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September 27, 2010

지지리도 가난하고 살기힘들었던 때의 삶자취가 지금은...세시봉이야기




몸둥이의 모형과 얼굴의 모습은 변했지만, 그들의 입을 통해서 흘러나온 리듬은, 그들이 60대 중반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그때나 거의 전연 변하지 않은 그음색 그대로 나의 귀를 즐겁게 해준, 기억통(Memory box)의 깊은 밑바닥에 쳐 박혀 있었던 기억을 되살아 나오게 하면서, 지나온 세월에 대한 삶의 회한과 안타까움과 TV와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Folk Song을 부르는 그들에 대한 동경과, 나자신에 대한 초라함속에서 하루 하루를 살아가 주었었던 시절의 희비가 교차하는 그때를 다시한번 생각케 해준 의미있는 그들의 쇼가 무쇠같이 변해 버린 나의 가슴을 뭉클하게 해주었고, 눈시울을 적시게 한 그런 마당이었었다.

Lunar와 나는 인터넷을 통해서, 요즘은 고국의 드라마를 비롯한 많은 프로그람들을 즐겨 보아 오고 있었는데, 오늘은 우연히 Lunar가 MC 유재석과 김원희가 사회를 보고 있는 "놀러와"를 연결시켰는데, 이게 바로 1970년대초 부터 당시의 고국에 막 밀려 들기 시작했던 Pop Song을 주로 불러 당시의 나처럼 젊었던 청춘들 사이에서 인기를 한몸에 받았었으면서도, 현재까지도 주옥같은 목소리와 새로운 노래로 국민들을 즐겁게도, 때로는 위로도 해주고 있는 같은 또래거나 한두살 아래인 4명의 가수들이 함께 출연하여, 당시의 사회상을 노래를 통해서 충분히 회상할수 있도록 해주는 값진 쇼를 두번에 걸쳐 펼쳐준 것이다. 특별히 며칠전에 지나간 '추석 한가위 특집' 프로로 방송된 것이었다.
그때는 장발단속도 심했었고, 국민들이 즐겨 부르는 대중가요들이 당국에 의해 금지곡으로 묶여 방송을 타지 못하고 그대로 묻혀 버리는 경우도 많이 있었다. 김민기의 '아침이슬', 송창식의 '고래사냥'......들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고, 그시대에 트로트 가수로, 국민들의 애환을 그녀의 노래로 같이 느끼게 해 주었던 이미자의 '동백아가씨'도 한때 방송을 타지 못했던 기억이 남아 있다.

그때는 군인들이 세상을 주므르는 시절이라, 흔희들 '군바리'들이라고 국민들 사이에서는 서로 쉬쉬 해가면서, 그들을 뒤에서 비난해 가면서, 숨소리를 죽여 가면서, 굶주린 배고픔을 헤쳐 나려고, 군대식에 따라서 불철 주야, 한손에는 총을 들고, 이북의 김일성 공산정권에 대항해서 싸워야 하고, 다른 한손에는 망치를 들고 국가재건 사업에 자의반, 타의반 몰입하던 때였었다. 이렇게 모두가 잘 살아 보겠다고 오직 하나의 목적을 향해 달리고 있는때, 당시로서는 퇴폐성이 짙은, 서양풍이 깊이 가미된 Folk Song을 부르는것은 시국정책에 역행하는것 쯤으로 보이기에 충분했었던 때였었다. 이러한 국내 사정에 비해 우리세대보다 조금 앞서 세계의 Folk Song계를 휩쓸고, 유럽은 물론, 특히 미국을 주무대로 활동했던 더벅머리 4중창단, 영국출신의 Beatles가 혜성처럼 나타나 젊은이들의 우상, 특히 여성들 사이에서 Concert때마다 아우성으로 열광,아니 광란의 도가니 속으로 빠져 휘청대던 뉴스가 짧막하게 비쳐지면서 유행을 했었고, 또한 당시 북미문화권에서 태어나서 성장하여, 한국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들도 Folk Song 보급의 유행에 앞장 섰던것으로 기억하고 이해 했으며, Beatles의 영향이 대서양과 태평양을 건너 한반도에 그후에 상륙했는데, 그영향을 당대 무명의 4인방 가수들이 '새시봉'에 모여 대담하게 받아들여 자기들 나름데로의 장르를 만들어 시대를 주름잡았던 것으로 기억을 하고 있다. 그때 열광하던 젊은이들의 모습을 오늘의 고국 젊은이들 한테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것으로 나는 이해하고 있다. 그때로 부터 벌써 거의 반세기가 흘러가 버렸음을 오늘 이프로를 보면서 회한과 아쉬움속에서 다시 느껴 봤다.

쇼에 참석한 4명이 당시의 가수들은, 그들의 옷차림이나 행동에서, 황혼기의 삶이 비교적 여유있게 살아가고 있음을 느낄수 있었다.
그들이 불렀던 노래들은 공전의 힛트를 해서, 당시 젊은 새대들은 거의 모두가 그들의 노래를 즐겨 부르면서, 당시 정권에 풍자적으로 저항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들이 시대를 빗대어 풍자했다고 하던 노래들, 머리가 길면 사회적 퇴폐라 해서 단속하는 경찰에 쫓고 쫓기다가 붙잡히면, 가위로 머리를 짤리고, 구류를 살고, 재수 없으면, 심한 경우에는 군대에 강제 징집당하기까지 했었던 그런것들은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들은 도저히 이해를 할수 없다는것을 안다. 그랬던 노래들을 당시의 가수들이 직접 TV를 타고, 그때의 어려웠던 상황을 설명해 가면서 들려줄때는 나 자신도 가슴이 뭉클해 오고, 경제발전의 초석을 다지기위해 온나라가 매진하고 있을때, 행여라도 기강이 해이해 질까봐, 고삐를 꽉 조일수 밖에 없는 조치였음을, 그후 많은 시간이 흘러간뒤에야 깨달을수 있었다. 그렇게 젊은이들이 젊음을 발산할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막아가면서 경제 발전을 위해 밤낯을 가리지 않고 뛰어왔는데도, 경제적으로 오늘날 처럼 부강해 지지 않은 상태가 계속 이어져 왔었다면, 억눌려 살면서 젊음을 보냈던 세월들이 아깝고, 그원망을 계속해서 당시의 정권에 화살을 돌리면서 비난 했을수도 있었을텐데, 그러한 희생(?)의 대가로 오늘날을 사는 젊은 세대들은 잘먹고, 자유분망하게 주위의 눈살에 개의치 않고 살아가고 있음에 흐믓한 마음이다.

당시 그들의 활동무대는 명동에 있었던 "새시봉"이라는 음악 감상실이었었다. 사회자의 소개에 따르면, "새시봉의 전설적인 보스이며 맏형인 조영남", "새시봉의 방랑자요 수도승 송창식", "새시봉의 최고의 귀공자 윤형주" 그리고 "새시봉의 귀여운 막내 김세환" 이라고 설명했다. 4명 모두가 "새시봉' 음악감상실을 통해서 가수로 데뷔 했었다고 잊혀졌던 과거를 일깨워 줬다. 그들이 쇼를 진행하면서, 당시의 노래들을 불러주는 분위기에 휩싸여 있는 동안만큼이라도 당시의 젊은세대로 돌아가서 과거라는 기차를 타고 달리면서, 웃기도하고, 설명이 안되는 서러움에 가슴이 막히기도 하고, 같이 불러 보기도하고, 세월이 덧없이 바삐 흘러갔음에 회한이 서리는것을 느꼈고, 잊혀질려고 했던 조국에 대한 향수 그리고 애국심.... 오직 가난을 물리치고 부강한 나라를 건설해야만 했었던 절대 절명의 시대적 요구와, 풍족한 경제적 유산을 물려주기위한 목적때문에, 욕구분출을 지금처럼 마음껏 할수 없이 생활터전에서 열심히 뛴 결과가, 오늘을 사는 젊은 세대들을 통해서 여유롭게 비쳐지고 있음에 인생선배로서의 보람을 한껏 느낀 프로 였었다고 자신하고 싶다.
조용남, 송창식, 윤형주 그리고 김세환 4명의 출연 가수들이 앞날에도 오늘 보여 주었던 패기와 자신감으로 살아가기를 기원해 본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12/09/2011120901381.html?news_Head2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10/26/2010102600413.html?Dep1=news&Dep2=headline1&Dep3=h1_12

http://news.joins.com/article/486/4490486.html?ctg=1200&cloc=home|showcase|special

http://news.joins.com/article/855/4488855.html?ctg=1200&cloc=home|list|list2

http://news.joins.com/article/aid/2010/09/24/4018107.html?cloc=nnc&ctg=1700

http://world.ahaidea.com/video/player.asp?idx=29545

http://world.ahaidea.com/video/player.asp?idx=29005

Friday, September 24, 2010

추석은 무척이나 기다려졌었던 명절이었었는데....







송편 한접시를 $10달러에 구입하여, 시골 카테지로 오던날 Lunar와 함께 차안에서 목에 넘기면서, 아 오늘이 추석이구나 라고 느꼈다.
고국에서 날아오는 뉴스에 보면, 대통령께서는 추석 하루전날 인기프로 '아침마당'에까지 바쁜 스케쥴을 쪼개어, 부부가 함께 출연하여 국민들에게 풍요로운 민족의 대명절을 뜻길게 보내시길 기원하면서, 청와대에서의 평상생활을 담담하게 들려주는 프로도 인터넷을 통해서 보았었지만,
이곳의 추석명절은, 여느때와 다름없는, 의미를 크게 부여하지 않는, 그저 추석절이구나 정도로 지내온 세월이 무척 길기만 하다.

아직 어렸을때, 초등학교(당시에는 국민학교)에 다닐때의 추석명절을 기다리면서, 추석날 대식구가 조상님들의 묘소가 있는 선영으로 아버님을 선두로 당신의 자식들이 줄을 이어 뒤따라가서, 준비해간 간단한 음식을, 묘앞에있는 상석위에 자리를 깔고, 그위에 차려놓고 두번씩 절하면서, 조상님께 감사함을 드릴때, 우리 철부지들은 절을 하면서 서로 옆에 있는 또래의 형제들과 사촌들, 그리고 집안의 식구들과 의미도 모르는 절(Bow)을 따라 하면서 낄낄거리면서 웃고, 조상님에 대한 감사보다는 오랫만에 먹어 볼수 있는 별미에 더 신경을 썼던, 그런 때가 새삼 있었는데..... 시간상으로 따져 보면 반세기가 훨씬 지나갔음을 속절없이 느낀다.

