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January 28, 2011

'말도 많고 탈도 많다'는것을...국익을 위한 결단에 응원을

참으로 말도 많고 탈도 많다는것을 오늘 이른 아침 신문 기사를 보면서 느꼈다.
며칠전엔 '아덴만의 여명'이라는 작전으로, 납치돼서 긴장속에 해적들의 지시데로 이리저리로 끌려 다니고 있던 한국의 화물선,'삼호주얼리'의 구출작전이 해군 특수부대원들의 활약으로, 큰피해 없이 무사히 구출되였다고 전세계를 향한 뉴스가 환호속에서 흘러나왔었던 기억이 아직도 새로운데, 어느새 그 환호가 몇명의 먹물을 먹었다는, 말하기 좋아하는 대학교수와 정부의 정책을 좋아하지 않는 몇명의 사람들이, 무자비한 작전으로 훗날을 생각지 않고, 지난번 두번씩이나 엉성하게 말로만 대비하고 있다가 어이없게 북한의 망나니들에게 공격을 당해 국민들의 불신을 샀던 정부에 대한 국민들로 부터의 비난의 화살을 바꾸기위해,그렇게까지 강도높은 인질구출작전을 하지 않았어도 좋았을 것이란 내용의 비난으로 바뀌는,서울발 외신 기사의 내용을 보면서, 안타까움으로 혀를 끌끌 차지 않을수 없었다.

세계 어느나라 정부를 봐도 그들이 추진하는 정책은 국민의 안녕과 질서를 지켜주고, 경제활동을 촉진시켜 국민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위해서 그들이 존재하고 있다는것을 심어주기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는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물론 그과정에서 찬,반이 있을수 있겠지만, 결과는 국익을 위해서라는데는 이의를 달수 없다고 하겠다. 특히 국민들의 투표로 구성된 정부는 그분야에 심혈을 기울여 정책을 운영해야 다음번 선거에서 다시 국민들의 신임을 얻을수 있기 때문이다. 이북의 김정일과 그집단을 포함한 몇개의 엉터리 정권들을 제외 하고는 말이다.

이번의 구출작전을 최종적으로 승인할때의 MB의 고민했던 모습을 뉴스미디아를 통해서 보았을때, 지금은 야인이 된 미국의 Bill Clinton과 George Bush대통령을 연상케 했었다. 세계를 돌보아야 했던 이들 대통령이 백악관에 입성할때는 얼굴에 화색이 돌고 머리색갈도 보통사람들과 같은 색갈을 지니고 있었는데, 8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백악관을 떠나 갈때는 그들의 외모가 확연히 달라져, 전문가들의 분석에 따르면, 그들이 한 이슈를 놓고 보좌관들의 의견을 종합한뒤,최종결정을 내릴때는 그에 뒤따르는 결과를 놓고 고민을 하지 않을수 없기에 고민과 사색끝에 결단을 내고, 그에 대한 책임을 혼자서 짊어져야 한다는 부담이 그렇게 얼굴과 머리의 색갈까지 변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MB는 아마도 이작전을 최종적으로 승인 할때는 그이상으로 고민하고, 잘못됐을때의 책임질 자신의 모습을 그려 보면서, 외로운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이것도 하나의 전쟁이라고 볼수 있는데, 전쟁에는 승자나 패자나간에 항상 막대한 피해가 뒤따르게 마련인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상식이다. 인명의 손상, 재산상의 손실, 작전실패했을때의 그 후유증 등등..... 다행히도 계획했던데로 최소한의 인명피해와 재산상의 손해를 입은채, 납치했던 해적을 소탕하고, 구출했던 것이다.

구출작전중에 일어났던 일들을 후에 미디아에서 보면서, 불편한점도 느꼈었다. 예를 들면 UDT 대원들이 화물선 후미로 가서 갑판에 승선 하는데 6분이 걸렸다라든지, 흔들리는 헬기에서 Sniper역활을 했던 어려움등의 내용은 군사작전의 세밀한 사항이기에 언론에 밝히지 말았어야 했었다. 특수부대의 위용과 무용담을 국민들에게 홍보 차원에서 알려주기위한거였을 거라고 한발 물러 생각해 봄직도 하지만, 군사작전상의 비밀은 지켜졌어야 다음 작전에서 적들에게 노출이 안될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작전후의 대 국민보고에서 흠이라고 여겨지는 부분이다.

