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July 26, 2008
Pow Wow 인디언(First Nation)축제
날씨가 축제를 축하해 주는것 같지 않다. 원주민 축제는 Pow Wow라고 불린다. 그들의 축제는 그들의 조상 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전통 예식인것 같다. 독수리 깃털을 이용하여 만든 가면 및 장식품은 손수 손으로 한뜸한뜸 이어 부쳐 만든 수제품 그대로다. 꽃사슴의 머리를 박제하고 몸통의 가죽은 그대로 두루마기처럼 만들어, 머리는 가발처럼 머리에 쓰고, 또 그뿐인가? 늑대, 날짐승 그외 여러 동물들을 박제하여 축제의 장식품으로 사용되고 있는 그들의 독특한 문화가 웬지 낯설지 만은 않다. 역사를 더듬어 올라가면, 믿거나 말거나 우리와는 한피를 나눈 종족인것을 많이 느끼게 된다. 오늘 이곳의 축제는 Alderville 마을의 인디언들의 회관에서 열려 내일까지 2일간 계속된다고 했다.
원래의 계획은 학교 운동장에서 축제가 열리게 되여 있었으나, Thunderstorm에 하루종일 비가 내려, 별수없이 이곳 회관으로 옮겨져 진행되고 있었다. 들리는 말로는 그들도 우리처럼 몽고 반점이 있다고 한다. 축제가 시작되면서 먼저 그들의 신에게 고하는 무속춤을 모든 Performer들이 참여하여, 회관강당 가운데에 준비된 Drum을 그들 고유의 음율에 맞추어 치면서, 강강수월래처럼, 강당을 빙빙 돌면서 소리를 내고, 민속옷을 입고, 춤을 추면서, 의식을 진행했다. 이 의식순간만은 사진 촬영도 엄격히 통제 되고 있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그들의 신에게 사진을 찍는것은 일종의 도전행위로 간주 되는것 같았다. 우리가 살고 있는 Ontario주에는 많은 원주민( First Nation)이 흩어져 살고 있다.
여름과 가을철에는 여러 원주민 마을은 축제를 한다. 즉 그들만의 축제이자 조상신에게 드리는 제사이기도 한것 같다.
오늘의 축제에는 여러 인디언 마을에서 Performer로 참석했다고 한다. 그냥 참가해서 우리처럼 구경만 하는게 아니었다. 같이 어울려 춤추고, 제사의식을 진행하고..... 많은 구경꾼들이 멀리서 부터 용케도 찾아와 준비된 의자에 앉아, 그들의 신을 초청하는 의식동안에는 기립시켜 엄숙함을 더 느끼게 했다. 꼭 어른들만이 축제의 Performer로 참석한게 아니고, 어린 아이들까지 모두가 참가하여 정말로 그들만의 축제의식을 진행하는것 같았다. 이곳은 내 카테지가 있는 곳으로 부터 북서쪽으로 약 50킬로 떨어져 있는 인디언 마을이다. 지난주에 이곳에 이축제를 보기위해 왔었다. 그러나 헛수고 였다. 분명히 안내 책자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으나, 현지에 도착했을때는 너무나 조용했었다. 자그만치 일행이 8명이나 됐었는데...... 차를 세우고 동네의 한 가게에 들려서 알아보니, 안내책자의 표시오기였음을 알았었다. 멀리 토론토에서 구경온 친지들에게는 미안하기 그지없었지만...... 그대로 발길을 돌렸었다. 그리고 오늘 다시 이곳에 아내와 둘이서만 왔는데, 오늘은 비까지 내려 흥겨운 축제분위기를 돋우기에는 어려울것 같았다. 눈에 보이는 대부분의 원주민들중 남자의 머리는 옛날 어렸을때, 우리 누나들이 긴 댕기머리를 했던 것 처럼 그런 모양의 긴머리를 질끈 동여맨 모습들이었다. 여자들은 간혹 이곳 여인들 처럼 퍼머넌트를 한 모습도 보이고..
