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August 25, 2008
올림픽 폐막식은 뭔가 헤여짐의 아쉬움이 듬뿍
8월24일,2008년. 17일간 계속됐던 베이징 하계 올림픽이 막을 내리는 날이다. 이곳 토론토시간으로는 일요일 아침 8시경에 시작된 폐막식은 그곳 북경 시간으로는 저녁9시경이 된것 같다. 확실치는 않다. 다만 그렇게 계산해 본다.
아침에 시작하는 예배를 낯에 3부 예배로 돌리고, 페막식을 보기 위해 소파에 자리를 편하게 잡고, 개막식때의 웅장하고, 화려하고, 또 상상치도 못했던 연기들을 머리속에 기억하면서, 페막식에서도 그러한 연기들이 나올것을 기대 하면서 말이다.
역시 기대 했던 데로 상상을 초월하는 연기들이 계속이어지는 속에서 탄성이 연발이다. 정말로 장관이다. 같은 동양민족으로서, 나도 그속에 하나라는 자북심이 가슴속에서 일어 난다. 이념과 나라를 떠나서, 같은 동양 이웃이라는 점 하나만으로도 그들 중국의 연출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수 없었다. 처음보는 큰 북(Drum)을 두둘기는 모습, 금방 7층이상되는 철탑이서고, 그위에 많은 Performers들이 들어붙어 각종 춤을 추어대는 모습, 형광물질로 된 옷을 입고, 빨간색, 노란색, 그리고 파란색으로 바뀌면서 춤을 추어대는 댄서들, 큰 형광 바퀴속에 묻혀 굴러가는 연출을 하는 바이커들....이루 표현이 다 안될 정도다. 규모면에서 우선 세계를 제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화가 서서히 꺼지고.....
그동안 서로 경쟁 하면서, 경계의 대상이었던 선수들이 이제는 편한 마음으로 같이 어울려 헤어짐의 서운함을 손을 흔들어 나타낼때, 비록 화면을 통해서 보지만, 나도 그중의 하나가 된것 처럼 괜히 뭔가 아쉽고, 섭섭함이 가슴속에서 일어남을 느낀다. 만나면 헤여져야 하는것이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들이 피할수 없는 갈길인것을 알면서도....... 4년후 2012년에는 영국 런던시에서 열리게 된다고 한다. 런던경기를 홍보하느라고, 페막식의 광장 중앙에는 영국 런던의 명물인 빨간색의 2층뻐스가 출현하여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뻐스는 전시하는 도중에 몸테를 Transformation해서 뻐스벽을 부분별로 분해하여 전부가 파란색인 내부를 선명히 보여 주면서, 지구의 온난화를 방지하고, 환경을 개선한다는 취지의 뜻이라고 설명도 했다. 지구의 환경문제가 심각하긴 한 모양이다.
베이징 시장과 런던 시장이 단상에 올라 올림픽기를 인수인계 하는 순간을 보면서, 1988년 서울 올림픽때, 당시 서울 시장이 4년후 개최지가 되는 스페인 바르셀로나 시장에게 올림픽기를 관중들이 보는 앞에서 높이 흔들며, 넘겨주었던 모습이 떠 오르기도 했다. 이번 중국에서의 개최는 전 중국이 나서서 치른 국가적 행사였지만, 다음 개최지 런던의 경우는 좀 달라서, 이번 처럼 화려하고 웅대 할것 같지는 않은 예감이 든다. 예냐하면, 런던개최는 영국이라는 나라 전체의 잔치가 아니고 주최하는 런던시의 주관하에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우선 예산면에서 많은 시련과 제약이 뒤따를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더 좋은 아이디어를 발휘해서 좋은 연출이 있을것으로 기대해 보고 싶다.
예상했던 데로, 중국이 금메달에서는 1등을 했지만, 메달 전체수를 본다면 미국이 1등이 된것같다. 고국 대한민국은 원래 10권 예상을 뒤엎고 메달 31개를 획득하여 당당히 7위라는 좋은 성적을 올렸다. 나의 제2의 조국 캐나다는 금메달 3개를 포함하여 전체 18개를 획득하여 등수로는 17위를 했다. 캐나다는 특히 조정경기(Rowling)에서 돋보였다. 처음 며칠 동안은 메달을 하나도 획득 못해 안타깝게 하더니, 베트남 출신의 여자 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걸기 시작하면서, 18개까지 획득한것이다 그들에게도 박수를 보내주곤했었다. 고국 한국의 메달중, 특히 야구에서 세계의 정상급 나라들, 즉 미국, 일본 그리고 큐바를 당당히 물리치고,금메달을 차지해 더 돋보이기도 했다. 올림픽후의 중국이 어떻게 변해갈지? 궁금해 지기도 한다. 사진 몇장을 이곳 저곳에서 발췌하여 같이 올려 본다.