비난하는자들의 의견은, 무자비한 구출 작전으로 오래전에 납치돼여 있는 다른 한국적 배와 선원들의 안전이 염려 된다는 것이었다. 정부는 북한의 테러에 두번씩이나 무방비 상태로 있다가 화를 당해 비난을 면치 못하고 있는 비난의 눈총을 돌려 보려고, 무리한 구출작전을 실행 했다는 내용이다. 현재 납치되여 있는 화물선의 선장부인도 불공평한 구출작전(?)을 간접적으로 비난하면서, 먹물교수와 합세했다고 한다. 해적들이 처음에는 6백만불을 몸값으로 요구했지만, 지금은 단돈 6십만불로 몸값을 내렸는데도 정부는 이에 응하지 않아, 결국 남편을 포함한 선원들의 안전이 더위험한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해적들의 몸값요구를 계속해서 들어주면, 결과적으로 해적들에게 계속해서 공해선상에서 그곳을 통과하는 화물선들을 납치하게 하는 물꼬를 터주는 결과를 낳을수 있다는 빌미를 주는것은 왜 생각 못하는가? 납치돼 있는 선원들에게는 아픔이겠지만, 단호하게 거절하는 아픔을 이겨냄으로써, 앞으로 계속 이어질 해적들의 활동을 저지하여 항해상의 무질서를 바로 잡아야 더 큰 이익을 해당국뿐만이 아니고 이와 관련있는 모든 국가와 국민들이 안전하게 삶을 살아갈수 있다는것을 실천으로 보여주는 행동을 이번에 정부가 해낸 쾌거라고 생각한다. 먹물먹은 대학교수의 비난은, 자유는 즐기되 그것을 지키기위한 무한 책임을 완전히 외면하고 있다는것을 느꼈다. 비난을 했으면 그에 대한 대책도 직시 했어야 했다. 그가 대안이라고 한말은 아직도 납치되여 있는 다른 선박과 선원들의 안전도 생각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그의 주장데로 라라면 정부는 아무 행동을 하지말고, 해적들의 몸값요구에 코를 꿰어 끌려 다녀야 한다는 이론이다. 이북의 김정일집단에게 그수를 셀수도 없이 당해온 경험을 보면서도 그런 안이한 이론을 말하는 그교수의 사상이 의심 스럽기만 할뿐이다. 이스라엘 정부는,독일의 올림픽촌에서 인질로 잡혀 있었던 이스라엘 선수들을 구출했었고, 이디아민의 우간다의 "엔테배"작전의 성공, 이락의 원자로를 공격했던 사건 등등....국익을 위해서 과감히 그것도 공해상이 아닌 엄연한 주권국가안에서 작전을 감해하여 구출한것이다. 그와 비슷한 구출 작전을 했다면, 아마도 한국의 반정부 먹물들은 정부타도를 외치면서 거리로 뛰쳐 나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고국의 현실은 '이스라엘'이 처한 상황보다 훨씬 더 한치앞을 예측할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바로 휴전선 넘어에는, 어디로 튈지, 아무도 예측 불허의 망나니 집단이 호시탐탐 남한 정부를 포함한 국민들을 불모로 사고를 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를 빙자한 국민선동과 인기영합을 위한 "아니면 말고...."식의 무책임한 발언은 제발 정치인들과 사회지도층의 위치에 있는 대학교수를 포함한 사람들은, 그들의 한마디에 국민들의 생각이 휘청거릴수 있다는 생각을 깊이 인지 하시고, 발언에 신중을 기하고, 국익을 위하여 때로는 자제도 필요함을 실천으로 먼저 국민들에게 보여 주었으면 하는 책임감을 동시에 생각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래서 그들은 국민들로 부터 추앙을 받기도 하지만, 때로는 무자비한 비난을 감수 해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에도 일부 흠은 있게 마련이다. 전체적으로 절반이상이 긍적적으로 여기고 지지 한다면 그정책은 성공인 것이다. 이원칙이 민주주의라는 대의 정치와 사회제도의 근본이 아닐까? 불행 하게도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상의 사회 조직중에서 민주주의 라는 사회조직 이상으로 좋은 대안은 아직은 없다. 그래서 이구조가 최상인 것이라고 여겨진다. 좀더 넓게 보고 그틀안에서 사고하는, 전체를 보는 정신이 지금 우리 조국이 필요한때라고 말하고 싶다. 오늘자 LA times의 관련 기사를 옮겼다.

http://www.latimes.com/news/nationworld/world/la-fg-south-korea-pirates-20110127,0,6911218.story

Friday, January 21, 2011

국군은 국가의 명령에 임무수행완벽, 지도자들의 결단력부족임을 증명시킨 사건



자랑스러운 대한 건아들의 수만리 떨어진 해역에서의 완전한 임무수행 이행에 우선 마음속 깊은 곳으로 부터 찬사를 보내지 않을수 없었다.

그동안 여러차례, 남북간의 대치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밀리기만 하고, 인명피해까지 당하면서도 이에 상당한 대응을 못하고, 말로만 응징 하겠다고 허공에 대고 떠들어 댔던, 지도자들의 마음 자세가 문제였지, 명령이 떨어지면 한치의 착오도 없이 임무를 수행낼수 있는 우리 대한의 건아들로 구성된 군인들의 전술과 정신력은 세계 어느나라의 군대에 비교해서 손색이 없이 항상 준비를 해오고 있었음을 이번의 "아덴만의 여명"이라는 작전명으로,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납치되여 해상을 헤매고 있던 우리고국의 상선과 선원들을 거의 완벽한 작전으로, Pirates들을 소탕하고, 납치됐던 전선원을 구출하여 고국의 가족품에 무사히 안기게 해준, 그 작전의 치밀함과 용맹성에 우리 고국의 국민은 물론이고 전세계가 경이를 표하는 쾌거를 올린, 이번 사건의 기사를 보면서, 고국과 후배 군인들이 더욱 자랑스럽게, 믿음직 스럽게 내 가슴속 깊이 자리매김 하고 있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국가를 운영하는 위치에 있는, 특히 여 야당의 정치꾼들을 포함한, 지도자들은 깊이 각성하고 반성해야 한다고 믿는다.

국민들의 세금으로 장시간의 고된 훈련과 정신무장으로 단련되여 있는 후배 군인들의 늠름한 모습이, 이를 지휘하는 지도자들의 무능과 결단력 부족으로 빛을 발하지 못하고, 더불어서 같이 국민들의 지탄을 오랫동안 받아 오기만 했었음은 대한민국 국민이면 다 같이 가슴 아프게 느끼면서 오늘까지 속앓이를 해 왔었던 현실이라고 믿는다. 그러한 불신을 이번에 대통령의 결단과 이를 충실히 따르고 이행한 후배 군인들의 군사 행동이 깨끗히 씻어 내고도 남았다.


