다. 그녀는 44세인데 아직까지 결혼안했다고 한다. 그녀의 동생은 결혼했다고 했는데 웨딩가운을 입고 찍은 사진은 있었으나 정작 신랑과 같이 찍은 사진은 보이지 않아 우리를 혼란속에 빠뜨렸다. 결국 Shobi와 그의 아내 리사는 식탁위의 음식을 거의 손대지 않고 사양하기만 했다. 그의 설명데로 귀한 음식이기에, 또 구하기가 어렵기에 감히 손을 안대는 것 같았다. 마리아에게 필요한게 있으면 말해 달라고 했더니 펄쩍뛴다. 아마도 자존심을 다치고 싶지 않아서 인것 같았다. 나와 아내는 커피와 맥주를 마시면서, 가끔씩 흔하게 여겼던, 값비싼 음식을 안주삼아 찍어 먹곤했다. 아내가 리조트 안의 식당에서 싸가지고 간 여러 음식들을 곁들여 펼쳤더니, 모두가 깜짝 놀라면서, 놀라는 모습으로 보아 그들은 먹어보지 않은 것 같아 보였다. 꺼꾸로 우리가 음식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마리아와 Shobi 는 줄담배를 피워댔다. 담배는 무척 싸다고 한다. Shobi는 연기 뿜어 대는게 미안 했던지, 먼저 맥주를 마실때는 자기는 꼭 담배를 곁들인다고 넉살이다.
식탁에 앉아 얘기를 나누다 시간가는줄도 모르고 말았다. 결국 시내 구경은 불발로 끝나고 거의 저녁 7시가 되여 다시 리조트로 되돌아 가야 할 시간이 됐을때, Shobi 먼저 말을 한다. 자기도 리조트가 있는 바라데로지역에 살고 있다고 말이다. 자기는 그곳으로 가는 버스를 이용하는데 자기와 같이 가면 버스를 탈수 있다고 설명한다. 왜 버스를 같이 타야 하는지 버스를 타고 갈때까지 이해가 안됐다. 알고 보니 시민들을 태우는 시내 버스가 아니고, 리조트에 근무하는 직원전용 버스였기 때문이다. 우린 Shobi덕택에 무료로 동승하게 되는 행운도 얻었다.
그렇치 않았으면, 그들의 한달 월급이 훨씬 넘는 많은 돈을 주고 돌아와야 했었을텐데.... Shobi는 바라데로 휴양지에 살기시작한지가 꽤 오래 됐다고 설명해 주었다. 휴양지에 근무하는 대부분의 직원들이 휴양지근처에 살기를 원하지만, 그렇게 쉽지는 않다고 하는데, Shobi 뭔가 공산 정부고급관리들과 연줄이 있는가 아닐까? 혼자 생각해 봤다. 메니져인 마리아는 아직도 카데나스에 살고 있는데 말이다.
Shobi는 비교적 영어가, 프랜치 발음이지만, 그래도 유창한 편이다. 신나게 떠들어 댔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외국인이 큐바내의 민간인집에 장기체류할려고 할때는 미리 정부로 부터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휴양지의 택시들은 비교적 깨끗해 보였는데, 모두가 정부가 관활한다고 했다. 택시운전사는 팁을 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좋은 직장인 셈이고, 몇년전만 해도 종교에 대한 대화를 나눌수 없었는데, 지금은 완와 돼여 원한다면 얼마든지 종교의 자유를 만끽할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매주 교회를 가서 worshiping한다고 했더니, 그는 자기는 출석하지 않는다고 설명해 준다. 혁명 50주년이 지난 15일 이었으니, 그동안에 세뇌교육으로 안전 무장시켰기 때문에 아마도 종교의 자유라는 허울을 띄워준게 아닐까?라고 추리해 봤다. Shobi부부에게, 우리 인간은 연약하기 때문에 종교를 갖게 되는데, 너희들도, 캐톨릭이든, 개신교든,아니면 다른 종료라도 믿고 의지해 보라고 권했다. 큐바는 혁명전까지는 95% 이상의 국민들이 캐톨릭 신자였었단다. 나는 그에게 주일날 교회 출석이유는 내자신을 되돌아 보면서, 세상 사는 동안, 나와 관련있는 사람들에게 최소한 누를 끼치지 말자는 소박한 바램이 있어서 출석하고 있다고 설명해 주었더니 고개를 끄덕끄덕 하면서 자기도 생각해 보겠단다.
그는 또며칠앞둔 미국대통령 Barack Obama의 취임식과 새로운 큐바와의 관계 개선에 희망과 걱정을 동시에 갖고 있음을 표현했다.
큐바사회의 지성인중의 하나인 그의 고뇌는, 미국과 완전히 끊겨있는, 외교, 교역, 민간인교류등의 관계개선이 되여 미국과의 교류가 빈번해 질때, 현재는 가난하게 살고 있지만, 그것 자체가 평준화되여 있어, 사회적 범죄나 문제가 거의 없이 평화롭게 지내는, 순박한 전통이 무너지지 않을까?라는 점이었고, 그런 분위기속에서 경제적으로 좀 낳아진다고 해서 얻는게 뭔가?를 심각히 우려하고 있음을 말했다. 고국의 보리고개를 넘기위해 주야로 열심히 뛰었던 대열에 참여했던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충분히 이해가 됐다.
마리아와 헤어져 뻐스를 타려고 벌써 어둑어둑해진 밖으로 나오는데, 뻐스 정류장까지 그녀가 같이 걸어나와 헤여짐을 아쉬워 했다.
좋은 관계의 이별은 항상 마음을 찡하게 해준다. 이시간에도 우리는 그걸 느꼈다. 다음 만날 기회까지는 또 헤어져 각자의 삶으로 되돌아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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