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October 02, 2019

Killarney Camping과 French River Provincial Park 탐방 - 역사적으로 뜻이 깊은 곳. 또 다시 올기회가 있을까?



 7월22일(월요일), Camping 짐싸고 되돌아오는길에 French River Provincial Park 탐방, 역사적 고찰(5일째, 마지막날)

며칠사이 우리부부의 보급자리 역활을 해주었던, Killarney Provincial Park과 아듀인사를 해야만 했다. 새벽같이 일어나 부산을 떨어, Tent를 접고,  Picnic Table 위로 지붕 역활을 했던,Tarp을 걷어내고, 하나씩 정리해서 차에 다 싣고, 아침 9시전에 핸들을 잡았다.  앞으로 다시 이곳에 오게 된다는 기약이 없으니 정문을 빠져 나올때, 느끼는 감정이 묘하다. 그래도 세월은 무심히 흘러갈것이다. 오던지 말던지....
French River를 오래전에 들렸을때의 푸른강물을 봤던 기억이 떠올라, 집에 오늘길에, Goolge의 Navigation을 이용하여 French River Provincial Park에 들려 보기로하고 차를 몰았다. Killarney Park에서 약 1시20여분 걸리는것으로, Route를 잘 보여 주어, 쉽게 찾을수 있었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지금은 Provincial Park으로 지정되여 관리를 하고 있었으나, Park 관리를 하기위한 직원들은 없었고, 주차장에 Parking하고 안내판에 새겨진 경로를 따라 안쪽으로 걸어 가니, 첫번째 보이는게 옛날 원주민들이 살았던 Cone모양의 Replica 천막집이 눈에 들어왔다.
외형만 덩그러니 있었고, 안에는 Fire place로 보이는, 돌무더기가 그옛날의 생활상을 초라히 보여준다. 그나마 건설해 놓은것이 최근인것 같다. 지붕을 덮은 천이 새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아직 Provincial Park의 모양새를 갖추기에는 시간이 걸릴것으로 추측되기도 했었다. 주차장에는 주차된 차들만 있었고, Register 또는 Camper나 Day user들에게 Fee를 징수하는곳도 없었다. 나는 Pass를 구입했기 때문에 어차피 Fee 내는것은 면제지만....


이곳 French River는 "서쪽으로 통하는 카누뱃길"이라고 설명을 시작하는데, Ottawa, Mattawa강들과 Nipissing 호수를 연결하여, 더 북쪽에 있는 커다란 호수들과 그리고 더 멀리 서쪽까지 이어져, St Lawrence를 중심으로 초기 정착민들이 삶의 터전을 잡게 한곳이었다. 캐나다의 초기 탐험가들, 선교사들 그리고 모피장사꾼들이 17세기에서 19세기를 통하여 활동하면서 이 수로를 이용했었던 것이다.  서부의 평원지대 초기 탐험의 Pioneer였던, La Verendrye, Mexico북쪽의 땅까지 내륙지방을 탐험하여 태평양까지 도달했었던 첫번째 유럽인, Mackenzie, 그리고 위대한 탐험가이면서 최초의 지도를 만들었던 Thompson 등등의 초기 탐험가들이 이곳을 이용했었다는 설명문이 당시의 어려웠을 상황 을 상상하게 해준다.

캐나다에서는 유명한 오늘날의 Hudson Bay Department에 대한 역사를 간략히 설명해 놓은 내용을 여기에 옮겨 봤다.  Pierre-Esprit Radisson가의 초기탐험에 대한 설명서는, 이들이 불법으로 탐험을 시작했다는것으로 시작된다.  1659년에 Pierr Radisson과 그의 처남, Medard Chouart Des Groseilliers는 Superior호수의 북쪽을 탐험하면서 모피 장사를 하기위해 불법으로 Montreal을 출발한다. 그들은 Hudson Bay지역으 로 부터 모피가 풍성함을 알고 사업구상을 하게된다. 프랜치 정부로 부터 협조받기에 실패한 그들은 영국쪽으로 선을 댄다. 1670년경에 그들은 Hudson Bay 회사를 설립하는 획기적인 결과를 획득하게 된다.  그로부터 약 20여년동안 Radisson은 예상치도 않게 Hudson Bay를 운영하면서 불란서와 영국의 보조를 받으면서, 캐나다와 중남미까지 세를 확장한다.  1687년에 그는 영국인으로 귀화하여 그의 남은 생애를 런던에서 보내게 된다.

방향표시를 따라 더 깊숙히 걸어서 French River를 보기위해 전진했다.  아뿔사 앞에 보이는것은 French River Visiting Centre가 있고, 그곳에는 박물관 까지 아주 훌륭하게 잘 꾸며져 있는게 아닌가? 전에 방문했을때는 상상도 못했던 새로운 명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다른 탐방객들도, 방학을 맞은 어린 학생들과 함께 상당수가 이미 박물관안에서 구경하고 있었다.

인생선배들의 정착기에 상상해 볼수 있는 각종 자료들이 풍부하게 진열되여 있었다.  각종 동물들과 파충류,  한 Section을 지나칠때마다 자동적으로 Audio System을 통해 설명이 흘러 나와 이해 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어린 학생들에게는 아주 안성맞춤의 야외실습장 같은 느낌이 든다.


French River의 아름다운 경치를 배경으로 한 벽화도 일품이었다.
박물관의 입구쪽에는 Museum Usher 이 근무하고 있었고 Counter위의 조그만 안내판에는 박물관을 구경하는데 Fee을 내도록 표시하고 있었으나, 실질적으로는 징수하지 않는다는것을 알았다. Senior Rate 적용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냥 구경하라고 설명까지 해주어,아직은 무료입장으로 일종의 Promotion기간인것으로 이해됐다.  각종 Souvenir 들도 진열되여 탐방객들에게 팔고 있었다.

Museum안의 시설은 최신 형으로 잘 갖추어져 있음을 구경하면서 새삼 느낄수 있었다. Lunar가 벽화를 카메라에 저장 하느라 바쁘게 움직인다.
초기의 모피상들이 어떻게 모피 장사를 했는가에 대한 설명을 하기위해 모피와 모피용 동물들을 노획하는데 사용됐었던 것으로 이해되는 Trap 또는 Net들이 시선을 모은다.


"옛날에는 물물교환하는것, 또  친분관계를 맺음으로써, 원주민들과 불란서사람들이 교역을 하면서 관계가 돈독해지자, 의외로 서로간의 기술과 아이디어를 서로 나누는 반사이익을 얻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었다. 이러한 협조와 아량은 그들이 서로같이 어울려 살면서 함께 일도하고 도우면서 캐나다의 정신을 개발하는 초석이 된것이다."라는 설명문이 눈길을 끈다.


"벌목은 French River 지역의 산업에서 매우 중요한 업종이었었다.  French River마을, 재제소 업들이 매우 발달하여 1875년경에는 French River 델타지역이 최고조의 산업이 발달하게된다.
1922년경에는 그동안 번성했던 산업이 쇠퇴하면서 타운쉽이 페허가 됐는데, 당시의 페허의 흔적들을 오늘날에도 볼수있다."라는 설명이 당시의 흥망성쇠를 보는것 같다.



동양적인 정서에서는 뱀은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흉물로 취급되지만, 이곳 서양에서는 생명체로서의 존중을 받는다.  Lunar가 가리키고 있는 뱀은 Garden Snake로, 이곳 사람들은 오히려 이것들이 집뜰에 나타날때는, 그냥 보기만 한다. 이뱀들이 텃밭에서 기르는 채소류에 붙어있는 여러 벌레들을 잡아먹는 이로운 일을 하기때문이란다.





웅장한 바위넘어로는 French River의 잔잔한 물줄기가 갈길을 찾아 흘러가고있다.








또 다른 설명문이 French River의 다른면을 보여준다.
프랜치리버는 Nipissing 호수로 부터 Georgian Bay까지 약 110 Km의 항해를 한다.  이강물은 빙하시대전부터 이곳을 통해 흘러갔었고, 빙하가 녹아 흘러가면서 지면이 바위로 뒤덮히게 하는 자연경관을 만들어 냈다.  이물이 Georgian Bay로 흘러가면서 French River는 아직 발길이 닿지않은 황무지같은 여러 Bay들과, 해협 그리고 심한 파도를 발생하면서 지표면의 암반을 마치 조각해 놓은것 처럼 특히하게 만들었다.  지질학자들은 생각하기를, 이러한 형상은 엄청난 홍수가 지나가면서 자 연적으로 발생하지 않았나 라는 쪽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한다.