Drum을 Beating하는 Performer들은 뉴욕양키스 모자를 삐둘게 눌러쓴 사람, 아무렇게나 잠바를 걸친 사람, 축제복을 입은 사람 등등....
Drum을 두둘기면서 선창자가 고음으로 고유민속노래를 시작하면 다른 Drummer들이 합세하여 고음으로 한곡조 하는동안, Performers들은 흥겹게 춤을 추면서 강당을 빙빙 돌고, 앞의 Podium에서는 narrater가 이유와 설명을 계속하고, 옆방에서는 그들의 고유음식판매와 Craft물건들 팔기에 분주하고..... 이제는 의식이 끝났으니 마음껏 사진을 찍어도 되고. 아무튼 분위기는 익어가기만 한다.
잠깐 휴식을 취하고 있는, 머리에 사슴머리를 쓰고 있는 댄서에게 같이 사진 한장 찍을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혼쾌히 승락이다.
그러면서, 박제한 사슴머리에 대해 자랑스럽게 설명하는데, 자기 아버지가 만들어 사용하다가 자기에게 유물로 상속된 것이라면서 매우 자랑스러워 했다. 그러한 자식사랑이, 우리가 느끼는 보편적인 생각에서 였다면, 학교교육에 더 신경을 썼어야 했는데......
우리 고유의 풍악놀이에서,원주민들이 짐승의 가죽을 이용하여 만든 큰 Drum들과 비슷한 장구, 둥그런 조그만 북(Drum)들을 많이 사용하는것은 뭔가 원주민들의 피가 내몸속에서도 돌고 있는 그런 상상을 하기는 어렵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코도 납작하고, 얼굴빛도 비슷하고, 키도 거의 같고, 머리색갈도 검고.... 끝이지 않고 두둘겨 대는 Drum소리에 맞추어 추어대는 고유댄스, 그속으로 뛰어들어 한판 어울려 돌아 보고도 싶은 충동이 순간 순간 마음속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이들은 왜 아직까지도 원주민으로 남아, 마치 문명세계를 등지고 사는것 처럼 우리가 생활하고있는 사회와는 격리된(?) 그들만의 마을에서 살아가고 있어야 하는가? 그의문이 자꾸 머리속에서 이어진다. 정부에서는 그들을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경제적으로 도와주고, 또 물건 사고 파는데도 많은 세제상의 혜택을 주어, 언뜻 듣기에는 정부의 정책에 감사의 뜻을 안보낼수 없어 보인지만..... 이러한 제도가 바로 사탕 발림이라는것을 이제는 조금 알것 같다. 놀아도,일을 안해도 정부의 보조가 있기에 많은 젊은이들이 넘쳐나는 에너지를 소비하는 차원에서 어려서 부터 마약과 섹스 그리고 흡연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경쟁시대에 살아가기위한 필요한 지식쌓기에는 등을 돌리게 되는 악순환이, 이곳 북미 대륙에서 민주주의 정부가 탄생이후로 계속되는 슬픈 역사의 한페이지이다.
내가 기억하는 다른 인디언 마을의 축제는 여러곳에서 주말마다 이어지고 있음을 본다. 오는길에 그들이 운영하는 가게에 들려 보았다. 내가 필요한 물건은 거의 보이지 않고, 오직 면세로 팔고 있는 담배만이 카운터 뒤에 잔득 진열되여 있다. 가격표시는, 시중에서 팔고 있는 값의 약 1/10 정도밖에 안되는, 그래서 이곳의 젊은이들을 조기 흡연으로 불러 들이고, 또 이곳을 통과하는 사람들도 들려 값싸게 구입하게되고, 그여파가 정부에 세금을 꼬박 내면서 캐나다내의 여러 도시에서 장사하는 상인들을 어렵게 만들고.....