Wednesday, August 20, 2008
Barb & Gene과 코보그 축제 구경.
Barbara와 그의 남편 Eugene과 그리고 우리 부부, 연례 행사사로 치러지는 Coubourg의 Flea Market 축제에 2주전에 참석했었다.
이곳 온타리오의 모든 시골 동네들이 앞다투어(?), 짧은 여름낯을 한가로이 보내지 않고, 무슨 일들을 꾸며 자꾸 서로 모이고, 즐기는 그런 기회를 끊임없이 진행 시키고 있는 행사들 중의 하나인 Flea Market 축제인 것이다. 다운타운 중심가의 모든 Traffic을 차단하고, 그안에서 이렇게 하루를 즐기는 것이다. 각종 골통품들이 길가에 진열 되여 있고, 상점들은 가게 밖에 또 하나의 임시 상점을 꾸려 놓고, 같이 어우려, 흥겨워 하면서 매상도 올리고, 어린이들을 위한 마술 아저씨는 50년에 행해졌던 그런 마술(?)을 부리기 위해, 자기 머리만한 딸기코를 코위에 올려 달고, Clown을 걸쳐 입고, 신기한듯 쪼무레기 어린 아이들은 그앞에 자리를 펴고 앉아 손으로 턱을 괴고 보는아이, 두다리를 쭉 뻣고 엎드려 구경하는 아이 등등의 제멋데로, 편한 자세로 구경에 열심이고, 같이 온 부모들은 그들의 뒷쪽에서 같이 구경하는 모습이 정겹다. 아마도 어렷을때의 자기들 모습을 되새겨 보는듯이 말이다. Barb과 Gene은 손자 손녀들이 여럿있어, 우리가 보는 어린아이들에 대한 생각이 더 사랑스럽고 깊을지도 모른다. 다시 이다음에 이러한 축제의 속에서 즐기게 된다면, 나도 손자 손녀들과 같이 어우러져서, 그들의 세계로 같이 들어가서 어렷을때의 나의 세계를 더듬어 보고 싶은 간절함이 생긴다.
차단된 도로위에는 각종 진풍경이 많이 보인다. 농작물장사, 잡화상,고물상 등등 그중에서도 눈에 유독 눈에 띄는것은 아스팔트위에 분필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였다. 이러한 진풍경은 나로서는 처음보는 흔치 않는 순간이었다. 질펀하게 앉아서 유명한 시인들의 시구절이며, 아름다운 여인의 나상을 그리고, 또 풍경을 그리고, 때로는 질문하는 구경꾼들에게 열심히(?)설명을 하는 모습이 진지하게 보인다. 문외한인 내가 볼때는 너무나 훌륭한 화가임에 틀림 없는것 같다. 이렇게 그려내는 그의 창작력은 보통사람들에게는 어림없는(?) 그만이 소유하고 있는 솜씨이지만, 그뒷면을 상상해 보면, 얼마나 많은 고뇌와 고통이 있었을까? 하는 안스럼움이 나의 가슴속에서 맴돈다. Fine Art를 전공으로 하고 있는 딸아이가 , 길가의 화가가 그려내는 그림위에 순간적으로 겹쳐진다. 그아이도 남이 알아주던 말던, 구경꾼의 입장에서 볼때는 아루런 의미도, 관심의 대상도 될수 없는 그만의 창작을 위해 고되하는 어려움이, 때로는 나를 안스럽게 하곤 하는데, 딸아이에게 그런 나의 심정을 표현 할수는 없었다. 그져 보는수 밖에,..... 그래서 생활은 풍족치 못하다. 이화가도 그러한 범주에서 많이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것 같다. 그날이 언제 일지는 모르지만, 세상사람들이 알아주는 대박(?)이 터질때까지는 말이다.
평상시에는 그냥 무심히 지나쳤던 이곳이, 축제 무드에 젖어 걸으면서, 눈에 보이는 건물들의 모습이 무척이나 오래된것을 느낀다.