위로는 Sudbury, 서쪽으로는 Manitoulin Island, 남쪽으로는 Collingwood, 그리고 동쪽으로는 French River로 이어지는  한바퀴 자동차 여행을 할수 있는 최적으로 코스로 알려져있는 코스를 자세히 밝혀주고 있다. 나의 경우는 이코스만을 택해서 Driving하지는 않았지만, Agawa Canyon을 탐방할때, Manitoulin Island를 탐방할때, 또 이번에 Killarney Park에서 Camping하면서 다 지나갔던 길들이어서 더 정겨웠다.
French River를 가로지르는 특이한 모양의 철재 Bridge는 2005년도에 겨울철에 Snowmobile을 즐겨타는 동호인들이 헌금하여 세 웠다고 한다.  Snowmobiler 들을 위한, 지구상에서 가장 규모가 큰 다리로 길이가 512피트, 넓이가 12피트, 높이가 90피트이다.  중형의  Grooming Machine이 통과할수 있고,동시에 100개 이상의 Snowmobile이 통과할수 있도록 설계되여있다.
이다리는 French River의 새로운 명물로 많은 탐방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것으로 보였다.



전에는 강언덕에서 강물이 흐르는것을 봤었는데, 이제는 강한가운데서 여유있게 주위경관을 음미할수 있게 되여, 앞으로  더 많은 탐방객들이 이곳을 찾을것은 확실한것 같다.



끈질기 나무의 생명력은 그무엇과도 비교할수 없을것 같다. 어떻게 바위속에 뿌리를 내리고 태연하게 삶을 영위할까?


옛날 선조들의 초기 정착지와 그들이 이지역을 중심으로 왕래 했었던 통로를 한장의 지도에 간단히 표시했다. 오늘 우리는 쉽게 탐구하지만, 당시의 선배들은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동안에 이지역들을 누 비면서 삶의 터전을 닦았을 것이다.  그분들 덕택에 오늘 우리는 한눈에 간단히 모든것을 파악하면서 감상한다.



위에서도 잠깐 언급 했었지만,이 Bridge는 겨울철 Sports중 하나인 country skier들이 주로 이용하게되는 아주 요긴하게 사용되는 다리라고 한다.  여름시즌중에는 탐방객들이 더 깊이 전진하여 산세를 즐기면서 Trekking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허리역활을 하고 있었다.  전에는 이곳을 방문 한다는것은, 강을 건널수 없어, 멀리 사진 한장 찍는것으로 만족했어야 했다.






금강산을 직접 가보지는 못했다.  아마도 이러한 비경들이 금강산에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기암절벽, 유유히 흐르는 강물줄기, 기암절벽바위에 딱 붙어서 살아가는 힘찬 나무들, 이모두가 우리 인간들에게 끈기란 무엇인가를 잘 보여주는, 산교육장을 보여주는것 같았다.
벌써, 집으로 발길을 돌려야 할 시간이 됐다는것을 알 았을때는 오후 3시가 넘어서였다. 거의 4시간  이상을 French River의 비경속을 헤맨 것이다.
이런 멋진  Wilderness를 탐방하는맛에 또 Camping을 떠날수 밖에 없을것 같다. 감사.



 7월 21일, La Cloche Silhouette Trail 탐방, Birds Specialists, Ailya와 동료들과 대담



Supper는, 막내부부가 남겨놓고간 "감자 수제비"로 성찬을 Lunar가 정성들여 만들었다.  처음 먹어보는 감자수제비, 밀가루대신에 감자가루를 만들었다고 한다.  맛이 일품이다. 곁들인 야생마늘 김치가 맛을 더해주었다.



호수의 윗쪽으로 연결되여 있는 Trail에서 내려다 보는 George Lake의 주위 경치는 어디를 봐도 몇자의 글로 그아름다움과 위용을 표현해 내기에는 인간들의 표현방법이 너무나 부족하다고 한탄할 핑계밖에 더이상 생각이 나지 않는다.










중간 지점에서 Park Ranger 두명을 만났다.  이들은 대학생들로 이곳에서  Summer Job를 하고 있는, 젊은이들이었다. 그들은 지나치는 Trekker들을 상대로 야생조류들에 대한 서식처, 생활습관, 맹금류 등등에 대한 상식을 전해주는 일을 하고 있었다.  Ailya와 또 다른 동료는 우리가 여러 질문을 던지자 무료하게 그들의 고객을 기다리다(?) 신이 나서 쉴새없이 설명을 해주었다. 위사진의 오른쪽 새의 부리는 어린 독수리의 박제한 것이라고 설명해 준다.


이들 수영하는 젊은 친구들을 보면서, 수영복을 준비해 오지 못한것을 무척 후회했었다.
그래도 나와 Lunar는 Trekking을 하고 있다는 자긍심으로 준비의 부족함을 위로했다.

이곳 공원에는 Trail routes가 참으로 많다는것을 자료를 통해 알게됐다. 그중에서 몇개를 골라 걸을 생각으로 자세히 들여다 봤는데, 엄청나게 많다. Granite Ridge trail(2.3Km), Chikanishing Trail(2.7Km), Cranberry Bog Trail(4 Km), The Crack(6Km), Little Superior/Proulx Lake trail(12 Km), East La Cloche Trail(10Km), West La Cloche Trail(21Km), Freeland Trail(12.4Km), Chikanishing Trail-이곳은 Main office에서 부터 시작하여 Main camp ground Hill을 지나 왼쪽으로 꺽어 Trout Creek을 거쳐 Hwy637을 건너 Chikanishing Access Road를 따라 합류하는 코스 (6.5Km), Collins Inlet Trail(14.3Km),





Trail 시작점으로 부터 가까운 곳의 George Lake 끝쪽에 Board Walk처럼 설치된  Bridge가 Trekker들의 발길을 편하게 도와주고 있었다.








Trail route는 전부 빨간 Rock위를 걷는 Circle형으로 된 한바퀴 도는 코스로 주위 경관이 그렇게 경이로울수가 없었다. 특히  가을철 단풍시즌에는,Thanks Giving days전후로는 절정을 이룬다고 설명해 줬던, Park Ranger, Mr. Marc와 Jesse의 얼굴이 눈에 선하다.  그들은 지금쯤 열심히 80 km정도되는 Circled Trail을 열심히 Trekking하고 있을 것이다. Camp ground에서 시작하여 Lumsden L - Threenarrow L -Little Mountain L - David L - Ruth Roy L- Killarney L - Free Land L - George L - Camp ground.




"La Cloche Silhouette"Trail로  명명된 사유가 있있다.  많은 Canadian들이 알고 있는 유명한 Group of Seven 화가구룹멤버중의 한명인, Franklin Carmichael(1890-1945)이 주변의 Scenic View를 화폭에 담아 그린 Painting의 제목이 "La Cloche Silhouette"였는데, 이를 기념하기위해 Trail에 그이름을이 부쳐졌었다는 설명이다.




걸어서 오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릴것 같아 차를 타고 왔는데, 빈자리 겨우 하나 발견하여 운좋게 Parking할수 있었다.


Scenic view가 Killarney Park에서 최고로 멋지게 볼수있는 Camp site 77옆으로 이어진 Trail을 따라 절벽끝자락의 바위에서 바라본 풍경들이다.  이곳에서 다시 George Lake의 이어진 Trail은, 우리는 잘 알지 못했었으나, 그 코스를 지나던 동료 Camper들이 Suggest 해줘서 걸었는데....숨은 비경을 보는 느낌이었다.  완전히 처음와서 보는 느낌으로 환상적이었다.


오후에는 다시 또 다른 La Cloche Silhouette Trail route를 걷기위해 Camp site 8번쪽으로 길을 나섰다.


마침 Canoeing을 할려고 Beach Parking에서 물속으로 끌어내리고 있는 젊은이와 만났다. 그녀는 이곳에 Canoeing하러 거의 매년 찾아오는 곳이라고 설명하면서, George Lake가 지금까지 Canoeing해본중에서 가장 즐기는 곳이라고 설명까지 해주었다고, Lunar가 나중에 얘기해주었다.






Trail Route 표시가 파란색 Heart모양으로 Trekker들의 방향을 Guarding하고 있었다. Lunar가 표지판의 의미를 관찰하면서 Route를 살피고 있는중이다. 이길을 따라 위로 올라가기도 또 내려가기도 해봤다.  그저께 온 대원들과 함께 왔었던 그 물가에 당도하면서, 이렇게 Trail이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됐다.

20년전에 이곳에서 Lunar와 함께 추억을 만들었던곳으로 보이는곳을 찾았다.  바위는 분명 맞는것 같은데, 정확히 어느지점에서 이런 둘만의 모습을 만들었는지는 확실치는 않았으나, 내 스스로 놀란것은 풋풋한 싱그러움을 내품고 있었던 그때의 나와 Lunar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지금은 TTC를 어쩌다 이용하게 될때, 젊은이들이 좌석을 양보하면서 앉으시라는 별로 희망이 없어 보이는 Senior로 변한 그모습에, 다시한번 세월의 무상함을 애닲아 해본다.



어제 토론토로 떠난 대원, 오빠댁에서 구입할려고 지난 5월달에 Order했다고 들었던것과 같은 형태의 모습의 Tent가 눈에 들어왔다. 아마도 어젯밤에 도착했었나 보다. 마치 2층집을 연상할 정도로, SUV차 지붕에 아담하게 설치되여, 난생 처음보는 텐트 구경을 했다. 젊은이들에게는 인기있을 것으로 생각되기도 하는 한편, Senior들에게는 사닥다리 타고 오르 내리는 번거로움이 Burden으로 둔갑하지 않을까?라는 염려가 동시에 머리를 스치고 지나친다.  불과 30여미터 윗쪽으로 떨어져있는 Camp site에서 본것이다.