정부의 보호정책을 과감히 탈피하고 일어나 자립으로 살아갈수 있는 경쟁력을 쌓게 될까? 정치하는 사람들도, 인간은 모두가 평등하다는 원칙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원대한 정책을 수립하여 원주민들이 경쟁사회에서 스스로 일어설수 있는 장기 계획을 세웠으면 하는 바램이 너무나 과한 나만의 욕심에서 오는 것일까?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다고 했던가? 보약은 입에 쓰다고 많은 선인들이 수도없이 후학들에게 교육의 어려움과 인내를 비유해서 일깨워 주었었다. 원주민들이 진정 이땅의 주인 의식을 떳떳히 논리적으로, 정치적으로 주장하면서 살아가게 되는 그날이 언젠가는 올것으로 믿으면서, 그들의 축제마당속에 그염원을 담아 보았다.
Monday, July 21, 2008
부담없이 좋아 하는 사람들과 보낸 좋은 시간.
마음이 통하고 서로의 눈빛과 제스처만 보아도 그뜻을 이해 할수 있는, 겉포장이 없이 하고 싶은 얘기들을 해도 거북하거나 부담이 없는 그런 Fellowship을 나눌수 있는 친지들 부부들과 함께 오랫만에, 7월의 한 주말을, 내가 아내와 함께 여름을 보내곤 하는, 카테지에서 갖었었다.
그렇다고 평상시 토론토에서 생활하고 있을때, 수시로 전화 통화를 하거나, 만나는 기회를 많이 나누는 그런 사이는 더욱 아닌, 그져 나의 인생 선배요, 믿음생활을 같이 하는, 그러면서도 조언이 필요로 할때는 그들이 살아온 삶속에서 느끼고 간직했던 경험을 토대로 대화를 이어가는, 꾸밈없는 고뇌를 나누는 사이이고, 공교롭게도 부인들은 모두가 아내와 동갑내기 분 들이어서, 더욱 또 다른 그의미가 깊이 있어 하는것 같은 만남들이다. 젊어서는 모두가 새로 둥지를 튼 이민의 삶을 새로운 땅에 접목 시키기 위해서 분,초를 다투어 앞만 보고 뛰어왔던, 또 이민자들이기에 시행 착오가 유달리도 많았던 삶이었지만, 그때마다 이부부들은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고 받쳐주면서,오뚜기 처럼 우뚝서서 뿌리 내리기에 심혈을 기울이며, 선물로 받은 자식들을 보통시민 이상으로 키워 사회에서 활동하게 하고있고.... 이제는 머리는 어느새 하얀 눈이 수북히 쌓인 인생의 황혼길을, 황금빛으로 수놓으면서 살아가는, 그런분들이다. 지나온 세월을 돌이켜 보면, 특히 이민자의 특수한 삶을 살아오면서, 그것은 외줄타기와 같았고, 가파른 산정상을 향해 달리는 외로운 길손같은, 한치의 실수도 해서는 안되는 그런 계속 걷기의 연속이었었다. 인생살이에 어찌 과오가 없고, 실수가 없었으랴. 그래도 지혜롭고 슬기롭게 그러한 순간들은 헤져나와, 이제는 보통시민의 삶의 여정의 정상 문턱에 다달아 서서, 뒤를 돌아다 볼수 있는 시간적, 경제적 여유를 갖게된 현실을 실감할때, 어느새 돌덩이 같이 단단했던 우리의 육체가 이제는 다 낡아 빠져 흐늘흐늘 해지고, 주름을 얼굴에 훈장처럼 많이 달고, 육체적으로는 작아진 친지들의 모습을 보면서, 긴 여정의 터널을 무사히 통과 했구나 하는 안도(?)의 숨을 아낌없이 내뿜어 보게되는 좋은 시간이었다. 모두가 천진난만하게 웃어 제끼는 모습들도, 거리감 없이 생각나는데로 토해내는 대화들..... 오랫동안 기억에 담고 싶은 시간이요 순간들이다. 어제의 친교골프에 이어 오늘도, 우리 부부가 회원으로 가입하여 즐기고 있는 Barcovan 골프장에서 골프 대결(?)을 했다. 아쉬운것은 여자두분이 집에서 쉬기로 해서, 남자 넷, 여자 둘, 합해서 6명만이 골프를 했었다. 오늘따라 여름의 참맛을 보여 주려는듯, 기온이 30도가 넘고, 그위에 습기마져 스티키해서 상쾌한 기분은 전연없었다. 남자넷은 Pull Cart를 끌고, 여성분은 Riding Cart를 타도록 했다. 두분 여성들은 기대도 않했던 카트 선물에 세상을 다 얻은것 처럼, 소녀처럼 마냥 좋아 하면서, 고맙다고 인사가 끝이지 않는다.