6/25 사변후의 생활은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모두가 초근 목피 하기에 여념이 없이, 모든 국민들이 그렇게 어렵게 살았었다. 조상님들에 대한 후손들의 정성은, 추석명절에 최상의 별식을 준비하여 조상님께 제사 드리고, 식구들끼리 오랫만에 흰쌀밥에 별식을 먹을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기에 나의 어린 기억속에는 산해진미를 쌓아 놓았던것 쯤으로 기억이 된것같다. 지금의 시각에서 쳐다 본다면, 기껏해야 떡과 좀 형편이 나은 집에서는 유과정도가 추가되고, 생선 조기, 그리고 나물종류들이었을 것이다.

지난번 고국을 방문하여 조상님 선영을 성묘 갔을때, 양지바른 산언덕에 위쪽으로 부터 모셔졌던 우리 형제의 직계로 4대조인 고조 할아버지를 시작으로 그아래로 부모님 묘까지 모셔지고 그바로 밑으로는 먼훗날 우리 형제들이 차지하게될 자리가 있는, 그리고 앞쪽으로는 아담한 시골 촌락이 보였고 좌우 뒷쪽으로는 인위적으로 만든 높지않은 언덕으로 둘러 싸여 있었던 기억속의 그모습이 완전히 달라진, 납골묘라는것으로 바뀌어져 있었고, 선조님들의 묘는 흔적도 없이, 넓은 공간 가운데에 대리석으로 만든 집이 있었다. 즉 납골묘라는 것이었다. 조상님들의 유골을 한데 모아 그안에 모셔 놓고, 돌아가신날을 기준으로 매년 모셔지던 제사도 이른봄철의 한식날에 모든 후손들이 한데모여 한번에 지낸다는것을 알았었다. 현대를 살아가는 후손들의 바쁜 생활에 그렇게 밖에 할수 없었던 결정에 조상님들도 이해 하실거라고 이해 했었다. 나를 비롯한 아내와 두아이들은, 그곳에 계시는 후손들이 납골표로 모시기로 결정하고 통고해 주는것만으로도, 충분했다고 생각해야만 했다. 우리는 머나먼 이국나라에 사는 어찌보면 이방인(?)일수도 있기에.... 고급화강암으로 비석을 세우고, 거울처럼 매끈하게 깍아서 조합시킨 대리석돌들은 위엄있게 납골묘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고, 정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 보니, 여러층의 선반이 설치되여 있었고, 위로부터 조상님들의 유골이 조그만 항아리에 모셔져 진열되여 있고, 이름이 새겨져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가운데의 납골묘를 중심으로 넓은 공간의 바닥(Floor)에도 거울처럼 잘 다름어진 대리석으로 깔아놓아 후손으로서의 품위 유지를 위해 노력한 흔적이 잘 보였었다.

막내 동생이 좋지 않은 납골묘에 대한 얘기를 해 주는게 아닌가. 다름아닌 이장(Tombs must be removed to other Place)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새로 건설되는 호남 고속철도가 조상님들이 모셔져 있는곳을 관통하게 되여 있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물론 이장비를 포함한 경비는 국가에서 보상해 준다고 했다. 현대 문명의 발달에, 후손들의 생활은 편리해 졌겠지만, 그핑계로 제사밥도 제때에 얻어먹지 못하시고, 궁여지책으로 일년에 한번 공동으로 얻어 자시는판에 이제 또 다시 자리를 옮겨야 한다니.....조상님들이 지하에서 뭐라고 생각하실까?
그리고는 까맣게 잊어 버리고 지내 왔는데, 다시 추석이 되니, 막내 동생이 이멜을 보내 왔다. 멀리 떨어져 사는 나와 딸린 식구는 별도로치고, 고국에 남아 있는 형제들마져도 다 모이지 못한 속에서 성묘를 다녀 왔다는 내용이다. 곁들여진 사진속의 납골묘는 여전히 번쩍번쩍 빛나고 있고 깨끗해 보였다. 관리하는분의 정성이 보통이 아니겠다 싶게 느껴졌다. 다시 동생에게 물었다. 조상님들 모신 납골묘는 아직 다른곳으로 옮겨지지 않은것같은데, 잘 준비되고 있느냐고 말이다. 이에 동생의 대답이 이미 그곳에서 멀지 않은곳으로 이장하여 전에 납골묘보다 규모가 조금 더 크게 건축하여 모시고 있다는 것이다. 사진속에서는 지난번 성묘때 보았던 그모습이 그대로 보이는것 같아서 물었었는데.....
납골묘를 전문적으로 건축하는 업자를 통하여 모든것이 완료 됐었겠지만......수고를 했을 형제분들의 면면이 떠 오르면서도, 한편 이방인이 된 기분도 들었다. 이멜 한통으로, 전화 한통으로라도 사전에 납골묘 이전을 알려줄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었을까?라는.

추석 고유명절의 깊은 뜻을 잊고 살아온 세월이 너무도 길어, 두아이들은 고사하고 나자신도 평일처럼 살아왔기에, 이번 추석도 동생의 이멜이 없었더라면 평일처럼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어쩌면, 비록 한국식품점에서 구입한 것이기는 하지만, 송편한쪽도 먹어보지 못한채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제갈길을 가고 있는 두아이들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며칠전 아이들에게 추석인데 같이 식사라도 했으면 좋겠다는 전화를 했을때, 친구들과의 약속때문에, 일때문에....등의 핑계로 그기회마져도 얻지를 못했었다. 그뒤로는 우리부부도 새까맣게 잊은채 지냈었다. 두아이가 친구들이라도 만나서 시간을 갖게 된다면, 우리 부부보다 더 자상한 부모를 둔 친구들로 부터 추석에 대한 얘기를 나누면서 좋은 시간 갖었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이다음에 다시 고국을 방문하게 된다면, 이번에는 좀더 진지하게 조상님께 늦은 인사라도 드리고 싶다. 어렸을적의 성묘는 대식구였었는데, 사진에서 보는 식구는 불과 몇명뿐이었다. 문명의 발달을 좋아해야 할지? 아니면 조상님들을 더 정성으로 모실수 있었던 옛날을 그리워 해야 할지? 조상님께 죄송할뿐이다.

Thursday, September 23, 2010

지도자의 말 한마디에 소속원은 몸전체를 움직이는........토론토시장 선거

오는 10월 25일에는 온타리오주내 지방자치단체장 선거(Mayor)가 실시된다. 온타리오주의 수도가 있는 'Toronto Mayor' 는 Premier of Ontario에 버금가는 Power의 핵심자리이면서도 그정책이 직접 시민들의 생활에 영향을 끼친다는 점이 특이 하다고 하겠다. 그래서 온타리오주의 정치꾼들의 관심은 온통 토론토 시장이 누가 될것인가?에 쏠려 있는것이다.

지금까지 언론에 발표된 40 여명이 넘는 후보들중에서, 가장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후보는 George Smitherman으로 그는 후보에 출마 하기전 현온타리오 자유당 정부내에서 장관과 부수상으로 봉직 하다가, 전부 반납하고 더 좋은 토론토시를 만들기 위한 변으로, 시장에 출마 했던 것이다. 다른 한분은 Rocci 라는 분이 있고, 마지막 다른 한분은 Rob Ford인데, 그는 시장에 출마 하기전에는 토론토 시의원으로 오래 봉직했던, 처음 출마를 선언했을때는, George의 명성에 가려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지 못했던 사람이었다. 나머지 다른 후보군은 아직까지는 언론의 흐름을 타지 못하는 명목만의 후보로 선거를 마칠 공산이 현재로서는 그렇게 보이는 존재들인것 같다.
시장 후보등록은 불과 약 2주전에 마감 했으나, 비공식 선거운동 비슷한 각후보들의 정치적 행보나 모금 운동은 이미 금년초부터 뜨겁게 언론에 오르내리곤 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후보 등록마감이 끝난 2주전 부터 공식적인 여론조사결과가 언론에 나타나면서 부터 Rob Ford가 어느새 선두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보면서 나자신도 그랬지만, 많은 유권자들이 놀랐을 것이다.

그는 정치적 성향으로 보아 Conservative Party 라고 한다. 시의원당시 그의 행적을 보면, 별로 큰 두각을 나타낸것 같지는 않았지만, 대다수의 시의원 성향이 Liberal 아니면 NDP였으나, 그는 각 시원들이 사용할수 있는 Allowance의 집행면에서 보면, 확연히 다른 의원들과 비교가 될수 있음을 본다. 법적으로 정해진 한도액을 많은 의원들이 수많은 명목으로 거의 다 사용 했지만, 그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다시 시금고에 반납하면서, 그래도 시의원직은 어느 시의원보다 더 충실히 이행 했노라고 하면서, 예산 낭비를 간접적으로 비난하기도 했었다.

여론 조사에서 나타난 결과를 보고, 쉽게 Mayor를 당선 시킬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던, 정치적 친정인 온타리오 자유당 정부는 심한 충격에 빠져 헤매더니, 드디어 친딸이나 다름없는 George Smitheman을 당선 시키기위해 온주 정부로서 지원 할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서 선거운동을 도울 것이라는 내용의 신문기사가 며칠후 앞면에 대문짝 만하게 실려 있었던 기억이 난다. 시장 선거에 Ontario Political Party중에서 공식적으로 자기네당 성향이 짙은 후보를 밀고 지원해 준다는 언론의 발표를 아직까지는 못 보았는데, 온주 자유당 정부만이 그렇게 공식적인 입장을 나타낸것도 이해가 안되지만, 지금 까지의 관행으로 보면, 지방자치 단체장, 즉 시장선거에서는 법으로 소속정당을 못밝히게 되여 있는것으로 나는 알고 있기에, 온주 정부의 지나친 간섭이 아닐까?라고 혼자 생각해 보기도 했었다. 여기서 또 이해가 잘 안되는점은, 이러한 집권 자유당의 공식적인 입장 지지에도 다른 정당인 보수당이나, NDP에서 공식적인 반응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점이, 본국의 정치판과 다른점이 아닐까?라고 생각해 보기도 했다.

