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July 13, 2024

Lincoln Wyndham, NH. 미국에서 캠핑 이모저모.(July 13,2024)


기차의 의자에는 1826년도에 설치한기록이 각인 되여 있었는데, 약 200여년전에 우리의 선조들께서 오늘의 우리 후손들을 위해서 이렇게 위대한 걸작품을 만들어 주신데 대하여 마음속으로 감사함을 수백번 되뇌었었다 "선조님들 감사 합니다. 선조님들 덕택에, 태평양 저넘어있는 조그만 반도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이곳 캐나다로 이민와서, 많은 혜택을 누리면서, 특히 수많은 여행을 할수 있게 된것 등등 모두가 감사할 일 뿐이다.



7월 13일,2024년, 우리 부부를 비롯한 동생처럼 아끼는 Mr. Bae 부부와 함께, 그후배들을 앞세워, 그들의 앞선 AI Technology를 기반으로 미국의 여러곳을 탐방하여 자세한 내용을 보았는데.....  AI Technology에 대한 이해력이 많이 뒤져있는 우리부부와 지금의 젊은 세대들이 애용하은 그들의 컴퓨터 활용하는 Technology에 대한 이해가 잘안돼, 내가 왜 이렇게 됐나를 나름데로 판단해 봤을때, 세대차이에서 오는 피할수 없는Technology Gap인것을 충격적으로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우리 세대만 해도 "눈으로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고 이해가 될때였지만, 지금의  세대는 Cyber세상이기에, 눈으로 확인하고 손으로 만져봐야만 이해가 되는, Old Generation(표현하고 싶지는 않지만)에게는 무척 어려운 학문(?)인것으로 이해된다.

"옛날에 금송아지 소유안했던자가 있었던가(?)"라는 우스개 소리를 많이 들어왔었지만, 지금은 나의 처지가 완전히 뒤쳐져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으며, 10년 주기의 한세대가 이렇게 빠르게 달라지고 있음을, 변명할 방법이 없이, 빛의 속도로 변하고 있는 현세대에 부러움과, 옛말에 '연극에서 자기가 맡은 역활이 끝나면 슬며시 무대 뒷편으로 사라지는 배우처럼..."이라는 말을 가슴깊이 느끼면서.... 시대에 순응하고 세월에 순응하고, 현실에 순응해야, 그나마라도 어울려 같이 살아 갈수 있음을 오늘 따라 깊이 깨닫는다.  우리 부부를 아껴주는 후배들에게 짐이 되여서는 절대로 안된다는 다짐을 마음속에 또한번 새기면서. 




미국의 Lincoln Wyndham, NH 지역을 후배 B부부와 함께 탐방길에 올랐었다. 같이온 많은 젊은 후배친구들은 Fundy National Park탐방을 끝으로 헤어져, 우린 미국으로, 그리고 일부 젊은 대원들은 집으로 향하는 길에 Quebec에서 하룻밤 자고 가는것으로 알고 있다.

여기 보이는 기차( Train)은 자력으로 급경사를 올라갈수가 없어, 차량바퀴의 Shaft에 설치된 Gear와 Track에 설치된 Gear와 연결되여 그힘을 이용하여 급경사( 선로위를 달리는 차량의 입장에서는 급경사이기에 바퀴와 레일사이에서 발생하는 Friction만으로는 Power를 전달할수가 없다)를 오를수 없기에 이시설을 이용하는것으로 이해됐다

자세히는 안보이지만, 레일 가운데에는 Gear레일이 설치되여 있어 이설비를 이용하여 힘이 전달되거나 지탱하여 급경사를 오르 내리는것으로 이해된다.  안내하는 아가씨의 설명도 이와 비슷함을 이해할수 있었다.



이 train 설비는 1826년경에 부설되여 현재에 이르고 있는데..... 그역사를 듣고 깜짝 놀랐었다.  그때에는 서울 인천간에 처음 부설된 철도보다 훨썬 더 먼저 인것을 알게됐다.


오랜 옛날에 사용됐었던 동력차라고 설명했는데.....액면 그대로 이해하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부분도 있었던것 같은데...... 그러나 꾹 참고 지나쳤다.

여기 사진에는 궤간 가운데 선명하게 설치되여 있는것이 보이는  Gear System이  차량에 달려있어 힘을 전달하는 Gear의 역활이 아주 중요함을 즉시 인지할수 있었다. 궤간은 표준궤간이 아니고, 러시아에서 사용되고 있는 광궤로 보이는, 눈으로 확인이 되는 넓은 궤간임을 알수 있었다.