놀랐다기 보다는 귀여워 이들가족을 더 놀라지 않게 움직이지 않고 자세히 살펴봤다. 엄마로 보이는 큰 Racoon과 새끼들로 보이는 4마리의 귀염둥이로 이해됐다. 다행이도 이들 Baby들은 내가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수 있도록 포즈까지 취해(?)주는게 아닌가?  아마도 이들 가족들은 나 말고, 다른  Camper들과도 많은 Encounter를 한것으로 이해됐다.

조용한 이른 아침부터 밖이 소란(?)했다.  혹시 그친구들이 나타난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어젯밤 우리를 지켜주었던 Tent의 문을 열고 아직 균형(?)이 덜 잡힌 몸이 넘어질세라 안간힘을 쓰면서 한발짝을 옮기면서 눈에 보인, 소리의 주인공들은 바로 달가워 하지 않은 이곳의 터줏대감(?), Racoon 한가족들임을 금새 알수 있었다.






 7월 20일, Chikanishing Trail Walk과, 20년전 방문했던, Killarney Village 재탐방.(셋째날)


갑자기 북적대던 Camp site가 절간처럼 조용해짐을, 같이왔었던 대원, 오빠 부부와 장손 부부가 짐꾸려 토론토로 간뒤였다. 그들은 원래 계획데로 일정을 마치고 되돌아 갔고, 우리 부부는 2 nights더 연장할수있는 Permit을 받아, 규모를 축소하여 간편하게 정리하면서, 같이 있었던 사람들의 들고 나감이 이렇게 impact를 주는것을 많이 느꼈다.  지금쯤 떠난 대원들은 Hwy400를 달리고 있을 것이다.
오늘도 여전히 날씨는 덮다. 한국에서 느끼는 거리감각으로 본다면 부산에서 서울까지 고속도로를 달리는 북쪽이라서 기후의 차이가 있었던 기억이 있어서, 두툼한 Jacket까지 준비해 왔었는데....지구의 온난화 현상의 영향인것을 어렴푸시나마 느낄수 있는, 덮고 후덮지근한 날씨에 몸놀림이 느슨해진다.
먼저 떠난 대원 누구였는지는 기억안나지만, 가느다란 노란 야생화 한줄기를 냉커피잔에 꽂아놓고 간 그손길을 생각해 보면서, 여유를 느끼게 해준 그마음에 먼저 떠난 대원들의 면면을 생각해 본다.
Killarney Provincial Park을 떠나 20년전에 묶었던 Village안의 남쪽끝에 있는 Lodge와 그주변을 돌아보기위해 차를 몰았다.  불과 15분 정도의 거리로, 북서쪽으로는 Killarney Bay와 동남쪽으로는 Georgian Bay 사이에 반도처럼 돌출해 있는 그끝자락에 Killarney Village가 자리하고 있다.  그사이 이조그만 Village는 얼마나 변화를 가져왔을까? 기대를 하면서....


Lodge는 많이 변화를 주었던것 같다.  Lunar가 서있는 뒷쪽의 8각형 지붕은 Convention Centre이자 Leisure room으로 활용됐는데 그대로 있어 보였다.  20년전 어느날 저녁에 많은 투숙객들이 Group Dancing를 하는 장면을 봤었다.  밖은 가로등으로 역시 밝았는데, 같이 있던  친구부부 Mr. Mrs양이 안에서 흘러나오는 멜로디에 마추어 즉석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분들의 춤실력을 그곳에서 처음 봤는데, 안에서 춤추던 투숙객들이 오죽했으면, 춤을 멈추고 이들 부부의 유연하게 돌아가는 춤솜씨에 흠뻑 빠져, 주객전도가 됐던 그순간들이 오늘 다시 떠오른다.



Marina에는 수상 비행기들과 Boat들이 정박해 있었고, 가게들은 여행객들로 북적이고...석양의 노을을 여유있게 감상할수 있도록 배려의 차원에서 Mooring Dock에 빨간색 의자를 비치해 놓은 포구사람들의 깊은 생각으로 느껴진다.

우리가 묶었던 Lodge 뒷쪽의 바위에 올라 멀리 끝없이 보이는 Georgian Bay 를 향해 주변을 응시해 봤다.
그때 처럼 Lodge에서 하룻밤  묶으면서 당시를 회상해 보고 싶은 마음이 조금은 일어난다.  Lodge와 downtown을 연결해주는 Board Walk이 강위를 가로지르는 다리처럼 설치돼있어, 이용객들의 편리를 위해 애쓴 흔적이 보였다. 그때는 오른쪽으로 펼쳐져 있는 도로를 타고 Lodge까지 들어와 주차하곤 했었는데...  많은 관광객들과 조우하기도 했다.


북미 대륙, 특히 북쪽 지방의 도시 형성의 역사를 탐구해 보면, 대부분의 초기 정착민들의 생업은 모피장사꾼들이 중심이 되여, 왕래하면서 자연적으로 사람들의 왕래를 일으킨 중심지 역활을 한데서 비롯된것을 알게된다.

Killarney Village와 Provincial Park에 대한 역사를 잠시 살펴 보면서 당시의 인생 선배들의 노고에 감사함을 표하지 않을수 없을것 같았다.  이곳은 1820년 6월에 Etienne Augustin Rochbert de la Morandiere씨가 이곳의 원주민 부인 Josephte Aai sai go no kwe가 모피장사( Fur Trade Post)를 하기위해 이곳에 정착하면서 Village가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Killarney village는 당시에는 Shebahonaning(안전한 통로)알려지면서, 이지역을 지나는 뱃꾼들, Georgian Bay를 중심으로 이곳을 왕래하는 교통의 중심지로 많은 여행객들, 모피상들,정부관료들, 사업가들,측량사들, 정착민들 그리고 선교사들이 북적이게 된다.
1836년에 Georgian Bay에 처음 정박하게되는 증기선의 이름은 Penetanguishene호로 해상운송의 시효가 되며, 1963년에 Killarney 고속도로의 건설이 완성되면서 해상운송의 역활은 막을 내린다.
오늘날의 Village는 다양한 써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조그만 비행장도 있고, Liquor와 Beer 가게, 선물가게,Kayak과 Boat Rentals, 여행객휴양지, 식당들, 그로서리 가게, BnB숙소, 항구,Camp Sites, 세탁소, 보건소, 우편국, 박물관은 물론 금융기관(Credit union)들이 여행객들의 편리를 돕고 있다.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에도 Village의 편의 시설들은 대개 다 영업을 한다고한다. Killarney Provincial Park이 년중 문을 열고 방문객들을 맞이 하듯이....

그로서리 가게에 잠시 들려봤다. Camp Fire시 필요한 Gas lighter한개의 값이 무려 $7.99 plus tax로 굉장히 비쌌다. 토론토 지역에서는 $1.99 또는 2.99면 구입할수 있는것들인데.... 운송비용이 많아서 라고 하기에는 좀 선뜻 이해가 안된다.


Village 재탐방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나와 Lunar는 Chikanishing Trail Route를 걸었다.  이 Trail은 Park 정문을 나와 조금 Village쪽으로 차를 달리다 보면, 길건너편에 커다란 Trail 표시판과 마주친다.

이번 Camping중에 처음으로 도면에 표시된 Trail을 걷게되는 셈이다. 전체 구간은 약 3 km쯤 되는데, 걷게되는 입구에서 부터 Route전체가 붉으스레한 바위로 형성되여 있어 또 다른 운치를 느꼈지만, 비가 내리거나 눈이 쌓였을때는 Slippery해서, 또 다른 위험요소가 다분 할것 같다는 노파심이 든다. 오늘은 걷기에 최적의 조건으로 우리를 반기고 있는 느낌이었다. Volunteer들이 표시 tag를 잘 부착해 두어 고마웠다.



George Lake의 물결을 따라 Canoe를 타고 Rowing하는 젊은이들이 싱그럽다.   하고만 싶다면 rental해서 즐길수 있지만, 살아온 환경이  그러한 경험을 맛볼 기회를 만들지 못하고 살아온 지금, 저들의 Canoe leisure sport를 보는것만으로도 대리만족을 느낄수 있었다. 그들이 물놀이를 즐기듯이 우리 부부는 그위에서 Trekking을 하면서 더 넓은  Scenic view를 즐기고 있지 않은가.   Silhouettee으로 보이는, 붉은 바위에 단단히 서있는 Lunar의 백만불짜리의 탐색하는 모습이 오래 기억속에 남아 있을것 같다. 그녀는 어떤 Scenic view를 카메라에 담고 있었을까?

이번 Camping 여행중 가장 아쉽게 느꼈던점은, 머나먼 북쪽으로 북상한다는 생각에서 수영할수 있는 기회를 잡는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Preoccupation 때문에 수영복 지참을 안한것이었다. 이렇게 나의 예측과는 다르게 덮고 후덥지근 할것이라는 것을 예측했었다면, 큐바 여행시 항상 준비해갔었던 그수영복을 짐보따리속에 넣었을텐데.... 이순간 George Lake를 내려다 보면서 호수속으로 뛰어들고 싶은 유혹이 나를 번민하게 했다. 주위에 Trekker들이나 Rowing하는 배들이 없었다면, 나와 Lunar단둘이만 있었다면 뛰어내려 맑은 호수물맛을 흠양 했을 것이다. 녹슬은 수영실력도 실험해 보면서....

