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October 29, 2012

세월앞에 K형이 굴복하는것을 보면서…인생살이는 순리임을 맛본다.



"이형, 웬만하면 같이 공항에 나갈려고 했는데, 못할것 같습니다.  이해하여 주시고 무사히 잘 가시기를 빕니다"
"아픈것을 보면서,  별수 없이 떠나는 저희를 용서해 주시고, 몸조리 잘 하십시요. 나오지 마세요."

조국방문을 마치고 떠나오는날, 드디어 꼬장꼬장하고, 대한민국의 높은 산은 다 올라다니고, 이제는 중국에 까지 원정하여 자연을 벗삼아 산행을 즐기면서, 노후의 생활을 즐겨하던 K형과 작별을  고하면서 주고받은  안쓰러운 순간에 나눈 인사이다.

그의 집은 전형적인 한국의 서민주택으로, 서울중심의 남산바로 아래에 있는, 일명 해방촌의 요지에 넓은 대지에 정원을 가꾸어 앞마당구실을 하고 있는, 일찌기 열심히 노력하여 여유있게 노후를 보장할 정도의 경제적 여유를 이루고, 지금은 어찌보면 돈과는 무관한, 그러면서도 사리분별에는 꼬장꼬장하여, 한때는 동네의 통장도 해왔던, 정도를 걷는 의리파 남자 해방촌 토박이다.  오래된 집이라서 생활하기만을 따진다면 불편하기 이를데 없다. 그걸 못참는다면 편안한 호텔에서 보내는게 최상일것이다.  그것보다는 마음이 편해야 함이 우선이기에…. 생활에 좀 불편한것은 이미 어렸을때의 열악한 환경에 비하면 이곳은 천국과도 같은 곳임을 감사해 하기에  집주인의 의향을 묻기전에 일방적으로 통고(?)하고 찾아가 짐을 풀고, 소위 말해서 Base를 만들어온 그런 관행을 오래 해오고, 앞으로도 고국 방문시는 똑 같은 행동을 할것이다. 

서울에 도착하면, 형제 자매의 집에 묶는것 보다는, 의례히 내집인양 당연히 K형의 집에 짐을 풀고 편하게 우리 부부를 쉬게 해주는 이친구 부부는 사실은 내가 먼저 Fellowship을 쌓은게 아니고, Lunar와 K형의 부인이 중,고등학교 동기동창으로 50년 가까이 떨어져 살아가면서도, 보기 드물게 우정을 나누고 있는 4 Couple중의 하나인데, 부부는 일신동체라는 말처럼, 실가는데 바늘 간다는 말처럼, 지금은 어쩌면 남자들이 더 재미있게 만나면 만사 제치고 시간을 같이 즐기는 그런 사이가 된지가 4반세기가 넘었다. 4남자가 만나면, 체면은 어디로 갔는지 찾을수가 없을 정도로, 아니 존재치 않는것 처럼 모든것 다 내려놓고, 겪의가 없이 삶의 애기를 나누면서 같이 행동하기에 밤새는줄 모르는 늙은 어린애가 된지 오래다.

며칠전 울릉도 관광여행을 4 Couple이 떠났었다. 그곳에서 본인은 부인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조금 편찮은 그의 모습에서 세월의 덧없음을 혼자서보았었다.  돌아와서는,우리 부부는 시골 형제 자매와 선영에 들리러 잠시 헤여진 사이 그는 대전으로,  강원도의 붉게 물들은 산천을 찾아 정신없이 돌아 다녔다는것을 알았다. 오래전에 조심스러운분과 약속한 강원도의 자동차 여행이었기에 손수 운전수가 되여 무리를 한것이 겹치고, 다시 홍천 친지집에 내려가 토종닭을 뜯으면서 떠들어 댔으니…기계가 고장난것은 어찌보면 당연한(?)순서였는지도 모를일이었었다.  드디어 오늘 아침 우리 부부가 캐나다행 비행기를 타는날, 못견디고 병원을 찾은 것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의례히 좁은(?)부엌에 K형의 부부와 우리 부부가 식탁에 앉아 커피가 곁들인 Breakfast를 먹으면서 싱거터진 소리들을 해야 할 그시간에 K형은 혼자서 산행할때 입곤하던 Green색의 잠바를 입고, 집밖으로 나서는게 아닌가.  "여보 나 차병원에 다녀올께" 그리고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서로간에 웬일이야?라고 물어볼 시간도 없이 말이다.  행여나 우리 부부에게 마음의 짐이 될까봐서 그러는것을 우린 금방 알수 있었다. 태연한척 남은 3명은 커피를 즐기면서.