토론토시의 행정을, 2 Term을 하고 물러나게 되는 현시장의 실적에서 스크린 해 본다면, 한마디로 깨진독에 물붓는 식의 행정이었던 같다. 현시장은 NDP 성향이 짙은, 전에 내가 개인사업을 하고 있을때 그지역을 대표하여 시의원을 여러번 했다가 시장을 해왔던 분인데, 경제적 발전을 위한 기초나 행정을 폈다기 보다는 행동은 없고, 목소리큰, 말만 많은 몇사람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 행정을 했던것으로, 나는 이해하고 있는 그런 분이다. 예를 들면 차량이 폭주하는 좁은 시내 도로에 차선을 늘려도 모자랄 그런곳에, 오히려 차선을 없애고, 그곳에 Bike Path를 만들기 위해 시예산을 투입하고, 차량은 밀려 Bumper to Bumper로 거북이 걸음을 하면서 뿜어내는 매연까스로 대기를 오염 시키고 있는데, 바로 옆에 만들어진 자전거길은 사용자가 거의 보이지 않는, 현실을 무시하는 정치꾼이라고 보이고 있다.

보수성향이 짙은 Rob Ford가 현시장의 시행정에 식상하여, 그반대 급부를 얻어,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것은 아닐까?
시민들은 높은 세금에 치를 떨고 있다. 현 온타리오 자유당 정부가 약 3년전에 특별법을 만들어, 토론토시를 특별시로 지정해 주면서, 필요할시는 시조례나 또는 특별법을 만들어 별도의 세금을 시자체적으로 징수 할수 있다는 길을 터준 것이다. 그법이 공포된 그해에 토론토시는 현 David Miller시장의 주도하에, 좌파성향이 짙은 시의원들의 지지로, 자동차등록세, 재산양도세를 신설하여 시민들의 주머니를 더 빈털털이로 만드는 결과를 초래 했었던점을 유권자들이 가슴속 깊이 기억하고 있다가 이번 선거에 반영 시키는것으로 추측 된다. 허지만 선거는 선거를 마친후 뚜껑을 열어 보기 전까지는 속단은 금물이기에.....

그런데 오늘 아침 비교적 중립적이면서도 보수쪽을 대변하는 토론토의 주요 일간지 하나가 선두 주자인 Rob Ford에 그의 자질에 문제가 많이 있음을 조목 조목 따져 장문의 기사를 실었다. 그내용을 요약해 보면, 그의 정치가로서의 정직성과, 리더쉽인것 같다. 실적에 대한 비판 보다는 있지도 않는, Rumor성의 내용을 검토없이 발표해 버린다는 것이다. 그렇타면 그가 시장이 된다해도 기대를 할수 없을것 같아 안타깝다.
며칠전에는 Toronto Star 가 사설에서 공개적으로 그의 시장되는것을 반대하는 기사를 실어 읽어본 기억이 생생한데.....그때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겼었다. 왜냐면은 Star지는 자유당 성향과 NDP의 정책을, 선거때마다 지지해 왔음을 알고 있었기에 말이다.
이렇게 언론의 질타를 받으면 그의 남은 선거운동 기간에 많은 변수가 있을것으로 예측된다. 그나저나 납세자의 한사람으로서, 세금을 덜 내고도 편안한 삶의 보살핌을 받을수 있게 하는 사람이 시장으로 선출 됐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바꾸어 얘기 한다면, 지도자인 '시장(Mayor)'의 말 한마디에, 갈대밭의 갈대가 폭풍이나 미풍에 대책없이 휩쓸리듯, 방향이 좌로도 되고, 우로도 된다는것을 깊이 명심하고, 제발 표를 얻기위한 사탕발림식의 지킬수 없는 공약남발은 지양하고, 지도자로서 내가 내뱉는 한마디가 어떻게 그속에서 삶을 살아가는 시민들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먼저 깊이 사고하고 행동에 옮길줄 아는 후보가 Mayor로 선출 되기를 바랄뿐이다.
여기에 오늘 아침 신문기사를 옮겨 본다.


http://www.theglobeandmail.com/news/national/toronto/marcus-gee/can-we-trust-rob-ford-a-guy-who-gets-his-numbers-wrong/article1719778/

Monday, September 20, 2010

북한의 사과(Apology)받아 내는것은 물건너 가는가?

시간이 흘러 가면서, 기억이 상실되여서 일까?. 아니면 주위를 둘러싸고 있으면서, 조언을 하는 보좌관들의 계속되는 쇠뇌에 본래의 주장과 판단이 흐려져서 일까?. 그렇게도 단호하게 북괴의 사과를 꼭 먼저 받아 내고, 그다음에 북괴에 식량원조를 하든, 대화를 재개 하던가 하겠다고 언론에서 맹세 비슷하게 하던 MB의 모습을 지금도 뚜렷히 기억하고 있는데...... 바로 천안함이 북괴의 Torpedo에 의해 폭침됐을때의 MB를 비롯한
정부의 반응이 그랬었다는 말이다. 이에 대해 아직까지 한마디의 사과 비슷한 북괴의 반응을 들어본 기억은 전연 없는데, 남한 정부는, 민간인 차원에서의 원조는 할수 있다라는 식으로 운을 떼면서, 대한 적십자사를 통해서 어제 북한으로 원조되는 많은 쌀이 차량에 실려 휴전선을 넘어가는 기사와 사진을 보면서.... 앞으로도 계속해서 북괴의 도발은 끝이지 않겠구나라는 자조석인 한숨이 나도 모르게 가슴으로 부터 새어 나옴을 참을수가 없었다. 이원조에 대한 북괴의 반응은, 원조량이 적다는 핑계와 투정을 부리면서, 한편으로 북괴는 휴전선 부근에 대포를 증강 배치 하여 남한을 겨냥하고 있다는 뉴스가 전세계를 향해 쏟아져 나왔고, 지난 10년 동안을 지배했던 남한의 좌파 정권시, 국방백서에서 삭제됐었던 남한의 '주적'은 북한을, 곧 발행하게 될 국방백서에 뚜렷히 다시 북한이 '주적'임을 명시 할것으로 예측해 왔던 희망을 헌신짝 처럼 버리고, 명시하지 않을것이라는 내용의 인터넷 뉴스를 어제 보았었다. 그런데 9월 16일자 '와싱턴 포스트'의 기사 내용을 보면, 그렇게도 확고하게 천명했던 MB의 의지가 슬며시 Condolences로 바뀐것으로 파악된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미국도 그러한 태도 변화에 적잖게 실망(?)하고 있는것 같다. 기자의 분석으로는 주위에서 계속적으로 북괴와의 긴장상태가 오래 가서 좋을게 없다는 충언(?)에 쇠뇌 된것이 원인이었던 것으로 본다고 했다. 한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이, 북괴의 6자회담 복귀 발언에 내심 기대를 걸면서 물밑접촉을 하고 있지만, 결과는, 지난 수년간 겪어온 경험으로 볼때,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한채 두번 세번 모임 정도에서 다시 파국을 면치 못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기간 동안에 북괴는 챙길것을 이미 다 챙겨 갈것이기 때문이다. 다람쥐 체바퀴 도는식의, 아무런 성과도 없는, 회담을 빌미로 덕을 보는것은 김정일과 그 Regime일것이고, 죽어나는것은 고국 남한의 세금납부자들과, 이북의 죄없는 동포들일 뿐이다. 왜 야당을 포함한 정치꾼들은, 이러한 북괴의 계략을 다 알면서도, 계속 밀어 부칠려고 할까? '사과'는 고사하고 '조의'를 표한다는 북괴측 인사말조차도 받아내기는 물건너 간것 같다. 목숨을 바쳐 국가를 지킬것이라고 누가 감히, 이러한 용두사미식의 정치꾼들을 보면서, 용감히 나서겠는가? 46명의 젊은 해군장병들의 순국이 안타깝기만 하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인의 장막속에서 고군분투하는 MB에게 연민의 정이 일어난다.

아래의 글은 조국 남한의 정치적 지도자와 야당의 정치꾼들이 꼭 읽고 숙지 해야 될 절박한 내용의 글이다.



"북 고위간부의 편지"

북 고위간부의 편지
"김정일정권 아닌 北인민 도와야"

나는 현재 북조선의 중요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신변의 위험 때문에 저의 구체적인 인적 사항을 말씀드리지 못하는 점 량해(양해) 바랍니다.

제가 위험을 무릅쓰고 이렇게 조선일보 독자들에게 편지를 쓰는 이유는 한국정부의 대북 정책과 친북세력들의 행동이 너무 한심스러워 민족의 장래를 위해 이젠 할 소리를 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 아시다시피 북조선 인민들은 1995~1998년 소위 「고난의 행군」 시기에 300만이 굶어죽고 120만이 유랑 길에 나서면서 김정일에 대해 더 이상 미련도 애정도 없게 됐습니다.

오직 남은 것은 김정일에 대한 뿌리 깊은 증오뿐입니다.

현재 북조선 내부에는 공개할 수 없지만 많은 반정부세력들이 존재하고 있으며, 때가 오면 민족반역자 김정일을 처단하고 새로운 국가를 건설할 엘리트들이 서서히 자라나고 있으며, 뜻이 있는 동지들이 이 일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가 닥쳤을 때 김정일을 무너뜨릴 정말 좋은 기회로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김정일이 혼란스러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죄 없는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총살하고 관리소(정치범수용소)에 보내는 등 무자비하게 인민들을 탄압했기 때문입니다.

인민의 원성이 높은 곳에 반항의 기운 또한 높아지는 것은 역사의 진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고난의 행군」시기에는 정치ㆍ경제ㆍ문화ㆍ국방 할 것 없이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와해됐으며 많은 인민들이 중국 땅으로 떠났습니다.

우리는 당시 더 많은 인민들이 탈북해 중국으로 떠나길 원했고 국제사회는 김정일의 목을 더 조여줄 것을 바랬습니다. 만약 이러한 상황이 현실로 됐다면 아무리 잔인한 김정일정권이라도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남조선 정부와 국제사회의 김정일정권 지원으로 북조선의 반정부세력에게는 가혹한 시련이 다시 찾아오게 됐습니다. 중국으로 떠났던 불쌍한 탈북자 수십 만이 북조선으로 끌려와 공개처형장에서, 보위부 감옥과 관리소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탈북자들이 북조선에 끌려와 처참하게 죽었는지 생각만 해도 분통이 터집니다. 게다가 남조선정부는 김정일에게 무엇을 빚졌는지 계속해서 김정일 살리기에 나섰습니다.