Landscaper들이 정원에 있는 정원수들의 모양을 보기좋게 잡아주어 잘자란 나무를 보는것 같은, 2 stage 모습의 Spruce가 눈길을 끈다.
수천년 아마도 수만년 동안 빗물에 깍여서 만들어진 수로였을까? 금새라도 맑은 물줄기가 이바위에 난 통로를 통해 흘러내릴것 같은 착각이 들정도로 정교하게 다듬어진 바위가  살아움직인다, 그렇게 보였다.
Trekking을 마치고 Chikanishing Trail의 Parking장을 빠져 나오는 갓길에 마치 나무처럼 자라고 있는 고사리숲을 보면서 한컷했다. 이른 봄철에 이곳에 왔었더라면 겨울밥상이 더 많이 풍부해질수 있었겠다라는 상상을 해봤다. 인간의 손이 닿지 않았기에 이렇게 무성하게 위용을 뽐내리는 것이겠지...


 7월 19일, 2일째 캠핑, 2일먼저온 Young부부도, George Lake 산책


Sunrise가 무척 일찍인것 같이 느껴진다. 북쪽이라서 그런가? 모두가 아침 5시경에 기상해서 Camp fire하고, 그참에 이번 Camping의 마스코트(?)인 푸들까지 정위치 하면서 숲속의 푸른 아침의 맛을 흠향하고 있다.




이런 여유로운, 세상에서 제일 편한 자세가 지금 대원들이 즐기고 있는 순간이다. 현실의 삶에서도 이런 시간들이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편리하고 환경이 좋은 최상의 보금자리(?)를 뒤로하고 자연속으로 들어와 모기와 싸우면서 신체적으로는 불편한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마음만은 천국이 부럽지 않은 이순간을 느끼기위해 짐싸서 달려온것 아닐까?
라면의 이름이 좀 특히하다. "남자". 어떤 맛일까?  준비해온 대원들의 음식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다양하다. 혹시나 하고 라면 먹을수 있을까? 기다렸는데, 대원중 한명이 야외용 그릇으로 사용하기위해 가져온 그릇이라는말에, 그런 기발한 아이디어가 .....
막내, Chris부부가 Killarney Village의 호텔에서 하룻밤 무사히 지내고 지금 막 다시 Camp site에 합류하는 순간.  막내가 어제 장거리 운전하고 오면서, 긴장을 많이 했던 탓이었는지, Stomach ache가 계속되여, 대원들이 비상용으로 구비해온 각종 소화제등을 복용했었으나, 그래도 편치않아, 편한 호텔에서 하룻밤 푹쉬고 오라는 대원들의 suggestion에 Village로 가서 푹쉬고 좋아진 상태로 합류한것이다. 대원들의 기도가 약발이 들었었는지, 거의 완쾌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먼저 알려줬다.  갑자기 대원들 사이에 활기가 도는것 같다.
"중이 제머리 못깍는다"라는 옛말이 꼭 맞는것 같다.  막내는 Head Nurse로 근무하고 있는 현역병이다.  좀 아리러니 하지 않나?
Camping에서 먹는 고구마는 또 다른맛을 느꼈다.껍질채로 먹는 그맛이 더 좋은것을 새삼 느꼈다. 앞으로는 Peel off할려고 헛고생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공용 주차장에 세워둔 내차와 Chris의 차가 무사히 위용을 보여주어 마음이 편하다.

풍부한 아침음식은 모두의 기분을 풍만하게 만들어 주었다. 먹음직 스러운 Dish가 유난히 돋보인다.  새댁이 은박지에 싸서 준비해온 고구마의 익는 냄새가 맛을 더해준다.  항상 오늘을 즐겁게 해주시는 윗분에게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감사.




대원들의 협조가 이렇게 풍성한 식탁을 창조해 냈다. 같은 먹거리인데도 캠핑에서 먹는 그맛은 경험자들만이 느낄수 있는 풍부함이 그속에 깊이 배어있다.


대원들 모두가 George Lake까지 산책을 해봤다.  Georgian Bay에서 깊숙히 떨어져 있는 George Lake의 주변의 산새가 그렇게 경이로울수 없었다. 흰색과 붉은색의 바위와 사철 푸른 Pine Tree들과 서로 어울려 풍광이 저절로 감탄사로 변해 입을 통해 나온다.




George Lake의 물결은 잔잔해서 Kayak,  Canoe꾼들에게는 최상의 좋은 장소같다.


앞에 보이는 바위를 배경으로 오랜옛날, Group of seven painter들이 그들의 혼을 도화지에 쏟아 부었을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밀려온다.
여성 대원들이 멀리 바라보면서, 그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Camping 보다는 지나온 세월의 덧없음을 이호수에서 뿜어 내고 있는 것일까? 20년전에 왔을때는 오늘같은 감정은 없었고, 그저 마냥 환상적인 주위경관과 Killarney Channel의 경치에 정신을 온통 빼앗긴 상태였었다.
정신적으로는 많이 성숙됐지만, 성숙돼기까지의 긴시간동안에 겪은 인고의 세월을 탓할수밖에, 다른 방법이 있을지 묻고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이곳 Killarney Park의 Theme은, 내가 보기에는, Canoe타기, Kayak을 즐기는 젊은이들을 위한 Park인것 같다.  Camp Site를 중심으로 바로 옆에 있는 George Lake는 바위산으로 빙둘러있어, 파도가 거의 없고, 물이 증류수처럼 맑아, 이같은 Sports를 즐기는  젊은이들이 모여드는것 같다.  우리의 Camp site를 지나 Lake쪽으로 지나가는 차량들의 대부분이 차 roof에는 Canoe아니면 Kayak이 매달려 있음을 볼수있다.
물가를 따라 사람들이 드나들었던 Trail을 따라 대원들이 Exploring을 즐긴다.  Lunar가 그녀의 뒤로 보이는 Water Lily들을 자랑스럽게(?)보여주고있는 순간이다. 막 노랗게 피기시작한 Lily Buds들이 보일듯 말듯, 수줍은듯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이 꽃들이 만발할때는 온통 이곳은 보드라운 노란색으로 뒤덮혀 있을 것이다.




약간의 비가 내려, 더위를 식히는데 도움을 주기도 했지만,  그래도 식사하는데는 불청객으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잠시 옛날 그것도 60년 훨씬전에, 10명이 넘은 나의 형제들과 부모님 조부모님들이 함께 모여 보리밥 또는 시래기죽을 먹었던 그기억이 Overlap된다.  지나고 보면 배고파 어려웠었지만, 그때가 그리워지는 이유는 왜일까? 오늘 이시간 대원들과 어울려 그기분을 기억에서 꺼내 느껴 보지만, 음식의 맛은 너무도 싱그럽고 넘쳐난다.
Camp Fire 속에서 또 하루가 역사속으로 기울어진다.  그래서 세월이 무상하다고 하는가?

김정은 체제 붕괴 막는 5대 근로단체 최초 분석- "함박도"못지키는 현재의 군기강해이로는 ...

요즘은 쪽꾹이, 정경심 부부의  상상도 하기 어려울 대국민 사기극이 거의 두달넘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온통 뉴스미디아를 도배하느라, 북한 김정은 체재에 대한 뉴스는 뒷전으로 파묻히고 있는동안, 문재인  좌파사회주의 정부로서는 북괴의 호전적인 정전협정위반및 9.19평화협정위반에 대한 비난이 사라짐에 따라, 오히려 호재를 맞은 셈이다.

한국의 최북단에  위치해 있는 "함박도"라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섬은, 국방부의 허술한 관리 또는 좌파 정부의 묵인하에 북한영토로 귀속되여, 요즘은 북괴군의 군사요새로 변했다고 뉴스보도가 있어왔는데, 오늘뉴스에 의하면 '카카오'지도에서는 함박도가 아예 삭제돼 있다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Google Map에 의하면 선명하게 함박도의 위치가  남한의 영토로 표시되여 있고, 행정구역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서도면 함박도'로 표시되여 있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0/02/2019100202282.html

    인천광역시 강화군 서도면 함박도(Google Map)



국방부, 문화관광체육부,카카오측은 서로 핑퐁을 치면서 상대방에게 책임을 떠밀고있다. 이게 현재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Google에 요청해서 지웠더라면, 서로 핑퐁치는 책임회피는 없었을 거라고 생각된다. 이또한 요즘은 조국일가의 대국민 사기극에 덮혀서 백성들의 관심밖으로 밀려났다고 본다.  카카오가 자기네 마음데로 지도상의 영토를 바꾸는 형태는 절대로 용납해서는 안된다.  국방부역시 더 신빙성이 많은 Google Map을 이용했어야 했다. 구렁이 담넘듯해서 함박도를 김정은이가 점령했는데도, 민간인 뉴스미디아가 이를 발견하고 보도할때까지도 국방부는 깜깜이였는데, 그렇타면 거대한 혈세를 들려 60만 대군을 양성, 유지하는 근본 목적이 뭔가를 문재인 좌파사회주의 정부에 묻고싶다. 대답을 해야 한다.  군기강이 지금처럼 개판이고 해이해서, 백성들을 불안하게 한적이 없었다. 1960년대 중반에 전방에서 육군정량급식도 제대로 안돼던때에 국방의무를 할때에도 군기강은 최상이었었다. 자유배식으로 장병들의 병영생활이 좋아졌다는데, 기강은 옛날 장개석군대 이상으로 무너졌다니...