객차지붕에는 "Conway Scenic Railroad"라고, 이열차의 운행 목적이 전적으로 관광객위주임을 선명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Lunar가 한컷 카메라에 담아 이다음에 손자녀석에게 보여줄 생각인것 같다. 유난히 손자녀석이 장난감 기차를 즐겨서, 집에는 장난감 기차가 참많다.



가파른 고갯길을 험겹게 올라가는 그모습이 나이드신 할아버지께서 지팡이에 의지하여 어렵게 고갯길을 넘어가시는 그모습이 연상된다.

오랜 옛날, 이설비가 처음 건설되였을때 운행됐었단 차량들이 전시되여 있다. 한때는 힘을 과시 하면서 뭇 관광객들의 시선이 항상 이시설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을 그때를 상상해 본다. 이민전에 철도에서 근무했었던 직업의식에서 일까?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나름데로 들여다 봤었다.

산악기차를 타고 산정상까지 올라가는 기차를 타기위해 Tickets를 구입하고있다.



옛날 역사( Train Waiting Room)는 지금은 관광객을 위주로한 식당으로 애용되고 있었고, 그옛날 시설을 이용하여 영업도 하고 관광객들에게 옛날을 상상할수 있게 배려한 선배들의 아이디어가 고맙기만 하다.

친절하게도 Mount Washington COG Railway?에 대한 설명이 간단하면서도 명료하게 계시되여있다. "지구상에서 처음으로 미국 동북쪽 산악지대 최고봉을 올라가는 Cog Railway 1869년 7월 3일 영업시작"이라는 설명이 기억속에서 오랫동안 간직될것 같다. 

초기 증기 기관차 (Steam Locomotive)의 운전실 모습을 재현하여, Engineer가 작업중임을  보여주는 순간인것으로 이해된다. 옛날 고국의 '이리'에서 '정읍' 사이를 통학할때, 가끔씩 기관사(Engineer)들의 배려로 운전실에 올라타 그들의 작업광경을 봤던 기억이 Overlap 된다.  겨울철에는 견딜만 하나 여름철에는 Steam Engine에서 나오는 고온에 땀을 흘려 가면서 석탄을 삽으로 퍼서 Engine 아궁이에 집어 넣던 그때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승객들은 그러한 Engineer들의 고생의 결과로 여행을 할수 있었다는 점을 알수 있었을까? 



나는 이러한 Engineer들의 고충을, 고생을 그리고 고마움을 잘 알고 있다.  같은 철도에서 근무를 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철도 설비를 담당하는 부서여서 실질적으로 현장에서 뛰어본 경험은 없다.  그러나 아직도 근무당시의 수많은 기억은 생생하기만 하다.  



옛날에 운행됐던 당시의 기관차 모형들이 전시되여 있는데, 나에게는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나를 붙들었다.  사실 캐나다에 이민오기위해 담당 영사와 인터뷰 할때에도 이 Engineering에 대한 대화를 깊이 나누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인터뷰하던 영사가 "청장의 이름, 사고가 발생했을때 해야할 업무 등등, 철도 기술담당 Engineer로서는 듣기에 거북한 유치한 질문을 마구 던지는 인터뷰 담당자와 인터뷰 도중에 약간의 언성이 오갔던 기억이 떠오른다. 당시 나의 인터뷰 시간은 약 40여분 정도 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캐나다가 필요한 Engineer로 생각되면 보내면 될것이고, 그외 이민과 관련없는, 유치한 질문은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라고, 통역하던 여직원을 내 보내고, 직접 대화를 나누어도 되겠는가?라는 질문후, 서툴지만 인터뷰를 진행했던 기억이 되살아 난다. 나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 대한민국 전체 국민을 무시하는것 같은 속상함이 마음깊은 곳에서 발동 했었던 것이다.

인터뷰가 끝난뒤, 담당 영사가 아까 던진 질문이 듣기에 좀 거북했었다면, 이해 해 달라. 내인터뷰경험에서 ''너희 국민들은 하늘에 있는 별을 따오라고해도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라는 대답을 하도 많이 해서, 당신도 그럴줄 알고 질문했었던데..... 미안합니다''라는 사과를 받았던 기억이 있다.  인터뷰 영사의 한마디에, 많은 국민들이 인터뷰하면서 해서는 안될말, 예스 해서는 안될말 등등, 가능성없는 얘기들을 많이 했었던 결과인것을 그후에 알았었다.

인터뷰 마치고 나오는길에, Lunar와 대화 하면서 "이민관과 말다툼을 했으니, 이민 가기는 틀렸다. 명동에가서 식사나 하고 가자"라고 풀이죽어 명동에서 국밥한그릇씩으로 허기를 채웠던 기억도 있다. 그날 국밥의 맛은 믿어지지 않게 잘먹었던 기억이다.