지금까지 북한으로 흘러간 딸라(달러)와 지원물자들이 어떻게 쓰였는지 구체적으로 밝힐 수 있지만 구차하게 그런 말은 하지 않겠습니다. 인민의 식생활에는 조금도 관심 없는 김정일정권이 외부의 지원을 인민에게 쓰지 않고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탕진했다는 사실은 분명하기 때문에 이것을 꼭 강조하고 싶을 뿐입니다.

남조선에서는 마치 김정일정권이 변화하기라도 한 것처럼 자꾸 김정일을 미화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고난의 행군」 이후 북한의 변화를 간략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2002년 7월 「경제관리개선」조치는 시장의 물가를 현실화 시키고 사실상 유명무실화된 배급제와 공급제를 얼렁뚱땅 없애고 인민에 대한 국가의 책임으로부터 개인의 책임으로 전가시킨 것 외에는 특별한 내용이 없습니다.

장사를 하게 하려면 자유를 주어야 하지만 현재 북조선에는 개인장사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기관ㆍ기업소에 월 1만~3만원을 벌 수 있는 사람은 당국의 허락을 받고 장사를 하는 것이고, 그럴 능력이 안 되는 대다수 근로자는 통제속에서 배급도, 월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지만 직장생활을 해야 합니다.

최근 북조선에서는 「남조선 연속극」 열풍이 불어 집집마다 가택수색이 벌어지고 출퇴근 통제도 더욱 강화되고 있습니다.

개인농을 할 것이라는 약간의 기대도 있었지만 그것도 현재는 흐지부지 된 상태입니다. 올 7월 협동농장의 토지를 떼어 기관ㆍ기업소에 분할할 것이라는 말이 나돌았지만 아직 실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개인들이 산에 뚜져놓은(개간해 놓은) 소토지(뙈기밭)에 한에서 300평까지 농사를 허용했으며, 그 이상의 토지에 대해서는 국가가 관리하게 됐습니다.

물론 죽기 살기로 대항하는 주민들이 당국의 통제에도 불구하고 수천 평씩 땅을 관리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토지사용료로 세금을 물고 나면 남는 게 없어 인민들의 원성은 더 높아가고 있습니다. 땅을 뚜져 사는 사람들은 그나마 굶어죽지 않을 만큼 농사지어 스스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농민들은 가을만 되면 군량미로 쌀을 뜯기고, 간부에게 뜯기고 나면 남는게 없어 이제는 자기 살길은 스스로 찾고 있는 형편입니다. 모두 도적으로 변해 재간껏 훔쳐놔야 굶어죽지 않기 때문에 농민 스스로가 모두 도적으로 돌변하게 됩니다.

그래서 가을만 되면 협동농장의 토지는 쭉정이만 남게 됩니다. 황해도의 올해 작황이 좀 좋아졌다고 하지만 인민군대 군량미를 작년보다 더 떼어간다는 소문 때문에 벌써부터 농민들의 원성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요즘 인민군대도 굶주릴 정도로 다시 식량난이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인민들은 인민군대를 「망나니군대」ㆍ「깡패」ㆍ「도적군대」ㆍ「토벌군」(일제시대의 토벌대를 빗댄 말)으로 부르고 있으며 먹지 못해 영양실조에 허덕인다 하여 「영실군」(영양실조군대)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매일과 같이 민가를 습격하고 사람을 때려 군대로 인한 민원이 끊이지 않습니다. 굶주림으로 인민군대의 기강은 무너지기 직전입니다.

북조선은 점점 구제불능의 부패국가로 멸망의 가속도가 붙은 상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김정일은 어떻게 하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처형과 고문 등 가혹한 형벌을 더 가하고 있으며, 탈북자에 대한 처벌도 최근엔 아주 강화하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의 여론 때문에 공개처형은 잘 하지 못합니다.

외부 정보에 대한 인민들의 관심이 높아져 남조선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고위층의 사람들은 손금 보듯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중간급의 간부들이나 젊은이들까지도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을 듣고 정보를 습득하고 있습니다. 누가 김정일을 돕고 있고 누가 북조선의 자유와 인권을 위해 싸우는지 우리는 다 알고 있습니다.

더 많은 인민들이 중국으로 탈출해 김정일과 대항해야 하겠으나 현재 중국과 한국정부가 탈북자들을 홀대하고 이들을 구출하는데 전혀 관심이 없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정세 때문에 북조선 인민들은 도망칠 수도 없는 처참한 처지에 놓여, 앉아서 굶어죽거나 맞아죽는 날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때문에 현재 한국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북한의 뜻있는 간부들과 반정부세력들은 아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남한정부에 대한 증오의 골은 더 깊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김정일은 갈 데가 없습니다. 장담하건데 이제 김정일을 좋아하는 북조선 인민은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무식한 인민군대를 내세워 인민을 총칼로 탄압하지만 이제 그의 운도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인민군대도 자기 부모형제가 굶어죽고 있는데 인간의 머리를 가진 자라면 어찌 이러한 형국을 정상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민족이 가장 어려울 때, 우리가 형제라고 믿고 있는 남조선 인민들이 김정일정권을 무너뜨리고 북조선 인민에게 자유와 해방을 주자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 정도 이야기하면 다 아시리라 생각됩니다.

개성공단은 김정일의 모자라는 외화를 벌기 위한 「창구」라고 보면 정확합니다. 금강산관광도 마찬가지입니다. 김정일은 남조선의 돈이 필요한 것이며, 남북교류는 김정일에게 얼마만큼의 돈이 들어오는가에 따라, 즉 「장군님」의 만족도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돈을 많이 주면 남북관계는 좋아지고 그렇지 않으면 그 반대일 것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북조선과의 관계가 아니라 김정일과의 관계라고 말해야 옳을 것입니다.때문에 이젠 김정일의 목을 조이지 않고서는 더 이상 북조선 인민의 불행을 막을 수 없습니다.

인민군대를 해체시키고 보위부를 약화시키자면 이젠 돈줄을 막아야 합니다.
미국과 일본ㆍ남조선이 힘을 합쳐 김정일을 압박한다면 망하든지 아니면 개혁ㆍ개방을 하든지 그도 선택할 것입니다.

다시 한번 부탁하건대 현재 북조선 인민들이 얼마나 비참하게 노예처럼 살고 있는지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김정일을 돕는 자는 훗날 반드시 북조선 인민들이 정의의 심판대에 세울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이 편지는 중국으로 출장나온 한 북한관리가 재중동포들을 통해 조선일보에 자신의 심경을 담은 편지를 팩스로 보내온 것이다. 그는 신변안전 때문에 필적이나 인적사항에 대해서는 비밀로 해줄 것을 부탁했다.

김성길 가명 (현재 북한 거주)



http://news.donga.com/Society/3/03/20100925/31384478/1

http://monthly.chosun.com/

http://news.donga.com/Politics/3/00/20100925/31385516/1

http://news.joins.com/article/300/4469300.html?ctg=1003&cloc=home|list|list1

http://www.washingtonpost.com/wp-dyn/content/article/2010/09/16/AR2010091606933.html

Friday, September 17, 2010

제빵왕 김탁구를 보면서, 나를 많이 돌아봤다. 그런 세상이라면...


그런 세상에서 우리가 공동 생활한다면, 문단속이, 상대방을 쓰러 뜨리려는 야합이, 더 넓게는 전쟁이 우리를 피해 달아날것 같았다.
내가 권력과 가진자들틈에 끼어서 살아보지 못한 삶을 살아와서 였을까? 마약중동이라는 말을 많이 들으면서 살아왔고, 또 그런 병자를 여러번 보면서 오늘에 이르른 나의 삶의 경험에서 본다면, 어느 쪽이던 간에 한번 발을 들여 놓으면, 차차 본인 자신도 모르게 그속에 젖어 들어, 정상적인 시각으로 후각으로 판단하기가 무척 어려워 진다는것이다. 불의인지 알렴서도, 공평하지 않은 행동인지 알면서도 그것을 합리화 시킬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하는것을 많이 보아왔고, 우리가 몸담고 있는 사회가 그런 분위기속에서 돌아가고 있기 때문일것이다.

김탁구는 불의에 맞서기 위해서는 그것을 물리치기위한 자기 수양과 실력이 무기임을 일찌기 깨우쳤기에, 감당키 어려운 시련을 극복했다.
레이건 대통령의 " 우리가 즐기는 자유는 그냥 얻어지는것이 아니다. 이를 지키기위해서는 그이상가는 힘이 필요하다"라고 언급했던 기억이 난다. 그길이 공정한 사회, 공평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방법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세상사는 항상 상대적이기에, 그말에 나는 오래전부터 동감하면서, 삶에서도 그길을 걸어 가려고 했고, 지금도 그길을 걸어가고 있다고, 누가 물어 본다면,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항상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는것은 '그래도 다시 걸어왔던 길을 되돌아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라고. 그러나 지나온 삶의 발자취를 되돌아 보면, 항상 남는것은 후회뿐인것을 어찌 하랴.

조국의 복잡한 사회에 이번 드라마가 청량제 역활을 충분히 했다고 본다. 일회성으로 끝나지 말고, 그정신이 생활화 돼서, 지금보다 훨씬더 누구나가 긍정할수 있는 공정한 사회가 이어졌으면 하는 바램 간절하다. 특히나 고국의 정치꾼들, 그들도 집에서는 가족들과 함께 이 드라마를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느꼈을 것이다. 이북에 구호품으로 보내준 쌀이, 군대의 군량미로 전용됐었다는 뉴스가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는데도, 그래서 그양식을 먹은 김정일 군대가 천안함을 격침 시켰는데도, 한마디 항의나 응징에 대한 언급은 없이, 그영향권에 깊이 빠져 있는 야당의 정치꾼들과, 그래도 퍼주어야 된다라고 떠들어 대는 그사람들에게 꼭 필요했었던 드라마였다고 믿는다.

오늘 고국의 일간지중에서 눈에 띄는 사설이 계재 됐다. 여기에 그전문을 옮겨 본다.