4명의 남자 골퍼들은 그광경에 흐믓해 한다. 실질적으로는 남자분들이 나이가 더 많아 육체적으로 더 낡았는데도, 여자분들을 배려 했다는,남자의 자존심(?)을 지켰다는 자긍심으로 얼굴에는 care의 미소가 나타난다. 스윙하는 모습은 옛날 그대로 이나, 볼이 떠서 날아가는 거리는 훨씬 못미친다. 짧아진 거리만큼, 살아온 삶의 흔적이 그자리를 메꾸어 주는것 같이 생각된다. 내년에는 더 짧아 지겠지? 그러면 그만큼 살아온 삶의 길이가 길어진다는 뜻 아닐까? 우리앞서 즐기고 있는 여성동무(?)들은 어느 홀에서는 두번씩 볼을 때렸단다. 그만큼 뒤따라 가던 우리팀의 속도가 느렸다는 증거였을것이다. 더위에 합세하듯, 바람도 한점 없어, 더 헉헉 거리게 한다. 어느팀원은 아직 몇홀 남았지? 라고 독백겸 물어 보기도 했다. 그래도 입에서 흘러 나오는 소리는 듣는이로 하여금, 폭소를 자아내고도 남는, 그래서 찌는 더위속의 비지땀의 괴로움(?)이 덜어진다.
시골길을 달리는 기분은 항상 신선함을 준다. 차창너머 멀리 보이는 Farm에는 가축들의 먹이로 길러진 hay들이 잘 자라는 모습이 바람결에 흔들리는 광경이 마치 온타리오 호수의 물결이 출렁이는것 같은 상상을 하게 해준다. 이미 잘라서 햇볕에 말린 hay는 Combine 농기계로 잘 묶여진 단으로 만들어져 마치 큰 바퀴처럼 농장 군데 군데 놓여져 있는 광경이 무척 풍요로워 보인다. 차에 타고 있는 친지들 모두가 풍요롭고 한가함에, 그러한 환경속의 농촌을 머리속에 그리면서, 그속에서 살아보는 꿈을 순간적으로 꾸는것을 본다. 어린애들이 느끼는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서 그림과 꿈을 그리고 꾼다는 것이 바로 이런 순간들이 아니겠는가?
Ranny Gorge에 새로 건설된 흔들 다리는 이곳 Campbellford 지역의 명물이 된지도 벌써 5년이 지나간다. 처음 이곳을 보는 여성친지분들중 어떤분은 다리(Bridge)상판을 통해서 아스라이 보이는 Trent River의 물줄기를 보고 현기증을 느껴 두눈을 꼭 감고, 남편의 팔에 의지해서 다리위를 걷는 모습은 마치 장님의 행차와도 같은 연극을 보는것 같은 분위기였다. 모두가 놀려대도, 그들의 표정은 너무도 진지하고 굳은(?)얼굴이어서 자못 심각함을 느낄수 있었다. 어린애냐고 놀려도 보지만, 그들에게는 그말들이 들릴리 없다. 오직 남편의 팔뚝이 삶을 연장 시켜주는 구세주인것처럼, 꼭 붙어서 걷는다. 마치 최고의 금슬좋은 부부처럼 말이다. 두다리가 보통때 걷는것 보다 더 흔들리고 있는것을 본다.