병원에서 돌아온 그는 부엌에 오지 않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자리를 펴고 누운것이다. 
콜록콜록 계속하면서 괴로워하는 그를 우리 부부는 어떠한 말도 필요없이 겉으로는 태연한척 귀만 기울일뿐, 다른 특별히 도와 주거나 할일이 있지가 않았다.  자리를 준비해주고 나온 Lunar의 친구이자 그의 부인은 대수롭지 않게 한마디 가볍게 던진다.
"내말 안듣고 무리 하더니 끝내 저꼴이야.  위내시경 촬영을 했는데, 속이 많이 헐어 있다고 했대.  자세한 것은 내일 다시 Sample떠서 점검을 해보아야 확실히 알수 있다고 했단다.  괜히 너희한테 미안해 하는구나." 라고 설명해준다.

고국방문시마다, 그는 그의 차에, 우리 부부를 싣고, 강원도 산꼴짜기의 이곳 저곳을,어떤때는 군사 작전도로까지도, 보초서는 병사들을 설득하여 산악 드라이빙을 해주곤 했었다.  한번은 내가 군대생활했던 1358부대의 정문앞을 지나갔었다.  약 45년전에는 부대앞에는 아무것도, 다만 산골짜기의 차거운 물소리만이 요란했던 그곳이  마치 어느 조그만 도시처럼 변하여, 옛날 그때의 기억을 되찾는데 무척 어려움을 느끼기도 했었다.  민간인 승용차가 위병소를 지나가는데, 보초서는 병사가 경례를 부치는게 아닌가?  궁금하여 차에서 내려가 물었다. 그의 대답은 지금은 퇴근후에는 영외거주하는 모든 군인들이 자가용을 타고 다니기 때문이고, 조금전에 지나간 차는 중대 행정관이라고 귀뜸해준일도 있었다.

K형이 정상데로의 스케쥴에 따라 움직였다면, 그의 부부와 우리 부부가 인천공항에 일찍 도착하여 Check-in을 마치고, 이층의 식당에 들려 멋있는 점심을 먹을려고 했었다. 식사비는 내가 낸다, 네가 낸다 한바탕 소란(?)을 피우면서 말이다.  그는 우리 부부는 방문자니까 당연히 대접해야 한다고 주장할것이고, 우리 부부는 그동안 신세많이 졌으니 오늘 만큼은 우리에게 기회를 달라고 주장 했을 것이다.

오죽했으면, 자리를 펴고 누워있을까?  괜히 K형 부부를 너무나 혹사 시키지나 않았나 하는 미안함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우리가 인천에 도착하는날은 8시간이상을 공항에서 우리를 기다려 줬던 고마운 친지이다.  뱅쿠버에서 비행기가 고장나서, 대체 비행기를 토론토에서 다시 날려 보는데 거의 5시간을 소비하고, 그러기 전에 Repair해 볼려고 보낸 시간이 3시간 이상이었기 때문이었다. 기다리기에 얼마나 지루함을 느꼈을까?  그래도 대답은 오히려 태평 했었다. "야 너희가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쉽게 발걸음이 닿지 않는 비행장 주변의 재미있는곳을 많이 보았어야. 이것 다 너희 덕택으로 고마워" 라고.

공항에 도착 해서도 마음이 안놓여 공중전화 Box에서 통화를 시도 했으나 연결에 실패 하고, 비행기에 올랐었다.  뱅쿠버 공항에서 비행기를 바꾸어타는 시간을 이용하여 휴대하고간 Laptop을 꺼내어 e-mail을 보냈다. 별스런 상상을 다하면서 말이다. 

K형이 오래 오래 건강해야한다.  이번기회에 몸조리를 잘해서 옛모습으로 되찿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다음에 다시 고국을 방문했을때, 우리 부부가 편하게 지내기위함이(?)앞서기 때문이다.  그가 편치 않으면, 고국 방문할 목적(?)이 사라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K형, 캐나다대륙을 우리 만나는 친지부부들과 함께 내년 여름에 신나게 달려 보기로 한 약속 꼭 지켜야 하오. 그약속 안지키면, 우리 부부  어쩌면 K형 부부 안보게 될지도 몰라. K형을 위해서 건강 하라고 부탁 하는게 아니고, 먼저는 우리 부부의 편안함을 위해서, 둘째는 Lunar친구를 위해서 그런답니다. ㅎㅎㅎ"

고맙습니다. K형 부부 그리고 다른 친지분들….건강 꼭 지키시기를 









캐나다 친구부부가 두손모아 기원합니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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