독특한 모습들이 건물 하나 하나마다 뚜렷히 보인다. 유독 Township의 사무실 건물이 돋보인다. 지붕 꼭대기에는 종각탑(?)이 우뚝 서있고... 전형적인 옛날 건물양식인듯 싶다.
우리 남자들은 그렇게 관심이 쏠리지 않는 옷가게와 진열에 Barb과 Noona는 열심이다. 그녀들이 들리는곳마다 대부분 옷이 진열되여 있는 곳이다. 나올때의 모습은 빈손이다. 만져보고 입어보고.....서로 "어때?"라고 몸에 대보면서 의견을 물어보고..... 아무튼 나를 포함한 모든 남자들이 관심밖의 그러한 대상에 그녀들의 관심은 쏟아져 있음을 느끼면서, 창조주의 깊은 의미(?)을 그려보게 된다.
마침내 Noona가 밖에서 촛점없이 축제의 전경을 보고있는 나를 안에서 불러 들어가 보았더니, 두쪽의 가죽 장갑을 들고, 이건 어때? 하면서 나의 의견을 기다린다. 자세히 보니 골프할때 보조용으로 오른쪽에 끼는 장갑이다. 관심이있고, 좋아서라기 보다는, 거스릴수 없는 분위기 때문에 Try on 해 보았다. 꽉 끼인는게 날씨가 좀 싸늘할때 사용하기에 좋을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주 좋은데, 여보 우리 하나씩 사자" 그녀의 기대에 부응하기위해서, 그것이 내 대답이었다. 그녀의 반응이 무척 밝아 보인다. 카운터에 올렸더니...... 아뿔사, 단 돈 2달러다. Noona의 표정은 흡족해 보인다. 조그만 것이었지만,뜻을 같이하여, 성취(?)했다는것에 그렇게도 만족해 하는것을 보는 나의 맘도 푸근함을 느꼈다. 이것을 옆에서 보고있던 Barb과 Gene도 잘했다고 부추낀다. 순박하고 알뜰하게, 은퇴생활을 즐기고 있는 그들 부부는 우리부부보다 더 그러한 정을 느끼면서 살아감을 많이 옆에서 보아왔다. 딸기쨈을 만들었다고 이쁜병에 넣에 들고 와서 "Noona, 내가 만든 쨈인데, 먹어봐, 며칠전에 만들어 놓고, 네가 토론토에서 오기를 기다렸다가 이렇게 갖고 온거야...." 우리를 그들의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다는 고마움을 보곤한다. 가끔씩 호박도 갖다 주곤 한다. "Thank you, guys" 이렇게 우리는 응답했다. 그들은 미소를 짖는다.
내가 찍은 사진들을 그들 부부에게도 메일로 보내 주어야겠다. 잘 보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를 다시 생각하겠지? 지난번 High Speed인터넷이 그들의 집에 연결 됐을때, 만나자 마자 알려주면서 좋아 하던 그녀의 모습을 그려 보면서.....
그들은 골프를 안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바삐 하루 하루를 보내는것 같다. 우리는 카테지에서 보내는 낯시간의 대부분을 골프장에서 보낸다. 모든 세상사 잊으면서 아내와 둘이서 즐긴다. 볼이 잘맞아도 좋고, 안맞고 옆으로 터져 나가도 좋고.....아내의 실력이 큰 향상은 아니지만, 그래도 지금은 준치급은 되는것 같다. 거리에 맞춰 클럽도 뽑고, 그린에서 lay out하고..... 건강에 좋다고 하니, 계속 할 것이다.
다음주에 시골 카테지에 올라 가면 다시 그들의 얼굴을 보면서 따뜻하고 구수한 커피잔을 사이에 두고 알맹이가 꽉 차지 않은 잡담들과 살아온 얘기들을 하면서 정을 나눌것이다.
아침 햇살이 눈부시게 창을 통해 리빙룸에 들어온다. 벌써 햇살이 들어오는 각도가 많이 긴여름날과 많이 달라졌음을 본다. 이제 얼마 안있으면 이시간(아침 7시 반경)에 햇살대신에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을씨년 스러운 회색빛의 아침으로 변할것이다.