다 건너와서는 더 큰 소리를 친다. 마치 개선장군처럼, 해 냈다고....... 그들이 이곳 아니고 어디서 또 큰 소리를 내며,해 냈다고 어리광(?)을 부릴수 있을 것인가? 최고로 용감 했다고 Cheer를 모두가 박수로 보냈다. 아.... 기분 좋다. 그들은 분명 겁많은 유치원 생들이었다. 그래도 얼굴은 웃음으로 꽉찬다.
찾아간 Alderville Township에서 열리기로 된 First Nation의 축제는 열리지 않았다. 한 상점에 들러 전후 사정을 그곳 여인에게 설명했더니, 오늘이 아니고 다음주 오늘(토요일)이라고 설명해 준다. 우리가 보여준 인쇄물을 본 그녀는 우리와 같이 헛걸음한 여행객들이, 관광객들이 한둘이 아니라고 한다. 인쇄물의 오기(misprint)라고 한다. 아쉬움이 컷지만, 어떻게 할수가 없었다. 정해진 짧은 시간에 이이상의 축제와 관광은 우리들에게는 허용이 안되는가 보다. 이것이 우리들의 한계인가 보다. 다음 기회를 다시 찾아 보는수 밖에....
First Nation의 축제는 그들의 생김새가 우리와 비슷한 면이 많기에 더 마음이 가고, 보고 싶어 하는 축제였는데.....그들의 축제를 보면서
옛날 우리의 조상들의 삶의 일면을 미루어 추측할수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아쉽다.
친지분들이 정성스레 준비해온 음식물들과, 이곳에서 아내가 만들어 낸 음식을 같이 먹는 그맛은, 토론토에서와는 완전히 다른 맛이다.
오랫만에 먹어보는 갈비 바비큐, 연한 고기를 갈비에서 뜯어먹는 운치도 좋았지만, 양념이 그맛을 더해주어 토론토에서는 상상도 못할 정도의 많은 양을 모두가 먹어 치운다. 파란 연기를 피우며 BBQ Grill에서 구워내면서 바로 먹기 때문이기도 했을것이다.
특히 모든 양념을 다 곁들여서 만들어낸 칡냉면은, 이곳 카테지 아니고서는, 아무데서도 먹거나 그맛을 느낄수 없는, Gourmet 중의 Gourmet였다. 쫄깃쫄깃하게 씹히는 면발, 그리고 훌훌 마셔대는 냉면 국물, 포식이다. 후식으로 아내들이 정성으로 준비해준 과일 맹고는 아주 잘익어 그맛이 최고조였다. 배부른데도 마냥 먹어댄다. 수박화채가 뒤따랐다. 마음이 포근하고 한가로우니, 부담없이 마구 먹어대도 거뜬하다. 이러한 기회를 언제 또 갖게 될수 있을까? 밤이 새는줄 모르고 쏟아내는 이야기들, 그리고 뒤따르는 폭소, 부엌의 식탁에서 쏟아내는 여자분들의 웃음소리가 더 크고 끝없이 이어진다. 소유하고 즐길수있는 축복에 모두들 감사 하면서......떠나는 아쉬움과 다음기회를 약속해 보면서 모두가 다시 생활의 터전으로 되돌아 갔다.
Saturday, July 12, 2008
Trail Walk in Nottawaga Provincial Nature.
Trail Walk in Nottawaga Provincial Nature.
현지에 도착했을때는 거의 정오를 바라보는 시각이었다. 그만큼 우리 회원들은 북쪽으로 오랫동안 달려 이곳에 온 것이 실감된다. 여름철에 자연속으로 파고들어 그속에서 잠시 모든것을 잊고, Trail Walk을 한다는것은, 심신 단련은 물론이려니와 인내를 요구하는 좋은 삶의 체험을 경험할수 있어 그의미가 더 하는것 같다. 오늘 산행은 모든 계층의 회원들이 다 모여 파란 숲속에 천연색을 더 해주는 느낌을 주고도 남는다. 우리의 장래 희망인 어린 꿈나무들로 부터 나이가 지긋하신 분에 이르기 까지..... 다체롭다.
