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January 17, 2009

골프는, 그것도 휴양지에서,새로운 도전이고 스릴(Varadero)




















몇년만에 다시 보는 그얼굴들인가. 골프 프로샾의 데코레이션은 몇년전 그대로인게 금방 알수 있었다. 티켓팅하는 아가씨들도 그대로 였다.
그들도 금방 나와 아내를 알아보고는 반가히 미소 짖는다. 프로샾에는 많은 한국계 캐나다인들이, 우리 일행이 이곳에 골프하러 온것처럼, 체크인을 하고 있는 분주함이 느껴졌었다. 옆방은 여전히 클럽보관소로 키큰 사내가 맡아서 백들을 in, out시키면서 파워카트를 관리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머뭇거리더니 금방 우리부부를 알아 보면서, 반긴다. 우리의 여행 팩키지에는 골프 라운딩이 무제한 포함되여 있지만, Power Cart Fee는 포함되여 있지 않아 프로샾에서 별도로 Fee를 지불해야 했다. 카트 한대당 44 큐반패소를 요구했다, 캐나다돈으로 환산하면 약 67달러인 셈이다. 해도 너무한다 싶었지만, 어찌하랴.... 그들이 칼자루 쥐고 있는걸. 속이 쓰리는 아픔이었지만, 피할방법은 없다. 부부끼리 한조를 이루어 Cart Fee를 냈다.
그동안 이멜도 보내곤 했었고, 편지까지도 우리 부부에게 보냈던, 프로샾의 M도 하얀이를 내놓으면서 반갑게 우리를 반겼다. 그모습 그대로 인것 같다.
큐바를 향해 떠나기전 우리 부부는 상당량의 Used Clothes와 기타 다른 용품들을, 물론 우리와 같이 간 일행부부부들도 준비 해 갔지만,별도로 큰 백에 넣어 갔었다. M 을 통해 그곳 사람들에게 줄려고 말이다. 그러나 그가 확실히 지금도 근무하는지의 여부를 확인할길 없어, 첫날에는 빈손으로 갔었다. 그랬는데, 그가 환하게 웃으면서 우리일행을 반긴 것이다. 몇년만의 재회인데, 감회가 새로웠다. 여자이면서도 수다를 떨지 않고, 묵묵히 그리고 미소와 조용한 음성으로, 담배는 계속 피워대는, 그였다. 아내와는 Hugging도 했다. 보기 좋았다.
여러모로 골프라운딩을 그들이 도와 주었다. 백보이에게, 프로샾의 두 아가씨에게도 가끔씩 고마움의 표시로 성의를 표시 했더니, 친절하게, 제동이 걸리지 않고, 라운딩을 하게 해줬다. 다음날 M 에게 준비해간 옷가지를 포함한 기타 용품들을 건네 주었다. 모두가 나누어 요긴하게 사용할것을 확신 하면서 말이다. 보람된 일을 한것 같아,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 졌다. 아내가 더 마음이 가벼워 지는것 같았다.
일행의 아줌씨들이 한조, 그리고 그녀들의 남편들이 한조, 그렇게 해서 2조를 이루어 우리는 라운딩을 즐겼다. 아줌씨들이 먼저 Teed Off를 하게했고, 우리는 그뒤를 따랐다. 멀리 보이는 아짐씨들의 클럽휘두르는 모습들이 곱게, 아름답게 보이고, 춥고, 눈에 쌓인 제2의 고향 토론토를 떠나, 잠시나마 모든것 다 잊어 버리고, 클럽을 휘둘러댄후에는 하늘에 대고 파안대소하는 모습도 꾸밈이 없어 보여 더 좋아 보였다.
Par를 하나 하면, 그렇게 좋은가 보다. 가끔씩 '티' 박스에서 두팀이 만나다 보면, 강조하여 우리에게 자랑하고 뽐내는 아줌씨들, 그녀들이 있어, 뒤에서 뒷받침 해 주면서, 어려운 이민 생활의 터전을 만들어 주었기에 오늘 이렇게 입을 크게 벌리고 하늘을 향해 웃음을 날릴수 있는것 아니겠는가? 재치 있게 늙은(?)아저씨들도 맛장구를 잘 쳐준다. 그모습도 보기 좋았다. 아직 한창 사회생활을 할때에, 모든것 접고, 낯선땅에 좀더 낳은 보금자리를 틀기위해 가방하나와 어린새끼를, 어떤 부부는 신혼생활의 단맛이 채 끝나기도전에, 두려움을 안은채 태평양을 건너와서, 때로는 전공도 살리지 못한채 막노동꾼으로 비행기 트랩을 내린 첫날부터 생활전선에 뛰어 들어, 호구지책을 하면서, 낯선 땅에서 그얼마나 많은 삶의 시행착오를 범하고, 후회하고, 아내들 모르게 사나이의 눈물을 흘렸었던가. 때로는 하늘같다고 하던 남편들이 방황 할때면, 하나님을 의지 하면서 묵묵히 곁에서 기둥처럼 버티고 서서 보금자리를 지켜준 아내에게 감사하고, 고맙다는, 그러면서도, 그흔해 빠진 '사랑한다'라는 말한마디 해줄줄 모르는 인색(?)한 남편들로 지내왔었던 그들이 지금 이렇게 아내들을 모시고 와서 같이 라운딩하고, 즐겨 한다는것이, 당연한 결과 일수도 있겠지만, 꿈만 같다는 착각도 들곤 한다. 캐나다로의 이민 선택을 잘하였다는 자부심이 이런때일수록 더 확실하게 생기는것 같다. 이곳 큐바에서 현지인들의 고닮으고 어려운 삶을 보아 왔기에, 더 값지게 느껴진다.