한때의 Cormorants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이 한가롭게 보인다. 정말로 그럴지는 모르겠지만.....호수의 물결은 유리같이 잔잔하다. 주위의 모습은 푸른숲에 둘러쌓여 평화롭게 보인다. Marina의 요트 정박장의 모습도 장관이다. 어느날 석양에 담았던 요트의 모습이 석양햇볕에 반사되여 같이 엮어 봤다. 하늘은 아직 이르지만, 마치 초겨울 하늘처럼 높고 파랗다.
Friday, August 15, 2008
광복절은 선조들이 흘린 피의 대가였다.
매년 찾아 오는 그날이지만, 오늘은 재향군인회원 자격으로 우리 한인들의 모이는 장소 즉 한인회관에서 열리는 광복절 행사에 제복을 입고 참석했다. 벌써 광복 63주년에 정부수립 60주년이 됐다는 실감이 나지 않게, 참으로 세월은 빨리도 흘러 갔음을 새삼 또 한번 가슴속에서 깊이 느꼈다. 당시의 처참한 일제치하의 고통속에서 오늘의 자주 독립국가를 후손들에게 넘겨 주기위해 목숨을 바쳐 싸웠던 독립운동가들도, 이와는 반대로 일본의 앞잡이가 되여 동족을 무던히도 괴롭혔던 그때의 사람들도, 이제는 역사속에서만 만나볼수 있다. 배고픔의 역경을 무사히 버티고 살아남았던 당시의 꼬마들이 오늘은 제일 연로한 참석자들로 변하여 한인회관 광복식장의 한 의자에 앉아 있음을 본다. 머리는 하얗고, 삭신은 이미 늙어, 언제 이제 삶을 하직하게 될지 모르는 그런 가느다란 삶의 통로를 통과 하는 모습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리고 가슴이 시리도록 서럽다. 60년의 긴세월......
나는 해방 다음해에, 지금은 다른세상에서 살고 계시는(?) 부모님을 통해서 이세상에 한점을 찍게 된 것이다.
죠이스 합창단(나이드신 여성분들)이 특별 출연하여, 여러곡의 노래를 불러 당시의 상황을 어렴푸시나마 상상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순간에도 귀에 남아 있는 음율은, 광복절 노래와 Song for liberty 이다. 어렸을때 국민 학교에 다닐때는 그렇게도 많이 학교행사때 불러댔던 노래였는데, 오늘은 기억속에서 가사의 일부가 사라져 버려 프린트물을 보면서 같이 합창해야 했고, 노예들의 합창(Song for liberty)은 언제 들어도 느꼈던 것 처럼, 고통받는자들의 배고픔과 자유를 갈구하는 몸부림 같은 것을, 오늘은 선조들이 받았던 고통과 억압 그리고 배고픔 등등이 그위에 겹쳐저 독립의 기쁨도 있었지만, 그이면에 마음 무겁고 괴로움을 내가 직접 겪은것 처럼 함께 느끼게도 했다. 젊은 후배들로 구성된 사물놀이잔치는 오랫만에 이곳에서 조국을 느끼게 하고도 남았다. 일제치하의 어려움 삶속에서도 우리 선조들은 우리의 소리를 용케도 지켜왔고, 후손들에게 물려 주어, 다시 오늘 이곳에서 그들의 혼을 볼수 있게 한것은, 우리민족의 한과 질긴 삶을 보는것 같았다. 이번 여름에 조정래의 "아리랑"대하 소설을 읽고 있다. 일제 강점기를 기점으로 해방될 무렵까지의 사이에 우리 선조들이, 독립운동가로, 자손대대로 경작해 오던 농토를 졸지에 빼앗기고 소작농으로 전락하면서, 노예취급당하는 고통, 학생은 학생데로의 어려움 등등 조선인으로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처해진 상황속에서, 정말로 살아남기위해서 허기진 배를 채워야 했던, 그런 상황을 적나라 하게 그린 민족 소설이었다. 오늘의 광복절 기념 행사에서 그의 소설 속의 인물들이 마치 이식장에 다시 나타나, 그때의 고통과 결심들을 두고 두고 자손들에게 전해 주어야 한다 라고 외쳐대는것같은 느낌이 가슴을 적신다. 