[정진홍의 소프트파워] 세 가지 빵을 기억하라 [중앙일보]

2010.09.17 19:08 입력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빵’은 남을 생각하는 빵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빵’은 새로 도전하는 빵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빵’은 나다움을 담아낸 빵
# 그제 종영된 KBS-2TV 수목드라마 ‘제빵왕 김탁구’는 그냥 스쳐 보낼 수 없는 뭔가가 있었다. 특히 ‘세 가지 빵의 화두’가 그것이다. 팔봉선생(장항선 분)이 극중인물 김탁구(윤시윤 분)와 구마준(주원 분)에게 경합 과제로 던진 첫 번째 화두는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빵’이었다. 탁구는 자신의 배고팠던 시절을 떠올리며 시장통의 한 아이를 위해 빵을 만든다. 비록 넉넉하고 질 좋은 재료도 아니었지만 탁구가 만든 보리밥빵은 ‘세상에서 가장 배부른 빵’이었다. 거기엔 남을 위하는 마음이 담겼기 때문이다. 단지 내 배만 부른 빵은 진짜 배부른 빵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그 빵을 먹일 때 차오르는 마음의 포만감이 있어야 진짜 배부른 빵인 것이다.

# 팔봉선생이 던진 두 번째 화두는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빵’이었다. 먼저 팔봉선생은 빵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 생각하느냐고 질문을 던졌다. 탁구와 마준은 빵을 부풀어 오르게 하는 ‘이스트’라고 했다. 그러자 팔봉선생은 그 ‘이스트’ 없이 빵을 만들어 보라고 주문했다. 그들에게 그것은 새로운 도전이요 모험이었다. 결국 탁구는 이스트 없이 청국장 등 온갖 발효식품들을 동원해 빵을 만드는 힘겹지만 독특한 경험을 한다. 비록 힘들고 곡절 많은 과정이었지만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빵은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빵’이었다. 거기엔 새로움에 대한 도전과 모험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 마지막으로 팔봉선생이 던진 화두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빵’이었다. 하지만 이 화두는 스승 팔봉선생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유언이 되고 말았다. 과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빵’은 어떤 것일까? 그 화두는 삶의 숙제로 남았다. 스승인 팔봉선생이 돌아가시기 직전에 탁구는 말했다. “스승님, 저는 명장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자 팔봉선생은 숨을 몰아쉬며 힘겹게 답했다. “애써 명장이 되려 하지 말아라. 세상은 겪어내는 거다. 겪어낸 삶의 희로애락을 모두 담아 너만의 빵을 만들어라. 그러면 된다. 그것으로 족하다.”

# 그렇다. 명장은 기술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나다움, 자기다움을 담아낼 때 비로소 명장이 되는 것이다. 탁구가 드라마의 끝 대목에서 아버지가 물려준 회사를 누나에게 넘겨주고 자신은 팔봉빵집으로 돌아와 바닥에서부터 다시 자기 자신을 걸고 그만의 빵을 만들어 가는 모습은 그래서 더욱 감동적이다. 자신이 겪은 모든 것을 담아 가장 자기다운 빵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빵’을 만드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람은 나답고 자기다울 때 가장 행복한 것이기 때문이리라. 결국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빵’은 바로 그 나다움, 자기다움을 담아낸 빵이었다.

# ‘공정’이 화두가 된 요즘,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잖다. 극중에서 탁구와 마준의 경합과 경쟁은 전혀 공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탁구는 그 모든 불공정을 뚫고 자신에게 칼을 겨눴던 이들마저 끝내 품어냈다. 어쩌면 그래서 드라마일지 모른다. 진짜 현실이라면 탁구는 마준에게 질 수밖에 없었으리라. 사람들이 이 드라마에 열광한 이유도 어쩌면 그 어쩔 수 없는 거대한 불공정의 사회라는 골리앗을 김탁구라는 다윗 같은 한 작은 인간이 부숴줬기 때문일지 모른다.

# 공정한 사회를 위한 제도적 장치의 확립은 아무리 강조해도 과하지 않다. 하지만 공정한 사회로 가는 제도와 수단만이 아니라 그 목적과 목표 또한 잊어선 안 된다. 공정사회를 지향하는 목표는 한마디로 저마다의 행복한 빵을 만드는 것이 아니겠는가. 공정사회로 가는 길은 결코 획일적 평등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저마다의 개성과 삶의 역정에 바탕해서 자기만의 빵을 만들어내는 그런 과정이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가치를 담아냈던 드라마 ‘제빵왕 김탁구’가 끝났다.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 참 아쉬울 따름이다.


http://news.donga.com/Inter/3/02/20100917/31273239/1

Saturday, September 11, 2010

Hockley Valley Bottom Side Trail Walk


기분이 생소 했다. 이번 여름내내 카테지에서 골프로 세월을 보내느라, Trail Walk은 거의 까맣게 잊혀진 존재로, 나와는 상관 없는것으로 망각속에서 지냈었는데, 내몸의 컨디션을 한번 시험 해 보고픈 생각에, 만사 제치고, 짐을 싸서 어제 저녁 즉 금요일 저녁에 토론토를 향해 차를 달려서, 이튼날, 즉 오늘 아침에 모이는 장소인 Saldalwood Pkway 선상에 있는 McDonal's에서,그동안 적적했던 얼굴들과 해후를 했다. Trail Walk을 목적으로 만났지만, 우선 오랫만에 만나, 커피한잔을 테이블에 걸쳐놓고, 그동안 지내온 얘기들을 나누기에 바빠, Trail Walk은 마치 뒷전인것 처럼 비쳐질 정도였었다. 평상시에는 별로 연락도 없다가, 이렇게 얼굴을 마주하면 그렇게도 할얘기들이 쏟아져 나오는것 같다. 오늘은 우리 Trail Walk의 Future인 영아가 참석했고, 이제는 커버린 상현이도 누이와 함께, 또 윤지도 서산 넘어로 해가 지듯, 기울어져 가는 여름날의 아쉬움을 숲속에서 느껴 보려는듯, 부모들을 따라 나와 건강한 모습으로 합류했다.

Hockley Valley 맨 끝자락에서 북쪽을 향해 걸을려고, 목적지인 Airport Rd.와 5th Side Rd.에 있는 주차장에 도착했는데, 그동안 많이 변해 있는게 우선 낯설어 보였다. 그지역의 도로 포장공사와 Main Drain을 매설 하느라 주차장을 다 파헤져 놓았기 때문이었다. 다행히도 주차는 할수 있도록 Ground을 조성해 놓아, 그곳에는 우리 일행보다 먼저 도착한 Trail Group이 주차한 것으로 보이는 두대의 미니밴이 버티고 있었다.
우리팀도 그옆에 주차를 하고, 인원 점검을 하고, 가벼운 운동과 창조주께 산행 보고를 겸한 감사의 뜻을 올리고, 첫발길을 옮기기시작했다.
오늘은 Map의 약도에 따르면 약 15킬로쯤 걸을것 같다. 다 커버린 상현이가 앞장서서 가이드를 잘도 한다. 숲속의 오솔길은 여전히 변함없이 우리 일행을 무언으로 반기는것을 느낄수 있었다. 한여름의 뜨거운 날씨는 아니지만, 그래도 언덕을 오를때는 Back Pack과 Shoulder 맞닿는 곳에는 땀이 흐르는것을 느낄수 있었다. 숲사이로 불어오는 산들 바람은 땀을 식혀 주고, 기분을 상쾌하게 해 준다. 어려서 국민학교 음악시간에 배웠던 '산-들바람이 산-들 부운다-...' 길섶의 풀줄기는 어느새 빨간 열매를 맺어 먹음직 스럽게 탐스럼 모습을 뽐내주고 있었다. 오랫만의 산행이라 대원들이 잘 걸을수 있을까? 걱정 했었는데, 그것은 나의 기우일 뿐이었음을 계속해서 발길을 옮기면서 느낄수 있었다.

이곳은 원래는 Side Trail 구간이었었으나, 지난해 5월에 Re-route가 되여 Main Trail로 바뀌어 그가치를 더 빛나게 하고 있는 구간이다.
어느구간은 소나무로 덮혀 있고, 또 어느구간은 잡목으로 덮혀있고, 가끔씩 큰 단풍나무들이 그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큰 계곡이 별로 없이 약간의 Hilly일 뿐으로, senior나 초심자들에게는 걷기에 안성맛춤이다. 대원들 모두가 낙오없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그 걷는 모습들이 천연색으로 보이는 복장과도 잘 어울린다. 여러 다른 Trail Walk팀들과 조우도 가끔씩 하면서, 산을 걷는 사람들만이 느낄수 있는 인사를 나누고,
오늘은 Senior들로 구성된 다른 한인팀과 조우를 하기도 했다. 그분들은 우리보다 먼저 시작하여, 벌써 계획된 구간을 다 걷고 되돌아 오고 있었다. 그중에 한분이 눈에 익어 인사를 정답게 나누었는데, Veteran's Association에서 행사때 마다 만났던 역전의 용사분이다. 매주 산행을 해서 노익장을 과시 하는것을 오늘 산행에서 조우 하면서 그비결을 알수 있었다. 헤여지면서 그분이 계속 건강을 유지하시기를 빌었다.

뭐니뭐니 해도 준비해온 점심을 낙옆이 싸인 위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땀을 식혀 가면서 먹는 그맛을 어떻게 표현 할수있단 말인가.
"이반찬좀 먹어 보세요", " 와 참 맛있다. 꿀맛이네", " 집에서는 맛이 별로 였는데, 와 진짜 맛있다." "김치가 이렇게 꿀맛인것은 오늘이 처음인것 같네", "이 초밥은 또 별맛이네" " 이것은 앤초비에 고추를 Chopping해서 버무른것 같은데 별미네".... 등등. 원래는 약 15분쯤으로 점심을 마칠려고 했으나, 어느새 30분이 훌쩍 흘렀다. 기분은 이제야 겨우 한숫갈 목에 넘긴것 같은데.....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여기에 맞는 말이 아닐까?라고 음미해 본다. 어느 대원은 다음달 산행은 어디로 가지요? 라고 성미 급하게 물어 보기도 한다. 그대원은 아마도 오늘 점심이 별맛임을 잊지못해 다음 산행에서 또 느껴 보고픈 생각에서 였으리라. 어찌 그대원만의 생각이겠는가. 모두의 생각을 대변한것일수도 있겠다라고 느낄수 있었다. 지금 이순간 같은 넉넉하고 포근한 삶이 대원들의 일상에서도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생각이 마음속에서 일어난다.