이러한 일치 단결한 상하의 행동이 앞으로도, 위기에 처했을때, 속전속결의 결단으로 이행된다면, 그동안 고국 남한을 귀찮게 굴었던 이북의 김정일 집단도 함부로, 망나니들이나 하는 말썽을, 부리기전에 다시한번 생각을 하면서 경거망동을 못하게 하는 경종과 표본을 보여주는 상황을 확실히 보여 주었다고 믿고 싶다. 앞으로 며칠후에 남북간의 군사예비회담이 열릴것이라고 고국의 언론이 발표 했는데,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제발 그들의 계략에 더이상 넘어가서는 안된다. 이는 귀중한 시간을 국토방위를 위해 헌신하고 있는 후배 군인들에 대한 모욕이기 때문이다.
현명한 결단과 해법을 도출해 내어, 김정일 집단에게 "아덴만의 구출작전" 처럼 본떼를 보여 주는 군사예비회담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보석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그진가를 발휘된다"라는 속담을 지도자들은 귀 기울여 들을 필요가 있음을 마음깊이 새기시기를 바랜다.


아래 기사는 이번 작전을 지켜본 New York Times의 기사 내용인데, 여기에 옮겨왔다

South Korea Rescues Crew and Ship From Pirates
South Korean Navy, via Associated Press

South Korean naval special forces guarded Somali pirates after detaining them on the South Korean cargo ship Samho Jewelry in the Arabian Sea on Friday. More Photos »
By SU-HYUN LEE and KEVIN DREW
Published: January 21, 2011




SEOUL, South Korea — South Korean special forces staged a daring early morning rescue on a hijacked freighter hundreds of miles off the coast of Somalia on Friday, killing eight pirates and rescuing all 21 hostages, the South Korean military said.



President Lee Myung-bak, who was sharply criticized last year over what was deemed a weak response to the sinking of a warship and the North Korean shelling of a South Korean island, reaffirmed his country’s tough stance against pirates and appeared pleased with the operation in a televised statement.

“We will not tolerate any behavior that threatens the lives and safety of our people in the future,” Mr. Lee said.

Rescue operations on hijacked ships are rare, with countries often deciding against such attempts over concerns for the safety of the crew. Most shipping companies, in turn, opt to pay the expensive ransoms demanded by Somali pirates to release hijacked ships rather than engage in confrontations.

The rescue began at 5 a.m. Friday, when a special forces team from a South Korean destroyer piled into a small vessel and approached the hijacked ship as the destroyer provided cover, according to the military. The commandos then confronted the pirates, who were armed with AK-47s, heavy machine guns and rocket-propelled grenades, in a battle that lasted five hours.

Three South Korean soldiers were wounded, the military said, and the hijacked ship’s captain, a South Korean, was shot in the abdomen, but his injuries were said not to be life-threatening. The entire crew was then brought to safety.

The 11,500-ton freighter, the Samho Jewelry, was traveling to Sri Lanka from the United Arab Emirates last Saturday when it was seized by the pirates about 800 miles off the coast of northeast Somalia.

The South Korean government dispatched a naval destroyer on antipiracy patrol to track the ship. South Korea, like other nations, patrols the waters off Somalia since the increase in pirate attacks in recent years.

While the pirates held the 21-person crew — including 8 South Koreans, 2 Indonesians and 11 citizens of Myanmar — they simultaneously began using the large cargo ship as a base to try further attacks on nearby ships.

The standoff between the destroyer and the pirates lasted several days, with the South Korean military sending messages ordering the pirates to surrender.

A South Korean military official who spoke on the condition of anonymity said while the operation to free the hostages was not free of risk, the military had confidence it would succeed because “the pirates were exhausted” after the long standoff.

“The decision to carry out the operation was made to send a message that there will not be any negotiation with the pirates,” the official said.

The Samho Jewelry was the second vessel of South Korea-based Samho Shipping to be hijacked in the past several months. In November, Somali pirates freed the supertanker Samho Dream and its 24 crew members after seven months of captivity.

In a similarly risky antipiracy operation in April 2009, snipers with the Navy Seals rescued an American cargo ship captain, killing three of his Somali captors.

In 2010, pirates increased their attacks for the fourth straight year, taking more hostages than in any year on record, according to an annual report on piracy. The Piracy Reporting Center of the International Maritime Bureau said pirates had taken 1,181 people hostage and killed 8 in attacks on 445 ships last year. At least 53 ships were hijacked last year, the bureau said.

The waters off Somalia remain the most hazardous for vessels, according to the organization. Ninety percent of ship seizures occurred there last year. By the end of last year, at least 28 vessels with 638 hostages were being held for ransom.

On the same day of the successful South Korean rescue, two other ships were captured by pirates off Somalia, Reuters reported. The European Union Naval Force for Somalia said a Syrian-owned vessel flying Togo’s flag and a Mongolian-flagged vessel with a Vietnamese crew were seized.

Su-Hyun Lee reported from Seoul, South Korea, and Kevin Drew from Hong Kong. J. David Goodman contributed reporting from New York.

Monday, January 17, 2011

나도 그렇게 북적대는 속에서 소년기를 보냈었는데....