어쩌면 이곳에 모인 우리모두도 좀더 낳은 삶을 살아 보고져 부모 형제들이 있는 고국을 버리고 정착한 것은 어쩌면 맥을 같이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이민은 우리의 선조들이 나라를 빼앗긴 설음을 가슴에 묻고, 살아남고져 몰래 동토의 나라 만주로 이민을 떠난것과는 전연다른 이민이었다. 먹는것은 살기 좋은 이곳에서 쉽게(?) 해결 됐다고는 할수있으나, 어찌 빵으로만 삶의 척도를 잴수 있으랴. 세월이 흘러 갈수록 두고온 산하, 혈족, 조국에 대한 그리움은 더 커져만 가는것은 배고픔 보다는 배부름속에서 오는 투정인지도 모르겠다. 목숨을 바쳐 조국의 광복을 이루어내신 선조들의 고마움을 배부른 풍요속에서, 의례이 치르는 연례 행사가 아닌, 진정한 감사함을 가슴속에 지니고 살아가야 함을 다시한번 되새기는 오늘이 되여야 한다. 요즘 일본은 때아닌, 독도 영유권을 주장 하면서, 일본내의 국민학교 교과서에 계재하는 파렴치함을 범하고있어, 다시한번 우리 모두를 정신차리게 경종을 울리고 있다. 부강한 나라 건설과, 나라잃고 고통을 당했던 선조들의 체험을 마음깊이 새겨 유지하는것만이 다시는 일본이라는 나라가 조국을 넘보지 못하게 하는 첩경임을 명심하는 오늘이 되였으면 한다. 새로운 정부수립이후 60년 동안에 우리 조국의 국력과 경제적 성장은, 이제 선진국 대열에 들어 설려고 하는 과정을 통과 하는시점에 있음을 본다. 30년전이전에 이곳을 향해 올때만 해도 조국은 겨우 보리고개를 깔딱 거리면서 넘어가는 상황이었었다. 풍부한 소갈비를 공원에 나가 바비큐 할때면 먼저 고국의 식구들을 생각하면서, 같이 나누지 못함을 아쉬워 했었던 때도 기억에서 멀지 않다. 오늘날은 일상생활 패턴이 고국이 더 화려하고, 역동적으로 보여진다. 배부른것 만큼 후손들에게, 오늘의 풍요로움이 있게된 역사적 배경을 오늘을 사는 부모님들이 교육과 행동으로 보여주는면이 다소 부족한것 같아, 멀리서 보는 조국의 젊은이들이 걱정스럽게 보이는 일면도 있는데, 이것은 나만이 느끼는 기우일까? 역사가없는 민족은 부강하게 되지 못하고, 멀리가지 못하는것을 우리는 살아오면서 느낀다. 풍요로움에 맞는 정신적 풍요로움도 같이 성장 하도록 부모님들의 책임을 강조하고 싶어진다. 우선 나 자신부터 이시간을 빌어서 말이다.
조국이여....무한히 발전하라. 전진하라. 그리고 역사를 잊지말라. 우리 교민들은 조국이 있었으매, 그 후광으로 이곳에 이민와서 편하게, 풍요로운 삶을 즐기는 고마움을 항상 기억하자.
Monday, August 11, 2008
Hearst Castle 방문이 기억속에 올려져서...
오래전에 LA를 방문했을때, 해변가 고속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북상 하면서 Hearst Castle이 산등성이에 있는것을 보고 차를 돌려 그곳에 갔었다.
제목 Hearst Castle in San Siemon 방문기.
William Hearst 씨는 28년에 걸쳐 넓은 농장의 산등성이 위에 거대한 Castle을 지었다고 한다. 이Castle을 건설하게된 동기가 매우 이색적이다. 그가 1873년, 즉 10세때에 그의 어머니를 따라 유럽 여러나라를 방문하는 기회를 갖는데, 그때 스페인풍과 이태리식그리고 지중해식의 건축양식에 깊은 감명을 받고, 이다음에 꼭 성공하여 더 좋은 건물을 건설해 보리라는 다짐을 갖게 됐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George Hearst 씨로, 캘리포니아에 일어나는 금광을 찾아 동부 미조리주에서 서부 캘리포니아로 이주하여, 은광(Silver Mine)을 발견하여 부자가 됐다고 합니다.
Hearst 父子는, 1865년에 훌륭한 저택장소가 될 이 농장을 구입하여, 주말이면 이곳에 와서 캠핑을 하면서, 소년기를 보냈고, 그후 William씨는 그의 부인과 가족들을 데리고 계속해서 캠핑을 이곳에서 즐겼다고 합니다.