옛날 우리 조상님들이 한지붕아래 할아버지부부,아버지부부, 그리고 아들과 손자녀석들이 같이 오손도손 모여 살았던게 이런 구색으로 보여 지지 않았었겠나? 하는 그런 정겨운 모습들이다.
우선 Trail Walk에 앞서 항상 해 왔던 것 처럼, 지도자분의 오늘 무사한 산행을 기원하는 간단한 기도를 시작으로, 준비해온 점심과 음료수가 들어있는 배낭을 메고, 혹은 허리에 차고, 삼삼오오 짝을 지어 행렬을 따르면서 숲속의 오솔길을 향해 첫발을 내 딛기 시작한다. 오른쪽 오솔길로 발길을 틀어서 한참을 걸으면 Look Out지점이 나온다. 그곳에서는 능선아래 끝도 없이 넓게 보이는 자연속의 숲이 전개되는 아름다움을 볼수 있고, 그반대로 왼쪽 오솔길을 택하여 한참을 걷게 되면 중간위치에 있는 동굴(Cave)을 지나는 Trail을 걸으면서, 석빙고 못지 않는 시원함을 맛볼수 있는 곳을 보게 되여 있다고, Trail Map은 안내 하고 있다. 끈적끈적한 여름날씨 속에서 시원함이상 더 기분좋게 하는 스릴은 없으리라 생각되여 우선 먼저 동굴속을 걸어 볼 생각으로 발길을 왼쪽 방향으로 잡았다. 어린 꿈나무들과 함께 참석한 부모님은 아이들을 사이에 끼고 걸으면서 대자연속의 숲속을 아이들에게 하나라도 더 보여 줄려는 애착을 나타내는 모습이 아름답게 보여 졌다. 또 반갑고 고마운것은, 고국에서 이곳을 방문한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고 산행에 참석한 따님과 그일행이었다. 출발전에 이미 서로 인사들은 했지만, 이러한 산행에 참석할수 있도록 계획을 세운 따님을 따라 나선 두분의 모습이 인상깊다. 고국에서도 많이 걸으셨다고 하셨지만, 환경이 완전히 다른 이곳에서의 광활하고 빽빽한 잡목이 우거진 숲속을 걷는 맛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을것이라 믿어진다. 따님도 부모님과 같이 오랫만에 숲속을 걸으면서 혈육의 정을 깊이 느끼는것을 볼수가 있어 좋았다. 끼리끼리 앞뒤로 서서 오솔길을 걸으면서, 끝없이 나누는 얘기들이 이어지는 동안에 벌써 얼굴에는 땀이 흘러 내리고, 등에서도 땀이 솟아남을 느낀다. 갑자기 윙윙 하는 소리에 모기떼들의 공격이 시작됨을 본다. 흘러 내리는 땀냄새를 그들은 무척이나 좋아 하는것 같다. 아니 땀을 신호로, 우리가 시간에 맞추어 음식을 먹고, 그것으로 부터 얻어진 붉은 피가 우리 몸속의 핏줄을 타고 다니면서 몸속의 각기관을 순찰(?)하는것을 방해 하기위해서인지, 아니면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서인지, 긴 침을 순간적으로 입고있는 옷을 뚤고 피부속에 처박아 흡혈을 하는순간, 대부분 그놈들은 생을 마감하게 되는 폭탄을 얻어맞고, 피부로 부터 떨어져 나가는 활극이 벌어지곤 한다. 용케도 폭탄을 피한놈들의 공격에서 때로는 그흔적이 피부에 불룩하게 나타나는 간지러움(itching)이 우리를 괴롭히기도 한다. 시원한 산들 바람이 그순간 지나치면서 몸을 식혀준다. 고마움을 느낀다. 기분이 상쾌하다.