이제 며칠 남지 않은 Summer 거주지인 카테지에서 본가로 돌아와, 다시 매주 하게 되는 Trail Walk을 나와 Lunar가 계속 할수 있을지의 여부를 확인한, 오늘의 산행에서 신체적으로 아직은 건재함을 보아 기분이 좋았다. 무사히 대원 모두가 산행을 마침은 전적으로 창조주께서 보살려 주셨음을 감사해 하면서, 아침에 들렸던 McDonal's Restaurant에 들려, 커피한잔의 향으로 목을 추기면서, 끝없이 이어지는 이바구를 하는 사이에 이제는 정말로 집으로 향해야 할 시간에 어쩔수 없이 자리를 떴다.
감사.

Friday, September 10, 2010

Hole in One은 Golfer들의 꿈과 행운이요 축복인데...그걸 못느끼는 바보도 봤다.

Golfer들에게는 Hole in One한번 해 보는것이 꿈이다. 그리고 축복으로 생각하고, 같이 라운딩 한 사람들은 영광의 상징 트로피를 정성들여 만들어 주고, 답례로 친지들을 불러 후한 저녁을 대접하면서 서로 즐기고 축복해 주는, 또 아직까지 해 보지 못한 Golfer들은 '나는 언제 한번 해 보게 되는 거지?'라는 등등의 부러움이 깃들인 푸념(?)을 늘어 놓게 되면서 결의(?)를 다짐 하기도 한다.

나의 경우는 금년초 추운 캐나다의 겨울을 피해 '큐바'로 골프 여행가서, 그곳에서 고향 선배 부인과 Lunar가 한조가 되여 라운딩 했는데, 그때 평상시에는 별로 잘친다고 생각안되였던 선배 부인께서 Hole in One을 한것을 목격한게 전부 였었다. TV에서는 가끔씩 보아 왔었지만, 실제로 그광경을 목격하니..... 본인은 벙벙 뛰고, 같이 라운딩한 팀들은 High Five하기에 정신이 없었고, 축하와 격려로 다음 홀로 Proceeding 하는것도 잊어 버리지 않았나? 할 정도로 흥분의 순간이었음을 기억한다. Pro Shop에서는 자기네 Recording Book에 기록하고 특별히 샴페인을 한병 선물 해 주기도 하면서 그들 또한 축하해 주는것을 잊지 않았었다. 그것으로 끝난게 아니다. 선배 부부는 우리 일행에게 '토론토에 돌아가면 정식으로 축하 파티를 열겠다'라고 약속까지 하셨다. 귀국후 North York의 한국식당에서 저녁을 겸한 샴페인 터뜨리는 모임을 갖게 된다고 연락이 와서 만사 제치고 참석했었다. 테이블위에 놓여 있는 샴페인병이 눈에 익은듯하여 물었더니, 큐바 골프장의 프로삽에서 선물로 받은것을 고히 간직 했다가 같이 다시한번 축하 하면서 마실려고 고히 보관 했다가 오늘 갖고 나온 것이라고 선배님이 설명해 주셨다.
골프점수를 따지자면, 불과 버디에서 한점 더 줄인것 밖에는 없다. 그러나 그스릴은, 골퍼이기에만 느낄수 있는 특권(?)일수도 있다 하겠다.
돈으로 따지면, 그날 선배님 부부는 많은 지출을 한 셈이다. 그러나 평생에 잊혀지지 않을, 또 어떤 골퍼들은 평생을 통해서 한번도 해 볼수 없이 다만 꿈을 그리면서 오늘도 Green을 밟고 있을, 친지들이 정성으로 만들어준 펜난트를 평생 지워지지 않을 기억속에서, 골프에서 얻은 훈장으로 가슴속에 간직할 것이다.

지난 7월 22일, 나는 이와는 전연 다른 또 하나의 Hole in One을 내눈으로 목격했었다. 은퇴후 여름동안 내가 Lunar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 카테지에서, 일상으로 하다시피한 골프를 인근의 가까운 Barcovan Golf and Country Club에서 골핑하면서다. 우리 부부와 이곳에서 사업하면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나와 동년배의 한인과 같이 라운딩을 하면서, 4번째홀의 Tee박스에서 샷을 준비 하고 있는데, 갑자기 Mashall이 다른 한인 'Mr C'를 태우고 나타나서, 같이 라운딩 할수 있겠느냐고 하기에 모두가 반가히 맞이 하면서, 같이 라운딩을 계속 했었다.
파3인 7번홀에서 Mr.C가 먼저 샷을 했다 170 야드 거리인데 7번아이언으로 날렸는데, 잘 날아가는것이 선명히 보였다. 이친구의 구질은 높이 뛰우기 보다는 약간 낮게 쳐서 멀리 보내는 스타일인데, 그린에 On 하는것을 본후, 나머지 우리 3명이 샷을 날렸는데, 3명 모두 볼을 그린에 안착 시키지 못한채, 그린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Mr. C는 평소에도 안정된 샷으로 싱글을 치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었다. 그린에 다가서 볼을 찾았는데 보이지가 않았다. 나는 속으로 볼이 굴러서 그린 뒷쪽으로 흘러서 벗어난 것으로 추측 했었다. 왜냐면 그친구의 볼은 잘 굴러가게 하는 구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모두가 볼을 찾기에 여념이 없는데, Pin Hole속에 볼이 있는것을 그친구가 발견하면서 알려주자, 순간적으로 모두가 놀라서(?) 누가 먼저라고 할것 없이 'Hole in One' 이다 라고 외쳐 댔다. High Five를 나누고, 축하의 악수를 하고.....모두가 즐겼다.
그친구는 골프경력 20년이 넘는데, 오늘 처음으로 Hole in One의 기쁨을 맞본다라고 말해 그 의미을 더해 주었다. 그친구는 호들갑을 떨지는 않았지만, 무척 기분 좋아 보였다. 오히려 객인 우리가 더 흥분(?)한것 같은 분위기가 잠시 있기도 했었다.

라운딩이 끝나고 Pro Shop에서 더위도 식힐겸 음료수를 주문 하면서 일행 모두는 Mr.C가 먼저 '내가 한턱 쏘겠읍니다'라는 말을 할것으로 기대 했었는데, 뒷전에서 머뭇거리고 있는게 아닌가? 내가 그를 향해 'Mr C. 가 오늘은 내시요' 라고 내 뱉었다. 마지못해 음료수 한병씩을 얻어 마시면서 얘기를 나누게 됐다. 뭔가 그친구 하는짖을 보면서 썩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그래도 같이 라운딩한 팀멤버로서 그냥 지나칠수는 없어, 내가 먼저 제의를 했다. 페난트를 해 드려야 하는데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토론토에 오늘저녁에 집에 가서 전화해서 조속히 만들어 다시한번 그기쁨을 같이 나누고 싶다 라고. 모두가 찬성이다. Pro Shop의 주인 Greg과 Linda에게 알려 줬더니 그들도 기뻐해 하면서, 당장에 Pro shop 밖의 Bulletin Board에 계시하고, 또 이곳 지역 방소에도 알리겠단다. 그렇게 되면 아마도 내일 아침부터 하루종일 여러번 반복해서 Mr.C.의 Hole in One이 뉴스를 타게 될것이다 라고 하면서 축하해 주기도 했었다. 내가 더 급하게 느껴져 당장에 토론토에 장거리 전화를 해서 알아본즉은 값도 생각보다 비싸고, 또 시간도 걸린다고, 이러한 분야에 잘 아시는분의 대답이었다. 그말을 옆에서 들은 Mr.C.가 '한국에서는 당장에 현장에서도 만들어 준다'라고 하면서 왜 이곳은 이렇게 오래 걸리나?라고 오래 걸리는것을 이해 못하는 눈치같이 하면서 한마디 거들었다. 결정을 나혼자 할수 없기에 최종 확인 전화를 내일 다시 토론토에 해 주기로 하고, Lunar가 아닌, 다른 한분을 이튼날 아침 그의 가게로 찾아가 상의 했더니, 이곳 트랜튼이나 벨빌에도 있으니 자기가 한번 알아 보겠다고 하면서 당장에 전화를 했다. 펜난트의 질이 좋고 낮음은 잘 모르겠지만, 일단은 값이 토론토에서 보다 훨씬 저렴 했다. 가게를 헬파에게 맡겨놓고, 당장에 우리둘은 그곳으로 달려 갔다. 트랜튼에서는 제품이 기대 이하로 조잡하여, 다시 벨빌로 차를 몰았다. 주소만 들고 찾아 갔기에 여러번 주변을 헤메기도 했다. 제품은 마음에 들었다. Pennant에 새길 정보를 제공하고 며칠후에 찾기로 약속하고 왔다. 기왕이면 더 좋은 펜난트를 만들어 주고 싶어서, 오래전에 Hole in One을 했던 적이 있는 다른 한분, 즉 가게 하시는분은 그이튼날 다시 자기 펜난트를 제작사에 보여 주면서 좀더 모양이 좋은 것으로 만들어 달라는 뜻으로, 만사 제쳐놓고 벨빌로 차를 몰아 달려 갔었다. 전부 그분이 두번 내가 두번 합해서 4번을 펜난트 제작사에 들린 것이다. 약 2주후에 완성이 되여 Mr.C.에게 가게 하는분이 연락하였는데, 이런 바보가 세상에 또 있을까?
보통 골퍼들의 상식으로는 " 아 그러세요 고맙습니다. 저녁을 같이 한번 해야지요. 식당을 정해서 다시 연락 드리겠읍니다" 정도가 순서일텐데..... 뭐가 잘못된 것인지? 그의 대답은 "예 그래요"가 전부 였단다. 혹시나 다시 연락이 올까 며칠을 기다려도 소식이 없고, 그후 골프장에서 다시 만났는데도, 페난트는 고사하고 인사 하는것도 마지못해 고개만 끄덕이는 정도로 지나쳤단다. 세상에 이럴수가 있을까? 라고 그분이 전화로 나에게 하소연아닌 괘씸함을 설명하는게 아닌가. 우리 모든것 다 접고, 기왕에 제작된 것이니, Pro Shop에 갖다주고, 그곳에서 찾아 가던가 말던가 하도록 합시다 로 결론은 냈었다. 그뒤에 그자는 Pro Shop에서 찾아 갔다고 들었다. 그뒤에도 라운딩 하면서 여러번 마주쳤으나 간단한 목례정도로 끝났었다. 나도 그자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하게 됐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Lunar가 그냥 지나치지 않고, "Mr. C. 그냥 입 딱 씹을거예요?" 라고 쏘아 부치자, 그친구 맞이 못해 '예 그렇게 하겠읍니다' 그것이 전부다. 골프를 아무리 잘 치면 뭘하나? 사람노릇을 곁들여 해야 서로 정감이 오가고, 같이 라운딩 하고픈 마음도 생기는 것인데.... Barcovan Golf장에서 골프하는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소문이 다 퍼져, 사람들이 그를 다시 한번 쳐다 볼정도가 된것 같다. 한번은 그자와 신앙생활을 같이 하는 여자분이 " 언제 저녁 할것예요? 그때 저도 불러 주세요. 같이 축하해 드릴려고요" 그러나 아무런 대꾸도 없이 지나 치더란다. 오히려 당혹감을 느꼈었단다. 그자와 라운딩 하는 사람은 매번 바뀐다. 모두가 한번으로 족한 것 같다. 이런 분위기를 알면서도 골프장에 거의 매일 출근 하는 그를 보면서, 나자신과 Lunar는 다시한번, 최소한 남에게 도움은 주지 못할지언정, 남으로 부터손가락질은 받으면 안되겠다라는 다짐을 하곤 또 하곤 한다.