살림밑천이라고하는 큰딸아이가 16세 막내가 2살 먹은 딸아이, 그리고 그사이에 5명의 아들들이 북적대는, 그러나 재미있게 살아가는 어느가족의 생활상이, 우연히 인터넷을 통해 고국의 전남 담양군 시목 마을의 약 40대중반쯤되는 한 농가에서 펼쳐지고 있음을 보았다. 위로는 85세의 할아버지가 계셨고, 그다음에 7남매의 주인공 부부와 어린 아이들.... 아버지는 생업으로 소를 키우고, 어머니는 7남매 뒷치닥거리에 하루해가 지는줄을 모를 정도로 바쁘게 움직이는면서도, 아이들과 싸우거나 아우성치는 광경은 보이지 않고, 오손도손 살아가는 모습이 옛날, 그러니까 나의 소년기를 연상케 하고도 남는다. 그렇게 바삐 살아가면서도, 커가는 아이들을 위해서 별도로 당나귀 한마리를 구입하여 아이들과 같이 작난치면서 즐기도록 배려하는 자상한 아버지의 모습이, 어린 막내딸은 오빠들이 한방씩 쥐어 박는 시늉을 하면, 종종 걸음으로 부엌으로 쫓아가 엄마에게 칭얼대며 오빠들이 때렸다는 시늉을 하면, 옆에서 부엌일을 도와 주고 있던 큰딸이 하던일손을 멈추고, 막내의 재롱에 맞장구 치면서, 오빠들을 혼내 주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장면.... 눈이 펑펑내리면 두터운 옷으로 무장한 아이들은 집뒷쪽 언덕으로 올라가 썰매(Toboggan)를 타면서 끝없는 웃음을 자아내는 모습, 나귀등앞에 막내가 타고 그뒤에 붙어 오빠가 타고 집주위를 돌면서 친하게 아무걱정없이 어우러져 즐기는 모습....우선 살아가는데 여유가 있어 보여 좋았고, 요즘같이 아이낳기를 꺼려하는 세상살이로, 앞으로 20년 30년후의 인구감소 추세를 걱정하고 있는 전문가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국가 정책에 적극 호응하는 부부같아, 그다큐를 보는동안 나자신은 까맣게 잊고 있던 나의 소년기속으로 Time machine을 타고 달려가고 있었다. 그집의 어린 7남매 아이들이 그렇게 부모님의 보살핌속에서 재미있는 기억에 남을 소년 소녀시기를 잘 보내기를 기원해 주고 싶었다.

내기억으로는 당시에 80세가 넘으로신 할아버지가 같은집에 살으셨고, 어린 나는 할아버지의 방에 들어가는것을 무척이나 꺼렸었다. 우선 지금생각해 보면 당시에는 샤워 시설이 없기에 몸을 닦을 기회가 적어,노인들에게서 나는 특유의 냄새와 또 긴 장죽에 넣어 피워대시는 담배 냄새가 지독히도 싫어서 였다. 할아버지가 어쩌다 마실물 한그릇을 떠오라고 하시면, 나는 그명령을 이행하는대신, 할아버지와 말대꾸를 하면서, 할아버지의 성질을 돋구어, 장죽으로 후려치려하시면 얼른 도망 다녔던, 철없는 작난을 쳤던 그때가 있었다. 바삐 집안일을 하시다가 이광경이라도 보는 날이면, 나는 어머님에게 혼줄이 나도록 빌어야 했었고... 어쩌다 미쳐 할아버지의 급작스런 공격(?)피하지못하고 한방 맞을때는 머리통에 조그만 혹이 생겨 고통의 눈물이 주르르 흐르곤 했었다.

6/25사변이 막 끝나고 아직 어수선한 때여서, 빈손이다 시피한 형편에서 아직 부모님의 우산속에서 보호를 받아야 하는 우리 어린 8남매 (전체 10남매 였으나 윗 두형님은 벌써 결혼하여 따로 살고 계셨다)는 우선 허기진 배를 채워야 하는 고통이 제일 컸었다. 어느날 어머님이 큰 누나와 하는 소리를 들었다. 한달에 최소한 쌀 3가마는 있어야 겨우 목에 풀칠을 할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요즘의 생각으로는 대식구인것이었다. 그와중에 큰 누나가 시집을 간다고 잔치 준비를 한 생각이 난다. 집뒤의 큰장광에 있는 7-8개의 큰독에 막걸리를 만드느라 Fermenting되고 있는 흰막걸리가 꽉 있는 그속에 조그만 바가지를 부엌에서 몰래 들고 나와 독속에서 꺼내 먹고, 취해서 사랑방 부엌안의 나무더미위에서 쓰러져 잠들다가 저녁이 되어도 나타나지않자 식구들이 찾아 나서면서 크게 이름을 불러대는 소리에 깨어 났던 기억.... 행동 하나 하나가 위의 형들이나 부모님으로 부터 칭찬대신 욕먹을 먹을 짖만 했었던것 같다. 더 부모님의 마음을 조리게 했던점은, 막걸리를 집에서 만드는것은 밀주를 만드는 행위 였기에, 밀주단속군에게 들키면 벌금은 물론이고, 결혼식은 엉망이 되기에 항상 어린 나를 포함한 형제들에게, 암행어사 처럼 이동네 저동네를 비밀리에 뒤지고 다녔던 밀주단속직원들에게, 행여나 그들이 던진 미끼에 걸려 다 불어버릴것을 걱정하여 입단속을 시키곤 했던 기억도 떠 오른다. 어머니에게는 귀여운 새끼들이 아니라 말썽 꾸러기들이었을 것이다. 속상할때면 욕설을 자식들에게 퍼부으면서 "무슨죄가 이렇게 많아서 새끼들이 많이 생겨나 속이 편한날이 없게 사는지 모르겠다"라고 탄식하시면서 다헤어진 새끼들의 바지의 무릎을 손으로 꿰매고, 그러한 바지가 여러개 항상 쌓여 있어,하루종일 바늘이 손에서 떠나지 않았던것 같다.