동굴(Cave)로 통하는 Side Trail입구에 도착한다. 그러나 길이 무척험하고 미끄러워 보인다. 순간 어린꿈나무들과 고국에서 따님을 방문하여 오늘 산행에 참석하신 연로하신 부모님의 안전을 생각안 할수가 없다. 아쉽지만 동굴 통과 구간을 비껴, 그분들이 느끼지 못하도록 자연스럽게 Main Trail로 발길을 돌렸다. 우리가 통과하는 지점에서 멀지않은 곳에서 이곳 캐네디언 청년들이 Camping하는 분주한 모습과 흥얼거리는 광경이 매우 활기 있어보인다. 젊은 청년들이 캠핑하는것을 보는것은 어디서나 흔히 보이는 여름철 광경이다. 잎이 다 없어지고, 이제는 종(Stem)이 나와 씨를 맺을려고 하는 산마늘들이 우리가 지나는 Trail 앞뒤로 널리 펴져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아직 여물지 않은 꽃대를 높이 쳐들고 우리일행을 응시하고 있는것 처럼 보인다. 고국에서 방문하신 부모님께서 산마늘에 대한 얘기를 듣고, 신기해 하시면서,몇뿌리를 채취하신다. 그분들에게는 흔히 볼수있는 기회가 아니듯 싶다. 또 다른 넓은 캐나다의 대자연속에서 느껴보는 값진 기억이 그분들에게, 오늘저녁 밥상에서 의미있게 나타났으면 싶다.
능선상부에 거의 도달하여 널직한 숲속의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점심을 풀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거늘.....어린 꿈나무들이 더 맛있고, 재미있게 먹는 모습들이다. 각자 모두가 제각기 준비해온 점심이지만, 그래도 펼쳐놓고 서로 한번씩 자기것 맛보라고 권하는 모습이 잔잔한 정을 느끼게 한다.
김밥, 샌드위치, 볶음밥, 그리고 별미로 준비해온 이름모를 진미들.....산행중 아마도 가장 큰 의미가 담겨있는 식사순간이다. 시원한 바람이 솔솔불어와서 입에 넣는 진미의 맛을 더 맛있고 시원하게 해준다.
오늘 걷는 이곳은 주정부에서 지정한 자연보호구역중의 한곳이다. 숲속을 걷다 보면 어디를 가나 산림이 빽빽한것을 보는데도, 굳이 산림보존 구역으로 정한것을 보면, 뭔가 우리가 모르는 특수한 나무나 식물이 서식하고 있는것 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더 지정된 Trail로만 발길을 옮기게 되나보다, 이제는 회원들이 산행의 기본을 몸에 익혀 잘 지켜준다. 예정된 코스를 다 걷고 다시 주차장에 거의 도착 했을때 갑자기 shower가 내린다. 마치 이제는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라는것을 그렇게 보여주는것 같은 신기함을 이곳 대자연속에서 본다. 무사히 산행 마침을 감사 하면서......
Tuesday, July 01, 2008
외롭고 서러운길, 안녕히 가십시요.
인생은 유한한 존재이다. 그것도 항상 서럽고 외로운, 그러면서도 피해갈수 없는 수많은 번뇌속에서 헤매다, 때가 되면 대부분 조용히 무대에서 사라지는, 허무하고, 아쉽고, 안타까운 여운을 주위에 남겨두고, 영원한 새로운 길을 향해 떠난다, 아니 떠나야 한다. 오늘은 캐나다 탄생(독립기념일) 141주년을 맞이 하는 7월1일이다.
부모의 곁을 떠나 새로운 삶을 같이 시작하여 오늘에 이른 나의 반려자가 무척이나 깊은 서러움과 시름에 젖어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이 안쓰럽다.