그렇게 기대를 하지 않고 며칠, 약 5일간이 지났을때,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에 가서 신체검사를 하라는 통지를 받았었다. 일단은 이민을 갈수 있는 모든 조건이 갖추어졌고, 이제 신체검사만 통과되면 이민 짐을 싸야 하는 방랑자로서의 새삶을 찾아 정든 조국을 떠나야 했었던 기억이다.



이민온것을 후회해본적은 현재까지도 없다.  반대로 잘왔다는 안도감은 많이 안고 있다. 공무원으로 근무당시에도 국가로 부터 은혜를 다른 동료직원들에 비해 많이 받았었다. 독일과 일본에 기술연수를, 뒤에 선배분들을 제쳐두고 픽업되여 두번씩이나 다녀 왔으니..... 시골 촌놈의 입장에서는 직장 선배님들에게 미안하기만 했었고.... 당시에는 우리나라가 후진국이라서 소위 잘 살면서 기술이 앞섰다는 독일과 일본에서 많은 기술연수대상 공무원들을 초청했었다. 


그래서 철도와 관련된 이슈에 대해서는 지금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습관이 있다.  한국에 있을때 국장으로 계셨던 분이 몬트리얼에 있는 기관차 제작공장에 가서 기술연수를 위해 캐나다에 오셨을때, 우리집을 찾아오셔서 같이, 통역관으로 그분과 함께 갔었던 기억도 있다. 이래저래 철도와는 전생에때부터 무슨 인연이 있었던것은 아니었을까?라는 엉뚱한 생각도 해보곤 했었다.



바퀴를 연결된 Shaft의 한가운데, 앞서 설명했던 기아(Gear)돌면서 맞물려있는 레일위를 따라 회전하면서 Train은 위로 아래로 움직이는 것이다.  이 train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것으로 이해된다.


동력을 발생하는 이기관차는 본래 train 에 사용됐던 아닌것으로 이해됐다.  관광용으로 이용하기위해, 한칸의 승객용 객차를 견인하기위해 별도로 제작된것으로 이해됐댜.



좌표(현재의 위치)를 표시하는 동판이 인상적이다. 


안을 들여다 보고 싶었지만...... 내맘데로는 안되는법. 아마도 가장 높은 곳으로 인식시키기위한 일종의 표지판 역활을 표시한것은 아니였을까?  설명이나 관련된 자료는 볼수가 없었다.


"와싱턴산 정상( Mt. Washington Summit)"올라, 증거를 남기고 있는 중이다. 

'인간의 힘으로 관찰할수 있었던 가장 무서운 바람이 이곳에서 발생했었다'라는 기록으로 보관되고 있었다.  1932년부터 1937년까지 Mt. Washington에 있는 정상 관측소가 이곳을 근거지로 활용했었고, 1934년 4월12일 관측된 바람의 속도는 '시간당 231마일이었다'라고 기록되있다.




건물 안에는 아담한 식당도 있어, 간단한 음식(준비해온)과 커피를 곁들여 허기를 채웠었다.


Lunar가  힘겹게 산정상을 향해 올라오고있는 관광열차를 초점에 맞춰 한컷하고 있다.


와싱턴 주립공원에는 "Mount Washington State Park" 표지판이 선명히 새겨져 있었다.





특수한 열차의 Conductor, James씨가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해줬다.

증거를 남겨야 직성이 풀리는 기질이 그대로 나타나 있는 순간. 우리 일행은 이곳에 왔었다는 좌표를 찍은 셈이다. 


동력을 발생시키는 기관차의 모습.







바윗덩이로만 보이는 돌조각상은 자연적으로 발생하여 멀리서 보면 늙은 남자의 모습으로 보인다고 해서 여러각도에서 사진도 찍었는데.... 멀리서 볼수록 늙은 인자한 할아버지의 모습이었다. 맨아래에 자세한 내용이 표시되여 있다.




Conductor의 열차운행중에 근무자세. 앞을 응시하면서 단 1초도 헛눈을 팔지 않고, 긴장된 모습으로 열차를 움직이고 있었다.  근무자세를 보면서, 이늙은분이 펼생을 어떤 마음으로 근무에 임했을까?라는 엉뚱한 생각도 있었다.






케이블 카 탑승을 앞두고.....








자연적으로 형성된 늙은 노인의 형상이 이루어졌다고 설명되여 있는데...... 참 신기하기만 하다.

늙은 노인의 형상을 가장 잘 볼수있는 위치가 자세하게 설명되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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