추석때는 할아버지는 집에 계시고, 아버지가 새끼들을 인솔하여 선영으로 성묘를 갈때면, 언제 준비해 두셨었는지, 낡아서기운 옷이었지만, 깨끗하게 갈이 입히고 위로 여러명의 형들과 아래로 이제 겨우 부축없이 걸을수 있는 막내를 앞세워 동네길을 걸을때면, 동네의 공동우물에서 물긷던 동네 친구들의 어머니들께서 잠시 일손을 멈추고 쳐다보면, 더 의기 양양해 하면서 손을 흔들면서 일렬로 걸었던 기억도 난다. 조상님들 묘앞에서는 아버지가 먼저 성묘하시고, 그다음에 우리 형제들이, 나는 끝에서 막내 다음으로 두번째로 서서 두번씩 절을 하면서, 좌우의 막내와 형들과 작난을 치다가 아버지로 부터 꾸지람 들었던 기억도 있다.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놀러 다닐때는 5살쯤 된 막내가 따라붙겠다고 떼를 쓰는, 귀찮은 막내를 떼어놓고 갈려치면, 칭얼대는것을 보고, 어머니가 아우성을 치면서 데리고 놀아라고 엄포를 놓기에 별수 없이 데리고 다니면서 같이 놀곤 했었는데, 그렇게 하는것이 어머님에게는 집안일을 하는데 짐을 덜어주는 것이었음을 후에 알았었다. 집에 돌아올때는, 막내에게 오늘 일어났던 일들을 절대로 집에 가서 고자질 하지 말라고 욱박지르면서 겁을 주면, 우선 그협박이 무서워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을 철석같이 받아내곤 했는데, 집에 돌아오자마자, 큰 응원군인 어머니 아버지앞에서 막내는 무조건 놀면서 일어났던,어른들이 볼때는 나쁜 일들을 고해바치면, 나는 Smack을 당하기도 했었다. 철없는 이제 겨우 10살 넘은 어린 아이가 어떻게 좋을일 나쁜일을 구별하여 절도 있는 행동을 할수 있었겠는가? 그렇게 개구장이로, 배고픔속에서 소년기를 보냈던 기억이 아스라히 떠오른다.

어쩌다 닭한마리를 잡거나,어머니가 읍내 시장에 나갔다가 돼기고기 한뭉치(약 2근쯤)사와서 밥상에 올릴때는 그야말로 잔치날이기도 했었다.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차례대로 하다보면, 꼴찌나 마찬가지인 나에게는 별로 오는게 없었다. 그렇타고 위의 형들에게는 많았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어쩌면 더 적었을지도 모른다. 닭한마리로 온식구가 배불리 먹기는 아예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말이다. 보리밥 아니면 무우밥을 기름이 떠 있는 국물에 말아서 먹는 것 만으로도 행복(?)해 했었다. 어쩌다 닭다리라도 한조각 내 그릇에 주어지면 그것은 아마도 어머니 아니면 누나가 챙겨 주어서 나에게 그런 행운(?)온 것으로 생각하곤 했었고, 먹는 전쟁이 끝나고 나면, 밥상은 빈상이었었다. 배가 허기져 어머니나 누나의 눈치를 보다가 맞닥치면, 자기도 배고프면서, 한숫갈 떠서 더 먹으라고 건네 주었던 어머니, 누나였었다. 그런날은 내가 특별히 이쁘고 착한 아들, 동생이라고 그런것으로 착각하기도 했었다. 사실은 Take Turn하면서 새끼들의 배고픔을 나누어주었던것을 모르고....

세월이 흘러가면서, 누나들은 시집가고 위의 형들은 학교로, 또는 먹는 입를 하나라도 덜어야 겠다는 생각으로 일찍히 집을 떠나 객지 생활을 하게되는 형도 있었고, 나 또한 당시로서는 유학이나 마찬가지인 도회지로 고등학교를 다니기위해 전기도 들어오지 않은 시골집을 떠나야 했다. 바로 밑의 여동생은, 남자형제들 틈에 끼어 교육을 받지 못했었다. 살림이 어려운 이유도 있었지만, 여자는 학교다니는것 보다 집에 있으면서 시집갈 준비를 해야 한다는 당시의 사회풍조에 어쩔수 없이 그렇게 희생양(?)이 된것이다. 지금도 그녀에게는 괜히 미안한 마음이다. 그렇게 항상 북새통이던 꽤큰 집에 하나 둘씩, 위에 두 누나는 시집가고, 나를 포함한 형들은 학교가기위해,사회생활을위해 집을 떠나면서 큰 집은 조용해 지기 시작했고, 부모님의 얼굴에는 어느새 주름살이 늘기 시작함을 보았었다. 그후로는 형제 자매가 한번도 모두모여 어릴때의 삶에 대한 얘기를 해 볼수 있는 재상봉의 기회는 없어졌던 기억이 이 아침에 떠오른다. 인생살이라는것이, 그것도 형제자매들간에도, 성장하게 되면, 마음은 있지만, 현실이 허락치 않기 때문에 '언젠가는 그러한 기회가 오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감속에서 하루하루를 지내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똑 같은 유산(?)을 물려 주면서, 내자신 이제 환갑을 한참이나 뛰어넘어, '내가 너처럼 젊었을때는....'라고 말씀 하시면서 기억을 더듬던 아버지의 모습을 오늘 내가 그뒤를 따라가고 있음을 본다. 그렇게 코흘리개였던 막내가 벌써 금년에 환갑을 맞고 있다.