일찍히 이러한 그녀의 모습을 본 기억이 없었다. 조용이 그녀의 모습이 사라져 안보임을 한참후에 알아채리고, 안방을 들어가 보니, 침대에 기대어 흐느낀다. 모든 맥을 다 놓은채..... 그러지 말자고 나는 나름데로 추스려 보지만, 별로 효과가 없어 보인다. 나도 마음이 무겁고, 지난날 그와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웬지 그럴려고 해진다.
어제밤 늦게 뜻하지도 않게 고국에서 전화선을 통해 들려온 소식은 그녀를 푹 주져않게 만드는, 그러나 예측하고 있었던, 바로 위의 오빠의 세상떠난 소식이었다.
일찍히 부모님, 그리고 여러 오빠들의, 그리고 시집쪽에서의 부모님, 그리고 시아주버님들 서거 소식에도 이번처럼 몸을 추스리지 못할 정도의 깊은 슬픔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되는 그녀의 모습이다.
일찍 조실 부모하고, 위로는 여러 형제들 틈바구니에서 어렵게 어린 시절을 보낸 그세월들이 그오빠를 더 안타깝고, 지난 세월들의 삶을 되돌아 보게 하는 서러움이 겹쳐서 그러는것 같다. 마음이 여리고 또 어려서는, 흔히들 그나이에 부모의 사랑을 받을수 있는 그런 여건은, 그에게는 없었다. 다만 가난하고 험한 세상살이를 헤쳐 나가야 하는 과정에서, 아내의 지난 설명에 의하면, 불이익만 그에게 쌓여 있었다고 한다. 내가 아는 그오빠는 평생을 그렇게 남이 부러워 할 정도의 삶을 살아본 외형적인 모습은 없었던것 같다. 어렵게 결혼생활을 하면서도 삶은, 흔히들 들어오는 그런 성공적인 것은 못되었던 것 같았다. 많은 형제 자매들이 어려운 삶을 헤쳐 나가면서, 해외로 해외로 삶의 길을 찾아 떠났지만, 그오빠만은 그대로 고국에 남아, 아니 그럴수 밖에 없어, 오늘에 이르렀는데, 그런 삶 자체도 그에게는 큰 축복(?)이었었는지, 뜻하지 않게 몇년전 부터 치명적인 질병이 그를 덮치고 말았었다. 그소식이 전해 졌을때, 아내는 수소문을 하여, 어렵게 야생삼( wild ginseng) 두 파운드를 구해, 태평양 넘어 그곳 오빠에게 보내는 정성을 보였었다. 어려서 그렇게 서로 의지하고, 때로는 싸우면서, 같이 시절을 보낸 기억이 항상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기에, 평상시의 오빠의 펴지지 않는 삶을 미안해 하면서, 이것으로 라도 생명을 연장해 봤으면 하는 염원을 담아 보내, 그덕택인지는 모르겠으나, 거의 10년을 신기할 정도로 지탱해 왔었다. 그러나 결국 이렇게 전해진 소식은, 아내를 더 서럽게 만들고 만것 같다. 인생은 어차피 그끝을 향해서 태어난 순간 부터 똑 같은 속도로 달려 가는 유한적인 존재이지만, 종점에서 느낄때의 감정은 그동안에 얽히고 설킨 인연과 살아온 생활 때문에 여러 갈래도 나타나는것을, 나는 오늘 아내의 축 쳐진 모습을 보면서, 더 깊이 느낀다. 진직 생전에 한번이라도 더 상면못한 안타까움을 더 하게 해줄, 마지막 길을 굳이 참석해야 한다는것은 현실적으로 무의미 할것 같아, 그녀를 조용히 붙잡아 안정 시킬려고 하는 나의 생각이 짧지는 않았는지? 다시한번 조심스럽기만 하다. 모든 계획된 계획을 다 접고, 오늘은 이렇게 그 형님을 생각하면서...... 캐나다 데이를 보내게 될것이다. 안녕히 가십시요. 형님.....
Subscribe to:
Posts (Atom)