문재인 대통령의 업적(?)으로 여기는 9.19 평화협정은 전연 지켜지지 않고 있다는 국내 국외언론들이 성토하고 있지만, 문재인 정부는 평화협정이 잘이행되고 있다는 백성들을 현혹시키면서, 김정은 체제를 옹호하고 있다.  어제도 북괴는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대북제재유엔결의안"을 위반하면서, 동해상으로 발사했다.  이에 대한 좌파정부의 설명이 너무도 어이가 없다.
남한에 대한 무서운 협박인데도, 9.19협정사항 위반이 아니라는 해괴망측한 괘변을 늘어놓는 청와대와 국방부를 보면서, 이자들을 믿고 살아야 하는 백성들의 탄식은 하늘을 찌른다.

https://www.cnn.com/2019/10/02/asia/north-korea-missile-launch-intl-hnk/index.html

유엔의 대북한 경제봉쇄정책으로 곧 망할것 같은 북한이 망하기는 커녕 오히려 더 활발하게, 남한과 전세계를 향해 마치 조롱하듯이, 불법 미사일을 쏴대고 있다. 어제 발사한 대륙간 미사일은, 트럼프 대통령도 걱정을 하면서 주시했다고 하는데, 문재인 정부도 NSC전략회의를 개최했다고는 하나, 정확히 그내용도 파악못하고, 11월 말로 끝나는 GSOMIA를 통해 일본으로 부터 정보를 얻어, 미사일 발사를 확인하는, 초라한 정부의 모습을 보여줬다.

평양 출신의 소위 상류층 출신 탈북자들이 기자에게 공통적으로, 반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북한은 북한의 눈으로 봐야 한다.” 아사하면서도 수령과 노동당 만세를 부르고, 집에 불이 나면 뛰어들어가 김일성 3부자의 초상화를 꺼내오는 행동은 민주주의에서 살고 있는 이들의 시각으론 전혀 이해할 수 없다. 학문의 대상으로 봐도 마찬가지다. 주로 미국에서 연구된 정치·사회 이론의 틀로 북한을 분석해서는 제대로 된 예측으로 이어지기 힘들다는 얘기다.

요즘은 유엔재제로 어려움겪는것을, 김정은 집단은 뜸금없는 "5대근로단체"를 활성화 시켜, 그들이 체제를 유지하는데 심혈을 쏟게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래에 조선일보 뉴스를 옮겨놨다. 


북한은 언제 붕괴할까. 1994년 김일성 사망 이래 계속 제기되어온 질문이다. 고난의 행군, 김정일 사망, 황장엽 등 고위인사 탈북 등 북한 정권이 고비에 처했을 때마다 전 세계 북한 연구자들이 제기한 이 질문은 이젠 약간 바뀌었다. ‘북한은 과연 붕괴할까.’

최근 북·중 접경지대 등에서 북한 주민들을 접촉한 복수의 인사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북한 내부는 큰 흔들림이 없다. 대북 경제 제재도 큰 영향력은 없는 듯하다. 2005년 즈음부터 북한은 이미 15년 가까이 강도 높은 제재 속에서 살아왔다. 어떤 상황에서든 살아만 있다면 가혹한 환경에도 적응하는 셈이다. 북한 주민들은 제재 속에서 버티며 살아가는 데 이골이 났다고 봐야 한다.

평양 출신의 소위 상류층 출신 탈북자들이 기자에게 공통적으로, 반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북한은 북한의 눈으로 봐야 한다.” 아사하면서도 수령과 노동당 만세를 부르고, 집에 불이 나면 뛰어들어가 김일성 3부자의 초상화를 꺼내오는 행동은 민주주의에서 살고 있는 이들의 시각으론 전혀 이해할 수 없다. 학문의 대상으로 봐도 마찬가지다. 주로 미국에서 연구된 정치·사회 이론의 틀로 북한을 분석해서는 제대로 된 예측으로 이어지기 힘들다는 얘기다.

수백만 명이 아사하고 실질적인 무역 봉쇄 상태가 이어져도 체제가 강고한 이유는 뭘까. 두 가지 가설을 세워볼 수 있다.

첫째, 정보 통제 때문이다. 바깥세상이 어떤지 북한 주민들이 잘 모르기 때문에 집단 봉기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추측이다. 과연 그럴까. 탈북자들은 평양은 물론 다른 지역의 북한 주민들도 남한이나 다른 나라의 사정을 대략이라도 알고 있다고 얘기한다. ‘노트텔’ 같은 중국제 소형 전자기기로 한국 드라마를 보는 주민들도 많다. 가정용 태양열 발전기가 보급되면서 가정 단위의 전력 사정도 좋아졌다. 북한에 거주할 때 한국 영화나 드라마를 한번도 보지 못했다고 얘기하는 탈북자는 거의 없을 정도다. 또 북한을 탈출해 중국이나 한국에 거주하는 탈북자들로부터 정보가 추가로 흘러들어간다. 탈북자들이 중국 거주 브로커들을 통해 북한에 있는 가족들과 전화통화를 하고 생활비를 보내는 건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정보 통제 때문에 북한 사회가 안정됐다고 보기는 힘들 듯하다.

두번째는 노동당의 강고한 조직 장악력 때문에 체제가 붕괴되지 않는다는 가설이다. 일단 평양에 한해 본다면 맞아떨어진다. 평양의 성인 인구를 대략 380만명으로 잡는다. 이 중 약 100만명이 노동당원이다. 당원이 되기 위해 준비하는 후보 당원 등을 고려하면 평양의 성인 인구 3명 중 1명은 노동당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평양의 거의 모든 가정이 노동당원의 가정이란 얘기다.

그렇다면 평양 이외의 지역이 평온한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여기에 단서를 줄 수 있는 논문이 최근 발표됐다. ‘북한 5대 근로단체조직의 운영체계와 역할 분석’. 탈북자 정후남씨가 썼다. 국내에선 처음으로 북한의 5대 근로단체를 정밀 분석했다. 경기대 북한학과 석사 논문이다. 정씨는 함경남도 회령 출신으로 2009년 탈북했다. 북에선 농장원, 즉 농민이었다.


김정은 시대 들어 단체대회 연이어 열려

북한의 5대 근로조직은 다음의 단체들을 뜻한다. 조선소년단, 김일성-김정일주의 청년동맹, 조선직업총동맹, 조선민주여성동맹, 조선농업근로자동맹. 이 조직들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이렇다. 북한 주민들은 만 7세, 즉 소학교 2학년이 되는 순간 이 5대 근로조직에 속하게 된다. 특권층으로 태어났다면 노동당원이 되어 근로조직에서 빠지겠지만 비특권계층 출신이고 특출한 재능이 없다면 근로조직 중 하나에 속해 평생을 살아간다. 북한의 인구 통계는 정확하지 않지만 대략 2400만명으로 추산한다. 이 중 절반 이상인 1530만명이 5대 근로단체 소속이다. 여기에 소속되지 않은 사람들은 노동당원 300만명과 만 6세까지의 어린이, 70세 이상의 노인, 정신질환 환자들뿐이다. 북한 정권이 5대 근로단체를 통해 주민들을 통제한다는 얘기다.

주민들의 결속력은 다시 노동당의 안위로 이어진다. 김일성은 생전에 이런 말을 했다. “복숭아씨를 당이라고 하면 거기에 붙어 있는 살은 근로단체다. 복숭아가 잘 크고 맛있게 익어야 안에 있는 씨가 잘 보호되고 실속 있게 여무는 것처럼 근로단체들이 일을 잘해야 대중을 당의 주의에 튼튼히 묶어세울 수 있으며 당을 힘 있는 당으로 만들 수 있다.”

흥미로운 건 김정은이 이 5대 조직의 활용도와 중요성을 정확히 포착했다는 점이다. 김정은은 집권 후 본격적으로 자신의 뜻을 펴기 시작하며 당대회와 근로단체대회들을 연이어 열었다. 당대회는 원래 4년마다 한 번씩 열려야 하지만 김정일 시대엔 단 한 차례도 열리지 않았다. 근로단체대회도 마찬가지다.