시목 마을의 어린 7남매들 무럭무럭 잘 자라서, 나 같이 후회하는 자식이 아니고, 몫을 훌륭히 해내는 형제자매들로 성장 하기를 빌어 주고 싶다.

Saturday, January 08, 2011

눈속에서 걸은 Speyside Nature Trail Walk

























한걸음 한걸음 옮길때마다, 발바닥에 느껴지는 감각이, 몸속에 흐르는 피의 역동함이 몸의 움직임을 진두지휘 하는 기분이다. '바스락 바스락...' 우주창조의 오묘함을 눈쌓인 Trail Walk위를 White Blade를 따라 한발작 한발작 옮기면서,경건함과 두려움에서 오늘은 뭔가를 해내고 있다는 희열이 몸속에서 계속 흐르는 기분이다. 선택된 우리 대원들이 그분의 보호함속에서, 그분께서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주신, 하얗게 온주위가 장식된 그 동산을 거닐면서 인생은 살아갈만한 가치 있는 것임을 다시한번 되돌아 보게 해주는 오늘의 산행이었다.

예상치도 않게 아침일찍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Snow)은 그칠줄 모르고 내려 우리대원들이 만나는 장소인 McDonald's Restaurant(30 Courtney Pk Drive)에서 한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게 가로 막는것이 아니던가. Hwy 401을 타고 서쪽으로 달려 이곳까지 도착하는데도 길은 아직 눈이 치워지지 않아 애를 먹고, 거북이 걸음으로 차를 달려서 겨우 예정된 시간에 도착했는데,대원 한사람만 도착해 있었다. 집에서 출발 하기전 오늘 같이 걷기로 했던 한 대원부부로 부터 전화가 걸려 왔었다. 눈이 많이 내려 걱정이 되여서였다. 그래도 오십시요 라고 대답 했었던 기억도 난다. 결국 그대원은 또 다시 전화 연락을 해와 산행에 동참할수 없음을 최종적으로 알려왔었다. 그분들은 웬만해서는 약속을 포기한 기억이 없는 대원이었는데..... 고속도로를 운전하고 있는중에 다른대원분들이 몇분 간격으로 2번씩이나 숨가쁘게 전화를 걸어 참석못함의 아쉬움을 나타냈던 그심정을 깊이 느낄수 있었다. 평상시에는 고속도로 안쪽 Lane을 달리곤 했던 내가 지금은 맨 오른쪽 Lane에서 기어 가고 있고, 덩치가 산만큼 크게 보이는 화물추럭들은 더 신나게 눈을 흩날리면서 쏜살처럼 지나치면서, 나의 조그만 차를 흔들리게 할때마다 나는 더 핸들을 두손으로 꽉쥐고, 앞만을 응시하면서 이곳 모이는곳에 도착 했었던 것이다. 조금 일찍 상태를 파악했었더라면 대원들에게 전화를 해, 오늘의 산행은 폭설로 진행할수 없게 됐었다라는 연락을 해주었었더라면 좋았을것을....하고 뒤늦은 후회도 했었다. 나보다 늦게 도착한 다른 두대원들도 내가 느꼈던것 이상으로 어려움과 두려움속에서 눈으로 뒤덮힌 고속도로를 달려 어렵게 도착 했음을 그들의 표정에서 알수 있었다.

커피한잔씩을 앞에 놓고 앉아, 아쉬움속에서 하염없이 내리고 있는 눈을 창문을 통해 응시하면서, 오늘의 Trail Walk은 이곳에서 커피한잔을 사이에 두고 입으로만 즐기다 집으로 가야 될것인지? 아니면 조금 기다렸다 혹시라도 눈이 그치면 늦게라도 산행을 해야 될것인가로 고민아닌 고민을 했어야 했다. 두번씩이나 전화를 걸어 산행을 포기를 알려온 대원부부 외에도 오기로 약속했던 상당수의 대원들이 결국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Trail Walk을 위해서 뒤에서 보이지 않게 매번 수고해 오고 있던 한대원이 "여기까지왔는데, 그냥 집으로 간다는것은 우리 산행구룹으로서는 받아 들일수 없는것이다. 그냥 한번 모험삼아 우리가 항상 의지하는 윗분을 믿고 Trail Walk을 진행합시다"라고 제의 하자마자 대원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듯이 동시에 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더니, Car Pool을 해서 두대의 차에 분산승차하여 산행 출발점인 St.Helena Rd.를 향해 다시 눈덮힌 고속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조심스럽게 핸들을 잡고 달리면서 거북이 걸음을 하는데도, 산같이 커 보이는 화물 자동차는 그대로 쌩쌩 빠르게 스치면서 눈덩이를 자동차 앞면유리에 쏟아붇고 달아난다. 평상시에는 감히 속도경쟁자가 될수도 없는, 덩치만 크고 볼품없이 멍청해 보였던 그 화물차들이.....

목적지에 도착했을때에는 우리보다 더 용기있게 산행을 즐기는(?) 다른 구룹의 대원들이 주차해 놓은 여러대의 차량들이 계속해서 휘날리고 있는 눈속에 파묻히고 있었다. 우리도 그옆에 주차시키고, 완전군장(?)을 하고, 최고 연장자 대원의 윗분에게 신고식을 올리는 간단한 기원이 있었고, 이렇게 우리의 산행이,그곳에서 북쪽 Trail Course를 향해 시작됐었던 것이다.