골프는 신사,숙녀들의 놀이라고 한다. Hole in One 얼마나 듣기좋고, 또 내자신이 만들어 보고 싶은 바램인가. 나에게는 아직 그런 행운은 따르지 않고, Lunar역시 마찬가지이다.
가게 하시는 그분은 나와 거의 동년배 이신데, 그가 Hole in One했을때의 기분 좋았던 그때를 얘기 해줬다. 그때 같이 라운딩 한 팀들은 전부 이곳 서양사람들이라서 간단한 음료수로, 끝내고, 그후에 아는 한인 친지들을 초대하여 식사를 하게 됐는데, 거의 40여명이 모였었단다. 그리고 모두가 같이 좋아하고.... 그분은 일생일대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하는 경사인데, 이정도 경비는 아까운 기분이 안들었단다. 이런때를 위해서 평상시 열심히 일해왔던것 아닌가?라고 피력한다. 맞는 말이다. 나도 그런 기회가 어서 빨이 왔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골프란 참으로 이상한 게임이다. 잘해 보겠다고 마음속에 다짐 하면서 볼을 맞힐려고 하면, 볼이 먼저 알고 다른곳으로 날아가 버리는 것 같다. 그래서 또한번 마음 아파하면서, 파안대소도 해 보는것 아니겠는가. Mr. C.가 세상 살아가는 방법이 특이 하다고 해야 할지? 요즘은 만나게 되면 그의 인생을 괜히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상대방의 성의를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 줄줄도 모르는, 자신에게 찾아온 어려운 행운의 표시를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 챙기는것은 잘 하면서, 같이 나눌줄 모르는 마포의 황부자 같은, 골프치는 기계에 불과한 존재로만 인식할것이다. 이것이 20년이 넘는 내 골프 경력에서 두번 목격한 Hole in One의 목격담이다.

Wednesday, September 08, 2010

종교는 무엇인가? '사랑, 구제, 영생 그리고...'라고 외쳐대는데.

종교란 무엇인가? 9/11의 엄청난 참화도 이제는 기억속에서 희미해져 가고 있다.
각 종파간의 지도자들의 설교는 어느 웅변가 못지 않게 그앞에 앉아서 경청하고 있는 신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녹이고, 세상 살아가는데 유익한 지혜를 역설하는것으로 꽉 차 있다. 순진한 다수의 믿음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그설교의 내용데로 세상살이를 할려고 무진 발버둥 치면서 고된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많이 보고, 또 그길이 삶의 목적으로 여기고도 있다. 그래서 종교적 지도자들의 말 한마디는 심한 경우에는 한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게도 한다. 오늘 아침 미디어를 통해서 경악할 기사를 보았다. 미국 남쪽의 플로리다주에 있는 한 Church에서,이슬람 극력분자들에 의해 자행된 9/11사태를 기하여, 교회 앞마당에서 '코란경'을 불태우는 국제적인 운동을, 3일 후인 9월 11일에, 벌인다는 내용의 기사이다. 9/11의 후유증이 지금 미군이 아프칸에서 탈리반과 싸우게 만들고 있고, 그양상은 더 깊어만 갈뿐 좋아질 조짐은 전연 보이지 않아, 이를 지켜보는 전세계가 전전 긍긍하고 있는데.... 성경이나 코란이나 같은 믿음의 조상 Abraham을 시작으로, 사랑, 구제, 영생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고 본다. 이 운동을 주관 하고 있는 목사님은 A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이 운동을 강조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은 옛날과 달라서 불과 몇분 사이에 전세계로 펴져 나간다. 그여파는 일파 만파로 전세계를 뒤흔들고 있는것 같다. 미국민들의 대다수는 이운동을 반대 하고 있고, 아프칸과 이락에서 군사 작전을 하고 있는 미군들을 포함한 연합군의 위치를 어렵게 하고 있음이 걱정된다. 그목사님은 나름데로 뚜렷한 주관이 서 있기에, 교회 앞마당에 세워논 빌 보드에 ' International Qu'ran burning Day' 선전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주일날 교회에 나가 말씀 듣고, 이슬람인들은 Mosque에 나가는것은 물론이고, 하루에도 다섯번씩 시간에 맞추어, 하던 일도 중단하고 메카를 향해 이마가 땅에 쿵하고 닿을 정도로 큰 절을 하고 기도를 한다. 궁극적인 그들의 기도 목적은 사랑과 평화를 염원하고 있는것일 것이다. 목사님은 그러한 결정을 혼자서 했다고 보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점이 있는것 같다. 교회에는 당회도 있고, 재직회도 있을 것이며, 또 주일날 설교도 했을 것이다. 코란을 불태워서 전세계가 사랑을 나누고 평화를 구가 하는 효과를 가져 온다면 어느 누가 반대 하겠는가?

이슬람들에 대한 서방 세계의 선입관은 확연히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극렬분자들에 의한 9/11 사태는 전세계를 경악케 했었다. 그여파로 전 이슬람세계에 대한 이미지는, 그들은 극안 무도한자들이다 라고 치부됐었고, 나자신도 그러한 사람들중의 하나였었다. 그러나 나의 생각이 완전히 편견이었음을, 얼마전 이집트, 요르단, 두바이, 그리고 터키등 여러 중동지역의 이슬람 국가를 구경하면서 느꼈었다. 보통 시민들은 친절하기가 더할나위 없었고, 어떤집에서는 생면 부지의 우리 부부를 Home Stay까지 할수 있는 편의를 제공해 주었고, 내가 겪은 그분들을 보면서, 전쟁은 절대로 없을것, 특히 종교에 근거를 둔 분쟁은 발생할것 같지 않다는 확신으로 가득 찼었다. 그들은 순진했었고, 뭔가 도움을 줄려고, 언어가 통하지 않는데도 노력하는것을 많이 겪었었다. 오히려 서방 세계 특히 미국이나 유럽여러나라에서 수도 없이 발생하는 사회적 범죄들을 생각하면서, 진정한 사랑과 자애 그리고 모든 베풀음이 내가본 이슬람 국가에서는 모든 시민들이 함께 할려고 하는것을 그들의 일상에서 느꼈었다. 내가 살고 있는 Community에서는 Campaign이나 특별한 행사를 통해서나 볼수 있는 정도인데.....

이러한 망나니짖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보고 계신다면 분명히 노발 대발? 아니면 미소를 지으실까? '사랑, 평화 그리고 구제'를 행동으로 보여 주라고 했더니, 입으로만 사랑, 사랑 외쳐대는 위선으로 완전히 뒤덮힌 오늘날의 종교지도자들을 좌시 하지 않겠노라고 기회를 찾고 계실것으로 생각된다. 무섭다. 이슬람 창시자 마호멧이 이광경을 본다면, 예수님이 이광경를 본다면..... 많은 종교적 지도자들은 마호멧이나 예수나 다 살아서 역사 하신다고 강조 해 왔다. 그분들의 말씀데로 이렇게 긴박할때 간섭하시여, 인류의 사랑과 평화를 위해 말릴것은 말리고, 취할것은 취하게 하는 그런 능력을 보여 주셨으면 얼마나 좋을까? 끝까지 참는 하나님이시기에 지금도 참고 계시기 때문이라고 말한다면..... 또 기다릴수 밖에 없지만, 답답증은 더해 간다. 보편적인 생각에서 벌어져서는 안될 일들이 가끔씩 종교적 지도자들에 의해 행해지는것을 본다. 젊은 세대들은 어느종교이고간에, 이러한 상식을 벗어난 말씀이나 행동을 보면서 자기네 조상과 부모님들이 믿고 의지해온 종교에 대해 Cynical 해져 있음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현상은 서양교회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으며, 우리 이민 교회에도 차차 그러한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오늘 플로리다에 있는 교회의 한 목사님에 의한 이런 어처구니 없는 운동은 젊은 세대들에게 아무런 교훈을 주지 못할것으로 나는 확신 한다. 만약에 나의 아이들이 이점에 대해 질문을 해 온다면 나는 뭐라고 답변 해야 할지? 머리가 멍청해 진다. 말로만 외쳐 대는 '사랑, 평화, 영생, 구제'가 아닌 실질적인 삶의 본보기를 보고 싶은데.... 세상에 내가 목사, Terry Jones라고 알리고 싶어서 였을까? 뭔가 모자란 사람같아 보일 뿐이다.

http://www.nytimes.com/2010/09/10/us/10obama.html?_r=1&hp

http://www.thestar.com/news/world/article/857888--americans-rallying-against-qur-an-burning

http://www.latimes.com/news/politics/la-pn-boehner-koran-20100909,0,1743117.story

종교란 무엇인가? 사랑과 베푸는것이라고 외쳐대는데....