2016년 5월 6일 조선노동당 제7차대회를 열었다. 2016년 8월엔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제9차대회를 열었다. 이때 단체의 이름을 바꿨다. ‘사회주의’를 빼고 ‘김정일주의’를 넣었다. ‘김일성-김정일주의 청년동맹’이 됐다. 이 변화를 어떻게 봐야 할까. 김일성 집권기의 구호는 ‘사회주의, 공산주의 위업의 완수를 위하여’였다. 김정일이 집권하며 ‘공산주의’라는 말을 뺐다. 조선말사전에서도 없앴다. 그의 아들 김정은은 ‘사회주의’를 뺀 것이다. 마르크스와 레닌을 사상적 족보에서 지워버렸다는 얘기다.

2012년 발표한 노작에서도 김정은은 “조선노동당의 지도사상은 위대한 김일성-김정일주의입니다”라고 말했다. 현 북한은 김일성-김정일주의 국가, 이른바 왕조국가다. 북한을 잘 아는 학자인 박한식 조지아대 명예교수도 유사한 분석을 했다. 박 교수는 1990년부터 북한을 50여차례 방문했다. 그는 북한을 김일성교를 믿는 ‘신정국가’로 본다. 실제로 북한에선 이렇게 선전한다. ‘부모가 준 육체적 생명에는 한도가 있지만 수령과 노동당이 준 정치적 생명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 5대 근로단체조직도 수령이 준 정치적 생명이기에 영생불멸한다.’
월급 2% 회비, 소득 없어도 10원씩

이 5대 근로단체들은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없다. 노동당 근로단체부의 지시에 따를 뿐이다. 종교단체를 떠올리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를테면 천주교를 생각해 보자. 모든 성당이 같은 교리를 배운다. 외딴섬에 있는 성당이라도 독자적인 교리를 펼 수 없다. 신자회도 마찬가지다. 주어진 교리를 공부할 뿐 독자적인 해석은 절대 불가하다. 실제로 김일성-김정일 우상화물엔 기독교의 교리가 상당부분 스며들어 있다고 탈북자들은 말한다. 처음 읽는 성경이 익숙하다고도 말한다.

김정일이 사망해 김정은이 ‘최고 존엄’이 된 건 2011년이다. 당대회, 근로단체대회를 연이어 연 것은 2016년부터다. 약 5년간 김정은은 노동당과 군 장악에 힘을 쏟았고, 본궤도에 오른 후 외곽 조직 정비에 나선 걸로 읽힌다. 김정일의 선군정치에서 한층 더 진화했다고 볼 수 있다.

근로단체에 소속되면 매주 주생활총화와 학습회, 강연회에 무조건 참가해야 한다. 주생활총화는 매주 한 번 조직생활, 사생활, 공중도덕 등에서 잘못한 걸 고백하고 반성하는 모임이다. 매달 월급의 2%를 회비로 낸다. 소득이 없는 이도 10원씩 매달 내야 한다.

정후남씨의 논문을 바탕으로 5대 단체를 세부적으로 살펴보자. 첫째 조선소년단이다. 만 7세부터 13세의 소년은 누구나 활동해야 하는 첫 기층 조직이다. 속한 아동 수는 약 400만명으로 추산된다. 1946년 발족했다.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싸운 항일아동단의 전통을 이어받은 아동조직이라고 북에선 선전한다. 김일성-김정일주의 청년동맹의 직접 지도를 받는다. 상징은 붉은 스카프다. 외국 정상이 북한을 방문하면 붉은 스카프를 맨 소년이 공항에서 꽃다발을 건네는 장면이 흔히 연출된다. 실제 외국 정상 꽃다발 영접은 조선소년단의 주요 과제 중 하나다. ‘꼬마계획’이란 활동도 한다. 폐고철 등 재활용품을 모아 수매증과 돈을 조직에 바치는 행위다. 범죄를 저지르거나 소년교화소에 가면 소년단에서 쫓겨난다. 규율을 반복해 지키지 않을 경우에도 소년단 스카프를 회수했다가 다시 입단시킨다.

입단할 때는 이런 선서를 해야 한다. ‘나는 자애로운 할아버지 김일성 대원수님께서 세워주시고 경애하는 아버지 김정일 대원수님께서 빛내여 주시는 영광스러운 조선소년단에 입단하면서 언제 어디서나 대원수님들과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의 가르치심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며 주체의 혁명 위업을 빛내여 나가는 사회주의 건설의 믿음직한 후비대로 억세게 자라날 것을 소년단 깃발 앞에 굳게 맹세합니다.’

김정은은 어린이 교육을 꽤나 강조하는 모양새다. 2017년 북한은 무료의무교육제를 도입했다. 이른바 ‘전반적 12년제 의무교육’이다.

둘째, 김일성-김정일주의 청년동맹(이하 청년동맹)이다. 1946년 발족했다. 14세부터 30세까지의 남녀라면 무조건 가입해야 한다. 청년동맹 활동을 해야 노동당 입당 자격을 얻는다. 500만명이 속해 있다. 노동당의 외곽 단체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의 후신단체라고 북한 정권은 선전한다.

청년동맹 중앙위원회는 실질적으로 ‘작은 노동당’이다. 조직부, 선전선동부, 국제부, 간부부, 소년단사업부, 학생청년부, 총무부, 체육부, 노동청년부, 재정경리부, 사적자료부, 청소년 과외교양지도국 등의 부서를 갖췄다. 청년동맹에서 노동당 생활을 모의체험하는 셈이다.


맨손으로 고속도로 건설한 청년돌격대

청년돌격대 생활도 해야 한다. 집단생활을 하며 발전소 건설, 간석지 개간 등에 참여한다. 무상 착취다. 2009년 완공된 평양-남포고속도로는 3년 동안 청년돌격대원들이 건설했다. 도로건설용 운전기재 하나 없이 마대자루로 자재를 운반하고 곡괭이와 삽으로 건설했다고 한다. 청년동맹을 두고 북한에선 이렇게 말한다. “조선노동당이 불씨라면 청년동맹은 불길이고 당이 조국과 인민을 위해 사회주의 건설의 결사전으로 부르면 청년들은 앞장서서 당의 영도를 받들어나가고, 그 길에 삶의 영광이 있다. 육체적 생명은 죽어도 정치적 생명은 죽지 않고 당과 함께 영생한다.”

매해 보름 이상 군사훈련을 받는다. 이때 실제 실탄 사격도 해본다. 매주 청년학습 시간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국무위원장 따라 배우기 혁명력사 학습’을 한다. 매주 강연회, 기술학습을 하는데 눈에 띄는 건 문답식으로 학습한다는 점이다. 두 팀으로 나눠 서로 논쟁을 하며 배우는 일종의 토론학습이다. 북한이 국제 협상장에서 강한 모습을 보이는 데는 어릴 때부터 대중 앞에서 토론 대결을 하며 자란 점도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다.

부위원장과 이하 말단 초급단체의 단체장은 선거로 선출한다. 여러 명이 출마해 그중 한 명을 뽑는 식이 아니다. 당 조직이 정한 한 사람을 놓고 무조건 찬성표를 던져야 한다. 선거엔 무조건 참가해야 한다. 10대 시절부터 ‘북한식 민주선거’에 단련된다는 얘기다. 만약 반대표를 던지면 부모들이 ‘자녀교양부족’으로 처벌을 받는다. 당의 일심단결을 훼손하는 가족주의, 개인이기주의라는 종파주의를 처벌하기 위해서다.

셋째, 조선직업총동맹(이하 직맹)이다. 노동자 조직이다. 노동자, 일반사무원들이 30세까지 노동당에 입당하지 못하면 이후 자동적으로 직맹 소속이 된다. 군인과 농민이 아니라면 기본적으로 모두 직맹 소속이라 보면 된다. 300만명이 소속되어 있다. 북한판 새마을운동인 ‘천리마운동’ ‘만리마운동’을 수행하는 조직이다.

넷째, 조선민주여성동맹(이하 여맹) 이다. 1945년 11월 18일 북조선민주여성동맹으로 결성되었다가 1951년 1월 남한의 여성단체와 통합해 조선민주여성동맹으로 발족했다고 북한 정권은 선전한다. 김일성의 어머니 강반석과 김정은의 어머니 김정숙을 일종의 롤모델로 삼는다. 200만명가량의 여성이 소속되어 있는 걸로 추산된다. 노동당에 입당을 못 했고, 결혼해 직업이 없는 여성이라면 모두 여맹 소속이 된다. 여맹 소속이었다가 만약 출근을 하게 되면 바로 직맹 소속으로 옮겨진다. 한국의 아파트 부녀회 정도로 보면 안 된다. 엄연한 정치 조직이다. 김정은은 2016년 11월 17일에 열린 여맹 제6차대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성동맹은 일반적으로 여성들이 모여 윷놀이나 하고 웃음마당이나 펼치는 모임이 아니라 조직생활을 하며 조직에 철저히 의거하여 생활하는 사상교양사업의 거점인 정치적인 조직이다.”

3월 8일은 북한의 국제부녀절이다. 이날 여성들은 쉴 수 있다. 북한에서 여성의 지위는 여전히 낮다. 좀 심하게 표현하면 조선시대가 그대로 이어져오고 있다고 보면 된다. 조선시대에 양반 계층의 부녀자가 천민 계층의 부녀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좋은 대우를 받았듯, 평양의 특권계층에선 여성 차별이 상대적으로 덜하다. 반면 그 외의 지역에선 봉건 잔재가 상당히 남아 있다. 임신한 부인을 남편이 상습적으로 폭행해도 ‘배만 안 때리면 된다’며 별 문제를 삼지 않는 식이다.