온천지가 하얗게 쌓인속으로 이어진 Trail방향표시인 White Blade를 따라 동쪽으로 한발짝씩 옮기는 속에서, 결국 우리는 해내고 있다는 자부심이 온전신으로 흐르는 전율을 느끼게 해주고 남는것 같았다. 돌아갈때의 걱정은 대원들의 마음에서 완전히 떠난것 같아 보였고, 오직 윗분께서 우리의 산행을 위해 깨끗한 눈으로 새롭게 장식해준 대자연속에 파묻혀 그속에서 유영하고 있는 그자신감과 희열만이 계속해서 내리는 눈속의 차거운 공기를 가르고 있을 뿐이었다. 더욱 다행인것은 칼날같은 겨울의 찬바람이, 거짖말처럼 존재하지 않고 오직 윗분께서 선물로(?)내려 주시는 하얀눈만이 채곡채곡 산야를 덮고, 한발 한발을 힘차게 대딛는 대원들과 그들이 짊어진 Back Pack과 어깨위에도 쌓이는 순간을 즐거워 함을 두눈으로 확인해 주는것만이 존재하는것 같았다.

좀더 많은 대원들이 이렇게 흰색으로 도배된 대자연속에서 한발짝 뗄떼마다 바스락 거리는 소리를 들으면서 오늘 보여주시는 그섭리를 같이 느끼지 못하는것이 좀 아쉬울뿐이다. 먼하늘을 잠시 초점없이 응시해 본다. 옅은 회색으로 뒤덮힌 먼곳 허공속에서 아스라히 새까맣게 보이기 시작한 작은 물체들이 내모자위에 내 Back Pack위에 그리고 맨 마지막으로 대지위에 떨어지면 그물체가 하얗게 변해 세상을 깨끗하게 해주는 Snow,그 섭리, 간단하게 생각해 버리고 지나칠 일 같지만, 우리 대원들이 그속에서 실제로 겪는 오묘함과 위대함을 체험하게 하는것은 우리에게 부여해준 특권이라고 자부하고 싶은 기분이다. 같은 눈인데도 고속도로를 달릴때는 큰 위협이 됐었으나, 여기서는 오염돼 있었던 우리의 마음을 정화시켜주고, 마음으로 부터 베풀음과 나눔의 깊은 뜻을 채험하게 해주는 특권을 우리 대원들이 지금 환희속에서 만끽하고 있음이, 그들의 발걸음이 대변해 주고 있음을 본다. 대원들의 이러한 마음을 윗분께서 그냥 지나치시지를 않고, 조금전 까지 휘날리던 눈이 그치고 거짖말처럼 환하고 밝은 햇볕이 내리쪼이는게 아닌가? 이러한 갑작스런 변화를, 현장에서 지켜본 우리 대원들에게는 위로 부터 사랑을 받는 감격의 순간이었지만, 얘기로 듣는이들에게는 쉽게 납득이 어려운 오후의 한순간이었음을 감사하게 말하지 않을수 없었다.

2011년도들어 처음 하는 산행이라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대원들에게 신년도 회식을 시켜 준다는 간단한 광고가 대원들의 귀를 솔깃하게 해주었다. 한인이 경영하는 식당에서 우리 대원들이 자리를 잡고, 늦은 점심을 주문한다. 비어 있는 배속을 채우는 즐거움 이상으로, 회원들은 오늘처럼 어려운 여건속에서 서로 믿는 신념 하나로 무사히 해 낸 자부심과 용기, 그리고 감사의 마음을 서로 나누는 그모습자체에서, 대원들 서로가 믿고 뭉쳐서 행동으로 어려움을 극복해내는 진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음을 오늘도 나는 뚜렷히 보았고, 이러한 삶의 나눔이 말이 아닌 행동에서 기초함을 깊이 느끼면서..... 한숫갈씩 목에 넣는 음식이 몸속에서 오늘 소모된 몸속의 에너지를 보충 해 주는 영양분으로 변하는 속에서, 테이블에는 빈그릇만 쌓여가고 있었다. 감사.

Saturday, January 01, 2011

신년하례( New year's day levee),동포의 전당에서










신년 하례식(New Year's levee)이 시작됐다.
먼저 조국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총영사(홍 지인)께서 국민들에게 보내는 신년축사를 대독해 주었다. 비록 조국의 영토는 적지만, 국민들이 열심히 노력하여 만든 제품을 세계 각국에 수출하여, 세계 제 7대 무역국이 되였음을 치겨세우고, 그무대가 전세계속에서 이루어지고 있기에 전세계가 조국대한민국의 영토라는 의미 있는 내용이, 잘사는 조국이 무엇인가를 깊이 느끼게 해주는 새해 첫날이었다. 이어서 한인회장(백 경락)의 교민들의 경제적 신장과, Imperial 담배 회사의 횡포로, 많은 교민들이 종사하고 있는 Convenience store에 어려움이 닥치고 있는 새해가 될것이나 좌절하지 말고 우리 모두가 힘을 한데 모아, 특유의 근성을 발휘하여 극복해 내자는 내용의 신년축하 메세지가 있었다.