사업가로 사업이 번성하면서, 그는 미국최대의 언론사 사장이 되여, 그때 당시에 26개의 신문을 발행했고, 13개의 주요 잡지사,8개의 라디오 방송국 그외 여러 뉴스 미디아를 창업하여 많은 부를 축적하기에 이르렀읍니다. 거대한 Castle을 짖겠다는 꿈을 실현하기위해, 드디어 1919년에 첫삽질을 하게 됐다고 한다. 마침 San Fransisco 출신 건축 디자이너 Julia Morgan 여사를 만나, 그녀와 뜻이 맞아 심혈을 기울여 15년에 걸쳐 디자인하고, 건축하고...
캘리포니아는 지형적으로 지진이 자주 일어나, 이점을 감안한 그녀의 건축 방식은, 건축완성이후 현재까지 여러번의 강한 지진을 버텨내고, 상처하나 없이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고 한다. 이 성의 특징은 주로 유럽풍, 특히 지중해식으로 된 건축양식으로, 이Castle의 치장 벽토, 적색타일지붕, 화려한 색의 새라믹 타일들은, 스페인, 멕시코,캘리포니아 지역의 오래된 건축물등에서 볼수 있는 한 특징이기도 한답니다. 이성의 각방에는 Hearst씨가 생전에 주로 이태리, 스페인에서 수집해온 미술품, 조각품,도자기, 가구, 은세공품등으로 장식되여 있었읍니다.
Curator의 설명에 의하면, 몇년전 이곳에서 강진이 발생했을때, 모두가 피신하여 멀리서 성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Castle의 중앙에 우뚝 서있는 2개의 종탑에서 지진의 요동으로 종이 요란히 울렸다고 합니다. 이제는 모두가 페허가 되었겠구나라고 실망을 안고, 지진이 지난후 다시 성안에 들어가 확인해본결과,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건축 디자이너인 Julia의 기술에 감탄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읍니다.
Castle 앞쪽에서 바라보았을때, 성 오른쪽의 건축물은 미완성단계인채로 전시돼고 있었는데, 말년에는 그의 사업이 부도 위기에 처해, 결국미완성인채로 있게 됐다는 설명도 부귀 영화의 한계를 느끼게 했읍니다.
다 아시는바와 같이 캘리포니아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스페인 식민지였기 때문에 Castle이 자리잡고 있는 이곳 농장이름을 La Cuesta Entcanada(마법의 언덕)라고 불렀읍니다.
이저택들은 앞의 전경에 따라 그 이름이 다르게 붙혀졌는데, 일몰(Sunset)을 감상할수 있는 Casa del Sol(태양의 집)에는 18개의 객실이 있고, Casa del Monte(산의 집)에는 19개의 객실, Casa Grande(큰 집)에는 119개의 객실이 있다고 했읍니다.
소유주 William Hearst씨는 손님 접대 하기를 좋아해, 유명 인사들을 이곳에 초대해서 파티를 열곤 했다고 합니다. 정치가, 영화배우 기타 사회적 인사들이 이곳에 초청되였는데, 초청받아 이곳에 오게되는것을 사회적 신분을 측정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초대된 인사들은 항상 일정하게 물온도를 유지하고 있는 거대한 Naptune swimming pool에서 수영을 즐기면서, 파티를 했다고 합니다. 수영장 바닥에 깔린 타일 중간 중간에 금박으로 입혀진 타일은 퍽이나 인상적이었고, 그때 당시의 그들만의 삶의 즐거움을 머리속에 그려볼수 있었읍니다.
그때 당시에 그는 이곳의 식탁에 앉아서, 미국내의 모든 신문을 읽고, 또 필요시는 지시를 내리곤 했다 한다.
Castle 안을 관람하면서, 창문을 통해 언덕 아래의 넓은 대지를 바라보는것은, 파노라마 한편 그대로 였읍니다. 서쪽으로는 태평양의 출렁거리는 물결과 동쪽으로는 Rocky 산맥이 병풍처럼 둘려져 있고, 산꼭대기에는 눈이 하얗게 덮혀 있는 장관이 펼쳐지고....
L.A. 에서 Freeway No.1을 타고 약 400킬로를 북상하여 달리면, San Simeon이라는 조금만 도시가 나옵니다. 이곳에 바로 Castle이 있는 곳이지요. L.A.를 출발, 렌트한 car를 몰고, 해안선을 따라 이어진 길은 달리는 기분은 이렇게 아름다운곳이 미국에도 있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고국에서 마치 거제도의 아기자기한 해안도로를 달리는 기분이었답니다.