다섯째, 조선농업근로자동맹(이하 농근맹)이다. 이름 그대로 농민 조직이다. 1945년 전국농민조합총연맹으로 출발해 1951년 남로당 외곽 단체였던 전국농민조합총연맹과 통합했다고 북한 정권은 선전한다. 현재 130만명이 소속된 걸로 추산된다. 북한 표현에 따르면, 전쟁 직후 농업협동화 시절에는 농민들 사이에 개인주의가 많이 남아 있었다.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공산주의 구호 아래 일치단결하여 개인자산이 많든 적든 농업협동조합에 바치고 집단농사를 지어 일한 만큼 분배를 타먹어야 하는 사회주의 사상으로 개조하는 게 농근맹의 목표과제였다.

이렇듯 북한 주민들은 전 생애 동안 소속 단체를 옮겨가며 집단생활을 한다. 10만명이 참여하는 집단 공연 ‘아리랑’이 가능한 것도 이 때문이다. 북한 붕괴를 논하기 전에 근로단체를 들여다봐야 한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09/20/2019092002508.html

Tuesday, October 01, 2019

검찰개혁’이라는 이름의 복수극, 문재인과 조국의 검찰개혁이 영구집권위한 이중잣대증거라는 증거.

"생선가게를 고양이에 맡긴다."
"똥묻은 개가 겨묻은 개 나무란다"
"언감생신"

오늘 언론을 보면,  아직 확실치는 않지만, 정경심 검찰청소환시 포토라인에 세우지 않고, 지하실 차고문을 통해 검찰청사로 들어가게 할것이라는 뉴스다.  청와대의 외압에 의해 검찰이 사기혐의자의 인권을 존중하겠다는 뜻이란다.  그동안 5천만 백성들이 기대했던, 희대의 사문서위조, 사기혐의자 "정경심"의 검찰 소환시 Photo Line에 세워서, 기자들에 둘러쌓인채 기자회견을 하고, 검찰청사로 들어갈거라는 예측 및 기대를 했었다. 

문재인은, 공정한 법의 집행과, 검찰의 피의자 심문자체를, 혐의자에 따라 서로 다른 기준을 세워 포토라인에 세우기도, 안세우기도 하는,  Hitler시대에도 없었던 고무줄 법집행을 검찰에 강요하고 있다.  얼마전 박근혜 정부에서 기무사령관했던 "이재수"장군을 기밀누설이라는 억지 범죄혐의를 씌워 검찰에 피의자신분으로 소환시, 수갑을 채워 포토라인에 세웠는데,  억울한 치욕을 참지 못하고 세상을 하직한 사건은, 문재인 기준에서는 극히 정상적인것으로 처리했었다. 

정경심을 포토라인에 세운다는것은, 그의 남편 조국씨가 대국민 사기,공갈, 거짖을 저지른 몸통이라는 점과, 그에 대한 백성들의 신뢰를 깨뜨린다는것을 뜻하기에, 포토라인을 피한것이다.


문재인 좌파사회주의 정권이 그렇게도 외쳐대던, 공평,정의, 백성들 모두가 다 공평하게 잘사는 정책을 펴고, 그러기위해서 검찰 개혁을 꼭 해야 한다라는 명분을 부쳐, 검찰의 전통을 깨면서까지, 서열이 새까만 윤석열 중앙지검장을 검찰총장으로 임명하고, 매우 만족한 표정으로 당부하기를, "살아있는 권력에도 정의, 공평한 법의 잣대를 대라"고 일갈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살아있는 권력에 범죄혐의를 씌워 기소를 하거나 감옥에 보내면, 그댓가를 치르게 될것이다라는 경고였음을 깨닫게 된다.  윤총장은 그말의 뜻을 금새 깨닫고, "사람에 충성하지 않고, 헌법수호에 승부를 걸겠다"라는 뜻으로 소감을 피력했던 그날을 기억하고 있다.

조국씨의 아내, 동양대 교양학부 교수,"정경심"은, 열손가락으로 그범죄혐의를 다 셀수 없을 정도로 사문서위조, 성적위조, 부당 장학금수령, 인턴쉽위조, 표창장 위조, 엉터리펀드투자, 현제끼리 재판으로 권리포기 등등....내머리로는 다 나열할수 없다는 점이 아쉬울 정도다.  그러나 그러한 사기 공갈 협박의 몸통은 정경심이 아니라, 그뒤에는 법무장관이자 남편인 조국이가 버티고 있고, 더 그뒤에는 현좌파 사회주의 정권의 주역, 문재인씨가 있다는것을 백성들에게 알리고 싶지 않다는 깊은 뜻이 있다고 믿는다.

이런 패거리들이, 검찰개혁을 하겠다고, 검찰을 협박하고, 국민들을 협박하고, 뉴스미디아를 동원하여 백성들의 문재인 탄핵성토대회를 축소하여 참가숫자를 발표케 하고, 맞불작전을 펴고있는 좌파찌라시들의 참가숫자는, 전문가들의 계산에 따르면 적게는 3천명, 많게는 2만명이 채 안되는데도, 2백5십만이라는 삶은 소대가리가 웃을 대국민 사기극을 치고 있다.

文대통령·조국式 검찰개혁,
1호 수혜자는 조국 아내 정경심


위의 조선일보 Head Line은 검찰개혁의 근본목적이 정경심과 그의 남편이자 법무장관, 조국의 사기범죄행위를 덮고, 구해내기위한 또 다른 좌파정권의 국가파괴행위임을 모르는 백성들이 있을까?  문재인은 지금 5천만 백성들을 교묘한 수단으로 편가르기를 해서, 다 죽어가는 정권연장을 위한 안간힘을 쓰고 있을 뿐이다.

10월3일, 개천절에 전국에서 모여드는 백성들이, 문재인 정권타도와 자유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키기위한 "범국민궐기대회"가 있다.  내생각으로는 궐기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본다.  "미친개에게는 몽둥이가 최선의 방법"임을 이번 궐기대회에서 모든 국민들은 행동으로 보여주는 비장의 각오로 임하고, 문재인씨를 광화문으로 끌어내여, "검찰개혁의 참목적이 뭔지?,  왜 조국의 말은 잘 들으면서,  또김돼지의 명령은 잘 따르면서, 5천만 백성들의 원성에는 귀를 막는가?"를 꼭 묻고 심판해야 한다.

분명한것은 "조국과 부인 정경심"의 가정은 사기범죄집단으로 완전 낙인찍혀, 아무리 권력의 중심에서 놀아난다해도, 마음은 깊은 병이들어, 제수명데로 살지 못할것이라는 점이다. 연민의 정이라는것이 이런것일까?  그들의 삶이 너무도 불쌍하다. 재물과 명예가 전부는 아닌데..

우리 대한민국이 요즘 상황은 너무도 어이없고, 앞날이 너무도 불쌍하다.

김순덕 기자의 칼럼을 옮겨 놓았다.


중국 공안 따라간 검경수사권 조정 
검찰 손보기 위한 공수처 설치, ‘검찰개혁’이라 말하지 말라
“참여정부에 복수하듯 노무현 수사” 이번엔 文정부가 검찰에 복수하나


김순덕 대기자
법무부 장관 자리를 차지한 조국이 앉으나 서나 검찰개혁을 부르짖는 건 당연하다. 고통스러워도 내려놓을 수 없는 십자가를 진 듯, 조국은 10년 전 여한으로 남긴 고 노무현 대통령의 검찰개혁을 기필코 완수할 태세다.

그런 조국이 바로 검찰개혁의 걸림돌이라는 말들이 나온다. “조국 사퇴”는 야당의 대정부 투쟁 구호가 됐다. 그가 물러나야 검찰개혁이 가능하다는 의미라면 위험하다. 이 정부가 ‘검찰개혁’이라고 이름 붙인 검경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법안은 패스트트랙으로 통과되면 누구도 되돌리기 힘든 악법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검찰개혁 요구가 왜 나왔는지 돌아보면 알 수 있다.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조국 당시 민정수석도 “검찰이 막강한 권력을 제대로 사용했으면 최순실 게이트를 초기에 예방했을 것”이라고 했다. 모처럼 맞는 얘기였다.  

그 해결책이 검찰권력의 분산·견제라는 건 한일 갈등의 해결책이 남북평화경제라는 소리만큼이나 생뚱맞다. 최순실의 남편 정윤회 문건 수사가 청와대 지라시 유출 사건으로 둔갑하고, 특별감찰관 이석수가 대통령민정수석 우병우를 감찰하다 되치기당한 건 검경수사권 조정이 안 됐거나 공수처가 없어서가 아니다. 청와대가 인사권으로 검찰의 숨통을 죄는 바람에 검찰은 알아서 길 수밖에 없었던 거다. 