나의 경우에는 골프는, 이상하리만치, 여름에 토론토에서 즐기면서 발휘했던 그런 묘기가 전연 나타나지 않고, 마냥 골프 초보자처럼 땅만 파고, 그반사력으로 오른쪽 허리쪽이 Pain이 깊어지고..... 아무튼 골프 감각이 전연 있어 보이지 않게 매일 그렇게 보냈는데, 그래도 같이 라운딩한 일행들이 팀웍이 잘되 즐겁기만 했다. 같이 라운딩한 일행들이 오히려 나에게 웬일이냐고 반문하기까지 하는 해프닝이 있기도 했다.
마지막날 몇홀에서 겨우 내원래의 Pace를 찾을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 골프클럽을 접어야 할 시간이 임박 하다니..... 아쉽다.
그래도 우리 남편들은 즐겁고, 입이 쉬지를 않는다. 골프장에서 호텔까지의 직선 거리는 걸어서 약 10분 안될 지척지간이나, 돌아가야 하기에 택시를 5패소지불하고 이용하곤 했었다. 골프장 울타리를 빙 돌아 호텔로 가는 것이다. 며칠간의 라운딩이 끝난후 카트를 관리하던, 키큰 'E'가 자기가 우리 일행을 자기네 8인용 카트로 호텔까지 태워다 주겠다고 제의했다. 대신에 프로샾앞에 주차되여 있는 카트를 각자가 한대씩 끌고, 충전소가 있는곳까지 운전해 달란다. 그것은 어려운 제의가 아니었다. 왜일까?하고 생각해 보니, 그날은 우리 일행이 36홀을 끝낸뒤라 해가 서산에 뉘엿뉘엿 할때였기에, 날은 저물고, 카트는 밤새 충전 시켜야 하는데 그도 급했던 모양이었다. 충전소에 도착하니, 8인승 카트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골프장 울타리를 따라 한참 달려,호텔로 들어가는 골목길목의 큰길에 도착하여 우리는 내렸다. 아뿔사 골프장 울타리에 우리가 나갈 문이 없어 으아해 하고 있을때, 우리를 태우고온 드라이버가 성큼 성큼 울타리로 다가서더니, 울타리의 체인링크를 얽어맨 철사 줄기를 손으로 풀어내고 개구멍을 만들더니 우리일행보고 빠져 나가랜다. 어이없기도 하고 우습기도하고, 또 기억에 남을 추억을 만들어내는 순간을 연출하는것 같기도 해서 재미가 있었다. "와... 정말로 큐바 골프장에서만 생길수 있는 최초이자 역사를 만드는 순간" 이라고 모두가 좋아들 했다. 불행하게도 그순간을 포착할 카메라를 휴대 못한게 아쉽기만 했다. 우연히 다음날 또 같은 일이 있어 이번에는 두 부부만 또 카트를 타고 울타리의 개구멍을 통해 호텔에 가게 되였다. 이번에는 휴대해간 카메라를 이용, 순간을 포착하고, Movie도 촬영했다. 여행은 항상 의외의 사건이 있게 마련인데, 이런경우가 바로 거기에 해당되는게 아니겠는가. 파 3인 8번홀, 파 4인 18번 홀은 바닷가에 가까운 언덕위에 있는데, 거기서 동쪽으로 바라보는 바닷가는 무척이나 아름답다. 출렁이는 물결에 볼을 날리면, 항상 있게 마련인 바람때문에 그린에 올려 놓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멀리 보이는 바닷물은 파랗다 못해 검게 보이고, 해안가의 바닷물은 옅은 Light Blue색갈로 확연히 구분이 된다. 티박스에 올라서서 클럽을 잡고, 볼을 때리려고 스탠스를 잡을 때는 '이번에는 꼭 그린에 올려 놓아야 한다' 라고 마음속에 다짐을 하면서 휘둘러 보지만, 결과는 위에서 말한것 처럼 항상 불만으로 끝난다. 내가 잘못 날린 원인은 뒤로 한채, 다른 곳으로 날아가 버리는 볼을 멍히 쳐다 보면서 혀를 찰 뿐이다.
불경기의 영향이 이곳 휴양지에도 심하게 불어대는것을 눈으로, 골프장에서 확인된다. 아침나절에는 상당수의 한인들이 골프장에 북적 거리지만, 그시간 이후에는 별로 눈에 띄는 골퍼들이 많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36홀을 라운딩 하는데는 더 도움이 되는것 같다. 좋은쪽이 있으면, 그반대쪽도 상대급부적으로 꼭 있게 마련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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