Castle관람을 마치고, 다시 남행하여 30 킬로쯤 달리면 Morro Bay라는 관광지인 어촌이 있읍니다. 이곳에는 Little Pebble Beach 로 명명된 골프장이 있는데, 이곳에서 짐을 풀고, 아내와 같이 라운딩하는 맛은, 주위 풍경과 어울려, San Fransisco 가는길에 들렸던, Pebble Beach 골프코스에서 즐기는 골프기분을 느낄수 있기에 충분 했었답니다.
저희는 2005년4월중순에 이곳을 찾았읍니다. 감사.
안내자의 뒤를 따르면서 Castle 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Saturday, August 09, 2008
제 29회 베이징 하계 올림픽의 화려한 개막식 안방에서 편하게
제 29회 하계 올림픽 개막식이 그막을 올렸다. 이곳 캐나다 시간으로 2008년 8월 8일 아침 8시에, 이번 올림픽을 경기를 위해 새로 신축된 주경기장(Bird's Nest Stadium,91,000명 수용능력)에서 개최된 개막식에서 후진타오 중국 공산당 주석의 개회 선언으로 시작된 올림픽 Opening Ceremony는 발달된 메디아를 통해 전세계의 시청자들 안방으로 시차의 공간없이 동시에 보내졌다. 그곳 시간으로는 같은날 저녁 8시에 시작된 것이다.
TV를 통해 보여진 주경기장의 규모는 엄청나게 커 보였고, 외모는 지금까지 봐왔던 경기장과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이었다.
이곳 캐나다에서는 국영 방송인 CBC방송이 현지 중계를 해주어 편안하게, 간판 앵커인 Peter Mansbrige의 현지 중계로 잘 볼수 있었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오늘 이순간의 모습을 전세계에 보여 주기위해 중국인들은 5천년이상을 기다려 왔었다라고 의미를 부여 하는 대목에서는
같은 동양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고 남는것같은 흐믓함과 해냈다는 그무엇을 보는것 같았다.
4시간 이상 진행된 개회식에서 보여준 그들의 묘기는 지금까지는 어느 올림픽 개회식에서 보지 못했던 섬세하고 웅장함, 그리고 동양적 고전미를 담뿍 담은 대규모의 마스게임과 특기...... 모든 동작 하나 하나가 감탄을 자아내게 하고도 남았다. 참가한 Performers들의 숫자 또한 일찍이 그예를 볼수 없는 대규모에도 또한번 감탄을 할수 밖에 없었고, 해설자의 설명에 의하면 이개회식의 진행을 위해 지난 10개월 이상을 준비 해 왔다는 것이었다. 새삼 중국이 대국임을 이번의 올림픽 주최국으로서의 보여준 그들의 행동에서 깊이 느낄수 있었다. 특히나 개막쇼가 끝난후 204개국이 참가한 각국 선수단의 입장식에서도, 입장 순서를 지금까지 보아왔던 국제 경기에서 영어의 알파벳 순서에 따른 틀을 깨고, 그들의 한자 알파벳순서를 따라, 진행함에 따라 먼저 올림픽의 상징 그리스를 선두로 입장 하것 까지는 이해 할수 있었으나, 그다음 부터는 예상을 뒤엎고 그들의 방식에 따른 선수단 입장에 또한번 그들의 뚝심을 볼수 있었고, 한편 먼 장래를 예측해 볼때 두려움마져 들기까지 하게 했다.
갑자기 화면 자막에 특종뉴스로 옛소련의 위성국중의 하나였던 George와 러시아 사이에 전쟁이 시작됐다는 놀라고 슬픈 소식이 보도되였다.
미국의 부쉬 대통령과 고국 대한민국의 이명박 대통령을 포함한 세계 80여개국의 정상들이 개막식에 참석한 그순간에 이 뉴스가 터진 것이다.