오랫만에 찾은 한인회관(Korean Cultural Centre)에는 상당수의 교민들이 벌써 와 있었다. 겨울 날씨답지 않게 기온은 영상 9도를 가르키고, 눈대신 가랑비가 밤새 내리더니 새해 아침인 이시간에도 이른 봄처럼 싸늘한 날씨에 가랑비가 세상의 흐름을 망각한것 처럼 쉬지않고 내리면서 세상을 적시고 있다. 2011년 11시반, 신년 하례식 시작시간에 맞추어, 같은 동네에서 살면서 은퇴생활을 즐기고 있는 이웃친지들과 함께 오랫만에 한인회관(동포의 전당)들어온 것이다. 매일 아침 동네에 있는 McDonald's Restaurant에 모여서 아침 커피를 마시면서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다시피하는 그들과 어제 아침에 만났을때, 신년 하례식에 참석하여, 모인 교민들과 새해 인사도 하고, 또 제공되는 떡국을 먹는 재미도 느껴 보기로 의견을 모아, 이렇게 발걸음을 한것이다.

많은 반가운 얼굴들이 벌써 와 옹기 종기 모여서 담소를 나누고 있는 모습들이 눈이 띈다. 얼굴보면서 인사하고, 지나치면서 인사하고, 보고싶지 않은 얼굴도 마주 치면, 겉으로는 안그런척 인사를 나누고..... 식순에 따른 애국가와 O Canada 열창이 있었고 곧 이어 Dignitary의 축사후 대열을 이루어 서로 엇갈리면서 새해인사말과 악수를 나누는 보기좋은 장면이 연출 되였다. 바로 떡국 잔치가 이어졌다. 강당에 배치된 테이블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떡국을 Serving하는데, 그냥 앉아 받아먹기에는 손이 달리는것 같아, 나도 모르게 부엌으로 들어가 쟁반에 떡국대접을 모아, 우선 내가 소속돼있는 '재향군인회원'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에 찾아가 떡국대접을 배식했다. 모두가 환하게 의아해 하면서도 반겨해 준다. 그분들은 거의가 다 나보다 고령이어서,모일때마다 항상 찾아서 인사드리곤 하던 반가운 얼굴들이다.
'다른분이 Serving해도 받지 마시고, 제가 들고 오는것으로만 드셨으면 합니다'라고 농담을 했더니 모두가 웃으면서 꼭 그렇게 하겠노라고 화답도 해 주셨다. 새해 떡국을 며칠전부터 봉사자분들이 시간을 내여, 국물을 뽀얗게 끓이고, 양념을 만들고.... 떡국떡은 매년 해온것 처럼 이번에도 교민사회 간판 식품제조업체인 '평화식품'에서 푸짐하게 제공해 주었다고 한다. 말없이 이름없이 봉사하는 그분들 덕택으로 의미 있는 떡국 한그릇을 먹게됨을 감사해 하지 않을수 없어, 배식하는데 동참하여 몇그릇의 떡국을 나른것이다. 나는 같이온 동네 친지들과 함께 자리를 하고, 그곳에 같이 합석한 언니와 함께 떡국을 맛있게, 한그릇을 비웠다.

이러한 행사에서 꼭 아쉽게 느끼는 것은 교민사회에 그렇게도 많은 단체의 장들이 생각보다 얼굴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인회 주최이기 때문에, 한인회라는 이름아래 같이 모여서 얼굴을 맞대고 교민사회의 살아가는 모습과 서로의 고충과 친교를 앞장서야 할 그분들이 보이지 않는게 교민사회의 큰 고질병인것 같아 안타깝다. 나처럼 평범한 교민인바에 참석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이겠지만, 그래도 단체의 장들은 화합차원에서 꼭 빠져서는 안된다는것을 인식했으면 하는 애절함이 있다. 유감스럽게도 종교계의 성직자분들 특히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는 목사님분들은 한분도 찾아 볼수가 없었다. 하나님께서 좋아 하실까? 나름데로 그럴만한 변명을 그럴사 하게 할것이다. 목양하는 신자들에게는 사랑을 베풀어라, 이웃을 사랑하라, 서로 나누어라, 화목하라...등등의 미사여구를 들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강단에서는 외쳐댈것이다. 어느 누가 교민사회의 정신적, 영적 구심점을 하나로 묵어, 지금처럼 정신적, 경제적으로 어려운때, 의젖히 받아들이게 할수 있을까? 그래도 나의 생각으로는 성직자분들이 아니겠는가? 오늘 처럼 전교민들 한데 모이는 기회에 Podium 에 올라서 힘차게 외쳐 대면서, 정신적 무장을 더 강하게 할수 있는 메세지를 왜 그분들은 외면하고, 나와는 상관없는 일쯤으로 치부하는 것일까? 교민들이 건강해야만, 신앙생활도 더 돈독히 되는것 아닐까? 서로 얽히고 설킨 톱니바퀴같은 인간사회인데, 여기서 톱니 하나가 부러지거나 빠지면 잘 돌아갈수가 없고, 심하면 정지 하게 되는 원리를 그분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집으로 오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비는 내리고 있다. 만약에 비가 아니고 눈이라고 한다면 쌓인 높이가 아마도 무릎이상일것이라는 상상을 해본다. 지구상의 여러곳에서 눈사태, 물난리 등등으로 새해 첫날을 어둡게 하고 있는데, 이곳은 그런 재난은 피해 가는것 같아 감사하면서도 그섭리가 무엇일까?라고 윗분에 대한 두려움이 가슴을 가볍게 진동 시킨다. 토끼해라고 하는데, 예쁜토끼, 영리한 토끼 처럼, 우리 교민 모두가 제역활을 잘 감당해 내는 그런 한해가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