우선 내용이야 어찌됐든, 경악을 금치 못할 섬뜩한 일을 저지르는것 같은 느낌이다. 마치 어린아이들이, 어른들이 볼때는 아무 다툼 거리도 안되는것을 놓고, 치고 박고 싸우는 유치한 작태들이 이제는 어른들 사회에서 그것도 공개적으로, 매스 미디어를 타고 전세계를 상대로 벌어지고 있다. 그싸움 내용이 종교적 종파간에 벌어진고 있다면? ...... 아직 요즘처럼 뉴스 전달방식이 발전하지 않았을때는, 입과 입을 통해서 옆으로 전해지던 시대에는, '낭설이겠지. 누가 음해 하려고 하는 모략이겠지...' 라고 하면서 시선을 집중하지 않았을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좀 과장 한다면, 어느 유명인이 공개 석상에서 말한마디 실수를 해도 전세계로 불과 몇초만에

Friday, September 03, 2010

China-Korea 관계, 아래 Article을 깊이 새겼으면...

당리 당략에 쏠려서 국가 장래를 망치는 작태는 이제는 그만 했으면 한다.
대통령은 현장을 살피면서 서민들의 실상을 피부로 느낄려고 노심초사하는데, 그를 보좌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은 이를 뒷받침 해주지 못하고 있는것 같아서, 안타깝기 그지없이 느껴진다. 입법부를 이끌어 가는
정치꾼들은 대통령의 이러한 정서를 전연 개의치 않고, 날이 새기가 무섭게 해대고 있다가도, 자기네들 밥그릇 챙길때는 아군과 적군이 없이 한통속이 되여 같이 배불리 나누어 먹은뒤에는 또다시 입에 거품을 품고 전진의 수레바퀴를 뒤로 돌릴려고 작당하는 일이...
김정일과 그 세력들은 6자회담을 다시 하겠다는 Trap을 쳐 놓고, 조국남한을 비롯한 관련국들이 덫에 쳐놓은 먹이를 넬름 받아먹기를 이리 저리 연구(?)하고 있는데.... 그렇게 해서 현재 쳐해있는 궁색하고, 코너에 몰려 있는 틈바구니를 빠져 나오려고 발버둥치고 있는이때, 과연 남한의 정치꾼들의 행태는 개탄스럽지 않을수 없기만 하다. 외교장관이라는분은,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될수 없는, 김정일이 저지르고 있는 권력 세습을 전인류가 비난하고 있는것을 최전선에서 보면서, 정작 본인은 김정일이의 세습방법을 그대로 딸에게 이어 주려다 쫓겨 나지를 않나?....그래서 전세계의 또다른 뉴스거리를 만들어 주지를 않나. 꼴볼견이다. 양심의 부재가 한반도를 휩쓸고 있는것 같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뙤놈이 챙긴다'라는 옛말이 생각난다. 돈만 챙기려는 '뙤놈'들이 한반도에는 너무나 많다.
대통령이 아무리 강조해 본들, 그를 돕고 있는 보좌관들의 정신이 개혁을 하지 않는한 공염불이 될 공산만 크게 파장을 일으키고 있을 뿐이다. 이틈새를 놓치지않은 두 구룹이 머리에 선명히 그려진다.
첫째는 김정일과 Regime이요. 둘째는 남한의 좌파 정치꾼들이다. 그들에게는 얼마나 좋은 기회일것인가.

아래의 내용을 깊이 생각해 봐야 할것이다.
지난 금요일 중국정부는, 북한의 김정일과 그일행이 중국을 공식 방문해서, 후진타오주석과 회담을 갖고, 무사히 본국으로 되돌아 갔다고 발표 했다. 김정일과 정상회담에서 후진타오는 '중국은 북한의 경제적 안정을 원하며, 북한 주민들의 생활향상을 원한다'라고 언급했다.
같은날, 미국은 북한이 핵개발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자금줄을 차단하기위한 경제봉쇄조치를 발표 하면서, 4명의 북한인재산, 3개회사, 5개의 정부 Agency를 마약밀매, 돈세탁, 위조지폐 활용등의 혐의로, 전격 동결 한다고 발표 했다.
중국은 성명문에서 북한주민들의 생활향상을 위한 조치를 강조 했지만, 실질적으로 북한 내부에서는 기근으로 실상은 참담하기만 하다. 경제개발과 원조를 위해 남한과의 협상에서 최고 책임자였던 자를, 남한의 새로운 정부가 좌파정권이었던 노정권과는 다른 방법으로, 즉 Give and Take의 원칙을 주장하면서 부터, 협상에서 의도대로 진행되지 못하게되자, 그실책을 물어, 무자비하게 공개 총살 시켰었다.
이러한 북한의 김정일과 Regime의 국가 운영에 식상한 중국인민들은 모래밭에 물퍼붓는식의 원조를 받을만한 자격이 없는 정권으로 인식하고 있는것 같다. 중국당국은 북한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여 북한주민들의 생활이 향상된 상태에서, 중국과 북한이 원하는 방향에서 한반도 통일을 바라고 있으며, 이러한 통일은 중국에 지대한 이익을 가져올것으로 기대하고는 있으나..... 이러한 바램에 역행하는 북한 정권의 현실에 중국인들은 희망을 내던지고 있는 처지인것 같다. 이러한 구상대로 된다면, 장래에 한국, 자유중국 그리고 일본에 대한 미국의 역활에 대해서 어떻게 변할지 의문점이 생기지 않을수 없으나, 어쨋던 극동아시아지역에는 많은 이익이 있을것이다.

이렇게 중국은 먼날을 예측해 가면서, 한반도의 통일을 위한 토대를 이북을 이용해 쌓아가고 있는데, 남한의 좌파 정권은 지난 10년동안에 중국과 북한의 계획을 앞장서서 지지해준 정책으로 일관 했었고......남한의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 벌써 2년 반이 흘렀으나, 야당인 좌파 잔재들은 눈만 뜨면, 입만열면, 정부정책을 질기게도 물어뜯고 늘어지니.........이러한 비난을 앞장서서 반론하고, 왜 현정권은 전임 좌파 정권과 다른가를
앞장서서 홍보하여야 할, 대통령을 보좌 하는 장관들과 고급공무원들의 하는 작태를 보면서, 대통령에게 안타까움이 더 느껴진다. 참다운 정책이나 진실을, 인정하지 않고 반론제기를 여러번 반복해서 듣게되면, 본인도 모르게 그말에 생각이 바뀔수 있게된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의 대통령의 행보를 보면서 그러한 변화를 자주 접하게 된다. 조국의 앞날이 정말로 걱정된다. 이제는 정말로 한번 잘 살아볼 때가, 기회가 포착된것 같은데, 놓치면 .....정치꾼들만 정신을 차려도 희망을 걸어볼만한데......

제삼자의 입장에서 읽어본 아래의 글들은 새겨볼만한 내용이다.


http://news.joins.com/article/059/4467059.html?ctg=2002&cloc=home|showcase|main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9/18/2010091800087.html?Dep1=news&Dep2=headline1&Dep3=h1_11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9/07/2010090700102.html?Dep1=news&Dep2=top&Dep3=top

http://www.nytimes.com/2010/09/05/world/asia/05korea.html?_r=1&ref=asia

http://www.theglobeandmail.com/news/opinions/the-china-korea-puzzle/article1694254/

Wednesday, September 01, 2010

좌파10년 집권과 그를 추종하는 정치꾼들의 흔적이요 결과이다....




오늘 읽은 본국의 동아일보 기사는 과히 충격적이었다. 젊은 세대들이 거의 기억도 못하고 있는 6/25 동족 상잔때는, 꼭 필요한 전차 한대가 없어 맨몸으로 적의 탱크를 막다가 산화한 순국 영령들에 대한 군선배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난의 설음과 없는 설음을 아파 했었는데.

군현대화 계획에 따라 한대에 30억이 넘는 전차를 운전할 기간 사병들이 부족하여 이제 갖군에 입대한 초병들에게 조종을 맡겨 사고가 잦거나, 작동방법이 서툴러 고철화 시키고 있다는 기사 말이다. 원래는 그러한 현대화된 장비는 준사관 이상이 조종하도록 되여 있다고 명시되여 있단다. 그러나 준사관의 인력화보가 어려워 할수 없이 초병들을 활용하고 있다는 부대 지휘관의 기사화된 얘기를 읽으면서... 군복무기간을 현재 24개월에서 18개월로 줄이겠다는 좌파정권과 그에 동조하는 정치꾼들의 사탕발림계산의 결과가 이렇게 나타나는구나 하면서 통탄해 하지 않을수 없다. 이기사를 고국의 정치꾼들이 읽어 보기나 했을까? 부대 지휘관의 고충을 충분히 이해할것 같으며, 아직 분위기 파악도 덜됐을 초병이 조종석에 앉아서 머리속에 무엇을 그릴까? 심히 걱정 스럽다. 돼지목에 진주목거리를 걸어주는꼴로 밖에는 안보인다. 군대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내 보낼수 밖에 없는 조국의 현실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이렇게 아파하고 안타까워 하는 부모들의 정곡을 얄팍한 군복무기간 단축이라는 사탕발림으로 표를 얻어 집권하려는 정치꾼들, 당신들이야 말로 진정, 조국의 주적 김정일과 그일당들을 도와주는 역적들이라는것을 명심하기를 바란다. 약 45년전에 군대생활 할때도, 지금 생각하면 쇠붙이에 불과한 간단한 통신기기의 정비훈련을 위해 별도로 통신학교로 보내져 약 4개월이 넘게 교육을 받고 했었던 기억이 되살아 난다. 그렇게 학생신분이 되여 하루종일 공부를 해도 소화해 내기가 쉽지 않았던 기억이다. 교육이 끝난 초겨울에 전방 대성산이 있는 부대에 배치 됐는데....금방이라도 숲속에서 북괴군이 나타나 총을 쏘거나 목을 잘라 가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2-3개월 이상을 나를 포함한 동료전우들의 머리속에서 떨어지지 않았었던 기억이 되살아 난다. 걱정이다. 좌파 정치꾼들의 술수에 놀아나는 국민들, 유권자분들의 올바른 판단이 절실히 요구된다. 기가 막힐 뿐이다. 동아일보의 기사를 옮겨 본다.


http://news.joins.com/article/123/4470123.html?ctg=1100&cloc=home|list|list1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9/05/2010090500852.html?Dep1=news&Dep2=top&Dep3=top

http://news.donga.com/Politics/3/00/20100901/30893918/1

▲8월 17일 늦은 밤 경기도 연천군 다락대훈련장에서 육군 제26기계화보병사단 불무리부대 K-1전차가 야간사격을 하자 105mm 포탄이 날라가고 있다. (연천=연합뉴스) - 위의 사진설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