러시아 팀이 입장할때, 푸틴 러시아 수상이 관람석에서 일어나 손을 흔들고 박수를 치는 모습이 잠깐 보였는데(러시아 대통령은 참석안함), 나는 그가 손벽치는 모습을 보면서, 그의 구루지아(Georgea)공격명령을 어떻게 내렸을까?가 궁금해 지기도 했다. 미리 했을까? 아니면 선수단 입장식을 관람하면서 즉석에서 했을까?라고 말이다. 얼마후 이번에는 구루지아 선수단이 입장하는 장면이 보였다. 그들도 고국이 러시아의 침공을 받고 있는것을 알고 있어서 였을까? 얼굴표정들이 다른선수단 처럼 웃는 모습이 아니였음을 보았다. 전쟁의 시작으로 금방 인명 살상이 발생하고......죄없는 국민들이 고통을 당하는데, 푸틴은 알고 있을까? 그의 명령한마디에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이 왔다 갔다 한다는것을...... 고국 대한민국의 선수들이 입장하는 장면은 끝내 못보고 다른 볼일이 있어 자리를 떳다. 아쉬웠다.
공자를 공경하는 의미의 집단 체조, 9개의 링으로 구성된 지구를 상징하는 큰 풍선을 중심으로 그주위를 새가 날듯 움직이는 스턴트맨들,
경기장 중앙 바닥에 설치된 전광판의 신비에 가까운 예술적 움직임, 높이 솟아았는 성화대의 점화장면 등등......그러한 순간들을 오랫동안 기억속에 간직 하고 싶은데...... 과연 얼마나 긴 시간을 기억속에 보관 할수 있을까? 몇장의 사진을 곁들여 보지만 미흡하기만 할것 같다.
캐나다 수상은 중국의 공산당 정부의 인권유린을 이유들어 개막식 참석을 거부하고, 대신 외무장관이 참석했다. 미국의 부쉬 대통령이 , 중국정부 당국의 인권유린을 규탄하면서도 개막식에 참석까지 했는데, 그시간에 중국의 얼굴인 천안문은 완전 페쇄 시켰다고 한다. 현지 중개 방송을 하지 않는 이변이 미국에서 발생한 것이다. NBC 방송이 현지 중계권을 확보 하고 있으면서도, 생중계를 포기하고, 저녁시간까지 보류시킴으로서 미국민들의 분노를 샀다고 한다. 이유인즉은 이곳시간으로 생방송하는 시간이 황금시간대가 아닌 아침 시간이어서, 저녁 황금시간까지 늧추었다는 변이다. 시청자의 시청할 권리를 깡그리 묵살하고, 몇푼의 돈을 더 벌어서 얻는 대가는 무엇일까? 세계적인 NBC 방송국의 책임은 어떻게 해석해야 정도라고 모두가 수긍할수 있을까? 참 미국답지 않은, 앞에 보이는 돈만 찾아 헤맨 행동인것 같다.
이번 올림픽 주최로 본토에 있거나, 아니면 해외에 나와 있는 중국인들의 자부심이 대단한것 같다. 간간히 보여지는 기자 회견에서의 중국인들 발언이 이를 확실히 보여 주는것을 보았다. 중국의 국제 무대에서의 위상격상을 많이 느꼈다. 중국은 이번 경기에 사상최대규모인 639명의 선수를 출전 시켰다고 한다. 아마도 항상 1등을 하는 미국의 아성을 무터뜨리고져 하는 야심이 밑에 깔려 있음을 본다. 그러면 체육뿐만이 아니라 경제적 군사적 그리고 모든면에서 미국과 어깨를 겨누어도 손색이 없게 될것이라는 자부심을 국민들에게 심어 줄려고 하는 중국정부당국의 노력이 결실을 맺게 될지는 두고 두고 지켜볼일이다. 그렇게 되기를 나도 바라면서, 대국으로서의 힘만 과시할게 아니라,체면을 주위 국가에 지킬줄 아는 성숙한 정신적 성장도 곁들여 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세계적으로 기승을 부리고 있는 테러분자들의 공격을 사전에 막기위해 무척 고민하면서 대처에 온 신경을 쓰는 그들의 노력도 보인다. 무사히 경기를 마치기를 바란다.
지구 저편에서 벌어지고 있는 올림픽 경기를, 기술의 발달로 이렇게 편하게 안방에 앉아서 세계적 운동선수들의 묘기를 볼수 있다는 오늘의 세대에서 생을 영위하고 있다는 내자신은 행운의 세대인가? 아니면 미디아의 공격에 부대끼는 세대인가?
고국의 유도선수 한분이 방금 금메달을 획득 했다는 낭보가 화면을 장식한다. 대한의 건아들아 맘껏 뛰어 높이 올라라.....
캐나다, 나의 2의 고향,선수들아 너희들도 높이 뛰어라, 내가 뒤에서 열열히 마음으로 성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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