검찰개혁이란 검찰이 정치권력의 눈치를 안 봐도 되게끔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처럼 군부독재를 거치며 검찰을 통치수단으로 이용했던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가 그렇게 개혁을 했다. 민주화 이후 검찰조직을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 어디에도 속하지 않게 헌법상 제4의 독립기구로 만들고, 검찰총장은 상원의 승인을 받아 임명해(칠레는 대법원이 후보 지명) 정치적 중립성과 신뢰를 확보했다는 게 조희문 한국외국어대 교수의 연구결과다.

‘검찰도 행정부’라는 문 대통령은 인사권으로 검찰을 장악하고도 배고팠던 모양이다. 수사권을 지닌 막강 경찰, 검찰 잡는 공수처를 만들어 검찰과 경쟁시키겠다는 것은 국민을 위한 개혁이랄 수 없다. 조국이 2005년 “경찰 내부개혁이 가시권에 들어오지 않은 상태에서 경찰이 검찰의 수사지휘에서 완전 해방된 채 수사종결권을 행사하게 된다면 경찰국가화의 위험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쓴 논문과도 배치된다. 

더 섬뜩한 것은 정부안대로 되면 공산당 독재국가 중국의 공안 같은 경찰이 나온다는 사실이다.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의원은 작년 2월 국회에서 “도대체 어디서 이런 안(법무·검찰개혁위안)이 나왔는지 알 수 없어 찾아보니 중국과 대단히 유사하다”고 경악을 했다. 수사의 주체 경찰이 인민민주주의 독재의 주요 도구로 쓰인다는 점에서 북한과도 흡사하다.

경찰은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까지 넘겨받아 비대화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지금도 정보경찰이 정책정보 수집이라는 명분으로 국민을 감시해 경실련과 민변, 참여연대조차 정보경찰 폐지를 요구하는 판에 경찰이 기소 여부까지 판단해 수사를 끝내게 한다는 건 법치국가 포기나 다름없다.

‘수사권은 경찰, 기소권은 검찰’이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여권의 주장도 의심스럽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중 28개국이 헌법이나 법률에 검사의 사법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규정하고, 27개국이 검사의 수사권을 규정하고 있다(신태훈 논문 ‘이른바 수사와 기소 분리론에 대한 비교법적 분석과 비판’). 세상에 어디 본뜰 것이 없어 대한민국 경찰이 공포의 중국 공안을 따라간단 말인가. 

검찰개혁이 끔찍한 개악으로 변질된 이유는 문 대통령이 2011년 김인회 인하대 교수와 함께 쓴 ‘검찰을 생각한다’에서 찾을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검찰을 손볼 데가 없으면 절대 안 된다며 공수처를 추진했다. 참여정부가 끝나자 검찰은 참여정부 당시의 검찰개혁에 대해 복수하듯 노 대통령 수사를 진행했다고 나온다. 노무현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검찰에 대해 이번엔 문재인 정부가 복수에 나선 셈이다.  

조국은 이 정부의 수준이고, 민낯이며, 본질이다. 법무장관 자리에서 물러나야 마땅하지만 그가 사라진다고 해서 머리 셋 달린 히드라 같은 검경과 공수처를 허용해선 안 된다. 연동형 선거제에 혹해 문재인 정부의 한풀이 패스트트랙에 올라탄 일부 야당은 국민에게 무슨 죄를 짓고 있는지 똑바로 알아야 한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



http://www.donga.com/news/home/article/all/20190919/97470930/1

최순실, JTBC 손석희 고소…"태블릿PC 보도는 가짜뉴스"- 줄을 잘서야 출세하면서 잘살수있다.

Monster 언론 보도로, 무고한 시민들이 무자비하게 희생되는 경우를 요즘은 참 많이 본다.
그중의 한 희생자가 최순실씨인것 같다. 문재인 좌파정부에 협조하지 않거나 비난하면, 갖은 올가미를 다 씌워 결국 범죄피의자로 만들고, 협조하고 찬양하면, 정겸심-조국같은 희대의 사기범죄 혐의자는 기소는 커녕 출세가도를 태풍처럼 달린다. 이게 한국의 무법천지 현실이다.

지금은 영어의 몸이 되여 꼼짝도 못하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은 "카더라..."라는 언론보도로 가장 나쁜 여자로 국민들의 뇌리에 깊이 박혀있는, 엉터리 언론보도의 가장 큰 희생자라고 믿는다.

이러한 악의적인 엉터리, '카더라..'보도에 앞장선 언론들중에서 가장 많이 국민들의 시선을 끌었던 악질언론인을 찍으라 하면, 나는 하나도 망설임없이 JTBC의 '손석희'를 큰 소리로 외치겠다.

요즘의 한국사태는, "조국"이라고 불리는 희대의 사기꾼 혐의자가 온나라를 2달넘게, 그것도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는 사람의 비호아래, 한반도를 뒤흔들고 그것도 모자라 전세계적으로 뉴스거리를 만들고 있는 상황이라서, JTBC의 손석희씨의 거짖 '카더라...' 보도로 평생잊지못할 피해자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는데도, 뉴스 미디아에서는 보도되지 않고 사라져가고 있다.

http://lifemeansgo.blogspot.com/2019/09/blog-post_17.html

손석희씨는 현좌파 정부의 비호를 받고, 그가 거짖보도한 "태블릿PC"조작을 사실인것 처럼 보도돼고, 이의 부당함을 절규하면서, 태블릿PC를 재판에서 증거물로 채택해 달라는 호소도 여지없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재판진행의 편파적인, 그리고 정권의 눈치보기를 하고 있는 재판부의 심판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백성들이 있을까?

손석희씨의 차량 박치기 사건은 어느새 역사속으로 파묻히고 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깊은 한밤중에 노모님을 옆좌석에 모시고 으슥한 주차장에 갔었다고 주장하는데, 이에 대한 노모님의 설명은 아직까지도 한마디도 없었다. 그러나 정상적으로 발육한 성인 남녀들의 정상적인 교제는 한밤중에 이루어진다는것은 충분히 이해하고 응원도 할수 있겠지만, 가정을 갖고있는 손석희씨의 정상적이지 않은 한밤중 행동을 믿는 백성들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JTBC의 편파적인 보도와 손석희씨의 사리에 맞지 않은 행동을 비난하던 보수논객 "변희재"씨는, 손석희씨의 고소로 재판을 받고, 감옥생활까지 한것으로 알고 있으나, JTBC의 손석희씨는 Main Anchor로 종편방송을 휘젖고 있다. 그러나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조국"과 그가족들의 사기혐의를 연일 보도하는 미디아들에 가려져 백성들의 기억속에서 시들어져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변희재씨의 억울함도 다시한번 세상에 알릴겸, 이번 고소에서 변희재씨를 증인으로 출석 시켜 거짖보도를 바로 잡겠다는 의지가 꼭 이루어지기를 빌어마지 않는다.

최순실의 "태블릿PC"보도가 가짜뉴스임을 더이상 묵과할수없어, 비록 감옥에 갇혀있는 영어의 몸이지만, 억울함과 묻혀진 진실을 밝히고져 고소를 했다는 그용기를, 백성들은 응원할것으로 믿고, 나역시도 응원해주고 싶다.  재판정의 공정한 심판을 한다는 의미에서  태블릿PC가 꼭 증거물로 채택돼기를 바란다.

아래의 뉴스를 옮겨봤다.

최순실, JTBC 손석희 고소…"태블릿PC 보도는 가짜뉴스"

박현익 기자






입력 2019.09.24 14:37
"변희재 항소심에도 증인으로 출석해 보도 바로잡을 것"





최순실씨가 2017년 5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서 재판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국정농단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최순실(본명 최서원)씨가 손석희 JTBC 사장을 고소했다. 손 사장이 태블릿PC와 관련한 허위보도를 했다는 것이다.

최씨 측 법률대리인은 24일 최씨가 손 사장을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고 밝혔다.
최씨 측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원인이 된 JTBC의 ‘태블릿PC 허위보도’를 바로 잡아 그 진실을 국민들께 알리는 것이 최씨의 의무라는 책임감으로 손 사장을 고소하게 됐다"고 했다.

이어 "최씨는 JTBC 보도와 달리 태블릿PC를 사용하거나 이를 이용해 박 전 대통령의 연설문을 고친 적이 없다"며 "최씨는 태블릿PC를 전혀 사용할 줄 모른다"고 했다.

최씨 측은 "무엇보다 최씨는 박 전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세우고 그 뒤에서 국정농단을 한 비선실세가 결코 아니다"라며 "근거없는 잘못된 낙인은 부모님을 모두 총탄에 잃고서도 대한민국과 결혼했다면서 결혼도 하지 않고, 오로지 국민을 위해 불철주야 애쓰신 박 전 대통령을 두 번 죽이는 것"이라고 했다.

최씨 측은 또 미디어워치 대표 변희재씨의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변씨는 ‘태블릿PC 보도’와 관련, 손 사장과 JTBC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뒤 항소심 재판을 받고 있다. 최씨 측은 "태블릿PC의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기 위해 변씨의 재판에서 최씨가 사용한 적이 없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소명할 예정"이라고 했다.



http://m.chosun.com/svc/article.html?sname=news&contid=20190924015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